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타 유스케 村田雄介 | |
출생 | 1978년 7월 4일 ([age(1978-07-04)]세) |
구마모토현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3cm[1] |
가족 | 형 무라타 켄스케(村田謙介)(1977년 1월 11일생) 누나, 여동생 아내 아들 무라타 케이스케(村田圭介)(2006년 8월 28일생) 딸(2009년생) |
직업 | 만화가 |
데뷔 | 1995년 소년 점프 증간호 '파트너' |
링크 | 개인 유스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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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어 위키백과의 무라타 유스케 문서어차피 죽는다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고 싶다.
― 원펀맨 인터뷰 中
일본의 만화가. 주로 소년 점프에서 활동하고 있다.― 원펀맨 인터뷰 中
2. 생애
16살 때 소년 점프에 파트너라는 단편으로 입선하면서 만화계에 발을 들였다.[2][3] 그리고 2002년 아이실드 21로 정식 데뷔했다. 《아이실드 21》의 작화를 맡았으며, 점프 만화 전체에 걸친 애정과 그림에 대한 장인 정신으로 이름 높은 만화가이다. 오다 에이이치로, 우스타 쿄스케 등 선배 만화가들도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찬할 정도.3. 특징
3.1. 그림
그림 실력 자체도 굉장히 뛰어나지만 만화에 들이는 공도 장난이 아니다.[4] 잡지 연재 시 컬러인 부분은 대부분 단행본에선 흑백으로 나오는데, 그냥 흑백 버전으로 고쳐 그린 게 아니라 흑백에 가장 효과적인 구도로 다시 그리기도 했다. 토가시 요시히로처럼 단행본 수정이 많은 편인데, 불성실한 연재 태도 때문에 욕을 먹는 토가시와 달리 이쪽은 《아이실드 21》을 7년간 연재하면서(전 333화) 단 한 번의 휴재도 없었다.[5] 특히 드래곤볼 이후 세대의 만화가로서, 일본 만화계의 덕목인 주간 연재의 성실함을 겸비했으며 자타공인으로 높게 인정하는 멘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이런 그림에 대한 애정은 단행본 수록시 작화 수정도 아니고 구도 수정이라는 괴수급 능력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실드 21》에서는 자세히 보면 주인공이 속한 데빌 배츠가 상대하는 팀들의 특징에 따라, 각 화의 연출을 미세하게 바꾸기까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쿄신 포세이돈 전에서는 '장신' '파도'와 같은 키워드에 맞추어 컷을 길게 연출하고, 미국전에서는 미국 만화풍의 연출을 가미했다.
3.2. 작업 특징
자신만의 색깔을 나타내기보다는 정석적으로 그리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림체가 개성이 없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어떤 그림체라도 위화감 없이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런 평가는 극소수이다. 애초에 무라타처럼 정석적인 그림체로 높은 퀄리티를 뽑아내는 작가가 그리 많지 않아서, 사실상 그림 실력 그 자체가 무라타의 개성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각종 행사나 축하 일러스트 외주에서 자주 불려나가는 것도 이런 장점 덕분이고, 밑의 40주년 일러스트의 일화를 보면 개성적으로 그릴 줄 모른다기보다는 굳이 개성적인 그림체에 연연하지 않는 성향에 가깝다.인체는 얼굴이나 손을 가늘고 날카로운 선으로 처리한다. 그 때문인지 얼굴이 가벼워보여서 가끔씩 얼굴보다 옷이나 배경을 더 열심히 파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허리는 기다랗게 그리는 편이라 로우 앵글 구도를 보면 확연히 티가 나지만, 그만큼 다리를 길게 늘려놔서 신체 밸런스는 잘 잡혀있다. 현실적인 묘사를 추구하는 건지, 머리카락 사이에 눈썹이 보이는 연출을 사용하지 않으며, 속옷 디자인이나 옷 주름, 명암까지 꼼꼼하게 그린다. 의도적으로 원근법을 과장시키는 데도 능하다.
