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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노모리 쇼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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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노모리 쇼타로 770개
등재 날짜 출처
2007년 7월 1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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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이시노모리 쇼타로
프로듀서
시라쿠라 신이치로 타카테라 시게노리 타케베 나오미 오오모리 타카히토
우츠노미야 타카아키 츠카다 히데아키 타카하시 카즈히로 히카사 준
모치즈키 타쿠 히라야마 토오루
각본가
아라카와 나루히사 이노우에 토시키 코바야시 야스코 아이카와 쇼
요네무라 쇼지 산죠 리쿠 나카시마 카즈키 우로부치 겐
타카하시 유야 이마이 쇼지 키다 츠요시 코누타 켄지
코무라 쥰코 모리 노부히로 나나시노 토리코 카이호 노리미츠
하가네야 진 하세가와 케이이치 후쿠다 타쿠로 무토 쇼고
시모야마 켄토 카케히 마사야 이가미 마사루 우에하라 쇼조
우치다 히로키 키노시타 한타 타카하시 이즈미 타카노 미나토
슈트 액터
나카야시키 테츠야 이토 마코토 에이토쿠 오카모토 지로
와타나베 준 타카이와 세이지 후지타 사토시 오카다 카즈야
나카타 유지 나와타 유야 칸자키 하지메 츠카고시 야스나리
토미나가 켄지 니이보리 카즈오 오노 유우키 이마이 야스히코
하루타 쥰이치 후쿠자와 히로후미 오시카와 요시후미 아사이 코스케
오카다 료지 야베 케이조 미즈타니 타케시 나가세 나오키
하시모토 케이코 시라이 마사시 후지오카 히로시 오카다 마사루
나카무라 분야 야마구치 타케히사 카와라자키 히로시 나카무라 유
이와이 준이치 카라사와 토시아키 오구라 토시히로 카네다 신이치
타카다 마사시 요코야마 카즈토시 이토 노리히토 히토미 사나에
사토 다이스케 타케우치 야스히로 카네코 타츠야 츠쿠이 미나미
후지이 유고 후지타 요헤이 우치카와 지로 노베 다이치
아즈마 케이스케 카지 코타로 사노 나츠미 테라모토 쇼고
이와카미 히로카즈 아라카와 마코토 마츠오카 코헤이 아키야마 토모히코
마에다 히로시 마크 무사시 이토 시게키 코모리 타쿠마
사카에 단키 하치스카 유이치 쿠사노 신스케 츠타무네 마사토
이시이 야스아키 모리가미 다이스케 아리조노 케이고 카타오카 츠루타로
아다치 나츠미 타카사키 모모카 모리 히로츠구 미야자와 유키
오오하시 아키라 요시다 미즈호 스나오시 유미 히노 아야코
와타나베 토모타카 이가라시 무츠미 하야시모토 나나 이시가키 히로후미
우사미 스즈카 카와시마 쇼타로 시모조노 아유미 요네오카 타카히로
이시이 야스아키 }}}}}}}}} }}}}}}}}}

이시노모리 쇼타로
[ruby(石, ruby=いし)][ruby(ノ, ruby=の)][ruby(森, ruby=もり)][ruby(章, ruby=しょう)][ruby(太, ruby=た)][ruby(郎, ruby=ろう)]|Ishinomori Shotaro
파일:idhysgy5rgi8thse6hfd88_003938_.jpg
<colbgcolor=#369f36><colcolor=#ffd700> 본명 오노데라 쇼타로 ([ruby(小, ruby=お)][ruby(野, ruby=の)][ruby(寺, ruby=でら)][ruby(章, ruby=しょう)][ruby(太, ruby=た)][ruby(郎, ruby=ろう)])[1]
출생 1938년 1월 25일
일본 제국 미야기현 도메군 이시노모리정
(現 미야기현 도메시)
사망 1998년 1월 28일 (향년 60세)
일본 도쿄도 분쿄구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혈액형 AB형
직업 만화가, 특촬물 원작자
학력 미야기현립 사누마고등학교 (졸업)
대표작 가면라이더 시리즈, 사이보그 009
인조인간 키카이다, 사루토비 사스케, HOTEL, 슈퍼전대 시리즈, 만화 일본 경제 입문 등
활동 기간 1954년 - 1998년
상훈
[ 펼치기 · 접기 ]
제7회 코단샤 아동만화상 (사이보그 009, 뮤턴트 서브 / 1966년)
제13회 쇼가쿠칸 만화상 (쥰, 사타케와 도시포물공 / 1968년)
제33회 쇼가쿠칸 만화상 (HOTEL, 만화 일본 경제 입문 / 1988년)
제17회 일본 만화가 협회상 대상 (만화 일본 경제 입문 / 1988년)
제27회 일본 만화가 협회상 문부과학대신상 (1998년)
제2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만화 특별상[2] (1998년)
욱일소수장 추서
링크 이시모리 프로덕션
이시노모리 쇼타로 고향 기념관
공식 유튜브 채널

