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SF판타지작가협회(SFWA) 선정 그랜드 마스터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000,#e5e5e5 | 1대 (1975년) | 2대 (1976년) | 3대 (1977년) | 4대 (1979년) | 5대 (1981년) |
로버트 A. 하인라인 | 잭 윌리엄슨 | 클리퍼드 D. 시맥 | L. 스프레이그 드 캠프 | 프리츠 라이버 | |
6대 (1984년) | 7대 (1986년) | 8대 (1987년) | 9대 (1988년) | 10대 (1989년) | |
안드레 노튼 | 아서 C. 클라크 | 아이작 아시모프 | 알프리드 베스터 | 레이 브래드버리 | |
11대 (1991년) | 12대 (1993년) | 13대 (1995년) | 14대 (1996년) | 15대 (1997년) | |
레스터 델 레이 | 프레데릭 폴 | 데이먼 나이트 | A. E. 밴보트 | 잭 밴스 | |
16대 (1998년) | 17대 (1999년) | 18대 (2000년) | 19대 (2001년) | 20대 (2003년) | |
폴 앤더슨 | 할 클레멘트 | 브라이언 W. 올디스 | 필립 호세 파머 | 어슐러 K. 르 귄 | |
21대 (2004년) | 22대 (2005년) | 23대 (2006년) | 24대 (2007년) | 25대 (2008년) | |
로버트 실버버그 | 앤 맥카프리 | 할란 엘리슨 | 제임스 E. 건 | 마이클 무어콕 | |
26대 (2009년) | 27대 (2010년) | 28대 (2012년) | 29대 (2013년) | 30대 (2014년) | |
해리 해리슨 | 조 홀드먼 | 코니 윌리스 | 진 울프 | 새뮤얼 딜레이니 | |
31대 (2015년) | 32대 (2016년) | 33대 (2017년) | 34대 (2018년) | 35대 (2019년) | |
래리 니븐 | C. J. 체리 | 제인 욜렌 | 피터 S. 비글 | 윌리엄 깁슨 | |
36대 (2020년) | 37대 (2021년) | 38대 (2022년) | 39대 (2023년) | 40대 (2024년) | |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 네일로 홉킨슨 | 메르세데스 래키 | 로빈 맥킨리 | 수잔 쿠퍼 |
1. 개요
Samuel Ray Delany[1]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흑인 SF작가이다. 영문학 교수[2] 이자 문학평론가, 뮤지션, 시인으로도 알려진 다재다능한 인물이며, 1970년대 전후에 제임스 조이스를 방불케 하는 다면적이고 난해한 상징들을 종횡무진으로 구사한 시적이며 아름다운 SF 소설들을 발표해서 명성을 얻었다. 초창기 LGBT 작가로도 이름이 높으며, 애칭은 '칩(Chip)' 딜레이니이다.
2. 상세
딜레이니는 1942년 4월 1일에 뉴욕 맨해튼의 할렘에서 남북전쟁 시대로까지 거슬러올라가는 흑인 상류 가문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이자 흑백 혼혈 노예였던 헨리 비어드 딜레이니는 노예 해방 후에 미국 성공회 최초의 흑인 주교가 되었고, 그 딸이자 딜레이니에게는 고모가 되는 새디 딜레이니와 베시 딜레이니 자매는 가문의 역사를 다룬 『Having Our Say: The Delany Sisters' First 100 Years』를 써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으로 유명하다. 아버지가 큰 규모로 장례업을 하던 부유한 집안에서 영재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딜레이니는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유명했다. 뉴욕의 명문 고등학교인 브롱스 사이언스 하이스쿨을 졸업한 그는 뉴욕 시티 칼리지에 입학하지만 대학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한 학기만에 중퇴했고, 1962년에 만 20살이 채 되기도 전에 판타지 장편인 『앱터의 보석』으로 소설가로 데뷔했다.1966년 SF 장편 『바벨-17』로 비평적으로 가장 큰 권위가 있는 네뷸러상 장편상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도 『아인슈타인 교점』으로 네뷸러 장편상을 연속 수상하며 SF 문단에 이름을 떨친다. 20대 중반, 그것도 흑인인 딜레이니가[3] 연속으로 이 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백인 남성이 주도하던 당시의 미국 문화계에서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1967년과 1968년에도 네뷸러상의 단편 분야를 연이어 휩쓸었고, SF 분야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휴고상도 두 번이나 받으며 동시대의 유명 SF작가인 로저 젤라즈니와 함께 아메리칸 뉴웨이브 운동의 기수로 주목받았다.1975년에는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은 포스트모더니즘적 SF 장편 『달그렌』이 무려 140만부가 넘게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 뒤로는 작가업보다는 교수로서 문예 비평 활동에 주력하게 된다. 라이벌로 간주되던 거물 SF 작가 로저 젤라즈니와는 서로 헌사와 작품을 교환할 정도로 매우 친하게 지냈으며 윌리엄 깁슨이나 브루스 스털링처럼 뉴웨이브의 영향을 짙게 받은 사이버펑크 SF작가들에게도 사이버펑크 장르의 선구자로서 큰 존경을 받고 있다.
