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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8-06-11 20:05:10

마이클 잭슨/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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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5일 마이클 잭슨은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인해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상태로 발견되어 로스앤젤레스의 현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향년 50세에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결국 팬들도, 그리고 마이클 잭슨 자신도 기다려왔던 무대 복귀를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사망했다.[1]

그 뒤 이미 발권된 런던 공연에 대해서는 환불이 진행되었는데 대다수는 런던 공연의 티켓을 잭슨의 유품으로 여기며 환불하지 않고 소장하여 회수율이 매우 낮았고 오히려 이 티켓은 이베이 등지에서 원래 가격의 10배가 넘는 비싼 값에 거래된 적이 있다. 일각에서는 모차르트 등과 비교하며 천재는 요절한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마이클이 불면증을 호소하며 프로포폴을 찾았다. 그러나 난 거부했는데 사망 4일 전 마이클의 직원 한 명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이클이 지금 당신을 보고 싶어한다고 말하는 데 그 뒤에서 마이클이 '몸 한쪽이 아주 뜨거운데 다른 한쪽은 춥다. 매우 춥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곤경에 처해 울부짖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의 간호사, 셰릴린 리
마이클 잭슨의 사망 전 건강 상태는 50대 미국인에 비춰봤을 때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심한 스트레스와 불면증으로 인한 약물 문제가 있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약물은 마약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마이클 잭슨은 절대 마약을 하지도 않았고, 오직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것만 구했다고 한다.

2009년 6월 25일에 세상을 떠난 후 수많은 빚이 있었다는 말이 나와 여러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사실 그는 소니EMG의 50%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마이클 잭슨 본인의 것은 물론 75만개의 노래에 대한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기에 이러한 지분과 저작권의 현 시가만 해도 5억 달러 그 이상에 이르며 수많은 부동산, 세계 각국의 건물과 성을 소유하고 있으니 돈으로 환산한다면 실제로 빚이 있었더라도 갚고도 남는다. 실제로 빚이 있다는 언급이 있은 지 몇 주 후에 그의 재산은 빚을 제외하더라도 1조 5천억 원 정도가 남을 거라는 기사가 나왔으며 2010년 3월에선 이제 잭슨이 지고 있던 빚은 없다는 말이 나왔다.

그의 사후 미국 의회에서는 잭슨을 기리고자 정치인 출신이자 목사인 재시 잭슨의 주도하에 국회의원들의 단체 묵념이 있었고 CNN을 비롯한 몇몇 해외의 유명 언론들이 정규 뉴스를 중단하고 긴급 속보 체제에 돌입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면서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엔터테이너' 이라는 타이틀이 과장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더불어 사망 소식 이후 음반 판매량 1~5위까지 잭슨이 석권할 정도로 당시 1위였던 블랙 아이드 피스의 앨범보다 많이 팔렸으나 빌보드에서는 발매 된 지 2년이 지나면 차트에 집계하지 않아 빌보드 앨범 200 차트에 마이클이 올라가지 못 했다. 이에 대해 말이 많자 빌보드는 결국 아무리 오래 전에 발매됐어도 언제든 성적만 좋다면 200 차트에 올라갈 수 있도록 규정을 수정했다. 세계적 음반체인점 HMV는 잭슨의 사후 음반판매가 1977년 엘비스 프레슬리, 1980년 비틀스의 존 레논이 사망했을 때의 반응을 압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임즈에서는 9.11 테러 이후 처음으로 특집판이 발매됐고[2] 2010년에는 VH1 선정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순간에 잭슨의 사망이 1위에 올랐다.

잭슨의 사망 소식이 보도되고 뉴스 웹사이트는 사용자 폭주로 빠르게 과부하에 걸린다. 잭슨의 사망 소식을 최초 보도한 TMZ와 뉴욕타임즈는 서버 폭파 현상을 겪었으며, 구글은 마이클 잭슨 검색어 량이 수백만씩 폭등하자 DDoS 공격으로 간주하고 30분동안 마이클 잭슨 관련 검색을 차단했다.
그때 사상 최초로 사람들이 다 함께 인터넷을 무너뜨렸어요.
내셔널 지오그래픽 <세계적 문화 아이콘, 마이클 잭슨의 사망> 데이비드 셀링거(아마존 닷컴)
팝의 황제로 놀라운 명성과 영예를 누렸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사람. 여러 가지 구설수가 있었지만 아까운 사람이 죽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의 춤과 음악은 영원히 남으리라.

