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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

제임스 카메론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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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
'''[[틀: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Academy Award for Best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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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e5e5e5
제1회
(1929년)
제2회
(1930년)
제3회
(1931년)
제4회
(1932년)
제5회
(1933년)
코미디:
루이스 마일스톤
(미인국 2인 행각)
드라마:
프랭크 보제이지
(제7의 천국)
프랭크 로이드
(정염의 미녀)
루이스 마일스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노먼 터로그
(스키피)
프랭크 보제이지
(나쁜 여자)
제6회
(1934년)
제7회
(1935년)
제8회
(1936년)
제9회
(1937년)
제10회
(1938년)
프랭크 로이드
(캐벌케이드)
프랭크 카프라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존 포드
(밀고자)
프랭크 카프라
(천금을 마다한 사나이)
레오 맥캐리
(이혼 소동)
제11회
(1939년)
제12회
(1940년)
제13회
(1941년)
제14회
(1942년)
제15회
(1943년)
프랭크 카프라
(우리 집의 낙원)
빅터 플레밍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존 포드
(분노의 포도)
존 포드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윌리엄 와일러
(미니버 부인)
제16회
(1944년)
제17회
(1945년)
제18회
(1946년)
제19회
(1947년)
제20회
(1948년)
마이클 커티즈
(카사블랑카)
레오 맥캐리
(나의 길을 가련다)
빌리 와일더
(잃어버린 주말)
윌리엄 와일러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엘리아 카잔
(신사협정)
제21회
(1949년)
제22회
(1950년)
제23회
(1951년)
제24회
(1952년)
제25회
(1953년)
존 휴스턴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
조셉 L. 맨키위즈
(세 부인)
조셉 L. 맨키위즈
(이브의 모든 것)
조지 스티븐스
(젊은이의 양지)
존 포드
(말 없는 사나이)
제26회
(1954년)
제27회
(1955년)
제28회
(1956년)
제29회
(1957년)
제30회
(1958년)
프레드 진네만
(지상에서 영원으로)
엘리아 카잔
(워터프론트)
델버트 만
(마티)
조지 스티븐스
(자이언트)
데이비드 린
(콰이 강의 다리)
제31회
(1959년)
제32회
(1960년)
제33회
(1961년)
제34회
(1962년)
제35회
(1963년)
빈센트 미넬리
(지지)
윌리엄 와일러
(벤허)
빌리 와일더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로버트 와이즈
제롬 로빈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데이비드 린
(아라비아의 로렌스)
제36회
(1964년)
제37회
(1965년)
제38회
(1966년)
제39회
(1967년)
제40회
(1968년)
토니 리차드슨
(톰 존스의 화려한 모험)
조지 큐커
(마이 페어 레이디)
로버트 와이즈
(사운드 오브 뮤직)
프레드 진네만
(사계절의 사나이)
마이크 니콜스
(졸업)
제41회
(1969년)
제42회
(1970년)
제43회
(1971년)
제44회
(1972년)
제45회
(1973년)
캐럴 리드
(올리버!)
존 슐레진저
(미드나잇 카우보이)
프랭클린 J. 샤프너
(패튼 대전차군단)
윌리엄 프리드킨
(프렌치 커넥션)
밥 포시
(카바레)
제46회
(1974년)
제47회
(1975년)
제48회
(1976년)
제49회
(1977년)
제50회
(1978년)
조지 로이힐
(스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대부 2)
밀로스 포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존 G. 아빌드센
(록키)
우디 앨런
(애니 홀)
제51회
(1979년)
제52회
(1980년)
제53회
(1981년)
제54회
(1982년)
제55회
(1983년)
마이클 치미노
(디어 헌터)
로버트 벤튼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로버트 레드포드
(보통 사람들)
워렌 비티
(레즈)
리처드 애튼버러
(간디)
제56회
(1984년)
제57회
(1985년)
제58회
(1986년)
제59회
(1987년)
제60회
(1988년)
제임스 L. 브룩스
(애정의 조건)
밀로스 포먼
(아마데우스)
시드니 폴락
(아웃 오브 아프리카)
올리버 스톤
(플래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마지막 황제)
제61회
(1989년)
제62회
(1990년)
제63회
(1991년)
제64회
(1992년)
제65회
(1993년)
배리 레빈슨
(레인 맨)
올리버 스톤
(7월 4일생)
케빈 코스트너
(늑대와 춤을)
조나단 드미
(양들의 침묵)
클린트 이스트우드
(용서받지 못한 자)
제66회
(1994년)
제67회
(1995년)
제68회
(1996년)
제69회
(1997년)
제70회
(1998년)
스티븐 스필버그
(쉰들러 리스트)
로버트 저메키스
(포레스트 검프)
멜 깁슨
(브레이브 하트)
안소니 밍겔라
(잉글리쉬 페이션트)
제임스 카메론
(타이타닉)
제71회
(1999년)
제72회
(2000년)
제73회
(2001년)
제74회
(2002년)
제75회
(2003년)
스티븐 스필버그
(라이언 일병 구하기)
샘 멘데스
(아메리칸 뷰티)
스티븐 소더버그
(트래픽)
론 하워드
(뷰티풀 마인드)
로만 폴란스키
(피아니스트)
제76회
(2004년)
제77회
(2005년)
제78회
(2006년)
제79회
(2007년)
제80회
(2008년)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클린트 이스트우드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안
(브로크백 마운틴)
마틴 스코세이지
(디파티드)
조엘 코엔
에단 코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제81회
(2009년)
제82회
(2010년)
제83회
(2011년)
제84회
(2012년)
제85회
(2013년)
대니 보일
(슬럼독 밀리어네어)
캐스린 비글로
(허트 로커)
톰 후퍼
(킹스 스피치)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아티스트)
이안
(라이프 오브 파이)
제86회
(2014년)
제87회
(2015년)
제88회
(2016년)
제89회
(2017년)
제90회
(2018년)
알폰소 쿠아론
(그래비티)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버드맨)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데이미언 셔젤
(라라랜드)
기예르모 델 토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제91회
(2019년)
제92회
(2020년)
제93회
(2021년)
제94회
(2022년)
제95회
(2023년)
알폰소 쿠아론
(로마)
봉준호
(기생충)
클로이 자오
(노매드랜드)
제인 캠피온
(파워 오브 도그)
다니엘 콴
다니엘 샤이너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제96회
(2024년)
제97회
(2025년)
제98회
(2026년)
제99회
(2027년)
제100회
(2028년)
크리스토퍼 놀란
(오펜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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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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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제69회
(1997년)
제70회
(1998년)
제71회
(1999년)
사울 자엔츠
(잉글리쉬 페이션트)
제임스 카메론, 존 랜도
(타이타닉)
데이비드 파피트, 도나 질로티, 하비 와인스틴, 에드워드 즈윅, 마크 노먼
(셰익스피어 인 러브)
편집상
제69회
(1997년)
제70회
(1998년)
제71회
(1999년)
월터 머치
(잉글리쉬 페이션트)
제임스 카메론
콘래드 버프 4세
리처드 A. 해리스
(타이타닉)
마이클 칸
(라이언 일병 구하기)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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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제54회
(1997년)
제55회
(1998년)
제56회
(1999년)
밀로스 포먼
(래리 플린트)
제임스 카메론
(타이타닉)
스티븐 스필버그
(라이언 일병 구하기)
제66회
(2009년)
제67회
(2010년)
제68회
(2011년)
대니 보일
(슬럼독 밀리어네어)
제임스 카메론
(아바타)
데이비드 핀처
(소셜 네트워크)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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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제2회
(1997년)
제3회
(1998년)
제4회
(1999년)
안소니 밍겔라
(잉글리쉬 페이션트)
제임스 카메론
(타이타닉)
스티븐 스필버그
(라이언 일병 구하기)

역대 새턴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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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독상
제13회
(1985년)
제14회
(1986년)
제15회
(1987년)
론 하워드
(코쿤)
제임스 카메론
(에이리언 2)
폴 버호벤
(로보캅)
제16회
(1988년)
제17회
(1989/90년)
제18회
(1991년)
로버트 저메키스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
제임스 카메론
(어비스)
제임스 카메론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제17회
(1989/90년)
제18회
(1991년)
제19회
(1992년)
제임스 카메론
(어비스)
제임스 카메론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제20회
(1993년)
제21회
(1994년)
제22회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
(쥬라기 공원)
제임스 카메론
(트루 라이즈)
캐스린 비글로
(스트레인지 데인즈)
제36회
(2009년)
제37회
(2010년)
제38회
(2011년)
존 패브로
(아이언맨)
제임스 카메론
(아바타)
크리스토퍼 놀란
(인셉션)
제47회
(2021/22년)
제48회
(2022/23년)
제4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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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
(아바타: 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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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Hollywood Walk of Fame Sta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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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4a1a1><colcolor=#fff,#000> 이름 제임스 카메론
JAMES CAMERON
분야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영화 심볼.jpg 영화
입성날짜 2009년 12월 18일
위치 6712 Hollywood Blvd. }}}}}}}}}