가정적으론 고등학교 동창으로 유태인계 백인 대학교수이자 시인인 메릴린 해커(1942~ )와 결혼하여 18년동안 가정을 이뤘지만 1980년 이혼했다. 하지만 이혼 뒤에도 친구로서도 같은 시인으로서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딜레이니는 그 후 자신이 바이섹슈얼이 아닌 호모섹슈얼이라고 선언했고,1991년부터는 데니스 릭켓이란 동성애인과 동거중이다. 자식으로는 해커와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이 하나 있는데, 양성애자였던 해커를 포함한 여성과의 정상적인 성관계(coitus)가 아예 불가능했던 딜레이니는 그의 남성 애인도 참가하는 3자 동침을 통해 가까스로 해커를 임신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4] 히피 운동이 맹위를 떨치던 1960년대에 발표된 그의 초기 작품들은 처음부터 동성애와 다자 연애 요소를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성배 전설을 바탕에 깐 스페이스 오페라인 『노바』의 경우에도 성간 이동에 필수적인 물질인 일리리온을 채굴하기 위해 우주선으로 폭발 예정인 신성(新星)을 통과한다는 플롯 자체가 남성간 성교의 은유라는 점은 이미 출간 당시부터 여러 평론가에 의해 지적받고 있었다.
3. 기타
딜레이니는 시인으로서도 벨커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SF작가 명예의 전당 명예상인 필그림 상을 받았으며 미국 코넬 대학 교수 및 영문학과 및 문학창작과 교수를 역임했다. 락/포크 뮤지션으로서 앨범도 여럿 냈으며 SF 평론집으로도 휴고상 논픽션상을 받았고, 수학자로서도 수상경력이 있는 먼치킨적인 면모를 보인다.한국에선 2013년이 되어서야 SF계의 명 번역자인 김상훈에 의해 초기 대표작인 『바벨-17』이 정식으로 번역되어 SF팬들을 기쁘게 했지만[5], 또 다른 대표작인 『노바』를 위시한 작품들 대부분이 출간된 지 반세기가 지났을 정도로 오래된 데다가 한국어로는 번역 불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교하고 난해한 탓에 [6] 국내에서의 후속작 소개도 비슷한 이유로 지지부진했는데, 2022년 5월에 드디어 『노바』가 정발되었다.
[1] 정식 작가명은 새뮤얼 딜레이니가 아니라 새뮤얼 R. 딜레이니이다. 한국의 출판계에서는 이처럼 해외 작가의 미들 이니셜을 단지 부르기 편해진다는 이유로 멋대로 생략하는 악습을 종종 볼 수 있다.[2] 딜레이니에 대한 한글 문서 여기저기에 코넬대학이나 시카고대학의 영문학 교수였다고 기술되어 있지만, 딜레이니가 정식 교수였던 곳은 매사추세츠 대학 (앰허스트), 버팔로 대학, 템플 대학 세 군데 뿐이며 다른 대학들에서는 한 학기나 1년 정도 방문교수, 상주작가, 연구원, 강사 등의 자격으로 체류했을 뿐이다[3] 1960년대는 마틴 루터 킹이 흑인 차별법 철폐를 위한 인권 운동을 벌이던 시절이자 히피 운동과 사이케델릭 문화로 대표되는 카운터컬처의 전성기였다.[4] 이는 『바벨-17』에서 등장하는 선장과 크루들의 3자 결혼 관계와 유사하며, 주인공인 여성 시인 리드라 웡은 딜레이니 자신의 얼터 에고였음을 알 수 있다.[5] 김상훈은 바벨-17을 그리폰 북스의 번역 예정 목록에 넣을 정도로 딜레이니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20년 후에야 폴라북스 <미래의 문학> 기획에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6] 딜레이니의 작품은 로저 젤라즈니와 마찬가지로 전세계의 신화와 상징을 종횡무진하게 이용하는 데다가 고전에서 20세기 카운터컬처에 이르는 서구 문화 전체에 대한 중층적인 레퍼런스를 기본으로 깔고 있기 때문에 상술한 제임스 조이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전문가가 아닌 이상 완전히 이해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에도 『아인슈타인 교점』은 네뷸러상을 받은 대표작임에도 불구하고 출간 30년 뒤인 1996년이 되어서야 겨우 번역서가 나왔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