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 전 주의해야 할 사항: 이 문서에 서술된 설정들은 공식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
실장석은 인터넷 팬 캐릭터로 시작했기 때문에 숱한 설정이 추가/삭제되면서 정립된 것이다. 특정인이 창조하여 관련 권리를 확보한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실장석에 대한 공식 설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실장석 매체는 재미를 위하여 개연성을 희생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연 설정을 용인해주는 경우가 많고, 개중에 호응을 많이 받는 설정이 있으면 그것이 주류로 자리잡는 역사를 거쳐왔다. 그러므로 실장석에 관한 설정은 작가에 따라서 다양하며, 지금도 작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여러가지 설정이 추가되고 떨어져나갈 수 있다. 여기에서 서술한 설정들은 본격적으로 실장석이 학대 캐릭터로 자리매김한 시절의 일본발 작품들과 2015년 이후의 한국 실장석 관련 작품들의 설정의 대략적인 시류(時流)를 서술한 것이며 당연히 작가가 보편적인 설정과 다른 설정을 짜든 말든 전적으로 작가의 자유다. 따라서 작품의 재미를 떠나 어떤 설정이 맞고 어떤 설정이 틀린가에 관하여 하는 모든 논쟁 및 설정이 틀렸다는 지적은 근본적으로 의미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서를 비롯한 설정을 읽다가 '이건 아닌 것 같은데?'나 '이건 보충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실장석이라는 컨텐츠는 그런 개인의 의문을 상상력으로 보충하고 소재로 사용함으로써 작품을 탄생시켜왔다. |
• 편집시 유의 사항 |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몇몇의 설정들을 제외하면 각 설정에 대하여 완전한 확정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설정 및 사실에 전부 ~이다 같은 일반화를 자제하도록 하며 '이러한 경향성이 있다'는 식의 기술을 권장한다. 콘텐츠의 다양성을 위해 학대, 애호, 관찰 및 기타 마이너 장르 등 각각의 장르에 한한 편향적인 서술 역시 되도록 자제할 필요가 있다. |
1. 개요
실장석은 컨텐츠의 원본인 스이세이세키에서 따온 점이 많다. 사람을 '인간(닝겐)'이라고 부른다든지, 건방진 점이라든지, 식탐이 강하고 말 끝마다 '데스'가 붙는 말투라든지... 이런 스이세이세키 베이스에, 실장석을 향한 학대를 정당화하기 위해 외모를 흉측하게 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혐오하는 인간의 나쁜 행동 습성들, 혹은 도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닭둘기 등의 해수(害獸)와 일부 설치류의 부정적인 특성[1]을 비현실적으로 극대화 해서 만들어진 것이 실장석이다.물론 애호를 위한 작품이라면 후술할 개념실장(양충)으로 분류되는 성격을 주로 차용하고, 이하의 혐오감을 돋우는 설정들을 사용하지 않거나 제한적으로 사용하며 독자가 대상을 호감 가도록 할 만한 요소들을 이용할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학대물이 많은 비중을 갖는 실장석 콘텐츠 특성 상, 부정적인 특징이 많은 편이다.
2. 언어
해당 어휘에서 착안한 인터넷 용어에 대한 내용은 참피체 문서 참고하십시오.
말투는 몇몇 단어를 유아어로 사용하거나 강세가 강해 경음이 나오는 것, 그리고 "데스" 부분이 가타카나인 것을 제외하면 성체의 기준에서 원본인 스이세이세키의 말투와 다른 점이 없다. 즉, 한국에서 '프니프니 해주는레후', '콘페이토 주는테치' 등으로 기괴하게 번역되는 것과 달리 일본 원어민의 관점에서 보자면 제대로 된 사람 말을 한다는 것. 하지만 한국에서는 번역체 말투가 실장석의 인간같으면서 인간같지 않은 것을 표현하기 최적인지라 큰 개성 중 하나로 사용된다.
실장석 창작물들이 한국에 들어올 당시 대부분의 작품들이 번역기를 거쳤기 때문에, 대부분의 용어들은 번역투가 적용되어 그대로 굳어져 전해오고 있다. '독라'니 '빵콘'이니 하는 한자 직역이나 일본어 직독도 그러한 번역투의 영향을 받은 용어이다. 이러한 번역투는 일종의 관습에 가까워졌기에, 현대에는 일본 창작물을 번역하든 혹은 한국에서 직접 창작하든, 실장석 창작물 특유의 느낌을 살리려는 의도로 번역체를 흉내낸 한본어인 경우가 잦다.
특히 한국어 번역에서는 실장석의 말투를 서술어 + 어미 은/는 + 데스 어미군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콘페이토를 먹는다 데스'가 아니라 '콘페이토를 먹는 데스', '작아 레후'가 아니라 '작은 레후'와 같은 식이다. 이는 초창기(2006년 전후) 실장 만화를 낮은 성능의 번역기로 번역하던 시절, 번역기가 가타카나인 어말을 고유명사로 인식하고 그 앞부분을 명사의 수식어로 인식해서 발생한 번역체가 그대로 문화로 정착한 것이다.[2] 초기에는 유아어와 강세 같은 혀짤배기 발음을 살리는 의역도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 현재와 같이 정착한 편.
번역체 설정이 한국에서 좀 더 발전된 사례가 있었는데, 2012~2014년 경 국내에서는 국산과 일본산 번역본을 가리지 않고 실장석이 주인을 '남편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어로 '주인님'을 뜻하는 'ご主人様(고슈진사마)'를 일본 여성들이 남편을 부를 때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 초창기 번역자들이 이를 '남편님'이라고 번역해버린 것이다. 오역이라면 오역이겠지만 정작 이 호칭이 남자 주인을 향한 실장석들의 분충스러움을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탁월했던지라 일부러 남편님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아졌고, 덕분에 성체실장에게 '인간을 남편으로 여기고 성적으로 달라붙는' 새로운 기믹을 추가해주었다.[3]
어말은 실장석 성체를 기준으로 '데스'가 사용되고 이에 실장석의 성장단계, 아종에 따른 파생형이 사용된다. 초기에는 일본에서도, 그리고 한국 번역본에서도 중구난방으로 쓰였지만, 시간이 흘러 설정들이 정립되면서 이하의 표와 같이 통일되었다. 이 설정을 차용하지 않는 작품에서도 나이가 어릴 수록 혀짤배기 발음이나 유아어 사용 경향이 강해지고, 특히 후미어 '데스'가 반드시 변하기 때문에 구분에 어려움은 없다.
종류 | 종결어미 | 웃음소리 | 울음소리 | 비명소리 | 피격음 | 아첨소리 |
저실장 | 레후 | 레프프 | 레훼엥/레에엥 | 레뺘앗/레삐잇 | 레벳/치벳 | 레후웅 |
엄지실장 | 레치/레츄 | 레프프/치프프 | 레에엥/치에엥 | 레챠앗 | 레벳/치벳 | 렛츙/레츄웅 |
자실장 | 테치/테츄 | 테프프/치프프 | 테에엥/치에엥 | 테챠앗 | 치벳/지벳/테벳 | 텟츙/테츄웅 |
중실장 | 테스 | 테프프 | 테에엥 | 테샤앗 | 지벳/테벳 | 테스웅 |
성체실장 | 데스 | 데프프 | 데에엥/오로롱 | 데샤앗/데갸앗 | 지벳/데벳 | 데스웅 |
가타카나로 표기된 단어를 전부 일본어 / 한자 독음으로 그대로 읽을지, 특정한 낱말을 번역할지는 역자마다 다르며, 더 나아가 한국어로 실장석 창작물을 제작할 때 어떤 단어를 일본어로 쓸 지도 작가마다 다르다. 다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높은 확률로 일본어 그대로 쓰이는 표현들은 몇 개 있다.
- 자신은 와타시 or 와타치[4]
- 상대는 전부 오마에[5]
- 대명사들의 복수격인 와타시타치 및 오마에타치
- 사람은 닝겐/닌겐[6]
- 자실장 이하의 실장석이 자매를 지칭할 때 오네(언니) 또는 이모토(여동생), 친실장이 아닌 성체실장은 오바(아줌마).[7]
- 친실장인 성체실장은 평범하게 "마마".
- 지칭어미인 ~상이나 ~짱[8][9]
- 주인 등을 높여 부를 경우 높임말로 사마(樣)를 쓰기도 한다.
- 의태어 중에서는 2음절 반복어가 자주 나오며, 이 중 몇몇은 가끔 한국어로 현지화하기도 한다.
- 사람을 매혹시켰다고 생각했을 때의 메로메로.
- 콘페이토나 초콜릿 같은 달콤한 음식을 지칭할 때 쓰는 달콤하다는 뜻의 아마아마. 가끔 '달콤달콤'으로 현지화되기도 한다.
- 맛 좋은 음식을 지칭할 때 쓰는 우마우마.[10] 한국어 '맛나맛나'로 현지화하는 경우도 있다.
- 실장석들이 좋아하는 거품 목욕을 지칭하는, 거품이 이는 것을 묘사하는 의태어 아와아와
- 그 외에 한국에서는 잘 안 쓰이지만 콧노래를 묘사하는 보에보에[11]도 있으며, 대부분의 의태어가 2음절 반복인 걸 확장하여 "아파아파는 싫은 테챠아!" 처럼 같은 뜻의 2음절 단어를 두 번 반복하는 말투가 등장하기도 한다.
- 영단어 Celebrity의 일본식 축약어로, 안락함, 사치스러움 및 고귀함을 뜻하는 세레브.[12]
- 그 외에 실장석 관련 문서에서 나오는 일본어로 된 고유명사들.(ex. 빵콘, 콘페이토, 프니프니 etc.)
예를 들자면 "똥닌겐도 와타치의 매력에 메로메로된 테치? 오마에는 빨리 와타치를 세레브한 사육실장으로 삼아 우마우마한 스테이크를 대접하는 테치!" 하는 식이다. 물론 상기 된 목록은 사용빈도가 높은 용례들을 열거했을 뿐이지, 여기 나오는 단어가 아니더라도 작가 마음대로 일본어로 표기해도 되고, 여기있는 단어를 무조건 일본어로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와타시타치를 우리들, 와타시들이라고 쓰기도 하며, 오마에/와타시를 그냥 너/나로 쓰기도 하고, 반대로 한국에서도 한본어로 자주 사용되는 일본어인 '카와이', '아리가또' 등은 일본어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다.
한편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는 실장석의 특성과 실장석의 언어 구사능력이 뛰어난 것을 반영하여 고급진 어휘를 섞는 경우도 있는데, 시적이거나 지적인 표현과 동시에 실장석의 추잡함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치가 된다. 대표적으로 한국에서는 실장석이 자기 손을 섬섬옥수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의문문일 때는 특별히 어미를 '데스(우) / 테치'가 아니라 '데스까? / 테츄까?'로 적는 경우도 있는데, 웬만해선 한국 작품이던 번역 작품이던 데스나 데스우 정도로 단순하게 통일된다. 데스까는 일본작에서는 거의 안보이고 오히려 한국산에서 많이 보이는 표현. 그 외에 한국 작품에서는 평문에서도 어감을 살리기 위해 '데스요', '데스네', '데스까' 같은 파생어미를 쓰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데스 뒤에 다른 수식어를 붙이는 부분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데, 그저 그렇게 보는 사람이 많은 한편 파생어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볼 수 있다.
웃음소리인 데프프프 내지는 치프프프는 딱 듣기에도 비웃는 듯한 느낌이라 이들에 대한 학대욕구를 가중시킨다. 실제로 수많은 창작물 내에서도 '순수한 행복'으로 웃는 상황보단 주제 파악도 못하고 인간을 비웃거나, 역경에 빠진 자신의 동족들의 몰골을 비웃을 때 사용된다. 거의 이 웃음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분충 취급이 확정된다.[13] 정말 기뻐서 웃는 경우에는 대부분 웃음소리로 묘사하지 않으며 반대로 기쁨의 울음소리를 내거나 말로 기쁨을 표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ex. 우마우마 데스! 극상의 행복인 데스! 와타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게 틀림 없는 데스! 기쁜 데스, 오로롱...) 만약 비웃음이 아닌 웃음소리를 묘사한다면 "보에보에"나 "뎃데로게"[14], 혹은 아첨 소리인 "데스웅 / 테츙" 등을 사용한다.
다만 분충도 동일하게 웃는 장면을 묘사하는 작품들이 꽤 있는데다가 분충이 웃으면 어떤 웃음소리도 건전하지 않은 비웃음으로 보일 확률이 높아서 그냥 그런거 구분 안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들실장의 삶에서 정상적인 행복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양충이라면 자연적으로 웃을일이 거의 없어서 작가가 별 신경을 안써도 구분되어 버리는 일들이 많다. 그 반대로 보면 웃을일 없는 들실장의 삶에서 웃을 일이라고는 남을 비웃거나 분탕치면서 웃는 악독한 웃음 정도밖에 없다는 인식이 생기기 쉬워서 거꾸로 웃으면 일단 분충처럼 보이게 만드는 경우마저 있다. 그래서 실장석이 지금 비웃는것인지, 순수하게 웃는 것인지 구분해내는것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창작자의 역량에 많이 좌우된다.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성장단계별로 레훼에엥, 레에에엥, 테에에엥, 데에에엥 등 다양한 울음소리로 운다. 성체실장들은 "데에에엥" 외에 "오로로롱"이라는 울음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오로롱은 실장석 고유의 소리가 아니고 일본의 의성어 중 하나이다. 전자가 억울함이나 고통으로 인한 '빼애액' 같은 비명소리라면 후자는 슬픔으로 인한 '훌쩍훌쩍'같은 울음소리 정도. 자실장 이하는 오로롱하고 우는 묘사가 거의 없는데, 어려서 절제 없이 우는 경우가 많아서인듯. 근데 이놈들 소리가 워낙 큰 건지 아무리 조그마한 자실장이라도 소음 공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하뮤라뾰 루뺘묘 메뺘소?'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하는데, 문견 작 <자립시키는 방법>에서 잦은 학대로 뇌가 우그러진 실장석이 낸 울음소리에서 유래된 것이다. 2016년 역본을 통해 본작이 한국에 소개된 당시에 자주 쓰이던 것으로, 2017년 이후의 작품에서는 적지 않은 빈도로 등장한다. 뇌가 외부의 충격으로 손상되었거나, 과도한 학대 등으로 언어 기능을 상실할 정도로 뇌가 맛이 간 실장석의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다.