<rowcolor=#fff> 시애틀 대중문화박물관(MoPOP) 선정
SF & 판타지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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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0><colcolor=#fff> 1996년 A. E. 밴보트 · 잭 윌리엄슨 · 존 W. 캠벨 · 휴고 건즈백
1997년 안드레 노튼 · 아서 C. 클라크 · 아이작 아시모프 · 허버트 조지 웰스
1998년 프레데릭 폴 · 할 클레멘트 · 로버트 A. 하인라인 · C. L. 무어
1999년 레이 브래드버리 · 로버트 실버버그 · A. 메리트 · 쥘 베른
2000년 고든 R. 딕슨 · 폴 앤더슨 · 시어도어 스터전 · 에릭 프랭크 러셀
2001년 잭 밴스 · 어슐러 K. 르 귄 · 프리츠 라이버 · 알프리드 베스터
2002년 마이클 무어콕 · 새뮤얼 딜레이니 · 도널드 월하임 · 제임스 블리시
2003년 케이트 윌헬름 · 윌슨 터커 ·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 데이먼 나이트
2004년 해리 해리슨 · 브라이언 W. 올디스 · 에드워드 E. 스미스 · 메리 셸리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 · 레이 해리하우젠 · 필립 K. 딕 · 체슬리 본스텔
2006년 조지 루카스 · 앤 맥카프리 · 프랭크 켈리 프리스 · 프랭크 허버트
2007년 진 울프 · 리들리 스콧 · 진 로덴베리 · 에드 엠슈윌러
2008년 윌리엄 깁슨 · 이안 밸런타인 & 베티 밸런타인 · 리처드 파워스 · 로드 설링
2009년 프랭크 R. 폴 · 에드워드 L. 퍼먼 · 마이클 웰란 · 코니 윌리스
2010년 더글라스 트럼불 · 옥타비아 E. 버틀러 · 리처드 매드슨 · 로저 젤라즈니
2011년 할란 엘리슨 · 가드너 도조와 · 빈센트 디 페이트 · 장 앙리 가스통 지로
2012년 조 홀드먼 · 버질 핀레이 ·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 제임스 카메론
2013년 H. R. 기거 · J. R. R. 톨킨 · 주디스 메릴 · 조애나 러스 · 데이비드 보위
2014년 프랭크 프라제타 · 올라프 스태플든 · 미야자키 하야오 · 리 브래킷 · 스탠리 큐브릭
2015년 커트 보니것 · 조르주 멜리에스 · 잭 고한 · 제임스 E. 건 · 존 쇤헤르
2016년 테리 프래쳇 · 더글러스 애덤스 · 스타트렉 · 블레이드 러너
20주년 기념 마거릿 애트우드 · 키스 데이비드 · 기예르모 델 토로 · 테리 길리엄 · 짐 헨슨 · 잭 커비 · 매들렌 렝글 · C. S. 루이스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 레너드 니모이 · 조지 오웰 · 타카하시 루미코 · 존 윌리엄스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던전 앤 드래곤 · 매트릭스 · 미스트 · 프린세스 브라이드 · 원더우먼 · 엑스파일
2017년 J. K. 롤링 · 스탠 리 · 젤다의 전설 ·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
2018년 닐 게이먼 · 본다 N. 매킨타이어 · 닥터후 · 매직 더 개더링
2019년 테드 창 · D. C. 폰타나 · 스타워즈 · 왓치맨
2021년 니셸 니콜스 · 시고니 위버 · 고지라 · 달 세계 여행
2023년 존 카펜터 · N. K. 제미신 · · 록키 호러 픽쳐 쇼
2024년 은네디 오코라포르 · 니컬라 그리피스 · 블랙 팬서 · 드래곤볼 }}} }}} }}}

}}} ||
<colbgcolor=#000><colcolor=#fff> 제임스 카메론
James Cameron
파일:james-cameron-embed-1.jpg
본명 제임스 프랜시스 캐머런
James Francis Cameron
출생 1954년 8월 16일 ([age(1954-08-16)]세)
캐나다 자치령 온타리오주 카푸스카싱
국적
[[캐나다|]][[틀:국기|]][[틀:국기|]]
링크 파일:IMDb 로고.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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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학력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풀러턴캠퍼스 (물리학 / 중퇴)
수훈 캐나다 훈장 1등급 컴패니언 (2019년 수훈)
종교 무종교(무신론)[1]
혈통 스코틀랜드계 캐나다인
배우자 섀런 윌리엄스 (1978 – 1984; 이혼)
게일 앤 허드 (1985 – 1989; 이혼)
캐스린 비글로 (1989 – 1991; 이혼)
린다 해밀턴 (1997 – 1999; 이혼)
수지 에이미스 (2000 – 현재)
자녀 조세핀 아처 캐머런 (1993년 2월 15일생)
클레어 캐머런 (2001년 4월 4일생)
아들 퀸 캐머런 (2003년생)
엘리자베스 로스 캐머런 (2006년생)
활동 1975년 ~ 현재
데뷔 단편 제노제네시스 (1978년)
장편 피라냐 2 (1981년)
신체 188cm
애칭 (Jim)
서명 파일:James_Cameron_Signature.png
}}}}}}}}} ||

1. 개요2. 생애
2.1. 데뷔 전2.2. 활동
2.2.1. 우여곡절 속 데뷔2.2.2. 또 한 번의 데뷔, 전설의 시작2.2.3. 흥행의 제왕으로2.2.4. 타이타닉, 역사를 쓰다2.2.5. 12년의 하염없는 공백기간2.2.6. 결국 또 다시 신화를 만들다2.2.7. 아바타 속편 제작 돌입과 13년의 공백기2.2.8. 아바타 시리즈를 이끌다2.2.9. 제작자로서의 고난사
3. 특징
3.1. 작품의 테마3.2. 성격
4. 필모그래피
4.1. 차기작 목록4.2. 다큐멘터리 목록
5. 사건사고
5.1. 아바타: 물의 길 일본 돌고래 쇼 관람 논란
6. 여담7. 관련 문서8.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미국에서 활동하는 캐나다 출신의 영화감독, 각본가, 영화 제작자이자 해양 탐험가, 환경 운동가.

1980년대에 영화계에 입문해 터미네이터 시리즈[3], 타이타닉, 아바타 시리즈[4] 등을 만들었으며, 또한 이 과정에서 CG를 적극적으로 활용[5]하여 영상 기술의 수준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고,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로 영화사 제작비 1억 달러를 최초로 돌파, 타이타닉으로 제작비 2억 달러를 최초로 돌파하며 현 할리우드 대형 예산 관행의 시초를 만든 인물이다.[6] 그가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세계적으로 대흥행을 기록했다.

해양 탐험가로서도 상당한 업적을 남겨서 2012년에 인류 최초로 1인 잠수정 '딥시 챌린저'호에 직접 탑승해 마리아나 해구의 가장 깊은 구역인 챌린저 해연을 탐사했다. 이는 해저 10,908m에 해당하는 깊이로, 2019년에 다른 탐험가에게 깨지기 전까지 세계 신기록이었다.#

2. 생애

2.1. 데뷔 전

캐나다 온타리오 주 생으로 17살 때 가족이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전기기술자, 어머니는 간호사 겸 예술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잡동사니로 로켓, 비행기, 탱크 등을 만들면서 미니어처 제작에 친숙해졌고 50년대 B급 SF 영화에 빠져 들었다. 카메론은 독서광이기도 했는데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SF물을 탐독하며 그 시각적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카메론은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빌려서 16mm 영화 습작과 미니어처를 직접 만들며 특수효과를 연습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을 중퇴한 카메론은 결혼을 하고, 트럭 운전사나 만화가 어시스턴트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스타워즈〉를 보고 엄청난 컬처쇼크를 받아 일을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들 결심을 굳혔다. 그리하여 친구와 함께 만든 단편 습작영화 〈제노제네시스〉가 좋은 평가를 받았고,[7] B급 영화와 저예산 영화를 흥행시켜 수익을 남기는 걸로 유명했던 로저 코먼의 뉴 월드 픽처스에 들어갔다. [8]

2.2. 활동

2.2.1. 우여곡절 속 데뷔

로저 코먼의 수하에서 〈우주의 7인〉(1980)의 미니어처를 제작한 것이 첫 영화 작업. 그 외에도 〈공포의 혹성〉(1980)[9]이나 〈뉴욕 탈출〉(1981) 같은 B급 SF 영화의 디자인과 특수효과에 참여하며 제작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하여 〈피라냐 2〉(1981)에서 드디어 염원하던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기억하기 싫은 악몽만 남겼다. 월간 〈키노〉 같은 잡지에서도 유명 감독의 최악 데뷔작으로 손꼽힌다고 썼을 정도였다.

