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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2 12:55:40

오토모 카츠히로

오토모 카츠히로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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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저 맥케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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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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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1973년1974년
맥스 플라이셔 데이브 플라이셔 월터 란츠 텍스 에이버리 프리즈 프레렝
1974년1975년
척 존스 아트 배빗 윈저 맥케이 그림 네트윅 월트 디즈니
1975년1976년
존 허블리 페이스 허블리 노먼 맥라렌 로버트 캐넌 휴 하먼
1976년1977년
루돌프 이징 마이클 말테스 조지 팔 워드 킴볼 윌리엄 해나
1977년
조셉 바베라 멜 블랭크 오스카 피싱거 빌 스콧 밀트 칼
1978년
제이 워드 어브 아이웍스 딕 휴머 칼 스탈링 한스 콘리드
1979년1980년
클라이드 제로니미 빌 멜렌데즈 매 퀘스텔 오토 메스머 올리 존스턴
1980년1981년
프랭크 토머스 칼 하워드 폴 줄리안 라번 하딩 T. 히
1981년1982년
빌 피트 빌 타이틀라 존 휘트니 켄 헤리스 켄 엔더슨
1982년1983년
브루노 보제토 준 포레이 도날드 W. 그레이엄 마크 데이비스 에릭 라슨
1983년
프레드 무어 클라렌스 내쉬 볼프강 레이더먼 레오 살킨 스티븐 보수스토
1983년1984년
윌프레드 잭슨 다우스 버틀러 데이비드 핸드 잭 키니 마이클 라
1984년1985년
로버트 매킴슨 리처드 윌리엄스 해밀턴 러스크 로버트 아벨 프레스턴 블레어
1985년
조 그랜트 존 핼러스 스털링 홀러웨이 짐 맥도날드 필 먼로
1985년1986년
벤 워셤 프레더릭 백 샤머스 컬해니 윌리엄 T. 허츠 이르벤 스펜스
1986년1987년
에머리 호킨스 존 란즈베리 폴 드리센 잭 해나 빌 리틀존
1987년1988년
모리스 노블 켄 오코너 노먼 퍼거슨 멜 쇼 랠프 박시
1988년1989-1990년
밥 크렘펫 티사 데이비드 가와모토 기하치로 버질 로스 아트 클로키
1989-1990년
힉스 로키 알렉스 로비 돈 메식 데즈카 오사무 레스터 노브로스
1991년
레이 해리하우젠 허버트 클린 밥 커츠 유리 노르슈테인 조 시라쿠사
1991년1992년1993년
루스 키산 레스 클라크 스탠 프레버그 데이비드 힐버만 조지 더닝
1993년1994년
로이 E. 디즈니 잭 잰더 에드 베네딕트 아서 데이비스 장 밴더 필
1995년1996년
줄스 엥겔 반스 게리 댄 맥로린 메리 블레어 버니 매티슨
1996년1997년1998년
타카모토 이와오 윌리스 H. 오브라이언 마이런 왈드먼 폴 윈첼 에위빈드 얼
1998년1999년
미야자키 하야오 어니스트 핀토프 레이 패터슨 마르셀 얀코비츠 콘 페더슨
2000년
노먼 맥케이브 호이트 커틴 루실 블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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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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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빌 저스티스 피트 알바라도 밥 기븐스 진 하젤튼 플로이드 노먼
2002년2003년2004년
셔먼 형제 진 디치 존 헨치 썰 라벤스크로프트 돈 블루스
2004년2005년
버지니아 데이비스 아놀드 스탱 코니 콜 프레드 크리펜 타이러스 웡
2006년2007년
안드레아스 데자 겐디 타르타콥스키 빌 플림턴 존 케인메이커 글렌 킨
2007년2008년 2009년
존 크릭팔루시 마이크 저지 존 라세터 닉 파크 팀 버튼
2009년2010년
제프리 카첸버그 브루스 팀 브래드 버드 에릭 골드버그 맷 그레이닝
2011년2012년
월터 페리고이 뵈르게 링 로널드 설 테리 길리엄 오스카 그릴로
2012년2013년 2014년
마크 헨 오토모 카츠히로 스티븐 스필버그 필 티페트 디디에 브루너
2014년2015년
돈 러스크 리 멘델슨 조 랜프트 필 로먼 타카하타 이사오
2016년2017년
데일 베어 캐롤라인 리프 오시이 마모루 제임스 백스터 스티븐 힐렌버그
2017년2018년 2019년
웬디 틸비
아만다 포비스
랄프 이글스톤 안드레아 로마노 프랭크 브랙스톤 곤 사토시
2019년2020년
헨리 셀릭 론 클레먼츠 존 머스커 윌리 이토 수 C. 니콜스
2020년2021년 2022년
브루스 W. 스미스 루벤 A. 아퀴노 릴리언 슈워츠 스즈키 토시오 피트 닥터
2022년2023년