이 외의 특징으로는 온갖 무생물이나 자기 신체 일부를 의인화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일례로 문을 열어야 하는데 못할 경우엔 "문씨는 와타시를 위해 열려주는 데스웅~"이라거나, 학대파에 의해 손 한쪽이 분질러진 경우에는 "와타시의 세레브한 섬섬옥수씨가 이따이한 데챠아아아!"라고 하거나,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빗물씨는 이제 그만오는 데샤아아아!"라고 하는 식.
한편 실장석은 인간 같이 자신이 깔보는 존재를 대상으로는 죽인다, 부숴버린다, 찢어버린다 같은 험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하지만, 우호적인 상대(가족이나 주인 등)를 대상으로는 슬픈 일, 아픈 일, 나쁜 일 같은 순화된 표현으로 돌려서 쓰곤 한다. 일례로 자실장 두마리가 지나가던 인간을 상대로 도발을 할 땐 "버르장머리 없는 똥닌겐 따위 와타치가 초주검으로 만들어버리는 테치!"라는 식으로 대상이 인간일 땐 험하게 말하지만 그러다 그 자실장 두마리 중 한마리가 인간에게 살해당하면 남은 한마리가 도망치면서 "테에에엥! 와타치의 오네챠가 슬픈 일을 당한 테치! 테에에엥!" 이라는 식으로 대상이 죽은 자신의 자매일 땐 죽었다는 표현 대신 슬픈 일을 당했다는 식으로 순화를 한다. 다른 예로 친실장이 보는 앞에서 남의 집 자실장들을 학대하거나 학살하면 "데프프프. 저런 멍청한 분충들은 뒈지는 게 당연한데스." 라는 식으로 상스러운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나, 같은 상황에서 남의 집 자실장들이 아닌 자기 자실장들을 학대하거나 학살하면 친실장은 같은 표현을 쓰지 않고 "어째서 와타시의 세레브한 자들에게 슬픈 일을 하는 데샤아아앗!!" 이라고 순화된 표현을 쓴다.
현실에서는 욕을 전혀 모르는 순수한 어린아이들이 쓸법한 말투인데, 실제로 순수하긴커녕 자신이 깔보는 대상을 상대로는 상스러운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걸 듣는 인간에게 가증스럽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기폭제에 불과하다는 게 에러다.
2.1. 린갈
작품에 따라 실장석과 인간이 언어가 통한다는 설정을 사용할 수도 있고 언어가 다르다는 설정을 사용할 수도 있다. 전자를 택할 경우 실장석의 말투가 기괴하고 어휘력의 수준이 낮긴 하지만 일단 인간의 언어인지라 별다른 통역이 필요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하지만 실장석의 언어 ≠ 인간의 언어의 설정을 채택한 경우 린갈/링갈[15]이라는 번역기로 상호 의사소통을 한다. 텍스트로 출력하는 방식과 음성으로 출력하는 방식이 있으며, 린갈 설정을 채택하는 작품의 경우에는 실장석이 말을 걸 때 링갈을 켠다는 식으로 언급을 해준다. 실장석이 유행하던 2006년 당시에는 삐삐같은 단일 기기로 묘사되었지만, 이후 세월이 지나고 스마트폰이 범용화된 2010년대 부터는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으로 간편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사육실장의 경우 목걸이에 린갈이 내장되어 있어 하는 말이 자동 번역된다는 설정도 있다.
린갈 설정을 채용할 경우 린갈이 없는 상태에서 실장석이 내는 소리는 인간 입장에서는 "데스데스 데데스"나 '테치테치 테치테치" 같은 특유의 울음소리로만 들리게 된다. 실장석의 울음소리가 칼라니어처럼 제대로 된 현실 언어의 대칭으로 만든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길이나 구성은 전적으로 작가의 마음. 즉 같은 "프니프니를 요구하는 레후~"라는 대사를 써도 어떤 작품에서는 "레후레후~" 라고 표기하기도 하고 "레후레후 레레후~"라고 표기하기도 하는 등 제각각 표기가 다르다.
그리고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소리를 내도 어느 개체가 어떤 말을 했는지 기적같이 캐치한다. 모국어로 대화해도 여럿이 한번에 말을 한다면 소리가 겹쳐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데, 이 기계는 그걸 캐치해 번역해내는 것.
한편 인간은 린갈이 없으면 실장석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설정이라도 실장석은 린갈 없이도 인간의 말을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린갈이 없으면 실장석도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설정은 나오는 빈도가 낮다. 전자의 전개가 더 많은 이유는 해당 실장석의 분충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인데 인간이 정말로 실장석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곤란해하는걸 고려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자기 좋을대로만 지껄이는 전개가 되기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자의 전개로 진행하려고 하면 실장석에게 린갈 없는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들리는지에 대한 고려까지 해야 해서 귀찮기도 하고.
린갈이 없는 작품에서는 인간이 웬만해선 실장석의 말뜻을 쉽사리 이해하지만, 린갈이 쓰이는 경우 종종 망가지거나 품질이 안좋아서 번역을 잘못하는 경우가 생긴다.이같이 린갈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엔 실장석의 말을 잘못 전달하는 상황이 연출되는데, 이 상황은 의사소통의 오해를 부르는 상황을 만들기에 간편하므로 스크립트 및 만화에서 링갈오류 설정이 차용될 수 있다. 가령 "닝겐상 운치해서 미안한 테치, 치울 수 있게 해주면 감사한 테치"를 번역할 때 "운치닝겐 안 미안 테치, 치울 수 있게 해주니 감사하는 테치" 식으로 의미가 정반대로 오역되어 빠루를 드는 방식으로. 이런 점에서 보면 내구력 및 성능 면에서는 어느 정도 묘한 물건인 것 같다. 언어유희를 이용한 작품
린갈오류 말고도 린갈의 유무 그 자체도 소재로 쓰인다. 린갈이 없던 시절엔 테스테스, 레후레후 소리만 들려서 어림짐작으로 실장석을 대하다가 린갈을 구한 뒤에 진짜 의미를 알아듣고는...
작가의 설정에 따라 애호파 전용 린갈도 존재하는데, 실장석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번역하면 있던 정나미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일부러 인간 친화적으로 의역해서 번역해주는 방식이다. (ex: 똥닌겐! 배가 고픈 데스! 어서 먹이를 대령하라는 데샤앗! → 주인사마, 배가 고픈 데스! 먹이를 주셨으면 좋겠는 데스!) 물론 이런 소재는 학대형 작품에서도 쓰이는데 애호파용 린갈을 써서 착한 존재인줄 알다가 우연히 일반 린갈을 통해 진짜 뜻을 이해하고... 이하생략. 이른바 '실장석을 모르고 애호하다 뒤통수를 맞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애호파가 고통받는 전개로 이어지기도 한다.
3. 식습관
인간을 비롯한 여타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실장석 역시 먹지 않으면 굶어죽고 마시지 않으면 말라죽으므로 식량과 물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들실장들에게 있어 골판지 상자 다음으로 중요한 보물은 실장석의 빈약한 힘으로도 쉽게 들고 다니며 채집한 먹이를 집어넣을수 있는 비닐봉투와 물을 담을 수 있는 페트병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식성은 인간의 입맛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잡식동물인데, 인간과 소화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비위생적인 벌레나, 음식물 쓰레기, 심지어는 배설물만 먹고도 질병에 걸리지 않는 등 뭐든지 먹을수는 있다는 설정이 주를 이룬다. 다만 먹을 수 있는 것과 기호는 별개인지라, 대체로 실장석의 입맛은 단맛과 고기맛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초딩입맛으로 묘사된다.[16]
실장석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들실장은 열악한 생활 환경 상 곤충류, 지렁이, 풀, 열매 등 공원의 야생 환경에서 실장석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유기체들을 먹고 산다. 대부분은 좋아해서 먹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 경우가 많지만, 아직 고급진 음식들을 맛보지 못한 실장들(특히 자실장을 비롯한 유충들)의 경우에는 나름대로 만족하며 먹는 묘사가 많다. 그 외에 야생이 아닌 인간 사회로부터 얻을수 있는 먹이로는 음식 쓰레기, 애호파가 던져주는 콘페이토나 실장 푸드 등이 있다. 산실장들은 들실장보다 더 영리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아, 간단한 사냥을 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하는 등 보다 고등한 수단으로 먹거리를 얻는 묘사들이 나오곤 한다.
썩은 음식, 음식물 쓰레기 등 인간이 버리는 것들을 먹고도 연명이 가능하며, 오히려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들실장들에게 있어 인간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 봉투는 굉장한 값어치를 가진다. 그래서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들고 '데스우~ 오늘은 포식인 데스웅~' 거리며 걸어가는 성체실장과 그 광경을 보고 역겨워하는 일반인이나 사육실장[17], 그런 희망을 찢어버리거나 패죽이는 학대/학살파가 신물날 정도로 많이 그려진다. 그 외에도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두고 싸우거나, 푸드를 미끼로 제작한 함정에 걸려 죽거나, 사육실장이 들실장이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걸 보고 비웃다가 쳐맞아 죽거나... 들실장 스크립트에선 식습관이 필수요소 수준이다.
실장석들은 대체로 식탐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사정이 된다면 먹고, 먹고, 또 먹고, 배부르면 똥을 싸서 배를 비운 다음 또 먹는다. 그나마 들실장이나 산실장의 경우는 식량 사정이 빈궁하기에 본능대로 마음껏 먹으면 굶어죽게 되므로 이성이 있는 이상 폭식은 자제하는 편이다. 특히 잔뼈가 굵은 들실장은 굶주림의 무서움을 잘 알아서 믿는 구석이 없다면 폭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제라는 것이 없는 분충, 식탐을 자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어린 개체나 사육실장은 풍부한 먹이만 보면 본능에 충실해지기 십상이라, 들실장의 경우 어미가 월동 비축 식량으로 쌓아놓은 것을 새끼가 하루만에 전부 먹어치워 혹독한 겨울에 일가실각하기도 하고[18], 사육실장의 경우 일주일간 출장을 가야 하는 주인이 7일분의 식량을 남겨두고 잘 나눠서 먹으라고 교육했음에도 주인이 출장간 첫날부터 이미 식량을 전부 다 먹어치워 똥으로 바꿔버린 후 남은 6일 동안 주인을 원망하며 굶어죽거나, 똥을 퍼먹으며 살다가 더러워진 꼴을 본 주인에게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사육실장들의 경우 배고프다고 칭얼대면 주인이 먹이를 주므로 보통 식탐을 부려대지만, 소위 말하는 세레브 실장이나 잘 훈련된 사육실장들의 경우 식탐을 크게 부리지 않고 자제하는 면모도 보인다.
한편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한 가지 다른 점은 연령대에 따른 소화 가능한 음식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례로 인간의 아이는 갓 태어난 직후부터 치아가 자라기 전까지는 젖이나 묽은 죽 정도만 먹을 수 있는데, 실장석은 그런 묘사가 전혀 없다. 오히려 태어나자마자 스테이크와 콘페이토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 이미 태어난 그 순간에 치아 등이 완성되어져 있어서 가장 약한 저실장조차 인간의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 게 가능하다.[19] 위생적인 인간의 음식은 물론이고, 지렁이, 벌레, 음식쓰레기, 심지어는 똥 등등 온갖 비위생적인걸 먹어도 식중독으로 배탈나는 작품은 찾아보는 게 매우 힘든 수준이다. 상술한 저실장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평생 똥만 먹고 살아갈 수 있을 지경. 작가에 따라 태어난 직후 한동안은 친실장이 모유를 먹인다는 묘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신맛이나 쓴맛 같은 인간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맛은 실장석들은 특히나 더 안 좋아하는 쪽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고, 짠맛에 대한 설정은 별로 없다. 그리고 매운맛은 특히 극단적으로 약한 맛으로 취급되는데 카레라이스 정도의 매운맛이 한도이고 그 이상은 절대 못 먹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정말 지나칠 정도로 쉽게 입맛이 높아진다는 것.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도 평소 먹던 것보다 더 맛있는 것을 접해보면 당연히 입맛이 높아지긴 하지만, 엄청나게 편식이 심한 케이스가 아닌 이상 어지간해선 평소에 먹던 익숙하고 무난한 맛의 음식들이나 더 맛없게 느껴지는 음식들도 웬만해선 다 먹는다. 그러나 실장석은 그렇지 않다. 뭐든 먹을 수 있다는 습성 탓에 음식 사정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난 실장석들은 인간은 물론 들짐승들도 먹기 힘들어할 쓰레기들도 다 먹어치울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맛있는 것에 입을 대버리면 대부분 맛있는 것 외에 다른 것들은 입에도 안 대려는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성체의 경우 그래도 자제력을 보이는 개체가 일부 있긴 하나, 자실장 이하의 어린 개체들은 입맛이 높아지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진다.[20]
실장석의 입맛은 치악력과 연계되기도 한다. 인간 기준으로도 맛있는 음식이라면 좋아라하는 실장석들이지만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것이나 잘 바스라지거나 하는 음식들을 선호한다는 설정도 붙고 역으로 그토록 환장하는 스테이크의 경우 질겨서 못 먹는다같은 괴이한 묘사가 나오는 이유도 바로 고무줄같은 실장석의 치악력 묘사 때문. 그야 치악력이 튼튼할수록 단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지만 치악력이 약할수록 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가 무르거나 잘 바스라지는 음식 정도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고무줄이라고 묘사되는바와 같이, 야생의 들실장들은 온갖걸 다 먹어야 하므로 위와같이 실장석 치악력의 열등함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아닌 한 성체실장이 치악력이 문제가 돼서 뭘 못먹는다거나 하는 묘사가 등장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자실장 및 그 이하급의 치악력이 문제가 돼서 친실장이 대신 씹어서 먹여주거나 돌로 깨서 먹여주거나 하는 묘사는 간혹 등장한다.
