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 문서: 아드보카트호/2006 FIFA 월드컵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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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대 감독 딕 아드보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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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 [[네덜란드| ]][[틀:국기| ]][[틀:국기| ]] 핌 베어벡 (수석 코치)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압신 고트비 (코치)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홍명보 (코치)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정기동 (골키퍼 코치) |
주장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이운재 |
계약 기간 | 2005년 9월 13일 ~ 2006년 6월 25일 # (9개월 / 286일) |
계약 종료 (계약 기간 만료) | |
연봉 | 10억 원 (감독 / 추정치) # |
전술 스타일 | 토탈 축구 ┗ 전원 공격 + 전원 수비 ┗ 4-2-3-1 또는 4-3-3 포메이션 |
성적 | A매치 20전 10승 5무 5패 (승률 50%) 2006 FIFA 월드컵 독일 (17위 / 조별리그)[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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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제65대 감독 딕 아드보카트의 대표팀에 대해 정리한 문서.1년도 안 된 짧은 기간의 팀이었지만 단기간에 확실히 경기력을 올리며 명장의 이름값을 했지만 최종 목표였던 2006 FIFA 월드컵 독일 대회 17위로 16강 진출은 무산되며 그 한계도 명확했던 대표팀이다.[2]
2. 감독 취임
월드컵 예선은 무사히 통과하여 본선[3] 진출했지만, 동아시안컵과 사우디아라비아전 부진으로 4강 신화로 눈이 높아진 대한민국에게는 기대치가 못미쳐서 조 본프레레는 결국 자진 사퇴[4]로 대한민국서의 커리어는 막을 내리고, 이후 딕 아드보카트는 2006 FIFA 월드컵 독일을 맡을 사령탑을 물색하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레이더망에 포착된다.이회택 전 기술위원장을 필두로 하는 기술위원회에서 비공개로 7인의 후보를 압축했는데, 당초 언론의 예상으로는 바비 롭슨[5], 베르티 포그츠, 루디 푈러, 믹 매카시, 마르셀로 비엘사, 이안 포터필드[6], 필립 트루시에[7], 핌 베어벡[8] 등의 감독들이 하마평에 오르던 중에도 딕 아드보카트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는 편이었다. 당시 예상 기사 아무래도 한창 UAE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재직하고 있기에 후보군에서 제외된것으로 보인다.
당시 핌 베어벡은 조 본프레레가 경질된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이력서를 제출했었는데, 베어벡이 가장 최근에 모셨던 감독이 아드보카트였음을 파악한 가삼현 사무총장이 농반진반으로 베어벡에게 당신은 수석코치를 하고, 혹시 아드보카트를 한국에 모셔올 수도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아드보카트가 자신은 UAE에 부임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한국의 제안이 온다면 언제든지 그만두고 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하여 협상이 급진전되었다. 그렇게 선임 작업 말미쯤에 접촉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언론에서 유력 후보로 급부상하게 되었으며, 2005년 9월 13일 오피셜이 나오면서 정식으로 부임하게 된다. 거스 히딩크 - 조 본프레레 - 딕 아드보카트 - 핌 베어벡으로 이어지는 '네덜란드 더치 커넥션'의 중추를 맡게된 셈이다.
아드보카트는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에 부임한지 불과 두달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드보카트는 아랍에미리트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 본선 진출이 확정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해 UAE 축협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코치진으로는 핌 베어벡, 압신 고트비라는 히딩크호의 공신들을 재차 중용시키고 한국인으로는 정기동이 합류했고 막 선수를 은퇴한 홍명보 또한 아드보카트호 코치진으로 입단하며 지도자 데뷔를 성사시켰다.
