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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북구(울산광역시)/정치
울산광역시 제22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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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80009><colcolor=#fff> 선거인 수 | 176,056명 (2024) | |||||
상위 행정구역 | 울산광역시 | |||||
관할 구역 |
| |||||
신설년도 | 2000년 | |||||
이전 선거구 | 울산시 울주구, 울산시 중구 | |||||
국회의원 | | 윤종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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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0년 당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때 신설된 선거구로 본래는 울산광역시 중구와 울주군의 일부였다. 이후 1997년에 경상남도 울산시가 울주군과 함께 울산광역시로 승격되면서 중구와 울주군에서 조금씩 떼어내 북구를 신설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변동없이 단일 선거구로 이어져왔다. 현역 국회의원은 진보당 소속 윤종오 의원이다.2. 분석
울산에서 동구와 더불어 공단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라[1] 진보정당이 강세를 보여온 지역이었다. 때문에 창원시 성산구, 울산광역시 동구 등과 더불어 진보정당의 몇 안 되는 영남 교두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다.단,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낙동강 벨트와는 달리 민주당계 정당보다 스탠스가 더 좌측인 민주노동당 계열 지지세가 더 강한 편이었다. 민주노동당 출신의 조승수 의원이 이곳에서 재선을 지낸 경력이 있다. 대체로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이 교대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 2000년대(16대 총선) 이후로 5번의 국회 회기 동안(=20년) 재보궐선거만 3번을 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노동당, 정의당, 진보계 무소속 간의 단일화 후보인 민중당(당시엔 무소속)의 윤종오 후보가 무려 61.5%라는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나 얼마 안가 유사 기관을 동원한 사전선거운동을 벌인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었다. 1심에서는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유지했으나 2심과 3심에서 모두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하지만 윤종오 의원이 의석을 잃은 후 치러진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중당은 완패를 하고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후보가 당선되었다. 민주당 의원이 여기를 차지한 건 이번 재보궐이 처음이다. 즉, 이시기 거의 처음으로 진보진영 내에서도 민주당계 후보가 민노당계 후보를 득표율에서 앞섰다. 이는 이상헌 후보의 개인기와 더불어 여러 이유로 상당수 북구 노조 세력이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21대 총선에서는 진보 단일후보가 정의당 쪽으로 결정되었으나 10%도 넘기지 못하고 범진보 지지표 대부분이 이상헌 의원에게로 쏠려 울산에서 유일한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되었다.[2]
22대 총선에선 다시 진보당 윤종오 후보로 단일화되면서 진보정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기존 노조가 힘을 쓰던 지역인 울산 동구나 창원 성산구가 민주당 후보가 심지어 단일화하지 않고도 당선된 것을 고려하면, 북구가 그나마 소수정당 당선자를 낸 셈. 다만 북구 역시 단일화하지 않았으면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진보정당들은 고민거리가 있을듯하다.
3. 역대 국회의원 목록과 역대 선거 결과
<rowcolor=#fff> 대수 | 당선인 | 당적 | 임기 |
16대 | 윤두환 | |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
17대 | 조승수 | [[민주노동당|]] | 2004년 5월 30일 ~ 2005년 9월 29일 |
윤두환 | | 2005년 10월 26일 ~ 2008년 5월 29일 | |
18대 | 2008년 5월 30일 ~ 2009년 3월 12일 | ||
조승수 | [[진보신당|]] | 2009년 4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 |
19대 | 박대동 | [[새누리당|]] |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
20대 | 윤종오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6년 5월 30일 ~ 2017년 12월 22일 |
이상헌 | | 2018년 6월 13일 ~ 2020년 5월 29일 | |
21대 | 2020년 5월 30일 ~ 2024년 5월 29일 | ||
22대 | 윤종오 | | 2024년 5월 30일 ~ |
3.1.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북구 울산 북구 일원[울산북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윤두환(尹斗煥) | 19,430 | 1위 |
| 43.03% | 당선 | |
2 | 이상헌(李相憲) | 4,170 | 3위 |
[[새천년민주당|]] | 9.23% | 낙선 | |
4 | 서동우(徐東祐) | 2,684 | 4위 |
[[민주국민당(2000년)|]] | 5.94% | 낙선 | |
5 | 최용규(崔勇圭) | 18,867 | 2위 |
[[민주노동당|]] | 41.7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75,413 | 투표율 60.60% |
투표 수 | 45,700 | ||
무효표 수 | 549 |
||<-6><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0000a8><bgcolor=#0000a8> 16대 총선 울산 북구 개표 결과 ||
북구가 신설된 이후에 처음으로 치른 선거였다. 한나라당에선 현직 구의원이었던 윤두환이 구의원을 사직하고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선 훗날 민주당계 정당소속으로서 최초로 울산에서 재선까지 성공한 이상헌이 출마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에서도 노동운동가인 최용규가 출마를 선언했다. 그 밖에 민주국민당에서 서동우 후보가 출마했지만 워낙 세력이 약한 당이라 별 존재감은 없었다.정당 | 한나라당 | 새천년민주당 | 민주노동당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윤두환 | 이상헌 | 최용규 | ||
득표수 (득표율) | 19,430 (43.03%) | 4,170 (9.23%) | 18,867 (41.79%) | +563 (△1.24) | 45,700 (60.60%) |
농소1동 | 46.06% | 14.33% | 33.82% | △12.24 | 59.46 |
농소2동 | 37.21% | 8.88% | 47.09% | ▼10.88 | 59.85 |
농소3동 | 43.19% | 9.80% | 43.26% | ▼0.07 | 57.08 |
강동동 | 60.68% | 8.89% | 21.02% | △39.66 | 59.53 |
효문동 | 49.39% | 6.96% | 39.19% | △10.20 | 60.44 |
송정동 | 54.47% | 5.62% | 36.06% | △18.41 | 67.64 |
양정동 | 29.70% | 7.84% | 56.55% | ▼26.85 | 59.66 |
염포동 | 34.03% | 8.40% | 53.04% | ▼19.01 | 59.0 |
후보 | 윤두환 | 이상헌 | 최용규 | 격차 | |
부재자투표 | 41.47% | 18.90% | 25.65% | △15.82 |
북구가 현대자동차 및 현대모비스 공단이 위치한 곳이라 노동자 표심이 선거를 좌우하는 곳인데 진보 표심이 새천년민주당 이상헌 후보와 민주노동당 최용규 후보로 분산되는 악재를 맞았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지금의 친노-친문 계파와 달리 다소 보수적인 동교동계가 주류인 당이었기에 후보 단일화를 제대로 논의할 수조차 없었다. 결국 진보 표심이 분열된 틈을 타 한나라당 윤두환 후보가 43.03%에 불과한 득표율로 어부지리에 성공해 당선되었다. 2위 최용규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는 불과 1.24% 차였고 득표 수 역시 불과 563표 차였다.
