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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미우라

파일:람보르기니 로고.svg
람보르기니의 V12 플래그십 미드엔진 슈퍼카
미우라 쿤타치 디아블로
무르시엘라고 아벤타도르 레부엘토
파일:람보르기니 미우라.jpg
MIURA

1. 개요2. 제원3. 역사
3.1. 초짜 디자이너의 틀을 깬 작품3.2. 공개
4. 평가5. 파생형
5.1. 미우라 로드스터5.2. 미우라 컨셉트
6. 미디어에서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1. 개요

이탈리아의 슈퍼카 메이커 람보르기니에서 1966년부터 1973년까지 7년간 총 764대를 생산한 12기통 스포츠카. 최초의 양산형 V12 미드쉽 차량이자, 최초로 '슈퍼카'라는 명칭을 얻은 자동차이다.[1] 또한 람보르기니가 공식적으로 분류한 람보르기니 최초의 기함이다.[2]

미우라라는 이름은 람보르기니의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직접 붙인 것으로 아일레로, 가야르도, 무르시엘라고 등 걸출한 투우소들를 길러낸 돈 안토니오 미우라라는 사육사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단순히 P400으로만 불렸다.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이후로도 그가 길러낸 소[3]의 이름이 람보르기니의 차량 이름으로 자주 쓰인다.

2. 제원

차량 제원
모델명 Lamborghini Miura P400 Lamborghini Miura P400S Lamborghini Miura P400SV
생산년도 1966~1968년 1969~1971년 1971~1973년
엔진 형식 V12
미션 형식 5단 수동
구동 방식 MR
배기량 3,939cc
최고 출력 350hp/7,000rpm 370hp/7,000rpm 385hp/7,000rpm
최고 토크 35.5mkg/5,100rpm 38.8mkg/5,500rpm 38.8kmg/5,750rpm
전장 4,260mm
전폭 1,760mm 1,780mm
전고 1,050mm
휠베이스 2,500mm
서스펜션 위시본 (전/후륜)
브레이크 디스크 (전/후륜)
공차 중량 1,292kg 1,040kg 1,245kg
최고 속도 276km/h 285km/h 290km/h
제로백 (0→100km/h) 5.9초 4.5초[4] 5.5초
승차인원 2명

3. 역사

람보르기니의 창업주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퓨어 스포츠카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처음 제작한 350 GT처럼 안락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그랜드 투어러를 선호하였다. 그래서 미우라는 페루치오에게 알리지 않고 청년 엔지니어들이 재미 삼아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로 완성되었는데 페루치오는 미우라가 마케팅용 헤일로카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생산을 허락하였다. 하지만 미우라의 프로토타입이 모터쇼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페루치오는 아침마다 미우라를 제작하는 엔지니어들의 식사를 준비하며 독려하였다.

3.1. 초짜 디자이너의 틀을 깬 작품

미우라의 디자인을 담당한 마르첼로 간디니는 당시에 겨우 27세의 나이[5]로 경험이 부족하여 자동차 디자인의 기본이나, 인체공학적인 측면을 따지는 능력이 많이 부족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기성 공식에 얽매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멋진 디자인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간디니는 람보르기니에 입사한 당일 미우라를 디자인하기 시작해 단 이틀만에 미우라의 대략적인 디자인을 끝냈다고 한다. 입사한지 단 이틀만에 본인과 회사의 운명을 통째로 바꿔버릴 디자인을 내놓은 것.

3.2. 공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amborghini_Miura_P400SV.jpg파일:2712A15F-0CF7-49A6-8736-E670453ABFB5.jpg
미우라는 196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특이하게도 엔진을 시트 뒤에 배치하는 전형적인 미드쉽이면서도 엔진을 가로로 배치[6]하였으며, 마르첼로 간디니의 시대를 앞서간 역동적인 디자인은 당시 자동차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https://www.supercars.net/blog/first-supercar-lamborghini-miura/
P400은 275km/h라는 속도로 가장 빠른 양산차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나, 페라리의 365가 1968년에 280km/h로 해당기록을 갱신하자, 람보르기니는 1970년에 다음모델인 P400S의 출력을 강화하여 288km/h를 달성해 타이틀을 다시 되찾아왔다. 이후 P400SV로 290km/h를 달성하여 최고기록을 갱신하였으며, 이는 쿤타치에 의해 또 다시 갱신되었고, 1984년에 페라리 288 GTO가 갱신하기 전까지는 람보르기니가 계속 보유한 타이틀이었다.

표에 써진 모델말고도 레이싱 규정에 맞춰서 만든 1970년식 Jota[7]라는 단 한대만 만들어진 모델이 존재했는데, 만들어진 지 1년 후인 1971년 4월, 교통사고불타버렸다. 더욱이 이 차는 프로토타입 모델 답게 경매에 나올 시 천문학적인 가격대를 형성했을 것이다. 대신에 요타에 대한 소문을 듣고온 고객들의 열화같은 성화에 힘입어 이후 SV/J[8]라는 모델을 12대 정도 생산했다.

