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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8:40:04

아돌프 갈란트

파일:나치 독일 국장(화이트).svg 독일 국방군의 장성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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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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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56b94> ▲ 67~84위
순위 이름 국적 격추 수 비고
87위 라인하르트 자일러 독일 109대
88위 에밀 비치 독일 108대
한스 한 독일
베른하르트 베히텔 독일
91위 빅토르 바우어 독일 106대
베르너 루카스 독일
93위 귄터 뤼초 독일 105대
94위 아돌프 갈란트 독일 104대
에버하르트 폰 보렘스키 독일
하인츠 작센베르크 독일
97위 하르트만 그라서 독일 103대
98위 지크프리트 프라이타크 독일 102대
프리드리히 가이스하르트 독일
에곤 마이어 독일
막스-헬무트 오스터만 독일
요제프 부름헬러 독일
헤르베르트 롤바게 독일 4발 중폭격기 격추 1위
104위 베르너 묄더스 독일 101대 인류 최초 적기 100기 격추
스페인 내전에서 14기 격추
루돌프 미팅 독일
요셉 프릴러 독일 스핏파이어 격추대수 1위 (68대 격추)
울리히 베르니츠 독일
108위 파울-하인리히 데네 독일 99대
레오폴트 슈타인바츠 독일
볼프강 슈페테 독일
하인리히 바르텔스 독일
한스 슐레프 독일
113위 호르스트 하닝 독일 98대
구스타프 뢰델 독일
헬무트 뤼플러 독일
▼116~139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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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6><colcolor=#fff>
아돌프 갈란트
Adolf Galland
파일:Bundesarchiv_Bild_146-2006-0123,_Adolf_Galland.jpg
본명 아돌프 "돌포" 요제프 페르디난트 갈란트
Adolf "Dolpho" Joseph Ferdinand Galland
출생 1912년 3월 19일
프로이센 왕국 베스트팔렌 주 헤르텐
사망 1996년 2월 9일 (향년 83세)
독일 라인란트팔츠 주 레마겐
복무 나치 독일 공군아르헨티나 공군
최종 계급 중장 (Generalleutnant) [1]
주요 참전 네덜란드 헤이그 전투
크레타 섬 전투
오크 작전
마켓 가든 작전
주요 서훈 스페인 전역 참전 기념 다이아몬드 금십자 훈장
금강석 백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
격추 104기

1. 개요2. 생애3. 기타4. 주요 이력5. 진급 내역6. 주요 서훈 내역

프랑스 침공 당시 갈란트의 Bf 109E-4
파일:아돌프 갈란트 탑승기.jpg
그 유명한 담배 피우는 미키 마우스 그림이 보인다.
훗날 Bf 109F-2로 바꾼 이후에도 미키 마우스를 그려넣었다.
“Ich bitte um Ausrüstung meines Geschwaders mit Spitfires.”
“우리 비행단에 스핏파이어를 주십시오.”
“Only the spirit of attack, born in a brave heart, will bring success to any fighter, no matter how highly developed it may be.”
“얼마나 고도로 발달되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오직 용감한 마음에서 태어난 공격 정신만이 전투기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다.”

[clearfix]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때 활약한 독일 공군장군.

2. 생애

콧수염[2]을 기른데다 이름마저[3] 비슷하기 때문에 첫인상만 보면 아돌프 히틀러 같은 인간말종으로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반대되는 인물로 비범한 능력으로 히틀러의 신임을 받긴 했지만 결코 나치에 찬동한 사람은 아니었다.[4] 영국의 더글러스 베이더가 적십자기에 추락하는 전투기까지 악착같이 공격했던 호전광 악바리라면, 아돌프 갈란트는 "이건 말하자면 스포츠 같은 것이다, 이미 승부가 끝난 것인데 굳이 그래야 될 필요까지 있을까?"라는 식으로 전시에 상상하기 힘든 대인배스러운 풍모를 가진 개념찬 인간미를 겸비한 신사이다.[5] 또한 프로이센 군인의 유풍을 어느 쪽으로건 듬뿍 물려받은 인물로 사냥, 좋은 담배[6]와 술을 사랑하는 풍류남아이기도 했다.
파일:Bundesarchiv_Bild_183-B14085,_Werner_Mölders_und_Adolf_Galland.jpg
아돌프 갈란트와 베르너 묄더스[7]