3. 활동
3.1. 2005년
자세한 내용은 아드보카트호/2005년 문서 참고하십시오.취임 직후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2005년 10월 12일 서울에서 열린 이란과의 홈 A매치 평가전에서 2:0 완승을 거두었고, 스웨덴을 상대로도 2:2 무승부 승점 1점을 거두었다. 전반 7분 안정환의 득점으로 1:0으로 앞서갔으나 1분 만인 8분에 토비아스 린데로스에게 실점당해 1:1이 되었고 후반 6분 수비수 김영철의 득점으로 다시 2:1로 리드했으나 후반 11분 마르쿠스 로젠베리에 실점을 내주면서 최종 결과는 2:2로 종료되었다.[9] 이란전이나 스웨덴전 모두 경기 내용이 나쁘지 않았어서 당시 유행하던 화장품 광고문구를 패러디해 '감독 하나 바꿨을 뿐인데.'라는 말이 네티즌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
3.2. 2006년
자세한 내용은 아드보카트호/2006년 문서 참고하십시오.2006년 새해 첫 경기는 공교롭게도 바로 직전 지휘봉을 잡았던 아랍 에미리트와의 친선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믿지 못할 패배에 다들 어안이 벙벙. 대한민국을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지만 경질된 전임 감독 조 본프레레는 어떻게 UAE한테 다 패배할 수 있느냐며 아드보카트를 깠다(...). 이후 이어진 홍콩 칼스버그컵 등에서는 나름 나쁘지 않은 성과를 냈고[10] 특히 이 과정에서 조원희[11]와 이호[12]가 아드보카트의 황태자로 등극하게 되었다.[13]
하지만 월드컵 직전 스코틀랜드에서 가졌던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1:3으로 대패했다.[14] 경기 내용 또한 좋지 않아 본선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했다.[15]
3.2.1. 2006 독일 월드컵
자세한 내용은 아드보카트호/2006 FIFA 월드컵 독일 문서 참고하십시오.4. 경기 결과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률[16] |
20 | 10 | 5 | 5 | 25 | 17 | 50% |
일시 / 장소 | 상대팀 | 결과 | 대회 | 득점 | 비고 |
2005년 | |||||
2005년 10월 12일 (서울) | 이란 | 2 : 0 승 | 친선 경기 | 조원희, 김진규 | [a] |
2005년 11월 12일 (서울) | 스웨덴 | 2 : 2 무 | 안정환, 김영철 | [a] | |
2005년 11월 16일 (서울)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 2 : 0 승 | 최진철, 이동국 | [a][20] | |
2006년 | |||||
2006년 1월 18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 아랍에미리트 | 0 : 1 패 | 친선 경기 | ||
2006년 1월 21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 그리스 | 1 : 1 무 | LG컵 | 박주영 | |
2006년 1월 25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 핀란드 | 1 : 0 승 | 박주영 | ||
2006년 1월 29일 (홍콩) | 크로아티아 | 2 : 0 승 | 칼스버그컵 | 김동진, 이천수 | [a] |
2006년 2월 1일 (홍콩) | 덴마크 | 1 : 3 패 | 조재진 | ||
<rowcolor=#000000> 2006년 2월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 LA 갤럭시 | 3 : 0 승 | 친선 경기 | 이동국, 김두현 이천수 | [22] |
2006년 2월 11일 (미국, 오클랜드) | 코스타리카 | 0 : 1 패 | 친선 경기 | [a] | |
2006년 2월 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 멕시코 | 1 : 0 승 | 이동국 | [a] | |
2006년 2월 22일 (시리아, 알레포) | 시리아 | 2 : 1 승 | 2007 AFC 아시안컵 예선 | 김두현, 이천수 | |
2006년 3월 1일 (서울) | 앙골라 | 1 : 0 승 | 친선 경기 | 박주영 | [a] |
2006년 5월 23일 (서울) | 세네갈 | 1 : 1 무 | 김두현 | ||
2006년 5월 26일 (서울)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2 : 0 승 | 설기현, 조재진 | ||
2006년 6월 1일 (노르웨이, 오슬로) | 노르웨이 | 0 : 0 무 | |||
2006년 6월 4일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 가나 | 1 : 3 패 | 이을용 | [a] | |