1. 개요2. 생애3. 작품의 특징4. 주요 작품5. 여담6. 관련 인물
6.1. 제자
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이시노모리는 일본의 스탠 리다.
스콧 질너[3],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토이: 우리가 사랑한 장난감들' 파워레인저 편 중에서

일본의 만화가. 초기 펜네임은 이시모리 쇼타로(石森章太郎)[4]였다가 데뷔 30주년을 맞아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로 펜네임인 이시노모리 쇼타로(石森章太郎)로 바꾸었다.[5]

51살 때는 '망가 선언'을 하며, 본인을 만화가(萬畵家)라고 칭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만화(漫畵)의 만자가 만(漫)[6]자가 아니다. 만화는 상상뿐만이 아닌 현실을 포함해 삼라만상 모든 것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이라며 일만 만(萬)자를 붙였는데, 그 자칭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개인 만화에 한정하여 최다 출판을 한 기네스 기록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복간 닷컴에서 미공개 작품까지 다 모아서 총정리 출판을 하니 권 수로는 500권, 작품수로는 770작품이 나왔다. 그린 원고는 12만 8천 장. 또한 TV 원작자(애니메이션, 실사)로서의 크레딧은 대표작 사이보그 009, 가면라이더 시리즈 등의 방영기간이 총 60여년에 이르러 일본 최고 기록이며 현재도 계속 갱신하고 있다.

특촬물의 원작자, 기획자로도 활동했다. 이시노모리가 하는 일은 디자인, 세계관과 주연 캐릭터의 설정을 짜주는 것. 그리고 만화 연재다. 특촬판의 내용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히어로상만 제대로 묘사하면 특별히 터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각본가가 맘대로 설정을 바꾸는 일도 많았다. 악역은 메인 악역은 직접 디자인해서 주지만[7] 그 외에는 의외로 토에이 측에서 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원작 만화에 나오는 악역 디자인도 상당 수 역수입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시노모리가 하는 작업이 작품의 근간을 만드는 작업이라 이시노모리는 원작자로서 저작권을 인정 받는다. 이시노모리는 실사 영화를 좋아해서 특촬물을 좋아했고 애니메이션은 표현이 제약된다 생각하고[8]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프로듀서 히라야마 토오루토에이에서 이시노모리를 신뢰하고 자주 쓴 이유는 일단 기획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고,[9] 흥행을 보증했으며, 토에이 측의 아이디어를 일부 받으면 "나 혼자서 만든 게 아니니까." 라며 다른 원작자보다 돈을 덜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 생애

소개 영상 유튜브
파일:external/www.ishinomori.co.jp/timeline_1950.jpg


5남매 중 첫째로 태어난 이시노모리는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9살 때 데즈카 오사무의 <신 보물섬>을 읽고 감명을 받아 만화를 그리게 된다. 중학생 때 친구들을 모아 만화 동인지를 만들기도 했으나 2호로 폐간했다. 중2때는 <마이니치 중학 신문>에 4컷 만화를 응모해서 입선,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월간 잡지 <만화 소년>의 독자 투고란에 투고하던 동료를 모아 '동일본 만화 연구회'라는 모임(아카츠카 후지오치바 테츠야 등이 회원으로 소속) 을 만들어 육필 회람 동인지 '먹물 한 방울'을 만들었고 이것을 출판사에게 읽어보라고 돌렸는데, 이것은 당대 최고 인기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도 읽어보고 칭찬했고 미야기현 내에 천재가 있다는 소문이 났다. 그런데 정작 어릴 적의 꿈은 영화 감독. 그 꿈은 가면라이더 84화로 이루었다. 이후 이나즈맨 11화, 가면라이더 스트롱거 최종화 같은 것도 감독했다.

이후 현립 사누마고등학교 2학년 때(1954년 5월)는 그를 주목한 데즈카 오사무가 전보를 보내 마감에 쫒기는 철완 아톰의 원고 에피소드 1화(전광인간의 권)분을 도와주기도 했다. 전보를 받고 데즈카 오사무의 집으로 찾아 간 쇼타로는 데즈카가 부재중이라서 기다리다가, 고등학생이라서 기말시험도 있고 해서, 데즈카가 연필로 초안을 잡아놓은 초고 원고를 집으로 가져와 버렸다. 그리고 조수는 배경이라든가 먹물칠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데즈카 오사무의 그림체를 그대로 흉내내서 아톰과 수염아저씨 캐릭터까지 그려서 원고를 완성해 버렸다. 그리고 그 원고를 우편으로 보냈다. 데즈카는 쇼타로가 완성해 버린 그 원고는 폐기하고 다시 새로 그린 일화가 있다. 쇼타로가 그린 원고는 지금도 소중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같은 해 데즈카의 소개로 옴니버스 단편 연재작 <2급 천사>를 월간 잡지에 연재, 프로 만화가로 데뷔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6년 봄, 부모님의 맹반대를 물리치고, 만화를 그려서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서 대학교에 가겠다고 큰소리 치고 무작정 도쿄로 상경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세상사는 쉽지 않아서, 믿었던 연재처 월간잡지가 폐간을 해버려서 비좁은 자취방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원고 의뢰를 걱정하고, 가진 돈도 떨어져서 어머니와 누나가 보내 준 용돈을 받고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교육직 공무원이었던 고지식한 아버지는 아들이 만화를 그리는 것을 맹렬히 반대했고, 그때마다 동생을 적극 지지해 준 이는 누나 '오노데라 요시에'였다. 세살 위였던 누나는 생애 지병인 천식으로 병약해서 외출도 못했고, 어릴 적 쇼타로가 그린 만화를 가장 처음으로 읽는 독자였고 조언을 해주는 조력자였다. 누나는 훗날 도쿄의 좋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자취 생활을 하는 남동생을 돕기 위해 그가 살고 있던 토키와 장으로 왔다. 미인이었던 누나는 토키와 장의 '마돈나'같은 존재였다. 후지코 후지오 A는 요시에를 처음 봤을 때의 놀랐던 경험을 회고하면서 "미인에 착하고 머리도 좋았다. 완벽한 사람. 토키와 장의 멤버 모두가 그녀에게 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차마 잘 생겼다고는 할 수 없는 이시노모리 [10]와 전혀 안 닮아서 놀랐다." 라고 하기도 했다.