민주노동당 최용규 후보는 노동자 표심에 힘입어 무려 41.79% 득표율을 올리며 당선자 윤두환 후보와 불과 1.2% 차 초접전을 펼쳤으나 이상헌 후보와의 표 분산이란 악재를 넘지 못하며 결국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하지만 최용규 후보의 이 같은 선전은 다음 선거에서 크게 영향을 주게 된다. 바로 다음 선거에서 처음으로 노동운동가 국회의원이 당선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3위에 그친 이상헌 후보는 당시만 해도 민주당계 정당의 험지인 울산이었기에 9.23% 득표에 그치며 선거 비용 보전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상헌 후보가 훗날 이곳에서 울산 최초의 민주당 소속 재선 의원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당선자 윤두환 후보는 농소 1동에서 771표 차, 강동동에서 919표 차, 효문동에서 623표 차, 송정동에서 995표 차로 승리했다. 반면에 2위 최용규 후보는 농소 2동에서 809표 차, 농소 3동에서 205표 차, 양정동에서 1,205표 차, 염포동에서 690표 차로 승리했다.
이렇게 승리한 동 수는 4 : 4로 동일했고 표 차는 불과 399표 차로 윤두환 후보가 앞서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부재자투표 함만 남은 상황에서 윤두환 후보가 164표 차로 앞서면서 최종 결과 윤두환 후보가 불과 563표 차로 신승을 거둘 수 있었다.
3.2.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북구 울산 북구 일원[울산북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윤두환(尹斗煥) | 19,952 | 2위 |
| 34.38% | 낙선 | |
3 | 이수동(李樹同) | 10,243 | 3위 |
[[열린우리당|]] | 17.65% | 낙선 | |
4 | 염동옥(廉東玉) | 621 | 4위 |
[[한국기독당(2004년)|]] | 1.07% | 낙선 | |
5 | 조승수(趙承洙) | 27,212 | 1위 |
[[민주노동당|]] | 46.89%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87,860 | 투표율 66.58% |
투표 수 | 58,501 | ||
무효표 수 | 473 |
||<-6><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ee7700><bgcolor=#ee7700> 17대 총선 울산 북구 개표 결과 ||
지역구를 수성해야 할 한나라당에선 현역 의원인 윤두환이 재선에 도전했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선 이수동 후보가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2년 전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 100만 표 가까이 득표하며 인지도를 쌓은 권영길 후보의 소속 정당인 민주노동당에서도 노동운동가 출신의 조승수 후보를 공천했다. 그 밖에 원외 정당인 기독사랑실천당에서 염동옥 후보가 출마했지만 인지도는 0에 가깝다.<colbgcolor=#eee,#353535> 정당 | 한나라당 | 열린우리당 | 민주노동당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윤두환 | 이수동 | 조승수 | ||
득표수 (득표율) | 19,952 (34.38%) | 10,243 (17.65%) | 27,212 (46.89%) | -7,260 (▼12.51) | 58,501 (66.58%) |
농소1동 | 38.66% | 19.77% | 40.66% | ▼2.0 | 63.34 |
농소2동 | 34.15% | 21.78% | 42.91% | ▼8.76 | 65.85 |
농소3동 | 33.94% | 20.08% | 44.90% | ▼10.96 | 66.59 |
강동동 | 60.28% | 17.66% | 21.12% | △39.16 | 63.09 |
효문동 | 31.33% | 15.98% | 51.65% | ▼20.32 | 68.49 |
송정동 | 40.48% | 11.49% | 47.09% | ▼6.61 | 73.06 |
양정동 | 21.17% | 13.28% | 64.61% | ▼43.44 | 64.77 |
염포동 | 25.55% | 15.31% | 57.99% | ▼32.44 | 59.33 |
후보 | 윤두환 | 이수동 | 조승수 | 격차 | |
부재자투표 | 36.44% | 26.96% | 33.69% | △2.75 |
처음 선거 판세는 현역 의원인 윤두환 후보에게 유리했다. 현역 프리미엄도 있는데다 진보 유권자의 표심이 열린우리당 이수동 후보와 민주노동당 조승수 후보로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총선 직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사태로 인해 선거판이 크게 요동을 쳤다. 탄핵을 주도했던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역풍을 맞아 휘청거렸고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원외 진보 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이 그 반사이익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울산은 노동자의 도시였고 그 특성상 열린우리당보다는 민주노동당 쪽이 더 유리했다. 결국 개표 결과, 표심 분열이란 악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주노동당 조승수 후보가 46.89% 득표율로 34.38% 득표에 그친 한나라당 윤두환 후보를 득표율 12.51%, 득표 수 7,260표 차로 꺾고 당선되었다. 이 선거구에서 진보 정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총 10석을 획득했는데 이 중 지역구에서 당선된 인물은 경상남도 창원시 을[5]의 권영길 후보와 이곳에서 당선된 조승수 후보 단 둘 뿐이었고 나머지 8명은 모두 비례대표였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당선자 조승수 후보는 농촌 지역인 강동동 1곳을 뺀 나머지 모든 곳에서 승리했다. 농소 1동에선 162표 차, 농소 2동에선 808표 차, 농소 3동에선 1,055표 차, 효문동에선 2,546표 차, 송정동에선 423표 차, 양정동에서 1,995표 차, 염포동에서 1,265표 차로 승리했다. 반면에 윤두환 후보는 강동동에서 962표 차, 부재자투표에서 고작 33표 차로 이기는데 그쳤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조승수 의원은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인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고 결국 2005년 9월 29일, 대법원에서 벌금 150만원 형이 확정되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될 경우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규정되어 있었으므로 결국 조승수 의원은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하고 불과 1년 4개월 만에 그 직을 상실했다.
