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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6:06:09

무라타 유스케

파일:B3Jocf3CAAAFfNo.jpg
무라타 유스케
村田雄介
출생 1978년 7월 4일 ([age(1978-07-04)]세)
일본 구마모토현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1]
가족 형 무라타 켄스케(村田謙介)(1977년 1월 11일생)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누나, 여동생
아내
아들 무라타 케이스케(村田圭介)(2006년 8월 28일생)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2009년생)
직업 만화가
데뷔 1995년 소년 점프 증간호 '파트너'
링크 개인 유스트림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특징
3.1. 그림3.2. 작업 특징3.3. 스토리
4. 작품목록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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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어 위키백과의 무라타 유스케 문서
어차피 죽는다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고 싶다.
― 원펀맨 인터뷰 中
일본만화가. 주로 소년 점프에서 활동하고 있다.

2. 생애

16살 때 소년 점프에 파트너라는 단편으로 입선하면서 만화계에 발을 들였다.[2][3] 그리고 2002년 아이실드 21로 정식 데뷔했다. 《아이실드 21》의 작화를 맡았으며, 점프 만화 전체에 걸친 애정과 그림에 대한 장인 정신으로 이름 높은 만화가이다. 오다 에이이치로, 우스타 쿄스케 등 선배 만화가들도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찬할 정도.

3. 특징

3.1. 그림

그림 실력 자체도 굉장히 뛰어나지만 만화에 들이는 공도 장난이 아니다.[4] 잡지 연재 시 컬러인 부분은 대부분 단행본에선 흑백으로 나오는데, 그냥 흑백 버전으로 고쳐 그린 게 아니라 흑백에 가장 효과적인 구도로 다시 그리기도 했다. 토가시 요시히로처럼 단행본 수정이 많은 편인데, 불성실한 연재 태도 때문에 욕을 먹는 토가시와 달리 이쪽은 《아이실드 21》을 7년간 연재하면서(전 333화) 단 한 번의 휴재도 없었다.[5] 특히 드래곤볼 이후 세대의 만화가로서, 일본 만화계의 덕목인 주간 연재의 성실함을 겸비했으며 자타공인으로 높게 인정하는 멘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런 그림에 대한 애정은 단행본 수록시 작화 수정도 아니고 구도 수정이라는 괴수급 능력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실드 21》에서는 자세히 보면 주인공이 속한 데빌 배츠가 상대하는 팀들의 특징에 따라, 각 화의 연출을 미세하게 바꾸기까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쿄신 포세이돈 전에서는 '장신' '파도'와 같은 키워드에 맞추어 컷을 길게 연출하고, 미국전에서는 미국 만화풍의 연출을 가미했다.

3.2. 작업 특징

자신만의 색깔을 나타내기보다는 정석적으로 그리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림체가 개성이 없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어떤 그림체라도 위화감 없이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런 평가는 극소수이다. 애초에 무라타처럼 정석적인 그림체로 높은 퀄리티를 뽑아내는 작가가 그리 많지 않아서, 사실상 그림 실력 그 자체가 무라타의 개성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각종 행사나 축하 일러스트 외주에서 자주 불려나가는 것도 이런 장점 덕분이고, 밑의 40주년 일러스트의 일화를 보면 개성적으로 그릴 줄 모른다기보다는 굳이 개성적인 그림체에 연연하지 않는 성향에 가깝다.

인체는 얼굴이나 손을 가늘고 날카로운 선으로 처리한다. 그 때문인지 얼굴이 가벼워보여서 가끔씩 얼굴보다 옷이나 배경을 더 열심히 파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허리는 기다랗게 그리는 편이라 로우 앵글 구도를 보면 확연히 티가 나지만, 그만큼 다리를 길게 늘려놔서 신체 밸런스는 잘 잡혀있다. 현실적인 묘사를 추구하는 건지, 머리카락 사이에 눈썹이 보이는 연출을 사용하지 않으며, 속옷 디자인이나 옷 주름, 명암까지 꼼꼼하게 그린다. 의도적으로 원근법을 과장시키는 데도 능하다.

펜선 명암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해칭을 굉장히 애용하는데, 명암 표현이나 움직임 표현에 손수 해칭을 굉장히 자주 쓰며, 그 실력도 뛰어나다. 심지어 검은 배경에 화이트로 흰색 해칭을 넣기도 한다. 덕분에 그림의 밀도가 높은 편이다.