실장석들이 사족을 못쓰는 기호식품. 실장석이 인간에게 콘페이토를 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은 오랜 클리셰인데, 일본발 컨텐츠인만큼 실장석들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고급 화과자 취급을 받은 콘페이토를 매우 선호한다. 다만 별사탕의 역사가 짧아 흔한 당분 덩어리 취급인 한국에서는 콘페이토가 "실장석이 좋아하는 가장 흔한 음식"으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22]
가격도 저렴한데다 실장석들은 대부분 단맛을 매우 좋아하는 만큼 별사탕을 매우 좋아해서 대체로 실장석의 특식으로 사용되며 실장푸드와 함께 애호파가 공원에 뿌리거나 하는 등의 용도로도 자주 사용된다. 이런 습성을 역이용하여 대부분의 실장석 구제약들은 별사탕 모양으로 만든다.
실장석들이 꿈에 그리는 먹거리. 스테이크의 경우 간혹 원어를 중시하는 콘텐츠의 특성 상 실장석들이 "스테키, 스테끼" 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실장석은 환경 상 이런 것들을 먹기는커녕 실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전무한 데다 사육실장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스시나 스테이크를 먹이로 주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23] 정말로 실장석이 스시와 스테이크를 먹는 상황은 굉장히 희박하다.
이런 태어나서 본 적도 없는 것을 본능적으로 원하는 이유는, 스테이크와 스시가 고급 음식이라는 일본 내의 이미지 때문.[24] 그러니까 아래와 같은 분충들의 사고 패턴이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와타시는 매우 아름답고 세레브하고 고귀한 데스!' → '그러므로 먹이도 고급 음식들만 먹어야 되는 데스!' → '잘은 모르겠지만 스테이크와 스시라는 게 고급진 먹이라고 들은 데스!' → '그러니 하찮은 똥노예인 닝겐이 와타시를 위해 삼시세끼 스테이크와 스시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 데스웅!'
왜 모든 실장석들이 생전 본 적도 없는 음식의 이름을 줄기차게 기억하고 있는지는 미스터리인데, 이를 두고 분충 어미의 뱃속에 있을 때 뎃데로게~ 하는 태교로 스테이크와 초밥에 대한 기억을 물려받는다는 설이 있거나 위석에 잠재된 기억에서 비롯된다는 설, 혹은 공원에 뿌려진 삐라를 통해 or 사육실장을 통해 알게 된 게 구전으로 전해져서 알게 되었다는 설 등 여러 설이 있다.
간혹 정말로 스테이크나 스시를 대접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엄청나게 기뻐하면서 맛을 즐기며 실장석을 올리기 위한 학대나 순수한 애호의 수단 중에서도 가장 좋은 수단으로 묘사된다. 물론 이를 역이용한 학대물도 존재한다. 초밥에 와사비를 듬뿍 넣거나, 질긴 스테이크를 대접해 씹지 못하고 이빨이 나가게 하거나, 전문 양식집처럼 식히지 않은 뜨거운 스테이크를 대접해 화상을 입게 하는 등.
혹은 스시와 스테이크의 경우 실장석들이 단어 자체는 입에 달고 살긴 하지만 실제로는 본 적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 속의 먹거리같은 이미지라, 그냥 싸구려 런천미트나 실장석 고기를 구워주거나 맨밥 뭉친 것에 계란 지단을 올려놓는 등, 초 염가형
실장푸드
実装フード
실장석에게 먹이는 사료. 현실의 강아지 사료나 고양이 사료처럼 생긴 길쭉한 원통형의 물건이다. 식탐이 심한 실장석과 연관된 먹거리라는 점 덕분에 실장석이 나오는 매체에서는 높은 빈도로 같이 출몰하는 소품이기도 하다.実装フード
작품에 따라 설정이 다르지만 거의 대부분의 실장 푸드의 정체는 다름아닌 같은 실장석이다. 실장석을 갈아서 만들기 때문에 원료가 지천에 널려있고 가공도 어렵지 않은 데다가 실장석 세계에선 이런저런 이유로 수요 또한 높기 때문에 저렴함이 장점이다. 실장석을 갈아넣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녹색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녹색 + 동족을 갈아서 만듦이라는 공통점이 겹치는 소일렌트 그린 같은 느낌이 드는데, 실장푸드의 설정을 정립한 작가들 중에 해당 작품을 알고 의도적으로 비슷하게 묘사한 작가가 있어서 이런 모습이 된 것인지는 불명이다.
상술했듯 수요는 무궁무진한데, 실장석에게 먹일 것을 찾는 인간들은 대부분 실장푸드를 구하게 된다. 애호파는 사육실장이나 공원의 들실장들에게 뿌릴 목적으로, 혹은 학대파가 실장석을 낚을 목적으로 내지 학대중인 실장석의 생명 유지를 위해, 또는 공장의 노동실장에게 먹이로 주거나 등 저마다의 목적이 있지만 어찌되었든 실장석 컨텐츠에 심심치않게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요를 자랑한다. 단순 생명 유지를 위한 실장사료처럼 묘사되는 것부터, 실장석 입맛에 맞춘 고급 사료나, 성장억제제 등의 약물을 넣는 기능형 사료가 나오는 등 원료에 대한 설명만 한 두마디 붙이면 원하는 효능을 넣을 수 있어서 애용된다.
실장석을 갈아 만든다는 점 덕분에 어떤 실장석을 갈아서 실장 푸드로 만든 뒤 가족들에게 먹을 것이라며 나눠주는 것 또한 단골 소재 중 하나다. 자기 가족이 푸드가 된 것도 모르고 맛있게 먹으면서, 막상 그걸 먹는 실장석들이 '마마의 향기가 나는 테츄', '그리운 냄새가 나는 데스'라며 원료의 정체를 본능적으로, 어렴풋이 느끼는 것이 포인트다.
당사자인 실장석의 반응은 작품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일반적으로 저렴한 실장푸드는 콘페이토나 스시, 스테이크에 비해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먹을 것이 부족한 들실장들이나 식량이 생겼다며 좋아하는 정도일 뿐 특별히 실장푸드의 맛에 환장하는 묘사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동족식
同族喰
동족을 잡아먹는 행위. 주로 들실장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대개 겨울과 같이 먹을 게 없는 상황에서 행해진다.同族喰
아무래도 원인은 실장석 특유의 가난한 생활상, 혹은 오만함과 혐오감을 증폭시키기 위한 설정이기도 하며, 현실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생태계 최하층에 위치한 실장석이 그나마 어떻게 할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생물이 같은 실장석뿐이기 때문이다.[27] 물론 공격하는 실장석 측도 저질 스펙인 건 매한가지란 점 때문에 동급 체격을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보통 자신보다 작거나 약한 개체를 공격해서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덕분에 자기보다 못난 개체나 괴롭히는 졸렬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도 이바지하고 있다.
들실장이나 산실장은 대부분 동족식을 일상적으로 행하고 있으며, 운치굴 설정처럼 아예 동족식을 목적으로 동족을 가축 삼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존재한다.
또한 상기한 대로 실장푸드의 주원료가 보통 실장석인 것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들실장이나 산실장만이 아니라 사육실장[28]이나 노동실장 등도 자기도 모르는 새에 동족식을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실장석들은 동족을 먹으면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다.
실장석은 동족식을 그다지 꺼리지 않는 편이며, 대부분의 경우 음식물 쓰레기나 잡초 같은 식량보다 동족의 고기를 더 맛좋은 음식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이런 동족식 선호는 상당히 특이한 편이다. 그래서 죽은 동족의 사체를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전멸이 아닌 이상 공원 내 실장석들의 사체가 금세 사라지는 원인. 겨울에는 식량난이 극심해지는 만큼 보존식량이 없거나 다 떨어졌을 시 골판지 상자 안에서 서로를 잡아먹으며 겨울을 나기도 하고, 가까운 다른 상자를 습격하기도 한다.
가족을 동족식으로 먹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상황과 경우가 있는데, 겨울나기를 대비해 가을에 낳는 구더기(추자) 들은 자신이 낳았더라도 가족이 아닌 비상식량으로 취급해 식량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거리낌 없이 먹는다. 반면, 엄지실장 이상의 개체들에는 나름의 가족애가 있어서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하면 일가전멸로 이어질 우려가 크기 때문에 분충인 자실장을 솎아내기 하여 고의로 독라로 만들어 노예 취급하는 경우, 혹은 이미 죽어버린 가족의 시체를 먹는 경우가 아닌 이상 같은 가족을 잡아먹는 일은 최대한 피하는 편이다. 물론 개념실장이 아닌 분충들 중에는 피하기보다는 툭하면 어떤 구실이든 대서 그냥 잡아먹어버리는 경우들도 많으며, 그게 일가실각 원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실 다른 동물들(인간 포함)의 경우 동족식을 행한다고 해도 정말 그것 외에는 살 수 있는 방도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다거나 아즈텍 제국의 인신공양같이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닌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행한다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면서 하기에 오히려 동족식을 행하는 존재의 처절함이나 광기를 부각시키는 모습이 되곤 하는데, 실장석의 동족식은 그렇게 처절하지도 미친 것 같지도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의 새끼나 자매들마저 쉽게 잡아먹는다는 점에서 실장석의 동족식은 실장석을 더욱 혐오스럽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다. 인간이라면 일반적인 상황에서 식인 성향이 있는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사람을 잡아먹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데, 인간과 어설프게나마 비슷하게 생겨먹은 실장석이 그렇게 동족을 잡아먹는 데 거리낌이 없으니 더욱 인간의 식인을 향한 터부를 자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장석이 종으로서 (최소 공원 단위로라도) 다들 뭉치기만 한다면 동족식을 하지 않고도 목숨을 이어나갈수 있는 수단은 많다. 산실장의 경우 이렇게 한 데 뭉칠 경우 동족식을 완전히 끊고 자연에서 나는 수확물로만 먹고 살아갈 수 있게 된 설정들도 있다. 하지만 극도로 이기적이고 자의식 과잉으로 설정되어있기에, 아무리 뭉쳐서 협력해봤자 1개 일가족 선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은 들실장들은 이렇게 협력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어쩌다 그런 설정이 나와도 대부분 그 공원에서 가장 센 1마리의 보스가 대략적인 행동만 통제하는 느슨한 범죄조직 수준으로 끝나, 각각의 실장일가들은 여전히 야생에서 동족식으로 각자도생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보니 결국 동족식에 의존하고 서로 헐뜯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것.
다만 워낙 하드한 설정이다 보니 인간과 비슷한 묘사를 넣기도 한다. 굶주림이 극에 달하거나 학대당하는 동생 또는 자실장을 더는 눈 뜨고 못 보겠다는 마음, 인간이 제시하는 더 나은 조건에 속아넘어가거나 협박당해서 결국 가족을 잡아먹는 경우도 있다. 가족 중 하나를 스테이크, 실장 푸드 등 음식으로 만들어 놓고 살아있는 다른 가족 실장에게 아닌 척 먹였다가 나중에 자신이 먹은 것이 가족임을 직/간접적으로 알게 하여 정신적 충격을 주는 학대 이야기도 많은 편이다.
식분
喰糞
말 그대로 똥(운치)을 먹는 행위. 지능이 매우 낮은 저실장을 제외하면 실장석들 사이에서도 불결한 행위로 분류되며, 차라리 썩은 음식물 쓰레기를 먹지 똥은 먹으려 하지 않는 개체들이 대다수이며 정말 최후의 최후 수단까지 가서야 식분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식분이 유해하다는 묘사는 거의 없다. 사람이 식분을 하면 대번에 질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는걸 생각하면, 실장석의 식분 기피는 순전히 기분의 문제에 가깝다.[29]喰糞
실장석들은 자기가 싼 똥만 먹고도 꽤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똥을 먹는다 → 똥을 싼다 → 다시 그 똥을 먹는다의 사이클로 무한동력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해당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실장석의 영양 흡수 능력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애초에 현실성과는 거리가 먼 콘텐츠인 만큼, 똥 만드는 기계라는 실장석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에 따라선 '실장석은 먹는 양보다 똥을 많이 싼다'며 질량 보존의 법칙(!)조차 무시하는 괴생명체로 만들기도 한다. 실장구(혐오주의)
보통 야생 실장석 집단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개체는 비교적 멀쩡한 음식을 먹지만 낮은 지위에 있는 개체는 다른 개체의 배설물을 먹는 것으로 묘사된다. 예를 들어 들실장 가족의 친실장이 자들은 자기가 직접 구해 온 식량을 먹여 키우지만, '가축' 취급인 저실장은 운치굴에서 가족들의 운치만 먹여 키우는 식. 일명 '변소노예' 혹은 '똥노예'라고 해서, 실장석의 집 안에 화장실로 쓸 구덩이를 파두고 여기에 자신이 낳은 저실장, 그리고 어디서 잡아오거나 분충이 된 자를 솎아내서 얻은 독라노예 따위를 처넣고 이들에게는 다른 실장석이 '변소에 배출하는' 운치를 먹고 살도록 하게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4. 사고방식
개체별, 작품별, 작가별로 매우 다양하지만, 대부분 몹시 허영심이 강하고 오만하며 인간의 보살핌을 받고 싶어한다. 다만 각 개체마다 오만함의 성향이 달라 부정적 성격의 정도에 따라 개념실장(양충)과 분충으로 구분된다.먼저, 실장석은 개념실장이든 분충이던 "자신은 귀엽다"라는 인식과 믿음이 박혀 있으며 이것이 실장석의 모든 성격의 기반이 된다. 이는 안하무인인 분충이든, 그나마 인간에게 공손히 대하고 주제를 아는 개념 개체든 모두 동일하다. 만약 예를 들어 인간이 탁아를 신청하는 들실장들에게 '왜 내가 너를 키워야 되냐'고 물어본다고 하자. 분충이던 개념실장이든 말하는 태도가 다를 뿐 말하는 내용 자체는 동일하다.
분충 |
오마에같은 똥노예가 고귀한 와타시를 키우는것은 당연한 것인데스! 이런 당연한걸 물어보다니 역시 똥노예라 멍청한데스우~ |
(상대적) 개념 개체 |
와타시의 자들은 모두 착하고 사랑스러운데스!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자들과 함께라면 닌겐상도 분명 행복해질 것인 데스! |
실장석들 기준으로 자신은 귀엽다는 사실은 아침에 해가 떠서 지고난 밤엔 달이 뜨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사실 해는 서쪽에서 뜨고 동쪽으로 지는 겁니다"라고 말한다면 듣는 입장에선 그 사람이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실장석에게 "뭔 소리야? 너 전혀 귀엽지 않은데?"라고 말해봤자 실장석에게는 전혀 부질없는 짓인 것이다.
