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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21:45:47

보니와 클라이드

보니 파커에서 넘어옴


파일:rawImage.jpg
Bonnie and Clyde

1. 개요
1.1. 이들을 사살한 영웅들
2. 대중문화에서
2.1. 영화2.2. 음악2.3. 게임2.4. 드라마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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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어 위키피디아
영문 위키피디아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당시 연쇄 강도·살인을 벌인 보니 엘리자베스 파커(Bonnie Elizabeth Parker, 1910년 10월 1일 ~ 1934년 5월 23일)와 클라이드 체스트넛 배로(Clyde Chestnut Barrow, 1909년 3월 24일 ~ 1934년 5월 23일)로 맺어진 범죄자 커플.[1]

보니와 클라이드는 1932년 2월부터 경찰의 총격에 사살당한 1934년 5월 23일까지 2년간 연쇄 강도를 저질렀다. 범죄의 대상은 주로 자동차 통행량이 적은 변두리의 작은 가게나 주유소였으며, 경찰차보다 빠른 고성능 세단을 이용해 계획적이고 기민하게 강도를 저질렀다. 보니와 클라이드를 심문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 몇 명을 죽였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그 과정에서 9명의 경찰관을 포함해 총 13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해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상술했듯 이 커플의 주요 목표물은 털기 쉬운 서민들의 상점이었고, 이들은 강도 과정에서 방해되는 사람은 기꺼이 살해하는 잔혹한 범죄자였다. 그럼에도 이 흉악한 범죄자들은 금주령과 대공황의 암울함 속에 살던 미국 서민들에게 일종의 자극제가 되었다. 멋지게 차려입고 고급 자동차를 탄 이 젊은 범죄자 커플은 소문과 언론에 의해 희망 없는 세상에 맞서는 의적 같은 사람들로 미화되어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언론은 이들을 서부극의 주인공처럼 묘사하며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고, 서민들은 당시 '서민의 적'이었던 은행을 응징하는 모습에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다. 살인 행각이 계속되면서 이들에 대한 여론도 악화되어 갔지만 하여튼 이러한 이유로 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사람만 두 자릿수에 달했고 보니와 클라이드의 장례식장에는 22,000 명에 달하는 군중이 운집할 정도였다. 이후에도 이 커플을 미화한 작품이 여럿 나오고 있다.

FBI존 에드거 후버 국장은 보니와 클라이드를 공공의 적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클라이드의 형과 형의 부인도 같은 범죄자 커플이었던 터라 넷이서 같이 활동하기도 하였다.

1.1. 이들을 사살한 영웅들


프랭크 해머가 이끌던 6명의 추격대는 1934년 2월 12일부터 보니와 클라이드의 동선을 철저히 조사하여 매복을 시작한 후 1934년 5월 23일에 루이지애나주 비엔빌 군 패리시에 위치한 한 산골에서 그 둘을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추격대는 무장으로 개인마다 각각 한 정씩의 M1918 브라우닝 자동소총과 윈체스터 M1897 펌프액션 산탄총을 갖춘 상태였고, 대원들의 품 안에는 두 정의 권총이 들어있었다. 보니와 클라이드가 탄 자동차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추격대는 헨더슨 조던의 사격 신호를 시작으로 차량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이들은 사격 과정에서 약 150여 발의 탄을 소모했고, 보니와 클라이드는 현장에서 즉사했다.[2]

2. 대중문화에서

2.1. 영화

2.2. 음악

2.3. 게임

2.4. 드라마

3. 기타

1990년대에 뉴욕에서 마피아들의 아지트만 전문으로 털어 길거리의 보니 앤 클라이드라고 불린 우바 부부의 이야기도 있다. 마피아/기타 문서 참고.

일대에서 알아주는 강도들이었고 살인도 서슴치 않았던 사람들이었기에 당시 시대를 감안해도 어떻게 2년 동안이나 잡히지 않고 돌아다녔는지 의문일 수 있으나, 일단 클라이드는 명사수였기에 1대1로써는 총싸움에서 그를 당해낼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그들의 가족이 이러한 범죄 행위를 알면서 묵인하였고 심지어는 수사기관을 따돌리는 등 상당히 비협조적으로 나와, 그들의 행방을 추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이 때문에 보니와 클라이드가 확인사살된 후 그들의 가족 또한 법정대에 올라섰으며 많은 구성원들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악명 높았던 범죄 커플이었고 대중들에게도 상당히 미화된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정부는 사후 둘이 같은 묘지에 안장되는 것을 금지하였고 그에 따라 보니와 클라이드는 각각 본인들의 가족들의 묘지에 묻혔다. 이후 각 집안의 후손들이 묘지를 옮겨 함께 안장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 아무래도 당시 미국의 상황도 있었고 보니와 클라이드가 범죄자가 되었기 때문에 결혼은 하지 못했다.[2] 기록에 따르면 보니와 클라이드의 몸에는 각각 약 50발 정도의 탄이 박혀있었거나 관통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몸통으로 갔기 때문에 둘의 얼굴은 사후에도 알아볼 수 있었으며 시체를 대중에게 공개하기도 했다.[3] 원제는 “내츄럴 본 킬러스(Natural Born Killers)”[4] 보니 앤 클라이드를 쫓는 보안관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이며 그렇기 때문에 보니 앤 클라이드가 미화를 받아선 안되는 이유를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리얼리즘으로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5] 에미넴을 Clyde, 에미넴의 딸 헤일리를 Bonnie로 빗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