에블린 램바트 크레이그 맥크라켄 로테 라이니거 히사이시 조 마시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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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아이스너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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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만화상 중 하나인 아이스너상이 선정한 명예의 전당.
만화업계에 다년간 공헌하며 업적을 가진 예술가들의 공로를 인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헌액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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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colbgcolor=#fff,#1c1d1f>칼 바크스 · 윌 아이스너 · 잭 커비
1988년밀턴 캐니프
1989년하비 커츠먼
1991년로버트 크럼 · 알렉스 토스
1992년조 슈스터 · 제리 시걸 · 월리 우드
1993년C. C. 벡 · 윌리엄 게인즈
1994년스티브 딧코 · 스탠 리
1995년프랭크 프라제타 · 월트 켈리
1996년할 포스터 · 밥 케인 · 윈저 맥케이 · 알렉스 레이몬드
1997년길 케인 · 찰스 M. 슐츠 · 줄리어스 슈워츠 · 커트 스완
1998년닐 애덤스 · 장 앙리 가스통 지로 · 아치 굿윈 · 조 큐버트
1999년잭 콜 · L. B. 콜 · 빌 핑거 · 맥 라보이 · 알렉스 숌버그 · 머피 앤더슨 · 조 사이먼 · 아트 슈피겔만 · 딕 스프랭
2000년빌 에버렛 · 셀던 메이어 · 조지 헤리맨 · 카마인 인팬티노 · 알 윌리엄슨 · 바실 울버턴
2001년데일 메식 · 로이 크레인 · 체스터 굴드 · 프랭크 킹 · 알 윌리엄슨 · 엘지 크리슬러 세가 · 마리 세버린
2002년찰스 비로 · 데즈카 오사무 · 세르지오 아라고네스 · 존 부셰마 · 댄 드카를로 · 존 로미타 시니어
2003년에르제 · 버나드 크리그스타인 · 잭 데이비스 · 윌 엘더 · 알 펠드스타인 · 존 세버린
2004년오토 바인더 · 존 스탠리 · 코이케 카즈오 · 코지마 고세키 · 알 캡 · 줄스 파이퍼 · 돈 마틴 · 제리 로빈슨
2005년루 파인 · 르네 고시니 & 알베르 우테르조 · 조니 크레이그 · 휴고 프랫 · 닉 카디 · 진 콜런
2006년플로이드 곳프레드슨 · 윌리엄 몰턴 마스턴 · 본 보데 · 라모나 프라도 · 러스 매닝 · 짐 스터랭코
2007년로버트 캐니거 · 로스 앤드루 & 마이크 에스포지토 · 딕 아이어스 · 웨인 보링 · 조 올란도
2008년리차드 F. 아웃콜트 · 맬컴 휠러니컬슨 · 존 블룸 · 아널드 드레이크 · 렌 윈 · 배리 윈저스미스
2009년해럴드 그레이 · 그레이엄 잉겔스 · 맷 베이커 · 리드 크랜들 · 러스 히스 · 제리 이거
2010년B. 호가스 · 밥 몬타나 · 스티브 거버 · 딕 지오다노 · 마이클 칼루타 · 모트 와이징거
2011년어니 부시밀러 · 잭 잭슨 · 마틴 노델 · 린드 워드 · 모트 드러커 · 하비 피카 · 로이 토머스 · 마브 울프먼
2012년루돌프 더크스 · 해리 루시 · 빌 블랙베어드 · 리처드 코벤 · 오토모 카츠히로 · 길버트 셸턴
2013년리 포크 · 알 자피 · 모트 메스킨 · 트리나 로빈스 · 스페인 로드리게즈 · 조 시넛
2014년어윈 헤슨 · 셸던 몰도프 · 오린 C. 에반스 · 미야자키 하야오 · 앨런 무어 · 데니스 오닐 · 버니 라이트슨
2015년마지 · 빌 워곤 · 존 바이언 · 크리스 클레어몬트 · 데니스 키친 · 프랭크 밀러
2016년린다 배리 · 칼 버거스 · 루브 골드버그 · 맷 그레이닝 · 토베 얀손 · 자크 타르디
2017년밀트 그로스 · H. G. 피터 · 안토니오 프로히아스 & 도리 세다 · 길버트 헤르난데즈 · 제이미 헤르난데즈 · 조지 페레스 · 월트 사이먼슨 · 짐 스탈린
2018년재키 옴스 · 캐럴 캘리시 · 찰스 애덤스 · 데이브 기번스 · 캐런 버거 · 타카하시 루미코
2019년짐 아폴로 · 준 타프 밀스 · 데이브 스티븐스 · 모리 터너 · 호세 루이스 가르시아 로페스 · 제넷 칸 · 폴 레비츠 · 웬디 피니 & 리차드 피니 · 빌 신케비치
2020년넬 브링클리 · 준 타프 밀스 · E. 심스 캠벨 · 엘리슨 벡델 · 하워드 크루스 · 루이스 시몬스 · 스탠 사카이 · 돈 & 매기 톰슨 · 빌 워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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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아이스너상 시상식
파일:cci2020_eisnerlogo.png
최우수 북미판 국제작품
제14회
(2001년)
제15회
(2002년)
제16회
(2003년)
코이케 카즈오, 코지마 고세키
(아들을 동반한 검객)
오토모 카츠히로
(AKIRA)
제리 크람스키, 로렌조 마토티
(지킬 박사와 하이드)