전편인 피라냐 1은 로저 코먼이 제작하고 조 단테가 감독하여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 죠스 짝퉁임에도 미국에서만 제작비 15배가 넘는 대박을 거둔 영화였다. 피라냐 2는 로저 코먼에게 판권을 사서 만든 영화인데 감독을 뺀 제작진들 대부분이 이탈리아인들이어서 사실상 이탈리아 영화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본래 특수효과 책임자로 발탁됐는데, 원래 피라냐 2를 감독을 맡겼던 밀러 드레이크[10]를 이탈리아인 제작자인 오비디오 G. 아소니티스[11]가 해고해버렸고 제임스 카메론에게 감독직까지 줬다.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에게 감독 자리를 준 것은 아소니티스가 잔머리를 굴린 것이었다. 영화 제작비의 일부는 미국의 영화사가 대고 있었는데, 미국 측은 자금의 일부를 조달하는 조건으로 아소니티스에게 북미 사람을 감독으로 고용할 것을 내세웠다. 아소니티스는 영화 감독 경험이 없는 카메론이 밀러 드레이크보다 통제하기 쉬울 것이라는 계산하에 밀러를 해고한 것이었고, 카메론에게 명분상 감독 자리만 주었지만 카메론도 2주 반이 지난 뒤에 잘라버린 뒤 자기가 실질적으로 감독직을 수행했다. 카메론은 감독직을 맡았던 짧은 기간에도 자기가 찍은 필름을 보지 못하고 아소니티스가 시키는 대로 촬영만 해야 했다. 게다가 아소니티스는 상술한 조건을 겉으로는 지키는 척을 하려고 영화의 크레딧에 여전히 제임스 카메론의 이름을 감독으로 기재해놓았다. 첫 감독 데뷔작을 기대했지만 제대로 감독을 맡지도 못하고 이름도 도용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카메론은 무지 실망했는데, 하다못해 편집이라도 하려고 몰래 영화 사무실에 잠입해서 필름을 편집했다. 그러나 들켜버렸고 이탈리아 스태프진들이 도로 원래 편집본으로 돌려놓았다. 결국 영화의 최종판은 희대의 괴작이 돼 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들에서 출연한 미국 배우 랜스 헨릭슨도 이 피라냐 2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헨릭슨의 회고에 따르면 배우진은 미국인인데 제작진은 이탈리아인인데다 영어를 하나도 몰랐다고 한다. 배우들은 제작진이 뭐라 말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어서 헨릭슨이 카메론 감독에게 "쟤들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라고 물어보자 카메론 감독도 즉시 짜증내며 "시X! 나라고 이탈리아어를 뭘 알겠어요!?" 라고 이를 갈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영화가 제대로 나오는 게 기적이었다. 더 엽기적인 건 제작비 아끼기로 악명높은 로저 코먼이 제작한 피라냐 1조차도 60만 달러를 들여 만들었거늘 2편은 15만 달러로 만들어졌다. 그래도 극장 개봉으로 40만 달러 정도 벌어서 수익을 조금은 거뒀다.

그러나 흥행과 달리 영화 자체에 대해 카메론은 분노했다. 훗날 로저 코먼에게 영화가 왜 망했는지를 물었더니, '식인 피라냐가 물속에서 보이지 않을 때 관객들은 무서운 법인데, 노골적으로 하늘까지 날아다녀서'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사실 영화를 보면 하늘을 날기는커녕 피라냐 인형을 사람들에게 집어던져서 찍었다. 그나마 이후 미국 컬럼비아 영화사를 통해 미국의 부가시장에서 출시됐을 때는 카메론이 다시 편집해서 출시했음에도 영화가 워낙에 날림이라 후술하는 대로 한국비디오판조차도 이 버젼이거늘 보면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이러니 카메론이 자기 이름으로 데뷔한 영화가 이렇게 나왔으니 얼마나 한이 맺혔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카메론 본인은 가끔씩 자학개그로써 이 영화를 언급한다. 날아다니는 피라냐가 나오는 영화 중에서는 최고의 영화라는 식으로 말이다.

개판이 된 영화지만 카메론이 유명해지자 영화는 카메론의 데뷔작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1986년에 대우비디오 클럽에서 컬럼비아 영화사 출시판을 소스로 내놓은 한국 비디오만 해도 터미네이터의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했다라는 문구를 비디오 케이스 뒤에 넣었다.[12] 그래서 당시 터미네이터를 극장이나 삐짜비디오[13]로 재미있게 본 이들이 피라냐 2도 빌려보았다가 쌍욕을 퍼부은 이들도 있다... 이는 미국을 포함한 해외 출시판 비디오도 마찬가지인데, 일본 출시판 비디오에선 터미네이터와 에이리언 2 감독 데뷔작이라고 앞 표지에 썼으며 미국 출시판도 그렇다. 2000년대에 와서도 DVD는 타이타닉, 터미네이터, 에이리언 2의 감독 영화라고 홍보하고 결국 블루레이까지 나와서 아바타를 표지 홍보에 넣으며 감독 이름으로 열심히 팔아먹고 있다.

이 파라냐 2 때문에 카메론은 개판인 코믹 영화를 만들었냐는 비아냥을 미국 영화계에서 가득 듣고, 터미네이터 제작 투자를 얻는데 지장이 됐다. 결국 카메론은 제작자들에게 단 1달러로 판권을 넘기고 나서야 울며 겨자먹기로 터미네이터 제작비를 투자받을 수 있었다.

2.2.2. 또 한 번의 데뷔, 전설의 시작

〈피라냐 2〉로 고생하던 그 시절 어느날, 카메론은 로마에서 촬영기간 중 머물던 어느 싸구려 호텔에서 고열로 앓아누웠는데, 끔찍한 모습의 기계 인간이 불 속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악몽을 꾸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터미네이터의 시나리오를 쓰고, 게일 앤 허드를 찾아가서 터미네이터의 속편을 비롯한 모든 권리를 1달러에 넘길 테니 자신을 감독으로 기용하라고 제안한다.

원래 영화사는 시나리오만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시나리오도 잘 안 팔린다. 하지만 워낙 시나리오가 괜찮다 싶을 경우에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감독 계약까지 해주는 경우가 있다.[14]

카메론의 실질적인 감독 데뷔작이자 미래 사회의 암울한 묵시록이 담긴 SF 액션 영화 〈터미네이터〉(1984)는 640만 달러라는 당시 비교적 저예산으로 제작되었고, 개봉 직후, '테크 느와르'란 호평과 함께 미국에서만 3840만 달러, 해외에서는 8,000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려서 거의 제작비 20배에 육박하는 대성공을 거뒀다.[15]

터미네이터의 성공 후, 카메론은 〈람보 2〉(1985)의 각본(실베스터 스탤론과 공동)을 맡은 뒤, 〈에이리언 2〉(1986)의 감독으로 발탁됐다. 〈람보 2〉와 〈에이리언 2〉는 속편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영화계 속설을 깨부수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계속되는 성공으로 카메론은 영화사의 돈을 맘대로 쓸 수 있게 된다.

2.2.3. 흥행의 제왕으로

이후 카메론은 〈어비스 The Abyss〉(1989),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Terminator 2: Judgment Day〉(1991), 〈트루 라이즈 True Lies〉(1994) 등을 감독하며, 새로운 특수 효과를 개발해가면서 시각 세계의 표현 영역을 넓히는 데 주력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과학 기술의 오용이 가져올 위험성을 경고하는 〈어비스〉는 카메론의 전작들과 달리 역동적인 액션보다 중년 부부의 헌신적인 사랑과 미지와의 조우를 해저 심연에 펼쳐낸 카메론의 SF 동화였다. 7,000만 달러를 들인 〈어비스〉는 평은 좋았으나 대중들이 즐기기엔 다소 심심한 내용이 되었던 데다가, 영화가 제작되는 동안 제임스 카메론이 심해 소재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이 퍼졌다. 흥행 감독인 그가 만든다니 이에 나도 해보자는 식으로 비슷한 시기에 심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예를 들어 〈레비아탄〉, 〈딥 식스(DeepStar Six, 1989)〉, 〈심해 에이리언(Lords of the Deep, 1989)〉, 〈해저의 암살자(The Evil Below, 1989)〉, 〈마의 해역(The Rift, 1989)〉 등등이다. 이런 이유로 카메론이 직접 감독한 메이저 영화중에서는 처음으로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신기술은 이후 〈터미네이터 2〉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되었고, 내용적으로도 〈터미네이터〉를 시작으로〈타이타닉〉을 비롯해 카메론 영화들에 꾸준히 나오는 주제[16]를 담고 있다.