드라마 '히어로를 만든 남자 이시노모리 쇼타로 이야기'에서는 여배우 키무라 후미노가 요시에 역을 연기했는데 요시에와 얼굴이 매우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 미모가 연예인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지인들에게 시스콘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신도 인정할 정도로 누나를 깊이 신뢰하고 따랐다고 한다. 이시노모리는 누나가 죽기 전에 토키와 장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다는 말을 해서 "병을 치료하는 게 우선이지 왜 연애를 생각하고 있어!" 하고 화를 내고 질투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인들 말에 따르면 그 사람은 아마도 후지코 후지오 A일 것 같다고 한다. 이시노모리도 누나가 누구인지 말은 안 했지만 "후지코 후지오 A구나." 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후지코 후지오 A도 어렴풋이 혹시나 하는 생각은 했는데 그때 자신이 좋아하던 건 다른 사람이라 요시에와 연애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

안타깝게도 요시에는 상경한지 1년도 채 못 가 갑자기 하루 만에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1958년 4월 4일에 사망했다. 천식 발작이 심해서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의사는 안정을 시킨다고 모르핀을 주사해놓고 "가만히 있으면 나을 것이다." 라고 방치했는데 모르핀 부작용으로 인한 심장 쇼크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날 이시노모리를 누나를 병원에 입원시킨 뒤 기분 전환을 위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돌아왔는데 누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의료 사고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의사를 원망하기 보단 누나를 방치하고 영화를 보러 간 자신에게 더 큰 화가 났다고 한다. 이시노모리는 말년까지도 누나 생각만 하면 "내가 그때 누나 옆에 있었더라면..." 이라고 후회했다고 한다.

여하튼 1956년 5월 4일 토기와 장에서 먼저 살고 있던 테라다 히로오의 권유로 친구인 아카츠카 후지오와 함께 토키와 장의 방 한 칸으로 입주하여 소녀 잡지에 몇 편의 단편을 게재하면서 본격적인 프로 만화가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만화 전문 잡지도 거의 없었고, 여성 만화가도 거의 없던 시기로 순정 만화도 남성 만화가가 그렸다. 그 내용도 주로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이 세상 풍파에 시달리는 신파조의 이야기가 주류였다. 쇼타로는 자신은 그런 순정 만화를 그릴 줄 모른다며 셜록 홈즈 시리즈의 '얼룩끈'이라든가, SF, 개그 등의 소재를 순정 만화 스타일로 그려서 게재했다. 당시 소녀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뛰어난 그림 솜씨와 스토리텔링으로 곧 인기 만화가가 되었다. 토키와 장 멤버들에서는 가장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어 아카츠카 후지오는 자기 만화를 그리는 시간보다 이시노모리의 작업을 돕는 시간이 많았었고, 작화 속도도 다른 만화가들을 압도한 수준이어서 훗날 후지코 후지오나가이 고 등이 자신의 만화에서 그 상황을 증언하기도 했다. 후지코 후지오 A의 <만화의 길>에서는 그들이 하루에 5, 6장씩 그렸을 때 이시노모리가 혼자서 15-20장을 그린 일화를 언급했다.

1959년에는 토에이 동화데즈카 오사무의 '나의 손오공'이라는 만화를 원작으로 장편 만화영화 <서유기>를 제작하기로 했고, 데즈카는 시나리오와 설정 자료 등을 제공하기로 했지만, 의뢰받은 만화 원고가 너무 많아 직접 찾아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제자였던 이시노모리 쇼타로와 츠키오카 사다오를 보내 영화 제작을 도와 주도록 했다. 이때 애니메이션에 매력을 느껴 토에이 동화에 입사해서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당시 토에이 동화의 스텝이었던 시라카와 다이사쿠가 이시노모리의 그림체는 개성이 강해서 애니메이터로는 맞지 않는다며, 만화가로 성공하면 그 원작을 우리가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해서 수긍하고 포기했다. 이런 인연이 계기로 훗날 인기 만화가가 된 이시노모리의 작품은 토에이에 의해 차례차례 영상화되었다.
한편, 집안이 극장을 운영하던 츠키오카 사다오는 어릴 적부터 디즈니의 영사기 필름을 직접 보면서 자라서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터득하고 있었고, 애니메이터로서의 재능을 사서 토에이 애니메이션이 스카웃했고,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첫번째 TVA 늑대소년 켄을 원화를 거의 혼자서 그리고 연출을 하고, 나중에는 독립해서 광고나 예술 단편 애니메이션 작가가 된다.

