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7-29 14:05:31

라미루 3세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520052, #800080 20%, #800080 80%, #520052); color: #fff;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아스투리아스 왕조
가르시아 1세 오르도뉴 2세 프루엘라 2세 알폰수 프루엘라스 알폰수 4세
아스투리아스 왕조
라미루 2세 오르도뉴 3세 산추 1세 오르도뉴 4세 산추 1세
아스투리아스 왕조 히메네스 왕조
라미루 3세 베르무두 2세 알폰수 5세 베르무두 3세 페르난두 1세
히메네스 왕조 보르고냐 이브레아 왕조
알폰수 6세 산추 2세 알폰수 6세 우라카 알폰수 7세
보르고냐 이브레아 왕조
페르난두 2세 알폰수 9세 산차 페르난두 3세 알폰수 10세
둘세
보르고냐 이브레아 왕조 트라스타마라 왕조
산추 4세 페르난두 4세 알폰수 11세 페드루 엔리케 2세
트라스타마라 왕조
후안 1세 엔리케 3세 후안 2세 엔리케 4세 이사벨 1세
페르난두 5세
트라스타마라 왕조
후아나
압스부르고 왕조
펠리페 1세 카를로스 1세
아스투리아스 · 갈리시아 · 카스티야 · 스페인 }}}}}}}}}
파일:라미루 3세.png
Ramiro III de León
가문 아스투리아스 왕조
생몰년도 961년 ~ 985년 6월 26일
출생지 레온 왕국
사망지 레온 왕국 데스트리아나
재위
기간
레온 왕국 국왕 966년 - 985년
아버지 산추 1세
어머니 테레사 안수레스
배우자 산차 고메즈
자녀 오르도뉴 라미레스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레온 왕국 11대 국왕.

2. 생애

961년경 레온 왕국 8, 10대 국왕 산추 1세와 몬손 백작 안수르 페르난데스의 딸 테레사 안수레스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966년 12월 19일에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망한[1] 뒤 레온 왕위에 올랐다. 이때 나이가 5살에 불과했기 때문에 산추 1세의 누이이며 산살바도르 수녀원에서 수녀로 지내던 엘비라 라미레스의 섭정을 받았고, 어머니 테레사 안수레스는 오비에도의 산 펠라요 수녀원장이 되었다.

엘비라 라미레스는 후우마이야 왕조 칼리파 알 하캄 2세와 평화 협약을 갱신했고, 968년 바이킹이 갈리시아에 상륙했을 때 갈리시아 귀족 로센도에게 지휘권을 맡겨 바이킹을 물리치게 했다. 그러나 975년 6월 산 에스테반 데 고르마즈 성 공략에 착수했다가 6월 28일 알 하캄 2세의 부하 갈립 앗 시클라비의 구원군에게 격파당했다. 갈립은 여세를 이어가 7월 8일 두에로 강 남쪽 랑가 부근에서 카스티야 백작 가르시아 페르난데스를 격파했다. 이 패전으로 입지가 좁아진 그녀는 산살바도르 수녀원으로 돌아가야 했고, 테레사 안수레스가 수녀원에서 나와 섭정을 맡았다.

976년 10월 알 하캄 2세가 사망하고 11세의 히샴 2세가 칼리파에 선임되었다. 이에 후우마이야 왕조의 사령관 알 하지브 알 만수르가 실권을 잡았다. 그는 북아프리카 일대의 이드리스 왕조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후방을 안전하게 다지고 군 편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한 뒤 북방의 기독교 국가들을 향한 대대적인 공세에 착수했다. 977년 살라망카와 쿠에야르가 공략되었고, 978년에는 팜플로나 왕국의 수도 팜플로나가 급습당했으며, 979년에는 세고비아가 함락되고 사모라가 습격당했다. 라미루 3세는 981년 팜플로나 국왕 안초 2세, 카스티야 백작 가르시아 페르난데스와 연합하여 알 만수르에 대적했지만 토르데실라(Tordesillas)에서 12km 떨어진 루에다(Rueda)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압도적인 패배를 당했다. 알 만수르는 여세를 이어가 아스토르가를 습격하여 레온 왕국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고, 982년에 수도인 레온에 입성하여 철저히 파괴했다.

알 만수르의 침략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는 왕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갈리시아와 포르투갈 귀족들은 982년경 오르도뉴 3세사생아 베르무두 2세를 갈리시아 왕으로 옹립하며 반기를 들었다. 베르무두 2세는 982년 봄과 여름에 갈리시아 전역을 공략하며 위세를 떨쳤다. 라미루 3세는 이를 진압하고자 출진했고, 983년 초 양자는 갈리시아의 안타스 데 울라 근처 포르텔라 데 아레나스에서 격돌했지만 양측 모두 막심한 피해를 입었을 뿐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베르무두 2세는 이후에도 갈리시아 왕을 자처했고, 라미루 3세는 레온으로 돌아가 무슬림군의 침략 방어에 전념했지만 985년 알 만수르의 무슬림군이 아스토르가를 재차 공략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985년 6월 26일 아스토르가에서 약 15km 떨어진 데스트리아나에서 병사했고, 산 미구엘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2세기 후 레온 국왕 페르난두 2세에 의해 아스트로가 대성당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생전에 살다냐 백작 고메즈 디아즈의 딸은 산차 고메즈와 결혼하여 아들 오르도뉴 라미레스를 낳았다. 그러나 오르도뉴는 그가 죽었을 때 겨우 4살에 불과했기에, 레온과 카스티야 귀족들은 알 만수르의 침략이 계속 벌어지는 상황에서 어린 아이를 왕으로 세울 수는 없다고 보고 갈리시아 국왕 베르무두 2세를 레온 국왕으로 옹립하기로 결의했다.


[1] 레온 왕국의 성직자이자 학자였던 삼피로의 연대기에 따르면, 갈리시아 백작 곤살로 메넨데스가 바친 독이 든 사과를 먹고 독살당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 뜬 소문을 그대로 믿고 적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