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
프로이센 왕국 | ||||||||||||
바이에른 왕국 | 작센 왕국 | 뷔르템베르크 왕국 | ||||||||||
바덴 대공국 | 헤센 대공국 | 올덴부르크 대공국 |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 |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 |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 ||||||||||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 작센마이닝겐 공국 | 작센알텐부르크 공국 | ||||||||||
안할트 공국 |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 리페 후국 | ||||||||||
샤움부르크리페 후국 |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후국 | ||||||||||
발데크피르몬트 후국 | 로이스게라 후국 | 로이스그라이츠 후국 | ||||||||||
함부르크 제국도시 | 브레멘 제국도시 | 뤼베크 제국도시 | ||||||||||
엘자스로트링겐 제국영토 | }}}}}}}}} |
리페 후국 Fürstentum Lippe | ||
국기 | 국장 | |
위치 | ||
1789년 ~ 1918년 | ||
역사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작센 공국 | 바이마르 공화국 | |
지리 | ||
위치 |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 |
수도 | 데트몰트 | |
인문환경 | ||
언어 | 독일어 | |
종교 | 개혁교회 (국교), 루터교회, 가톨릭 | |
민족 | 독일인 | |
정치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입헌군주제 | |
국가원수 | 후작 |
1. 개요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후국(Fürstentum)이었으며 수도는 데트몰트(Detmold)였다.1910년 기준으로 면적 1,215 km², 인구 15만. 게르만족이 로마군에게 대승을 거둔 곳인 토이토부르크 숲의 남동쪽에 위치한다.
루터교회를 국교로 했던 북독일의 다른 영방들과는 달리 개혁교회가 국교였다. 다만 19세기 중반부터는 가톨릭, 루터교회 또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정교 분리가 되었다.
2. 약사
리페 공가의 시조는 베른하르트(Bernhard I)라는 인물로, 1123년 신성 로마 제국으로부터 리페 지역을 받아 영주가 되면서 시작하였다. 1429부터 1511년까지 81년 넘게 재위한 영주 베른하르트 7세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의 아들인 시몬 5세는 1528년 백작으로 승격했다. 이후 그의 손자인 시몬 6세의 사후, 막내아들 필리프가 1613년 분가하여 대가 끊어진 샤움부르크 백국의 일부를 받고 샤움부르크리페 공가의 시조가 되었다.1789년 공(Fürst)으로 승격되었고,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에 가입했다.
1918년 11월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레오폴트 4세 공이 퇴위하였고, 795년 통치가 끝나버렸다. 독일의 주(州)로 있다가 1947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 흡수된다.
3. 왕사(王史)[1]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99c00, #fcc300 20%, #fcc300 80%, #c99c00); color: #fff;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리페 왕조 | |||
레오폴트 1세 | 레오폴트 2세 | 레오폴트 3세 | 볼데마어 | |
알렉산더 | 레오폴트 4세 | |||
리페데트몰트 백작 | }}}}}}}}} |
- 레오폴트 1세 (1789~1802)
1767~1802. 1782년 백작으로 즉위했고 1789년 공으로 승격. - 레오폴트 2세 (1802~1851)
1796~1851. 6살에 즉위했기 때문에 모비인 안할트베른부르크의 파울리네가 섭정했다. 섭정기 동안 헌법과 의회가 만들어졌다. 24세 때부터 친정했으며, 만년에 1848년 혁명을 겪었다. 이후의 세 군주들은 모두 그의 아들들이다. - 레오폴트 3세 (1851~1875)
1821~1875. 1854년 가톨릭교회를 당시 리페의 국교였던 개혁교회와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교서를 발표하는 등 여러 개혁을 시도했다. 보오전쟁 때는 프로이센을 지원했으며, 1857년부터 2년간 요하네스 브람스가 그의 식객으로 지내기도 했다. 자녀를 두지 못했다. - 볼데마어 (1875~1895)
1824~1895. 1892년 베를린에서 다른 독일 제후들과 빌헬름 2세를 회견했을 때, 빌헬름 2세가 제후들을 신하로 묘사하자 그의 말을 끊고 신하가 아니라 동맹이라고 맞받아친 일화가 있다. 미혼으로 사망. - 알렉산더 (1895~1905)
1831~1905. 리페-데트몰트 계통의 마지막 군주로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섭정 자리를 놓고 분가인 샤움부르크-리페 제후와 방계인 리페-비스터펠트 가문이 분쟁을 치렀다. - 레오폴트 4세 (1905~1918)
1871~1949. 원래는 방계인 리페-비스터펠트(Lippe-Biesterfeld) 계통의 6대 백작으로, 본가가 단절되면서 작위를 계승했다. 1916년, 남동생 베른하르트를 위해 새롭게 Lippe-Biesterfeld 가문을 다시 창설하였고, 베른하르트의 아들 리페비스터펠트의 베른하르트 공자가 네덜란드의 율리아나 여왕과 결혼하였다. 1918년 독일 혁명으로 퇴위. 전처 소생 아들들의 친나치 행보[2]와 귀천상혼을 못마땅하게 여겨, 가문의 계승권을 후처 소생인 아르민(1924~2015)에게 상속하였다.하지만 아르민도 아버지 돌아가시고 귀천상혼한 건 함정
3.1. 공위요구자
- 레오폴트 4세 (1918~1949)
- 아르민 (1949~2015)
- 슈테판 (2015~) 1959년생[3]
- 베른하르트를 포함 3남 2녀
3.2. 분가
- 리페-비스터펠트(Lippe-Biesterfeld) 가문 : 현재의 가문은 레오폴트 4세의 동생을 위해 1916년 창설. 리페비스터펠트의 베른하르트 공자와 결혼한 율리아나 여왕이 딸밖에 없어서 베아트릭스 여왕 자매들이 사망하면 단절된다.
- 리페-바이센펠트(Lippe-Weissenfeld) 가문 : 1916년 창설. #
리페 가문은 지금도 옛 공궁인 데트몰트 성, 토이토부르거 숲의 상당수를 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