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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07:35:12

소비에트 궁전


본 사업 계획은 취소 또는 무산되었습니다.

본 문서에서 다루는 사업 계획은 본래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여러 사유로 인하여 취소되었습니다.
파일:external/russiatrek.org/moscow-palace-of-soviets-3.jpg
조감도
파일:소비에트 궁전 모형.jpg
설계 당시 제작된 모형
1. 개요2. 역사3. 부지 선정4. 공사5. 건설 중단6. 그 후7. 만약에 지어졌더라면?8. 대중매체에서9.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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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Дворец Советов(드보례쯔 싸볘토프) / Palace of the Soviets

20세기 중반에 소련이오시프 스탈린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마천루였으나 실제로 세워지진 못한 건물이다. 독일게르마니아 계획과 쌍벽을 이루는 독재자의 그릇된 과시욕의 상징물이라고 평할 만하지만 압도적인 크기 덕분에 지금까지도 종종 주목을 받고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2. 역사

1922년 12월 소비에트 대회 당시 회의 의장이었던 세르게이 키로프가 최초로 언급하였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상징하는 궁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이후 2년 동안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1924년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망한 후 한 학생이 "꼭대기에 레닌의 동상을 짓자"고 주장하면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1931년 2월 소련 정부는 공모전을 시작했다. 이 때 수많은 건축가들이 참여했는데 소련의 현지 건축가들은 물론, 프랑스르 코르뷔지에부터 미국의 건축가까지도 있었다.[1] 무려 15개의 도안이 제시되었는데 이 중에서는 지금 기준으로 봐도 별 손색이 없는 매우 현대적인 디자인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자국민이었던 보리스 이오판이 선정되었다. 여기에 똑같이 자국민이었던 블라디미르 슈추코와 블라디미르 겔프라이흐가 동참하면서 새로운 도안에 들어가게 된다.

이 세 명은 한 조를 구성했으며 소위 "이오판-슈추코-겔프라이흐"로 불렸다. 소련 정부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세웠다.

이오판-슈추코-겔프라이흐 조는 이에 맞춰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으나, 첫판부터 스탈린에 의해 퇴짜를 맞는 등 상당한 난항을 겪었다. 처음에는 높이가 너무 낮다고 퇴짜를 맞는 좀 황당한 일도 있었지만 결국 네 차례 수정한 끝에 최종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높이는 무려 415m이며 첨탑을 포함해서 495m, 층수는 총 100층이었다. # 참고로 70여년 뒤에 지어진 롯데월드타워가 554m로 겨우 60m 차이인데 그나마 이 쪽은 높이만 높지 옆으로는 홀쭉하지만 소비에트 궁전의 압도적인 부피까지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건물. 심지어 2020년대 기준 러시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라흐타 센터는 높이가 460m라 소비에트 궁전보다 높이가 낮다. 참고로 라흐타 센터는 2020년 기준으로 유럽 대륙 통틀어 가장 높은 건물이다![2]

3. 부지 선정

철거되는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모스크바는 여느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건물들로 가득해서 이 마천루를 짓기 위한 부지를 선정하는 데 큰 난항을 겪었다. 물론 당시에는 모스크바 면적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성냥갑 아파트(일명 흐루숍카)들이 없었던 터라 시 외곽에다 짓는 것도 가능했지만 용도가 정부 시설인 만큼 시의 중심부에 두는 것을 원했다. 하지만 애초에 중심부에 오래된 건물들이 가득한데 다 때려 부수는 건 불가능했으므로 난항이 발생했다.[3]

그러던 중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이 최종 부지로 선정되었는데, "종교는 아편"이라는 공산주의의 전형적인 특성상 이 시설은 "공산주의를 방해하는 원흉"으로 간주되었고, 이 성당을 없애버리면 충분히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은 1860년에 지어진 건축물이라서[4] 러시아인들에게는 철거 당시를 기준으로 지어진 지 70년밖에 안 된 건축물이라 철거하기에는 만만하다는 이유로 철거 대상으로 지목되는 불운을 맞았다. 70년이나 된 건축물이 뭐가 그리 오래된 게 아니냐고 하겠는데, 원래 러시아를 포함한 서양권 국가들에는 100년짜리가 우스워 보일 만큼 수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깊은 건축물들이 수두룩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이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 아니라면 근현대 건축물은 문화재 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5] 그러니까 당시의 소련인들의 입장에서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은 2022년의 한국인들 입장에서의 정부서울청사삼일빌딩 수준으로 그리 오래된 건물로 보이지 않았을 만큼[6] 이 건물을 문화재로 보는 인식이 없었다. 결국 1931년 8월 18일부터 철거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후 두 차례의 폭파에 걸쳐 성당은 완전히 사라졌다. 성당은 소련이 멸망한 후에 다시 세워졌다.

