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21:37:20

멜 깁슨

멜 깁슨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oscar_logo.svg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
'''[[틀: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Academy Award for Best Director]]'''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000,#e5e5e5
제1회
(1929년)
제2회
(1930년)
제3회
(1931년)
제4회
(1932년)
제5회
(1933년)
코미디:
루이스 마일스톤
(미인국 2인 행각)
드라마:
프랭크 보제이지
(제7의 천국)
프랭크 로이드
(정염의 미녀)
루이스 마일스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노먼 터로그
(스키피)
프랭크 보제이지
(나쁜 여자)
제6회
(1934년)
제7회
(1935년)
제8회
(1936년)
제9회
(1937년)
제10회
(1938년)
프랭크 로이드
(캐벌케이드)
프랭크 카프라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존 포드
(밀고자)
프랭크 카프라
(천금을 마다한 사나이)
레오 맥캐리
(이혼 소동)
제11회
(1939년)
제12회
(1940년)
제13회
(1941년)
제14회
(1942년)
제15회
(1943년)
프랭크 카프라
(우리 집의 낙원)
빅터 플레밍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존 포드
(분노의 포도)
존 포드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윌리엄 와일러
(미니버 부인)
제16회
(1944년)
제17회
(1945년)
제18회
(1946년)
제19회
(1947년)
제20회
(1948년)
마이클 커티즈
(카사블랑카)
레오 맥캐리
(나의 길을 가련다)
빌리 와일더
(잃어버린 주말)
윌리엄 와일러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엘리아 카잔
(신사협정)
제21회
(1949년)
제22회
(1950년)
제23회
(1951년)
제24회
(1952년)
제25회
(1953년)
존 휴스턴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
조셉 L. 맨키위즈
(세 부인)
조셉 L. 맨키위즈
(이브의 모든 것)
조지 스티븐스
(젊은이의 양지)
존 포드
(말 없는 사나이)
제26회
(1954년)
제27회
(1955년)
제28회
(1956년)
제29회
(1957년)
제30회
(1958년)
프레드 진네만
(지상에서 영원으로)
엘리아 카잔
(워터프론트)
델버트 만
(마티)
조지 스티븐스
(자이언트)
데이비드 린
(콰이 강의 다리)
제31회
(1959년)
제32회
(1960년)
제33회
(1961년)
제34회
(1962년)
제35회
(1963년)
빈센트 미넬리
(지지)
윌리엄 와일러
(벤허)
빌리 와일더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로버트 와이즈
제롬 로빈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데이비드 린
(아라비아의 로렌스)
제36회
(1964년)
제37회
(1965년)
제38회
(1966년)
제39회
(1967년)
제40회
(1968년)
토니 리차드슨
(톰 존스의 화려한 모험)
조지 큐커
(마이 페어 레이디)
로버트 와이즈
(사운드 오브 뮤직)
프레드 진네만
(사계절의 사나이)
마이크 니콜스
(졸업)
제41회
(1969년)
제42회
(1970년)
제43회
(1971년)
제44회
(1972년)
제45회
(1973년)
캐럴 리드
(올리버!)
존 슐레진저
(미드나잇 카우보이)
프랭클린 J. 샤프너
(패튼 대전차군단)
윌리엄 프리드킨
(프렌치 커넥션)
밥 포시
(카바레)
제46회
(1974년)
제47회
(1975년)
제48회
(1976년)
제49회
(1977년)
제50회
(1978년)
조지 로이힐
(스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대부 2)
밀로스 포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존 G. 아빌드센
(록키)
우디 앨런
(애니 홀)
제51회
(1979년)
제52회
(1980년)
제53회
(1981년)
제54회
(1982년)
제55회
(1983년)
마이클 치미노
(디어 헌터)
로버트 벤튼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로버트 레드포드
(보통 사람들)
워렌 비티
(레즈)
리처드 애튼버러
(간디)
제56회
(1984년)
제57회
(1985년)
제58회
(1986년)
제59회
(1987년)
제60회
(1988년)
제임스 L. 브룩스
(애정의 조건)
밀로스 포먼
(아마데우스)
시드니 폴락
(아웃 오브 아프리카)
올리버 스톤
(플래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마지막 황제)
제61회
(1989년)
제62회
(1990년)
제63회
(1991년)
제64회
(1992년)
제65회
(1993년)
배리 레빈슨
(레인 맨)
올리버 스톤
(7월 4일생)
케빈 코스트너
(늑대와 춤을)
조나단 드미
(양들의 침묵)
클린트 이스트우드
(용서받지 못한 자)
제66회
(1994년)
제67회
(1995년)
제68회
(1996년)
제69회
(1997년)
제70회
(1998년)
스티븐 스필버그
(쉰들러 리스트)
로버트 저메키스
(포레스트 검프)
멜 깁슨
(브레이브 하트)
안소니 밍겔라
(잉글리쉬 페이션트)
제임스 카메론
(타이타닉)
제71회
(1999년)
제72회
(2000년)
제73회
(2001년)
제74회
(2002년)
제75회
(2003년)
스티븐 스필버그
(라이언 일병 구하기)
샘 멘데스
(아메리칸 뷰티)
스티븐 소더버그
(트래픽)
론 하워드
(뷰티풀 마인드)
로만 폴란스키
(피아니스트)
제76회
(2004년)
제77회
(2005년)
제78회
(2006년)
제79회
(2007년)
제80회
(2008년)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클린트 이스트우드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안
(브로크백 마운틴)
마틴 스코세이지
(디파티드)
조엘 코엔
에단 코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제81회
(2009년)
제82회
(2010년)
제83회
(2011년)
제84회
(2012년)
제85회
(2013년)
대니 보일
(슬럼독 밀리어네어)
캐스린 비글로
(허트 로커)
톰 후퍼
(킹스 스피치)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아티스트)
이안
(라이프 오브 파이)
제86회
(2014년)
제87회
(2015년)
제88회
(2016년)
제89회
(2017년)
제90회
(2018년)
알폰소 쿠아론
(그래비티)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버드맨)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데이미언 셔젤
(라라랜드)
기예르모 델 토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제91회
(2019년)
제92회
(2020년)
제93회
(2021년)
제94회
(2022년)
제95회
(2023년)
알폰소 쿠아론
(로마)
봉준호
(기생충)
클로이 자오
(노매드랜드)
제인 캠피온
(파워 오브 도그)
다니엘 콴
다니엘 샤이너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제96회
(2024년)
제97회
(2025년)
제98회
(2026년)
제99회
(2027년)
제100회
(2028년)
크리스토퍼 놀란
(오펜하이머)
----
}}}}}}}}}}}}}}} ||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oscar_logo.svg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제67회
(1995년)
제68회
(1996년)
제69회
(1997년)
웬디 파이너먼
스티브 스타키
스티브 티치
(포레스트 검프)
브루스 대비
멜 깁슨
앨런 래드
Jr. 엘리자베스 로빈슨
(브레이브 하트)
솔 제인츠
스티브 앤드루스
(잉글리쉬 페이션트)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파일:goldenglobe.png
감독상
제52회
(1995년)
제53회
(1996년)
제54회
(1997년)
로버트 저메키스
(포레스트 검프)
멜 깁슨
(브레이브 하트)
밀로스 포먼
(래리 플린트)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파일: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png
감독상
제1회
(1996년)
제2회
(1997년)
멜 깁슨
(브레이브 하트)
안소니 밍겔라
(잉글리쉬 페이션트)