〈어비스〉에 이어 1억 200만 달러가 투입된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Terminator 2: Judgment Day〉(1991), 1억 2,000만 달러의 〈트루 라이즈 True Lies〉(1994), 급기야 2억 달러 이상의 제작비를 퍼부은 〈타이타닉〉까지, 카메론은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비 상승을 주도해왔다. 그는 〈어비스〉의 디지털 특수 효과로 만들어낸 의인화된 캐릭터[17], 몰핑기법으로 창조한 〈터미네이터 2〉의 T-1000의 변신 장면, 〈트루 라이즈〉의 1/4을 차지한 구분이 모호한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의 합성 등 불가능해 보이는 표현의 한계에 도전했고, 매번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그의 영화는 〈어비스〉를 빼놓고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그 자신이 특수 효과 제작자로서 영화계에 뛰어들기도 했던 만큼, 모형 제작의 달인이자 특수 효과 제작자인 스탠 윈스턴과 함께 특수 효과 전문 업체인 디지털 도메인[18]을 1993년에 설립했다.

2.2.4. 타이타닉, 역사를 쓰다

타이타닉〉이 나오기 전까지는 제임스 카메론은 그저 SF 액션 영화만을 뛰어나게 잘 만드는 감독이라는 ‘부당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특수 효과의 향연과 스펙터클, 멜로 드라마의 문법을 결합한 〈타이타닉〉은 최고의 테크놀러지를 동원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장인의 경지를 보여줬고,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14개 부분에 노미네이트[19]되어 이 중 11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그런 평가를 일축하였다.[20]

특히 타이타닉은 제작비가 당초의 예산을 초과해버렸고, 이 때문에 감독으로서의 보수 8백만불과 흥행에 따른 수익금을 모두 포기하는 것은 물론[21], 만약 〈타이타닉〉이 흥행에 실패하면〈터미네이터 3〉를 무보수로 찍어준다는 약속까지 해가면서 제작에 몰두했다고 한다. 미국 내 수익과 해외 수익을 합쳐 1년 동안 무려 18억 4,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타이타닉〉은 총수익 9억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쥬라기 공원〉의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무려 2배 이상 깨고, 전세계 영화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여 최고의 수익을 올린 전대 미문의 블록버스터가 되었다. 카메론도〈쥬라기 공원〉, 〈스타워즈〉, 〈E.T.〉 등으로 10여 년간 치열하게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뺏고 빼앗기는 경쟁을 해 온 조지 루카스스티븐 스필버그를 제치고 새로운 패왕에 등극했다. 심지어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아바타〉와 루소 형제의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빼고는 제친 작품이 없다. 2015년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조차 당시 기준으로 최종 20억 달러 가량의 흥행으로 역대 박스오피스 3위(현재는 4위)에 그쳤다. 링크

이는 요즘은 물론이고 당시로서도 정말 엄청난 흥행 기록인데, 일단 15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한 것은 운이 좋았다고 치더라도, 그 어떤 작품도 넘지 못했던 북미 5억 달러의 흥행을 넘어 6억 달러라는 전대미문의 흥행을 기록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아무도 넘지 못하던 북미 7억 달러의 흥행은 그 자신이 만든 〈아바타〉로 넘어섰다. 또한 〈쥬라기 공원〉 조차도 근접하기만 했고 넘지 못하던[22] 월드와이드 10억 달러 흥행의 기록을 최초로 세웠고, 그걸로도 모자라 흥행이 마구 올라가서 20억 달러에 근접한 18억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으니 당시의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은 충공깽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후 3D로 재개봉하여 최종적으로 21억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다.

심지어 〈타이타닉〉 첫 개봉이 지나고 17년 뒤인 2015년에 개봉해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 〈쥬라기 월드〉가 전 세계 흥행 기록은 포기하더라도 아바타의 북미 기록만이라도 넘어보려고 갖은 용을 썼으나 타이타닉도 넘어서지 못했다. 타이타닉의 북미 기록은 쥬라기 월드가 아닌 다른 영화가 결국 깨뜨렸다. 아바타까지도 넘어서는 북미 흥행 10억 달러에 육박하는 흥행기록을 세웠지만 전세계 흥행은 상영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3위(현재는 4위)에 머물렀다. 스타워즈의 인기가 북미에 편중되어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처럼 〈타이타닉〉이 상상을 뛰어넘는 초대박을 치자, 제작사인 폭스와 파라마운트에서는 카메론에게 무려 1억 달러(약 1,000억 원)의 보너스를 따로 주었다. #

그러나 사실 이는 보너스라기보다는 추후에도 우리와 계속 같이 해달라는 의미로 주었다고 보는 게 맞다. 북미 5억 달러를 넘은 작품도 없고 월드와이드 10억 달러를 넘은 작품도 없었는데, 〈타이타닉〉은 그 기록을 다 깨뜨려서, 북미 6억 달러, 전 세계 18억 달러를 벌었으니, 영화사에서는 당연히 반드시 붙잡고 싶어할 만하다.

카메론이 타이타닉을 찍은 진짜 목적은 영화제작은 핑계고 바닷속에 가라앉은 타이타닉을 탐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최대 관심사는 우주와 바다이고 특히 심해는 마치 외계생물들이 가득한 SF의 세계 같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잠수함에 타 바닷속과 타이타닉을 촬영하고 당시 기준으로 가장 깊숙히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기록도 세웠다. 이렇게 바다와 심해를 탐사하면서 그와 관련된 소소한 다큐들을 내놓았다. 본래 스파이더맨을 영화화하고 싶었으나 판권 문제가 꼬이면서 몇년 동안 기약하기 힘들어지자 타이타닉 제작 쪽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었다고. 어비스 제작 중 타이타닉 잔해 발견자인 로버트 발라드를 접하고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는 뿅 갔고, 언젠가 자신이 타이타닉 이야기를 영화화하기로 다짐했었다 한다. #

2.2.5. 12년의 하염없는 공백기간

엄청난 흥행 신화를 썼기에 언제 다시 메가폰을 잡고 복귀하느냐가 헐리웃의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카메론은 다큐멘터리 영화들[23]이나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참여할 뿐[24] 실질적인 영화감독 복귀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타이타닉의 엄청난 흥행으로 인한 부담감에 카메론이 고통받는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이런 소문과는 달리 카메론이 신작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에 일본의 SF 만화인 총몽의 영화화 판권을 사들였으며, 폭스를 통하여 도메인도 등록하였다. 그리곤 2003년도에 자신이 직접 감독하여 2007년에 개봉하겠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총몽, 즉 알리타: 배틀 엔젤은 카메론의 또 다른 야심작인 프로젝트 880에 의하여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 880은 그 유명한 〈아바타〉였다. 아바타가 〈타이타닉〉으로 90년대 후반을 휩쓸었던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감독 복귀작으로 공식 발표됨으로써 전반적인 제작과정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에 카메론 감독은 영화사에 남을 영상 혁명을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했으며, 3D 영화라는 점, 20세기 폭스에서 제작비에 관하여 무제한으로 허가해줘서 제작비가 자그마치 4억 달러[25]에 달한다는 점 등이 알려지자 대중들의 반응은 엄청난 기대 혹은 "저러다 망하면 어쩌나" 라는 걱정으로 양분되었다.

2.2.6. 결국 또 다시 신화를 만들다

2009년 12월에 드디어 카메론의 12년 만의 신작 〈아바타〉가 개봉했고 초반 로튼토마토 100%를 받으며 전야제부터 매우 커다란 열기를 모았다. 그리고 극장 개봉 2개월 만에 결국 12년간 흥행의 아성을 지켜오던 〈타이타닉〉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끝을 모르는 흥행 기록은 계속되어 결국 최종 27억 8,7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의 흥행을 달성했다.[26]

2.2.7. 아바타 속편 제작 돌입과 13년의 공백기

카메론은〈아바타〉의 성공 이후 후속작 세 편을 더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제작사인 20세기 폭스는 카메론에게 속편 제작의 전권을 위임하였고, 찍을 수 있을 때까지 맘대로 찍어보라고 하였다. 1편만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어마어마한데다,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한참 전부터 인정받아서 제작사가 신뢰하고있으니 허가해준 것이다. # 아바타 시리즈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순차적으로 2, 3, 4편이 개봉될 예정이었다. 덧붙여〈총몽〉 영화화는 〈아바타〉 시리즈의 제작이 모두 끝날 때까지 보류시켰다. #

그러나 개봉 년도가 1년씩 늦춰져서 2편은 2017년, 3편은 2018년, 4편은 2019년에 개봉 예정으로 변경되었다. # 그런데 이마저도 또 다시 연기되었다. 이번에는 개봉 날짜마저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상황. 그런데 2015년에 알려진 소식으로는 〈아바타 5〉까지 각본이 나와 있다고 한다. # 예정대로 간다면 5편은 2020년 말에 개봉될 것으로 보였지만 2편조차 나오지 않았다. 결국 총몽은 카메론이 감독하지 않고 제작으로 참여해서 2019년에 〈알리타: 배틀 엔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20세기 폭스사가 디즈니에게 인수된 뒤, 아바타: 물의 길을 시작으로 아바타 시리즈의 배급은 디즈니가 맡게 되었다. 물의 길 개봉일은 2022년 12월 16일로 다시 정해졌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과의 파이아키아 인터뷰가 2022년 12월 14일 에 공개되었다. 여기서 카메론은 아바타 2편이 나오기까지 13년이 걸린 것에 대해 해명했다. 정리하자면 2편 이외에도 3, 4, 5편의 각본과 디자인, 그리고 그 모두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 확보 등의 과정을 모두 확실시하고 나서 진행을 했기 때문에 오래 걸렸다고 한다.