3.3. 2005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북구 울산 북구 일원[울산북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재택(朴載宅) | 2,711 | 3위 |
[[열린우리당|]] | 5.40% | 낙선 | |
2 | 윤두환(尹斗煥) | 24,628 | 1위 |
| 49.09% | 당선 | |
4 | 정갑득(정갑득) | 22,835 | 2위 |
[[민주노동당|]] | 45.5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96,590 | 투표율 52.19% |
투표 수 | 50,412 | ||
무효표 수 | 238 |
개표 결과 한나라당 윤두환 후보가 49.09% : 45.51%로 민주노동당 정갑득 후보를 득표율 3.58%, 득표 수 1,793표 차라는 근소한 차이로 꺾고 1년 만에 지역구 탈환에 성공했다. 민주노동당으로선 참으로 뼈 아픈 부분인데 열린우리당 박재택 후보가 두 후보 간 표 차보다 더 큰 5.4%를 갉아먹어 버리는 바람에 간발의 차이로 낙선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당시에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같은 편인 듯 아닌 것 같은 좀 미묘한 관계에 있었는데 이 이후로는 점점 더 관계가 악화되어 열린우리당의 개혁 입법 시도 등에 전혀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한나라당 등 다른 야당들과 편을 먹고 견제하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정갑득 후보가 지역구 수성에 실패하면서 민주노동당 소속 지역구 국회의원은 그 당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경상남도 창원시 을의 권영길 의원 1명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소중한 의석 1석을 더 추가하게 되면서 원내 제 1당이자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과의 의석 격차를 점점 좁혀나가게 되었다. 또 이번 선거에서 겨우 5.4% 득표에 그친 박재택 후보는 이후 정계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당시 울산광역시가 열린우리당에 험지였다고는 하나 너무도 저조한 득표율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3.4.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북구 울산 북구 일원[울산북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2 | 윤두환(尹斗煥) | 24,135 | 1위 |
| 46.24% | 당선 | |
4 | 이영희(李瑛熙) | 16,621 | 2위 |
[[민주노동당|]] | 31.84% | 낙선 | |
6 | 최윤주(崔允主) | 10,977 | 3위 |
[[미래희망연대|]] | 21.03% | 낙선 | |
7 | 전병일(全秉日) | 465 | 4위 |
[[평화통일가정당|]] | 0.8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0,077명 | 투표율 47.82% |
투표 수 | 52,642표 | ||
무효표 수 | 444표 |
||<-6><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0095da><bgcolor=#0095da> 18대 총선 울산 북구 개표 결과 ||
지역구를 수성해야 할 한나라당에선 현역 의원인 윤두환이 단수공천을 받아 3선에 도전했다.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은 공천을 포기했다. 지역구 탈환을 노리는 민주노동당에선 노동운동가 출신의 이영희 후보가 출마했다. 그 밖에 친박연대에서 최윤주 후보, 평화통일가정당에서 전병일 후보가 출마했다.<colbgcolor=#eee,#353535> 정당 | 한나라당 | 민주노동당 | 친박연대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윤두환 | 이영희 | 최윤주 | ||
득표수 (득표율) | 24,135 (46.24%) | 16,621 (31.84%) | 10,977 (21.03%) | +7.514 (△14.40) | 47.82% |
농소1동 | 49.31% | 23.92% | 25.77% | △25.39 | 43.59 |
농소2동 | 47.51% | 28.24% | 23.36% | △4.88 | 44.64 |
농소3동 | 44.02% | 32.0% | 23.01% | △12.02 | 45.24 |
강동동 | 64.37% | 11.17% | 23.25% | △53.20 | 49.25 |
효문동 | 47.47% | 33.38% | 18.56% | △14.09 | 49.32 |
송정동 | 48.43% | 31.77% | 19.29% | △16.66 | 54.24 |
양정동 | 33.76% | 49.57% | 15.71% | ▼15.81 | 47.74 |
염포동 | 37.43% | 41.65% | 19.82% | ▼4.22 | 45.43 |
후보 | 윤두환 | 이영희 | 최윤주 | 격차 | |
부재자투표 | 59.67% | 23.64% | 15.05% | △36.03 |
당시 이 선거가 이명박 정부 출범 한 달 반만에 치른 선거라 허니문 of 허니문 기간 중 선거였고 암만 이곳이 노동자 표심이 강해 진보적 색채가 짙다고 해도 엄연히 영남권인만큼 우파 정당 지지세도 강해 한나라당 윤두환 후보의 탄탄한 지역 기반에 힘입어 46.24% : 31.84%로 득표율 14.4%, 득표 수 7,514표 차로 민주노동당 이영희 후보를 꺾고 3선에 올랐다. 그나마도 친박연대 최윤주 후보가 21% 이상 갉아먹은 덕분에 14.4% 차로 끝난 것이었다. 명색이 노동자들의 도시에서 31.84%란 득표율은 너무 저조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당선자 윤두환 후보는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는 양정동과 현대모비스 공장이 있는 염포동을 뺀 나머지 지역에서 모두 승리했다. 농소 1동에선 1,700표 차, 농소 2동에선 1,585표 차, 농소 3동에선 1,121표 차, 강동동에선 1,048표 차, 효문동에서 1,351표 차, 송정동에서 860표 차로 이겼고 부재자투표에서 730표 차로 승리했다.
반면에 2위 이영희 후보는 양정동에서 696표 차, 염포동에서 199표 차로 승리하는데 그쳤고 농소 1동과 강동동에선 오히려 124표 차, 238표 차로 최윤주 후보에게도 밀리며 3위에 그쳤다.
그러나 이렇게 당선된 윤두환 의원은 허위사실유포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고 말았다. 치열한 법적 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벌금 150만원 형이 확정되었다. 공직선거법 위반의 경우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기에 결국 윤두환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했고 두 번째 재보궐선거가 확정되었다.
3.5. 2009년 재보궐선거
북구 울산 북구 일원[울산북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대동(朴大東) | 21,313 | 2위 |
| 41.38% | 낙선 | |
| | 사퇴[9] | |
[[민주노동당|]] | |||
7 | 조승수(趙承洙) | 25,346 | 1위 |
[[진보신당|]] | 49.21% | 당선 | |
8 | 김수헌(金壽憲) | 4,848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9.4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6,368 | 투표율 46.73% |
투표 수 | 54,378 | ||
무효표 수 | 2,871 |
||<-6><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e62020><bgcolor=#e62020> 2009년 재보궐선거 울산 북구 개표 결과 ||
전임자 윤두환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인해 치러진 선거이다. 지역구를 수성해야 할 한나라당에선 박대동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을 공천했다. 그리고 지역구 탈환을 노리는 민주노동당에선 김창현 전 동구청장이 출마를 선언했다. 또 원내 진입을 노리는 또 다른 진보 정당인 진보신당에선 조승수 전 의원이 다시 출마했다. <colbgcolor=#eee,#353535> 정당 | 한나라당 | 진보신당 | 무소속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박대동 | 조승수 | 김수헌 | ||
득표수 (득표율) | 21,313 (41.38%) | 25,346 (49.21%) | 4,848 (9.41%) | -4,033 (▼7.83) | 46.73% |
농소1동 | 42.77% | 38.88% | 18.35% | △3.89 | 44.72 |
농소2동 | 45.53% | 44.58% | 9.89% | △0.95 | 44.13 |
농소3동 | 41.12% | 47.08% | 11.80% | ▼5.96 | 45.13 |
강동동 | 68.61% | 21.76% | 9.63% | △46.85 | 46.96 |
효문동 | 37.63% | 56.79% | 5.58% | ▼19.16 | 45.73 |
송정동 | 40.37% | 51.36% | 8.27% | ▼10.99 | 51.03 |
양정동 | 33.22% | 63.67% | 3.10% | ▼30.35 | 50.67 |
염포동 | 36.37% | 60.43% | 3.20% | ▼24.06 | 45.72 |
후보 | 박대동 | 조승수 | 김수헌 | 격차 | |
부재자투표 | 49.84% | 34.89% | 15.26% | △14.95 |
한편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북구청장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던 김수헌 후보가 이곳에 공천 신청을 했으나 박대동에게 밀려 낙천되자 그에 반발해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
즉, 보수와 진보 양 진영 모두 표심이 분열된 흥미로운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진보 진영에서 먼저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다. 애초에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는 지역 기반이 동구였기에 북구에 기반을 둔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승수 후보가 진보 진영 단일 후보로 나섰고 김창현 후보는 사퇴했다. 그러나 보수 진영의 박대동 후보와 김수헌 후보는 단일화가 불발되었다.
