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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Marcus
그리스어: Μᾶρκος
아랍어: مَرْقُس
콥트어: Ⲙⲁⲣⲕⲟⲥ
히브리어: מרקוס
1. 개요
그리스도교 초기의 성인. 축일은 가톨릭이 4월 25일, 정교회는 5월 2일(율리우스력).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사도 바울로와 마찬가지로 한국어 표기법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마르코', 개신교에서는 '마가(馬可)'이며, 이는 영어 표기인 '마크(Mark)'를 한자로 음차한 표현이다.[1] 가톨릭에서는 라틴어 표기인 '마르쿠스'에서 유래한 '말구'라고도 표기했고, 마르코 복음서도 성말구복음이었다.
2. 상세
신약성서 곳곳에 「예루살렘 출신으로서」(사도 12, 12) 「바울로와 바르나바의 제자」였으며(사도 12, 15 ; 13, 5~13 ; 15, 37~39 필레 1, 24 골로 4, 10 ; 1디모 4, 11) 또한 「베드로의 제자」(1베드 5, 13)로 「요한」 마르코 라는 인물이 묘사돼 있으나 복음사가 마르코와 같은지는 분명치 않다.성경에 따르면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바울로의 동료 바르나바의 조카였으며,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가진 장소가 마르코의 집 다락방이었다는 설이 있다. 신약에 나오는 사람들 중 가장 인지도와 영향력이 큰 두 인물, 베드로와 바울로 두 사람과 밀접하게 엮여있는데 사도 베드로가 마르코를 무척 총애했다는 설이 있다. 베드로 전서 5장 13절 중 베드로가 마르코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때 마르코를 자신의 아들이나 다를바 없다고 지칭한다. 다만 이 마르코가 복음 작가 마르코와 같은지는 확실치 않다. 또한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가 매우 열성적인 신자였으며, 베드로에게 큰 신뢰를 받았다는 것이 근거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 집안이 초기 그리스도교인들 공동체에서 상당히 명망이 있었는지 사도행전에 의하면 베드로가 헤로데에게 잡혀가 처형당하기 전날 천사의 도움으로 탈출하자 말자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이 집안이었는데, 베드로는 교회의 높은 인사인 야고보와 신도들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대목에서 '요한이라 하는 마르코'라고 마르코의 이름이 처음으로 직접 등장한다.
이후 삼촌 바르나바와 사도 바울로의 제1차 선교 여행 시 통역으로서 동행하지만 키프로스 섬까지만 동행하고 정작 본무대인 소아시아 지역에 들어가기 전에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데 이게 후일 바르나바와 바울로가 갈라서는 계기가 되고 만다. 마르코가 무슨 이유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건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후 바울로가 팜필리아에서 우리를 떠나 함께 하지 않았던 자라고 지칭하며 매우 심하게 화를 낸 것으로 보아 이 당시 젊은 청년이었던 마르코가 험한 고생길에 겁을 먹거나 지쳐서 돌아갔고 이것에 바울로가 실망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바울로가 바르나바에게 자신들이 세운 교회를 다시 돌아보러 가자고 제안했을 때 바르나바는 마르코도 다시 데려가자고 했지만 바울로가 반대했고, 두 사람이 이 문제로 "매우 심하게 다투었다"고 기술되어 있을 정도로 큰 싸움이 났었다고 한다. 바르나바는 초기 그리스도교 신도를 박해했다는 이유로 평판이 좋지 못하던 바울로에게 가장 든든한 동료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는데도 둘이 이렇게까지 다투었다는 것에서 이 문제가 상당히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바르나바는 바르나바대로 마르코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버리고 바울로는 실라라는 새로운 동행자를 구하게된다. 그 이후 로마 제국 선교 당시 사도 베드로의 일행으로 함께 있었다. 당시 베드로에게 직접 배운 가르침을 충실히 기록하여 마르코 복음서로 정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드로에게는 총애를 받은 모양이지만 어째 바울로에게는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던 모양.