절대 한 가지 기법만을 고집하지 않아서, 스크린톤이든 CG든 그림의 특징을 나타낼 수 있는 요소라면 과감없이 작업에 투입한다. 다만 컬러 작업 시 채색은 수작업을 고수하는 편이나, 최근에는 디지털 채색에도 관심이 생겼는지 연습작을 트위터에 자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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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작품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인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점프의 역대 주인공들이 모여있는 두 장의 컬러 포스터(점프 40주년 포스터)는 각 작가들이 그린 게 아니라 무라타 유스케가 전부 그린 것이다. 사진 속에 나와있는 각 캐릭터들을 잘 보면 작가마다 구사하는 그림체를 적극 반영해서 무라타 스타일로 리파인한 흔적이 보이는데, 심지어 채색 기법까지 캐릭터별로 미묘하게 다르다. 이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그림에 들이는 정성이 큰 지 바로 알 수 있다. 소년점프 40주년 기념 포스터에서 하얗게 띄운 《드래곤볼》의 프리저와 《원피스》의 루피를 각각 캐릭터에 맞춰서 다르게 맞춰준다거나.

일정도 빡빡한데 40주년 일러를 다양한 그림체로 혼자 소화해내서 그리는건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다. 놀라운 건 그림체 재현 자체는 점프 측에서 요구한 게 아니라 무라타 개인적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40주년 일러를 맡기는 걸 보면 점프가 작화가로써 무라타를 굉장히 신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2000호 기념까지 혼자 맡았으니 이건 뭐 작밀레라고 말할 수 밖에...무라타는 40주년 일러 그리고 나서 진짜로 혈변을 눴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mrt.png

40주년 기념 컬러 페이지가 공개되고 얼마 후 나온 소년점프 2000호 기념 포스터에서는 점프의 역대 주, 조연들이 모여있는 위에 있는 두 장의 컬러 포스터에 모든 채색 작업을 수행했다. 이 사람이 대규모 기념 포스터를 두번이나 홀로 맡게 되고, 성과를 톡톡히 뽑아낸 것만 봐도 점프 내에서의 신뢰와 입지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더 무서운 사실은 수작업으로만 채색한다는 것. 덧붙여 무라타 유스케는 '인체에 자신이 없어 집중선을 집중적으로 판다'라는 토플 만점이 수능 듣기 걱정하는 소리를 인터뷰에서 한 바 있다. 거기에 '일주일에 며칠 그리나요?'라는 질문에 '7일'이라고 대답했고, 흥이 나면 하루에 20시간 가까이 그린다고 한다. 그 수작업으로 그린 그림을 이어 붙이면 이렇게 애니로 만들어도 손색없는 그림들이 된다. 한국 팬들은 그의 작화력을 찬양하는 의미로 무라갓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6]아이실드 21》이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만화 캐릭터인 신 세이쥬로 급의 '노력하는 천재'인 셈.

아이실드21을 놓고 보자면 무라타 유스케의 작화는 작중 초기에도 이미 작화력이나 연출력에 상당한 실력을 보여줬다. 지금과 비교하면 조금더 극화적인 날카로운 느낌에 개성이 강했다면 작품이 진행되면서 소년만화스러움이 베어들면서 조금더 부드럽고 대중적인 작화가 되었다. 주간지에 장기연재를 하며 작가 초기의 개성이 희석되는 과정에서 '예전 그림이 좋았는데..'하는 팬들은 언제나 발생하지만 그런면을 제쳐놓고 보아도 작화력이 단연 크게 성장했다는 점에선 이견이 적은 편이며 만화적인 묘사와 현실적인 묘사의 경계를 가장 잘 잡는 작가중 한명이라고 평가된다.[7] 최근 동서양 만화의 느낌이 적절히 배합된 그림들이 늘어가는 추세에서도 잘 맞는 작가다.

그러나, 무라타 작화의 원펀맨 리메이크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아이실드 때보다 훨씬 팬들이 많아졌는데, 그 덕에 무라갓 이상의 작화력을 가진 만화가는 없다느니, 애니화되면 무라갓의 작화를 따라갈 수 없다든지[8] 하는 빠들의 과도한 찬양이 여기저기 속출하고 있는 추세다. 심하게는 극히 일부의 팬들 사이에서 이미 그림체가 확립되고 연출도 쟁쟁한 수준의 만화들[9]을 무라타가 리메이크하면 재평가 받을 것 같다는 말까지 종종 오가기도 한다. 허나, 아무리 무라타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도 모든 만화에는 원작자만의 감각이 있기 때문에 고퀄리티로 뽑아낸다고 해서 원작 특유의 개성을 압도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고, 무엇보다 무라타 본인이 만화계의 거장들을 대단히 존중하고 있는 겸손한 성격이라 그런 제안이 들어온다면 딱 잘라 거절할 가능성이 크다.그 전에 그런 제안이 들어온다면 원작자가 사는 방향으로 절을 올리지 않을까 어차피 모 만화에서도 언급되는 것처럼 이 바닥에 완전체란 없는 법이다.

일러스트의 구도가 상당히 입시미술 삘이 나는데, 그 때문에 미대지망생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다.