4. 공사

파일:소비에트 궁전 공사 현장.webp
파일:소비에트 궁전 공사 현장 2.webp
1940년 공사 현장의 사진. 기초공사가 진행 중인 모습이다.

이후 6년 간의 공백 끝에, 1937년 본격적으로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를 시작할 때 구 성당에 있던 골조를 옆으로 옮겼는데, 분명 성당을 철거했음에도 골조들은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 측에선 1943년을 완공 시점으로 잡았는데 이는 말하자면 약 500m에 가까운 마천루를 짓기 위해 6년을 소비한다는 뜻이다. 이보다 훨씬 높은 부르즈 할리파를 짓는데 약 4,5년이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너무 길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1930년대는 21세기보다 기술 수준이 낮았고 높이가 부르즈 할리파보다 낮더라도 규모와 면적은 크고 웅장하기 때문에, 4년이나 5년으로는 턱없이 기간이 짧았다.

그러나 사실은 1943년으로도 많이 부족했다. 만약 공사가 계속되었더라면 적어도 1940년대 후반에는 가야 완공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제정 시절에 성당을 짓기 전부터 부지가 원래 늪지여서 고층 건물을 지으려면 독일에서 히틀러가 추진했던 게르마니아 계획처럼 상당한 기초공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의 침공 전까지 1937년 이후 약 4년 간 기초공사만 한 상태였다. 물론 그래도 공사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5. 건설 중단

그러나 1941년에 독소전쟁이 일어나자 이 희대의 국난 앞에서 소련 정부는 즉각 이 마천루의 공사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소련이 독일에 비해 국력,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강해서 독일이 쳐들어오자마자 깨지고 물러났다면 모를까, 독일의 침공으로 인해 소련은 풍전등화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전쟁에 총력을 기울여도 아슬아슬했는데 그렇게 나라가 나치에게 넘어갈 판에 마천루 공사를 계속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껏 기초를 다 쌓아놨는데 이걸 철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놔둘 수도 없었기에 소련은 기초 자재들을 해체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이용해 모스크바 앞에 대전차 방어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얼마 못 가 독일군이 서서히 철수하기 시작했으나, 당장 독일군이 전쟁 중 파괴한 건물들을 복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남은 자재들을 독일군이 파괴한 시설들을 복원하는 데 사용했다.

1945년에 독일이 패망하며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피해가 극심했기 때문에 재건에 모든 역량이 집중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마천루 공사를 재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재추진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건축가가 전쟁 중 사망한 데다 도안마저 소실되었고 결국 공사는 영영 중단되었다. 이후 이 마천루를 추진하는 데 앞장섰던 스탈린은 1953년 사망했고, 후에 집권한 니키타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에 들어가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골조들도 죄다 철거되었다.

6. 그 후

흐루쇼프에 의해 소비에트 궁전 건설 계획은 완전히 백지화되었고 1958년 그 터에 초대형 수영장이 완공되면서 모스크바 시민들의 휴양시설이 되었다. 참고로 당시 모스크바 시민들의 반응은 수영장 건설에 대해서는 약간 떨떠름했는데 태초에 성당이 있었고 마천루를 짓겠다고 하면서 성당을 철거한 뒤에 쓰레기장이 되었다가 결국에는 들어서게 된 건 수영장이었다는 반응이었다.

해당 수영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문서의 2.2.2 문단을 참조.

7. 만약에 지어졌더라면?

그야말로 당시 최고층 빌딩이었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381m)를 제치고 세계 최고층 마천루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높이가 무려 495m이며 한때 세계 최고층 마천루였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452m)보다도 높았으므로 2004년 타이베이 101(509.2m)가 개장하기 전까지는 세계 최고층 마천루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예정대로 1943년에 완공되었으면 무려 61년 동안 저 기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마천루보다 높게 짓는 타워 계열까지 포함해도 1970년대 모스크바에 지어진 오스탄키노 탑이 완성되기 전까지 최고층 기록을 가지고 있을것이다. 또한 2020년대까지도 유럽 최고층 빌딩은 상트페테르부르크라흐타 센터인데 높이가 460m라서 소비에트 궁전보다 높이가 낮다. 다시 말해 2020년대까지 약 80년 이상 유럽 최고층 마천루 자리에 군림 할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른 마천루들과는 다르게 맨 위에 동상이 서 있다는 유니크한 특징이 살아있기 때문에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 낼수 있었을 것이다.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도 충분히 아름답기야 하지만 러시아에 이미 고명한 성당이 수두룩한지라 유니크함은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

