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5-21 23:44:11

모토미야 히로시

本宮 ひろ志

파일:external/www.rodeo.ne.jp/g1_01.jpg

1. 개략2. 상세3. 작품목록

1. 개략

일본의 중견 만화가. 주로 소년 점프집영사계 잡지에서 연재를 한다. 본명은 모토미야 히로시(本宮 博).한글로 써놓으면 감이 언뜻 안 오지만 히로시의 글자를 동음이의 표기로 필명화한 것이다.

작품으로 사내대장부 골목대장, 나의 하늘, 천지를 먹다, 멋진남자 김태랑, 자유검객 네타로, 적룡왕 등이 있다.

2. 상세

1947년 6월 25일 치바시 출생. 원래 파일럿이 꿈이었다고 하나 심장 이상으로 만화가로 직업을 바꿨다. 항공자위대에서 운영하던 항공자위대생도[1]였으나 중퇴했다. 그리고 소년 점프에서 '사내대장부 꼬마대장'이란 만화를 히트시키며 나가이 고, 쿠루마다 마사미와 함께 70년대 점프를 이끌었다.

또한 드라마성이 강한 사회인의 성공담적인 만화도 다수 배출하면서 소년 만화뿐만 아니라 청년만화쪽에서도 대히트를 하게된다.

파일:external/images1.wikia.nocookie.net/Hiroshimotomiya.jpg
화풍은 전형적인 극화체로 특기할 건 없지만 표정이 매우 경파하다. 내용적으로는 마초적인 사고를 근본으로 모든 것을 닥돌과 근성과 고함으로 해결하는 전개로 만화를 그리는 것이 특기. 또한 실화나 원작이 있는 이야기를 베이스로 작품을 만들 경우 막 나가는 파격적인 재해석을 보여주기로 유명하다. 예를 들자면 일기당천 노부나가에서 오다 노부나가는 그냥 세계를 정복해 버린다(...).

연출적으로는 연재 만화에 특화해 매화마다 흥미진진한 결말부에서 끊고, 다음 회에 시작할 때는 재미를 위해 이전의 전개를 무시하고 모순되게 그대로 진행하는, 이휴 팬덤에서 '유데 매직'으로 불리는 '한 장면의 임팩트를 우선시하는 구성'을 정립했는데, 이는 훗날 다른 소년 만화들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 중에서도 같은 소년 점프 출신 만화인 근육맨의 작가 팀 유데타마고,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작가 아라키 히로히코 등이 이 스타일로 유명해졌고 거기에서 다시 영향을 받은 미디어믹스 작가[2]도 꽤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2000년대로 접어들자 스토리의 개연성과 완성도를 우선시하는 것으로 독자들의 보편적인 성향이 변하면서 이러한 임팩트를 중시하는 연출은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핍진성을 쉽게 망친다는 한계가 지적되기 시작했으며, 후대의 독자들에게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도 유데타마고는 자신들의 연출에 이러한 문제점이 있음을 깨닫고 설정과 개연성을 조금씩 챙겨가기 시작했지만, 아라키 히로히코나 쿠보 타이토처럼 이 문제점을 잘 개선하지 못하는 작가들도 있다.

한편 천지를 먹다[3]를 비롯해서 연재하다가 인기없음, 소재 부족 등의 이유로 결말을 내지 않고 끊어버린 작품도 상당히 많아서 악명이 높다. 그리고 이렇게 끝난 작품의 경우 다시 결말을 그리지도, 후속작도 그리지 않는다.

과거에는 그림을 직접 그렸다고 하지만 현재는 프로덕션 형식으로 만화를 그리고 있으며 현재는 자신은 캐릭터의 얼굴 밖에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배경이나 옷은 죄다 어시가 그린다고. 또한 여자 캐릭터는 아내[4]가 그린다고 한다.

게임 천지를 먹다 2에서는 이 아내가 그렸던 기존 여캐와도 확연히 그림체가 다른 여캐가 적으로 등장한다. NPC로 나오는 미부인 제외. 이 여자 캐릭터는 야스다 아키라가 그렸다. 이 '얼굴만 그린다'는 다른 패러디, 독설 만화에서도 언급이 자주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예: 제멋대로 카이조에서 언급) 심지어 현재는 눈만 그린다. 이는 작가 본인이 단행본 표지 책날개 잡담에다 직접 쓴 내용인데 여기서 하는 말이 "나는 딴 건 몰라도 눈동자 하나는 캐릭터의 감정을 담아 잘 그리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라고...

