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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00:19:21

에가와 타츠야

에가와 타츠야
江川達也
파일:external/magabon.yomiuri.co.jp/photo119_01.jpg
본명 江川達也[1]
출생 1961년 3월 8일 ([age(1961-03-08)]세)
출신 아이치현 나고야시 치쿠사구
학력 아이치교육대학 교육학부 수학과
1. 개요2. 상세3. 우익 논란4. 작품의 문제점5. 기타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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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만화가.

사진과 같이 후덕한 외모의 소유자지만, 젊은 시절엔 퍽 훈남이었다.

2. 상세

1961년 아이치현 나고야시 치쿠사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가를 꿈꾼 순수 덕후 소년이었으나 현실의 벽(게다가 당시의 그가 그린 그림은 공포물에나 어울릴 음산한 그림체였다.) 때문에 나고야시립 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이치교육대학 교육학부로 진학했으며, 중학교에서 수학 강사를 한 전력이 있다. 이후 학교를 때려치고 모토미야 히로시의 어시스턴트로 들어가 문하에서 철저한 수련과정을 거친 후 만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골든보이, 매지컬 타루루토, 동경대학 이야기 등의 만화를 그렸다.

당시(1980년대) 유행하던 여성의 체형(마른 몸에 가슴만 큰)을 만화에 도입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야릇한 시츄에이션을 그려내는 데도 천재적이다. 그의 그림은 훗날의 많은 성인만화, 청년만화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야한 만화를 주로 그렸던 사람이라 그의 작품 중 한국에 정식으로 발매된 작품은 매우 적다.

그의 작품은 대사가 많은 편에 속하는데 말풍선말고도 배경에 대사와 감정을 같이 적어넣을 정도다. 보통 그런 식으로 해서 야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독자에게 일방적인 설교를 하곤 한다. 이런 연출은 동경대학 이야기에서 극에 달하는데, 만화임에도 그림보다 글자가 더 많은 페이지가 자주 보인다.

한때 교육자를 목표로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작품의 기본적인 테마는 '공부하면 성공한다', '헛짓 그만하고 정신차리고 공부나 해라' 인 경우가 많지만, 그가 말하는 공부는 학교에서 책상에 앉아 하는 공부가 아니라 세상에 나와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체득하는 경험을 말한다. 에가와는 동경대를 위시한 일본의 학벌주의에 대한 알레르기에 가까운 걸 가지고 있는지 동경대 나온 생각 없는 엘리트는 그냥 잉여인간 같이 그리는 경우가 많았고, 교육 제도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도 꾸준히 내고있다. 그러니까 학벌이나 출세 같은 것과 별개로 끊임없이 뭔가 연구하고 공부하는 삶을 살아라. 그러면 분명히 남는 게 있다라는 게 기본 철학인 것 같다. 대체로 작품에서 하려는 얘기도 거의 이런 것이다. 수학 공부를 했기 때문인지 작품에서 수학을 소재로 한 연출이나 스토리도 자주 나오며 심지어 도쿄대학 이야기에서는 '사회에 나가서 제일 쓸모있는 과목은 수학'이라는 대사까지 나온다. 그 외에 각종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같은 데서 게스트로 종종 나오는 등 만화 외적인 활동을 했다.

3. 우익 논란

한국에서는 우익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극우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작품에서 사회, 교육에 관한 비판의식이 많이 보이고 있었고 학생운동 세대에 대한 동경도 많이 보였다. 심지어 우익단체에게 태클 먹고 연재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2] 아동물이었던 매지컬 타루루토만 보아도 돈만 밝히고, 책임을 지지 않는 그런 대기업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를 담은 묘사가 많았는데, 원자력 발전 회사의 사장 아들로 나오는 츠토무의 경우 초등학생 주제에 하는짓이나 묘사가 거의 돈지랄로 선량한 사람들 괴롭히는 악의 축 수준으로 묘사된다.

