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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13:43:46

성선설

나무위키에 등재된 동아시아의 인성론 문서
맹자순자고자왕충정약용한유추연
성선설성악설성무선악설성선악혼설성기호설성삼품설음양오행설


1. 개요2. 동아시아3. 서양4. 정치적 관점5. 철학적 관점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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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언뜻 보면 다 깜짝 놀라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동네의 친구들에게 어린아이를 구해 주었다는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며, 어린아이를 구해 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맹자

성선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선진 유교 사상가 맹자가 주장한 학설. 인간의 성품은 선하게 태어난다는 주장을 의미한다.

성선설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맹자가 있으며, 옛 문헌을 살펴보면 맹자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성선설을 주장하였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보는 대조되는 관점에는 성악설이 있으며, 대표적인 학자는 고대의 철학자 순자다. 또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것으로 성무선악설이 있다.

위의 우물에 빠진 아이의 사례에서 언급했듯이,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구조할 의무가 있든 없든 대부분의 사람은 기꺼이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동한다는 것이다.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고서라도 위의 맹자가 말했던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구하는 것을 포함하여, 자살 시도자를 저지하려는 행동이나 우울한 사람을 위로하고 북돋는 행동 등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무슨 의도가 있어서, 자신이 이득을 얻거나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 사람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본디 선(善)을 취하는 입장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대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선행을 취하거나 약하고 불쌍한 이들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것들이 성선설의 근원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선설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독립적인 인간에게 오직 선함만을 타고났다고 착각될 수도 있으나 이 이론에선 '인간의 본성'과 '동물의 본능'이 구분되어 있고 인간이 둘 모두 동시에 갖고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본성'이 선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은 주변 환경이나 교육 등으로 '인간의 본성'을 발달시키지 못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악해질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끊임없이 선한 환경과 교육 등을 제공하여 선한 본성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연과학에선 기본적으로 성무선악설, 즉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은 선악의 관점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게 주류이다. 그러나 인류의 보편 윤리 중 일부가 생물학적 본성과 연결될 수 있다고 해석하며 이 성선설을 일부 수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2. 동아시아


현대 사회에서 맹자하면 성선설, 성선설하면 맹자를 떠올린다. 이는 반대 학설을 주장한 순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선 성선설에 대해 현대인의 가장 큰 오해는 성선설을 인간은 선한 존재 그 자체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맹자는 인간을 선한 존재가 될 가능성을 품은 존재라고 설파한다. 이게 무슨 차이냐 하면, 현대인은 단편적으로 "선하니까 계속 선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맹자는 "수양하면 내면의 선성을 쌓아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 그 수양을 방해하는 내외적인 문제가 그 수양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1]

때문에 맹자는 사람의 선성을 기르는 교육제도와 자기 수양 그 자체도 중요시하지만[2], 개혁의 대상을 사람 개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로 극대화한다.

반대의 경우인 순자와의 대조를 보면 더 두드러지는 데, 순자는 교육제도와 법률제도로 본래 악한 사람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순자의 사상을 이은 법가는 국민 개개인을 엄격히 통제하며, 한비자와 같은 철혈 재상을 탄생시켰다. 반면 맹자의 가르침에 심취한 정도전은 결국 역성혁명을 일으켜 나라의 정체성 자체를 바꾸려 시도했다.

즉, 맹자의 주장의 요체는 결국 "인간은 원래 선한 존재이고, 스스로의 수양으로 대장부가 될 수 있는 존재이나,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가 인간을 악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세상을 바로 잡아야한다."가 된다. 그리고 이 "바로잡힌 세상"으로 맹자는 현대식으로 말하면 최소한의 일자리 보장제 등 복지라 할 수 있는 항산(恒産)과 군자가 인의(仁義)로서 다스리는 왕도정치를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식의 "바로잡힌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역성혁명론이다. 왜냐하면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 즉 시스템의 정점이 바로 , 즉 정부이기 때문이다.

결국 성악설이든 성선설이든 "지금 돌아가는 세상 꼬라지가 정상은 아님"을 인정한다. 다만 그 악의 근원이 개인 내면에 있느냐, 아니면 돌아가는 세상 그 자체에 있느냐로 학설이 나뉜 것이다. 이 학설들은 철학의 대표적인 쟁점 중 하나인 인성론(人性論)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철학자인 맹자순자가 주장한 학설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이기 때문에 맹자=성선설, 순자=성악설과 같은 간단한 도식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

이고(李翶)의 성선정악설(性善情惡說)도 성선설에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만, 감정은 그런 본성을 발휘하는 것을 방해하므로 악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의는 한국 유학에도 영향을 끼쳐 이황기대승 사이에서 일어난 사단칠정과 같은 논쟁을 낳았다.