2006년 6월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 토고 | 2 : 1 승 | 2006 FIFA 월드컵 독일 32강 본선 조별리그 G조 | 이천수, 안정환 | [a] |
2006년 6월 18일 (독일, 라이프치히) | 프랑스 | 1 : 1 무 | 박지성 | [a] | |
2006년 6월 23일 (독일, 하노버) | 스위스 | 0 : 2 패 | [29][a] |
5. 평가
비록 대표팀이 월드컵 17위로 아쉽게 16강 진출은 실패하였지만 딕 아드보카트 전 감독에 대한 비판은 전임 감독들에 비해 많지 않았다. 대회를 준비할 기간이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대표팀 전력을 제법 끌어올려 당시 기대치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때와 비슷한 정도로 낮았던 대표팀이 사상 첫 원정 승리와 준우승팀 프랑스에 1:1 무승부 승점 1점 획득하여 종합적으로 승점 4점 1승 1무 1패 월드컵 17위, 원정 월드컵 최다 승점(4점)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둔 것이 큰 이유였다. 무엇보다 어그로를 스위스전 심판인 오라시오 엘리손도와 당시 골을 기록한 선수인 알렉산더 프라이
하지만 월드컵이 개막하기도 전에 대회 이후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감독으로 부임하기로 사전 협상을 끝마쳤던 상황이었던지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2010년대 들어 딕 아드보카트가 월드컵 이후에도 국가대표팀 감독을 연임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축빠들이 상당히 많은데 월드컵 성적 여하에 따라 대한축구협회와 추가 계약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니트와의 사전 협상을 진행해 월드컵 직후 러시아로 곧바로 날아간 선택을 한 건 딕 아드보카트 본인이다.
가뜩이나 8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파브를 비롯해 몇 가지 TV 광고를 찍어가면서 축구 외적인 돈벌이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당시 언론에서도 아드보카트를 거스 히딩크 급의 지도자로 포장해주었고, 토고전 원정 첫 승과 프랑스전 무승부 승점 1점을 획득하자 순식간에 한국 축구팬들은 무조건 4강 신화를 재연하는 것을 원할정도로 기대치가 높아졌고 1승 1무 1패 월드컵 17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미리 계약한 대로 바로 러시아로 날랐기 때문에 전형적인 먹튀의 수순으로 비춰졌다. 더군다나 당시 알렉산더 프라이의 추가골의 빌미를 제공했던 이호를 비롯해 당시 대표팀에서 많이 까였던 김동진을 애제자로 데려갔던 터라 아예 세 명이 세트로 묶여서 비난도 있었지만 조광래호부터 2014 브라질 월드컵 홍명보호 1기의 알제리 쇼크와 슈틸리케호의 2010년대 대한민국 축구 암흑기를 겪으면서 2006년 독일 월드컵 아드보카트호가 대한민국 축구로써는 많이 선전했다는 것이 재평가 받게 되었다.
또한 전술적인 면에서도 비판을 받았는데 당시 조 최하위의 전력으로 평가되는 토고[31]를 상대로 지나치게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다. 특히 후반 40분 경부터 한국 진영 내에서 볼을 돌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응원하던 축구팬들에게도 까였고 그날 경기를 보러 온 관중에게도 심한 야유를 받았다. 결국 16강 진출을 다투던 스위스에 비해 골득실에서 밀리는 불리한 상황을 안고 스위스와의 맞대결을 가져 무조건적인 승리를 위해 무리한 경기 운영을 펼친 결과 오히려 스위스에 얻어맞았다는 분석도 있다.[32] 또한 비록 스위스전 당시 전체적인 판정이 스위스에 유리하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스위스를 상대로 그다지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것도 도마에 올랐다. 사실 당시 대표팀은 설령 프랑스에 졌더라도 스위스만 이겼으면 16강 진출이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즉, 결과적으로 보면 실질적으로 홈팀인 프랑스와의 경기는 나름 잘했음에도 불구하고[33] 정작 반드시 잡아야했던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당시 한국 축구 팬들이 박주영을 원해서 무리하게 박주영을 내보내고 공격적으로 나간 것이 비판의 대상이다.