개표 결과 보수 표심 분열에 힘입어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가 49.21% : 41.38%로 한나라당 박대동 후보를 득표율 7.83%, 득표 수 4,033표 차로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조승수 후보의 당선으로 인해 원외정당이었던 진보신당은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지난 17대 국회 땐 조승수 의원이 당선 무효가 되었고 그걸 윤두환 의원이 가져갔는데 이번엔 반대로 윤두환 의원이 당선 무효가 되었고 조승수 의원이 지역구를 가져가는 묘한 인연이 생겼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당선자 조승수 후보는 농소 1동, 농소 2동, 강동동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승리했다. 조승수 후보는 농소 3동에서 649표 차, 효문동에서 1,713표 차, 송정동에서 530표 차, 양정동에서 1,364표 차, 염포동에서 1,089표 차로 승리했다.
반면에 박대동 후보는 농소 1동에서 261표 차, 농소 2동에서 80표 차, 강동동에서 827표 차, 부재자투표에서 144표 차로 승리하며 추격했으나 양정동 1곳에서 난 표 차를 넘어서지 못하고 모두 상쇄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조승수 후보가 총합 4,033표 차로 승리했다.
3.6.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북구 울산 북구 일원[울산북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대동(朴大東) | 40,116 | 1위 |
[[새누리당|]] | 52.37% | 당선 | |
4 | 김창현(金昌鉉) | 36,482 | 2위 |
[[통합진보당|]] | 47.6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2,715 | 투표율 58.25% |
투표 수 | 77,313 | ||
무효표 수 | 715 |
||<-5><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c9252b><bgcolor=#c9252b> 19대 총선 울산 북구 개표 결과 ||
지역구 현역 의원인 조승수 의원의 소속 정당인 진보신당은 권영길, 강기갑 등이 이끄는 민주노동당, 유시민, 천호선 등이 이끄는 국민참여당 등과 함께 진보 빅 텐트 정당인 통합진보당을 결성하게 되었다.[11] <colbgcolor=#eee,#353535> 정당 | 새누리당 | 통합진보당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박대동 | 김창현 | ||
득표수 (득표율) | 40,116 (52.37%) | 36,482 (47.62%) | +3,634 (△4.75) | 58.25% |
농소1동 | 59.58% | 40.42% | △19.16 | 57.81 |
농소2동 | 56.63% | 43.37% | △13.26 | 55.70 |
농소3동 | 50.04% | 49.96% | △0.08 | 58.01 |
강동동 | 76.45% | 23.55% | △52.90 | 53.71 |
효문동 | 51.37% | 48.63% | △2.74 | 57.22 |
송정동 | 49.92% | 50.08% | ▼0.16 | 59.60 |
양정동 | 39.42% | 60.58% | ▼21.16 | 59.03 |
염포동 | 43.37% | 56.63% | ▼13.26 | 56.96 |
후보 | 박대동 | 김창현 | 격차 | |
국외부재자투표 | 37.10% | 62.90% | ▼25.80 | |
국내부재자투표 | 54.46% | 45.54% | △8.92 |
그런데 이 과정에서 큰 문제가 발생했다. 조승수 의원은 당연히 3선에 도전하고자 했으나 지난 재보선 때 출마를 시도했던 김창현이 또 동구가 아닌 이곳 북구에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의도적인 조승수 엿 먹이기 더 나아가 NLPDR계의 PD계 길들이기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깔끔하게 상황 정리하는 방법은 김창현을 동구로 보내는 것이었겠지만,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지난 번엔 김창현이 양보했으니 이번엔 조승수가 양보하라고 하였고 더 나아가 이젠 험지에 도전하라며 남구 갑으로 보내버리는 해괴한 결정을 내렸다.
같은 울산이지만 태화강 동쪽의 북구와 서쪽의 남구는 정치 성향이 거의 안티 테제에 가까운 곳인데 이 쯤되면 그냥 조승수더러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결국 조승수는 억지춘향으로 남구 갑에 출마 신청을 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 연대 때문에 먼저 이 곳에 공천 신청을 한 민주통합당의 심규명 변호사와 경선을 치러야 했다. 정치 기반이 북구에 있었던 조승수가 남구에서 오랫동안 기반을 닦은 심규명 변호사에게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결국 조승수는 강제로 야인 신세가 되어버렸다.
한편, 새누리당에선 지난 재보선 때 조승수 의원에게 7.83% 차 석패를 한 박대동 후보를 다시 단수공천해 보냈다. 제 1 야당인 민주통합당에선 야권 연대를 위해 공천을 안 했다. 그리하여 선거구가 신설된 이래 처음으로 보수 후보 VS 진보 후보의 1 : 1 단판 승부가 성사되었다.
개표 결과 새누리당 박대동 후보가 52.37% : 47.62%로 득표율 4.75%, 득표 수 3,634표 차로 통합진보당 김창현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진보 정당의 성지인 이곳에서 김창현이 패전을 한 탓에 결국 다시 새누리당의 울산 싹쓸이를 허용하고 말았다.