펜선 명암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해칭을 굉장히 애용하는데, 명암 표현이나 움직임 표현에 손수 해칭을 굉장히 자주 쓰며, 그 실력도 뛰어나다. 심지어 검은 배경에 화이트로 흰색 해칭을 넣기도 한다. 덕분에 그림의 밀도가 높은 편이다.
절대 한 가지 기법만을 고집하지 않아서, 스크린톤이든 CG든 그림의 특징을 나타낼 수 있는 요소라면 가감 없이 작업에 투입한다. 다만 컬러 작업 시 채색은 수작업을 고수하는 편이나, 최근에는 디지털 채색에도 관심이 생겼는지 연습작을 트위터에 자주 올리고 있다.
컬러작품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인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점프의 역대 주인공들이 모여있는 두 장의 컬러 포스터(점프 40주년 포스터)는 각 작가들이 그린 게 아니라 무라타 유스케가 전부 그린 것이다. 사진 속에 나와있는 각 캐릭터들을 잘 보면 작가마다 구사하는 그림체를 적극 반영해서 무라타 스타일로 리파인한 흔적이 보이는데, 심지어 채색 기법까지 캐릭터별로 미묘하게 다르다. 이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그림에 들이는 정성이 큰 지 바로 알 수 있다. 소년점프 40주년 기념 포스터에서 하얗게 띄운 《드래곤볼》의 프리저와 《원피스》의 루피를 각각 캐릭터에 맞춰서 다르게 맞춰준다거나.
일정도 빡빡한데 40주년 일러를 다양한 그림체로 혼자 소화해내서 그리는건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다. 놀라운 건 그림체 재현 자체는 점프 측에서 요구한 게 아니라 무라타 개인적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40주년 일러를 맡기는 걸 보면 점프가 작화가로써 무라타를 굉장히 신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2000호 기념까지 혼자 맡았으니 이건 뭐 작밀레라고 말할 수 밖에...무라타는 40주년 일러 그리고 나서 진짜로 혈변을 눴다고 한다.
40주년 기념 컬러 페이지가 공개되고 얼마 후 나온 소년점프 2000호 기념 포스터에서는 점프의 역대 주, 조연들이 모여있는 위에 있는 두 장의 컬러 포스터에 모든 채색 작업을 수행했다. 이 사람이 대규모 기념 포스터를 두번이나 홀로 맡게 되고, 성과를 톡톡히 뽑아낸 것만 봐도 점프 내에서의 신뢰와 입지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더 무서운 사실은 수작업으로만 채색한다는 것. 덧붙여 무라타 유스케는 '인체에 자신이 없어 집중선을 집중적으로 판다'라는 토플 만점이 수능 듣기 걱정하는 소리를 인터뷰에서 한 바 있다. 거기에 '일주일에 며칠 그리나요?'라는 질문에 '7일'이라고 대답했고, 흥이 나면 하루에 20시간 가까이 그린다고 한다. 그 수작업으로 그린 그림을 이어 붙이면 이렇게 애니로 만들어도 손색없는 그림들이 된다. 한국 팬들은 그의 작화력을 찬양하는 의미로 무라갓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6]《아이실드 21》이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만화 캐릭터인 신 세이쥬로 급의 '노력하는 천재'인 셈.
아이실드21을 놓고 보자면 무라타 유스케의 작화는 작중 초기에도 이미 작화력이나 연출력에 상당한 실력을 보여줬다. 지금과 비교하면 조금더 극화적인 날카로운 느낌에 개성이 강했다면 작품이 진행되면서 소년만화스러움이 베어들면서 조금더 부드럽고 대중적인 작화가 되었다. 주간지에 장기연재를 하며 작가 초기의 개성이 희석되는 과정에서 '예전 그림이 좋았는데..'하는 팬들은 언제나 발생하지만 그런면을 제쳐놓고 보아도 작화력이 단연 크게 성장했다는 점에선 이견이 적은 편이며 만화적인 묘사와 현실적인 묘사의 경계를 가장 잘 잡는 작가중 한명이라고 평가된다.[7] 최근 동서양 만화의 느낌이 적절히 배합된 그림들이 늘어가는 추세에서도 잘 맞는 작가다.
