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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13:48:39

브루스 디킨슨

파일:아이언메이든 로고.png
현 멤버
브루스 디킨슨(보컬) | 스티브 해리스(베이스) | 니코 맥브레인(드럼) | 데이브 머레이(기타) | 에이드리언 스미스(기타) | 야닉 거스(기타)
이전 멤버
블레이즈 베일리(보컬) | 클라이브 버(드럼) | 폴 디아노(보컬) | 데니스 스트라튼(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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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12위13위14위1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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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위 부터는 출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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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디킨슨
Bruce Dickinson
파일:Bruce-Dickinson-2017-Cover-1000x720.jpg
본명폴 브루스 디킨슨 (Paul Bruce Dickinson)
출생1958년 8월 7일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노팅엄셔 워크솝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모교퀸 메리 런던 대학교
직업싱어송라이터, 조종사[1], 작가, 사업가
소속아이언 메이든(밴드)
활동1976 - 현재
장르하드 록, 헤비 메탈
악기보컬, 기타
1. 개요2. 생애3. 보컬 스타일4. 여담5. 디스코그라피
5.1. Iron Maiden(정규앨범)5.2. Bruce Dick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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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brucedickinson-920x584.jpg

아이언 메이든의 보컬리스트로, 파워 메탈, 프로그레시브 메탈 장르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보컬리스트이다. 롭 핼포드, 레미 킬미스터, 로니 제임스 디오, 저프 테이트와 함께 80년대 메탈씬을 대표했던 보컬.

2. 생애

1958년 8월 7일 브루스 디킨슨은 밴드의 다른 멤버들과 비슷한 노동계급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는 군부대에서 정비공으로 일했고, 어머니는 신발 가게에서 파트 타이머로 일했다. 브루스 디킨슨은 공립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했는데 중산층 출신 아이들로 구성된 학교에서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생각했다. 학업과 친구들에게서 멀어진 아웃사이더에게 위로가 된 것은 음악이었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딥 퍼플, 레드 제플린, 아서 브라운 같은 뮤지션들을 통해 록 음악에 열광했다.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공립학교를 그만둔 그는 이후 동네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학교를 마친 후 6개월 남짓 예비역 군부대에서 보내기도 한 디킨슨은 명문 퀸 메리 런던 대학교 인문학부에서 역사를 전공하여 인문학사 학위를 받는다.[2] 대학에서 공부하는 와중에도 음악은 디킨슨에게 1순위였다. 이 시절 만나 사귄 여성은 보컬 트레이너였는데, 여자친구를 통해 디킨슨은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스스로도 발성 공부를 하는 등 점차 프로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여러 밴드를 전전하던 디킨슨은 1979년 영국 근교를 무대로 활동하던 샘슨의 보컬로 영입되었다. 당시 샘슨과 한 무대에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어울리던 그룹 중 하나가 아이언 메이든이었다.

고등학교는커녕 중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악기를 잡고 지역 클럽에서 활동하는 멤버들이 많았던 당시 메탈 씬에서 단과대학이나 동네마다 있는 흔한 지역 예술대학도 아닌 퀸 메리 런던 대학교라는 좋은 대학을 졸업한 브루스 디킨슨은 가방 끈이 긴 편이었다.[3]역사를 전공하고, 고전 문학과 밀리터리에 관심이 많았던 디킨슨은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는 밴드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만족하는 듯한 샘슨 멤버들에게 실망한다. 나중에 동료가 되는 스티브 해리스처럼 '큰 그림' 을 그릴 줄 알았던 디킨슨에게 폴 디아노의 탈퇴 이후 보컬을 찾던 아이언 메이든의 매니저 로드 스몰우드가 오디션을 볼 것을 권하고 브루스 디킨슨은 이를 받아들인다. 성공적인 오디션 후 팀의 공식 보컬이 된 브루스 디킨슨은 1981년 10월부터 정식 공연에 프런트 맨으로 등장한다.

