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谷岬
1. 개요
홋카이도 왓카나이시 소야무라 일대의 곶. 곶을 둘러싼 소야무라와는 별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일본이 실효 통치하는 본토의 최북단으로 유명하다.[1] 이 곶 북쪽 라페루즈 해협(소야 해협) 너머는 러시아 사할린 크릴론곶으로 약 43km 떨어져 있다.'소야곶'의 '소야'(宗谷)는 소야곶 서쪽의 암초를 가리키던 아이누어 지명에서 온 것으로 아이누어로 '소야'는 바닷가, 암초를 의미한다고 한다.# 일본에서 소야곶과 크릴론곶 사이의 해협을 부르는 명칭인 소야 해협 역시 이 소야곶에서 따온 명칭이다. 그 외에도 왓카나이시 일대에서는 소야 종합진흥국, 소야 버스 등 '소야'가 들어간 것들이 많이 보인다.
곶 끄트머리의 위도/경도는 45°31′22″N / 141°56′11″E이다. 건너편 크릴론곶은 45°54′N / 142°05′E으로 약 27분 차이가 난다.
2. 시설
지형은 이곳 일대가 대체로 그렇지만 야트막한 언덕과 해안가의 좁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2] 땅의 비와 마미야 동상은 평지 해안 쪽에 위치해 있으며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평탄한 언덕 대지에 소야곶 공원이 나온다. 생각보다 공원 부지가 넓고 기념물의 종류가 다양하다.- 땅의 비(地の碑): 일본 최북단을 가리키는 이정표이다.
- 마미야 동상: 마미야 린조(間宮林蔵)는 에도 막부의 오니와반슈였는데 사할린 탐험에 나서 사할린이 육지와 연결되지 않은 섬임을 확인하고 측량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오늘날 유라시아 대륙과 사할린 사이에 존재하는 타타르 해협을 일본어로는 '마미야 해협'이라고 부른다.
- 라페루즈 비: 이 지역을 탐사한 프랑스인 라페루즈의 비이다. 이곳과 사할린 사이의 해협을 일본에선 소야 해협으로 부르고 세계적으로는 라페루즈 해협으로 부르고 있다.
- 기도의 탑(祈りの塔):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이다. 이는 사고기에 탑승한 일본인 승객이 한국인과 미국인 다음으로 많았기 때문인데, 실제로 사고 당시에는 대한항공이 일본 항공사들에 비해 운임이 저렴했기에 김포국제공항 도착 후 환승하여 일본으로 가는 사람이 많았다.
- 구 해군 망루: 2층짜리 건물이다. 안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옆 계단을 통해 2층과 높이가 같은 언덕으로는 올라갈 수 있다.
- 평화의 종 / 육아 평화의 종
- 미야자와 겐지 문학비
- 게스트하우스 알메리아(ゲストハウスアルメリア)
좀 더 안쪽으로 걸어가면 나오는 게스트하우스이다. 넓은 평원 위의 풍차가 인상깊다.# - 소야곶 신사
- 소야 해역 해군 전몰자 위령비(宗谷海域海軍戦没者慰霊碑)와 평화의 비: 1943년 일본 제국 해군에 의해 격침된 미 해군 잠수함 와후(Wahoo), 그리고 와후에 의해 격침된 일본 연락선 등의 추모를 위해 1995년 미일 합동으로 건설되었다.
동쪽에는 소야 어항이 있으며 항구 주변에 민가가 형성되어 있다. 최북단으로서 관광 수요도 있고 어항의 규모도 홋카이도 지정 지방항만으로# 이 일대 소야무라 내에서는 제일 크기 때문에 그나마 인구가 꽤 되는 편이다. 2023년 기준으로 소야곶의 인구는 525명으로,# 별로 많아 보이지 않으나 인근 소야무라의 여러 지역을 합친 것과 거의 비슷한 인구이다. 사실 왓카나이시 전체의 총 인구가 3만 명 가량이고, 왓카나이역 앞 주오 지역도 1천 명 정도의 인구이니 시에서 약 1시간 버스를 타고 나가야 있는 이 외곽 지역에 500명이나 사는 건 꽤 규모가 있다고 할 수 있다.[3] 숙박시설과 같은 여행자 시설도 이 일대에는 소야곶에만 있다.