}}} ||
<colbgcolor=#505050><colcolor=#ffffff> 멜 깁슨
Mel Gibson
AO[1]
파일:fdfc0ef3b18c40fe8dcfd1ba733e4306.jpg
본명 멜 콜럼실 제라드 깁슨
Mel Columcille Gerard Gibson
출생 1956년 1월 3일 ([age(1956-01-03)]세)
미국 뉴욕주 픽스킬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
[[아일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77cm
직업 배우, 프로듀서
활동 1976년현재
학력 애스퀴스 고등학교
National Institute of Dramatic Art
종교 가톨릭전통주의 가톨릭
부모 부 허튼 깁슨(1918. 08. 26. ~ 2020. 05. 11.)
모 앤 라일리(? ~ 1991.05.)
배우자 로빈 무어(1980년 결혼 ~ 2011년 이혼)
로잘린드 로스(2014. 04~)
자녀 7남 2녀
[ 펼치기 · 접기 ]
딸 해나 깁슨(1980년생)
아들 에드워드 깁슨(1982년생)
아들 크리스천 깁슨(1982년생)
아들 윌리엄 깁슨(1985년생)
아들 루이스 깁슨(1988년생)
아들 마일로 깁슨(1990년생)
아들 토머스 깁슨(1999년생)
딸 루시아 깁슨(2009년생)
아들 라스 제라드 깁슨(2017년생)