누나의 죽음으로 우울증 비슷한 증상을 가지게 된 그는 기분전환도 할 겸 세계일주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다. 출판사에게 미리 원고료를 땡겨받는 형식으로 여행 자금을 조달하고, 출판사의 취재 기자 신분으로 탐사보도를 한다는 식으로 비자를 얻어서 당시로서는 해외 여행이 힘들던 시절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견문을 넓혔다. 이 여행 중에 우연히 보게 된 잡지 LIFE의 '월면에서 활약하는 개조인간 사이보그'라는 기사에서 사이보그라는 낱말을 알게 되고, 세계 일주 체험에서 여러 국적의 인물을 등장시킨 사이보그 009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팀원이 9명인 이유는 야구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64년 7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사이보그 009는 그의 대표 인기작이자 라이프워크작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망으로 미완성작이 되었다.

1965년 그가 쓴 '만화가 입문'과 후속작 '속 · 만화가 입문' 등은 세부적인 만화 기술론에서 부터 스토리 구상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작성된 당시엔 무척 획기적인 만화가 입문서로 수 년간 만화가 지망생들한테 바이블 역할을 했다. 특히 단편 <용신늪>은 잡지에 게재한 원고를 다시 싣고 직접 해설을 달았는데, 그 뛰어난 연출은 이 만화를 읽고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하는 유명 여성 만화가(타케미야 케이코 등)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만화가가 많다(하기오 모토 등).

1967년부터 1971년까지 데즈카 오사무가 창간한 만화 잡지 COM에 연재한 옴니버스 단편 연재작 《쥰, 환타지 월드》는 대사가 거의 없고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다양한 그림만으로 표현해서 일본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연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치바 테츠야는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라며, 이 작품의 영향으로 만화에 계절 묘사과 생활 감각을 의식해서 그리게 되었다고 밝혔다.

1971년엔 특촬 드라마 제작 기획이 선행된 가면라이더의 원작 만화를 그렸으며, 프로그램 기획 과정에 설정들과 캐릭터 디자인을 만들어내었다. 이런 가면라이더의 성공을 계기로 토에이 특촬들의 원작을 맡기도 했다.[11] 가면라이더 벨트같은 완구 판매용 아이템도 디자인 했다. 비밀전대 고레인저의 원작 만화도 그렸고 전대물의 창안자이기도 하다.

1981년엔 일본 만화가 협회의 이사를 맡았으며, 4년 뒤 만화가 데뷔 30주년을 계기로 이름을 지금의 이시노모리 쇼타로로 개명했다.

1998년 1월 28일 세상을 떠났는데, 사인은 심장마비, 1992년에 림프종 진단을 받아 일을 쉬었고, 60번째 생일을 맞은지 정확히 3일 후였다.

장남은 울트라맨 다이나나카지마 츠토무 역으로 유명한 배우 오노데라 죠,[12] 차남은 현 이시모리 프로 대표인 오노데라 쇼, 차손은 어린 시절의 아마츠 가이 역을 맡은 오노데라 세이루이다.

2018년 8월 25일에 니혼TV에서 그의 일생과 가면라이더의 탄생을 그리게 되는 이시노모리 쇼타로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이시노모리 쇼타로 역은 나카지마 켄토, 아카츠카 후지오 역은 하야시 켄토.

3. 작품의 특징

참신하고 실험적인 표현 기법을 창조해서 만화를 발전시켰고, 만화의 독자층을 넓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 일본 경제 입문>이나 <만화 일본의 역사> 등의 정보 만화, 학습 만화 장르를 개척하였다. 그리고 당시 SF 만화라고 하면 로봇이 등장하면 되는 정도였는데, 문명론을 다루는 하드 SF 장르를 개척했고, 당시엔 생소했던 사이보그, 뮤턴트 등의 최신 과학용어를 누구보다 일찍 도입한 첨단을 걷는 센스가 있었다. 말보다 그림과 감성으로 표현하는 아방가르드 색이 강한 만화가이다.[13]

새로운 문물에 관심이 많아서, 토키와 장에 살던 때도 당시로서는 비쌌던 최첨단 전자제품인 텔레비전이나 전축 등을 사서, 하루 종일 티비를 보고, 좋아하는 음악을 레코드 음반으로 틀면서 문화 생활을 즐기고, 최신 뉴스와 정보에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14]

가면라이더 시리즈를 비롯해 인조인간 키카이다, 변신닌자 아라시 등의 수많은 특촬물의 원작과 디자인을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사후에도 그가 남긴 스케치나 초기안 등을 참고해서 헤이세이 라이더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가면라이더 류우키가면라이더 블레이드.[15] 슈퍼전대 시리즈의 초기작 비밀전대 고레인저, 잭커 전격대의 원작과 디자인을 맡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고레인저와 잭커를 이후의 슈퍼전대 시리즈가 원작자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별개의 작품으로 구분하는 견해도 많았다. 그 밖에도 사이보그 009, 가면라이더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스컬맨과 같은 작품들을 그렸다. 가축인 야프 만화판을 그리기도 했으며, 소설 팬들에게는 최고의 만화판으로 평가받는다.