좀 더 심도깊게 본다면 이런 경향은 분충이나 개념실장이나 자신을 개념실장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즉 인간 기준에선 분충인 실장석 개체조차 스스로는 똑똑하고 세레브한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자신이 잘못된 행동이나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심 자체를 안하고 있어서 분충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신경을 거스르는 분충 행위조차 실장석 자신에게는 매우 지극히 당연한 행위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30]
물론 이 틀을 벗어나서 자신이 못생겼다고, 최소한 인간의 미적 감각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할 줄 아는 개체가 등장하는 작품들도 있는데, 특별히 훈육을 받았다거나, 실장석 중에서도 엄청 똑똑하던가 하는 식의 설정이 붙어 있는 경우다. 혹은 그동안 다른 들실장들의 끔살 사례를 보고 학습하여[31] 탁아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탁아를 하더라도 자기입으로 귀엽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절박한 상황을 설명하며 정중히 부탁하는 등, 최소한 인간에게 합리적으로 납득할만한 이유를 댄다. 사실 많은 작품들에서 개념실장이라고 불릴 정도가 되려면 이 정도의 지능은 있어야 한다. 굳이 위에서 '상대적'이라는 사족을 단 것도 이 때문이다.[32] 물론 작가들마다 개념실장의 기준은 다를 수 있으니 이 설명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본능적으로 욕심이 많은 생물이라, 행복의 '상한선'은 무한히 올라가지만, '하한선'은 쉽게 올라가면서 절대 내려오지 않는다. 좋은 환경을 대접해주면 대접해줄수록, 곧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더욱 좋은 대접을 요구한다. 그래서 더 좋은 대접을 해주게 되면 거기서 더더더더욱 좋은 것을 요구한다. 길에서 음식물 쓰레기와 똥만 주워먹던 들실장을 데려다가 키우며 실장푸드를 주면 처음엔 실장푸드를 먹으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좋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실장푸드가 "당연한 것"이 되는 하한선이 책정된다. 그리하여 실장푸드 같은 '저급한 것' 말고 스테이크와 스시를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게 되는 것. 이런 실장석의 욕망의 하한선을 묘사하고 활용한 전설적인 스크립트로 <르피너스의 꽃>이 있다.
만약 주인에게 쫒겨나서 다시 들생활로 돌아가거나 해서 그 하한선을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이미 책정된 하한선 때문에 다시는 음식물 쓰레기와 똥은 쳐다도 못보고 굶어죽는 모습을 많은 스크립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말 뼈를 깎는 훈육이나 목숨의 위협이 아니고서야 하한선을 다시 내리는 것은 힘들 정도로 요원한 일이다. 실장석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며 건전하게 기르는 것은 극단적인 학대가 동원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으며, 그나마도 도중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파킨사하는 개체들이 많다.
실장석 개체는 하나같이 질투심이 심하다. 자신보다 더욱 아낌을 받는 대상에게 질투를 쏟아내기에, 들실장이야 버려진 사육실장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답이 나오고, 사육실장도 인간이 자신보다 다른 무언가를 더 아끼는 모습을 보이면 "저따위 것보다 더 고귀한 와타시를 보는 데샤아아아아!" 거리는 스크립트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육실장의 경우 주인이 커플일 경우 주인의 애인을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하나의 클리셰이다.
한편으로는 질투심과 시기심이 강한 주제에 외로움도 무지 잘 타는 모순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덕분에 실장석은 내버려두면 외로워하고, 옆에 다른 실장석을 두면 질투하는, 뭘 해도 불만을 품는 노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잦다.
고독감을 싫어하는만큼 다른 존재에 대한 의존성이 높고 누군가의 비호를 무작정 바라는 개체들이 대다수인데,[33] 허나 의존적인 것과는 별개로 호의와 권리만 요구하고 한없이 욕구가 올려치기되기에, 이런 특징 역시 실장석 특유의 고질적인 분충성과 연관된 요소들.
인간 남성에 대한 성욕이 매우 비정상적으로 강하다고 묘사된다. (위 언어 문단의 고슈진사마 서술에도 나오듯) 한국에서 더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사실 일본 스크에서도 실장석들이 인간 남성에게 성욕을 드러내는 묘사는 꽤 나오는 편.[34] 그러나 이를 진심으로 인간을 이성으로 보며 사랑하기보다는, 인간을 결국 자신들을 잘 살게 해줄 수단으로 보고 그 수단과 엮일 계기를 인간과 자신의 교미(...)로 해석하는 실장석 특유의 엉망진창 사고체계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결국 실장석들이 인간 남성에게 유독 과감하게 성욕을 지니고
한편 마라실장 같은 변종이나 다른 동물에게는 이런 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게 최소한 비호해줄 가능성이 1%라도 있는 인간과 달리 마라실장은 거의 100% 일반 실장석을 상대로 묻지마 강간행위를 시전하려들며 다른 동물들은 보통 실장석에게 비호를 주긴 커녕 천적이니까(...)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다른 동물들은 매우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지만 유독 인간만큼은 만만하게 본다. 작품 외적으로는 학대를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작품 내적으로 이유를 해석하는 경우도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다른 동물들은 실장석에게 해코지만 하지만 인간만큼은 실장석에게 뭔가를 베풀기도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박혀있어서 잘해주면 한도끝도 없이 올려치기되는 실장석들이 이를 오해한다는 설명도 등장한다.[35]
4.1. 번식욕과 모성애
실장석의 성격들 중 가장 두드러지는 공통적 요소는 다름아닌 모든 실장석은 본능적으로 새끼를 낳고 싶어 한다는 것. 웬만한 작품들에선 툭하면 나오는 레퍼토리가 바로 이것으로, 실장석이 새끼를 가지면 안 되는 환경에서조차도 억누르지 못하는 비상식적으로 왕성한 번식욕을 가진다. 작품 따라 실장석의 번식욕을 설명하는 여러가지 부가적인 이유가 붙지만[36] 사실 이유까지 설명하는 스크는 썩 많지 않고 그냥 묘사는 "자가 가지고 싶은 데스" 한 마디로 퉁친 뒤 정신나간 번식욕을 자제못한 실장석들이 스스로 부른 사단들을 보여주는 스크가 더 많다.덕분에 실장석의 새끼를 가지려는 본능은 매우 강하다. 번식력이 폭발적인 생물인 만큼 번식욕도 어이를 상실할 정도로 강력한데, 안 그래도 자제력이 떨어지는 실장석의 특성상 당연히 이런 본능을 상황에 따라 자제해야 한다는 지각이 없어서 안 참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했다가 손해, 나아가서 피 보는 경우가 많다.
과감하게 새끼를 낳지 않는 개체들도 있지만[37] 보통은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어이 자식을 얻고 낳으며 낳고 나서 행복해질 거라는 행복회로를 가차없이 돌려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다수는 새끼를 임신하고 낳는다는 것만 생각하지 그 뒤의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다 한 번쯤 재고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 결국 유혹을 못 참아서 번식을 한다.
들실장에게 있어서는 솎아내기 못하기와 더불어 생존에 있어 최대의 난제를 부르는 내부적 요소 중 하나. 가뜩이나 영양공급도 지속적으로 균등하게 하기 어려운 들실장에게 있어서 혼자 살기도 힘든 야생에서 새끼를 낳는다는건 자기의 영양 상태 등을 더 나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부릴 개체를 늘리는 것과 동시에 돌봐주고 먹여야 할 입이 대차게 늘어난다는 것을 암시한다. 대다수는 무계획적으로 그냥 '자를 가지고 싶다! → 낳아야겠다!' 의 사고 흐름으로, 그 사이에 뭔가의 계획이나 구상같은 것은 전혀 없이 임신, 출산부터 하고 보는 개체가 많기에 곤혹을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
한편 사육실장들의 경우 새끼를 까고 싶다는 욕망이 들실장만큼, 혹은 들실장보다도 더 강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상황이 좋지 않으면 자를 낳으면 안 되겠다는 계산을 하게 만드는 환경에서 사는 들/산실장과 달리 사육실장들은 학대파 주인을 두는 게 아닌 한 기본적으로 들/산실장에 비해 매우 편안하고 안락하며 풀어진 환경에서 사는 경우가 대다수이므로 그런 계산을 할 계기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38] 여기에 좋은 대접 받을수록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더한 것만 바라는 실장석 특유의 정신머리가 합져쳐 현 환경에 감사한 줄도 모르고 자기는 물론 허락없이 싸지른 새끼들까지 길러주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혹은 그냥 말 그대로 자에 대한 애정과 번식욕 해소의 갈망에 눈이 멀어버렸다던가.
브리더에게 사육실장으로써 철저하게 교육받아 임신과 출산은 엄금이라는 훈육이 뇌리에 박힌 개체라 해도, 일단 자를 얻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거나 정말로 낳으면 그런 건 말끔히 잊거나 잊지 않더라도 자기는 그런 케이스에 걸리지 않으리라 무작정 행복회로를 돌리는 경우가 대다수. 일반적으로 팔리는 사육실장은 물론 소위 말하는 고급 실장석도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육실장이 욕망을 못 이기거나 '주인이 말리는 건 아직 자신의 자를 못 봐서 저러는 거다 → 일단 자를 가지면 자기의 자에게 메로메로된 주인도 넘어갈 것이다 / 자신의 사랑스러운 자 덕분에 주인도 행복해질 것이다'처럼 멍청한 가정을 진심으로 믿어 자를 가지고 나면 그로 인한 온갖 트러블에 휘말리게 되고 그 결과 훌륭하게 파탄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지식이 부족한 애호파들의 경우 실장석이 새끼를 얼마나 많이 낳으며 얼마나 실장석이란 종의 훈육이 어려운지, 대다수의 어미가 얼마나 훈육을 제대로 못하는지를 잘 몰라서 개나 고양이 등이 새끼 치는 것 정도로만 생각하고 가볍게 여기며 허락하는 경우도 있다. 사육실장의 출산에 대한 것은 해당 항목에 더 자세히 쓰여 있다.
이렇게 극심한 번식욕만큼이나 모성애도 어느 정도 존재하는 편. 진짜 모성애 그런 거 신경 못 쓸 정도로 척박한 생활이 아닌 이상 친과 자의 관계는 전형적인 부모자식 관계다. 그러나 작품에 따라서 모성애가 극과 극으로 갈리기도 한다. 급박한 상황이 닥쳤을 때는 "자는 또 낳으면 되는 데스!"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가차없이 버리고 자기만 살기 위해 달리는 경우도 있고,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죽음마저 불사하는 모성애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장르의 특성상 둘 다 결말이 좋은 경우는 잘 없지만 말이다. 사육실장의 경우 인간이 분충 자실장을 훈육하려할 때 꼴에 마마라고 와타시의 자는 착한 데스! 와타시가 알아듣게 이야기하면 되는 데스!라며 가로막다가 일가 전원이 버려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존재한다.
현실에서는 자기 반려동물이 발정기 때 귀찮은 사단을 일으키거나 새끼 칠 경우 뒷감당을 못할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주인들이 중성화를 시키는 경우도 많은데, 실장석의 경우에도 같은 이유로 중성화수술을 실행하는 경우도 많다. 피임용 구슬 설정 문단을 참조.
4.2. 행복회로
행복회로는 실장석 관련 창작물에서 절대 다수의 실장석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일종의 정신적 메커니즘을 말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실장석의 사고방식을 빗댄 표현일뿐 실제로 전자회로 같은 것이 머리에 박혀 있는 것은 아니다.행복회로는 모든 실장석에게 본능적으로 탑재된 사고방식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생각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오직 자신에게 유리한 생각만 취급하는 극한의 정신승리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인하여 모든 실장석들은 모든것들을 철저하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받아들이면서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말도 안되는 망상과 행동을 일삼는 '분충'이 되는 것이다. 개념실장은 훈육 또는 선천적인 두뇌로 이런 비현실적인 사고관을 갖고 있지 않거나 그런 사고를 갖지 못하도록 억제되었기 때문에 행복회로가 돌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실장석의 행복회로식 망상은 현실을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데, 눈앞에 인간이 하나 보이기만 해도 자신은 그 인간보다 훨씬 강한 존재이며, 그 인간에게서 우마우마한 스테이크와 콘페이토를 대접받고 아와아와한 거품목욕을 누리며 세레브한 디자인의 인테리어와 가구들이 잔뜩 들어찬 넓은 방에서 공주님같은 어여쁜 실장옷을 입은채로 신나는 음악과 함께 재미난 장난감들을 들고 즐겁게 뛰어놀고 있는 중인 사육실장이 되어있다고 여긴다. 막상 그 인간은 그 실장석에게 그런 대접을 하고 싶은 생각은커녕, 애초에 망상하는 실장석의 존재 자체를 아예 눈치도 못 챈 상태임에도 말이다.
