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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16:00:41

마크 큐반

파일:마크 큐반.jpg
마크 큐반
Mark Cuban
출생 1958년 7월 31일 ([age(1958-07-31)]세)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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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피츠버그 대학교 (편입)
인디애나 대학교 경영학 학사
직업 기업인
소속 댈러스 매버릭스 농구 운영 책임자
재산 약 45억 달러[1]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LinkedIn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주4. 그 외5.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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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업에서는 딱 한 번만 터지면 된다. (그 전에)삼진을 아무리 많이 당해도 상관없다.
미국기업인, 투자가.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

2. 생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자동차 수리공인 유대계 부친을 뒀다. 부친은 가족을 아끼고 성실하게 생계를 꾸렸는데 아들 마크에게 항상 “지식만 갖고는 성공할 수 없다”, “일을 열심히 하고 진정으로 즐길 때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이 당시 조언은 마크 큐반의 좌우명이 됐다.

인디애나 대학교에 입학하여 경영학을 전공했고 1981년에 졸업하여 은행원이 됐다. 그러나 업무가 따분했던 마크 큐반은 컴퓨터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다. 컴퓨터에 대해 문외한이었지만 컴퓨터 업계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봤고 은행을 떠나 소프트웨어 세일즈맨의 삶을 시작했다.

영업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많은 계약을 성사시켰고 컴퓨터에 대한 지식도 많이 키울 수 있었다. 창업을 결심한 마크 큐반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판매업체 마이크로솔루션스를 차렸다.

낮에는 영업, 밤에는 공부를 하는 많은 노력 끝에 사업은 성장했고 1990년 회사를 600만달러에 매각하면서 백만 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마크 큐반은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신사업을 계속 모색했으며 1995년에는 TV와 라디오에서 중계하는 대학농구 경기를 인터넷으로 방송하는 업체인 오디오넷을 창립했고, 이 오디오넷이 바로 브로드캐스트닷컴의 모체다. 브로드캐스트닷컴은 1990년대 후반 인터넷 기업 열풍에 힘입어 성장하였고 1999년 57억달러(약 6조원)에 야후!에 매각하면서 17억달러(약 1조7500억원)를 손에 쥐었다.

큐반은 다른 사업분야를 찾기 시작했다. 고화질(HD)TV의 가능성을 알아본 그는 2001년 세계 최초의 HD 전용 TV 채널인 HD넷을 설립했으나 난관에 부딪혔다. 많은 방송채널들이 첨단기술인 HD 기술을 활용하지 않고 기존의 기술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었다. 마크 큐반은 컨텐츠 직접 제작에 손을 댔으며, 기술이 잘 발휘될 수 있는 스포츠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3.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주

농구를 좋아했던 마크 큐반은 2000년 댈러스 매버릭스를 2억 8,500만불에 인수했다. 부유하고 발전한 텍사스 주의 팀과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다.

그는 적극적인 소통과 아낌없는 투자를 계속하며 구단의 우수한 성공을 가져왔다. 홈경기장 시설을 현대식으로 개보수하면서 직접 해머를 들고 라커룸을 철거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2] 데니스 로드맨을 영입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흔쾌히 내어주는가 하면, 100득점을 할 경우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도시락을 제공하는 등 신선한 이벤트를 많이 기획하기도 했고 홈게임이 있는 날에는 코트 바로 앞 좌석에 앉아 관람하며 쇼맨쉽도 뛰어나 많은 화제를 모았다. 심판 판정에 불만이 생기면 득달같이 일어나 항의와 욕설을 했는데 매버릭스 인수 후 20년 동안 낸 벌금이 한화 38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NBA 벌금왕(King of NBA Fines)" 이다.

선수단과의 관계도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고 댈러스 매버릭스의 프렌차이즈 스타인 디르크 노비츠키와도 베프라고 한다. 만년 하위팀을 전전하고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던 매버릭스는 마크 큐반이 구단주를 맡은 이후 플레이오프 단골팀이 되었으며, 드디어 팀 역사상 처음으로 2011년 NBA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코로나 19 여파로 NBA 시즌이 중단되고 매버릭스 홈구장인 댈러스 홈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아레나에서 경기를 할 수 없게 되어서 실업자가 된 근로자들을 위해 임금을 대신 부담하고, 댈러스 지역에서 코로나와 싸우는 지역 의료진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가 하면, 인근 푸드뱅크와 비영리단체에 10만달러를 긴급 지원하기도 하였다.