공인격추 104기를 기록한 슈퍼 에이스[8], 스페인 내전에 독일 콘도르 군단의 일원으로 참전한 베테랑이다. 제2차 세계 대전 개전 당시에는 대위였다. 동료이자 오랜 친구인 베르너 묄더스와 더불어 신생 루프트바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1940년 프랑스 전역에서 최초의 격추를 기록한 후 영국 본토 항공전에 참가하여 58기 격추를 기록하면서 대활약했다.[9][10]
파일:Bundesarchiv_Bild_183-H28427,_Rechlin,_Rüstungstagung,_Galland,_Speer.jpg
1943년, 아돌프 갈란트와 알베르트 슈페어 장관, 레츨린(Rechlin) 비행장 군수회의에서[11], 왼쪽에 친위대 제복을 입은 사람은 오토 슈바프 무장친위대 중장이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대전 중기에는 중장으로 진급, 히틀러와 괴링의 미움을 받고 쫓겨난 에르하르트 밀히 원수를 대신해서 독일 전투기 부대의 총감을 맡아 마지막까지 독일 공군을 이끌었다.[12] 전후에는 추축국의 장성으로서 1947년까지 포로로 있다가 석방, 이 기간 동안 영국 공군의 자문역으로 일했으며 석방 후에는 아르헨티나 공군에 초빙되어 항공산업 육성 관련 자문역을 맡았다.

할 말은 기어이 하고야 마는 대쪽같은 성격으로 이미 현역 당시부터 상관과의 마찰을 빚었으며, 전후에도 "나는 독일을 위해 싸웠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해서 큰 논란거리가 됐다.[13]

독일 공군의 에이스로서는 이례적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는데[14], 그는 총감직을 맡아 일선에서 물러난 뒤로도 가끔 부하들과 함께 전투비행을 했으며, 항상 일선을 직접 돌아보면서 부하들의 고충을 진심으로 해결해주려 노력했다. 그 때문에 대전 말기의 독일 공군 장병들이 유일하게 신뢰를 보냈던 인물이며, 신사적이었지만 허세가 심하고 공명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상관인 헤르만 괴링과의 대립과 영국 공군의 "나무다리 에이스" 더글러스 베이더와의 우정이 유명하다.

아돌프 갈란트는 17기의 격추를 기록했을 때 기사 철십자 훈장을 받게 되었는데, 알베르트 케셀링 원수가 갈란트에게 훈장을 달아줄 때 마침 2기의 전투기가 상공을 날아갔다. 케셀링이 갈란트에게 비행기의 기종을 묻자, 갈란트는 "스핏파이어입니다, 각하."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케셀링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를 제일 먼저 축하해 주는구만."[15]