애초에 실장석에게 있어서 상대의 생각 따윈 고려할 의도도 능력도 없으며, 이것이 잘못된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즉 자신이 사실은 별로 귀엽지 않다는 생각,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 인간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 인간이 자신을 길러주거나 대접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같은 '자신에게 불리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 속에서 자신이 저 인간의 사육실장이라고 생각하면 자신은 그 인간의 사육실장인 것이며 그래서 이후 실장석이 인간에게 자신을 사육실장으로 삼아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이 거절 의사를 표하면, 실장석의 사고는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가 '자신이 너무 건방지게 요구했다'나 '자신의 매력이 부족했다' 같이 원인이 자신에게 있을것이라는 '자신에게 불리한' 생각 자체를 절대 하지 않는다. 자신은 '당연한' 것을 요구한 것이며, 또 자신은 '당연히' 매력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연히 모든 나쁜 일의 원인은 무조건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게 있다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저 인간은 자신의 매력을 못 알아보는 멍청이다'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기한대로 여전히 자신을 인간의 상위 개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실장석은 자신이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여기게 되므로 실제론 입지도 않은 피해[39]를 자신이 입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상태가 되면서 인간에게 욕을 하거나 투분을 하는 분충짓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 행복회로는 논리적으로 그게 아니라고 설명해줘봤자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만 빼고 받아들여버리므로 실장석이 이해할턱이 없으며, 설령 물리적인 수단으로 위해를 가해도 정신적으로는 깨지지 않는다. 상기한 상황으로 인하여 빡친 인간이 실장석에게 실제로 물리력을 행사해버리면, 같은 상황에 놓이는 대부분의 다른 동물들은 자신의 잘잘못을 이해하건 아니건간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는 공포 때문에라도 꼬리를 내리는데, 실장석은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자각할지언정 그 원인 또한 자신에게 존재한다는 '자신에게 불리한' 생각을 절대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인간에게 물리력을 행사당한것 조차 자신이 아니라 '저 멍청한 놈이 이젠 자기가 무식한 걸 모르고 폭력으로 해결하려 드는구나' 따위로 인간에게 원인이 존재한다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인간보다 우월한 개체라고 여기고 있으므로 인간에게 학대를 당해도 꼬리는 내리기는 커녕 오히려 "지금이라면 콘페이토 200개에 도게자 5번 정도로 용서해주는 데샤아아!"나 "멍청한 똥닌겐 따위 반죽음으로 만들어주는 테치!"라며 더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그나마 물리력을 당하고 인간에게 꼬리를 내리는 경우도 없잖아 있긴 하지만 이 상태는 순전히 생존욕구가 행복회로를 넘어선 상황이기 때문에 생존욕구가 우선시되어서 꼬리를 내린것일 뿐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자신에게 불리한' 생각은 절대 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 거짓 호소나 아양을 떠는 것으로 상황을 무마시키려는 행동을 하게 된다. 전자는 그나마 '실장석이 자신의 잘못을 이해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눈에 보여주는 상황이라서 마음이 약하거나 눈치가 둔한 인간이라면 그럭저럭 납득하고 넘어갈수도 있긴 하나,[40] 후자는 실장석이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지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가감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마음이 약하거나 눈치가 둔한 인간조차 실장석이 자신의 잘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손쉽게 파악하게 된다.
이 행복회로가 극한 상황에서 발동하면 그야말로 물리적인 감각과 기억마저도 왜곡하는 수준으로 가버린다. 현실에선 인간에게 학대를 당해 신체가 오체분시된 상태에다가 며칠 넘게 굶고 바깥에 방치되어서 차가운 밤이슬을 맞으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어도, 이런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은 외면해버린채 자신이 지금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사육실장 생활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중이라는 '자신에게 유리한' 현실도피성 망상에 빠져버린다. 자세하게 예를 들면 이렇다.
- 실장석이 공원에 놀러온 인간을 만나 거만하게 먹을 것을 요구한다.
- 그러나 그 인간은 학대파였기 때문에, 저절로 찾아온 멍청한 실장석을 보란 듯이 걷어찬 뒤 손에 든 몽둥이를 치켜든다.
- 극한상황에 몰린 실장석의 행복회로가 발동한다.
- 학대파 인간은 갑자기 손에서 몽둥이를 떨어트리고, 너처럼 아름답고 고귀한 실장석을 걷어차다니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했다며 사죄한다. 그리고 자신의 화려한 집으로 데려가 매일같이 스시와 스테이크를 대접하며 실장석을 애지중지 떠받들어 모신다. 실장석은 인간을 노예로 부리며 행복하게 살게 된다...
- 행복회로가 끝나고 실장석은 현실로 돌아온다. 방금 본 그 광경들은 전부 자신의 행복회로 속의 환상이었고, 현실에서의 자신은 이미 인간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전신 타박상을 입은채로 날아가 저 먼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 현실과 환상 사이의 갑작스러운 전환에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실장석은 자신 앞에 놓여있던 진수성찬들은 어디가고 자신이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찬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지를 잠깐 고민하나, 행복회로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 곧 전신을 엄습하자 비명을 지르게 된다.
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인 묘사로는 모르핀 같은 환각성 마약 수준으로, 현실에선 육체가 어떤 지경이 됐든 간에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현실을 왜곡시키는 수준이다.
한편 이런 행복회로는 굳이 인간을 상대로 삽질을 하게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방면에서도 실장석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요소가 되기도 한다. 일례로 운치굴에 버려져 가축으로 사육되는 추자 저실장이나 엄지 노예의 경우에도 자기가 버려지고 식량으로 길러지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언젠가 마마가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이다."라며 스스로 뒤룩뒤룩 살 찌는 노예를 자처하며, 자신이 잡아먹힐 때에도 "드디어 마마가 자신을 구하러 왔다"라며 반항조차 안 하다가 한 끼 식사가 된다. 또 친실장을 잃은 자실장들이 다른 성체실장을 보면 의심 없이 그 실장석을 멋대로 자신의 새 마마로 여기거나 멋대로 도움을 요청하다가 바로 잡아먹히거나 운치굴 노예나 자판기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역시 행복회로로 인하여 다른 실장석 또한 자신을 적대하거나 깔보고 있을 것이라는 '자신에게 불리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당연히 자신을 돕거나 섬길 것이라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착각을 해서 벌어지는 현상. 물론 상대 성체실장 또한 행복회로로 인하여 "뎃? 착한 와타시에게 드디어 하늘이 일용할 양식을 보내준 데스?"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조롱과 학대, 동족식을 행하니 결국은 도긴개긴.
이렇듯 실장석의 분충성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되는 개념이긴 하지만, 정작 왜 실장석이 이런 사고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고찰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애초에 실장석 컨텐츠 자체가 인간과 비슷하지만 하등한 개체인 실장석을 갖고 노는 내용 자체가 중심인 만큼, 이렇게 깊이 파고들어가야하는 부분들은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행복회로 또한 설정은 말 그대로 작가 나름이다. 발동 범위 또한 어떤 작품에서는 평상시에는 비교적 개념있다가 인간만 보면 행복회로가 도는 것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항상 행복회로에 절여져 있는 것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고 어떤 작품에서는 극한 상황에서만 도는 것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여러 번 언급되지만, 팬 설정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작가 마음이기 때문.
한편 실장석은 상술했듯 행복회로로 인해 갖은 위험에 노출되지만, 동시에 환각 수준의 강렬한 행복 덕분에 정신적 버팀목이 되기도 하는 탓에 상황에 따라서는 고된 노역 및 학대, 힘든 시기를 버텨내거나, 생태계 최약체임에도 "내일도 살아간다"는 희망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이 되기도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실장석의 행복회로는 정신승리 + 현실도피가 극한으로 치닫는 모습만을 보여줄 뿐, 사람도 현실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까지는 행복회로와 다를 바 없는 상상이나 자학을 하고, 혹은 힘든 현실을 마주해서 정신적으로 힘들 때 더 이상 정신과 신체가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41] 소위 '정신적 방어기제'를 발현하기도 하는 등[42] 평균치가 극단적이지 않을 뿐 실장석과 같은 정신 메커니즘을 보일 때도 많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고어 컨텐츠라 굉장히 마이너한 편에 속하는 실장석의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회로 설정은 범용적인 인터넷 유행어로 정착했다. 밈으로서의 행복회로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를 참고.
5. 성격 분류
5.1. 분충(똥벌레)
오마에같은 똥노예에게도 고귀한 와타치를 키울수 있게 하는 분에 넘치는 영광을 주는테치! 그러니 하루 세끼는 우마우마한 스시와 스테이크로 준비하고 아와아와한 거품목욕을 하며 시중 들어줄 전용 독라 노예를 준비하는테치! - 분충 들실장이 인간에게 자신을 키워줄 것을 요구할 때.
이런 더럽게 맛이 없는 것을 이 세레브한 와타시에게 먹이려고 하다니 오마에는 터무니없는 바보인테치! 식사는 아마아마한 콘페이토와 스테이크를 수북히 대접하는 게 당연한테치! 꾸물거리지말고 어서 가져오지 못하는테챠?! - 평범한 먹이를 줬을 때
치프프프- 노예닝겐! 와타치의 운치를 치우는 것을 특별히 허락하는 테츄! 빨리빨리 치우는 테츄! 정말 느려터지고 쓸모없는 노예에게 길러져서 와타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테치! - 집안에다 똥을 가득 싸놓고서 하는 말.
- 분충들의 단골대사
이런 더럽게 맛이 없는 것을 이 세레브한 와타시에게 먹이려고 하다니 오마에는 터무니없는 바보인테치! 식사는 아마아마한 콘페이토와 스테이크를 수북히 대접하는 게 당연한테치! 꾸물거리지말고 어서 가져오지 못하는테챠?! - 평범한 먹이를 줬을 때
치프프프- 노예닝겐! 와타치의 운치를 치우는 것을 특별히 허락하는 테츄! 빨리빨리 치우는 테츄! 정말 느려터지고 쓸모없는 노예에게 길러져서 와타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테치! - 집안에다 똥을 가득 싸놓고서 하는 말.
- 분충들의 단골대사
한자로 똥 분(糞)자를 쓰며, 직역해 똥벌레라고도 부른다. 분충이라고 따로 분류하긴 했지만, 사실상 이는 대부분의 실장석들이 속하는, 실장석이라는 생물의 본성과도 같은 부류이다. 때문에 웬만한 작품에서는 오히려 개념실장 쪽이 '흙 속의 진주',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라는 식으로 무척 적은 비율로 설정되어 있다.[43] 무개념 실장석을 칭하는 말이지만 실장석끼리 서로를 멸시하고 싸울 때 욕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이런 경우 욕하는 쪽과 욕을 얻어먹는 쪽 둘 다 분충인 때가 많다. 즉 도토리 키재기인 셈.
분충의 정의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힘들지만, 대략적으로 극한의 이기주의라고 할수있다. 그야말로 극한이라 할만한 게, 조금이라도 개념이 있는 실장석은 그나마 '가족'이라는 최소집단으로 협력하여 행동하는 게 가능하지만 분충의 사고방식은 말그대로 자기 어미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없는데 문제는 아주 멍청해서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살아남을수 없다. 분충을 최우선적으로 솎아내지 않는 실장일가가 머지않아 높은 확률로 일가실각하는 이유이다. 자기 혼자서 그야말로 세상의 왕이 될 욕심밖에 없는 녀석이 멍청하기까지 해서 이것저것 치명적인 실수를 해대니... 행위적인 면에서 본다면 자신만이 특별하다라는 전제 하에 행동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자신은 온갖 특권을 당연히 누려야하는 고귀한 존재이지만, 동족을 포함한 다른 개체는 하등한 존재로 취급하며, 이들을 멸시하는 것에 별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분충은 대체적으로 건방지고 버르장머리가 없고 쓸데없는 허영심으로 가득찬 더러운 성격으로 묘사되는 편. 자신이 고귀하고 귀여우며 예쁘고 현명한 실장이라 하는 건 약과며 선천적으로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며, 온 우주의 모든 것은 고귀한 자신을 떠받들며 섬기기 위해 돌아간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특징이다.
성인은 커녕 어린아이의 흙장난에도 여러 마리가 죽어나갈 정도로 허약한데도 불구하고 행복회로로 인한 망상 때문에 자신들이 인간보다 상위 개체라는 착각에 빠져, 인간을 동반자나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노예로 취급하며, 인간을 똥닝겐이나 똥노예로, 다른 실장석은 똥벌레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인간 주인님이 자신을 길러주시는' 게 아닌, '귀여운 자신에게 매료된 인간이 저렇게 간절히 부탁하니, 특별히 너에게 나를 기르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길러져 주고 있는 만큼 콘페이토와 스테이크나 스시 같은 고급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 따뜻한 거품 목욕을 비천한 똥노예인 인간이 준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대접이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저 인간은 고귀한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면 '똥닌겐을 훈육해 주겠다'랍시고 인간에게 똥을 던지거나 다리를 토닥토닥 걷어차기도 한다.
물론 현실은 냉정해서, 아무리 자기 뇌 속에서 인간을 노예로 생각한들 실제로는 푸대접 받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절대 본인의 믿음을 잃지 않으며, 현실도피성 인지부조화를 일으킨다. 인간이 자신을 떠받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도 "저것들은 너무나도 바보라서 고귀한 와타시를 알아볼 '안목'이 없는테치"라고 인간들의 잘못을 탓하며, 세상이 자신을 위해 돌아가지 않더라도 '고귀한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의 불합리함을 탓한다. 학대파나 브리더가 매우 강도높은 학대를 해서 큰 고통을 받고, 말로 온갖 모욕을 받으면 '어 이게 아닌데?'식으로 어느정도 현실을 깨닫고 절망하거나 조금씩 교정되어 가는 경우도 많지만, 소위 '분충성'이 너무 강하면 죽을 지경으로 큰 고통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정신 못차리고 행복회로나 가동하며 버티다가 최후를 맞이하곤 한다.
또한 자신의 어미이건 자매이건 자신의 이익에 반하거나 위기상황에 봉착했을 때, 칼같이 욕을 하거나 배신하고, 심지어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죽여버리는 패륜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며, "와타치가 이 꼴이 되게 한 똥마마가 나쁜 테치! 죽어버리는테치! 와타치를 위해 희생하는 테치!" 라며 자기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이런 이기적인 행위 역시 모든 실장석들이 자신은 특별한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특별한 자신을 위해 다른 존재가 희생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준으로 치면 소시오패스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분충이 평소에 자기가 속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어느정도 얌전히 남아있는것조차도 그저 자신이 성체가 되기 전에는 친실장의 보호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붙어있을뿐으로, 실제로는 친실장에게 어느정도 보여주는 애정도 그저 솎아내기를 피하기 위한 거짓일 뿐이고 속으로는 다른 가족들을 다들 자기 아래인 똥노예 정도로 깔보는 등, 실장석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품성이 나쁜것으로 묘사된다. 설상가상으로 친실장도 똑같이 분충일 경우에는 그저 번식욕 때문에 자식을 낳았을 뿐 자기 자식들을 탁아의 도구로만 생각하거나 여차하면 버릴 비상식으로 여기는 등 가공할만한 콩가루 집안이 탄생. 문제는 대부분 설정에서 이게 실장석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가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계절에 따라 묘사되는 실장석의 생태를 보면 실장석이라는 종 자체가 구성원 대부분을 차지하는 분충들이 겨울을 기점으로 싹 전멸하고, 봄까지 살아남은 소수의 개념실장들이 번식해서 여름까지 다시 수를 불리는 식의 다소 위태로운 형태로 종을 유지하고 있다.