1. 개요2. 생애3. 배우 및 감독 활동
3.1. 감독으로서의 특징
4. 기타5. 출연작
5.1. 데뷔 ~ 1989년5.2. 1990년 ~ 1999년5.3. 2000년 ~ 2009년5.4. 2010년 ~ 현재
6. 감독작7. 수상목록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미국호주의 배우, 감독, 제작자.

2. 생애

본래 출신지는 뉴욕시지만 깁슨 감독이 열두 살이던 1968년에 가족 전체가 호주로 이주했다. 지금도 호주를 자기 고향으로 생각하는 듯하고 거기에 목장도 있다. 단 호주 국적은 없고 호주 영주권만 있으며 오히려 아일랜드 국적을 가진 복수국적자다.

1956년 1월 3일 아버지 허튼 깁슨(Hutton Gibson)[2]과 어머니 앤 퍼트리샤 라일리(Anne Patricia Reilly) 사이에서 형제자매만 무려 11명인 보수적 아일랜드계 대가족에서 태어났다. 대가족주의는 아일랜드 가톨릭 집안의 특징이다. 멜(Mel)은 아일랜드 성인(聖人)의 이름이고 어머니의 성인 라일리도 대표적인 아일랜드계 성씨다. 멜 깁슨 감독 본인은 아일랜드 복수국적자이기도 하다.

중년 이후 수많은 구설수와 발언으로 말이 많지만, 전성기 시절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기를 끈 스타 배우였으며,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할 만큼 대단한 연출력까지 보유한 명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못지않은 영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배우로서 흥행작이 넘쳤던 시절에 비해 나이도 들고 흥행작도 잘 나오지 않아 기력이 떨어져 보이지만, 감독으로서는 여전히 뛰어난 감각과 연출력으로 지금도 인정받고 있다.