역대 앙굴렘 국제만화제
파일:angouleme-logo.jpg
그랑프리
제41회
(2014년)
제42회
(2015년)
제43회
(2016년)
빌 워터슨 오토모 카츠히로 에르만
샤를리 엡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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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모 카츠히로
Katsuhiro Otomo | 大友克洋
파일:오토모가츠히로 2019년모습.jpg
본명 오토모 카츠히로 ([ruby(大友克洋, ruby=おおとも かつひろ)])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출생 1954년 4월 14일 ([age(1954-04-14)]세)
미야기현 토메시
직업 만화가, 애니메이션 감독, 영화 감독
수훈 자수포장 (2013년)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오피시에[1] (2014년)
서명 파일:오토모 서명.jpg[2]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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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colbgcolor=#ffffff,#1f2023>청년만화, SF
활동 기간 1973년 – 현재
데뷔작 총성 (1973년)
학력 미야기현 사누마 고등학교 (졸업)
배우자 오토모 요코
자녀 아들 오토모 쇼헤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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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만화가2.2. 애니메이션 감독2.3. 영화 감독
3. 작품 목록
3.1. 만화
3.1.1. 사요나라 일본3.1.2. 동몽(童夢)3.1.3. 기분은 벌써 전쟁3.1.4. AKIRA
3.2. 애니메이션, 영화
3.2.1. 감독작3.2.2. 참여작
4. 기타

[clearfix]

1. 개요

일본의 만화가, 애니메이션 감독.

2. 생애

이하 내용은 국내 정발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작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일본 위키피디아를 바탕으로 했다. 아키라는 2013년 소장본으로 정발되었고 동몽은 해적판으로나마 나왔다.

한국에선 작품 정식 발매가 늦어져 잘 알려지지 못한데다 애니메이션 쪽은 스토리보단 영상미 중심인 작품이 많아 스토리 좋은 작품을 선호하는 한국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많이 외면을 받은 편이었다.[4] 그래서 대부분 '이게 누구야?'라고 할 사람이지만 아키라 개봉 당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 이래적으로 한국 뉴스와 신문에서 오토모 카츠히로의 아키라 영화를 주구장창 보도 했을 정도로 한순간에 인지도가 변했다. 아키라를 언급하며 한국애니, 만화 산업의 미래가 어떻다는 둥 투자가 필요하다는 등 한동안 떠들썩했다. 물론 영화위주로 선전했기 때문에 작가 이름은 몰라도 '아키라'만큼은 당시 만화 좀 본다는 사람은 다들 알 정도로 인지도가 확올라섰고 단편적인 보도 덕분에 최고의 만화감독 정도로만 알고 있다.

서양쪽으로 나가면 미야자키 하야오 급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유명 인물이다. 서양에선 미야자키 감독보다 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을 더 쳐줄 정도다. 그러다 보니 만화, 애니메이션 최고의 영예라 뽑히는 아이스너상 명예의 전당에 미야자키 하야오보다 먼저 올라갔다.