취임 이후 여러 평가전에서 당시 3백 체제였던 대표팀 수비를 4백으로 전환하기 위해 여러 조합을 실험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뜬금없이 3백으로 회귀했기에 평가전에서 헛되이 시간을 허비한 것이 이나냐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덧붙여서 아드보카트 본인이 국가대표팀에 발탁하고 적극적으로 기용해 황태자 소리까지 들었던 조원희를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전혀 기용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 김동진-이영표 라인을 가동해 이영표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끌어내는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 또한 비판의 요소 중 하나이다.[34] 전체적으로 본선에서는 지나치게 소극적인 운영을 하다가 어느 정도 신중하게 운영해야 할 스위스전을 다소 무리한 운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거 자체부터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직전, 당시 대표팀 주치의였던 김현철 교수가 딕 아드보카트 전 감독 몰래 성장호르몬 주사를 놔줬다고 언론에 스스로 밝혔다. # 도핑에 걸리지 않는지 실험해 도핑 검사를 통과한 주사라며[35] 이를 선수들에게 주사하려고 했으나, 감독은 거부했고, 주치의는 감독의 결정을 무시하고 몰래 선수들에게 이를 주사해주었다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이딴 걸 무슨 대단한 영웅담이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김 교수와, 아드보카트 감독이 도핑에 걸릴 것을 염려해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딴 걸 외국인 감독의 자기안녕을 위한 이기주의라고 비난하는 기자. 다만 김현철 교수는 이 인터뷰에서는 약물에 대한 경각심을 드러내기도 했으므로, 말이 와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여하튼 2009년의 인터뷰는 2015년경에 다시 발굴되어 논란이 되었었다.
[1] 32개 진출팀 중 17위 기록.[2]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벨기에, 우루과이, 멕시코 등 세계 강호들도 그동안 1998년 프랑스 월드컵 ~ 2022년 카타르 월드컵 32강 조별리그에서 탈락을 할 정도로 월드컵 본선 무대는 죽음의 조가 많은 만큼 쉬운 대회가 아니다.[3] 32개국 본선.[4] 사실상 경질이다.[5] 워낙 지명도가 높은 초일류 감독이다보니 당시 여론으로 볼때는 상당히 뜨거운 감자였다. 설문 조사서 차기 국내 감독 선호도 1위를 차지했을 정도. 마지막 경력인 뉴캐슬 유나이티드 감독을 마치고 감독직을 이어가겠단 의지를 보였다는 인터뷰도 발굴되었으나, 실제 여부는 불분명하다.[6] 당시 부산 아이파크 감독 재직.[7]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때 일본을 16강 9위로 이끌었던 그 감독 맞다.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까지 마다하면서 스스로도 한국 국대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8] 그 유명한 히딩크호의 코치로 활동했던 축구인으로서 비록 괄목할만한 감독 경력없는 코치직 위주였지만 한국 축협과 많은 링크가 있었기에 감독 승격으로 많이 거론되곤 했다. 하단 아드보카트가 부임하자 수석 코치로 한국 국대로 돌아왔고 이어 아드보카트호 종결 이후로는 감독으로 승격하게 된다.[9]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서 국가별 역대 전적을 참조했다. 출처[10] 칼스버그컵에서는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승리했다. 물론 칼스버그컵의 특성상 크로아티아도 2군을 내보냈다고는 한데 다리오 스르나를 포함한 에이스 몇 명 빠진 것 뿐이고, 한국 역시 국내파로 구성된 멤버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통곡의 벽으로 불리던 마토 네레틀랴크와 2006 FIFA 월드컵 독일을 마치고 프리미어 리그 포츠머스 FC로 이적하게 되는 니코 크란차르도 크로아티아 대표로 출전했다. 그러고 결승에서 덴마크한테 참교육당한 건 비밀.[11] 아드보카트호 출범 후 첫 경기이자 자신의 A매치 데뷔전에서 경기 시작 1분도 안되어 데뷔골을 넣은 조원희는 이후 월드컵 본선 이전까지 중용받았으나 정작 월드컵 본선에선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조원희의 실력이 부족했다기보다 여러 사정이 있었다. 하필이면 이 시기 좌측 풀백 자리에 김동진이란 신예가 등장하였다. 왼발잡이라 왼쪽에서 밖에 뛸 수 없는 김동진을 좌측에 배치하고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오른발잡이인 원래 좌측 풀백 이영표를 본프레레 전임 감독 시절부터 대표팀에서 우측 풀백으로 기용했다. 