그러나, 무라타 작화의 원펀맨 리메이크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아이실드 때보다 훨씬 팬들이 많아졌는데, 그 덕에 무라갓 이상의 작화력을 가진 만화가는 없다느니, 애니화되면 무라갓의 작화를 따라갈 수 없다든지[8] 하는 빠들의 과도한 찬양이 여기저기 속출하고 있는 추세다. 심하게는 극히 일부의 팬들 사이에서 이미 그림체가 확립되고 연출도 쟁쟁한 수준의 만화들[9]을 무라타가 리메이크하면 재평가 받을 것 같다는 말까지 종종 오가기도 한다. 허나, 아무리 무라타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도 모든 만화에는 원작자만의 감각이 있기 때문에 고퀄리티로 뽑아낸다고 해서 원작 특유의 개성을 압도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고, 무엇보다 무라타 본인이 만화계의 거장들을 대단히 존중하고 있는 겸손한 성격이라 그런 제안이 들어온다면
일러스트의 구도가 상당히 입시미술 삘이 나는데, 그 때문에 미대지망생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다.
3.3. 스토리
고도로 발달된 그림 실력과는 반대로 스토리를 짜는 능력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혼자서 작품을 만들기보단, 스토리 작가와 협업해서 함께 공동으로 작업을 한다. 실제로 풋내기 만화 연구소 R에서 본인이 스토리를 잘 못 짜는 것을 말하면서 다른 작가들에게 물어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비록 스토리의 평가는 좋게 말하기 힘들지만, 반대로 말해보면 스토리를 구상할 시간도 전부 그림에 할애할 수 있다는 의미기에 오히려 그가 그림에 좀 더 공을 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뛰어난 작화에 비해 스토리의 평가가 좋지 않아 다른 작가와 함께 한다는 점에서 오바타 타케시, 양경일과 비슷하다.
4. 작품목록
- 아이실드21(그림)
- 흐린 하늘 프리즘 솔라카(그림)
- 원펀맨 리메이크(그림)
- 풋내기 만화 연구소 R(글/그림)
- 만화가 야식연구소(글/그림)
- 록맨 4 (게임)(더스트맨 디자인)
- 록맨 5 (게임)(크리스털맨 디자인)
- 버디 미션 BOND (게임)(일러스트)
- 파트너[데뷔작](1995)
- 추운 이야기(1998)
- 괴도 COLT(2002)
- JUMP SUPER STARS 이상한 나라의 세나!?(2005)
- 창문 닦이 파루쿠(2008)
- BLUST!(2009)
- 마인즈(2010)
- 탄환천사 팬클럽(그림)(2012)
- 노도의 용자들(그림)(2012)
- 바퀴벌레 버스터(그림)(2015)
- 지구의 괴수[11]
5. 여담
- 트위터와 라이브 방송, 인터뷰등에서 밝힌 이야기로 색약이 있다. 적녹색약이라고. 예전에 색약 안경을 한번 써봤는데 소용이 없어서 그냥 맨눈으로 그린다고 한다. 수작업을 할때는 물감과 마카 이름을 일일이 외워서 채색하고, 디지털 작업을 할때는 아예 RGB CMYK 코드를 다 외워서 한다고 한다. 실제로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일러스트에 채색을 할때 색깔 구분이 안 가서 시청자에게 색을 보여주며 이색이 맞냐고 확인 받기도 했다. 평소 깔끔한 채색으로 호평받는 걸 생각하면 대단한점.
- 애니메이터 나카무라 유타카의 팬으로 유명하다.
- ONE의 작품을 좋아한다. 원펀맨부터 무라타 쪽에서 직접 연락한 것이고 모브사이코 100도 챙겨 보고 있다. 그린 팬픽들. 모브사이코 100 2기 블루레이 2권을 무려 6권을 사기도.