3. 배우 및 감독 활동

1970~8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각광받았던 호주 뉴웨이브 영화의 간판 스타로 그 명성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배우이다. 1979년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로 호주 영화가 주목받았고 1980년대에 호주 출신 아티스트들이 할리우드에 입성함과 동시에 깁슨도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으로 출세한 호주 출신 배우로는 멜 깁슨 이외에도 샘 닐니콜 키드먼, 러셀 크로우, 크리스 헴스워스가 있고, 감독으로는 갈리폴리의 피터 위어 감독이 있다. 나중에 많은 호주 출신 아티스트들이 할리우드 시스템에 회의를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간 반면, 위 인물들은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할리우드에선 리썰 웨폰 시리즈에서 대니 글로버와 형사 콤비를 이뤄 멋진 액션 연기를 보여준 덕에 실베스터 스탤론, 아널드 슈워제네거, 브루스 윌리스, 해리슨 포드와 함께 20세기를 주름잡는 액션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게다가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액션 배우로만 머물지 않고 감독이 되어 직접 영화를 만드는 등 영화인으로서 노력을 기했고, 감독과 주연을 겸한 브레이브 하트로 흥행에 크게 성공했을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상까지 휩쓸면서 최고의 영화인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2000년대에 와선 예수의 고난과 박해를 그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제작 및 감독해 역시 큰 히트를 기록했지만 유대인들을 잔인한 냉혈한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미국 유대인 단체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다.[3] 독실한 가톨릭 교도로서[4] 정치적 보수성, 반유대인, 반동성애 성향이 언론에 알려지는 바람에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다. 반동성애야 가톨릭 교도로서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아버지 허튼 깁슨과도 연관된 홀로코스트 허구설을 기반으로 한 반유대 성향은 변호할 도리가 없다.[5] 2006년, 음주운전으로 체포되었다가 유대계 경관에게 반유대주의 폭언을 퍼부은 것 때문에 난리가 났었고 그때 멜 깁슨은 싹싹 빌면서 어떠한 종류의 혐오도 자신의 종교인 가톨릭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수차례 사과했다. 당시 깁슨을 체포했던 경관은 술 취하면 그럴 수 있다고 대범한 모습을 보였었다. 깁슨은 반유대적인 발언을 후회하며 2017년부터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 비밀리에 선행을 베푼다고 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나온 뒤엔 아포칼립토란 영화를 제작 및 감독했다. 이 영화 역시 고증과 연출이 굉장히 뛰어났지만 그 때문에 남미 원주민들을 미개인으로 묘사했다 비판을 받았는데 고증이나 실제 역사를 보면 멜 깁슨이 단순히 남미 원주민을 비하했다고 보긴 어렵다. 스페인 침략자들의 침략을 합리화 했다는 주장도 영화적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주인공은 스페인 침략자들을 발견한 후, 그들에게 가지않고 숲으로 돌아가야 한다. 라고 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 1위로 뽑히기도 했지만 이후로 계속 사생활에서도 말이 나오고, 특히 유대계와 사이가 안 좋아서 할리우드에서 입지가 많이 좁아져 아포칼립토 이후 감독 일을 10년 가까이 쉬어야 했다. 유대계 영국인 사샤 바론 코헨은 아예 자신의 영화 '브루노'에서 멜 깁슨의 헤드샷을 가리키며 총통이라고 했을 정도. 술에 취해 유대인들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여자친구를 땅에 파묻어 생매장시키겠단 협박을 했다고도 하는 등 이미지가 상당히 많이 망가졌다. 연기력은 동시기 액션배우로 전성기를 구가한 슈워제네거나 스탤론보다 (둘 다 대사전달력이 약하니) 확실히 낫고,[6] 감독 재능도 있기에 계속 영화에만 전념했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될 수도 있었으나, 하필 할리우드를 꽉 잡은 유대인들과 문제를 일으켜 감독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깁슨이 연출한 작품 4개가 고증(브레이브 하트)이나 정치적 올바름(아포칼립토)으로는 지적받을지언정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높아 전부 수작으로 인정받음을 생각하면 아쉬운 노릇이다.

배우로서도 2010년대 흥행이 별로 좋지 않은데, 코미디 영화인 비버(2011)가 흥행에서 참패했다. 조디 포스터[7] 연출로 제작비 2100만 달러가 들었지만 미국 극장 수익이 총 97만 달러로 실패했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깁슨을 고용했지만, 연출이 포스터의 이전 작과 달리 상당히 미흡했다는 게 보편적인 평. 이후 악역으로 분한 마세티 킬즈익스펜더블 3까지 흥행에 실패했다.[8] 영화가 안 좋음은 제작자와 감독 잘못이지 배우 탓은 아니지만, 선구안이 나쁜 건 변명하기 어려운 일.

2016년에는 핵소 고지를 연출했는데 그 영화가 호평을 받으면서 할리우드에 다시 어느 정도 재기했다.

그는 마블 영화에 대해 비판하면서 영화는 어떤 이유로 폭력을 보여주는지 전달해야 하는데, 마블 영화는 폭력을 통해 관객들에게 카오스를 전달한다고 평가했다.#
최근 들어 완전히 감독으로만 활동하고 배우활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팬들은 예상했으나 2017년 10월 그의 대표작이자 최고작인 리썰 웨폰 시리즈가 5번째 후속작으로 돌아오는 것이 확정되었고 그의 복귀 역시 확정되었다. 2021년 초 공식적으로 제작에 곧 들어간다고 소식을 공개했으나 갑작스럽게 리처드 도너 감독이 2021년 7월5일 사망하는 바람에 도너 감독의 유언대로 깁슨이 직접 연출을 맡게 되었다.

3.1. 감독으로서의 특징

전쟁 영화에 특화된 감독이라는 평이 많으며, 상당히 잔혹하면서 생생한 전투신과 야생적인 느낌의 거친 연출,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잘 활용한 뛰어난 영상미, 웅장하고 감동적인 음악 선곡 등 시청각적으로 절대 부족하지 않게 연출할 줄 아는 감독이다. 마치 리들리 스콧의 사극 영화처럼 폭력성을 제대로 활용해 쾌감을 주면서도 아름답고 세련된 영상미와 고전적인 미술, 웅장한 음악 등 비주얼리스트란 칭호를 붙혀도 될 만큼 깊이감 있는 화면을 잘 만든다. 심지어 철저한 고증까지 스콧 감독과 닮은 편. 사극에서 최고의 연출력과 영상미를 뽐내는 점은 에드워드 즈윅과 닮았다.