다작을 했지만 인기가 없어서 잘리거나 잡지 문제로 중단된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품은 완결을 냈다. 다만 좀 뒤가 찜찜한 결말이 많다. 대신에 자신의 라이프워크로 삼은 사이보그 009를 제외하면 장편 연재를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대부분의 작품이 3~4권 분량인데 대부분의 작품이 특촬물과 동시에 기획해 1년 계약으로 연재하고 1년 뒤에 끊었기 때문이다. 짧고 굵게가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특촬물들은 꽤나 밝은 분위기이지만 이시노모리가 직접 그린 원작 만화는 니힐리즘에 근거해 꽤나 음울한 세계관이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결말도 충격적이거나 처참할 때가 많다. 주인공도 특촬판은 열혈하고 쾌활한 주인공도 있지만 이시노모리의 작품의 주인공은 대부분 고뇌하는 히어로이다. 그의 지인들 말로는 누나 요시에가 일찍 죽은 것을 계기로 현실에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작풍은 데즈카 오사무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아이들을 위한 만화(원시소년 류, 사루토비 사스케 등)와 어느 정도 성인 취향의 만화를 병행하였는데, 그의 후배이자 제자, 어시스턴트였던 나가이 고와는 달리 폭력이나 성적인 표현 등은 극도로 자제하고[16][17] 기본적인 분위기를 아예 낮게 가라 앉히는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데 더 뛰어났다. 특촬물 디자인 역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색감과 디자인보다는 개성과 이형을 중시했으며 이것이 현 일본 특촬을 구별짓는 가장 중요한 기점이 되기도 했다. 또한 현실적 문제에도 관심을 많이 보였던 만큼 경제학이나 역사에 관한 만화도 많이 적었다. 하지만 데즈카 오사무처럼 현실에 직접적인 비판을 보인다든가 하지는 않고 객관적으로 그릴 수 있는 것에만 손댄 점 등을 미루어 볼 땐 그다지 정치적인 성향은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반전 성향을 명확하게 드러내어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60년대 당시 009를 연재하던 사회상은, 전쟁이 끝난 후 한국전쟁을 통해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 되었고, 그로 인해 전쟁을 미화하는 세대가 늘어나던 시기였다. 이때 비주류였던 반전 성향의 작품은 상당히 센세이셔널 하다고 할 수 있었다.

또한 위에 언급된 대로 누나 요시에의 죽음으로 그는 현실에 큰 희망과 낙관론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희망적인 내용보다는 니힐리즘, 절망, 체념을 다룬 작품이 많다. 환마대전처럼 누나가 큰 비중으로 나오거나 히로인이 주인공보다 정신적인 면에서 성숙하고 주인공을 신뢰하며 지원하는 여성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시노모리가 그린 누나 요시에

독재, 프로파간다를 싫어했으며 매스미디어와 소문에 의한 선동을 경계해야 한다는 비판의 메시지를 작품에 주로 담았다. 또한 "약자라고 해서 반드시 선한 것은 아니다.", "의도가 좋았다곤 해도 수단이 잘못됐다면 잘못된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담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것은 절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작품이 많다. 복수도 "아무리 과거에 큰 피해를 봤다고 해도 복수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라면서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데즈카 오사무 사단 중에서 유일하게 데즈카에게 인정받은 사람이다.[18] 실제 데즈카 오사무의 다작 경향상 어시스턴트가 많이 필요했는데 이때 그의 아파트에 불러들인 인물이 이시노모리 쇼타로로서 자신의 작풍 뿐 아니라 아이디어 등 많은 것을 흡수하는 그를 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이시노모리 쇼타로 본인은 데즈카를 외계인으로 많이 묘사했는데 정작 데즈카 본인도 이시노모리를 그러한 식으로 많이 묘사했다.

그런데 우라사와 나오키플루토의 뒷담화를 보면 데즈카가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작풍에 대해 엄격하게 비판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 속사정이란, 1967년부터 데즈카 오사무가 창간한 만화잡지 'COM'에 이시노모리는 이제는 '만화로 쓴 시(詩)'라는 평을 듣고있는 <쥰>이라는 실험적인 연작 단편을 발표한다. 이 작품에 대해 데즈카 오사무는 스토리도 대사도 없는 그런 것은 만화가 아니다라고 어떤 독자와의 편지에서 속내를 털어냈고, 그 독자는 그 사실을 이시노모리에게도 알렸다.

