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5:06:50

마쓰이 이치로

마츠이 이치로에서 넘어옴
파일:오사카부 휘장_White.svg
오사카부지사
{{{#!wiki style="margin: 0 -1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0;"
제1-3대
아카마 분조
제4-6대
사토 기센
제7-8대
구로다 요이치
제9-11대
기시 사카에
제12대
나카가와 가즈오
제13-14대
야마다 이사무
제15-16대
사이토 후사에
제17대
하시모토 도루
제18-19대
마쓰이 이치로
제20·21대
요시무라 히로후미
}}}}}}}}}

역임한 직위
[ 펼치기 · 접기 ]
----
파일:구 일본 유신회 로고.png 일본유신회(2012년) 간사장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초대
마쓰이 이치로
}}}}}}}}}}}}}}} ||

파일:일본유신회(2016년) 로고.svg 일본유신회 대표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초대
하시모토 도루
제2대
마쓰이 이치로
제3대
마쓰이 이치로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제4대
마쓰이 이치로
바바 노부유키
제5대
바바 노부유키
요시무라 히로후미

}}}}}}}}}}}}}}}

파일:오사카시 문장_White.svg
오사카부 오사카시장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초대
타무라 타헤
제2대
츠루하라 사다키치
제3대
야마시타 시게타케
제4대
우에무라 슌페이
제5대
키즈키 카네유키
제6대
이케가미 시로
제7대
세키 하지메
제8대
카가미 타케오
제9대
사카마 무네지
제10대
나카이 미쓰지
제11대
콘도 히로
제12대
나카이 미쓰지
제13대
츄우마 카오루
제14대
오시마 야스시
제15대
니시오 마사야
제16대
이소무라 타카후미
제17대
세키 준이치
제18대
히라마쓰 구니오
제19대
하시모토 도루
제20대
요시무라 히로후미
제21대
마쓰이 이치로
제22대
요코야마 히데유키
}}}}}}}}}

<colbgcolor=#33419A><colcolor=#FFF> 제18-19대 오사카부지사
마쓰이 이치로
松井一郞 | Matsui Ichiro
파일:마쓰이 이치로 2024.jpg
출생 1964년 1월 31일 ([age(1964-01-31)]세)
오사카부 야오시
재임기간 제18-19대 오사카부지사
2011년 11월 28일 ~ 2019년 3월 24일
제21대 오사카시장
2019년 4월 8일 ~ 2023년 4월 9일
서명
파일:마쓰이 이치로 서명.pn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373a3c,#dd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3419A><colcolor=#FFF> 가족 아버지 마쓰이 요시오[1]
배우자, 슬하 1남 1녀
학력 야오시립 다카미 소학교 (졸업)
야오시립 다카미 중학교 (졸업)
오사카공업대학 고등학교 (중퇴)
후쿠오카공업대학 부속 고등학교 (졸업)
후쿠오카공업대학 (전기공학 / 학사)
신체 164cm
정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약력 킨덴 직원
오사카부의회 의원 (3선, 야오시 선거구)
오사카 유신회 간사장
오사카부지사 (제18·19대)
일본 유신회 간사장
유신당 간사장
일본 유신회 간사장
일본 유신회 대표 (제2-4대)
오사카시장 (제21대)
}}}}}}}}}}}}

1. 개요2. 생애
2.1. 초기2.2. 정치 경력2.3. 오사카시장 시절
3. 소속 정당

[clearfix]

1. 개요

일본의 前 정치인. 전기 기술자 출신으로, 오사카부의원, 제18-19대 오사카부지사를 역임했으며 제21대 오사카시장, 가타야마 도라노스케와 함께 일본 유신회 공동 대표, 당 고문 등을 지냈으며 하시모토와 함께 유신내에서 아베 신조와 친했던 정치인중 한명이다

2. 생애

2.1. 초기

1964년 1월 31일, 오사카부 야오시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마쓰이 요시오는 1996년 오사카부의회 의원이었다. 야오시립 다카미 소학교, 야오시립 다카미 중학교, 오사카 공업대학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불상사를 일으켜 중퇴 후 후쿠오카 공업대학 부속 고등학교로 편입해 졸업했다. 이후 후쿠오카 공업대학 공학부 전기공학과를 졸업해 간사이전력에서 근무했다.

2.2. 정치 경력

이후 2003년 통일지방선거 당시 치러진 오사카부의회 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공천을 받아 자신의 고향인 야오시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오사카부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2011년까지 3연임한다.

자민당 소속으로 오사카부의원으로 당선되어 활동했으나 부청 이전 문제를 두고 자민당과 의견이 갈렸고[2] 이후 자민당과 결별하고 독자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2010년, 하시모토 도루가 대표로 있는 오사카 유신회에 참여해 간사장을 역임하고 이후 일본 유신회에도 참여해 간사장을 역임했다.

2011년, 오사카시 시장 선거 출마를 위해 오사카부 지사를 사임한 하시모토 도루를 대신해 오사카부 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2015년 5월, 기존의 오사카시를 해체하고 해당 지역에 5개의 특별 자치구를 설치하는 이른바 ‘오사카도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했으나, 반대표가 근소한 차이로 더 많이 나와 부결되었다. 이 투표의 부결로 ‘오사카도 구상’이 좌절된 하시모토는 마쓰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하시모토는 차기 오사카시 시장 선거 불출마 및 정계 은퇴를 발표했다. 동년 9월, 오사카 유신회의 공천을 받아 오사카부 지사 선거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동년 12월에는 오사카 유신회의 대표로 취임했다. 이후 하시모토의 ‘오사카도 구상’ 실현을 마쓰이가 사실상 이어받아 “오사카시를 해체해 4개의 특별구를 설치하면 1조 1000억 엔의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라고 말하며 ‘오사카도 구상’을 띄운다.