소위 '개념종'이었던 개체도 인간에게 나은 대우를 받거나 길러지면서 점점 기고만장해지고 더 나은 대우를 요구하며 분충이 되어가는 것을 '분충화'라고 한다. 전형적인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의 사례가 되겠다. 이렇게 분충화해 버려진 원사육실장은 대개 정신 못차리고 지나가는 인간에게 소리를 질러대거나 투분을 하거나, 또는 "오마에를 새 노예로 삼아주는 테치! 영광으로 알고 와타치를 집으로 데려가서 우마우마한 스시와 스테이크와 아와아와한 목욕을 대접하는테치!!"라며 어그로를 끄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걷어차이거나 독라가 되거나 하는 등 상황이 악화된다.
한번 분충화한 개체는 나중에서라도 혼을 내서 훈육하려 해도 이미 분충 마인드가 뿌리박혀, 맞는 중에도 "뎃! 아픈데스! 똥노예 주제에 고귀한 와타시를 가르치려 드는데스!? 지금 그만두면 콘페이토 한가득을 바치고 무릎꿇고 사과하는 것으로 봐주겠는데스!" 따위의 말을 지껄이며, 혹여 강력한 훈육을 해서 먹혀드는 듯 싶어도, 실상 내면은 그 자리를 벗어날 생각만 하며 거짓눈물을 흘리는 척하며 주인이 갔는지 힐끔힐끔 관찰하다가 주인이 가면 다시 "노예 주제에 건방진데스! 내가 진심을 다하기만 하면 한번에 끝내주는데스!" 라며 전혀 반성을 안 하고 허세나 부리기 다반사기 때문에 쉽사리 개념이 다시 박히진 않는다.
그래서 분충을 훈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본보기로 비슷하게 분충짓을 하던 동족을 잔인하게 눈앞에서 죽이고 보여주는 것이다. 실장석이 암만 멍청해도 생물인 이상 죽음의 공포와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 수가 없기에, 이 경우에는 공포를 느끼고 바로 복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마저도 분충성이 사라져서 훈육되는 것이 아니라 생존본능이 분충성을 억누르는 식이다. 그래서 보통 이런 식의 훈육은 시간을 들여 교정시킬 이유가 없는 부품 취급의 노동실장이나, 이미 분충화되어 더 이상 말로 교화가 불가능한 사육실장에게 사용된다. 이조차도 행복회로가 돌아가서 눈 앞에서 죽는 동족은 못나서 죽는 것이고 자신은 세레브해서 그런 취급을 당할 리 없다고 여기며 분충끼를 멈추지 않는 실장석이 꼭 한둘은 나오는데, 당연히 이런 실장석은 즉시 다음 본보기 대상이 되어 앞서 죽은 동족과 똑같은 꼴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더 이상 못 알아먹는 실장석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죽이는 학대 / 학살 엔딩으로 이어진다.
하루하루가 서바이벌인 들실장 & 산실장 일가에게 분충은 솎아내기의 대상이 된다. 갈등 구조의 생성을 위해 꼭 새끼들 중 하나는 이런 분충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으며 생존 노하우를 갖춘 친실장에게 분충 자실장들은 솎아내야 할 암덩어리로 여긴다. 분충들은 겨울을 날 귀중한 보관식량과 월동식을 '마마가 자신이 질투나서 숨겨둔 보물창고'라며 싹 먹어치우고, 입맛도 높아 들실장의 주식인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다주면 썩은 표정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집어던지면서 친실장을 향해 이딴 쓰레기 말고 우마우마를 내놓으라고 비난을 하고, 최악의 경우엔 집 주변을 지나는 동물이나 사람에게 함부로 어그로를 끌어대 일가를 초토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
실장 일가를 다루는 작품들에서 분충이 나오는 묘사가 존재하는 작품들 중 거의 대부분 보이는 묘사로는 보통 '장녀'로 통하는 개체는 분충성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만 '차녀'로 통하는 개체는 분충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그 이하 개체들은 랜덤이라는 점인데, 이는 실제로도 첫째 아이는 부모에게 비교적 순종적인 대신 둘째 아이는 부모에게 비교적 반항적인 경우가 많은 현실[44]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분충화가 이루어지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전술된 실장석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행복회로를 들 수 있다. 행복회로가 끝없이 돌아가 상상하는 내용이 자신에게 당연한 것인 양 착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개념실장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개념실장도 분충화의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
한국에서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똥분충"이라는 겹말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하단의 양충 항목에서 개념애호 분충학대라는 클리셰를 비튼 양충 학대물이 있는 것처럼, 분충이면서도 애호받는 스크도 있다. 원인은 다양해서, 착각물이거나, 인간이 멍청하거나 하는 다양한 이유로 묘사되는 편. 한국에서는 작품 외적으로 분충을 애호하는 것을 보여준 뒤 독자들에게 '올렸다 떨어뜨리기를 위해 올리나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뒤, 떨어뜨리기 따위 없고 진짜 작품 끝까지 애호받는다는 고구마 결말을 내어 사이다 결말을 바라던 독자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기 위한 수단으로써 분충애호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런 장르를 '독자 학대'라는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5.2. 양충(개념실장)
실장석인데 다른 실장석보다 이른바 "개념"이 잡혀 있다는 실장석. 일본에서는개념실장은 크게 선천적인 경우와 후천적인 경우로 나뉘는데 전자는 아예 태교 때부터 인간의 조작이 들어가있는 게 아니라면 정말 희소한 확률로 태어나는 급이며 대부분의 개념실장은 후자에 속한다. 즉 평범한 실장석이 개념 태교, 훈육, 그 외 어려운 생활성을 통해 학습적으로 개념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학습조차 못하고 끝까지 분충 끼를 버리지 못하다 끔살당하는 실장석이 수두룩하게 등장하는 실장석 창작물 내에서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개념실장도 결국은 선천적으로 학습 능력을 갖춘 특출난 두뇌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개념실장은 분충에 비하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주제파악을 할 줄 아는 진짜 현명한 개체라고 하겠다. 자신의 자식쯤은 비상식량 취급하는 분충과는 다르게 모성애와 자매애가 있으며,[45] 인간은 모두 귀여운 자신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밖에 없는 분충과는 달리, 인간은 실장석보다 우위에 있으며 인간의 변덕 한번에 언제든지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별것 아니지만 그 쉬운 것을 깨닫지 못해서 죽어나가는 실장석이라는 생물의 설정에 따르면 엄청나게 대단한 능력일지도. 그에 따라 인간의 말에 따라 착한 사육실장으로서 살아가거나, 아니면 인간을 철저히 피하며 숨어살거나, 아예 산으로 들어가 산실장이 되곤 한다. 드물게 스스로 옷을 세탁하고 청소하고 목욕하고 똥처리를 하는 등의 우수한 실장같은 개체도 묘사되는 편.
물론 생존을 위한 지능이 높은 것과 모성애와 자매애 등 개념이 있는 것을 별개의 문제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지능이 높더라도 개념이 없는 분충이 있는 반면 지능은 낮아도 개념이 있는 경우도 있다. 현실에서 똑똑한데 악한 사람과 둔하지만 착한 사람이 사회에서 인식이 다르듯, 학대당할 확률은 전자가 압도적으로 높다.[46] 그렇지만 대개 개념과 지능이 비례하며 사육실장이 개념이 있을 경우 분충화의 확률이 적어 그나마 잘 살 수 있다.
'개념애호 분충학대'라는 말과 같이 양충과 분충이 함께 등장해 대비되는 구도를 형성하거나 인간과 엮이는 작품에서는 분충들은 인간에게 벌을 받고 양충들은 사육실장으로 받아들여지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식 해피엔딩식으로 끝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인간이 아닌 자연배경을 주제로 한 작품들에서는 양충들이 당하는 것을 중심적으로 비추는데, 일반적인 분충들은 욕구충족에 바빠 생존준비를 하지 못한 탓에 자연재해나 겨울에 손쉽게 죽어나가므로로 작품 소재로 사용하기 어려운 반면, 개념 가족들은 혹독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생을 연명하며 버텨가지만 결국에는 자연의 무자비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는 꽤 좋은 소잿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 경우 인간과 상이하게 달라 감정이입을 할 요소가 없던 실장석이 현실의 인간이 그렇듯 불합리한 재앙에 굴복하는 모습으로 감정이입을 이끌어내, 단순히 실장석이 쓸려나가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특유의 비극성이 배가 된다.
개념애호와는 반대로 학대물이 "분충이 죽을 짓을 했기 때문에 응징당한다" 식으로 지나치게 권선징악에 맞춰 흘러가는 클리셰를 타파하려 하거나, 아니면 그냥 끔살을 좋아하거나 하는 등 당돌[47], Judylake 등의 작가처럼 개념종이 불합리하게 학대당하거나 죽는 양충 학대물을 창작하는 제작자들도 많다. 양충 학대물의 경우 죽을 때까지 발악만 하다 죽는 분충과 달리 안쓰러움을 자아내는 등 색다른 재미가 있다는 호평과 인간에게 우호적인 개체를 학대한다는 점에서 심리적으로 불편하다는 혹평으로 호불호를 꽤 많이 탄다.
실장석이 학대가 주된 컨텐츠이다 보니 학대물이든 애호물이든 양충이란 설정 자체를 싫어하는 팬들도 많다. 단순하게 분충이 고통받는 사이다물을 원하는데 양충을 애호하거나 반대로 죄없는 양충이 불합리하게 죽는 비극은 자신들이 원하는 장르가 아니기 때문. 하지만 한국이든 일본이든 이런 게 "취향"이 될 수는 있어도 양충 설정을 좋아하는 다른 팬들이나 작품을 공격하는 것은 과몰입충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많고, 되레 이런 식으로 타인의 애호작품에 훈수를 두거나 욕하는 팬들을 인분충이라 칭하며 악질로 여기며 서로서로 취존 하는 편이다.
6. 아첨
손을 입가에 갖다 대고 머리를 손댄 쪽으로 살짝 기울이면서 "레츄웅~♡"(엄지실장), "테츄웅~♡" 혹은 "텟츙~♡"(자실장), "데스웅~♡"(성체실장) 등의 소리를 낸다. 인간으로 치면 한쪽 뺨을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뿌잉!' 하는 애교 자세라고 보면 된다. 사람에 따라 아첨 혹은 애교로 명칭에 차이는 있다.일견 귀엽게 보일지도 모르는 행위이나 이는 자신의 귀여움을 어필함으로써 이익을 취하려는 것으로, 상술했듯이 실장석은 모두 공통적으로 자신이 귀엽다는 행복회로는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아첨을 통해 상대를 메로메로시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아첨의 실상은 완벽한 사망 플래그로, 보통 뭔가 인간의 소지품에 손을 대거나 인간에게 욕을 구사하거나 인간의 몸에 분뇨를 던지는 식으로 어그로를 끌어놓고는 이에 열이 뻗친 인간이 실장석을 해코지하려고 잡으려 들면 행복회로의 가동으로 드디어 자기를 사육실장으로 삼아주려는 줄 알고 온갖 착각에 빠져셔는 확인사살한답시고 아첨을 취하거나, 반대로 인간이 해코지를 한다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런 인간의 화를 자신의 애교로 무마해보겠다고 아첨을 취하는 등 인간을 마주친 실장석은 대부분 아첨을 행한다. 물론 되레 화만 더 돋구워서 폭망하는 전개는 사실상 고정. 더 심하면 결국 인간이 해코지를 해버리면 자기 매력을 몰라봐서 그런줄 알고 그걸 또 애교로 만회해보겠다고 또 아양 떨다 안 맞을 매를 더 버는 전개까지 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아첨을 한다는것은 영락없는 분충이라는 뜻이나 다름없으므로, 설령 매우 운이 좋아 개념실장은 봐주는 학대파나 학살파를 만났다 하더라도 그 앞에서 아첨을 하는순간 바로 망한다.
물론 실장석이 인간의 미적 감각을 기준으로 정말로 귀여운 외모라면 통할 수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실장석은 애초에 만들어질때부터 인간의 미적 감각을 기준으로 어설프게 인간을 닮아서 오히려 더욱 불쾌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캐릭터이기 때문에 인간의 미적 감각에서 귀여워 보이기 어렵다. 하지만 행복회로 문단에서도 상술했듯 실장석은 자신이 귀엽다는 사실을 절대로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당당하게 자신의 '귀여움'을 어필해대는 애교질을 아무렇지 않게 하니 오히려 인간에게는 건방지다는 인상만 줄 뿐이다. 그리고 아무리 귀여워도[48] 하는짓이 워낙 민폐 그 자체이기 때문에 애호작품이 아닌 이상 귀엽다고 봐주는 전개는 거의 없다.
이런 특징 덕분에 중구난방인 실장석의 설정 중에서도 작가와 작품을 막론하고 빵콘, 행복회로와 함께 가장 확실하게 정립된 설정이다. 행복회로는 실장석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하루가 멀다하고 실장석의 생을 마감하게 만드는 원흉이지만, 아첨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행함으로써 명을 재촉하는 수단이라는 것이 재밌는 사실이다. 반대로 학대의 순간에 행복회로가 실장석의 의도와 달리 곱게 죽지 못하게 막으며 고통을 지속시키는 것이라면, 아첨은 의도를 가지고 자살하는 수단이나 다름없다는 점도 재밌다.
아첨의 인식은 시간이 흐르며 비대해진 실장 컨텐츠와 깊게 연관되어 있는데, 실장석 초기에는 순진했던 등장인물이 아첨에 속아 잘 돌봐주다가, 어느 사건을 계기로 실장석의 실체를 알아버려 처분하는 패턴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설정이 정립되면서 작정하고 분충성을 강조하거나 애호노선을 타는 스크립트가 아닌 이상 '실장석 = 인간을 기만하는 벌레 이하의 생물'이라는 사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었다. 때문에 실장석에게 남은 최후의 생존수단인 아첨이 매우 흉한 행위이며 동시에 스스로가 분충임을 입증하고 인간의 살의를 불러오는 장치로써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인간의 뜻이 어떻든 실장석은 예나 지금이나 '똥닌겐은 이렇게 카와이한 와타시에게 메로메로되어서 콘페이토 한 가득을 바치는 게 당연하지 않은 텟츙?' / '이렇게 카와이한 와타시를 기르면 오마에같은 똥노예는 행복해지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데스우? 그러니 빨리 와타시를 데려가서 기르는뎃스웅~.'라면서 먹을 것을 얻거나 탁아되려다, 혹은 "지금이라면 총구를 허락하는 데스웅."하고 일종의 매춘을 시도하려다 생을 마감한다. 이런 분충들은 실장석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 눈에 띄는 것만으로도 즉각 구제행 수준이다.