브레이브 하트부터 핵소 고지까지 깁슨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정말 실감나는 폭력묘사인데 등장인물이 무엇 때문에, 어떤 식으로 폭력을 자행하고 또 당하는지 정말 명확하고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각종 병기가 난무하는 잔혹한 전쟁씬을 길게 가져가면서도 늘어짐 없이 생생하게 연출하는 능력은 그를 싫어하는 평론가들조차 순순히 인정한다.

4. 기타

그런데, 이혼 후 만난 여자친구와도 결국 가정폭력으로 헤어졌다. 2011년에 재판 결과가 나왔는데, 여친을 폭행한 사실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실형은 면했다. 링크
멜 깁슨의 이러한 행위는 꽤 다층적인 영향을 남겼다. 인종차별이 기본인 극우 스킨헤드들이 '중동에서 보기 싫은 아랍 놈들 잘 죽이는 이스라엘 유대인을 까다니!'라면서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한 듯한 비난을 하거나, 팔레스타인인들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탄압하는 이스라엘의 나치 같은 모습에 염증을 느낀 일부 진보 성향 사람들이, 깁슨의 발언에 일부 찬동하는 등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파일:external/cdn1.tabletmag.com/melbig.jpg* 미국 블랙 코미디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에서는 이 만화에 언급되는 실존 유명인사들이 늘 그렇듯이 엄청나게 까였다. 얼굴 사진 합성으로 등장했는데, 기독교리적 위선자 및 완전 미치광이 캐릭터에, 유대인을 엄청 싫어하는 에릭 카트먼이 우상으로 섬기고 방에는 멜 깁슨 포스터를 붙였을 정도. 다른 사람들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고 감동한 반면 카일은 예수에 대한 죄책감이 생기고 스탠케니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며 환불을 받으려고 멜 깁슨을 찾아가지만 깁슨이 돈을 순순히 주지 않자 둘이서 지갑에서 강제로 두 명의 영화 푯값 18달러를 빼가는데, 깁슨이 빼간 돈 돌려달라면서 총을 쏴대고 트럭으로 추격하는 등 정신나간 행각을 보인다. 결국 사우스 파크까지 쫓아오게 되고 사람들 앞에서 더럽고 정신 나간 행동을 하게 된다. 카일은 멜 깁슨이 미친놈임을 알고 자기가 저 미친 사람의 영화를 보고 죄책감에 빠졌음에 어이없어하고 예수한테 있던 죄책감이 사라진다.
실제로 인터뷰 등에서도 본인의 아일랜드 혈통을 부각하면서 반쯤은 영국 자체를 상당히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인증했다. 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람들의 이민사에 드리워져 있는 짚은 제국주의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가는 자세도 아니지만, 이 사람은 결정적으로 실제론 호주와 미국 사이에서 자란 사람이다.
서양권에선 애초에 옛날부터 아일랜드 근처에는 가보지도 않은 아일랜드계 후손들이 에스닉 코스프레 한답시고 막상 본토 아일랜드 현지 사람들보다 북아일랜드 분쟁 같은 아일랜드 관련 역사적 논란에 더 열을 올리는 것도 종종 조롱받는 수준인지라 아이리시 배경을 쳐줘도 어쨌든 깔거린 많다.
막상 실제로 북아일랜드든, 아일랜드 공화국이든 막상 이민 안가고 계속 현지에서 살았던 진짜배기 아이리시들은 하도 당장 근현대사에 직접적인 암운을 겪으면서 살았고, 좋든 싫든 영국과의 관계를 끊는다는건 불가능하다는걸 알아서 오히려 이 주제에 관해 말을 아끼는 편이라 멜 깁슨을 비롯한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의 오버질을 더 질색하는 점도 있다.