- 2010년 10월부터 흐린 하늘 프리즘 솔라카라는 만화를 연재했지만 혹평을 받고 조기 완결이 났다. 어느 정도냐면 읽어본 사람들 대부분이 그림 실력에 몰빵한 대신에 스토리 실력을 뺏어갔다, 그래도 신은 공평하구나할 정도.(...) 그 후 2012년 6월 14일부터 웹툰으로 《원펀맨》을 리메이크 연재하게 되었다.
- 어렸을 때 부모님이 집에서 만화를 못 읽게 해서, 만화가로서 딱히 영향을 받았던 작품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좋아했던 만화는 《드래곤볼》이 거의 유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만화가의 길을 정진하고 부터 다른 작품의 역동적인 연출과 포즈, 인체묘사 같은것도 참조하고 있고, 좋아하는 만화가의 모작은 지나치게 하면 안 좋지만 어느정도의 모작은 만화 초보자들의 실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고 의욕을 불어넣기 때문에 좋다고 말한다. 다만 실제 사진 모사도 어느정도 병행해야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풋내기 만화 연구소 R에서 보여줬다.
무라타 유스케가 공모전에 제출한 더스트맨의 컨셉 아트.
- 록맨 4의 보스 디자인 공모전에서 뽑혀 더스트맨의 디자인이 그의 디자인으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덤으로 록맨 4 당시 디자인 당선자에게 지급해 세상에 단 8개 밖에 없다는 궁극의 레어품, 록맨 4 특별 카트리지인 골든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무라타 유스케는 1978년 생으로 1991년 발매작인 록맨 4가 나올 시점에선 겨우 13세에 불과했었다. [12]
- 그뿐만 아니라 록맨 5의 보스 디자인 공모전에서 크리스털맨의 디자인[13]도 역시 채택되었는데, 록맨 보스 디자인 공모전에서 두 차례나 뽑힌 응모자는 무라타 유스케가 유일하다.[14] 그의 같은 반 친구 역시 스타맨을 디자인하게 되어 세 명의 보스가 무라타 유스케와 친구의 손에서 탄생하게 된 셈. 거기다 록맨 4 보다 1년 빠른 록맨 3 시절에도 스태프롤에는 이름을 올렸기 때문에[15] 이미 만 12세때 부터 디자인을 응모해서 게임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공모전 당선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또 본인이 나중에 스스로 유명인이 된 경우.
- 트위터를 통해 김정기를 극찬하며, 존경을 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본인 말로는 "이런 사람이 천재구나!"라는 걸 느꼈다는데, 덕분에 일본에서 김정기의 화집 주문이 상당히 늘었다고 한다. 또한 만남 이후에도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으며. 최근에 김정기가 본인의 그림책과 제자들 그림책을 무라타 유스케한테 보내줬고 무라타 유스케는 고맙다며 트윗에 인증샷을 올렸다.
- 다만 스토리 쪽에는 그림만큼의 능력은 발휘하지 못하는지 현재까지는 원작이 있는 작품만을 맡아 그리고 있다. 이덕에 그 원작들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점프 편집부가 무라타에게 수준 낮은 원작만 붙여준다고 불평하는 무라타 팬들도 존재한다.
근데 사실 단편을 제외하면 무라타의 연재작은 아이실드21과 원펀맨, 풋내기 만화 연구소 R, 담천 프리즘 솔라 카 정도다. 앞의 두개는 충분한 히트작이고 풋내기 만화 연구소 R은 하술 하겠지만 만화 입문서라서 무라타가 담당한 단기 종결작은 단행본 2권으로 종결된 담천 프리즘 솔라 카가 전부다. 게다가 원펀맨도 원작자 ONE이 인터뷰에서 밝히길 웹코믹 사이트에 올라온 원펀맨을 알게 된 무라타가 직접 트위터로 ONE과 접촉해 리메이크하게 된 것이다.#
당시 무라타는 소년 점프와 다른 작품을 계약할 예정이었고, ONE도 직장 동료 등 주변인들이 계속 만류하며 본인이 만화가를 계속 해야 할지 고민하던 상황이었기에 두 작가의 만남은 꽤 극적이었다. 원펀맨이 세간의 화제작으로 떠오르고 성공적인 애니화도 이루어낸 만큼 무라타도 원작 고르는 안목이 없는 건 아니라는 뜻. 게다가 아이실드 21과 원펀맨이 작화 뿐만 아니라 스토리에서도 호평이 많다는 점을 보면 똥원작만 붙인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
- 2014년 1월 2일에 트윗에 그림이 하나 올라왔는데..."카이주는 어딨지?!(かいじゅうはどこだ?!)"