요약하자면 만화계와 애니메이션계의 모두 한 획을 그은 거장이며, 만화 작가로도 애니메이션 감독으로도 정점에 도달한 이도류를 구사할수 있는 세계역사에도 보기 드문 천재이다. 때문에 같은 부류인 미야자키 하야오와 자주 비교된다.

2.1. 만화가

미야기현 토메군(현 토메시) 하사마쵸 출신[5]으로 현립 사누마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73년 후타바샤의 <주간 만화액션>에서 데뷔했다.

만화를 처음 그리게 된 계기는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만화가 입문〉이라는 책을 읽고나서다. 중학생 시절까지 만화 습작을 그렸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지 라이더》, 《내일을 향해 쏴라》 등을 보고 충격을 받고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한다. 이후 실사영화에 심취해서 만화를 그리는 것은 그만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일러스트를 그려서 대충 먹고 살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화가 생활 초반에는 아무 생각없이 그리고 싶은 거 그려서 잡지에 단편 투고하는 식이었는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만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어릴 적 읽고 좋아하던 만화에 대해 다시 읽어보고 이런 만화를 내 방식과 내 스타일대로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좋아하고 존경하는 만화가의 작품을 오마주한 초능력을 소재로 한 SF만화 3부작을 그렸는데, 〈Fire-ball〉(데즈카 오사무)(1979, 50페이지, 후타바샤), 〈동몽〉(이시노모리 쇼타로)(1980, 134+100페이지. 후타바샤), 〈AKIRA〉(요코야마 미츠테루)(1982-1990, 2천페이지 이상. 코단샤)였다. 파이어볼의 경우는 50페이지로 스토리라고 할 만한 것은 아직 전개도 못한 채 분위기만 잡고 끝난 불연소한 미완성작이었고, 동몽도 마음에 안 들어서 나중에 단행본으로 낼 때 100페이지를 추가했는데, AKIRA의 경우는 중소출판사 후타바샤가 아닌 대기업 코단샤(강담사)의 청년대상 만화 잡지에서는 가장 판매량이 많은 영 매거진 편집부측에서 먼저 SF 액션 만화를 연재해달라고 의뢰가 왔고 원고 분량도 원하는 만큼 그릴 수 있도록 보장을 한다고해서 처음부터 장기 연재작 장편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 한 편의 실사영화를 보는듯한 구성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만화 전편의 전개를 구상한 스토리 노트를 만들기도 했다. AKIRA가 만화잡지 연재작에서 흔히 발생하는 인기가 있으면 언제 끝날지도 모르게 질질 늘어지지도 않고, 그 때 그 때 클리프행어식으로 어떤 사건의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닌 이유는 이 때문이다.
파일:i오토모 카츠히로171.jpg
오토모 카츠히로 초기 그림체

오토모 카츠히로의 초중반기(1973년에서 1979년까지) 만화는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의 영향을 받은, 비주류 변두리 소외층의 청년들의 삶의 애환을 다루거나, 다소 황당무계하면서 진지한 사회현실의 부조리를 그린 지극히 마이너 감성의 청년 대상의 극화스러운 내용이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은 컬트처럼 숭배하며 찾아보며 좋아했지만, 일반적인 대중 만화의 주소비층인 소년 소녀들의 취향과는 억만 광년 동떨어진 그림체와 스토리라서 아는 사람만 알고 즐기는 비주류 비인기 작가였다.(그리고 2020년까지도 애니메이션 연출과 감독을 한 작품이 대중적으로 흥행에서 히트를 한 적은 거의 없고, 여전히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보면 오토모 카츠히로의 작가적 반골정신은 여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림체에서도 기존의 주류였던 데즈카 오사무의 동글동글 만화체가 데포르메화를 거친 전형적인 만화식 작화였다면 오토모는 미야야 카즈히코(宮谷一彦)의 영향을 받아 만화적 과장을 배제하고 가급적이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에 주력하였다. 사실 이러한 방법론은 극화파가 더 먼저지만 극화파도 어디까지나 데즈카식보다 더 세밀하게 그리는 것이었지 오토모처럼 철저하게 묘사하지는 않았다.[6] 여기에 더불어 오토모는 프랑스 만화가 필명 뫼비우스(본명 장 앙리 가스통 지로)의 영향을 받아서 복잡한 화면 구성과 세밀한 배경묘사, 팬터치에 의지하지 않고 균일한 선을 치밀하게 그려넣는 독특한 화풍을 선보였다.