이때부터 그 인생의 절정이 시작되었으며 전설이 시작된다. 밴드에 합류하자마자 80년대 헤비메탈의 이정표와도 같은 앨범 [The Number of The Beast]를 발표했고 이들의 최고 명곡 "The Number of The Beast", "Run to The Hills" 를 멋들어진 고음으로 뽑아냈다. 이들의 전성기는 그칠줄 모르고 질주하며 8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모든 밴드들이 그렇듯이 계속 달려온 이들은 슬슬 지쳐갔다. 특히 철저하게 짜여진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밴드는 비슷한 패턴으로 움직였고 음악도 늘 비슷하게 이어지고 있었고 새로운 시도를 원하던 브루스는 더 실망하게 되고 심지어 6집 [Somewhere in Time]에서는 곡에 참여도가 전무한 상황까지 이어졌다. 이후 90년대 마지막 이들의 명작이라 할 수 있는 [Fear of The Dark]를 마지막으로 1993년 밴드를 탈퇴하고 솔로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사실 그의 솔로 활동은 팀을 탈퇴하기 전인 90년도에도 있었다. 첫 솔로 앨범 [Tattooed Millionaire]를 발표했다. 사실 이때 브루스는 영화 나이트메어 시리즈 5편의 영화 OST 제안을 받았고 후에 아이언 메이든의 대표곡중 하나가 되는 "Bring Your Daughter to The Slaughter"를 썼는데 여기에 실리지 못하게 된다. 이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14위에 오르며 그래도 선방한다. 그리고 탈퇴 후 솔로 2집, 3집을 발표하며 바쁘게 보냈다. 하지만 이 앨범들은 메탈의 상징이던 그의 앨범과 거리가 있었고 팬들 사이에서도 큰 반응은 없었다. 하지만 로이 지는 이후 새로운 리프들을 그에게 들려줬고 1997년 4집 [Accident of Birth]로 그가 헤비 사운드로 완벽히 회귀하였음을 천명하게 된다. 특히 함께 아이언 메이든을 등진 기타리스트 애드리안 스미스가 전격 참여하며 풍부한 사운드를 뽐내게 된다. 이후 로이와 함께 5집 [The Chemical Wedding]에서도 묵직하고 헤비한 사운드로 이전 전성기에 못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다 죽어가던 메탈 씬에 헤비메탈의 대 선배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후 세기말 팬들에게 거대한 선물을 하게 되는데 바로 밴드로의 복귀였다. 6년만에 돌아왔고 뉴 밀레니엄에 새로운 앨범 [Brave New World]를 발표하면 전 세계 팬들에게 컴백을 알렸다. 그 이후 외도 없이 계속 아이언 메이든과 함께하고 있으며 한 차례 2005년 솔로 6집 [Tyranny of Soul]만 발표했다. 하지만 19년이 지난 2024년 3월, 솔로 7집 앨범 [The Mandrake Project]로 복귀하였다. 65세라는 연령이 무색한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3. 보컬 스타일


트레이드 마크는 높은 피치에서 터져나오는 어마어마한 출력의 파워와 꽉 싸서내는 단단한 중고음. 그리고 미칠듯한 리듬감이다. 테너치고는 배음이 거의 바리톤에 가깝다.

로버트 플랜트, 이안 길런, 프레디 머큐리 등 70년대 하드록 보컬리스트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또한 피터 해밀[4] 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참고 특유의 어두운 느낌과 빼어난 작사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본인이 직접 말했다. 특히 이안 길런의 영향력이 가장 컸는데, 특유의 오페라틱한 발성에서 이런 점이 크게 두드러진다. A4~C5에 해당하는 음역대를 쉬지 않고 연속으로 쏟아내는 그 능력은 현재에도 유효하여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부분. 특히 데뷔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창법이 벨팅에 가까워지면서 중고음에서 나타나는 소리의 단단함은 퇴색되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 또한 헤비메탈 뿐만 아니라 발라드 넘버도 깔끔하게 소화할 만큼 소화가능한 장르의 폭도 넓다. 무엇보다 독보적인건 그의 리듬감이다. 아이언 메이든의 히트곡들 대부분이 파워 메탈의 시조답게 베이스와 트윈기타가 달려달려하는 빠른 BPM에 스티브 해리스의 베이스 멜로디까지 꽉 차있어서, 그냥 연주만 들어도 보컬이 조금만 타이밍 놓치면 연주와 겹쳐서 죽어버린다. 웬만한 감각 없이는 그냥 보컬 맞춰 가사 읽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멜로디가 꽉꽉차있는 연주와 같이 가면서도, 긴 가사의 운율을 살리면서 리드미컬하고 각 음절의 강한 어택을 살려주는 다이나믹한 보컬링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딕션이 정확하기까지 하니 리스너에게도 딱딱 꽂히는 것. 괜히 로니 제임스 디오롭 핼포드처럼 헤비메탈 보컬리스트의 본좌 계보에 올라가있는게 아니다.

