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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2 01:22:58

박근현

파일:춥고 배고픈 할아버지.jpg
혼령
박근현
배우: 전진기
영화 파묘의 빌런 중 한 명.

박지용의 할아버지이자 박종순의 아버지로, 작중에서 약 100년 전에 이미 사망한 상태다. 그러나 묫바람을 일으키며 후손들을 괴롭혔고, 결국 혼령의 상태로 풀려나 아들 박종순과 며느리 배정자를 죽인 뒤 손자 박지용도 빙의해서 죽이고 갓 태어난 어린 증손자마저 죽이려다 주인공 일행의 저지로 실패한다.[1]

손자인 박지용이 가문의 이력에 대해 말을 아낀 것[2]과 관을 열지 않은 채 화장해 달라고 주문한 것은 그가 사실 일제 시절 후작 작위까지 받은 매국노였기 때문이다.[3] 박씨 가문이 부를 누리는 것은 박근현이 나라를 팔아먹은 돈을 기반으로 했던 것. 작중 언급에 따르면 중추원 부의장[4]을 지냈고 일제로부터 작위와 훈장까지 받았으며, 무엇보다 빙의 후 하는 말까지 종합해보면 단지 출세를 위해 일제에 붙은 기회주의적 관점의 매국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자기 정체성을 일본인이자 천황의 충실한 황국신민으로 간주하는 신념형 친일반민족행위자였다.[5]

생전에는 그야말로 부귀영화를 다 누려왔으나 문제는 사후였다. 집안에서는 그의 묫자리를 찾다가 고명한 일본 음양사인 기순애(무라야마 준지)[6]에게 명당 자리를 추천받고 그를 매장했다. 하지만 사실 기순애는 명당 자리를 소개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고 자신의 계획에 박근현을 이용할 작정이었다. 그들 일당은 한국의 정기를 끊을 것을 목적으로 한반도의 영맥에 쇠말뚝을 꽂는 주술적 의식을 치르고 있었지만, 독립운동 단체인 철혈단에게 쇠말뚝을 도로 뽑히는 방해를 받으며 골머리를 썩던 상황이었는데, 이에 철혈단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은닉하기 위해 당시 친일파 고관대작이었던 박근현 일가에게 쇠말뚝 역할을 하는 다이묘 오니가 묻힌 장소를 명당 자리라며 일부러 소개했고, 박근현의 관은 졸지에 그 위에 첩장되었다.[7] 결국 박근현은 무시무시한 오니 곁에서 100년 동안 벌받으면서[8] 뒤틀린 악령으로 변모하였고, 그것이 묫바람 사단을 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작중 이화림은 '혼이 100년 동안 고통을 받아 증오밖에 남지 않았다'고 언급했고 굿도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9]

"춥고 배고프다"라는 언급으로 보아 박근현의 혼은 오랜 시간 제사조차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묘지가 생전 재력과는 정반대로 그 흔한 묘석조차 없이 매우 초라하게 차려져 있는데, 후손들이 제사는커녕 성묘 방문도 않은 채 방치한 사유는 따로 설명되지 않는다.[10] 심지어 대사에 따르면 집안의 선산이 따로 있는데, 이를 보면 외진 곳에 혼자 묻힌 친일파 조상인 박근현을 집안에서 사실상 흑역사 취급하며 외면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상의 매국으로 쌓은 재산으로 증손주대까지 호의호식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이러니. 결국 후손들에 대한 원한이 쌓이고 쌓여 폭발해, 악령이 되어 제 손으로 가문의 대를 끊으려 드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아들도 딸도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진 않았으며 특히 박종순은 자발적으로 "아버지 들어오세요"라며 창문을 열고 반기기까지 했던 걸 보면 생전 자식들과의 관계는 원만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자신이 10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고통받고 있을 때 자신의 친일 행위로 쌓은 부를 누리며 잘 살고 있던 후손들이 정작 자신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외진 곳에 박아놓고 외면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배신감으로 원령으로 변한 듯하다. 관에서 해방 후 가장 먼저 죽인 게 박종순인데, "작고 총명했던 우리 막내"라고 직접 언급했듯 생전에는 가장 귀여워했던 막내아들이었다.[11]
후손들을 머나먼 미국까지 찾아가서 하나하나 죽여버리는 집념에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졌음에도 주인공 일행에게는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물론 화림에게 어느 정도 피해를 입히긴 했지만 의도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그렇게 심각한 것도 아니었으며, 박지용에게 빙의됐을 때도 옆에 있던 김상덕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또한 일본어로 "여우허리를 끊었다"라며 무라야마 준지의 쇠말뚝 주술에 대한 존재를 넌지시 알려줬던 데다 상덕이 못 알아듣자 굳이 한국어로 한 번 더 말해주면서 아예 답답하다는 듯이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고."라고 반복 강조해주기까지 한다. 이러한 면모는 작중에서 언급되듯이 한국 귀신은 직접적인 원한관계가 아니면 간섭하지 않는다는 점과 후술할 일본 귀신과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묘사다.