오토모 본인 말로는, 자신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데즈카나 이시노모리의 동글동글 만화체 시대는 끝났고, 극화 전성기였는데 출판사에서도 극화체를 주문하고 그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프랑스-벨기에 만화 방드 데시네(Bande dessinée)를 접하고는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나가는(目から鱗が落ちる)" 컬쳐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오토모의 이러한 작화는 80년대 초반 타카노 후미코(高野文子)[7]와 함께 '뉴웨이브 망가'의 기수로 불리우며 이후의 만화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만화계는 데즈카 전과 데즈카 후, 그리고 오토모 후로 크게 3가지 시기로 나뉜다고 일컬어지기도 할 정도다. 실제로 데즈카도 오토모의 작화를 보고 많은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데즈카 오사무가 "나는 뎃상이 서툴다.", "자신의 만화는 기호다.[8]" 등의 자조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오토모가 등장하고 부터다. 이는 애초에 데즈카가 만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림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사람이라고 보았던 것과도 관련된 문제이다. 그런데 질투가 심한 데즈카 오사무가 오토모 카츠히로와 만난 자리에서 "나도 자네 그림체로 똑같이 그릴 수 있다"고 허세를 떨었다는 에피소드는 일본 만화계에서는 유명한 일화다.

작화 스타일의 모방자/폴로워는 바나나피쉬를 그린 요시다 아키미와 훗날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유명한 콘 사토시가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콘 사토시는 대학생 시절 오토모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어시스턴트를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시로 마사무네도 본인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림체 스타일이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오토모의 방식은 손이 많이 가고 상당한 작화 실력과 작업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의 화풍이 만화계에서 주류로 정착하지는 않았다.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상당한 인기를 얻어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자마자 많이 팔릴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면, AKIRA처럼 그 고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어시스턴트를 여러 명이나 고용하면서 연재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제 막 잡지 연재를 시작해서 어시스턴트가 1명이나 2명인 신인급 만화가한테는 벅찬 옵션이고, 기존 인기 만화가는 본인 스타일로 그리면 됐으니까 굳이 오토모를 따라 할 이유는 없었다. 혼자서 배경도 인물도 전부 그리는 그림에 자신이 있는 예술성 지향/작가성이 강한 수 많은 만화가 지망생에게는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핑퐁마츠모토 타이요해수의 아이의 이가라시 다이스케라든가)

만화 출판사의 편집부가 요즘엔 이런 그림체와 이런 내용이 유행하니까 잘 팔릴려면 이런 그림체 이런 내용으로 그리라고 권하는 것은 무시하고, 만화가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 스타일로, 그리고 싶은 내용을 그리는 작가주의 정신으로 그렸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모델 케이스가 오토모 카츠히로였다.

이렇게 일본 만화계에 있어 획기적인 발전과 변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만화가는 1996년에 은퇴했다. 본인은 영상에 대한 욕심이 더 많기 때문에 만화가로서 활동하는 것에 큰 관심을 잃었다고. 이후로는 장편은 없고 드문드문 단편을 내놓는 정도인데, 2019년엔 '기분은 이미 전쟁' 3편을 내놓기도 했다.

2.2. 애니메이션 감독

환마대전에서 디자인 스태프로 참여하였으며 이때 알게 된 린 타로 감독의 권유로 1984년 미궁 이야기를 만들어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런데 처음인데도[9] 자신이 원하는 영상이 나와서 자신감을 가지고 이후로는 만화가보다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동하게 된다. 오토모는 예전부터 독립 영화를 찍으며 영상을 만들려고 하는 욕구가 강했다.

파일:오토모가츠히로 콘티.jpg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연출을 할 때 그리는 콘티는 그냥 만화책 그대로다.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그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인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기 때문에 그의 애니메이션은 스토리는 몰라도 작화나 연출에서 좋은 평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장면만 이렇게 꼼꼼하게 세밀하게 묘사했고, 나머지 별로 안 중요한 대목은 선화 몇 개로 대충 설렁설렁 그렸으나 그런 장면도 대부분 지시가 정확하다. 애니메이션 AKIRA의 그림콘티는 700페이지가 넘는데, 오토모 카츠히로는 혼자서 다 그려냈다.