갈란트는 지상공격기 조종사로서 전투기 호위를 받은 경험을 살려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폭격기에 대한 전투기의 호위 임무 및 호위 유형에 대해 날카롭게 간파하고 있던 몇 안되던 지휘관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호위기 문서의 '유형' 문단을 참조할 것. 초기에는 공세적 호위방식으로 사전 제압하였으나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어지고 영국 공군이 예상 이상으로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세 번째 방식으로는 폭격기 부대가 제법 손실을 입었고 이에 괴링은 폭격기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두 번째 방식의 근접호위를 지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Me 262를 폭격기로 쓸 것을 계속 주장하던 히틀러와 괴링에 맞서서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대립, 결국 히틀러도 아집을 꺾고 Me262를 요격부대용으로 소수만 생산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물론 히틀러의 이런 개소리는 정식으로 허가된 뒤에는 대놓고 무시당했다. 전쟁 말기에는 전투기 총감 직을 사임하고 Me262 비행단장으로 일선에 나가 싸우기도 했는데, 이때 Me262를 탄 소감으로 "천사가 밀어주는 비행기를 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더글러스 베이더와의 우정도 유명한데, 더글러스 베이더가 격추당해 포로가 되자 직접 그를 만나서 여러날 이야기를 나눈 끝에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16] 당시 베이더가 "나한테 Bf 109를 몰게만 해준다면 원이 없겠네." 하고 농담 비슷한 말을 건네자 갈란트 역시 웃으면서 "만약 내가 자네한테 109를 주면 자네는 그걸 타고 곧장 영국으로 날아갈 테고, 그러면 나는 자네를 또 격추하러 갈 수밖에 없잖나?" 하고 거절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또한 베이더가 포로가 될 당시 그의 의족이 망가지자, 갈란트는 영국 측에게 의족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부하들에겐 의족을 가지고 오는 영국 항공기를 공격하지 말라고 했다. 이에 영국 측에선 낙하산으로 의족을 보내주는 동시에, 갈란트가 있는 비행장에 폭탄을 떨구고 도망갔다. 후일담에 따르면 이를 보고받은 갈란트는 '신사협정도 안 통하는 친구들 같으니라고'라며 투덜거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베이더와의 우정은 전후까지 이어져, 갈란트가 포로로 잡혔을 때 그이 앞에 나타나 전쟁포로 신세가 된 갈란트에게 시가를 건네준 사람도 베이더였고, 저 말("나는 독일을 위해 싸운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을 한 뒤에 국제적인 비난에 휩싸이자 베이더가 직접 나서서 그를 변호해줬다고 한다. 이러한 우정은 사후까지 이어져서, 갈란트가 1996년 사망했을 때 베이더의 아들이 관을 운구했으며, 지금도 두 사람의 후손들은 교류를 통해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베이더 외에도 또다른 영국 에이스 로버트 턱[17]과도 절친한 친구였다. 턱은 갈란트의 아들 안드레아스의 대부였으며, 두 사람은 영화 공군 대전략에 함께 기술 자문으로 참가했다. 1987년에 턱이 먼저 작고하자, 갈란트는 크게 슬퍼했다.

전후에는 남미 여러 나라에서 공군 자문역 등을 지내다가 1996년에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작고. 참고로 죽을 때까지 히틀러와 나치에 대해선 모호한 입장이었는데 나치가 행한 여러 전쟁범죄에 대해선 인정하면서도 히틀러에 대해선 비난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나치 당원은 아니었지만 나치당 치하의 독일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히틀러의 신임을 받아 요직에 진출할 수 있었으니 히틀러에 대해 무작정 비난하긴 어려운 입장일 수도 있다.

3. 기타

그의 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순수 독일인이 아니라 조상이 위그노 즉 프랑스계였다.[18][19]

동생 둘(빌헬름-페르디난트 갈란트, 파울 갈란트)도 같이 JG 26 등에 복무한 파일럿인데 각각 55기, 17기를 격추한 에이스지만 둘다 대전 중에 전사했다.

여담이지만 1960년대 BOB를 다룬 전쟁영화 공군 대전략(원제: Battle Of Britain, 영국본토 항공전)에 어드바이저로 참가해 2차 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전략 재현에 대해 조언을 했다. 물론 영국의 유명 에이스인 로버트 스탠포드 턱도 어드바이저로 참가. 한번은 촬영 도중에 휴식 시간에 갑자기 누가 전투기를 몰고 올라가서 실전 기동을 하는 바람에 촬영장에서는 어떤 미친 놈이 저런 짓을 하냐며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착륙하고 보니 조종석에서 이 양반이 껄껄거리며 내렸다고 한다.

저서로는 자서전 <Die Ersten und die Letzten(처음과 마지막)>이 있다. 이미지프레임에서 2016년 11월 출판. 번역자는 성동현[20]

그 시대 출신의 독일인들 중 드물게 영어가 굉장히 유창했으며 프랑스어스페인어도 구사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007제임스 본드역을 연기한 바 있는 영국 배우 티머시 돌턴이 아돌프 갈란트랑 상당히 닮았다. 물론 제임스 본드 시절이랑 비교하면 그렇게 닮았다는 생각이 안들 수 있겠지만, 콧수염을 달면 판박이다. 궁금하면 뜨거운 녀석들의 등장인물인 사이먼 스키너와 아돌프 갈란트를 비교해보자. 그야말로 능글맞은 아돌프 갈란트다.