한 때 프로 농구선수로 뛴 적이 있었으나 정신질환과 약물중독으로 재산으로 모두 탕진하고 노숙자가 된 딜론테 웨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약물치료 시설과 치료비 전액을 부담하기로 했다.

팀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전폭적인 지원으로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을 훌륭하게 가꿔낸 큐반이나, 노비츠키 은퇴 이후로는 큐반의 지나친 팀 간섭이 오히려 팀을 망치고 있다는 여론이 슬슬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큐반 인수 이후 댈러스가 드래프트해서 터진 선수는 루카 돈치치[3] 하나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2000년대 중반까지는 서부의 강자로 자리잡았으나 특정선수에게 지나치게 꽂히는 성향[4][5]으로 인해 손해보는 거래를 하는 경우도 너무 많다.

또한, 노장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낸 2011년 파이널 우승 이후 팀의 위상이 계속 하락해서, 크리스 폴, 드와이트 하워드 같은 빅네임 영입을 말로만 외치다가 다 놓치고 쓸데없는 선수에게 오버페이를 한다거나, 4년 8000만불을 제시하며 구두계약까지 합의했던 디안드레 조던에게 통수까지 맞는 등 노비츠키가 2011년에 일거놓은 우승 이후로 이렇다할 성과가 없기 때문에 이에 관한 비판을 받고있다. 다만 댈러스 매버릭스는 마크 큐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 마켓의 한계로 인해 전통적인 선수들의 FA 비선호 지역인 것은 감안해야만 한다.[6] 그러나 루카 돈치치가 독박농구 수준으로 혹사당하며 고군분투 했으나 7차전 승부끝에 또다시 1라운드에서 탈락한 2020-21 플레이오프 이후 댈러스 지역언론을 중심으로 루카 돈치치를 받쳐주는 뚜렷한 2옵션을 찾지 못한 점을 들어 마크 큐반의 팀 운영에 대한 비판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2023년 11월 28일 라스베가스 샌즈 창업주 가문인 아델슨 가문이 큐반으로부터 댈러스 매버릭스 지분 대부분을 인수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올라왔다. 최종적으로 아델슨 가문이 댈러스 지분의 69%를 인수해서 구단주에서는 내려왔으며 27%의 지분을 소유하고 농구 운영부문 책임자로 이동했으며 새 구단주는 아델슨 가문의 미리암 아델슨의 남편인 패트릭 듀몽이 됐다.

4. 그 외

5. 저서


[1] 2024년 기준으로 한화로 약 6조원[2] 매버릭스의 클럽하우스는 지금도 미국의 모든 스포츠구단 가운데 가장 좋은 시설을 자랑한다.[3] 돈치치도 드래프트 자체는 애틀랜타 호크스가 했고, 댈러스가 돈치치를 원했기에 트레이 영에 다음해 1라운드 지명권을 얹어주고 데려왔다.[4] 제이슨 키드, 라존 론도,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 등등....그나마 키드는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지만 다른 둘은...[5] 특히 "유럽산" "슛 좋은" "백인" "장신 센터" 에 꽂히는 경향이 있다. 팀의 레전드 디르크 노비츠키의 영향인지 그러한 류의 선수들 중에서 큐반의 오퍼를 받아보지 않은 선수가 드물 정도. 당장 팀에서 뛰고 있는 포르징기스가 있음에도 중복 자원인 라우리 마카넨을 데려오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마카넨은 진짜 왜 데려오려는 거지 여담으로 취소선과는 달리 2023년 현재 라우리 마카넨은 nba 올스타 윙 자원으로 성장했다.[6] 댈러스는 대도시지만 흑인 커뮤니티가 큰 편은 아니라 흑인 위주의 NBA 선수들이 선호하는 지역은 아니고 특히 같은 지역에 전국구급 인기를 자랑하는 댈러스 카우보이스 덕분에 농구 시장 자체는 크다고 볼수가 없다.[7] 컵밥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른 출연자들이 얘기하고 있을때 조용히 컵밥만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