2004년에는 '나라가 불탄다'라는 작품에서 난징 대학살 사건의 비극을 그렸다가 '난징대학살은 날조'라고 주장하는 일본 극우단체의 반발과 항의를 먹고 내용을 수정했고, 결국 연재 의욕을 잃어서 대충 결말내고 그만둔 적이 있다. 이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 우익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극우나 혐한처럼 대책이 없는 막장은 아니다. 자세한 이유는 아래에 서술함.

점프 초창기부터 활약한 거물이다. 창간 당시 때부터 1986년까지 소년 점프에 무려 11작품을 연재했으며, 이는 앙케이트 지상주의였던 소년 점프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5] 70년대라는 시기를 볼 때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68년 창간한 점프는 주간 소년만화잡지 가운데 후발주자였다. 시 이름난 작가들의 스캐줄이 가득차 있어서 그들의 연재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후발주자 점프는 신인 발굴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나가이 고와 모토미야 히로시라는 대박이 터진 덕분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때문에 인맥을 살펴보면 절로 신음이 나올만한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이 점프 연재작의 절반 이상을 책임진 시절도 있을 정도.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항공자위대 동기이자, 식객으로 어시스턴트 노릇하다가 스토리 작가로 변신한 인물이 북두의 권 원작자 부론손.

그밖에 어시스턴트를 거쳐간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타카하시 요시히로(은아전설 Weed), 카나이 타츠오(사무라이 걸 21), 쿠루마다 마사미(링에 걸어라, 세인트 세이야), 노다 시게루(감사역 노자키), 사루와타리 테츠야(고교철권전 터프), 에가와 타츠야(동경대학 이야기, 골든보이), 오기노 마코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족으로 타카하시 요시히로의 어시스턴트 출신 작가로 미야시타 아키라(돌격 남자훈련소), 하라 테츠오(북두의 권)가 있다. 이 때문인지 미야시타 아키라의 초기 그림은 하라 테츠오의 북두의 권이었는데, 뒤에 자기 그림체가 자리잡은 뒤는 모토미야 히로시 복사판이 되었다.

점프 특유의 '만화가 전속 제도'[6] 1호이기도 하다. 후발 주자였던 점프는 나가이 고의 '파렴치 학원'이 여러가지 의미로 화제를 모으고 모토미야 히로시의 '사나이 골목대장'이 안정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랐는데 나가이 고가 경쟁 출판사에서도 연재를 하기 시작하자 부랴 부랴 모토미야 히로시에게 전속 계약을 제시 했는데 그 당시 연재 속도가 1주일 1편이 한계였던 모토미야가 적은 계약금만 받고 계약서에 사인을 해 줬다고 한다.

3. 작품목록

놀랍게도 과반수 이상의 작품이 한국에 정식 출간되었다. 제목은 바뀌었을지언정 해적판은 아니다. 심지어 괴작 중 괴작인 천지를 먹다 조차도 물론 김태랑 이후 들어온 작품 대부분은 e북이긴 하지만...


[1] 한국의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와 비슷한 제대로 2006년에 폐지[2] 앞의 아라키와 유데타마고를 제외한 작가들 중에서는 5등분의 신부의 작가 하루바 네기가 이 방식을 고집하며,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오노 카츠미도 이 연출을 자주 사용한다.[3] 사실 천지를 먹다는 작가가 연재 종료 이유를 거짓말친 케이스로 주간 소년 점프의 앙케이트 시스템에 의해 잘렸다고 단행본 최종권에서 말해놓고 실제로는 그 앙케이트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던 게 밝혀져서, 나중에야 의욕 저하로 그만뒀다고 밝혔다.[4] 모토미야 쥰코. 결혼전 이름은 모리타 쥰코. 이쪽도 원래 만화가, 그것도 순정만화가였다. 모토미야 히로시와 결혼한 이후에도 활동을 하다가 결국 한계를 느꼈다는 이유로 2007년 은퇴. 이후에는 어시스턴트 작업만 하고 있다.[5] 2위는 9작품을 연재한 오바타 타케시.[6] 원고료 이외에 일정액의 계약금을 1년단위로 주는 대신 점프 이외의 잡지에는 연재를 금지하는 제도.[7] 시리즈 중 1, 2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