이영표의 백업으로 기존 우측 풀백 송종국이 건재하던 시절이였고 송종국은 이미 월드컵을 한 차례 경험하였고 그 대회에서 검증된 자원이었기 때문에 조원희는 경쟁에서 밀렸다. 김동진의 등장에 따른 나비 효과로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12] 한편 이때 같이 아드보카트의 황태자로 불렸던 이호는 월드컵 본선에 이르기까지 선발 출전 기회를 꾸준히 부여 받았으며 김동진과 함께 아드보카트 감독이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부임하면서 데리고 갔다.[13] 여담으로 두 선수는 2003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아랍에미리트에 나란히 뽑힌 인연이 있다. 이 선수 이외에도 김영광, 김진규, 박주영도 이 때 멤버이며 3년 뒤 성인 월드컵 대표팀 선수로 뽑혔다.[14] 월드컵 개최지가 독일인데, 전지훈련 캠프를 바다 건너 스코틀랜드에 차린 것에 대해 약간 잡음이 있었다. 딕 아드보카트가 선호하는 국가에 일방적으로 캠프를 차렸다고... 게다가 이후 결과적으로는 16강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 선택이 더욱 비판을 받았다. 근데 같은 곳에서 함께 경기를 한 가나는 16강에 진출한 걸 보면 이것이 아주 큰 문제였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다.[15] 이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의 라이트 축빠 및 언론에서는 가나의 전력을 크게 쳐주지 않는 분위기였으며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가나의 전력을 토고보다 약간 나은 수준 정도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의 가장 큰 무기인 김남일-이을용-박지성 중원이 에시앙-문타리-아피아에게 철저히 밀리는 모습을 보이자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시하였다.[16] 축구는 야구와 달리 무승부를 분모에 산입 계산해서, 무승부는 승리로 취급되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승률 문서 참조 바람.[a] 2006 FIFA 월드컵 독일 본선 진출팀.[a] [a] [20] 당시 명칭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 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분리.[a] [22] 비공식 매치[a] [a] [a] [a] [a] [a] [29] 1승 1무 1패, 월드컵 17위[a] [31] 그러나 토고는 세네갈을 탈락시키고 진출한 팀이라서 방심 할 수 없었다[32] 다만, 당시의 토고처럼 승점자판기로 분류되는 팀과 첫 경기로 배정되면 불리한 점은 객관적으로는 조 최하위로 평가받더라도 실제로 이 팀이 진짜 세네갈을 탈락시킬 정도의 팀인데 승점자판기가 될지, 추후에 골득실을 따지게 되면 몇 골이 필요한지 첫 맞대결을 하는 입장으로서는 이 기준점을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토고전에 수적으로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전 이후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며, 이에 따라 골득실은 나중 문제고 우선은 이겨서 승점 3점을 얻는것에 집중을 하자는 전략으로 운영했다고 보여진다.[33] 톱시드팀이자 피파랭킹 8위 준우승팀 프랑스를 상대로 무승부 승점 1점을 기록한 자체는 엄청난 성과이긴 하지만, 경기 내용면에서는 아쉬운 장면들도 많았다. 상대에게 수 많은 실점 위기를 맞았지만 1골만 실점하고 몇 안되는 찬스에서 동점골을 뽑아내는 등 눈에 보이는 내용에 비해 결과가 엄청나게 잘 나왔던 경기였다고 볼 수 있으나, 프랑스는 저 대회에서 스페인, 브라질, 포르투갈을 격파하고 준우승을 차지한 팀인것을 감안하면 최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34] 이영표는 오른발잡이로 헛다리 짚기 드리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레프트백에 최적화된 선수이며 레프트백으로 활약한 덕에 유럽 진출까지 가능했었다. 더군다나 좌측 미드필더 박지성과 호흡도 좋았기에 토고전 이후로 라이트백으로만 투입한 것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35] 기사에서 서술한 대로 성장호르몬 성분의 주사라면 엄연히 금지약물이니, 금지약물이 들어있지 않은 합법적 영양제라기보다는 도핑을 회피할 수 있는 약물 칵테일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기자가 잘못된 정보를 기술한 것이 아니라면, 주치의가 약물 디자인을 한 셈인데... 물론 여기에 대한 조사가 없는 만큼 진실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