박대동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3년 간 절치부심하며 지역구를 누비고 노력한 것도 있었지만 상대 당에서 공천 삽질을 범한 게 더 컸다. 김창현은 본래 동구청장 출신으로 정치 기반이 동구에 있었던 사람인데 북구에 나타난 것도 뜬금포였지만 멀쩡히 일 잘하고 있던 터줏대감 조승수를 추잡하게 억지로 쫓아낸 격이 되어 노동자 유권자들에게도 단단히 찍혀버린 것이다. 차라리 조승수를 북구에, 김창현을 동구에 공천했으면 북구도 먹고 동구도 먹었을 것인데 참 어리석은 선택을 한 셈이 되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당선자 박대동 후보는 농소 1동에서 2,224표 차, 농소 2동에서 1,689표 차, 강동동에서 1,119표 차, 효문동에서 326표 차로 승리했고 2위 김창현 후보는 양정동에서 1,195표 차, 염포동에서 767표 차로 이겼다. 농소 3동과 송정동은 경합지였는데 개표 결과 두 후보가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 가졌다. 농소 3동에선 박대동 후보가 불과 11표 차로 이겼고 송정동에선 김창현 후보가 불과 14표 차로 승리했다. 국외부재자투표는 김창현 후보가 16표 차로 이겼고 국내부재자투표는 박대동 후보가 255표 차로 이겼다.
3.7.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북구 울산 북구 일원[울산북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윤두환(尹斗煥) | 34,831 | 2위 |
[[새누리당|]] | 38.50% | 낙선 | |
5 | 윤종오(尹鍾五) | 55,621 | 1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61.49% | 당선[13] | |
계 | 선거인 수 | 145,738 | 투표율 62.96% |
투표 수 | 91,762 | ||
무효표 수 | 1,310 |
||<-5><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808080><bgcolor=#808080> 20대 총선 울산 북구 개표 결과 ||
지역구 현역 의원인 박대동은 2015년에 자신의 보좌관에게 월급을 상납하게 했다는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고 결국 이 때문에 공천에서 배제되고 말았다. 대신 새누리당은 윤두환 전 의원을 공천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에선 16년 전 이곳에 도전했다가 9% 득표에 그쳤던 지역위원장 이상헌이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전 북구청장을 지낸 진보 성향 무소속 후보 윤종오도 출마 선언을 했다.<colbgcolor=#eee,#353535> 정당 | 새누리당 | 무소속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윤두환 | 윤종오 | ||
득표수 (득표율) | 34,381 (38.50%) | 55,621 (61.49%) | -21,240 (▼22.99) | 62.96% |
농소1동 | 45.13% | 54.87% | ▼9.74 | 58.25 |
농소2동 | 40.90% | 59.10% | ▼18.20 | 61.17 |
농소3동 | 36.39% | 63.61% | ▼27.22 | 61.36 |
강동동 | 52.70% | 47.30% | △5.40 | 59.24 |
효문동 | 37.74% | 62.26% | ▼24.52 | 58.93 |
송정동 | 37.35% | 62.65% | ▼25.30 | 67.44 |
양정동 | 27.44% | 72.56% | ▼45.12 | 64.89 |
염포동 | 30.35% | 69.65% | ▼39.30 | 61.73 |
후보 | 윤두환 | 윤종오 | 격차 | |
거소·선상투표 | 56.81% | 43.19% | △13.62 | |
관외사전투표 | 37.13% | 62.87% | ▼25.74 |
보수 후보 하나에 진보 후보가 둘인 상황이라 이대로라면 야권의 필패였다. 그래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고 결국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었다. 야권 단일 후보로 진보 성향 무소속 윤종오 후보가 출마했고 대신 이상헌 후보는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26번에 배정되었다. 그렇게 윤두환 VS 윤종오 두 윤씨 후보들 간 1 : 1 단판 승부를 벌이게 되었다.
개표 결과 38.5% : 61.5%로 무소속 윤종오 후보가 득표율 23%, 득표 수 21,240표란 엄청난 격차로 새누리당 윤두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날 동구에서도 같은 진보 성향 무소속 김종훈 후보가 새누리당 안효대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로써 노동자의 도시 울산에 다시 한 번 진보의 바람이 불게 되었다.
한편, 윤두환 후보는 본인이 3선을 지낸 이곳에서 득표율 40%도 얻지 못하고 처참하게 패배하는 개망신(...)을 당해 이제 경쟁력이 없어졌음을 몸소 증명하고 말았다.
윤두환 후보가 이렇게 처참하게 패배한 이유는 상대 후보 윤종오가 북구청장 재직 시절 평이 좋은 편이었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본인이 유권자들에게 찍힌 게 컸다. 우선 그는 7년 전 허위사실유포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전력이 있어 그 점에서 눈밖에 났는데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공약 보다는 윤종오 후보가 과거 통합진보당 소속이었다는 이유로 케케묵은 색깔론, 종북몰이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윤종오 후보는 특전사 출신이라# 종북몰이가 먹히긴커녕 오히려 상이군경회,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 군인단체 회원들까지 나서서 윤종오 지지선언을 했고 결국 윤두환은 "정정당당하게 이길 자신 없으니까 색깔론이나 들먹이냐?"는 식으로 유권자들에게 단단이 찍혔고 결국 대패로 귀결되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윤종오 후보는 농촌 지역인 강동동과 거소 및 선상투표를 뺀 모든 동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농소 1동에서 1,238표 차, 농소 2동에서 2,612표 차, 농소 3동에서 무려 4,714표 차로 크게 이겼다. 그리고 효문동에서 3,093표 차, 송정동에서 2,739표 차로 이겼으며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는 양정동에서 2,787표 차, 현대모비스 공장이 있는 염포동에서 2,326표 차로 이겼다. 그리고 관외사전투표에서 1,515표 차, 국외부재자투표에서 35표 차로 승리하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반면에 윤두환 후보는 강동동에서 234표 차, 거소 및 선상투표에서 35표 차로 이기는데 그쳤다.
이후 윤종오 의원은 동구의 김종훈 의원과 함께 2017년 9월에 새민중정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한 달 후엔 민중연합당과 합당해 민중당을 결성하고 원내대표로 취임했다. 그러나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었고 1심에선 벌금 90만원 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유지했지만 2심에선 벌금 300만원 형이 선고되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을 경우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한다.
결국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원 형이 확정되면서 윤종오는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리하여 2009년 재보궐선거 이후 9년 만에 다시 재보궐선거 실시가 확정되었다.