완벽주의라 작화감독이 수정을 해도 그걸 또 자신이 직접 수정한다. 이런 점에선 애니메이터에도 재능이 있는 작가이다. AKIRA에 참여했던 이노우에 토시유키는 완성된 영상을 보고 "이게 내가 그린 거라고?" 하고 놀랐다고 한다.

명성이 높아 애니메이터도 잘 따른다. 히구치 신지 말로는 일본에 그림을 제대로 그리는 애니메이터가 50명이 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 오시이 마모루, 호소다 마모루, 오토모 카츠히로가 다 데려가서 쓸 사람이 없다고 하기도 했다.# 같이 활동하는 애니메이터로는 나카무라 타카시, 모리모토 코지, 키타쿠보 히로유키, 아라이 코이치, 나카자와 카즈토, 오키우라 히로유키, 스도 마사토모, 타나카 타츠유키, 카와사키 히로츠구, 나카 모리후미, 하시모토 타카시, 엔도 마사아키, 에구치 히사시, 호리우치 히로유키, 오하라 히데이치가 있다.

애니메이터를 뽑는 안목도 뛰어나서 오키우라 히로유키 말로는 오토모는 직접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애니메이터를 고르고 직접 스카웃하고 다녔다고 한다. AKIRA 때 일본의 최고급 애니메이터는 모두 미국 애니메이션을 하청으로 그리고 있었고 일본 TV 애니메이션을 그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명 아니면 신인이었다. 1988년의 오토모는 신인 감독이라 미국 하청 일을 하는 비싼 애니메이터를 불러올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신인을 뽑은 것이다. 이때 오토모 카츠히로가 뽑은 애니메이터들은 대부분 거장이 되었으니 그의 안목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인성도 좋고 애니메이터도 잘 챙겨주며 작화에 문제가 있어도 직접 고쳐서 더 좋게 해주기 때문에 애니메이터 사이에서는 특별히 쓴소리가 안 나오는 인물이기도 하다. 애니 업계인 비화 폭로로 유명한 키타쿠보 히로유키조차 까지 않고 칭찬만 한 인물이다. 예쁜 여자는 못 그린다고 했지만 그건 오토모 카츠히로도 인정한 것이라. [10]

이렇게 뛰어난 연출력이 있고 따르는 애니메이터가 많아 그의 작품은 작화와 영상미는 거의 최고 수준을 찍는다. 반면 스토리에 있어서는 만화만큼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다. 서사가 거의 없고 현학적인 영상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아방가르드 형식의 단편 작품이 많다. 명확한 결말이 있는 것이 싫다는 인터뷰도 있다. 그래서 스토리를 중시하고 모든 떡밥이 다 풀리는, 딱 떨어지는 작품을 원하는 한국에서는 2010년대까지 마이너 감독을 면치 못했다. 과거의 리뷰를 찾아보면 그의 작품을 두고 망작이라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소비자층이 얕고 편중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도 2020년에 도쿄 올림픽 예언이 한국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되자 한 번 살펴본 사람들이 그 실력에 감탄해 인지도가 늘어나고 있다.

2.3. 영화 감독

예전부터 실사 영화에도 욕심이 있어 영화 감독을 도전하기도 했으나 이쪽에선 영 평가가 좋지 않다. 이쪽도 콘티는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세세하게 작성했으나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배우의 연기와 촬영이라는 변수가 많아 그게 자신의 의도대로 표현되지 못한 탓이다. 영화는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영상을 집어내는 임기응변 능력이 중요한데 이 능력이 부족했다.

실사 영화 데뷔작이었던 월드 아파트먼트 호러에서 주연을 맡았던 SABU와 친한 사이인지, SABU가 감독을 맡은 '하늘의 차스케'에 참여하기도 했다. 연이은 혹평 때문에 현재는 실사 영화에는 거의 흥미를 잃은 상태이다.

3. 작품 목록

3.1. 만화

보다 자세한 자료는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오토모 카츠히로의 만화작품일람(大友克洋の漫画作品一覧) 항목을 참고할 것.

3.1.1. 사요나라 일본

파일:사요나라닛뽄4.jpg

사요나라 닛뽄(さよならニッポン). 1981년 출판된 단편 만화 모음집.