한편으로는 상당히 지능적인 편인데 자기 손자인 박지용을 속이려고 김상덕인 척하고 전화를 해서 창문을 열라는 지시를 내려 빙의하였다. 이때 호텔방 문 밖에서 진짜 김상덕이 문을 열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박지용은 혼란에 빠져 창문을 열었다. 악귀가 되었음에도 치밀하고 전략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 오는 날에 관째로 화장되어 영혼조차 극락왕생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라 팔아먹은 매국에 상응하는 벌을 받음으로써 불교의 교리대로 그가 쌓은 업보가 돌아온 것이다.[12]

모티브는 한때 개화파의 거두로 활동하다가 친일파로 변절하여 중추원 부의장을 지냈던 박영효로 추정된다. 실제로 박영효가 죽고 나서 자식들이 묫자리를 추천받아 묘를 썼는데 이후 자손들이 사업 실패 등으로 우환을 겪자 파묘하고 화장 후 이장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성하는 기색 하나 없이 스스로를 일본인이라 여기며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는 모습은 중추원 부의장을 지낸 또다른 박씨인 박중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배우의 전작이자 또다른 천만 영화인 서울의 봄에서 역시 악역인 하나회의 현치성 중장[13]을 담당했는데 2023년 하반기-2024년 상반기 연속으로 천만을 달성하였으나 어째 나라를 혼돈으로 몰아넣은 천인공노할 악역들만 담당하게 됐다.