3.3. 스토리

고도로 발달된 그림 실력과는 반대로 스토리를 짜는 능력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한 번은 ONE과 함께 고양이를 주제로 한 단편 만화를 각자 그린 적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작화와 스토리의 퀄리티가 서로 반비례하는 놀라운 결과물이 나왔다.[10]

그래서 작품 활동을 할 때는 항상 스토리 작가와 협업해서 공동으로 작업을 한다. 실제로 풋내기 만화 연구소 R에서 본인이 스토리를 잘 못 짜는 것을 말하면서 다른 작가들에게 물어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비록 스토리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스토리를 구상해야 할 시간도 전부 그림 작업에 할애할 수 있다는 말이기에 오히려 그가 높은 작화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다른 스토리 작가와 현업한단 점에서 오바타 타케시, 양경일과 비슷하다.

4. 작품목록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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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020년 11월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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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2022년 5월 2022년 12월
한 유저가 김정기의 유튜브 영상 사진을 올리면서 애도를 표하자 해당 게시물을 리트윗 했다. # 해당 영상은 2021년 8월 1일 유튜브에 업로드된 영상으로 김정기가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위치해 있는 작업실을 소개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유저가 게시물에 업로드한 캡처본은 해당 영상의 10분 16초 부분으로 무라타 유스케가 김정기를 위해서 16권 단행본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준 것을 자랑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김정기의 사망 하루 전에 찍힌 사진들을 리트윗 하는 등 관련된 수많은 게시물들을 리트윗 하기도 했다.


[1] #[2] 작가의 말에 따르면 당시 본인이 편집장과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보다 1시간 늦게 왔다고 한다.[3] 지금도 지각하는 버릇을 못 고쳤는지 원펀맨 리메이크 원작자인 ONE과 처음으로 만난 날에도 30분 지각했다고 한다.[4] 무라타는 그림을 일주일 내내 그린다고 말한 바 있다. 게다가 내키면 21시간 그린다고 자부할 정도로 열심히 그린다.[5] 게다가 아이실드 21이 무라타의 첫 장편연재작이다.[6] 모든 만화에서 이런 연출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만화에는 컷을 활용한 절묘한 연출법이 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처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작화만이 능사는 아닌 것. 전투나 스포츠 쪽에서 적절하게 사용할 수도 있는 연출법인 것이지 한다고 무조건 좋은 연출은 아니다. 작가가 웹에서 연재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표현기법에 도전했다라고 생각하면 된다.[7] 사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인 아라키 히로히코등 그림체가 독창적으로 발전되면서 예전 그림체가 그리워지는등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8] 사실 전작인 아이실드 21이 애니화되면서 정말 쓰레기 같은 작화로 개칠되었다는 점 때문에 오랜 팬들이 무라타 작품의 애니화에 다소 날카롭게 반응하는 감이 있다. 다행히 원펀맨애니의 경우 1기의 퀄리티는 모두가 인정할정도로 좋았고 2기도 준수한 편이다.[9] 예를 들자면 나루토, 드래곤볼[10] ONE은 착실한 기승전결과 마지막 반전으로 웃음을 준 반면, 무라타는 지나치게 오버스러운 연출에만 집중한 나머지 이야기의 전개가 산만한 내용이 되었다.[데뷔작] [12] ONE, 니시무라 키누와의 합작[13] 파일:유스케록맨썰풀이.jpg 축전 만화에 따르면 당시 학원에서 공부하는 대신 짬짬이 그렸다고 한다.[14] 위 사진에서 오른쪽. 무라타 유스케가 공모전에 출품할 당시의 이름은 '렌즈맨'으로, 빛을 모아 공격한다는 설정이었다. 왼쪽은 다른 사람이 출품한 차지맨의 디자인.[15] 록맨 시리즈의 보스 디자인 공모전 당선작들을 살펴보면, 결국 어린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들이 상당히 많아 실제로는 상당한 수정이 가해지고, 원본과 실제 게임에 들어간 결과물이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다.예시. 록맨 3 응모작들이다.당선작 중 제미니맨 혼자만 금손이 그렸다 그런 반면 무라타의 출품작은 위의 더스트맨을 봐도 알 수 있듯 원본 디자인이 거의 그대로 쓰였다. 그림의 완성도와 그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부분.[16] 록맨 3 당시에도 보스 디자인 공모전에 '더블맨'이라는 이름의 보스 디자인을 응모했으나, 이때는 최종적으론 채택되지 못했다.#[17] 2006년 8월 28일생[18] 2009년생[19] 무라타가 정식으로 데뷔를 한 시기는 2002년이다. 거진 7년 동안 무명 생활을 이어온 것이니, 도중에 일을 안 그만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정신력을 지닌 셈이다. 본인도 아무도 안 봐주는 만화는 혼잣말을 떠드는 거랑 다를 바 없다고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