당시 7살된 아들[16]이 그린 퍼시픽 림의 거대 로봇 그림이다. 살짝 삐뚤거리긴 하지만 7살짜리의 그림이라곤 믿기 힘든 디테일이다. 최근에는 아버지가 그린 만화인 원펀맨의 장면을 모작해서 트위터에 올리고 있다.아들의 트위터
- 2020년 3월에 올라온 그림인데, 10살 된 딸[17]이 지박소년 하나코 군의 팬아트를 그린 모습. 핏줄이란 속일 수 없는 것인가. 위의 7살이었던 아들은 지금 중학교 2학년이 되어, 몬스터 디자인에 빠져있다고 한다. 이후 가끔씩 딸과 아들의 그림을 업로드한다. 둘 다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아서 그런지 어린 나이에도 실력이 상당하다는 평가가 많다.무라타 딸, 아들 그림 특히 아들의 그림체는 아버지 무라타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많이 보인다.
2020년 3월 | 2020년 11월 | 2021년 5월 |
2021년 8월 | 2022년 5월 | 2022년 12월 |
- 유스트림에서 그림 방송도 가끔씩 한다. #
- 원펀맨을 1인 연재 하다가 격주가 점차 월간처럼 되어가고 퀄리티도 버티기 버겨웠는지 어시 공고를 냈다. 월 450에 근무시간 12시간. 특이사항은 애니메이션 배경 기술 경험자 우대 그리고 '같이 최강을 그리자'는 인상적인 멘트로 마무리되었다.
- 이 만화가 대단하다! 의 공식 트위터에서 2018년 2월 1일 무라타 유스케가 BTTF라는 새 만화를 연재한다고 글을 올렸는데, 트위터에 등재된 그림을 보면 영락없는 'back to the future'의 약자인 듯 하다. 다만 저작권, 판권과 관련된 원인 불명의 문제로 취소되어 본격 연재로 이어지진 못했다.
- 아이실드 21 온리전이 열렸을 당시, 일반인 신분으로 부스를 내려다가 스태프에게 분위기 파악 좀 하라는 말을 받고 쫓겨난 적이 있다고 한다.
- 트위터를 굉장히 자주 한다. 원펀맨 2차 창작은 전부다 마음과 리트윗을 누르는 바람에 당황한 팬들이 도망가버린 사례도 있을 정도.
- 지금이야 뛰어난 실력으로 칭송받고 있는 거장이지만, 그도 역시나 신인 시절에는 마냥 탄탄대로를 걷기만 하진 않았다.『만화가 야식 연구소』의 내용에 따르면, 데뷔한 지 벌써 3년차인데도 여전히 무명이라 우울증에 걸린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극복으로 자신이 이만큼 노력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본인이 그린 그림들을 벽에다 전부 붙여놨었다고 한다.[18] 덕분에 원룸 주인이 창문 너머로 그림들이 빼곡히 걸린 것을 보고 정신병자로 오해해서 굉장히 무서워했다고.(...) 또한 돈이 없어 식빵 꽁다리를 자주 사먹기도 했다고 한다.