2.2.8. 아바타 시리즈를 이끌다

그렇게 13년의 공백을 깨고 2022년 12월에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은 카메론 본인이 언급한 손익분기점인 15억 달러를 돌파하고 다시 한 번 20억 달러 돌파를 향한 질주를 시작했다. 오프닝 성적은 기대 이하였고 세계적으로 여러 악재도 터졌지만[27] 역시 흥행의 제왕답게 시리즈물 영화를 롱런시키는 기묘한 흥행 추이를 실현시켰다.

카메론 감독은 2편이 손익분기점을 못 넘기면 3편이 결말로 보이는 전개로 촬영을 마쳤다고 했는데, 2023년 1월 6일 HBO 맥스에 공개된 <Who's Talking to Chris Wallace>에서 4편과 5편을 제작해야겠다고 밝히며 중간에 사고가 터지지만 않는다면 세계인들은 아바타 시리즈를 5편까지 완전히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각 영화를 2~3년마다 한 편씩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바타: 물의 길 또한 20억 달러 흥행을 돌파하며 20억 달러 돌파 영화들[28] 중 절반인 3개가 본인의 작품인 대기록을 세웠다.

2.2.9. 제작자로서의 고난사

제작한 영화들 중 흥행 대박작이 가득한 스티븐 스필버그와 달리, 카메론이 제작만 맡고 감독하지 않은 작품들은 생텀과 알리타를 제외하면 손익분기점조차 넘기지 못했다.

카메론이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한 영화는 전 아내인 캐서린 비글로 감독의 〈스트레인지 데이즈(Strange Days, 1995)〉였는데, 4,200만 달러의 제작비로 전 세계에서 겨우 8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물론 아카데미 감독상,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경력을 가진 비글로 감독답게 작품은 괜찮은 평을 받았다.[29]

〈타이타닉〉 흥행 이후 5년 뒤에 나온 카메론 제작 영화 〈솔라리스〉는 스티븐 소더버그가 감독했는데 평은 좋은 편이었으나 흥행 면에서는 미국 첫 주 수익이 7위(675만 달러)라는 초라한 기록을 달성하여 미국 흥행 수익은 1,497만 달러로 그쳤다. 해외 수익을 합쳐도 3,000만 달러로 흥행에 실패(제작비는 4,700만 달러)했다. 한국에서도 첫 주 9위로 데뷔하여 전국 관객 수 2만 명에 그쳤다.

〈아바타〉의 흥행 2년 후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하고 알리스터 그라이슨이 감독한 〈생텀〉은 미국에서 첫 주 2위로 개봉했지만 흥행 성적은 944만 달러로 부진했다. 이 영화는 〈솔라리스〉와 다르게 영화 평이 좋지 않아서[30] 미국 흥행은 2,320만 달러라는 초라한 기록이 나왔지만, 해외 흥행은 조금 잘 나와 전 세계 흥행 1억 800만 달러가 나왔기에 그럭저럭 수익은 올렸다. 참고로 이 영화 제작비는 3,000만 달러로 꽤 저렴하게 만든 영화이다. 한국에서는 첫날 관객 수가 45,466명을 동원하여 2위로 데뷔했고[31] 첫 주 관객 수는 총 28만 7,541명을 기록하여 3위로 등극했다.[32] 하지만 그 다음 주에 8위로 급락했으며, 총 관객 수는 46만 명을 기록했다.

단, 〈솔라리스〉와 〈생텀〉의 경우 제임스 카메론은 '제작'을 한 것이고,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책임은 각 감독들에게 있는 것이다. 사실 제작자가 영화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지나치게 간섭하는 경우들이 헐리웃에서는 드문 일은 아니고 그래서 제작자들에게도 흥행 실패의 책임이 있는 경우가 많긴 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분명히 존재하며, 카메론 또한 본인이 감독이고 피라냐 2를 찍으면서 제작자들의 그런 식의 행태에 호되게 당한 만큼 제작자의 입김하에 감독은 찍기만 하는 제작 행태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이디어와 자본을 연결해주고 틈나는 대로 확인만 하는 한국 영화 스타일의 제작방식으로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2019년에는 알리타: 배틀 엔젤이 개봉했다. 카메론은 그동안 누구에게도 총몽 감독직을 주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아바타 촬영장에서까지 갈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을 정도로 애정을 과시했다. 그러나 5편까지 제작 결정된 아바타 속편과 겹치기에 감독직을 로버트 로드리게즈에게 넘기고 자신은 제작자로 참여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개봉한 알리타는 극장 개봉 흥행으로 본전치기 수준에 그쳤다.[33]

그 해 말에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가 개봉했다. 2편의 직계 후속작임을 내세우고 데드풀 실사영화로 능력을 인정받은 팀 밀러에게 메가폰을 넘겨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나온 결과물은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고 흥행에도 완전 실패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제작비조차 건지지 못한 최악의 박스오피스 성적을 터미네이터의 원작자인 그가 제작하여 이뤄낸 셈이다. 게다가, 존 코너 항목에 나오듯이 존 코너를 초반부터 죽이는 아이디어를 바로 그가 냈기에 더 비난을 받았다. 제작자로서가 아니라 창작자로서도 터미네이터를 스스로 관짝에 못을 박은 셈이다.

3. 특징

3.1. 작품의 테마

원자력공학핵폭탄의 관계로, 기술의 악용을 설명하는 카메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작품 내에서 고도화된 테크놀로지에 관한 관점을 투영하는 편인데, 초기작에서는 주로 고도로 발달한 존재에 대한 공포를 강조한 반면, 이후 점차 첨단 기술의 악용(惡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34]
▽ 초기
터미네이터미래에서 온 기계 병기에 대한 공포
에이리언2우주에서 온 외계생명체에 대한 공포[35]
▽ 중기
터미네이터2선한 기계 병기악한 기계 병기의 대결
타이타닉여객선 침몰에 다양하게 반응하는 승객들
▽ 최근
아바타외계종족을 말살하려 기계를 쓰는 책임자
아바타2수익을 위해 고래 사냥을 일삼는 거대 기업

기술의 악용을 비판하기 위해, 정작 카메론 본인은 갈수록 최신 기술을 더욱 아낌없이 퍼부어가며 영화를 만든다는 게 아이러니한데, 구체적으로 따지면 카메론은 기술 자체가 아닌 기술의 '사용'에 중점을 두고 비판하는 것이기에 요점이 다르다. 메카닉 장르에도 관심이 많은지 터미네이터나 에이리언 2, 아바타 등에는 다양한 미래 기기들이 등장하며, 이 가운데는 카메론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것도 꽤 된다.

연출한 영화 목록들을 보면 알겠지만, 바다우주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의 영화는 유독 푸른 색채가 강하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파란색을 좋아한다. 파란색은 우주, 심해, 금속성의 물체를 표현하는 데에 빠져서는 안 될 색이기도 하고, 특수효과를 활용하기 편해서 더욱 선호했다고 하며 급기야는 우주 밖의 모조리 파란색인 등장인물들이 파란 바다에서 사는, 본인이 좋아하는 걸 다 때려박은 영화가 나오고 말았다. TED 강연에서도 자신이 그러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와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거대 자본을 가진 대기업들이 악역으로 잘 나오며, 결말에는 좋은 꼴을 못 보여준다는 공통점도 있다. 물론 이 대기업과 연관된 상류층에 대한 조롱과 풍자도 자주 등장한다. 에이리언 2의 웨이랜드 유타니,[36]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사이버다인 시스템즈, 아바타 시리즈의 RDA, 타이타닉의 화이트 스타 라인[37]이 대표적이다. 위의 테크놀로지 비판처럼, 정작 감독 본인은 영화를 찍기 위해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제작비를 끌어다 쓰는 모습 또한 대기업이 저지르는 악행을 말하는것이 영화 메세지의 요점이며 대기업 자체를 부정하거나 악으로 규정하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카메론이 거대자본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그 자체가 비판점이 되기는 어렵다.