그의 공중전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일화중 하나가 109를 타고 선물을 배달하러 가다가 스핏파이어 3대와 조우하여 2대를 격추시키고 나머지 1대도 손상시킨 사례가 있다. 갈란트의 기체도 약간의 손상을 입기는 했지만 선물을 배달하고 오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대체역사 웹소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도 원 역사와 같은 에이스로 활약한다. 더글러스 베이더와의 우정 또한 마찬가지. 다만 여기서는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영국을 침공한 프랑스군의 전투기를 사냥했으며 저작권 문제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미키 마우스를 지워버리고 더러운 자본주의자 놈들이라며 이를 갈다 소련군 전투기를 잡으며 화풀이를 한다.

4. 주요 이력

5. 진급 내역

6. 주요 서훈 내역



[1] 준장 계급이 없고 대신 대장 위에 상급대장이 있었던 나치 독일군의 특성상 대한민국 국군미군소장에 해당한다.[2] 사실 콧수염은 히틀러가 유행시킨 게 아니라 '히틀러가 당시 유행을 따랐던 것'이 히틀러의 상징 비슷하게 되어버린 경우라 클래식 취향의 멋쟁이 신사인 갈란트 중장의 콧수염을 히틀러에 갖다붙이는 건 어찌보면 실례다.[3] 사실 아돌프라는 이름은 2차 대전 이전에는 독일에서 매우 흔했다. 물론 히틀러 이후에는 금기시되어, 현재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은 거의 대부분 2차 대전 이전에 태어난 노인들이거나 나치의 반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오스트리아인들이며 이쪽도 소수다.[4] 국방군 총사령관 빌헬름 카이텔하고 발터 폰 라이헤나우하고도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 사실 동부 전선에서는 "장병들이 통상적인 전쟁방식이 아니라 유대-볼셰비즘을 절멸시키는 전사로서 싸워야 한다(=즉 민간인을 학살해야 한다.)"라고 강조 명령을 내리자 "죄송합니다만, 각하. 저는 공군이라서 이 명령은 듣지 않습니다. 명령할 거면 육군이나 해군한테 하십시오."라고 비꼬았다. 참고로 해군 쪽도 전쟁범죄와는 거리가 멀었다.[5] 독일의 다른 장성(원수급들)이 학살(유태인 학살이나 슬라브족 학살)에 적극 가담하거나 소극 가담할 때 그는 단칼에 거절할 정도였고 학살을 극도로 증오했다고 한다.[6]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빼도박도 못하는 골초였다. 애기의 콕핏에 재떨이가 설치되어 있었을 정도이며 애기 Bf 109마스코트는 담배 피는 미키 마우스이다. 이때문에 그는 항공시찰 중 전투기가 피격받아 윤활유가 자기 조종석 안으로 쏟아지듯 들어오자 전투기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콕핏을 열어 피고있던 시가를 밖으로 던져 끔살 직전까지 갔음에도 살아남은 일이 있다. 수기 "처음과 마지막"에서 언급.[7] 묄더스의 자세가 기묘해 보이지만 장난친 것은 아니고, 공중전 때 전투기의 기동에 대해 설명하는 진지한 장면이다. 현대에도 저렇게 브리핑을 한다. #[8] 그 이상의 격추를 달성하지 못한 것도 장성이 되면서부터 출격을 최대한 자제했기 때문이다. 물론 장성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몸 풀러 출격하기도 했다. 괴링의 직접명령으로 비행금지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출격해서 영국 전투기와 폭격기들을 잡아내자 몇대의 전투기를 날려먹고 수 차례의 머리부상을 당해 중요한 회의에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괴링이 아무런 언급도 없이 넘어가 주기도 했다.