3.8. 2018년 재보궐선거
북구 울산 북구 일원[울산북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상헌(李相憲) | 49,647 | 1위 |
| 48.47% | 당선 | |
2 | 박대동(朴大東) | 29,916 | 2위 |
[[자유한국당|]] | 29.21% | 낙선 | |
3 | 강석구(姜錫求) | 6,094 | 4위 |
[[바른미래당|]] | 5.95% | 낙선 | |
6 | 권오길(權五吉) | 14,974 | 3위 |
[[민중당(2017년)|]] | 14.62% | 낙선[15] | |
7 | 정진우(鄭珍祐) | 1,093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07% | 낙선 | |
8 | 박재묵(朴在默) | 696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0.6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58,879 | 투표율 65.53% |
투표 수 | 104,110 | ||
무효표 수 | 1,690 |
||<-6><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004ea2><bgcolor=#004ea2> 2018년 재보궐선거 울산 북구 개표 결과 ||
<colbgcolor=#eee,#353535> 정당 | 더불어민주당 | 자유한국당 | 민중당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이상헌 | 박대동 | 권오길 | ||
득표수 (득표율) | 49,647 (48.47%) | 29,916 (29.21%) | 14,974 (14.62%) | +19,731 (△19.26) | 104,110 (65.53%) |
농소1동 | 47.70% | 32.96% | 11.84% | △14.74 | 61.64 |
농소2동 | 49.24% | 29.79% | 13.02% | △19.45 | 61.02 |
농소3동 | 50.56% | 27.11% | 13.99% | △23.45 | 64.06 |
강동동 | 47.97% | 34.66% | 11.48% | △13.33 | 61.67 |
효문동 | 44.13% | 30.36% | 18.22% | △13.77 | 60.27 |
송정동 | 47.22% | 30.55% | 14.35% | △16.67 | 66.73 |
양정동 | 46.14% | 23.80% | 23.66% | △22.34 | 66.19 |
염포동 | 45.87% | 27.66% | 20.48% | △18.23 | 63.66 |
후보 | 이상헌 | 박대동 | 권오길 | 격차 | |
거소·선상투표 | 35.21% | 30.05% | 11.74% | △5.16 | |
관외사전투표 | 54.58% | 24.15% | 12.01% | △30.43 |
울산 북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이상헌 | 박대동 | 격차 |
전체 | 52.2% | 28.4% | 23.8%p |
한편, 더불어민주당에선 2년 전 총선 때 윤종오에게 후보를 양보했던 지역위원장 이상헌이 출마 선언을 했다. 그리고 자유한국당에선 과거 이곳에서 19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박대동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고 바른미래당에서도 강석구 전 북구청장이 출마했다. 그 밖에 2명의 무소속 후보가 출마했다.
진보 표심이 이상헌 후보와 권오길 후보로 양분되어 있었기에 후보 단일화 목소리가 없진 않았지만 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80%를 오르내릴 정도로 고공 행진을 했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율 역시 50% 내외로 엄청 높았기에 단일화 없이도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걸었다.
개표 결과 예상대로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후보가 48.47% : 29.21%로 자유한국당 박대동 후보를 득표율 19.26%, 득표 수 19,731표 차로 누르고 첫 당선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민주당계 정당이 울산에 입성한 것은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울주군에서 열린우리당 강길부 후보가 당선되고 무려 14년 만의 일이었다.
한편, 지역구를 수성해야 할 중책을 맡았던 권오길 후보는 지역구 수성은커녕 자유한국당 박대동 후보에게 밀리며 3위로 처졌고 그것도 모자라 14.62% 득표에 그쳐 선거 비용 전액 보전조차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 때를 계기로 본래 노동 정당의 성지였던 울산광역시 북구는 이젠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차라리 정의당의 조승수 후보로 단일화를 했더라면 반드시 당선된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이렇게 무기력하게 깨지진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권오길 후보는 모든 동에서 박대동 후보에게도 밀리며 3위를 기록했다. 그나마 양정동에서만 박대동 후보와 불과 8표 차 접전을 벌였을 뿐이다.[16] 물론 이 두 사람 모두 이상헌 후보의 득표 수에는 현저하게 미치지 못했다. 그 밖의 지역에선 압도적인 격차로 3위에 머물렀다.
당선자 이상헌 후보는 모든 동과 거소 및 선상투표, 관외사전투표 등 모든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농소 1동에선 2,396표 차, 농소 2동에선 2,965표 차, 농소 3동에선 4,156표 차로 승리했고 강동동에선 883표 차, 효문동에선 1,863표 차, 송정동에선 1,679표 차, 양정동에선 1,305표 차, 염포동에선 1,010표 차로 박대동 후보를 꺾었다.
그리고 거소 및 선상투표에서도 이상헌 후보가 11표 차로 승리했고 마지막으로 관외사전투표에서도 이상헌 후보가 무려 3,449표 차로 박대동 후보를 찍어 누르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3.9.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북구 울산 북구 일원[울산북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상헌(李相憲) | 54,215 | 1위 |
| 46.34% | 당선 | |
2 | 박대동(朴大東) | 47,836 | 2위 |
[[미래통합당|]] | 40.89% | 낙선 | |
3 | 김도현(金到賢) | 1,120 | 4위 |
| 0.95% | 낙선 | |
6 | 김진영(金鎭泳) | 11,571 | 3위 |
[[정의당|]] | 9.89% | 낙선[18] | |
7 | 최형준(崔亨準) | 761 | 6위 |
[[국가혁명배당금당|]] | 0.65% | 낙선 | |
8 | 박재묵(朴在黙) | 552 | 7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0.47% | 낙선 | |
9 | 박영수(朴英洙) | 923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0.7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73,616 | 투표율 68.16% |
투표 수 | 118,334 | ||
무효표 수 | 1,356 |
||<-6><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004ea2><bgcolor=#004ea2> 21대 총선 울산 북구 개표 결과 ||
정당 | 더불어민주당 | 미래통합당 | 정의당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이상헌 | 박대동 | 김진영 | ||
득표수 (득표율) | 54,215 (46.34%) | 47,836 (40.89%) | 11,571 (9.89%) | +6,379 (△5.45) | 118,334 (68.16%) |
농소1동 | 43.73% | 45.46% | 8.30% | ▼1.73 | 64.54 |
농소2동 | 47.84% | 40.97% | 8.61% | △6.87 | 66.68 |
농소3동 | 48.63% | 39.97% | 8.93% | △8.66 | 67.32 |
강동동 | 48.21% | 42.37% | 7.03% | △5.84 | 63.53 |
효문동 | 41.98% | 43.47% | 11.57% | ▼1.49 | 63.95 |
송정동 | 47.73% | 37.37% | 12.45% | △10.36 | 70.33 |
양정동 | 43.88% | 37.51% | 15.04% | △6.37 | 69.13 |
염포동 | 43.17% | 40.80% | 12.26% | △2.37 | 66.06 |
후보 | 이상헌 | 박대동 | 김진영 | 격차 | |
거소·선상투표 | 34.69% | 48.16% | 6.94% | ▼13.47 | |
관외사전투표 | 49.90% | 37.60% | 7.51% | △12.30 | |
국외부재자투표 | 81.67% | 10.0% | 6.67% | △71.67 |
울산 북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이상헌 | 박대동 | 격차 |
전체 | 44.6% | 44.2% | 0.4%p경합 |
미래통합당에서는 박대동 전 국회의원, 박상복 작가, 박천동 전 울산 북구청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했고 박대동 전 의원이 공천을 받으면서 이상헌 vs 박대동 리턴매치가 성사됐다.