카메론은 영화사에서 특히나 주체적이고 강한 여성 캐릭터를 많이 만들어냈고, 그 캐릭터들이 호평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에이리언의 엘렌 리플리부터 시작해서 터미네이터 2의 사라 코너, 타이타닉의 로즈 등 적극적이고 활동력 강한 여성 캐릭터는 카메론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 카메론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었던 어머니와 할머니를 존경하며 자랐었고, 자신이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의 영화계에서는 주로 전형적인 강한 남성 주인공이 넘쳐났기 때문에 이런 현실에 대한 반발심으로 강한 여성 캐릭터를 많이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다만 오늘날에 와서는 주체적이고 강한 여성 주연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보니 굳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고집하지는 않는다고 하며, 그보다는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지 않고 강한 주체성을 가진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대해 더 흥미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카메론 감독의 특징 때문인지 카메론이 직접 감독 작업하려다 제작과 각본으로 물러서고 로버트 로드리게즈에게 메가폰을 넘긴 총몽의 주인공 갈리 역시 강인한 여전사로 카메론에 의하여 어떻게 해석될지 기대를 받았었다.

카메론의 연애사도 그런 영향을 받았는지 상당히 주체적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과 많은 연애를 했는데, 어렸을 때부터의 친구였던 첫번째 부인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부인들의 경우 제작자 게일 앤 허드,[38] 여성감독 캐스린 비글로,[39] 배우 린다 해밀턴 등과 결혼 및 이혼을 해왔다. 현재의 부인은 〈타이타닉〉에 조연으로 얼굴을 비친 배우 수지 에이미스(로즈의 손녀딸로 잠깐 등장한다)으로 99년 저지먼트 데이 이후로 영화배우 생활을 은퇴한 후 환경운동가로 변신하여 미국 내에서 열정적인 NGO 활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3.2. 성격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 더불어서 가장 괴팍하면서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유명하다. 〈에이리언 2〉를 촬영할 때 초반에 영국 스태프들과 호흡이 잘 맞지 않자 책상을 뒤엎을 정도로 싸웠다는 얘기가 있으며[40] 딕 부시 조명 감독은 자기 입장에선 듣보잡인 카메론을 무시하고 일부러 자기 입맛대로 작업했다. 결국 제작자인 허드가 그를 해고해야 했다. 〈타이타닉〉 촬영 때도 뭐 하나 맘에 안 들면 육두문자부터 시작해서 스탭들과 배우들을 달달 볶아대었다고 한다. 제 아무리 몸값 높고 유명한 배우라 할 지라도 인정사정 없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영화 어비스 촬영 일화.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메리 엘리자베스 매스트란토니오는 우리는 물고기가 아니라고 카메론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주연인 에드 해리스는 꿈 속에서까지 카메론의 호통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에드 헤리스는 이 영화를 촬영했다가 스태프의 실수로 익사할 뻔했는데 문제는 그 난리통에서도 카메론 감독은 계속 촬영을 감행했고 이 사실을 안 해리스는 분노에 가득찬 나머지 카메론 감독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무도 카메론에게 찍소리 하기 어려웠던 게 당시 카메론은 어비스 촬영 때문에 아예 먹고 자는 거 빼고 나머지 시간을 전부 물 속에 들어가 있어서 당시 스태프들은 불평불만을 얘기할 엄두가 안 났다고. 여러모로 이 감독의 포악무도함과 완벽주의를 알 수 있는 사례였으며 이때의 일화 덕택에 어비스는 영화 역사상 가장 스태프들을 혹독하게 굴린 영화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카메론 자신이 노력형 천재에 가까운 인물이다 보니 스태프들의 일처리나 결과물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기에 자연 성격이 까칠해지고, 그렇게 가르쳐주고 지시했는데도 저렇게 밖에 못하냐는 식으로 울화통에 가까운 반응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과,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감독이라는 위치에서 답답함을 누르며 스태프을 계속 이끌려다 보니 저렇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이 많다.

아무튼 그 불같은 성격 때문에 촬영장의 스태프들은 그를 촬영장의 폭군, 혹은 촬영장의 조지 S. 패튼 장군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카메론은 패튼 장군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막말을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스태프를 가차 없이 해고해버렸지만, 카메론은 "그래도 나는 패튼 장군처럼 몽둥이로 당신들을 두들겨 패지는 않았다"라고 응수했다.[41]

이러한 카메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인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포함해서, 카메론 사단이라고 일컬어지는 마이클 빈[42], 빌 팩스톤[43], 제넷 골든슈타인[44], 랜스 헨릭슨[45]은 카메론 감독의 성격 때문에 촬영장에는 늘 긴장감이 감돌았고, 스태프들이 카메론에 대한 불만과 뒷담화를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고 말했다. 빌 팩스턴은 〈타이타닉〉에서 보물 사냥꾼 브롯 러벳의 성격과 선원들을 다루는 방식을 제임스 카메론의 행동과 대화 방식을 차용해 연기했고, 카메론도 이러한 그의 연기를 보고 자신과 유사한 점이 많다며 시인하기도 하였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카메론이 여기저기서 원한을 산 건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터미네이터 2가 당초 계획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먹어치우자 그에게 치여서 앙심을 품고 있었던 영화계 사람들 중엔 터미네이터 2가 흥행에 실패해 카메론이 빈털터리가 되기를 내심 바랐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NASA의 과학자들과 함께 심해 탐사를 다녀오면서 성격이 크게 변했다. TED 영상에도 나와 있듯이, 카메론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며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유대감"을 탐사 과정에서 배웠고, 이를 〈아바타〉의 제작 과정에 도입해서 매우 좋은 결과를 냈다고 밝혔다.[46] 실제로 〈아바타〉의 촬영은, 이전까지 카메론이 찍은 영화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에이리언 2〉에서 출연했던 시고니 위버도 카메론이 순해졌다고 언급할 정도. 물론 시고니 위버도 그를 순하게 만든 이유중 하나였다. 에이리언 2 제작당시 카메론은 영국인 스태프들중 존경받는 조감독 데릭 크랙널이 티타임을 이유로 가장 중요한 퀸 에이리언 전투씬을 중단시켜버리자 그를 해고했는데, 다른 스태프들이 이에 전부 보이콧을 하자 시고니 위버가 나서서 캐머런에게 스태프들의 입장을 변호하며 중재를 했다. 시고니 위버는 이미 에이리언 1편에서 영국 제작진들과 촬영을 해봐서 영국 제작진 분위기를 잘 알고 친분이 있었으며 주연배우가 스태프를 변호해주는 이례적인 상황에 데릭을 비롯한 제작진과 캐머런은 그녀의 중재를 받아들이고 공개적으로 화해했다.

게다가 이런 변화를 겪은 후 자신처럼 한 성질하기로 유명한 마이클 베이한테도 "성격 죽여도 그렇게 나쁜 게 아니라네."라고 말해서, 마이클 베이도 옛날처럼 사납게 하지 않는 법을 카메론에게 배웠다고 한다.[47]

조 샐다나는 카메론이 촬영장 폭군이라는 건 사실이며, 자신이 본 예술가중에서 가장 탐구심과 호기심이 많고 창의적이며 과학적인 예술가라고 밝혔다. #

케이트 윈슬렛타이타닉의 캐스팅 당시 제임스 카메론에게 거의 애걸복걸하다시피 한 끝에 힘들게 배역을 따냈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선 그의 성질머리에 하도 시달린 나머지 1999년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카메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괴팍하며, 출연료를 엄청나게 주지 않는 이상 다시는 그와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며 학을 뗐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감정이 풀렸는지 윈슬렛은 20년 이상이 흐른 뒤 아바타: 물의 길에서 카메론과 재회했고 인터뷰에서도 서로를 칭찬하며 제법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4. 필모그래피