본래 COM은 당시 청년과 지식인 층에게 지지를 받던 만화 잡지 가로를 의식해서 데즈카 오사무가 그 대항마로 불새를 대표 간판작으로 하고 만든 잡지였는데, 이시노모리의 <쥰>이 훨씬 퀄리티가 높고 실험적이고 예술성이 뛰어나 불새보다 인기가 더 많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시노모리는 평소 존경하던 데즈카가 이런 소리를 하자 충격이 컸다고 한다.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쥰의 작품 연재를 중단하겠다고 출판사에게 전했다. 그 사정을 알게 된 데즈카 오사무는 이시노모리 쇼타로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사과했다고 한다. 이시노모리는 그 모습을 보고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됐고 "그렇다면 연재만 계속하게 해주세요." 라고 했다고 한다.

스컬맨 리메이크로 원작자에게 양해를 구하러 온 사이인 시마모토 카즈히코 역시, 60에 가까운 나이로는 걸맞지 않는 아이디어와 위압감에 자신이 순식간에 쫄아버렸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참고로 원래 처음 도움을 요청한 것은 이시노모리 쇼타로 본인이었다. 스컬맨에 미련이 많았던 그는 자신의 후속작을 자율적으로 시마모토에게 맡도록 했고 평소 그를 존경하던 그는 오마쥬의 형식으로 그의 작품 상당수, 특히 시마무라 죠의 등장으로 상당 부분 사이보그 009와 크로스시켰으며 이는 애니메이션 스컬맨에도 반영되었다.

만화의 컷 분할을 할 때는 세로로 긴 컷을 자주 쓴다. 데즈카 오사무가 가로로 긴 컷을 선호한 것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등장인물이나 배경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것처럼 잡는 부감 구도를 자주 썼다. 이시노모리가 콘티 연출과 감독까지 한 가면라이더 84화는 이런 이시노모리의 연출 특징을 재현하고자 헬기를 띄울 수 밖에 없었으며 다른 에피소드의 몇 배나 되는 제작비가 날아갔다고 한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디자인을 많이 한다. 자신의 작품은 어린이가 많이 보는데 뾰족한 부분이 있으면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다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철인 17은 당시 거대로봇물의 트랜드에 따라 직선 디자인을 해봤는데 애들이 가지고 노는 걸 보고 역시 이런 디자인은 하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했다고 한다.

무릎을 굽히고 달리는 포즈를 잘 그리지 않았으며 다리를 쭉 뻗거나 한쪽 다리만 굽히고 앞으로 넘어지는 것처럼 점프해 고속 이동하는 것을 자주 그려냈다. '이시노모리 다이브'라고 하기도 한다.

앞서 말한 반전성향 때문인지 히어로물을 구상할때는 단순히 적대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나 힘을 얻는게 아니라, 주인공이 적대 세력과 똑같은 존재라는 소재를 즐겨쓴다.단순한 진영논리가 아니라 같은 힘을 가졌더라도 어떤 의지를 관철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것. 한편으로는 이 때문에 동족상잔을 연상하는 전개가 종종 벌어지면서 비극성도 더해진다.

만화도 좋아하지만 도 좋아해서 만화에 시를 써넣는 연출을 즐겨쓰며, 만화로 시를 표현한다는 '쥰'이라는 작품을 연재하기도 했다. 자신이 원작을 담당한 특촬물과 본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노래 가사를 직접 쓰기도 했다.[19]

이시노모리의 추종자인 만화가 시마모토 카즈히코는 "뭔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재밌다는 게 이 분의 매력." 이라고 평했고[20] "한 달에 600페이지도 그렸던 분입니다. 그렇게 많이 그리니까 좀 아닌 작품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니까 그 중에 반드시 신들린 작품이 나옵니다. 그런 작품은 그 어떤 만화가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늘 새로운 걸 추구하는 분이라 한 번 그린 것과 비슷한 건 다시 그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히트해도 독자가 "이런 거 또 보고 싶은데." 라고 해도 그런 작품은 절대 다시 안 그립니다. 모든 작품이 전부 새롭습니다. 예술가 정신으로 만화를 그리던 분입니다." 라고 했다. 시마모토는 가면라이더(초대), 사이보그 009, 인조인간 키카이다, 변신닌자 아라시, 쥰, 사부와 이치의 체포조가 특히 뛰어나다고 평했다. (특촬판이나 애니메이션이 아닌 만화판 이야기이다.)

제자 나가이 고 말로는 이시노모리는 다작을 했고 마감에 시달리는 분이라 수고를 적게 들이면서 멋지게 보이는 기법을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예로 이시노모리 작품은 배경이 검은색일 때가 많은데 그건 배경 그릴 시간을 줄이면서 멋있게 보이는 기법이라고 한다. 자신도 다작 연재를 할 때 이시노모리에게 배운 연출법의 덕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양면 페이지도 데즈카 오사무보다 많이 썼으며 나가이 고도 이걸 자주 활용했다. 시마모토 카즈히코호에로 펜에서 '날먹 기법'이라고 소개하는 건 대부분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발명한 기법이다.