불교에서는 여래장 계열이 중생들의 번뇌보다 중생들 마음 속에 감춰진 불성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깨달아서 보살도를 실천해 중생을 이롭게 하고 해탈로 이끌 수 있는 자질은 모든 인간과 중생에게 두루 내재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 점에서는 성선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단, 유의해야 할 점은 불교에서는 선이나 악 중 어느 개념에도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점이다. 역시 여래장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은 선불교에서, 혜능 선사가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았을 때 당신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던진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다고 성무선악설이라고 보기도 어려운데, 인간의 기본 욕구를 인간의 본성으로 단정하지는 않으며 무명으로 말미암아 지은 업의 과보라고만 보기 때문이다. 또한 불교에서는 그러한 욕구를 따랐을 때 발생하는 현상계에서의 유익함과 해로움을 명확히 꿰뚫어 알 것을 요구하므로, '선악 따위는 없다'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부파를 막론하고, 불교에서는 인간이 전도된 망상으로 인해 계속 12연기에 의한 업을 지어가는 존재이며 이로 인해 선업과 불선업을 짓게 된다고 본다. 이를 보면 성악설과 비슷한 요소도 일부 엿보이면서도, 성악설이라고 무 자르듯이 분류하기도 어렵다. 성선과 성악을 동시에 인정하나 이 둘 역시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에 더 가깝다. 구체적인 실현 방법론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 12연기의 연쇄로부터 자유로워져 열반에 드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3. 서양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존재하는데, 에밀의 저자 루소가 성선설에 가까운 이론을 제시한 바가 있으며[3], 반대로 《리바이어던》의 저자 홉스성악설에 가까운 이론을 제시하였으며 일명 빈 서판(tabula rasa)이라고 불리는 학설이다.

언급된 철학자들은 자신이 주장한 자연상태의 인간 학설을 바탕으로 정치사상을 전개하였으며, 이러한 정치사상이 중세 정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슬람교의 교리도 성선설에 가까운 내용을 포함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 누구나 순수한 상태로 깨끗하게 태어나며, 기독교의 원죄론을 인정하지 않는다(피트라). 모든 인간은 무슬림으로 태어나지만 주변 환경에 의해 다른 종교를 가지게 된다고 주장된다. 따라서 비무슬림이라도 사춘기 이전 성욕을 가지기 전 어린 나이에 죽으면 바로 천국으로 직행한다는 교리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몰몬교) 또한 비슷하게 원죄를 부정한다.

기독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대립하던 펠라기우스파의 주장이 성선설에 가까우나(인류는 원죄 없이 "순수히 자신의 힘만으로도" 구원이 가능하다), 논쟁에서 패배해서 5세기경 이단 판정을 받았다. 다만 기독교 또한 인류의 영혼은 신(하느님)의 영혼을 본떠서 만들어졌지만 나중에 타락하게 되었다는 주장이고 자연법이 마음에 심어져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성선설적이라고 볼 수 있는 면도 부분적으로 있다. 예를 들어 가톨릭 성인이자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윤리학의 기본 전제는 '인간은 최선을 의욕한다'이다. 인간이 최선을 욕구하므로 결국은 최선 그 자체이신 신에 다다를 수밖에 없으나 악한 경향에 이끌린다고 보았다.

아나키즘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윌리엄 고드윈의 무제약적 비전 등이 있다.

사회주의, 그 중에서도 마르크스주의 계열은 특이하게도 성무선악설과 성선설을 모두 채택하는데,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서는 성무선악설을, 사회적 본성에서는 성선설을 지지한다. 역사 발전의 법칙에 따르면 사회는 유지, 계승, 발전하려는 것이 본성이고 이 본성에 따르는 것이 해당 사회에서 정의하는 '선'이기 때문.[4]

4. 정치적 관점

5. 철학적 관점

6. 관련 문서


[1] 성선설에 대한 비판으로 인간이 선하다면 왜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는 말은 사실상 성선설에 하고 있는 말이다. 맹자는 먹고 살고 수양을 할 만큼 여유로운 삶이 안되면 당연히 수양이 어렵고 이 원인은 사회와 정부 제도에 있음을 꼬집었다. 그래서 왕도정치와 역성혁명을 말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2] 맹자는 이때 자기 스스로 수양하는 방법으로 크게 두가지, 직양(直養)과 집의(集義)를 제시한다. 직양이란 명상법으로 사단과 같은 마음 속 선한 본성을 확충하는 일종의 정신수양이며, 집의는 직양을 통해 길러진 선함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의로운 행동을 꾸준히 하라는 것쉽게 말해 봉사활동이다. 이 두 가지가 일치될 경우 그 사람에게 쌓이는 선한 무언가(기품 혹은 항심)가 바로 호연지기이고, 이 호연지기가 충만한 사람이 바로 대장부이다.[3] 이른바 '고귀한 야만인'인데, 요약하자면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원시 시대의 인류는 억압과 불평등과 전쟁이 없었던 평화로운 낙원에서 살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20세기 중엽 이후로 세계 각국의 고고학자들이 오지의 원시부족들을 직접 찾아가서 그들을 오랫동안 면밀히 관찰한 결과, 원시부족들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으며 오히려 무자비한 폭력과 전쟁을 현대 문명에서보다 더 자주 벌인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고고학계에서 고귀한 야만인 이론은 부정되었다.[4] 조금 더 덧붙이자면 인간이 악해지는 이유는 특히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초과 이윤의 착취 때문이며 착취로 유지되는 자본주의가 사멸하는 것이 역사 발전의 법칙에 부합한다는 것이 자본론의 요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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