간혹 작가의 이러한 경향 때문에 작가 생활 초반에는 좌익적인 인물이 아니었나 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러한 점 역시 전통적인 우익적인 가치관에 따른 것이다. 쇼와시절 우익들은 기업들의 영리주의가 나라를 망친다고 싫어했고[3] 전공투로 대표돠는 신좌익 운동 역시 극좌적인 성향이 강하다 못해 반미애국 같은 우익적인 방향으로 기울기도 했기 때문에 그러한 점만 보고 우익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러일전쟁이야기'(작품 내에서 동학운동이 일본의 도움 때문에 일어났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것말고도 전형적인 식민지 근대화론 및 일본의 침략행위를 정당화 하고 있다.) 그 이후 일본 우익교과서모임인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후쇼사에서 출판한 대표적 우익교과서 그 단체 맞다.) 회원에 가입되어있다. 작가 본인의 행적을 보아선 이미 글러먹었다만.


2014년에는 아시아주의를 표방하는 쿠레타케회(呉竹会)와 레이메이노회(黎明の会)가 공동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이시와라 간지의 일화와 사상을 소개하는 강연을 하였다. 강연의 내용은 이시와라 간지가 이렇게 저렇게 말했다 식으로 진행되지만, 대충 설명하면 '태평양 전쟁 최대의 전범은 B-29핵폭탄으로 일본의 민간인을 계획적으로 무차별 대학살한 트루먼', '일본이 다른 아시아 국가를 침략한 원인은 미국이다. 에도 막부는 쇄국해서 중국, 조선, 대만 등이 필요 없었는데 페리의 무력에 의한 강제 개항으로 서구 열강 침략에 위협을 느낀 일본인은 사람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랬다.', '청일전쟁이나 만주사변에 대해 일본인은 침략이라는 감각은 없었다.', '(이시와라 간지의 최종전쟁론을 거론하며) 도조 히데키는 준비가 되기 전에 전쟁을 일으킨 바보다.', '(일본에 의한) 아시아의 통일 그 후 최종전쟁으로 동양의 왕도(王道)가 서양의 패도(覇道)를 꺾고 전세계를 통일하면 세계에 영원히 평화가 오고 인류의 평화, 마음의 평온, 자유와 창조의 세계가 성립된다.'

이처럼 이시와라 간지 빠돌이이기 때문에 2차세계대전을 미화하고 긍정하는 전형적인 일본 극우들하고는 좀 차이가 있다. 동경대학 이야기에서도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지만, 2차세계대전은 해서는 안 되는 어리석은 전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을 독립시켜야 한다고도 주장한 이시와라 간지의 사상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을 참조할 것. 얼마나 빠돌이였으면 이시와라의 대표작인 최종전쟁론을 만화로 만들어서 출간하기도 했다.

나름 일본을 넘어 해외에서도 명성을 쌓은 작가가 개인 의견을 조심스럽게 피력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노골적인 우익론을 떠들고 다니는 건 일본에서도 고바야시 요시노리 정도를 제외하고는 드문 편. 일본 내에서는 에가와 타츠야의 이런 행보를 두고 만화는 맨날 중간에 연중하더니 이제는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흉내를 낸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4. 작품의 문제점

개인적인 인성 뿐 아니라 작가로서도 문제가 있는 게, 이 사람은 독자에게 매우 불친절한 작가이다. 상당수의 작품이 독자의 항의, 편집부와의 불화, 작가 본인의 의욕 저하(자칭)로 그냥 연중된 것이 태반이며, 완결된 작품이라고 해도 그 결말이 독자를 분노케 하는 내용이 많다. 특히 동경대학 이야기의 결말은 매우 충격적이라 지금도 회자되며, 사실상 그가 제대로 완결낸 작품은 매지컬 타루루토를 제외하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4]

그것 뿐만 아니라 근년의 작품에서는 초대 가면라이더의 리메이크작 영화 가면라이더 THE FIRST의 코믹스판을 그리면서 콘티 축에도 못 들어가는 낙서를 연재하여 수많은 가면라이더 팬에게 지탄을 받았다. 볼펜으로 굴려 그린 듯한 명암에, 배경은 아예 없는 수준이라 단행본조차 발매되지 않았다. 반어법으로 전설의 작품. [5] 이에 시마모토 카즈히코"그리기 싫으면 그리지 마!"라고 그를 비판하기도 했다.[6] 사실 이런 개판 원고를 내놓은 건 처음이 아니다. 가축인 야프도 후반 원고는 콘티 수준조차 안되는, 마치 중딩이 쉬는시간에 공책에 갈긴듯한 어이없는 작화를 뽐냈다.