4.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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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5. 여담

6. 관련 인물

6.1. 제자

7. 관련 문서



[1] 가면라이더 디케이드오노데라 유스케, 가면라이더 W의 주인공 히다리 쇼타로가 바로 여기서 따온 것.[2] 만화와 만화계의 오랜 공헌에 대해[3] 파워레인저 행사인 파워 모피콘의 기획자.[4] 태어난 고향 마을 이름 이시노모리에서 따왔는데, 한자로는 石森로만 표기해서 일반적으로는 이시모리로 읽어서 본인의 희망과는 달리 이시모리로 정착된다. 데뷔작 '이급천사'나 쇼와 라이더 초기작 등에서 이 표기를 확인할 수 있다.[5] 생전에 이시노모리는 자신의 이름의 ノ자를 일반적인 크기의 2/3 정도의 작은 크기로 표기하는 것을 고집하였다. 1998년 타계 이후 현재도 고인의 뜻을 존중하여 출판물 등에서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이름을 표기할 때 고인의 표기방식을 지켜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지켜지지 않을 경우 이시모리 프로덕션 차원에서 정정요청을 보내고 있다고. 영문 표기도 '노'는 작게 쓴다는 것에서 착안하여 ISHInoMORI Shotaro라고 한다.[6] 원래 일본에서 '망가'할 때 '만' 자는 '마음 내키는 대로'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스케치'와 일맥상통한다.[7] 이시모노리가 몇 개의 대표 악당을 디자인해서 주면 토에이에서 그것과 비슷한 분위기로 디자인하는 방식.[8] 이론 상으론 상상력을 무한히 발휘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실력있는 애니메이터가 부족하고 움직임을 넣으면 넣을수록 제작비가 폭등하기 때문에 표현이 제약된다. 이시노모리가 원하는 것처럼 매화 액션을 넣어서 만드는 건 애니메이션으로는 과거에도 현대에도 여전히 힘든 일이다. 대표적으로 기동전사 건담 00의 제작비화에서도 작화가 힘들어서 시즌1에 비해서 시즌2의 기체들은 선을 줄이고, 디자인을 간략화하는 디자인을 많이 썼다. 이와는 반대로 특촬물의 경우는 슈트만 멀쩡하면 액션 촬영은 슈트의 디자인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떠나서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9] 다른 사람이면 며칠을 생각할 걸 단 하루만에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을 대부분 완성한다고 한다. 인조인간 키카이다는 기획의 중요한 부분을 만드는데 1시간도 안 걸렸다고.[10] 못 생겼다고 토키와 장에서 그를 부르는 별명이 '감자'였다고 한다. 다만 어릴 때는 누나와 얼굴이 비슷했다. 그런데 만화에 집중하면서 외모 관리를 안하다보니 볼품없어진 것.[11] 실사 프로그램에서 출연한 게스트 캐릭터 디자인의 대부분은 이시노모리가 간단한 설정을 구상해 밑그림을 그려, 그 러프 스케치를 바탕으로 제작진들이 시나리오와 인형들을 만들었다고 한다.[12] 이시노모리 본인은 이 울트라맨 다이나가 방영되던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13] 만화 외에도 이시노모리는 가끔 자신이 담당한 특촬물의 에피소드 일부를 감독하기도 했는데 연출이 전부 유럽식 아방가르드다.[14] 물론 그 때문에 테라다 히로오에게 한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고.[15] 2023년 현재는 그 스케치가 다 떨어졌는지 이시노모리와 별개로 새로 디자인하는 가면라이더가 많아졌다.[16] 일례로, 이시노모리가 그린 성인 취향의 (즉 에로틱한) 작품 만을 묶은 문고집이 발간된 적이 있는데, 책들을 모두 합쳐서 반뼘 정도의 두께 밖에 안된다. 이런 만화는 수위가 매우 높지만 기본적으로 소재가 겹치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이시노모리의 성향을 생각하면 이것도 새로운 걸 시도한 것이라 봐야할 것이다.[17] 그리고 이시노모리 작품의 히로인은 기본적으로 본인의 누나 요시에가 모델이므로 야한 걸 넣기 좀 곤란한 측면이 있다.[18] 데즈카는 자신의 동세대 만화가인 요코야마 미츠테루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모든 현역은 라이벌이라는 생각 때문에.[19]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사이보그 009의 1979년판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곡이 있고, 특촬물은 대표적으로 가면라이더 BLACK의 오프닝 곡이 있다.[20] 이시노모리는 만화를 그리다 갑자기 예술적인 연출을 시도하거나, 이야기 전체의 흐름에서 벗어나 철학, 종교, 사회, 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기도 한다. 