[9] 전쟁 말기로 가면 200기, 심지어는 300기 이상의 공인격추를 달성한 대굇수들이 즐비한 독일이라 갈란트의 기록이 특출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시는 아직 전쟁 초기라 숙련된 파일럿들이 다수 생존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더욱이 200기 이상 격추한 슈퍼 에이스들이 활약한 주요 무대는 무기의 질과 파일럿들의 숙련도가 독일군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소련군과 싸우던 동부전선이지만 갈란트는 영국 공군을 상대로 한 서부전선에서 만들어낸 전과다. 이 차이가 얼마나 크냐면 같은 급의 훈장을 받으려 해도 동부전선에서 활동하던 파일럿들은 서부전선의 파일럿들보다 더 많은 격추수가 요구되었다. 실제로 갈란트의 기록은 당시 루프트바페 전체에서 격추수 순위를 다투었는데 갈란트의 공식 격추 수는 104기로, 여기에는 JV-44 지휘 당시 Me-262로 기록한 7기 격추가 포함돼 있다.[10] 다만 영국 본토 항공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출격한 전투기 수보다 격추되었다고 보고된 전투기 수가 많은 등 영국독일 공군의 집계 방식 자체가 굉장히 엉성했다. 실제로는 몇 기를 격추했는지는 조종사 본인들만 알 뿐.[11] 레츨린 비행장은 시제기 및 항공장비 실험이 주로 이루어진 곳이다.[12] 대전 말기에 가면 괴링의 미움을 받아서 최신예 Me-262FH로 구성된 JV-44의 지휘관을 맡았는데, 이는 가서 죽어라는 괴링의 악의가 섞인 인사 배치였다. 그러나 괴링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갈란트는 오히려 이런 결정을 반기면서 루프트바페 굴지의 에이스들을 모아서 전무후무한 최정예 부대를 설립했다.[13] 이는 발터 모델이 죽기 전날 남긴 "진정으로 내가 범죄에 종사해 왔음을 믿게 되었네. 나는 양심적으로 부하들을 이끌었지… 하지만, 범죄 정권을 위한 것이었어."라는 말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갈란트의 행적이나 '나치'가 아니고 '국가'라고 지칭한 점을 감안하면 참작할 여지는 있다.[14] 당시 독일 공군에는 100기 격추쯤은 우습게 넘기는 에이스들이 즐비했으나, 이것은 뒤집어서 말하자면 연합군에 비해 조종사 병력이 절망적으로 모자랐던 추축군의 상황을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에이스들이 한계까지 싸우다가 전사해갔다.[15] 출처: 고공출격 이게 남의 떡이 커보이는 심리일 수도 있고 적 전투기와 공중전을 전담할 편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는 말도 있다. 당시 독일 공군 수뇌부는 폭격기의 피해가 점차 심해지자 Bf109 편대가 폭격기와 속도, 고도를 맞춰가며 더더욱 밀착비행을 하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되면 폭격기 조종사들이야 더 잘 호위를 받을 수 있어서 환영했지만 전투기 조종사 입장에서는 Bf 109가 스핏파이어를 상대로 내세울 수 있는 고고도 비행성능을 일부러 없애고 시작하는 꼴이어서 Bf 109 조종사들의 불만이 많았다.[16] 일설에 따르면 더글러스 베이더는 격추된 이후 어중이 떠중이 독일군 조종사에 의해 격추당한 것이 아닌지 매우 자존심 상해하였고 이때 갈란트가 와서 위로 혹은 숙련된 자가 격추시켰다고 해주었다고 한다.[17] Robert Stanford Tuck (1916-1987). 공인 격추수 29기, 공인 공동 격추수 2기, 추정 격추수 6기.[18] 그의 성인 "갈란트"를 프랑스식으로 읽으면 "갈랑"이 된다.[19] 독일 국방군과 무장친위대는 독일인의 순수성을 강조했지만 막상 비독일계 병력들도 적지 않았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도 순수 독일인이 아니라 리투아니아-폴란드계이다.[20] 이전에 이동훈이 영문판으로 번역했으나 여러가지 문제로 갈아 엎고 완전 독일어판으로 재번역한 것이다. 하지만 이쪽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해당 역자는 일서 역자이므로 일문판의 번역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