■ 수록작

3.1.2. 동몽(童夢)

역대 성운상 수상자 및 수상작
파일:seiunprize.jpg
코믹 부문
제14회
(1983년)
제15회
(1984년)
제16회
(1985년)
하기오 모토
《銀の三角》
오토모 카츠히로
《동몽》
하기오 모토
《X+Y》

파일:동몽.jpg
1980~1981년에 후타바샤의 [액션 디럭스]에 4회(136 페이지)에 걸쳐 연재한 초능력 배틀 미스터리물. 1983년 8월에 100페이지 정도를 대폭 추가해서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일본만화가협회상 우수상. 성운상 코믹부문 수상, 제4회 '일본 SF 대상' 수상작으로 소설 이외의 작품으로는 최초 수상이었다.

어느 날, 대규모 아파트 주택단지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범인에 대한 조그마한 단서 하나도 잡히지 않고 오히려 형사 반장까지 범인에게 살해당한다. 사건이 점점 미궁속으로 빠지고 있을 무렵, 주택 단지로 이사온 초능력을 지닌 소녀 에츠코(悦子, 애칭 엣짱)[11]는 단지내에 거주하고 있는 치매에 걸린 노인 우치다 쵸우지로(内田 長二郎, 통칭 '쵸우'상)가 초능력을 이용해 살인을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와 맞서게 된다.

사건을 추적하는 두 주인공은 단편 "내일의 약속"에도 등장한다. 초능력 살인의 진범인 노인이 쓰고있는 모자는, 닥터 슬럼프에서 아라레가 쓰고있는 모자로 오마쥬되었다.[12]

만화의 표현 방법에서 초능력(염동력)을 원형(球體)의 형태로 그려낸 아마도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BS NHK 망가 야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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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모 가츠히로의 초능력 묘사의 특징은 오라나 빔 같은 눈에 보이는 뭔가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주변의 사물이 깨지고, 일그러지면서 이 공간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이런 연출은 초능력을 오라와 광선의 형태로 표현한 린 타로 방식과 함께 초능력 묘사의 양대 축을 담당하고 있다.[13]

한 작품 내에서 캐릭터의 얼굴 묘사가 바뀐다. 이는 초능력 배틀물이라는 장르에서 아무래도 소년만화적인 얼굴이 읽는 이들이 감정이입하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된 오토모의 의도적인 변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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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온 날 쵸우 상이 어린 아기를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뜨리는 것을 초능력으로 막아낸 에츠코(44p)와 본격적으로 초능력 배틀이 펼쳐지기 전(105p)

이전에는 일부 매니아와 평론가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던 오토모가 본격적으로 일반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작품으로, 절정에 다다른 치밀하고 뛰어난 그림 실력과 화면 구성에 대중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 전개와 연출을 선보이며, 일본 만화계에 충격을 주었다. 어떤 평론가는 대표작인 아키라 보다 이 작품이야 말로 오토모의 최고 걸작이라고 손꼽기도 했다.

그의 만화를 좋아한다는 기예르모 델 토로가 영화화한다고 씨네21에서 보도(여기에선 제목을 일어발음인 도무로 나왔다.)한 적도 있지만 원작자인 오토모 카츠히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해외판권을 모조리 회수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오토모는 훗날 원화 원본 사이즈 크기의 단행본을 발간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만화책 사이즈로는 이 만화의 스케일감을 제대로 즐길 수 없기 때문에 원화 크기로 읽어달라는 의도로 한 페이지가 스케치북 도화지 한 장(8절지) 크기다. 스토리의 결말부분에 여주인공 소녀 에츠코와 대결하던 쵸우상이 본인보다 초능력이 훨씬 센 상대인 에츠코한테 초능력 싸움에서 질 것을 예상하고 본인이 죽을 거라는 공포를 느끼고 절망하는 2페이지를 사용한 얼굴 클로즈업은 원화 원본크기로 보면 압권이다.

파일:동몽 214-215.jpg
만화 이누야시키는 이 만화를 역으로 바꿔놨다고 보면 이해가 가능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소재로 한 사운드트랙도 존재한다. 작곡가는 이즈 카즈히코인데, 이즈 본인이 오토모의 열렬한 팬이라 집적 사운드트랙을 작곡하고 싶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에스킬 보그트 [14]의 영화 이노센트(2021)가 이 만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인물 구도나 후반부 클라이맥스가 많이 유사하다.