하지만 연출력이 뛰어나고 이야기의 본 흐름은 잘 짜기 때문에 재밌는 것이다.[21] 잘 보면 이시노모리의 사후에 방영된 가면라이더 류우키가면라이더 블레이드도 그려져있다.[22] 이시노모리 사후에 제작된 헤이세이 라이더 시리즈, 레이와 라이더 시리즈, 토지마 탄자부로는 가면라이더가 되고 싶어 또한 오프닝에 원작자가 이시노모리 쇼타로로 표기되나, 본 문서에서는 제외했다.[23] 우리나라에서는 야구왕 펑키라는 제목의 비디오로 알려졌다.[24] 원제는 (フラワーアクション009ノ1)으로 1969년작. '오 오 나인 원' 이라고 읽는다. 사이보그 009를 여성멤버로 만으로 오마쥬시킨 작품으로 이시노모리 쇼타로 선생의 원작 코믹스의 작품들중에서 최초로 실사판 드라마가 나온 작품이다. 멤버들의 이름도 스페이드, 하트, 클럽, 다이아, 몽키, 잭, 죠커 등 트럼프의 명칭에서 따왔다. (멤버들의 코드네임 명칭은 나중에 슈퍼전대 시리즈인 잭커 전격대에서 오마쥬 됨.) 또한 이 작품은 2013년 9월 7일에 만화가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탄생 75주년을 맞이하여 나가사와 나오, 이와사 마유코의 주연으로 009-1 The End of Beginning (제로 제로 쿠노이치라고 읽으며 한국 개봉명은 사이보그 프린세스)라는 이름으로 리부트 극장판이 개봉되기도 하였다.[25] 버전이 2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면라이더처럼 진지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비밀전대 고레인저 놀이'라는 제목으로 노선을 바꾼 아동판.[26] 한국에서는 '원시소년 돌치'라는 제목으로 로컬라이징 방영되었다.[27] 만화 소년 신년호를 통해 연재를 개시, 프로로서의 데뷔작[28] 전자는 만화판 후자는 TV판의 제목이다. 나중에는 단행본도 사루토비 엣쨩으로 통일된다.[29] 젤다의 전설 신들의 트라이포스의 만화판을 닌텐도 파워 1992년 1월호부터 12월호까지 연재. 참고[30] 데즈카 오사무가 창간한 만화잡지 'COM'에서 연재한 실험작. 스토리 만화에서 벗어나 만화로 시를 그려낸다. 라는 발상으로 만든 작품이다. 원래는 짧은 페이지의 개그만화를 그릴 예정이였지만 이런 구성은 너무 뻔하다 생각해 '제니의 초상'이라는 영화를 모티브로 한 서정적인 단편으로 결정하면서 그려진게 바로 쥰. 대사가 거의 없고 컷과 그림의 흐름 만으로 예술적 감성을 담았다. 지금도 이런 만화가 별로 없고 이런 만화가 나오면 대개 욕을 먹지만 이시노모리는 뛰어난 연출력으로 예술적 감성으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는 게 대단한 점이다. 사실 앞서 말했듯 이 만화는 즉흥적으로 그린거에 가까워서 작가 본인도 우연의 산물이라고 자평했다. 다만 어느 독자가 데즈카 오사무에게 "선생님의 만화는 이제 퇴물입니다. 쥰은 새로운 걸 하고 있어요." 라는 편지를 보냈다가 데즈카 오사무가 분노하고 트러블이 생겨서# 한번 연재중단되었다가 가까스로 화해하고 연재를 재개했던 적이 있었다. 이후 다른 잡지에서 '마법세계의 쥰'이라는 속편도 연재했지만 이쪽은 잡지가 휴간하면서 연중되곤 했다. 참고로 작중 주인공인 쥰은 사실 작가 본인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31] 한국에선 치쿤 타쿤이란 이름으로 91년경 렌탈 비디오로 출시된적이 있다.[32] 히라이 카즈마사와 공동 원작.[33] 이쪽은 작가의 고향인 미야기현 도메시로컬 히어로. 주인공의 디자인은 초신 비뷴의 NG 디자인을 활용했다. 의외로 만화책도 3권 나오고, 이시노모리 쇼타로 75주년 기념으로 실사판도 만들어졌다.[34] 그래서인지 사이보그 009의 헤이세이 애니판 완결편 3부작에서도 자택에서 HOTEL 원고 작업 도중에 깜빡 잠들었다가 길모어 박사가 깨워서 일어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35] 그런데 데즈카 오사무는 지인의 결혼식은 참석하지 않는 걸로 유명했기 때문에 이는 핑계일 수도 있다. 나가이 고는 "지인들의 행복을 질투하게 될까 두려워서 일부러 안 가는 게 아닐까." 라고 추측하기도 했다.[36] 전대는 그 전부터 계속해서 로컬라이징을 해 왔고, 라이더는 더블부터 아예 토에이 요청으로 로컬라이징을 해 왔다. 따라서 토에이가 로컬라이징을 요청했을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 없고, 설령 토에이가 별도로 요청하지 않았더라도 전대와 라이더 모두 로컬라이징을 하는데 이시노모리 하나만 원판 이름 그대로 내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37] 이시노모리 본인이 그린 쇼와 라이더 만화판도 있지만, 당시에는 작품 하나가 나오면 여러 작가가 만화판을 그렸는데, 스가야는 드물게 시리즈 대부분을 그린 것. 보통 스가야가 그린 건 '스가야판'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