실장석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인간이 아첨을 봤을 때도 그 의도는 상당히 쉽게 파악되는데 이것이 더욱 가관이다. 실장석의 저열한 지능 탓에, 무심코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아니고 속내를 아주 당연하게 지껄이기 때문에, 실장석에게 우호적이었던 사람도 링갈을 켜는 순간 아첨의 진의를 파악하게 되고 만다. 간혹 애호파들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아첨의 진의를 모르며 실장석에게 푸드를 뿌리는 등 호의를 베풀기도 하지만, 결국 알고 있든, 나중에 알든 어느 쪽이든 인간이 아첨의 진의를 파악했다면 이런 속보이는 가식이 곱게 보일 리 없다.
개념실장조차 아첨하는 순간 저세상 티켓을 끊는데 자기관리도 못하는 분충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식탐만 많아서 살만 뒤룩뒤룩 찌고 화장실 못 가려서 옷에 똥칠하고 음식물쓰레기에 절어 냄새를 풍기는 실장석을 좋아하는 인간은 한 명도 없지만[49] 그럼에도 실장석의 행복회로는 인간에게 아첨하도록 실장들을 이끈다. 오물범벅에 누더기가 된 옷을 걸친 들실장이 주제를 모르고 자신의 매력 운운하는 꼴이나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애교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모습은 인간에게는 당연히 역겨운 일이기 때문에, 학대를 당하거나 (사육실장의 경우) 브리더들에게 엄한 훈육을 당하며 타고난 개념실장이나 훈육으로 분충성이 억눌린 사육실장은 아예 애교를 잘 부리지 않게 된다. 정말 뛰어난 개념실장이나 훈육실장은 인간이 실장석의 애교를 아첨으로 여겨 싫어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그래봤자 학대파를 만나면 빵콘하고, 행복회로를 작동시켜 되도 않는 말을 지껄이고 아첨하다 죽어버리지만.
생존본능의 수단으로써 설정의 예외가 없는 빵콘과 달리 아첨이 본능인지 학습으로 터득하는 것인지에 대한 작품 별 차이는 존재한다. 학습 설정일 경우 분충 친실장이 인간에게 잘 보이는 행위로써 아첨을 가르치고, 자실장들은 인간을 향해 아첨을 하다 일가가 전멸하곤 한다. 더 나아가서 완벽한 아첨을 하기 위해 연습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인간의 눈으론 당연히 차이점을 구분할 수 없다. 반대로 본능 설정에서는 빵콘과 비슷하게 죽는다는 공포가 극도에 달하면 자신도 모르게 행하는 행위로 등장하는데, 아첨이 인간의 화를 돋구는 것을 알고 있는 개념실장조차 죽기 직전에 본능을 이기지 못해 텟츄웅~♡ 따위의 유언을 남겨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장치로 쓰인다. 빈도를 보면 본능이라는 쪽이 우세한 편이지만 학습물도 빈번히 나온다.
지능이 특히 낮은 분충은 무생물에게도 아첨을 하기도 한다. 닫혀있는 집의 대문에 대고 '텟츙~ 이 문 씨는 와타시의 애교를 보고 메로메로된테치~ 빨리 열려주는테치~ 세레브한 와타시는 이 문 씨를 넘어가서 인간의 집에 들어가서 사육실장이 되어 행복하게 되어야 하는 테치~" 라거나, 자신의 다리가 접질려서 아프니까 자신의 다리에다 대고 "텟츙~ 다리는 아프지 마는텟츙~ 와타시의 귀여움에 메로메로 돼서 안 아프게 되는 텟츙~ 아프면 똥다리인 텟츙~" 이라고 하기도 하며 심지어 날씨가 안 좋으면 하늘을 향해 아첨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다고 문이 열리거나 다리가 안 아프거나 비가 그칠 리 없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고, 아첨한 실장석들은 문에다가 화를 내고 철문에 펀치를 날리다가 팔이 부러지거나, '자신의 매력을 보고도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아픈 이 똥다리'를 솎아낸답시고 다리를 물어뜯고 울부짖다 소리를 듣고 온 동족에게 먹히거나, 인간에게 시끄럽다고 밟혀서 적록의 얼룩이 되어버리는 멍청함에 걸맞은 최후만을 맞을 뿐이다.
이처럼 아첨 그 자체는 실장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분충성이 덜한 실장석이 실제로 인간에게 감사함을 느껴 하는 행동, 즉 진짜 애교로 볼 수 있는 행동은 무조건 제재 대상이 되지 않고 사람들도 그렇게 역겹게 보지는 않기도 한다. 분충성이 덜한 실장석이라면 사육이든 들이든 평균적인 실장석들보다 외양도 깔끔할 것이며 언행 역시 인간에게 어그로를 끄는 정도가 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애교의 목적 역시 다른 실장석들의 가당찮은 요구보다는 훨씬 합리적일 것이고 애교가 실패하더라도 더러운 행패를 부리진 않을테니까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깔끔하게 차려 입은 실장석이 테츄웅~ 데스웅~ 하는 정도의 아첨은 아첨보다는 애완동물의 애교와 같이 취급해주는 경우가 많다.
7. 눈물
감정 표현이 격하고 체액 분비가 많은 실장석 특성 상 눈물을 시도때도 없이 흘리는데, 이 때 눈물은 각각 눈의 색깔을 따라서 빨간색 눈물과 초록색 눈물로 묘사된다. 신체적 특징 항목에서 나오듯이, 색깔이 깃든 눈물이 다른 눈으로 들어가 임신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발생할 정도.하지만 가끔 투명한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가짜 눈물로, 일부러 우는 척을 하여 자비심이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하는 위장 행동. 초기작들에는 이런 설정이 없어서 초기 일본작들의 경우 진심으로 흘리는 눈물이 투명한 눈물이거나, 우는 척 하는 눈물도 색깔눈물이기도 하는 등 다양한 묘사가 있었으나, 후기작으로 갈 수록 이 설정이 정립되어 색눈물과 투명눈물을 구분해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짓 눈물을 흘리는 실장석의 경우 자신의 우는 척이 잘 통하는지를 살피기 위해 인간의 반응을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이 경우의 문제는 실장석은 몰래 눈치를 본답시고 하는 행동이지만 인간이 보기엔 눈치를 못 채는 게 힘들 만큼 대놓고 눈치를 본다는 거다. 즉 '테에엥~ 테에엥~' 하면서 실컷 울다가, 갑자기 울음을 뚝 멈추고 고개를 살짝 들어올려서 인간을 '힐끔힐끔' 곁눈질로 본 뒤 인간이 자기를 보고 있다 싶으면 '(힐끔힐끔)...테에에엥~ 테에에엥~' 하고 다시 울음을 터뜨리는 등, 오히려 이걸 눈치를 못 채면 인간이 이상할 정도로 심각하게 둔하게도 눈치를 본다. 자연스레 가증스러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가짜 눈물만큼 메이저한 설정은 아니지만 꽤 잦은 빈도로 나오는 설정으로는 검은 눈물이 있다. 말 그대로 눈물이 검은색인 경우로, 도저히 행복회로도 못 돌릴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실장석이 흘린다. 단순한 독라행, 달마행, 일가실각 같은 정도의 슬픔으로는 어림도 없고, 사람의 입장에서 봐도 안쓰러울 수준으로 학대당해야 겨우 흘리는 정도로 묘사된다. 특히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회로를 통해 발악부터 하고 보는 분충보다는 주제를 알고 있음에도 불합리하게 고통받는 개념실장 쪽에서 묘사되는 빈도가 더 잦다. 메이저한 설정이 아닌 이유는 보통 그 정도 고통을 겪으면 눈물이고 뭐고 위석이 자진해서 파킨해 죽는 게 더 빠를 수준으로 극악한 상황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식실장물의 경우, 이 눈물이 나오면 짓소산이라는 특유의 성분이 최대한 많이 분비되어 고기 맛이 매우 좋아진다는 설정을 쓴 작품들도 있다.
[1] 특히 햄스터. 극단의 굶주림 속에서 자식을 잡아먹는 것은 빼박 햄스터의 그것.[2] 다만 그런 경우가 많은 것이지 '~한다 데스' 같은 표현을 안 쓰는 것은 아니다. 문장을 쓰다 보면 '~는'으로 서술하기 애매한 구간이 한 번씩은 찾아오기 때문. 예를 들면 강조를 위한 반복 표현의 경우 저런 번역으로 해결하기가 어려워서 "안 돼 안 돼 데스!", "싫어 싫어 레후!" 식으로 직역하는 경우가 많다.[3] 다만 한국에서의 빈도가 높을 뿐이지 한국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난 설정은 아니다. 일본 작품에서도 본인을 주인의 처, 첩으로 여기는 등의 묘사가 아예 안 나오는 것은 아닌데 대표적으로 한국 참피계에서 바이블로 여겨지는 뉴턴의 작품들이 그러하다.[4] 성체실장은 와타시를 쓰지만 자실장 이하의 경우는 경음의 영향으로 와타치를 사용한다.[5]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에겐 그다지 와닿지 않지만 한국어로 치면 '너'에 해당되는, 상대를 낮추는 표현이다. 특히 처음 만나는 누군가에게 대화를 시작하려 부를때 이 단어를 쓰는건 한국어로 '야!'라고 말하는거와 같다. 당연히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친한 사람이 아닌 누군가를 초면에 이렇게 부르는건 되먹지 못한 사람이나 깡패들이나 이렇게 부른다. 실장석의 오만함을 보여주는 장치 중 하나인 셈.[6] 적대적이지 않은 상황이거나 해당 실장석이 아직 분충끼를 드러내지 않았을때에는 '~상(씨)'까지 붙여서 '닝겐상'으로 부르고, 분충끼를 완전히 드러낸 실장석이 인간을 비하어로 부를때에는 '똥닝겐'으로 부르는 게 거의 일반적으로 정착되어 있다. 사실 제대로 부르려면 '쿠소닝겐'이라고 완전한 일본어로 불러야겠지만 똥닝겐쪽이 간결하고 입에 잘 달라붙어서 그런지 한국어와 일본어를 합친 똥닝겐을 많이 쓴다.[7] 그냥 "아줌마"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바상을 더 많이 쓴다.[8] 자실장 이하의 개체라서 받침발음이 안 되는 개체는 짱(ちゃん)에서 ん자를 생략하고 'ちゃ(챠)'로 쓰기도 한다. 즉 성체실장은 오네짱, 이모토짱, 오바짱으로 말하지만 그 이하는 오네챠, 이모토챠, 오바챠 식으로 쓴다. 하지만 성체실장은 대부분의 지칭 대상을 깔보므로 지칭어미를 잘 쓰지 않기 때문에 이런 어미는 자실장 이하의 개체가 쓰는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짱 보다 ~챠를 쓰는 빈도가 더 많다. 다만 さん은 성장 단계를 막론하고 그대로 쓴다는 설정이라 보통 성체든 저실장이든 인간은 닝겐상으로 부른다.[9] 지칭 대상이 비생명이거나 번역된 단어일 경우에는 지칭어미까지 번역해서 '~씨' 로 쓰는 경우가 더 많으며 지칭 대상으로 일본어를 그대로 쓸 때만 한본어로 번역하는 편이다. 예를 들자면 "오네챠가 추워하는 테치, 바람 씨는 이제 그만 불어주는 테치" 하는 식으로.[10] 현지화 버전인 '맛나맛나'가 실제 한국어에 없는 것과 달리, 일본어 '우마우마(うまうま)'는 현실에서도 '맘마'와 동의어로 쓰는 유아어이다. 일반적으로 이 '우마우마' 혹은 '맛나맛나'에서 콘페이토/스시/스테이크는 제외하는걸로 쳐지는데, 그것들은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음식 이름을 직접 말하며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만 명칭이 아니라 그냥 감탄사로서 말해질때에는 콘페이토/스시/스테이크를 먹는 도중에도 "우마우마한 데스!" 등으로 쓰일 수 있다.[11] 보통 기분이 좋거나 자들을 재우는 등 막노래를 부를 때 쓰인다. 한국에서는 보통 하술하듯 "뎃데로게"로 대체되거나, "흥얼흥얼", "중얼중얼"로 현지화되거나, 아첨에서 사용되는 "데스웅", "테츄웅" 정도로 대체되는 편이다.[12] 원래 현실에서 쓰일 때는 돈 많고 명품으로 치장한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로, 한국의 신조어인 셀럽과 유래가 같다. 일본 창작물에서는 의미가 약간 변형되어 실장석 관련 지식도 없고 예의범절도 부족한데 돈만 많은 졸부 비슷한 명사로 쓰였는데, 한국에 넘어와서는 범위가 포괄적으로 넓어져서 단순히 실장석이 바라는 이상향 또는 허영을 뜻하는 형용사로 굳어서 "세레브한~"이나 "세레브하다" 등으로 쓰인다. 그 외에 실장인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실장석이 실장인더러 '세레브상'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13] 이런 속성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하여 이렇게 주제를 모르고 오만하게 웃는 실장석은 눈을 이른바 '초승달 눈'으로 통하는, ∩의 모양으로 그려넣는다. 이렇게 하면 안 그래도 이미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인 실장석의 외모가 더욱 흉해지기 때문. 후술할 진심으로 기뻐서 웃는 행복의 웃음의 경우 이렇게 그리지 않는다.[14] 실장석 컨텐츠에서 뎃데로게는 주로 태교 용어로 사용되지만, 뎃데로게나 텟테레 같은 출산 관련 울음소리는 일본어 애교 표현인 "테헤페로(이모티콘 :p와 유사한 표현으로, 한국어 '데헷'과 상통하는 애교 표현 てへ와 혀를 애교스럽게 내민 의태어 ぺろ의 합성어다.)"에서 유래된 표현인 만큼 웃음소리로도 사용될 수 있다. 뉴턴작 <행복 지원 제도>에서 기분 업 된 실장석이 뎃데로게를 외치는 장면이 예시.[15] 이름의 어원은 "언어의" 라는 뜻의 형용사인 Lingual. 더 정확한 유래는 2003년 일본의 완구 회사인 타카라에서 출시한 개의 말을 번역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장난감, 바우링걸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16] 사실 전근대 인류의 입맛도 이와 비슷했다. 현대에 들어와서야 소금과 설탕에 워낙 사람들의 혀가 익숙해지다보니 순수 짠맛과 단맛 대신 다른 복합적인 맛들을 주로 찾지만, 전근대에는 소금과 설탕 둘다 귀했는지라 사람들의 평소 식단이 조미료 거의 안쳐진 곡물류 식사여서 설탕의 경우 조금만 맛봐도 대번에 풍부한 단맛을 느낄수 있을정도로 혀가 단맛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단맛을 대부분 매우 좋아했고, 육류 또한 평소에 먹어보기 힘든 귀한 식재료중 하나여서 기회만 있으면 필사적으로 섭취했다. 고기맛은 인류의 옛날 모습을 보여주는 유인원들도 기회만 닿으면 반드시 섭취하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유사깊은 맛이었다.