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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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 이름 | 국적 | 격추 수 | 비고 | |
67위 | 하인츠 마르크바르트 | 독일 | 121대 | ||
하인츠-볼프강 슈나우퍼 | 독일 | 야간 격추 세계 1위 | |||
로베르트 바이스 | 독일 | ||||
70위 | 프리드리히 오블레저 | 독일 | 120대 | ||
프리드리히 바호비아크 | 독일 | ||||
72위 | 에리히 라이에 | 독일 | 118대 | ||
73위 | 프란츠-요제프 베렌브로크 | 독일 | 117대 | ||
한스-요아힘 비르크너 | 독일 | ||||
야코프 노르츠 | 독일 | ||||
발터 외자우 | 독일 | ||||
하인츠 베르니케 | 독일 | ||||
78위 | 아우구스트 람버트 | 독일 | 116대 | ||
79위 | 빌헬름 크리니우스 | 독일 | 114대 | ||
베르너 슈뢰어 | 독일 | ||||
81위 | 한스 다머스 | 독일 | 113대 | ||
베르톨트 코르츠 | 독일 | ||||
83위 | 쿠르트 뷜리겐 | 독일 | 112대 | ||
84위 | 헬무트 렌트 | 독일 | 110대 | 야간 격추 세계 2위 | |
쿠르트 우벤 | 독일 | ||||
프란츠 보이디히 | 독일 | ||||
▼ 87~113위 |
Walter "Gulle" Oesau 발터 "굴레" 외자우 | |
<colbgcolor=#156b94><colcolor=#ffffff> 출생 | 1913년 6월 28일 |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 파르넨빙켈 | |
사망 | 1944년 5월 11일 (향년 30세) |
벨기에 장크트피크 | |
매장지 | 독일 멜도르프 프리드호프 멜도르프 |
군사 경력 | |
복무 | 독일 국방군 루프트바페 |
1933년 ~ 1944년 | |
최종 계급 | 대령 |
참전 |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 대전 |
주요 서훈 | 스페인 십자장 금강석금검장 곡엽 기사십자 철십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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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발터 "굴레" 외자우"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루프트바페 소속 에이스 전투조종사였다. 아돌프 갈란트, 베르너 묄더스 등과 함께 스페인 내전부터 동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최고참으로 1934년부터 1944년 사망할 때까지 복무했으며 총 127대를 격추했다. 사후 JG 1이 부대 명칭을 외자우로 정하면서 그를 기렸다.2. 생애
2.1. 유년기
2.2. 전투 경력
2.2.1. 스페인 내전
2.2.2. 서부 전선
2.2.3. 바르바로사 작전
2.2.4. 독일 본토 항공전
2.3. 사망
건카메라에 목격된 발터 외자우의 마지막 모습 |
외자우는 헤르만 괴링이 폭격기를 격퇴하지 못했다고 꾸짖는 것을 자주 들어야만 했다. 괴링은 몸소 나아가 비행하지 않는 지휘관들에게 불만을 가졌으며, 원래대론 100대를 격추하고 나면 안전 때문에 비행이 금지되었으나, 괄괄한 성격의 외자우는 이런 불명예스러운 핀잔을 참지 못하고 계속 출격에 나섰다.
1944년 첫 5개월 동안 미국의 중폭격기들을 상대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고 있었을 즈음, 미 육군 항공대가 1944년 5월 11일 중폭격기 1천 대를 동원해 프랑스 동부와 벨기에 북동부의 철도 시설을 공격했다. P-38 라이트닝과 P-51 머스탱으로 이루어진 호위 전투기들은 폭격기보다 그 수가 더 많았다. 이때 외자우는 독감으로 인해 투병하고 있었는데, 괴링은 소식을 듣고는:
괴링: "지휘관은 비행하고 있나?"
간부: "아닙니다. 지휘관께서는 독감으로 인해 누워 계십니다."
괴링: "내 그럴 줄 알았네! 그자도 지쳐빠진 겁쟁이가 되어버렸군!"
간부: "아닙니다. 지휘관께서는 독감으로 인해 누워 계십니다."
괴링: "내 그럴 줄 알았네! 그자도 지쳐빠진 겁쟁이가 되어버렸군!"
이 담화를 들은 외자우는 격노했으며, 고열에도 불구하고 파더보른에서 메서슈미트 Bf 109 G-6/AS를 타고 출격했다. 도그파이트 중 편대원이 기체 손상을 보고하자 철수 명령을 내렸고, 이윽고 혼자 남겨진 외자우는 수많은 미군 전투기들을 조우했는데 하르트만 그라서 소령에 따르면 5대의 P-38이 외자우를 향했다고 한다.
이 불세출의 조종사는 홀로 제9공군 예하 제428 전투비행단 소속 제임스 레슬리 도일 중위, 윌버 L. 자비스 3세 중위, 제임스 C. 오스틴 중위에 홀로 맞섰다. 외자우는 3대의 P-38을 상대로 고도 8,534 m부터 나무에 닿을 듯한 높이까지 전투를 벌이며 무려 20분 동안 버텼으나 중과부적으로 피탄당했고, 불시착하려 감속하던 중 20 mm 기관포에 맞아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기체에서 몇 야드 떨어진 곳으로 튕겨져 나갔고 여러 발의 총상을 입었던 것이 발견되었다.
3. 사후
외자우는 향년 30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쳤다. 그는 430회 이상 출격했으며 127대를 격추했는데 27대는 스핏파이어, 4발 폭격기 14대, 동부 전선에서 44대, 스페인 내전에서 9대였다. 사후 대령으로 추서되었고 JG 1이 부대명을 외자우로 정함으로써 그를 기렸다. 루프트바페에서 이러한 명예를 받은 인물은 외자우와 JG 51의 베르너 묄더스밖에 없다.4. 서훈
스페인 1936-1939년 전역 훈장스페인 무공훈장
스페인 십자장 금강석금검장
독일 2급 철십자훈장
독일 1급 철십자훈장
독일 프런트플루그스판지
독일 1939년 전상장
독일 금십자훈장
독일 기사십자 철십자장
독일 백엽 기사십자 철십자장 (882명 중 9번째로 수훈)
독일 백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 (160명 중 3번째로 수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