한국에서는 연중 작가, 무책임 작가하면 토가시 요시히로를 떠올리지만 일본에서 가장 비판받는 작가는 사실 이 사람이다.[7] 앞서의 불성실한 작업태도 외에도 방송에도 자주 출연해 선배 만화가를 비난[8]하는 등 문제 있는 발언들도 자주 하는 통에 상당한 안티를 보유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로리콘과 관련된 규제에 대해 논하는 지상파 대담 방송에 나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가장 위험하다고 디스하였다. 출판업계에서도 어시스턴트들과 대판 싸우고 몽땅 해고한 사실이 있어 그리 편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소문도 들린다. 심지어는 새로운 어시스턴트를 고용하는 광고지에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빠진 오타쿠는 사절이라고 써놓는 자기 부정적인 모습 덕분에 한동안 씹히기도 했다. 그러는 자기는 기동전사 건담 오타쿠의 대표로 방송에 나가서 온갖 오타쿠 발언을 늘어놓기도 했다.[9]

그럼에도 만화 특유의 테이스트 때문에 아직도 팬들은 많아서 그의 작품은 항상 어느 정도 팔리고 있다.[10] 또한 입담이 꽤 좋아서 일본의 토크쇼, 로드쇼 TV프로그램에 단골 출연하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에 관해서도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NHK 대담 프로같은 좀 무거운 방송에도 출연하는 편. 사실 규제가 강해지면 제일 먼저 타격을 입을 작품들이 많기는 하다...

5. 기타

6. 관련 문서



[1] 양자로 입적하기 전에는 성이 노노무라였다.[2] 그도 그럴게 작가의 대표작인 "Be Free!"에서는 일본 전학공투회의의 기록을 담은 출판물인 "반역의 바리케이트"의 머릿말에 쓰인 운동권스러운 시를 전장 페이지로 비장하게 그려진 배경 아래 그대로 옮겨 실어 놓거나, 악당 선생이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반편성하려고 획책하는 반면, 그에 반대하는 전공투 출신의 좌익 성향 선생은 정의롭고 선한게 묘사하여 데뷔 초기부터 우익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3] 이러한 흐름은 20세기 초반 당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제3의 위치의 유산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의 폐해와 사회주의의 취약점을 모두 넘어서 양 쪽의 장점을 취합한 민족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하는 흐름이었다. 그리고 이 흐름의 가장 유명한 사상이 파시즘이다(...).[4] 가축인 야후도 연중, 일러전쟁이야기도 연중, 골든보이도 연중...[5] 사실 이 짤은 그나마 신경써서 그린거고, 더 어처구니 없는 짤도 있다.[6] 시마모토와 에가와는 둘이 모여서 술자리를 가질 정도로 친한 친구 사이인데도 그렇게 화를 낸 걸 보면, 시마모토가 이시노모리 쇼타로와 그의 작품에 얼마나 각별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7] 토가시는 왠지 드래곤 퀘스트 때문에 연중하는 작가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건강 문제(허리 디스크. 원래 만화가들에게 있어서 허리 디스크는 직업병이나 다름없다.)로 인해 연중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사람이 취하는 자세만 보면 어느 정도는 자업자득인 점은 있지만 적어도 불성실해서 연중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어느 쪽인가 하면 토가시는 생각보다 성실하고 노력하는 작가에 속한다.[8] 대표적으로 도라에몽과 작가 후지코 후지오를 깐 적이 있는데, 정작 자신 또한 도라에몽의 마법사판이라 할만한 매지컬 타루루토를 그렸다. 사실 타루루토가 대놓고 안티 도라에몽이라서 크게 발언과 어긋나는건 아니지만 무턱대고 비난하는걸 보면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밖엔...[9] 꼬라지 보면 전형적인 내로남불형 인간이다.[10] 한국에서의 인기는 애초에 마이너한 편이었는데, 이마저도 소수의 매니아층만 남은 상태.[11] 에가와의 처녀작인 Be Free!라는 작품의 주인공인 사사니시키 아키라가 오토바이 타는 고교 수학교사다.[12] 54년생인 박인권이 에가와의 그림을 직접 트레이스 했다기 보다는 박인권 프로덕션 하의 어시스턴트가 트레이스 했을 혐의가 짙다. 물론 박인권의 이름으로 나오는 이상 책임도 비판도 박인권의 몫.[13] 연수입 대략 한화 80억원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