정의당에서는 김진영 전 울산시의원이 예비후보로 등록했고, 민주노총 지지후보가 되면서 진보단일화가 성사되었다. 2018년에 비해 민주당의 지지도가 많이 깎인 상황에서 민주당vs통합당vs정의당의 3파전으로 진행되므로 상당한 접전이 예상되었다.
선거 당일 출구조사 결과는 44.6% : 44.2%로 이상헌 후보의 불과 0.4% 차 경합 우세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개표 결과는 경합지로 분류되지 않았던 서울특별시 송파구 갑이나[20] 송파구 을[21], 충청남도 공주시·부여군·청양군[22] 등보다 오히려 경합지로 분류된 이 곳이 1, 2위 후보 간 격차가 더 컸고 부산광역시 사상구[23] 결과와 비슷했다. 그만큼 이 곳 또한 보수 표심이 과대 표집되었거나 사전투표 비중 조정에 실패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개표가 시작되었는데 개표 초반에는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박대동 후보가 우세한 모습을 보이며 출구조사 결과를 뒤집어 엎는 듯했다. 그러나 사전투표함이 열리면서 다시 이상헌 후보의 표가 늘어나 급속도로 격차가 좁혀졌고 개표율 67.2% 시점에서는 단 2표 차까지 추격했다. 그리고 그 직후 이상헌 후보가 역전에 성공하며 박대동 후보와의 격차를 계속해서 벌려나갔다.
그리하여 최종 개표 결과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후보가 46.34% : 40.89%로 미래통합당 박대동 후보를 득표율 5.45%, 득표 수 6,379표 차로 꺾고 재선에 성공해 울산 유일의 민주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었다. 민주당의 험지인 울산에서 정의당이 10% 가까이 표를 가져갔음에도, 문재인 정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에도 불구하고 5% 차로 당선됐다는 것은 이상헌 본인의 지역 내 기반이 매우 탄탄하다는 것을 입증한다.[24] 울산광역시에서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계 정당 국회의원은 이상헌 의원이 최초이다.[25][26] 영남 전역으로 확장해봐도 영남 내 비교적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낙동강 벨트가 아닌 지역에서 재선에 성공한 인물은 이상헌 본인과 부산광역시 남구 을의 박재호 의원까지 단 둘 뿐이다.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당선자 이상헌 후보는 농소 1동과 효문동을 제외한 모든 동에서 승리했다. 먼저 농소 2동에서 1,388표 차, 농소 3동에서 1,628표 차, 강동동에서 436표 차, 송정동에서 1,878표 차, 양정동에서 368표 차로 승리했고 염포동에선 불과 133표 차로 신승했다. 그리고 국외부재자투표에서 43표 차, 관외사전투표에서 이상헌 후보가 1,058표 차로 크게 이기면서 결국 이상헌 후보가 지역구 수성에 성공했다.
반면, 박대동 후보는 오직 농소 1동에서 301표 차, 효문동에서 219표 차, 거소 및 선상투표에서 33표 차로 이기는데 그쳤다. 그나마 농소 1동과 효문동도 이상헌 후보와 김진영 후보의 득표율 합이 박대동 후보의 득표율보다 더 높았다.
한편, 박대동 후보는 울산 내 6개 선거구 대부분에서 미래통합당 동료들이 당선되었는데 본인 혼자만 낙선하는 아픔을 겪고 말았다. 아울러 울산에서 최초로 민주당 소속 후보에게 2회 패배한 보수 정당 후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부산에서는 최거훈, 손수조[27], 박민식, 김척수까지 민주당 후보에게 연속 패배한 인물이 4명이나 있고 경남에서도 김정권, 홍태용 두 명이 있지만 울산은 박대동이 최초이다.[28] 박대동 개인으로서도 이전에 정의당 조승수 전 의원에게 패배한 것까지 해서 총 3번째 낙선이다.
정의당은 과거 조승수 의원이 재선을 지낸 곳이자 진보 진영이 그나마 비빌 수 있었던 이곳에서 10%에도 못 미치는 득표율을 기록해 선거비 보전도 못 받고, 민주당 후보 낙선에도 기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로는 울산 북구의 인구 구조가 바뀌기도 한데다[29], 직전에 나왔던 윤종오보다도 이번에 나온 김진영 후보의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30] 특히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정의당이 15% 넘게 득표한 것[31]에 비춰 보면 더욱 득표력이 아쉬운 부분.
그렇기에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제 노동자의 도시에서도 교두보를 탄탄하게 다졌다는 희망을, 진보진영에서는 이제 울산도 더 이상 자신들의 교두보가 아님을 알려준 선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3.10.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북구 울산 북구 일원[울산북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2 | 박대동(朴大東) | 49,155 | 2위 |
| 42.88% | 낙선 | |
7 | 윤종오(尹鍾五) | 63,188 | 1위 |
| 55.12% | 당선[33] | |
8 | 박재묵(朴在默) | 2,277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8% | 낙선 | |
| | 사퇴[34] |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계 | 선거인 수 | 176,056 | 투표율 66.26% |
투표 수 | 116,665 | ||
무효표 수 | 2,045 |
||<-5><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d6001c><bgcolor=#d6001c> 22대 총선 울산 북구 개표 결과 ||
정당 | 국민의힘 | 진보당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박대동 | 윤종오 | ||
득표수 (득표율) | 49,155 (42.88%) | 63,188 (55.12%) | -14,033 (▼12.24) | 116,665 (66.27%) |
농소1동 | 47.78% | 50.28% | ▼2.50 | 64.42 |
농소2동 | 41.17% | 57.11% | ▼15.94 | 65.15 |
농소3동 | 39.74% | 58.77% | ▼19.03 | 64.25 |
강동동 | 47.44% | 50.96% | ▼3.51 | 62.45 |
효문동 | 44.97% | 52.98% | ▼8.01 | 61.03 |
송정동 | 41.74% | 56.48% | ▼14.74 | 68.32 |
양정동 | 37.78% | 60.09% | ▼22.31 | 64.51 |
염포동 | 40.53% | 57.50% | ▼16.97 | 64.83 |
후보 | 박대동 | 윤종오 | 격차 | |
거소·선상투표 | 55.87% | 37.99% | △17.88 | |
관외사전투표 | 44.78% | 51.11% | ▼6.32 | |
국외부재자투표 | 29.09% | 69.09% | ▼40.00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박대동 | 윤종오 | 격차 |