제임스 카메론 감독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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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white> 연도 제목 제작 연출 각본 제작사 제작비 극장 흥행
1982 피라냐 2 O 차코 필름 컴퍼니 15만 달러 40만 달러
1984 터미네이터 O O 오리온 픽쳐스 640만 달러 7,830만 달러
1985 람보 2 O 캐롤코 픽쳐스 2,550만 달러 3억 400만 달러
1986 에이리언 2 O O 20세기 폭스 1,800만 달러 1억 8,330만 달러
1989 어비스 O O 20세기 폭스 7,000만 달러 9,000만 달러
1991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O O O 캐롤코 픽쳐스 1억 200만 달러 5억 1,980만 달러
1991 폭풍 속으로 O 20세기 폭스 2,400만 달러 8,350만 달러
1994 트루 라이즈 O O O 20세기 폭스/유니버설 픽쳐스 1억 달러 3억 7,880만 달러
1995 스트레인지 데이즈 O O 20세기 폭스/유니버설 픽쳐스 4,200만 달러 800만 달러
1997 타이타닉 O O O 20세기 폭스/파라마운트 2억 달러 22억 164만 달러
2000 다크 엔젤 O O 20세기 폭스 편당 1,300만 달러 -
2002 솔라리스 O 20세기 폭스 4,700만 달러 3,000만 달러
2009 아바타 O O O 20세기 폭스 2억 3,700만 달러 28억 3,373만 달러
2019 알리타: 배틀 엔젤 O O 20세기 폭스 1억 7,000만 달러 4억 400만 달러
2019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O O[48] 20세기 폭스/파라마운트 1억 8,500만 달러 2억 4,990만 달러
2022 아바타: 물의 길 O O O 20세기 스튜디오 4억 달러 23억 2396만 달러
2025 아바타: 불과 재 O O O 20세기 스튜디오 - -

4.1. 차기작 목록

4.2. 다큐멘터리 목록

5. 사건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5.1. 아바타: 물의 길 일본 돌고래 쇼 관람 논란

2022년 12월 10일, 아바타: 물의 길 일본 기자간담회 겸 쇼케이스에서 돌고래 쇼를 관람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일본 프로모 행사장에서 돌고래 쇼에 박수를 친 것에 대하여 아바타 2의 메시지와는 모순되는 행보라며 비판 및 지적을 받았으나, 이후 밝혀진 사실로는 엄연히 카메론 감독이 피해자인 사건이었다. 카메론 감독은 애초부터 방일 행사에 돌고래 쇼가 기획되었는지도 몰랐고, 모르는 것에 동의를 표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동의한 적도 없다.[51] 그렇게 예고 없이 쇼를 관람하게 되어 매우 분노가 일어났지만, 거기서 사고를 쳐서 행사 분위기를 망칠수 없었기에 참았다고 해명했다. 이렇듯 전말이 밝혀지자 행사를 담당한 일본 주최측은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당시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해명을 요청했던 동물 단체들도 이해의 목소리를 내며 논란이 수그러들었다. ##

카메론 감독은 갑작스레 동물학대 쇼를 관람하게 되고 긍정적 코멘트를 강요받자 몹시 화가 났는지, "그래서 돌고래에게 허락은 받았겠죠?"하고 대놓고 비웃는 코멘트를 했다. 그런데 여기에 당혹했는지 일본 방송들에서는 이걸 긍정적 반응으로 왜곡해 내보내 빈축을 샀다.

6. 여담


* 2010년 SNL에서 만든 꽁트. 카메론 영화를 많이 봤다면 어렵잖게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내용이다. 대강 패러디 요소를 집어보자면, 시간이동 후 두 인남캐가 알몸으로 나오는 장면(〈터미네이터〉 시리즈), 거대 레이저 캣이 나오는 장면부터 쭉 〈에이리언〉 시리즈의 패러디가 나오고(국장이 사실은 기계였다거나(〈에이리언 2〉), 시고니 위버가 나온다거나,[58][59] 사실 시고니 위버에게 레이저 캣이 기생하고 있었다거나(〈에이리언 3〉), 인남캐 하나가 뜬금없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니, 다리불구가 되어서 아바타 기계에 타는 장면은 두말 할 것 없는 〈아바타〉 패러디. 레이저 캣 둥지를 파괴하고 탈출하는데, 뜬금없이 남아서 현악 4중주를 선보이는 음악가들은 〈타이타닉〉의 패러디이고, 레이저 뱃은 전설의 그 영화 〈피라냐 2〉의 패러디다.