2.3. 오사카시장 시절

2019년 3월 ‘오사카도 구상’ 주민 투표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공명당과의 합의 결렬로 지사직을 사퇴하고, 동년 4월 오사카시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동시에 실시된 오사카부 지사 선거에는 오사카 시장이었던 요시무라 히로후미가 출마해 당선되었다. 오사카부 지사 자리와 오사카 시장 자리를 서로 맞바꾼 셈. 덧붙여 마쓰이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신회 출신인 하시모토 도루에 이어 오사카부 지사를 하다가 오사카 시장을 역임하게 되는 코스를 밟게 되었다.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은 선조들을 짐승같이 취급하는 듯한 전시물이라고 발언했다.#

2019년 9월,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해양 방출에 대해 “오사카시가 협력할 여지가 있다”라고 말하면서 오사카 항만을 통해 방류할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마쓰이 이치로 시장은 17일 오사카시청에서 “미래에 영원이 물(오염수)를 넣어두는 것은 무리”라며 “처리를 해서 자연계 차원의 기준을 밑도는 것이라면 과학적 근거를 제대로 밝히고 해양에 방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일본 NHK방송은 보도했다. 그러면서 “우선 정부가 국민에게 정중하게 설명하고 결단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것에 협력할 의지가 있냐’는 질문에는 “가져와 흘린다면 협력할 여지는 있다”며 “과학적으로 안 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환경 피해가 전혀 없다면 국가 전체가 처리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과학자를 포함한 검증 위원회를 시급히 만들어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자연계 레벨 이하라는 것을 분명히 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오사카시는 2월 27일 일본 내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응을 검토하는 연락 회의에서 2월 29일부터 3월 13일까지 시립 소학교, 중학교 및 유치원을 휴교 · 휴원하기로 결정했다. 오사카에서의 감염 확인은 1 명에 그치고 있지만, 확산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카이시도 같은 기간 모든 시립 유치원과 소 · 중학교, 고등학교를 휴교한다. 마쓰이 이치로 시장은 27일 기자들에게 "학교는 감염되는 게 더 농후하다. 지나친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의 안전과 안심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달라"고 이해를 구했다. 또한 기간 동안 학교 측은 학부모로부터 자녀의 건강 상태를 알아 듣고 집약해, 발열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교육 위원회에 보고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4월 "현재 의료진들이 방호복이 없어서 쓰레기봉투를 입고 일한다."라는 말과 함께 시민들에게 남는 비옷을 기부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도 비옷 재고가 남는 사업자한테서도 재고를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부된 비옷들의 규격 및 위생 상태도 의문이거니와, 비옷 소포들이 오사카 시청 로비에 몰리면서 시청 업무에 지장을 주기도 했다.##

교도통신 등 현지 언론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마쓰이 이치로(56) 오사카 시장은 이날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여성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것을 사야 할지, 저것을 사야 할지 고민하고 망설이기 때문에 장을 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이어 “반면 남성들은 물건을 잡고 계산한 후에는 바로 현장을 떠난다. 때문에 남성들이 혼자 나와 식료품 등을 쇼핑하는 것이 상호 접촉을 피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된다”면서 “특히 결혼한 부부라면 절대 함께 쇼핑을 나오지 않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마쓰이 이치로 시장의 이러한 발언이 공개되자 구시대적 성차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비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쓰이 이치로 시장은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야심차게 재도전했던 오사카도 구상 주민투표가 다시 한번 반대 다수로 부결이 확정되면서 임기 마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11월 1일 오사카도 구상 주민투표가 공식적으로 부결 처리되면서 기자회견에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마찬가지로 이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에서도 사임했다. 다만 즉각 사퇴하는 것은 아니고 차기 당대표 선출 시까지는 대표 자리를 유지한다.#

그리고 하시모토 도루의 지지로 당대표 재신임을 받았고, 2021년 중의원 총선에서 마쓰이 대표가 이끄는 유신회가 기존 11석에서 41석을 받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뤘다.

결국 총선에서의 약진을 바탕으로 2021년 11월 27일 열린 당대회에서 당대표 유임이 확정되었다.

제2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도 약진을 하는데 성공했지만, 목표로 했던 입헌민주당 개선 의석수 추월에 실패하면서 당일 대표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

2022년 8월, 정계 은퇴를 시사했으며, 9월에는 당의 고문에 위촉되었다. 12월 오사카 유신회에서 정계 은퇴를 선언한 마쓰이 이치로 오사카시장의 후임으로 요코야마 히데유키 부의원이 차기 선거에서 오사카시 시장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2023년 4월에는 시장 임기 만료로 퇴임했고, 당 고문에서도 물러났으며, 탈당하여 본인의 약속대로 정계를 은퇴했다.
파일:mv-img01.webp
정계 은퇴 이후 하시모토 도루 전 오사카부지사처럼 현재까지 간사이 여러 지역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고 강연하고 있고 이후 본인 유튜브 채널 개설하여 활동하고 있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2003 - 2010 정계 입문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0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10 - 2012 창당

2012 - 2014 창당


2014 - 2015 합당[3]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5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15 - 2016 창당


2016 - 2023 당명 변경
탈당 및 정계 은퇴


[1] 1937~2024. 야오시의회 의원, 오사카부의회 의원, 오사카부의회 의장 역임[2] 같은 정당이라도 의원들의 선거구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사례는 종종 있다. 당장 대한민국창원시마창진 통합 당시, 통합 창원시의 시청 위치를 두고 시의회에서 같은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끼리 몸싸움이 벌어진 적이 있다.[3] 결속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