4. 평가

미우라는 너무나 멋지게 생긴 외양과는 달리, 초기형 P400모델은 초보 디자이너와 젊은 엔지니어들이 부업성으로 만들기 시작했던 차답게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치명적인 단점으로는 공력특성이 엉망이고 연료탱크가 앞에 있다는 점이었다. 연료를 가득 주입했을 때에는 괜찮지만 연료를 소모할수록 차 앞이 가벼워져 고속주행 시 프론트가 떠버리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당연히 이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조향이 불가능해 미우라는 고속주행에서 극도로 위험했다. 설계 불량으로 휘발유가 뜨거운 엔진커버 위로 분사되어 불이 나는 경우도 잦았다고 한다. 실내공간은 2명이 타기에도 비좁을 정도였고 무거운 엔진으로 인한 리어헤비 특성과 엄청난 소음, 허접한 냉각 및 방열성능으로 운전하기도 어려웠다.

이렇듯 60년대 기준으로도 정말 거칠고 불편한 차였지만, 성능과 스타일이 워낙 센세이셔널한 차였던지라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명차로 인정받고 있다.

상술했듯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원래 관심사는 GT카였으며, 미우라의 데뷔 당시에도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이차는 쇼카이며 다른 차량의 판매촉진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많아야 10대는 팔릴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네바 모터쇼 당시 많은 주문을 받은터라 완성도는 높진 않지만 일단 생산라인을 깔고 한 대 한 대 생산할 때마다 기능적 개선, 오류 수정을 하면서 점차 완성도롤 높여갈 생각을 했었던 듯 하다. 이처럼 프로토타입을 판매하면서 개량하는 것은 당시 소규모 코치빌더들에게는 흔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미우라, 특히 초기형은 워낙 문제가 많았던지라 고객들이 수리를 위해 람보르기니 본사에 차를 끌고 오면 페루치오는 고객을 앉혀놓고 저녁 식사를 대접하며 시간을 끌었고, 사장이 시간을 버는 동안 뒤에서 엔지니어들은 차를 완전히 분해한 후 개선된 부품들을 넣어 재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한다.

비록 미우라는 그때까지 아무런 임팩트가 없었던 람보르기니라는 브랜드를 모두에게 알린 첫 모델이자 현재의 스포츠카 메이커로서의 람보르기니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준 기념비적인 모델이었지만, 판매량과는 별개로 무상 수리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나 컸기에 람보르기니에 돈을 벌어다주지는 못했다. 자신이 설립한 회사가 자신이 생각한 방향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데다 돈도 벌리지 않자 실망한 페루치오는 1967년 회사를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새벽 1시에 수석 엔지니어였던 파올로 스탄자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에게 경영권을 완전히 넘길 것이며, 만약 스탄자니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람보르기니를 폐쇄하겠다고 선언한다. 스탄자니는 경영권을 받아들이는 대신, 페루치오에게 명목상의 사장 자리를 유지하도록 설득했고 그렇게 1970년대에 회사가 매각될 때까지 람보르기니는 유지되었다.

5. 파생형

5.1. 미우라 로드스터

5.2. 미우라 컨셉트

파일:external/www.ultimatecarpage.com/Lamborghini-Miura-Concept_1.jpg

2006년에 가야르도를 베이스로 미우라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컨셉트카이다. 디자이너는 현재 현대자동차그룹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루크 동커볼케. 다만, 람보르기니는 미우라의 부활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동사의 쿤타치16년 후에 신형으로 부활한 것을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점.

6. 미디어에서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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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는 그냥 미우라가 아닌 미우라 SV부터이다. SV는 Super Veloce, 즉 Super Fast라는 뜻인데, 이 차량이 페라리가 갱신했던 가장 빠른 양산차 기록을 다시 깨뜨리면서 '슈퍼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현재도 슈퍼카의 개념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는 차량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2] 처음 2년 간은 경영난으로 198대만 생산됐으며, 1964년 마트라에 인수된 뒤 68년 단종 때까지 1,491대가 더 생산됐다. 보넷 젯 외에도 1964년에 출시된 데 토마조 발레룬가가 미우라보다 앞서 미드쉽 레이아웃을 채택했다.[3] 소는 람보르기니의 엠블렘에 있는 상징이기도 하다.[4] 엄청난 경량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었다.[5] 1938 - 2024. 이후 더욱 획기적인 후속작인 쿤타치의 디자인도 담당하였다.[6] 일반적으로 8기통 이상급의 대형 엔진을 MR로 얹는 경우는 엔진의 길이 때문에 세로배치가 대부분이다. 가로배치 MR은 토요타 MR 시리즈(직렬 4기통), 혼다 NSX(V형 6기통) 등 컴팩트한 엔진을 탑재한 경우 주로 채택된다.[7] '요타'로 읽는다. 일본에서는 '이오타'로 알려져 있다. 이름의 유래는 J의 스페인어 표기인 Jota(호타)를 이탈리아식으로 읽은 것.[8] "슈퍼벨로체 요타" 라고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