다만 마르코 역시 이후에는 바르나바, 베드로의 일행으로 성실하게 활동하고 다녔고 사도 바울로의 말년에는 둘 사이의 감정이 풀어져서 바울로도 누구보다 마르코를 인정하게 되었다.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내는 서간에서, 바울로가 감옥에 갇혀서 고초를 당할 당시 마르코가 바울로의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며 그를 위로해줬다고 한다. 바울로 본인도 지금 자기 옆에 바르나바 조카 마르코도 같이 있다고 그의 안부를 신도들에게 직접 전해주는데 마르코가 풀려나면 그를 잘 받아주라고 지시를 내리며 마르코를 챙겨주기까지 했다.[2] 또한 디모테오 2서에서 바울로가 마르코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르코가 자신의 일에 매우 도움이 되는 사람이니까 그를 데려와 달라고 디모테오에게 부탁한다.
마르코가 예수의 생전 당시부터 그의 신자였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가 썼다고 알려진 마르코 복음서에는, 다른 복음서에선 언급조차 되지 않는 매우 황당하고 코믹한(...) 일화가 하나 등장하는데 예수가 체포되던 당일밤 제자들이 다 도망갔을 때 예수의 추종자인 청년 하나가 베 이불을 두르고는 예수와 군인들의 뒤를 밟다가 군인들이 눈치채어 그를 붙들자 이불을 버려두고 나체로 도망갔다는 내용이 14장 51절과 52절에 있다. 아무리 전후 맥락을 살펴봐도 어울리지 않고, 전혀 들어갈 이유가 없어보이는 내용. 일부 기독교인들 중에서는 당시의 이 청년이 마르코 본인이었고 마르코와 마르코의 어머니가 이 시절부터 예수의 신자였다고 보기도 한다. 예수가 끌려가는 심각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이 일화를 굳이 넣은 이유는 어린 시절의 마르코 본인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징은 사자. 마르코 복음서의 서두가 사자의 울음처럼 세례자 요한의 장중한 외침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승에 의하면 마르코는 베드로와 바울로가 순교한 뒤 로마를 떠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현지 주교로서 교회를 발전시켰지만,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일면서 체포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마르코는 목에 줄을 매 읍내를 돌게 되고 참살당하게 된다.
가톨릭과 정교회, 콥트 정교회 등에서는 초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로 여겨진다. 서기 40년 마르코가 이집트에 와서 그리스도교를 전래했다고 전해지기 때문. 이집트에 잠들어 있던 성인의 유해는 베네치아 상인들이 9세기경에 발견하고,도굴하여 베네치아로 옮겨졌다고 한다. 옮길 때 무슬림들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 돼지고기에 숨겨서 옮겼다고.
마르코 성인의 유해가 베네치아 공화국에 옮겨져 산 마르코 대성당에 안치되면서, 성 마르코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이 때부터 베네치아의 문장에도 사자가 새겨졌다. 베네치아의 문장 속에 들어가 있는 사자는 손에 책을 들고 있는데, 거기엔 라틴어로 Pax Tibi Marce Evangelista Meus(평화가 당신에게 있기를, 나의 복음사가 마르코여)라고 적혀 있다.
3. 기타
그리스어 신약에 Μάρκος(Markos)라 적히긴 했지만, 이름 자체는 로마 신화의 마르스(그리스 신화의 아레스)에서 유래한 전형적인 라틴어 이름이다. 즉 가장 원어에 가까운 표기는 Marcus이다.[3]오늘날에는 가톨릭권 국가인 이탈리아 및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의 남자 이름으로 매우 자주 쓰인다. 다른 언어별 명칭으로는 이탈리아어의 마르코(Marco)와 마르첼로(Marcello), 스페인어의 마르코스(Marcos)와 마르셀로(Marcelo), 프랑스어·독일어 마르크(Marc)와 마르셀(Marcel), 러시아어의 마르크(Марк), 영어의 마크(Mark)와 마커스(Marcus·Markus)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