7. 관련 문서

8. 외부 링크



[1] 불가지론을 두고 "겁쟁이 무신론"(cowardly atheism)이라고 할 정도로 강경 무신론자다. 다만 〈아바타〉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문화로서의 종교에는 관심이 많은 편이다.[2] 영화 타이타닉에 나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대사이다[3] 특히 1, 2편[4]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 데뷔 전부터 구상해온 드림 프로젝트였으며, 현재 인터뷰에서도 영화 인생의 대부분을, 또 앞으로도 아바타시리즈에 올인한것에 후회가 없다고 말할정도로 제임스 카메론을 상징하는 영화시리즈다.[5] 어비스를 만들 때에는 ILM과, 〈아바타〉를 만들 때부터는 웨타 디지털과 주로 작업했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각효과 기술을 실용화하였다.[6] 블록버스터라는 장르 자체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관련한 제임스 카메론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담화.#[7] 공동 감독 및 각본 및 제작을 했던 친구 랜들 프레이크스는 12년 뒤에 영화계에 각본가로 뛰어들었으나 현재까지 암울한 필모그래피를 남기는 중이다.[8] 즉 정규 과정을 밟고 영화 감독이 된 사람은 아니다. 캐나다 출신으로 SF와 영화랑 좋아하다가 스스로 독학해 단편 영화를 찍고 B급 호러로 영화계 입성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랑 유사한 경력을 밟은 셈이다.[9] 시체의 팔에 구더기가 꿈틀거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모형 팔에 전기를 흘려넣어 구더기를 움직이게 해서 제작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10] Miller Drake. 제임스 카메론처럼 감독 출신이 아닌 특수효과를 맡았으며 피라냐 1 특수효과에 참여했다. 이후로 영화감독은 하지않고,특수효과 일만 했다. 바로 어비스터미네이터 2,트루 라이즈 같은 카메론 감독 영화 특수효과를 비롯하여, 클리프 행어,바이러스 같은 영화 특수효과에 참여했다. 지금은 은퇴했다.[11] 한국에서 추억의 영화로 알려진 라스트 콘서트 제작자이기도 하다. 아소니티스는 거대문어가 나오는 영화 홀리데이 킬러(1977년작으로, 한국에서 개봉 당시 존 휴스턴 감독과 헨리 폰다가 주연인양 광고해댔으나 이들은 엑스트라를 겨우 벗어난 조연 수준이다)를 감독했는데, 엄청난 악평을 받아서 '영화감독으로서의 재능은 영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고있다.[12] 표지에서 터미네이터의 감독임을 강조했는데 정영일이 글을 썼다.[13] 터미네이터는 1989년에서야 세신영상으로 비디오 정발[14] 이런 방식을 쓰는 것은 카메론뿐만이 아니다. 〈터미네이터〉 이전에 이런 방식으로 데뷔한 인물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실베스터 스탤론이다. 스탤론의 경우에는 더 극단적인 것이 심지어 감독에 주연까지 내놓으라고 했기 때문에 모든 영화사에서 거절당했다. 결국 감독은 포기하고 주연만 맡는 것으로 합의를 봐서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들어가는데, 그 영화가 바로 〈록키〉1편 이다.[15] 이때부터 그의 형편이 피기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16] 과학 기술과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지지, 희생적인 사랑에 의한 구원의 모티브.[17] 이걸 그리기 위해 탄생한 그래픽 소프트웨어는 훗날 어도비 사가 사들여 포토샵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시켰다.[18] 현재 〈캐리비안의 해적〉, 〈트론: 새로운 시작〉 등 유명 작품의 VFX를 도맡고 있다.[19] 나머지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못된 부문은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이다.[20] 이때 감독상을 받으며 카메론이 외친 말이 나는 세상의 왕이다!였다. 그러나 정작 이 애드립 대사의 주인공이지만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들지 못한 주연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말에 이죽거렸다는 썰이 있다.[21] 각본 또한 카메론이 썼기에 각본료로 약 125만불을 받을 따로 받을 예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타이타닉을 사실상 무보수로 찍어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던 결정이었다.[22] 물론 개봉한 시기 한정. 재개봉 수익까지 합치면 〈쥬라기 공원〉도 10억 달러를 넘겼다.[23] 이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 중 국내에서 유명한 것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전함 비스마르크 침몰을 다룬 2002년작 〈비스마르크호의 비밀〉 정도였다. 이 역시 물 속에 가라앉아 있는 비스마르크 호를 탐사하는 내용이었다.[24] 제작한 영화들은 밑의 제작 영화 고난사 문단으로.[25] 실 제작비는 2억 4,300만 달러.[26] 〈타이타닉〉이 훗날 21억 달러에 육박하는 흥행을 올렸으나, 이는 〈타이타닉〉이 3D로 재개봉하면서 올린 수치이고 이 당시만 해도 〈아바타〉가 유일한 20억 달러 흥행 작품이었다.[27] 북미는 2주차에 갑자기 폭설과 강풍을 동반한 폭탄 사이클론을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이쪽은 2주차에 못 간 관객들이 3주차 이후를 택하며 해소되긴 했지만, 중국은 갑작스러운 위드 코로나 전환으로 일일 확진자가 수천만 가까이 예측되는 판국이고 일본에서는 돌고래 쇼 논란이 터지며 거대한 영화 시장을 보유한 2개 나라의 흥행이 박살났다.[28] 아바타, 어벤져스: 엔드게임, 아바타: 물의 길, 타이타닉,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9] 사실 비글로 감독의 작품들은 평가는 좋지만 흥행은 그리 빛을 못 본 것들이 많다.[30] 미국은 IMDB 기준으로 솔라리스 6.2, 생텀 5.7이지만, 국내는 네이버 기준으로 〈솔라리스〉 6.95, 〈생텀〉 7.18이므로, 국내에서는 〈솔라리스〉보다 평이 좋다.[31] 1위는 〈조선명탐정〉이다. #[32] 1위는 〈조선명탐정〉(49만 명), 2위는 〈라푼젤〉(32만 명)이다.[33] 다만, 어느 정도 애착이 있는지, 상술한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인터뷰에서 알리타의 속편을 제작하고 싶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34] 이 같은 변화는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하는데, 가령 〈터미네이터〉가 만들어질 당시엔 《1984》 같은 기계적 디스토피아 전망이 유행했지만, 〈아바타〉가 만들어질 때는 환경파괴·기후변화에 관한 전망이 우세해졌다. 시대 흐름을 읽어내는 카메론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35] 사실 이 영화에서부터 카터 버크비숍의 대조를 통해, 기술의 활용에 대한 카메론의 양가적 시각을 은연히 드러내고 있다.[36]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 1때는 아직 웨이랜드 유타니 사에 대한 명확한 설정이 없었다. 극중에서도 '회사'라고만 언급되는 수준이었다.[37] 취소선을 긋기는 했지만 타이타닉에도 카메론 감독의 비판이 작용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배에 탑승한 화이트 스타 라인의 이스메이 회장이 선장에게 횡단 시간을 줄여서 기록을 세우기 위해 타이타닉을 전속력으로 운행하라고 스미스 선장에게 강권하며, 이것이 타이타닉 침몰의 이유 중 하나로 나온다. 이 때문에 사고 후 이스메이 회장은 생존자들에게 경멸당한다. 다만 이는 카메론의 창작이다. 실제 역사에선 이스메이 회장이 타이타닉의 속도 및 운행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사고 조사를 위한 청문회 당시 이스메이에 대한 조사도 어디까지나 최고 경영인으로서의 최종적인 책임 자체에 주안점을 두었다. 또한 화이트 스타 라인은 선박의 속도 경쟁보다는 안락한 여행을 위한 서비스에 더 집중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나오는 상류층의 지저분한 모습과는 달리, 실제로는 탈출 과정에서 상류층인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의도적으로 차별을 가했다는 근거도 희박하다.[38]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 〈에이리언 2〉, 〈에이리언 네이션〉, 〈어비스〉 등의 프로듀서를 맡았다.[39] 재미있게도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후보로 카메론의 〈아바타〉와 비글로의 〈허트 로커〉가 올랐다! 이 때문에 세간에는 작품상을 둔 경쟁에서 승자는 전(前) 남편이냐 전(前) 부인이냐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었는데, 결국 승자는 전(前) 부인이 되었다.[40] 영국 스태프들이 카메론에게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하지 않게 해줄 것, 그리고 하루에 두 번씩은 티타임을 가지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게다가 영국 스태프들은 카메론의 작품은 커녕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해서 엄청나게 무시했다. 가뜩이나 자존심 강하고 성질 더러운 카메론 입장에선 울화통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41] 조지 S. 패튼 문서를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패튼은 진짜로 부하들을 두들겨팼는데 1940년대 당시에도 엄청난 욕을 여론과 언론을 통해 쳐먹었다. 그래서 그는 명장임에도 사관학교 후배인 아이젠하워나 오마 브래들리가 먼저 대장이나 원수로 진급하는 걸 봐야했다. 그나마 둘은 선배인 패튼을 우대했지만 상관인 아이젠하워 대장은 패튼 중장의 부하 구타 및 온갖 논란을 옹호하는데 질려서 "내가 언제나 패튼 그놈만을 봐줄 수 있다고 보느냐?"고 분노한 것도 유명하다. 브래들리는 대놓고 패튼에게 당신은 독불장군에 전쟁을 너무 즐기는데 그거 독재자 타입 아니냐고 그야말로 면전에서 모욕을 할 정도였다. 헌데 이 말에 패튼이 찍소리 못했다. 당연히 카메론은 패튼과 입장이 다르니 정말로 구타했다면 고소당할 뿐만 아니라 감독 자리도 모가지당하고, 스태프들을 구타한다는 악명으로 인해 할리우드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갔을 것이다.[42] 〈터미네이터〉에서 카일 리스 역, 〈에이리언 2〉에서 드웨인 힉스 역, 그리고 〈어비스〉에서 하이럼 코피 중령 역.[43] 〈터미네이터〉에서 초반 T-800에 의해 살해 당하는 양아치 3인중 파란 머리, 〈에이리언 2〉에서 허드슨 일병과 〈타이타닉〉에서 보물사냥꾼 브록 러벳 역.[44] 〈에이리언 2〉에서 바스케즈 일병 역, 〈터미네이터 2〉에서 존 코너의 양어머니 역.[45] 데뷔작 〈피라냐 2〉에도 출연했으며, 〈터미네이터〉에서는 사라 코너 동명이인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역을, 〈에이리언 2〉에서는 합성 인조인간 비숍 역을 맡았다.[46] 사실 그도 그럴게, 영화에서 감독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그냥 항상 오만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할리우드 영화계가 감독보단 프로듀서와 작가의 힘이 강하다 해도 제임스 카메론의 경우 편집이나 각본에도 손을 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이다. 그리고 본인도 그만큼의 능력이 있고 자신감까지 있었으니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쪼아댔을 것이다. 터미네이터 시절부터 쭉 그런 삶을 살아오다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영역의 최고봉에 있는 사람들과 일을 하다보니 당연히 남들의 말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47] 그래서 베이도 나름대로 자기반성하는 발언을 하고, 성질도 전보다 많이 죽여서 이후 같이 작업하게 된 안소니 홉킨스, 존 말코비치 같은 대배우들에게도 칭찬을 많이 듣게 되는 등, 전보다는 나아졌다.[48] 원안[49] 후술하듯이, 둘은 절친 관계이기도 하다.[50] 제임스 카메론이 실제로 1인 잠수정을 타고 마리아나 해구 끝까지 도착했던 장면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식 영화로 본인이 출연했다.[51] 이전에 해양 보호 다큐멘터리까지 찍었던 카메론 감독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틀림없이 방문 계획을 다시 검토했을 가능성이 높다.[52] 원문은 "Vegan is Futurevore"인데, 여기서 '-vore'는 초식동물(herbivore)과 같이, 생물을 그 주식으로 구분할 때 쓰이는 접미사다. 즉 미래에는 채식주의자만 남을 거라는 뜻이다.[53] 트럭 운전수로 일하던 카메론이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가 1977년 스타워즈 관람이었다.[54] 현재는 성전환으로 자매.[55] 출처: EthniCelebs James Cameron.[56] 비교적 최근 인물은 외래어 표기법에 맞춰 알려지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은 비록 틀렸을지라도 불리던 대로 불리는 것이 혼동을 막는 차원에서 합리적이라 볼 수 있다.[57] 카메론에게 총몽을 소개 시켜준 사람이 기예르모 델 토로인데, 카메론과 같이 덕질하는 매우 친한 사이다.[58] 사실 위버는 이날 snl 호스트였다. 작중 위버가 살고 싶으면 따라와라"(Come with me if you want to live)"라고 말하는데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꾸준히 나오는 대사. 1편에서 카일 리스가 사라 코너에게 외친 것을 시작으로, 누군가를 아군으로 합류시킬 때 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59] 남자 배우들이 "리플리!"라고 부르자 리플리는 "믿거나 말거나"라고 하는데 이는 예전에 한국에서도 방영했던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라는 방송 제목을 이용한 말장난이다.[60] # 좌측이 제임스 카메론이다. 우측 빌리 제인의 키는 184cm.[61] 당장에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이미 테란, 저그, 프로토스 3종족의 컨셉을 가진 영화들이 다 있다. 만약 본인이 스타크래프트에 대해서 생각이 있다면 본인입장에선 저3작품을 좀더 하이테크형식으로 짬뽕시키면 되는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