5. 출연작

5.1. 데뷔 ~ 1989년

파일:external/www.cine114.net/shszone_1251.jpg

5.2. 1990년 ~ 1999년

5.3. 2000년 ~ 2009년

5.4. 2010년 ~ 현재

6. 감독작

멜 깁슨 감독 장편 연출 작품
[ 펼치기 · 접기 ]
||<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width=300> 파일:The Man Without a Face Logo.png ||<width=300> 파일:Braveheart Logo.png ||<width=300> 파일:The Passion of the Christ Logo.png ||
더 페이스 (1993) 브레이브 하트 (1995)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2004)
파일:Apocalypto Logo.png 파일:Hacksaw Ridge Logo.png
아포칼립토 (2006) 핵소 고지 (2016)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후속작 (제목 미정)

상세정보 링크 열기

7. 수상목록

8. 관련 문서



[1] 오스트레일리아 훈장, 오피서(Officer)[2] 1917년생이며 2020년 5월 103세로 사망하였다. 미국의 작가이자 대표적인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이고, 전통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도 성 비오 10세회보다 더 보수적임을 자처하는 교황공석주의자(Sedevacantist)이기도 하다.[3] 복음서의 묘사를 충실히 따른다면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고 이 부분을 그대로 영상화했을 뿐이다. 그래도 유대계의 눈치를 아주 안 볼 순 없어서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 하는 부분에는 영어 자막을 달지 않았다.[4] 전술했듯 깁슨 감독은 매우 보수적인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다. 멜의 아버지 허튼 목사는 아예 현 교황 자체를 부정하는 인물인데, 멜은 교황과 바티칸 공의회를 인정한다고 한다.[5] 서양권에서는 구교와 신교를 가릴 것 없이 기독교도라면 무조건 유대인들을 탄압해왔다.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며 게토에서만 모여살게 했고 사유재산을 엄격히 통제했다. 유럽에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1900년대 초중반까지 미국에서도 유대인들은 차별받았다.[6] 연기력 차이만 문제는 아니었다. 슈워제네거는 오스트리아 출신 이민자라 영어를 익히고 독일어 역양을 지우는 데 오래 걸렸고, 스탤론은 미국에서 나긴 했지만 안면마비 등의 신체적 장애가 있어서 대사가 어눌하였다. 반면 깁슨은 영국(호주)식 영어에 목소리가 부드럽고 울림이 깊기에 차이가 더욱 컸다.[7] 조디 포스터의 아버지가 알려지지 않은 아들들의 생부라는 의혹이 있다.[8] 단, 흥행에 실패했을 뿐 연기를 못하진 않았다. 해당 영화들에서 보여준 연기는 평가가 좋았다. 특히 조연에 악역이었지만 마세티 킬즈에서의 존재감은 대단했다는 평.[9] 1980년 결혼, 2006년부터 별거, 2011년 이혼.[10] 《갈리폴리》는 갈리폴리 전투 당시 영국군 수뇌부의 실책과 그로 인해 희생된 호주군들을 묘사한 것이므로 역사왜곡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브레이브 하트》와 《패트리어트》는 실제 역사와는 다른 점이 많아 역사 왜곡 문제로 큰 논란을 야기하기도 하였다.[11] 호주, 대만과 합작으로 멜 깁슨, 샘 닐최가박당에서 괄괄한 여형사 하동시로 나온 장애가가 나오고 외팔이 검객 시리즈로 유명한 대만 배우 왕우가 일본군 악역으로 나왔다. 원제인 어택포스Z라는 제목으로도 비디오가 재출시됐다.[12] 존 스미스 역.[13] 납치된 아들을 구출한다는 영화로, 아들을 납치한 범인들에게 돈을 주는 대신, 방송에 출연해서 오히려 범인들을 잡는 현상금을 거는 장면이 유명하다. 참고로 여기서 악당으로 주연한 배우는 CSI 뉴욕 시리즈의 맥 테일러 반장으로 유명한 게리 시나이즈다.[14] 자신의 꼴마초스러움이 남자다운거라 착각하며 살다, 우연히 전기감전사고로 여성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진심으로 여성들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15] 원제는 겟 더 그링고(Get the Gringo).[16] 마크 윌버그의 아버지 커트 역으로 출연했다. 꼴마초였던 아들과 마찬가지로 완전 상남자인데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가는데 마다 젊은 애인을 만드는 절륜한 미노년 캐릭터.[17] 제임스 머리 역[18] 레이 역[19] 클라이브 벤터 역(프랭크 그릴로와 공동 출연).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