[17] 들개와 길고양이도 마찬가지로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데, 그냥 대놓고 그 자리에서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뜯어낸 다음 내용물에 주둥이를 대고 먹는데도 실장석 수준의 역겨움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실장석이 그만큼 미운털이 박힌것으로 볼수도 있고, 들개와 길고양이는 그냥 그 자리에서 먹고 말지만 실장석은 비닐봉투에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서 가는길마다 그 냄새를 풍기고 다니니 더 혐오스러울 가능성도 충분하긴 하다.[18] 엄지실장, 혹은 자실장이 월동식에 비상식까지 싸그리 다 쳐먹어놓고 어미를 이런 걸 자기 혼자 먹으려고 숨겨놓은 똥마마라고 폄하하는 것이 클리셰라면 클리셰다. 이럴 경우 당연히 100% 운치굴 노예행 내지 가차없이 솎아내기 대상이 된다.[19] 물고기의 치어나 양서류/파충류/조류/곤충류의 어린 개체들처럼 이제 막 태어났을 때부터 바로 성체와 비슷한 수준의 섭식활동이 가능한 케이스라고 보면 된다. 병아리가 나자마자 알아서 사료나 벌레 등을 먹을 수 있거나 올챙이가 바로 물풀 등을 먹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20] 이런 습성 때문에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실장석에게 맛난 걸 줬다가 끝없이 높아지는 입맛 탓에 곤혹을 치르는 사육주의 이야기나 혹은 판매업자가 실장석을 구입하려는 사육주에게 함부로 맛있는 거 주지 말라고 경고하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21] 별사탕이라는 한국어 대응 단어가 있지만, 본토 언어를 중시하는 경향 상 번역 시 그대로 콘페이토라고 음차하는 경우가 많다.[22] 물론 일본에서도 양산형 별사탕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 별다를 것 없고 그렇기 때문에 콘페이토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지만, 실장석이 생각하는 이미지로서의 별사탕은 한일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23] 스테이크와 스시는 사람도 자주 먹기 힘든 음식이다보니 실장석에게 주기엔 비싸다. 어쩌다 자신이 먹는 것을 나눠줄 수는 있지만, 앞에서 언급됐듯이 한 번 먹이는 순간 특식이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365일 내내 내놓으라고 고집을 피우는 것도 문제다.[24] 정확히 말하자면 스테이크는 이런 인식이 있는 건 맞는데, 스시는 절반만 맞다. 실제 스시는 일본에서는 고급화하면 고급 음식인 게 맞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서민 음식으로 묘사된다. 흡사 한국의 비빔밥과 전주비빔밥의 차이 같은 느낌. 자세한 것은 초밥 항목에서 볼 수 있다.[25] 그냥 맛없는걸 넘어 비릿함과 쓴맛이 느껴질게 분명한 벌레류, 풀, 음식물 쓰레기가 흔한 주식에, 심지어는 자신이나 동족의 배설물을 먹어야할 때조차 있다. 그나마 가장 나은 게 열매나 동족의 고기정도일 것이다.[26] 그도 그럴듯이 실장 푸드는 인간이 만든 정교한 공업장치를 통해 생산되는건데, 실장석 무리들을 직접 공장에 데려가 견학해주며 실장 푸드의 정체를 설명해주는 상황이 아닌 이상은 실장석들이 스스로 알아채기 힘들것이다.[27] 실장석은 자기보다 훨씬 몸집이 작은 사마귀나 개미 따위에게도 이기지 못하고 지는 것으로 묘사되는 등 이길수 있는 게 식물 밖에 없는 생태계 최하층을 담당하도록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 둘 다 원래는 실장석이 이겨야 정상인 체급이지만, 대부분의 설정에서는 저질 체력과 물렁한 육체, 무엇보다 싸우면 이기는데 조금 물렸다고 아프다 팔짝 뛰는 나약한 정신머리로 인해 지는 경우가 자주 나온다. 지렁이같이 살상력이 없는 생물을 사육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는 있겠지만, 자기가 하루하루 살기도 바쁜 게 실장석이라 뭘 키워줄 여유도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똥만 먹여도 사는 동족 실장석 사육의 가성비를 넘지 못하는지라 대개 배제된다.[28] 특히 무개념 애호파를 비난하는 성격의 작품에서 이 설정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즉 실장석을 사랑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뿌려대는 실장푸드가 바로 그 실장석이 원료라는건 전혀 모르는 멍청이거나 알고도 외면하는 위선자들이라는 식으로 비난하는 구도.[29] 인간이 '불결하다'고 느끼며 기피하는 것들은 보통 몸에 해롭기에 수만 년 동안 학습해 온 결과임을 생각하면, 똥을 먹어도 아무탈 없이 잘 살 수 있는 실장석이 식분을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진화론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실장석이 똥을 먹는걸 전혀 개의치 않게 설정하면 들실장이건 산실장이건 그냥 인간 눈에 띠지 않는 곳들에 숨어 들어가 자기들 똥만 먹으며 평생 살면 그만이 될 테니 실장석 컨텐츠의 전제가 붕괴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보니 그냥 대충 설정하는 경우가 다수다.[30] 더불어 이런 경향 덕분에 분충이 양충을 괴롭히면서 "오마에같은 분충 때문에 와타시같은 양충까지 싸잡혀 욕먹는 데스" 따위의 대사를 뱉는 것이 개념실장의 괴롭힘을 묘사할 때 단골 클리셰 수준으로 튀어나온다.[31] 굳이 볼드 처리를 한 것은 이 학습능력조차도 실장석이라는 종족에게는 매우 특수한 능력이기 때문이다.[32] 상기한 '상대적' 개념실장들은 여전히 분수파악 못하고 자기들을 귀엽다고 생각해서 인간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사실 실장석을 향유하는 독자들에게 개념실장이라고는 잘 인식되지 않는다. 아무일 없을때는 저렇게 겉으로 얌전히 굴다가, 막상 사육실장으로 받아주거나 학대를 시작하거나 하면 곧바로 숨겨둔 분충성을 드러내는것으로 묘사하는 스크립트가 많기 때문이다.[33] 자실장까지야 동물들의 새끼의 특성상 비호 없인 살아가기 힘들다는걸 감안해 의존성이 높다고 봐줄 수도 있지만, 실장석은 성체마저도 다른 개체(특히 인간)에게 의존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실장석의 탁아가 바로 이런 성체실장의 비정상적이고 비논리적인 의존성을 드러내는 태도 중 하나. 물론 실장석이 약하기 짝이 없으면서 지능은 어설프게 좋아서 자기가 의존할만한 누군가를 찾아낼 궁리 정도는 할 수 있음을 고려해보면, 이런 의존성을 지닌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34] 대표적으로 뉴턴의 작품 <골프>에서 인간 남성이 한 자실장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올리자 "테! 선택된테치 아무래도 와타치가 주인님의 본처인 테챠", "격렬한 첫날밤이 상상되는 테츄" 등 자실장들끼리 음담패설을 하며 성장단계에 상관없이 알거 다 안다는 묘사가 들어갔다.[35] 사실 야생동물들 중 맹수들도 좀 이런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먹이를 주면 잘 따르지만 어릴 적부터 인간 손에 길러진 녀석들이 아닌, 야생에서 성체까지 성장해서 야생에서 살아가는 와중에 인간들에게 먹이 받아버릇하는 맹수들은 인간도 먹이로 인식해 공격할 수 있다. 물론 실장석의 경우 먹이보단 인간을 '나에게 먹이랑 이거저거 줄 노예' 정도로 인식하는 게 차이지만 어쨌든 뭔가를 주기에 저렇게 판단하는건 공통점.[36] 그저 '자신과 자신의 자들로 세상을 가득가득 채우고 싶다'는 욕망일 수도 있고, 아니면 현실의 약한 동물들이 떨어지는 생존력을 어마어마한 번식력으로 메운다는 것을 그대로 따온 유전적인 본능인 경우도 있다.[37] 환경이 어렵고 척박한 산실장들이나 혹독하게 훈련을 받은 사육실장들이 주로 이 루트를 따라간다.[38] 공원으로 돌아가는 공포나 브리더에게 돌아가는 공포를 지닌 개체가 아닌 한, 대다수의 개체는 이런 사육실장 생활이 천년만년 유지되리라 믿는다.[39] 예를 들어 '저 인간은 나에게 콘페이토를 바칠 것이다'라는 망상에 빠졌는데 인간이 그걸 거부할 경우, "저 인간이 멍청하기 때문에 내 매력을 알아보지 못 했고, 그 때문에 저 인간은 내게 콘페이토를 바치지 않았다. 때문에 저 인간이 멍청해서 나는 '먹었어야' 할 콘페이토를 먹지 못 했다." 라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진심으로 믿게 된다.[40] 물론 이 또한 오래가지 못하는 게 앞서 서술했듯 그 실장석은 행동만 반성하는 것처럼 행할 뿐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자신에게 불리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고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는 '자신에게 불리한' 생각 또한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 상황만 모면하면 '자신이 불합리한 피해를 입은 것도 모자라서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불합리하게 사과까지 했다'는 식의 '자신에게 유리한' 생각을 하면서 분충성이 교정되지 않기 때문이다.[41] 흔히 그 위험성이 간과되곤 하나 사람도 정신적으로 극도로 힘들면 신체에도 큰 악영향을 끼친다. 주로 심장과 뇌의 혈액순환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으며 고통받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장마비 비롯한 심근관련 질환,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같은 순환계 관련 질환까지 이어진다.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뒷목 부여잡고 쓰러지거나, 부모 등 경애하는 사람의 상을 당한 사람이 며칠동안 지속적으로 힘들어하다가 이러한 질환으로 사망하는 소위 '줄초상'이라는 것이 이런 연유로 발생한다.[42] 다만 인간의 방어기제는 실장석처럼 마냥 자신에게 긍정적이고 희망찬 방향으로만 생각하게 만드는것이 아니라, 훨씬 더 어둡고 우울한 생각을 하게 만들거나 특정 대상에게 증오를 품어서 폭력적으로 만드는 등 부정적인 상태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어찌됐든 본인을 힘들게하는 '치명적인 사실'을 의도적으로 잊게하고 어디로든 눈을 돌리게만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PTSD와도 어느정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43] 다만 설정 면에서 비율이 이렇다는 것이지 창작물에서는 양충이 등장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그 비중도 분충이 양충보다 많은 게 대부분이긴 하지만.[44] 첫째 아이는 육아에 미숙한 부모가 애정의 정확한 한도를 모르기 때문에 애정을 비교적 많이 주어서 첫째 아이의 애정에 대한 욕구는 상당히 충족되는 반면, 둘째부터는 육아에 익숙해진 부모가 첫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애정을 덜 주기 때문에 둘째 아이의 애정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둘째까지만 존재하면 막내 포지션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 아랫단계의 동생들까지 생기면 막내 포지션조차 동생에게 빼앗기므로 둘째 아이는 더욱 애정 욕구 불만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이런 설정을 차용하는 실장석 스크의 경우 높은 확률로 "장녀에게 거는 기대가 큰 데스우~" 내지 "장녀라면 할 수 있는 데스!" 같이 친실장이 장녀를 편애하는 대사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45] 간혹 자식이나 마마, 자매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다만 작품에 따라서 이 경우에도 엄지실장과 저실장은 예외인 경우가 많다. 거친 들실장 생활에서 엄지와 구더기까지 먹여살리기는 힘든 경우가 많은데다 운치굴 설정이 있는 작품이라면 그게 존재하는것 자체가 '운치굴 없으면 겨울 못버틴다'는 뜻이기 때문에 개념실장이라면 더더욱 겨울을 나기 위해 운치굴을 만들어두는 게 개연성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치굴을 유지하려면 결국 엄지와 구더기는 비상식 취급을 받아야 한다.[46] 사실 지능이 낮고 개념이 있는 개체는 어느 정도 환영받는다. 멍청하니 딱히 사고칠 일이 없고 개념이니 분충마냥 고생하지 않아도 되니까. 대개 실장석 기르는 사람들이 실장석에게 큰걸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속썩이는 일 없이 자기말만 우직하게 따라주며 같이 살아가는걸 바라는것인데, 지능이 낮고 개념이 있는 개체는 이 조건에 잘 부합한다.[47] 이 작가의 경우는 원래부터 양충도 무차별 끔살로 처리하는 양충 학대의 선구자로, 국내에 실장석이 알려지던 극초창기부터 무자비한 묘사를 자주 채택해서 굉장히 유명했다.[48] 생김새 자체는 확실히 '귀엽다'고 어필할만하게 그리는 작가들도 많다.[49] 애호파마저도 그저 자신들의 허영심을 채우고 근거없는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겉으로만 실장석 애호를 주장할 뿐, "그렇게 실장석 권리 챙기고 싶으면 저기 공원에 문제 일으키는 들실장들 책임지고 데려다가 키우라"는 주장이 나올시 스리슬쩍 회피하며 도망가는 등 결국 애호파들도 들실장 키우는건 절대 사양이라는 걸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링갈을 일부러 안키던, 현실부정을 하던간에 더러운 몰골로 다가와 자신에게 투분을 해서 똥칠하려드는 들실장의 모습을 보면, 애호파도 사람인 이상 대번에 그 본질을 이해할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