배우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상세한 외형과 분장과정이 공개되었다. # 24년 5월 기준 해당 배우를 팔로우하고 승인을 받아야만 열람할 수 있으며, 관련 기사나 배우의 블로그에선 별다른 조치 없이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1] 본래 더 직접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있었는데 편집됐다고 한다. 감독이 전반부가 담백해야 후반부에서 더 강렬할 것이라 생각해서 그리했다고.[2] 다만 후술하듯 '으리으리한' 직위를 거쳐간 데다 후작 작위까지 받은 매국노였다면, 설정상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친일인명사전에는 이미 이름이 올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3] 일제강점기 동안 공작 작위를 받은 조선귀족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후작이 가장 높은 작위였다. 그런데 그 후작 작위를 받은 인물 중에도 조선왕실 출신을 제외하면 그 유명한 이완용만이 유일했으므로 박근현이 얼마나 악질적인 친일파였는지를 알 수 있다.[4] 중추원 참의 정도만 돼도 상당한 거물급인데 참의보다 서열이 높은 부의장까지 지낸 것으로 보아 엄청난 권력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추원 부의장을 지낸 실제 인물들 중에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은 박영효박중양 두 명이 있다.[5] 사실 민족의식이나 애국심 따위 없이 단순히 이해득실 계산만으로 일제에 붙어서 출세의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라면 광복 후 친일파 상당수가 그랬던 것처럼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꾸는 것이 정상이겠으나, 이 작자는 일제강점기가 끝나기 전에 사망했기에 일제가 패망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손자 박지용의 몸에 빙의하자마자 대일본 제국을 찬양하면서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전쟁도 일제의 패망으로 끝났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모습을 보여준다.[6] 여우는 일본어로 '키츠네'라고 읽는다. 일본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법명 자체가 복선이다.[7] 사실 명당이라는 무라야마의 말이 당시 시점 기준에서는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쇠말뚝을 박은 장소들이 원래 조선의 영기의 척추에 해당하는 곳이니 원래는 명당이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라야마의 주술적 의식으로 쇠말뚝 역할을 하는 오니를 묻었기 때문에 영기가 뒤틀려서 영지가 악지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박근현 일가도 무라야마의 말만 믿지는 않았을 것이고 여기저기 알아본 뒤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묫자리를 정했을 것이다. 풍수를 김상덕의 어깨 너머로 배운 고영근도 지역을 대충 살피더니 꽤 괜찮은 명당 아니냐고 하기도 했다.[8] 손자에게 빙의했을 때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라고 웃으며 말하는 것으로 보아, 생전 기순애가 자신의 무덤에 행할 일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다만 죽은 이후에 혼령 상태에서 자신의 밑에 묻힌 오니와 마주치며, 자연스럽게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보는 게 더 적합하다. 솔직히 그 누가 악귀 같은 정령 혹은 도깨비와 사이좋게 한 무덤에 들어가고 싶겠는가. 심지어 그 오니는 음양사에게 실컷 농락당해서 증오로 가득찬 상태였다.[9] 작중에서는 일본 귀신에 엮이면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언급도 있다. 결과론이지만 죽어서 반 일본 귀신화 되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의 살아생전 행적을 생각하면 대단히 미묘해지는 부분이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무당 이화림 곁에 잠깐 지나갔는데도 이화림이 기절했으며 나중에 일어난 이후에도 코피를 흘릴 정도였다.[10] 다만 작중 일행이 산을 오를 때 등산로가 깔끔한 것을 보아 최소한의 정비는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지의 야산은 고작 몇 달만 방치해도 잡초와 나무가 자라나 앞도 안 보이고 오르기도 힘든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면에서 유추해보면 비무장지대와 가까운 장소라는 점에서 의외로 현실성이 있다. 전방 사단의 FEBA 지역이나 민통선 안쪽 GOP 구역에 저런 식으로 버려진 묘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무연고 묘들은 작전지 관리 차원에서 통행로 정도는 군에서 관리하며 과거에는 명절에 사단장이나 대대장이 합동 차례를 겸해서 기제사를 치러주기도 했다. 물론 이 부분은 영화적 허용이다.[11] 사실 자식들이야 좋든싫든 생전에 한 집에서 같이 지내던 사이였고 정황상 최소한 자식들에게는 좋은 아버지였을 가능성이 높으니 정이 남아있겠지만, 손자인 박지용이나 며느리는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사람인데다 무엇보다 생전에 나라를 팔아먹은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사람이니 아무리 조상이라도 좋게 생각하기도 힘들고 집안 조상이 매국노라는 게 알려져봐야 좋을 것도 없으니 박종순의 건강이 악화된 이후에는 사실상 방치한 듯하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친일파나 해방 이후 독재정권에 부역했던 사람들의 자손 중에도 자기 조상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적어도 이들의 행적을 흑역사로 여기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12] 물론 굳이 비가 내리지 않은 날에 화장되었더라도, 살아서는 나라를 팔아먹는 것에 앞장서서 수많은 사람들을 거대한 국가폭력 속에 빠트리고, 죽어서는 자신을 잊어버렸단 이유로 후손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던 악행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지옥행은 확정이었을 것이다.[13] 실제 인물은 차규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