- 2022년 10월 3일, 심근경색으로 인해 김정기가 급사하게 되고 부고 소식이 10월 5일 김정기의 미국 트위터 계정으로 올라오자 너무 갑작스럽고 큰 상실감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애도를 표했다. #
한 유저가 김정기의 유튜브 영상 사진을 올리면서 애도를 표하자 해당 게시물을 리트윗 했다. # 해당 영상은 2021년 8월 1일 유튜브에 업로드된 영상으로 김정기가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위치해 있는 작업실을 소개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유저가 게시물에 업로드한 캡처본은 해당 영상의 10분 16초 부분으로 무라타 유스케가 김정기를 위해서 16권 단행본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준 것을 자랑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김정기의 사망 하루 전에 찍힌 사진들을 리트윗 하는 등 관련된 수많은 게시물들을 리트윗 하기도 했다.
- 학력은 고졸이라고 한다.
- 2024년 1월 1일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
- 2024년 아들이 일본 고등학생 보디빌딩 챔피언쉽에서 2등을 했다. 하필 머리도 삭발하고 참가해서 팬들은 원펀맨 작가 아들이 원펀맨이 됐다는 반응. # 경연 BGM도 원펀맨으로 했다고 한다. #
[1] #[2] 작가의 말에 따르면 당시 본인이 편집장과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보다 1시간 늦게 왔다고 한다.[3] 지금도 지각하는 버릇을 못 고쳤는지 원펀맨 리메이크 원작자인 ONE과 처음으로 만난 날에도 30분 지각했다고 한다.[4] 무라타는 그림을 일주일 내내 그린다고 말한 바 있다. 게다가 내키면 21시간 그린다고 자부할 정도로 열심히 그린다.[5] 게다가 아이실드 21이 무라타의 첫 장편연재작이다.[6] 모든 만화에서 이런 연출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만화에는 컷을 활용한 절묘한 연출법이 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처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작화만이 능사는 아닌 것. 전투나 스포츠 쪽에서 적절하게 사용할 수도 있는 연출법인 것이지 한다고 무조건 좋은 연출은 아니다. 작가가 웹에서 연재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표현기법에 도전했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도 당시에 애니메이션식 그리기만 하느라 스토리 전개가 너무 나가지 않는다는 논조의 비판 또한 쇄도했다.[7] 사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인 아라키 히로히코등 그림체가 독창적으로 발전되면서 예전 그림체가 그리워지는등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8] 사실 전작인 아이실드 21이 애니화되면서 정말 쓰레기 같은 작화로 개칠되었다는 점 때문에 오랜 팬들이 무라타 작품의 애니화에 다소 날카롭게 반응하는 감이 있다. 다행히 원펀맨애니의 경우 1기의 퀄리티는 모두가 인정할정도로 좋았고 2기도 준수한 편이다.[9] 예를 들자면 나루토, 드래곤볼[데뷔작] [11] ONE, 니시무라 키누와의 합작[12] 축전 만화에 따르면 당시 학원에서 공부하는 대신 짬짬이 그렸다고 한다.[13] 위 사진에서 오른쪽. 무라타 유스케가 공모전에 출품할 당시의 이름은 '렌즈맨'으로, 빛을 모아 공격한다는 설정이었다. 왼쪽은 다른 사람이 출품한 차지맨의 디자인.[14] 록맨 시리즈의 보스 디자인 공모전 당선작들을 살펴보면, 결국 어린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들이 상당히 많아 실제로는 상당한 수정이 가해지고, 원본과 실제 게임에 들어간 결과물이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다.예시. 록맨 3 응모작들이다.당선작 중 제미니맨 혼자만 금손이 그렸다 그런 반면 무라타의 출품작은 위의 더스트맨을 봐도 알 수 있듯 원본 디자인이 거의 그대로 쓰였다. 그림의 완성도와 그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부분.[15] 록맨 3 당시에도 보스 디자인 공모전에 '더블맨'이라는 이름의 보스 디자인을 응모했으나, 이때는 최종적으론 채택되지 못했다.#[16] 2006년 8월 28일생[17] 2009년생[18] 무라타가 정식으로 데뷔를 한 시기는 2002년이다. 거진 7년 동안 무명 생활을 이어온 것이니, 도중에 일을 안 그만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정신력을 지닌 셈이다. 본인도 아무도 안 봐주는 만화는 혼잣말을 떠드는 거랑 다를 바 없다고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