3.1.3. 기분은 벌써 전쟁

역대 성운상 수상자 및 수상작
파일:seiunprize.jpg
코믹 부문
제12회
(1981년)
제13회
(1982년)
제14회
(1983년)
미즈키 와키코
《伝説》
오토모 카츠히로
《기분은 벌써 전쟁》
하기오 모토
《銀の三角》

파일:external/www1.odn.ne.jp/kibunwamousensou.jpg

1982년 후타바샤에서 단행본으로 발매되었다.
198X년 중국과 소련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는 가상 설정의 전쟁이야기. 전쟁하는데 일본도를 들고 나오는 주인공 같은 비현실적인 소재와 밀리터리 지식을 바탕으로한 현실적인 군사고증이 융합된 작품이다. 1979년에 발생하는 가상의 박정희 암살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중에 나오는 한글이 좀 당황스럽다. 군사고증 하나는 세밀하다.

2019년 3편이 공개되었다.

3.1.4. AKIRA

그의 대표작이다. 항목 참고.

3.2. 애니메이션, 영화

3.2.1. 감독작

3.2.2. 참여작

4. 기타



[1] 2등급에 해당. 2005년에는 3등급 슈발리에 수훈.[2] 테츠오 밑에 있는것이 서명.[3] 일러스트레이터다.[4] 만화책으로 보면 스토리를 못 짜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애니메이션 쪽에선 영상 연출에 치중해서 설명을 안 하거나, 분량 조절을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다. 연출은 잘하지만 구성을 못한다고 보면 된다.[5] 사이보그 009, 가면라이더로 유명한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같은 고등학교의 선후배 사이고, 죠죠의 기묘한 모험아라키 히로히코도 미야기현 출신이다.[6] 오토모는 ‘실제 일본인은 일본 만화에 그려지는 것처럼 눈이 크고 다리가 길고 몸매가 좋은 것이 아니잖아?’라는 식으로 리얼리즘에 입각하여 기존의 일본 만화 스타일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그래서 AKIRA 이전의 마이너리그 시절 작품에서 오토모는 작은 눈에 평평한 얼굴, 다리가 짧은 하반신의 일본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렸다. 여성의 나체로 자주 그렸는데, 섹스 어필하는 커다란 젖가슴이 아니라 납작한 빈유를 가진 지극히 평범한 현실적인 몸매의 여성을 그렸다. 만화의 주인공이라면 서양인의 얼굴을 하는 것이 당연시 되던, 그리고 지금도 그런 얼굴이 인기가 있는 것에 대한 철저한 안티테제를 제시했다.[7] 1979년 단편 절대안전 면도칼로 데뷔한 여성 만화가. 오토모와 반대로 간단하지만 미려하게 그려낸 그림체와 서정적이면서도 독창적인 내용과 연출로 인기를 끌었다. 마스다 미리, 나나난 키리코 같은 일본 여성 만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애니메이터 안도 마사시가 열렬한 팬으로 유명하다.[8] 데즈카 오사무를 비롯한 기존 만화가들은 얼굴 표정이라든가 감정 표현이 마치 미리 정해져 있는 여러 스탬프 도장에서 골라서 눌러 찍듯이 이모티콘같은 그림으로 진행한다는 비판을 들었다.[9] 미궁 이야기는 아키라보다 나중에 개봉되었으나 제작은 아키라보다 먼저 완성되어 있었으므로 오토모의 첫 제작 애니메이션은 미궁 이야기이다.[10] 키타쿠보는 노인 Z를 기획하는 술자리에서 오토모에게 직접 여자는 예쁘게 못 그리니 에구치 히사시를 부르자고 했는데 오토모는 허허 웃으면서 "그건 사실이야." 라고 하고 기분 좋게 넘겼다고 한다.[11] 존경하는 만화가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초능력 마법소녀물 만화 〈사루토비 엣짱 (さるとびエッちゃん)〉에서 따온 이름이다.[12] 토리야마 아키라는 오토모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13] 환마대전의 경우 오토모와 린 타로 둘이 동시에 참여해서 이런 연출이 공존한다.[14] 요아킴 트리에의 전속 각본가기도 하다.[15] 에피소드가 여러 개가 있으며 에피소드마다 감독이 다르다. 오토모 카츠히로는 오프닝/엔딩만 담당한 것.[16] 첫번째 에피소드인 프랑켄의 톱니바퀴의 감독 모리모토 코지의 부인이다.[17] 다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료는 왜곡 및 과장되어서 곧이 믿을 것이 못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