3. 교통
왓카나이역에서 오니시베츠-하마톤베츠 방면(텐포쿠-소야미사키 선)[4] 소야버스를 타고 이동 가능하다. 하루 4편 운행하며 소요 시간은 약 50분이다. 운임(2023년 기준)은 편도 1420엔인데, 왓카나이역 버스 터미널에서 왕복권을 끊으면 왕복 2560엔(각각 1280엔)으로 좀 더 싸게 갈 수 있다.# 단일 요금제가 아니고 홋카이도 자체가 버스 요금이 좀 비싼 편이라 생각보다는 돈이 많이 든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시내버스로 이동한 경우 도착 후 40~50분 후에 왓카나이역 행 버스를 탈 수 있고, 다음 차는 2~3시간 후에나 오기 때문에 보통 그 정도만큼 구경하다가 돌아가게 된다.[5] 이곳 인근도 이 일대 치고는 그럭저럭 관광지로 개발이 되어있어서 숙박 시설은 있고 자고 가는 게 불가능하진 않지만 굳이 이곳에서 자고 가는 관광객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약 3,000엔 가량의 정기관광버스를 이용하면 2~3시간 코스를 도는데 그 중에도 소야곶이 포함되어 있다.# 그냥 버스로 가는 것과 요금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구글 맵 기준으로 왓카나이역에서 2시간 가량으로 표시된다. 왓카나이역이나 인근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주기 때문에 이를 활용할 수 있다.
4. 대중매체에서
왓카나이시가 매체에 등장하는 경우 백이면 백 소야곶이 나온다고 해도 무방하다. 오히려 왓카나이 시내의 장소보다 이곳의 땅의 비가 더 많이 출현하는 감이 있다.[6]바쿠온!!에서 주인공 일행이 홋카이도로 투어링을 가서 방문한다. 담임인 사루야마 사루코가 13번째 남자친구한테 차이고 소야곶의 절벽에서 바이크로 돌진해 투신한다. 다만 보면 알겠지만 사람 키 수준의 높이인 데다 작은 바위들로 경사로가 형성되어 있어 좀 다치고 바이크만 고장난다.
5. 여담
- 왓카나이시 일대 개척의 시작이 된 마츠마에 번의 교역소 소야 장소(宗谷場所)가 1685년 이곳 인근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그 당시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 아주 맑은 날에는 여기서 사할린 크릴론 곶이 보인다. 섬나라인 일본으로서는 쓰시마섬에서 보는 부산광역시의 모습, 류큐 열도 요나구니섬에서 보는 대만과 함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타국 영토이다.
- 본래 일본 최북단은 서쪽 레분 섬의 스코톤곶(スコトン岬)이었던 적도 있었다. 사실 소야곶은 북위 45도 31분 22초, 스코톤 곶은 북위 45도 27분 51초로 위도 차이는 3분(약 6km)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혼동할 만하다. 그래도 스코톤곶에서는 기존 기념비를 철거하기는 곤란해서인지 '최북한(最北限)' 정도로 표현을 고쳐서 계속 쓰고 있다.
- 이 '소야'라는 지명은 한국의 문헌인 표주록(1696-1697)에도 등장하는데, 표주록에서는 '소유아'(小有我)로 나온다.[7] 이 시기는 홋카이도 전역을 일본인이 개척하기 전으로, 표주록에서 이 일대는 아이누만이 거주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저자는 이 일대에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아 고생을 하며, 좀 더 아래로 내려간 계서우(溪西隅)[8]에서야 금광 일로 파견 나온 일본인과 만나고 홋카이도 최남단 마츠마에 번에 가서야 소통을 하게 된다.
동 문헌에서 인근의 저모곡/점모곡(諸毛谷/占毛谷), 지곡(志谷)은 섬이라는 묘사로 보아 리시리섬, 레분섬의 지명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1] 일본 정부에서는 러시아가 지배하는 이투루프(에토로후) 섬의 최북단을 일본의 최북단으로 본다. 쿠릴 열도 분쟁 참조. 참고로 실효 지배 영토 중 외딴 섬들을 포함한 최북단은 소야곶 앞바다에 있는 벤텐섬이라는 무인도이다.[2] 왓카나이 시가지의 왓카나이 공원 역시 이러한 지형이다. 왓카나이역이 해안가의 좁은 평지에 위치해 있다.[3] 위 PDF를 보면 외곽 지역은 인구가 50명도 채 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4] 오니시베츠 이남 구간은 텐포쿠선 대행버스로 하마톤베츠를 지나 나카톤베츠(中頓別), 오토이넷푸(音威子府)까지 갔으나 2023년 10월 1일부터 하마톤베츠 이남 구간은 수요응답형 버스로 분리되었다.# 소야곶 이후의 구간이므로 왓카나이에서 소야곶에 가려고 이 버스를 타는 사람에게는 별 상관 없는 변화이다.[5] 2023년 10월 개정 텐포쿠-소야미사키 선 시간표 기준으로 9:30, 13:30, 16:20, 19:30 왓카나이역 발 4편이 운행된다.#[6] 그래서 언뜻 왓카나이 시내에 있는 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위에서 보듯 차로 1시간은 가야 한다. 왓카나이 시내도 곶 지형으로 북단 끝은 있는데 거기는 노샷푸곶이라고 한다.[7] 해협 건너편 사할린은 아이누어 카르 푸트(kar put)를 음차한 '갈악도'(羯惡島)로 나온다.[8] 인근 테시오(天塩)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