전체 | 38.7% | 59.6% | 20.9%p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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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연합의 내부 합의에 따라 2024년 2월 21일 더불어민주당과 진보당이 후보를 단일화하기로 결정했으며, 진보당 윤종오 전 의원이 후보로 나서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전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이로 인해 경선 없이 바로 윤종오로 단일화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상헌 전 의원은 단일화 결정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고 반발하며, 수십년 몸 담은 당이니만큼 탈당은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무소속이나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합류도 배제하진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국민의힘 입당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이상헌 전 의원은 2024년 3월 4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북구 선거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으며, 당선 후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겠다고 밝혔다. #
이때까지만 해도 진보당이 단일화 경선에 부정적이라 3자 구도가 될 것으로 보였지만, 2024년 3월 20일 진보당 윤종오 후보가 대승적 차원에서 무소속 이상헌 후보의 단일화 경선 제안을 전격 수용하면서 민주진보 진영의 단일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
2024년 3월 21일, 단일화 방안이 나왔는데 여론조사 질문 문항은 '국민의힘 박대동 후보에 대한 야권 단일후보'의 경쟁력을 묻는 것으로 하였다. 경력은 '무소속 현 국회의원 이상헌'과 '진보당 전 국회의원 윤종오'로 표기하기로 합의했다. 3월 23일부터 3월 24일까지 단일화 경선이 진행됐고, 그 결과 진보당 윤종오 후보가 승리했다. #
무소속 이상헌 후보와의 단일화 이전의 여론조사 꽃 조사에선 국민의힘 박대동 37.2%, 진보당 윤종오 32.7%로 경합 열세였지만, 야권 단일화 이후인 2024년 4월 4일 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선 윤종오가 오차 범위를 한참 넘어서 무려 25.2%p를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개표 결과 진보당 윤종오 후보가 여유있게 승리하면서 약 7년 만에 국회에 복귀한다. 윤종오 후보는 국민의힘 박대동 후보를 상대로 모든 동에서 승리하면서 완승을 거뒀다. 박대동 후보는 거소·선상투표에서만 윤종오 후보에게 앞섰다.
[1] 북구에는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공장이 있고 동구에는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공장이 있다. 언급된 회사들 모두 노동조합의 위세가 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편이라고 평가받는 곳이다.[2] 나머지 지역구는 모두 미래통합당이 차지했다. 물론 동구는 결과론적으로 민주-진보 단일화만 했어도 의석 확보가 여유있게 가능했으나 단일화 실패로 보수 후보가 당선되었다.[울산북구] 농소1동, 농소2동, 농소3동, 강동동, 효문동, 송정동, 양정동, 염포동[울산북구] 농소1동, 농소2동, 농소3동, 강동동, 효문동, 송정동, 양정동, 염포동[5] 현재의 창원시 성산구.[울산북구] 농소1동, 농소2동, 농소3동, 강동동, 효문동, 송정동, 양정동, 염포동[울산북구] 농소1동, 농소2동, 농소3동, 강동동, 효문동, 송정동, 양정동, 염포동[울산북구] 농소1동, 농소2동, 농소3동, 강동동, 효문동, 송정동, 양정동, 염포동[9]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와 단일화[울산북구] 농소1동, 농소2동, 농소3동, 강동동, 효문동, 송정동, 양정동, 염포동[11] 단, 진보신당 측에서 통합진보당에 모두 다 합류한 건 아니고 소위 '노심조'라 부르는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 주류 세력들만 통진당에 합류했고 비주류들은 합류를 거부하고 진보신당을 지켰다. 훗날 이들은 당명을 노동당으로 고치게 된다.[울산북구] 농소1동, 농소2동, 농소3동, 강동동, 효문동, 송정동, 양정동, 염포동[13] 야권 단일 후보[울산북구] 농소1동, 농소2동, 농소3동, 강동동, 효문동, 송정동, 양정동, 염포동[15] 민주노총, 정의당, 민중당, 노동당 단일화 후보[16] (박대동) 1390표 : 1382표 (권오길)[울산북구] 농소1동, 농소2동, 농소3동, 강동동, 효문동, 송정동, 양정동, 염포동[18] 민주노총, 정의당, 민중당(강진희), 노동당 단일화 후보[19]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을 했던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전과 10건(...)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20] 출구조사 상 45.9% : 53.4%로 미래통합당 김웅 후보의 우세로 예측. 실제 개표 결과 48.02% : 51.2%로 김웅의 3.18% 차 승리.[21] 출구조사 상 43.3% : 53.2%로 미래통합당 배현진 후보의 우세로 예측. 실제 개표 결과 46.04% : 50.46%로 배현진의 4.42% 차 승리.[22] 출구조사 상 42.9% : 52.5%로 미래통합당 정진석 후보의 우세로 예측. 실제 개표 결과 46.43% : 48.65%로 정진석의 2.22% 차 승리.[23] 출구조사 상 43.7% : 53.6%로 미래통합당 장제원 후보의 우세로 예측. 실제 개표 결과 46.54% : 52.03%로 장제원의 5.49% 차 승리.[24] 더군다나 북구 지역은 경주시와 인접해있어 TK 출신 유권자도 상당히 거주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대단한 일이다.[25] 강길부는 초선만 민주당계 정당에 속했고 재선부터는 보수 정당 소속으로서 당선되었다. 더군다나 원래 한나라당 당적을 갖고 있다가, 2002년 울산시장에서 공천 탈락된 후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한 케이스니...[26] 여담으로 공단권에서 현대자동차/중공업과 아무 연관 없이 재선한 유일한 후보이기도 한다.[27] 이 중 한 번은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긴 했지만 정작 손수조 본인은 민주당 후보에도 밀려서 3위에 그쳤다. 그러므로 이 건도 카운트한다.[28] 경남에서 3번 낙선한 강기윤이나 울산에서 2번 낙선한 윤두환 등은 모두 민주노동당-정의당 등 진보 정당 후보에게 패배한 경우이므로 제외한다.[29] 실제로 강동동 등의 개발로 3040대가 많이 유입되고 있다.[30] 윤종오는 전직 북구청장인데 비하여, 이번에 나온 후보는 시의원 경력이 전부다. 만약 조승수가 음주운전을 안했거나 윤종오가 만약 안 짤리고 출마했다면 꽤 높은 득표율을 얻었을 것이다.[31] 울산광역시 중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이었다.[울산북구] 농소1동, 농소2동, 농소3동, 강동동, 효문동, 송정동, 양정동, 염포동.[33] 진보당, 더불어민주당, 새진보연합 단일 후보
민주노총 지지 후보[34] 진보당 윤종오 후보와 단일화
민주노총 지지 후보[34] 진보당 윤종오 후보와 단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