다만 냉전 시기에는 그나마 체제 간에는 격화되지 않았었던 '마천루 경쟁'이 만약 이 건물을 만들었다면 체제 경쟁화되어 각 진영의 위신을 건 빌딩들이 미친듯이 올라가서 현실과는 또 다른 스카이 라인이 생겨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현실에서 우주 경쟁이 있었듯 소련이 세계 최고층 마천루 타이틀을 가져갔다면 미국에서도 분명히 실제 역사보다 더 높은 건물들을 경쟁적으로 올리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 건물을 완공했다면 나중에 소련이 망했어도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복원은 완전히 물 건너 갔을 것이다. 애초에 어느 나라던지 간에 저런 막대한 높이의 건물을 철거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을 건 물론이고, 보리스 옐친 시절부터 반공주의 성향이 강한 현재의 러시아 정권도 관광사업에 도움이 되는 랜드마크급 공산주의 건축물은 관광사업이라는 자본주의적 이유로 철거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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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됐을 시 모스크바스카이라인을 묘사한 합성 사진.

8. 대중매체에서

유녀전기의 코믹스 버전에서 루시 연방[7]의 수도 모스코를 묘사하는 장면 중 인민궁전과 매우 비슷한 디자인의 거대한 마천루가 연방 수도 모스코를 대표하는 상징적 건물로 묘사된다. 작 중, 이 건축물은 모스코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내부에 인민당 회의장이 있어 루시 연방의 수뇌부가 주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선전과 상징의 목적 뿐만이 아닌 연방의 정치 중심지 역할을 맡는 주요한 시설으로 보인다.

9. 기타

동시대의 독일 나치당세계수도 게르마니아를 구상하면서 국민대회당[8]을 포함한 거대한 건물을 구상했지만 역시 실제로 세워지진 못했다.

훗날 같은 공산권 국가인 루마니아북한주석궁을 본떠 인민궁전이란 거대한 건물을 지었다. 덩치는 소비에트 궁전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굉장히 크다. 그리고 루마니아 인민궁전의 경우 대리석만 90만 입방미터에 장식용 수정이 3500톤 넘게 들어가고 건물 내에 설치된 샹들리에만 천여개가 넘어간다는 순수 초호화 건축물이라서 절대 만만치 않다. 게다가 루마니아의 경우 인민궁전 건축을 포함한 차우셰스쿠의 돈지랄로 결국 동구권 붕괴 이후 인구의 10%가 해외로 돈 벌러 나가야 할 정도의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다. 루마니아 인민궁전의 사례에 비하면 소비에트 궁전은 차라리 양반이라고 할 정도.

저렇게 크진 않았지만 스탈린 시절에 스탈린 건축이라고 불리는 나름대로 거대한 마천루들을 동유럽 등지에 많이 박아놓았다. 바르샤바 같은 곳에 남아있는 스탈린 시대의 건물들은 동유럽의 극심한 반공 정서에 의해 혐오시설 취급을 받고 있다. 물론 루마니아나 폴란드나 웅장하게 만들어 놓은 게 아까워서 그냥 쓰고는 있다.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3에선 욱일제국 미션 8에서 아나톨리 체르덴코 서기장이 모스크바가 욱일제국군에 합락되자 소비에트 궁전 지하 격납고에서 타임머신을 실은 트윈블레이드 헬기로 도주를 시도한다.

Workers & Resources: Soviet Republic에선 모드 건물로 등장한다.


[1] 당시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직 냉전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과 미국은 사이가 그럭저럭 좋아서 미국의 크리스티 현가장치의 효시인 크리스티 전차를 수입해 BT 전차를 만들기도 했다.[2] 물론 높이가 540m 인 오스탄키노 탑이 소련 시대에 건설되었지만 타워로 분류되기 때문에 마천루는 아니다.[3] 공산주의 소련이 망하고 들어선 자본주의 러시아 연방 정부는 이러한 공산주의식 막가파 개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모스크바 시티 처럼 외곽에 마천루 거리를 만드는 식으로 다른 유럽 도시들처럼 도시 중심지 밖에 마천루를 건설한다.[4] 정확히는 1837년에 착공해서 1860년에 완공한 건물이다.[5] 사실 한국에서도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에 대한 대중적인 시각이 그닥 민감하지는 않다. 오세훈 시장이 서울특별시청 구 청사를 파사드만 남기고 철거했을때 전국적으로 맹비난을 받은 것은 해당 건물이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정권의 격랑기를 겪었던 서울특별시의 현대사를 상징하는 것이어서 그 역사적 가치가 막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등록문화재에 대한 보존의식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6] 2022년 기준으로 정부서울청사삼일빌딩은 완공된지 52년밖에 안 됐다.[7] 현실의 소비에트 연방과 비슷한 입지의 국가이다.[8] Volkshalle(폴크스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