그리고 사망 이후 그의 인격적인 측면이 지인과 자녀들을 통해 증언되고 과거에 있었던 몇몇 추문들의 진실들이 밝혀지며 본국인 미국에서도 영웅적인 이미지를 많이 회복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사후 유튜브에 그의 공연 영상들이 마구 업데이트되어 잭슨에 대한 미국 10대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의 10대 팬 층도 상당히 증가했다. 덕분에 2009년 말 미국 여론조사에서 미국 10대, 20대들이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1위에 마이클 잭슨이 올라갔었다.

팝의 황제답게 '이 모든 것이 쇼이며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라는 팬들의 극성적인 말들이 나오기도 했으며 그 덕분에 한동안 영문판 위키백과에서는 죽었다 안 죽었다 가지고 수정전쟁이 발생하기까지 했다(...) 관련 기사.

미 현지 시각으로 2009년 7월 7일 마이클 잭슨 추모식이 열렸고 약 3만 명이 그 자리에 참여했다. 가수 한 명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이러한 행사가 열릴 정도라는 것은 그가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증거. 이 추모식은 미국에서만 3100만명이 시청했는 데 역대 추모식 시청률 3위라고 한다.[3]

그의 생일인 2009년 8월 29일에는 뉴욕, 베이징, 도쿄, 서울, 파리, 런던, 베를린, 상파울루 등등 전 세계에서 그를 추모하기 위한 'Beat it' 플래시몹이 벌어졌으며 2014년인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 예정이다.

2009년 7월 11일, LA 경찰에서 타살 설을 제기했고 15일에 잭슨의 사망을 미국 법상 살인으로 결론지었다. 의도적인 살해는 아닐지언정 치료과정 중 과다한 약물투여로 인한 2급살인(=과실치사)라는 듯. 참고로 미국 법의 1급 살인이 우리나라의 살인죄(고의 있음)이고 2급 살인은 우리나라의 과실치사(의도 없음)에 해당한다. 즉, 미국 법에는 '과실치사'라는 용어가 없고 일단 사람을 죽였다면 살인이며 그 고의 유무에 따라 1급과 2급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2011년 9월 28일부터 미국에서 잭슨의 주치의이자 천하의 개쌍놈인 콘래드 머레이(Conrad Murray)에 대한 공판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잭슨의 사망 직후의 사진이 공개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머리는 공판에서 잭슨이 자의에 의하여 불면증 치료제인 프로포폴을 주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을 통해 잭슨 스스로는 주입할 수 없는 것이 밝혀졌다. 사진과 함께 사망 전의 음성 녹음파일도 공개되었다.# 결국 2011년 11월 7일 # 과실치사(involuntary manslaughter) 유죄로 판결이 내려지고 2013년 출소했다.

'사람들이 이 쇼를 떠날 때, 사람들이 내 쇼를 떠날 때 나는 사람들이 '내 생애에 본 적이 없는 최고의 쇼 였어.' 라고 말하기를 바란다.' 는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언론에서도 '약물에 취한 것 같은 목소리' 라고 말하며 잠정적으로 그의 약물 남용 설을 미는 눈치다. 슬프게도 육성 속 고인의 꿈이 실현되지 않았지만 마지막 공연에 대한 고인의 열정을 잠시 느낄 수 있다.
[1] 참고로 그의 사망일은 한국에서 2번째 공연을 가진 지 딱 10년이 되던 날이었다.[2] 뉴욕 타임즈는 9.11테러 같은 일이 아니면 1면에다가 대문짝만한 사진을 올리지않는다.[3] 1위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2위는 다이애나 비 그러나 레이건 시절에는 인터넷 중계가 활발하지 않았고 다이애나 시절에는 인터넷 중계가 없어서 1대1 비교는 무리라고 한다. 추모식 당일 미국 언론들의 인터넷판에 상당한 트래픽이 몰렸다고 인터넷 생중계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