초창기, 중반기, 후반기의 보컬 스타일에 변화가 꽤 있는 편인데, Powerslave 시절까지는 리릭 테너에 가까운 하이톤의 음색을 바탕으로 고음역대를 상연만 살짝 붙여서 날렵하게 내거나 혹은 중연까지 꽉 붙여서내는 두 가지 스타일이 모두 공존했고, 중음역대와 고음역대를 매끈한 레가토로 처리하면서 B4 이상의 고음역대에 스크래치도 맛깔나게 내고 무한한 성량을 자랑했었다. 사실상 리즈시기. 그러나 Powerslave 이후로는 무지막지한 라이브 투어를 견디기 힘들어지면서 C5 이상의 고음을 고의로 빼먹는 경우가 늘어났고 고음역대에서 후두가 계속 위로 붙는 인골라가 늘어나면서 대체적으로 입안에 갇힌 소리가 자주 났고 음역대 역시 하강했다. 심지어 이후엔 중음역대까지(!) 음정이 나가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 편[5]

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휴식을 어느 정도 가지게 되었는지 이전처럼 먹은 소리는 줄어들었으나 이전처럼 고음역대를 날렵하게 내거나 스크래치를 넣는 빈도는 확 줄어든 편. 메이든 탈퇴 이후로 솔로 앨범 내던 시절의 소리를 들어보면 이전의 무지막지한 고음역대는 많이 줄어든 대신 강한 비브라토와 어택으로 꽉꽉 채운 중고음역대의 벨트된 소리를 무기로 삼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로는 약간 낮아진 스핀토 테너 정도로 간주된다. 피지컬이 아무래도 젊은 시절만큼은 아닌지라 D5 이상의 고음에서 살짝 벌어지는 소리를 내긴 했지만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라이브를 보여주던 시기[6]

다만 The Final Frontier 앨범 이후로는 아무래도 노령에 가까워지고 암 수술까지 겪으면서 음색이 전체적으로 둔탁해졌고 A4 이상의 고음역대에서 성대가 벌어지는 소리가 늘고 꽉 싸여진 풍성한 중음역대가 성량저하로 인해 잘 나오지 않으면서 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핀란드에서 찍은 Tallinn 공연을 보면 암 수술 이후 다시 또 회춘을 한 건지 소리의 질이 많이 좋아졌다.

4. 여담

NWOBHM의 대표주자로서 데뷔 초부터 롭 핼포드와 자주 비교를 당했는데,[7] 둘은 함께 공연도 할 만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8]

아이언 메이든 활동과 더불어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민항기 조종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서 Asteraeus라는 항공사에서 항공사가 문을 닫게 되는 2011년까지 보잉 757 기종의 기장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월드 투어 때 아이언 메이든 전용기를 직접 몰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메이든 탈퇴 후 냈던 솔로 앨범 타이틀이 Skunkworks... 그 외에 책도 쓰고 영화 각본을 쓴 경력도 가지고 있다.# 영국의 한 양조장과 협력하여 Trooper라는 맥주를 만들기도 했는데, 110만 리터 가까이 팔리는 대박이 났다. 그 외에 펜싱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실력은 준프로급이었던 모양. 사실 말이 준프로지 국가대표 펜싱선수들의 스파링 상대로 활동했다. 엄청난 스펙 대마왕이자 만능인으로 세계 최고의 밴드 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 이며 파일럿이고 심지어 수리도 한다. 그리고 이제는 중견 맥주회사의 CEO이고 시나리오 작가.

헬로윈의 2대 보컬 마이클 키스케앙그라의 2대 보컬 에두 팔라시가 이 보컬리스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딥 퍼플의 열렬한 팬으로, 예전부터 이안 길런, 글렌 휴즈 등 딥 퍼플 멤버들과 자주 협연을 했다. 존 로드 추모 콘서트 때 글렌 휴즈와 함께 딥퍼플 시절의 곡을 불렀다.

1994년 12월 보스니아 전쟁 중인 상황에서 사라예보 국제공항과 구호물품의 보급로였던 사라예보 터널에서 아이언 메이든의 위문공연을 펼쳤다. 사라예보 시에서는 이 위문공연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2019년 4월 브루스 디킨슨에게 사라예보 명예시민을 표창했다.

5. 디스코그라피

5.1. Iron Maiden(정규앨범)

5.2. Bruce Dickinson


[1] 단순히 면장만 가지고 있거나 자가용 항공기 등의 아마추어 비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상업 항공사에서 기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2] 후에 대중음악 산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음악 박사학위도 받는다.[3] 오지 오스본, 토니 아이오미, 기저 버틀러, 글렌 팁튼 등등 많은 동시대 네임드 뮤지션들이 음악을 하기 전에는 3D 업종에 종사했거나 부모가 하층 노동자 출신들이었다.[4] Van der Graaf Generator의 보컬로 펑크와 프로그레시브 락에 큰 족적을 남겼다[5] Live After Death 공연실황에서 이런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6] ~ En Vivo 라이브 시절[7] 원년멤버는 아니지만 밴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점, 둘 다 첫 밴드가 아니라는 점에서 상당히 공통점도 많다.[8] 사실 밴드생활 경력으로 따지면 핼포드가 10년 선배[9] 19년 만의 솔로 앨범이다. 브루스 자신이 직접 연주한 봉고, 퍼커션 등의 사운드를 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