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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 아르테타의 수상 내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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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 2005-06 · 2006-07 | |||
베스트팀 | ||||
Arsenal Football Club | ||
<colbgcolor=#f00000> 이름 | 미켈 아르테타 Mikel Arteta | |
본명 | 미켈 아르테타 아마트리아인 Mikel Arteta Amatriain | |
출생 | 1982년 3월 26일 ([age(1982-03-26)]세) | |
바스크 지방 산 세바스티안 | ||
국적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8cm / 체중 72kg | |
종교 | 가톨릭 (세례명: 미카엘)[1] | |
직업 | 축구 선수 (미드필더[2]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bgcolor=#f00000> 유스 | 안티구오코 KE (1994~1997) FC 바르셀로나 (1997~1999) |
선수 | FC 바르셀로나 C (1999) FC 바르셀로나 B (1999~2002) → 파리 생제르맹 FC (2001~2002 / 임대) 레인저스 FC (2002~2004) 레알 소시에다드 (2004~2005) → 에버튼 FC (2005 / 임대) 에버튼 FC (2005~2011) 아스날 FC (2011~2016) | |
감독 | 맨체스터 시티 FC (2016~2018 / 코치) 맨체스터 시티 FC (2018~2019 / 수석 코치) 아스날 FC (2019~ )[3] | |
국가대표 | 없음[4] |
[clearfix]
1. 개요
스페인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2019년부터 아스날 FC 감독직을 맡고 있다.2. 선수 경력
자세한 내용은 미켈 아르테타/선수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2.1. 플레이 스타일
첫 포지션은 포백 앞의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EPL의 중앙 미드필더로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육각형 타입 선수라기보단 포백 앞에 서서 공을 따내는 수비력과 안정된 운영을 장기로 했던 선수다. 유소년 시절부터 동기이자 경쟁자였던 사비 알론소와 거의 같다.하지만 팀을 오래 떠돌면서 특히 에버튼으로 이적한 후,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중앙 미드필더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뛰면서 이 점이 많이 잊혀진 채 아스날에 왔기 때문에 아스날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다시 뛰게 되었을 때 놀라워했던 축구 팬이 많았다.
2010년 이후 아스날에서 그와 유사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는 산티 카솔라나 루카스 토레이라 정도 밖에 없다. 2016-17 시즌 대체자로 영입된 그라니트 자카의 경우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때 아르테타에 비해 안정감이 떨어진다. 공간을 커버해주는 선수가 함께 있어야 안정감이 올라가는데,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롤에서 더 기량을 뽐내는 편이다.
데드볼에 강하고 말년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굳혀졌다는 점에서 안드레아 피를로와도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플레이 스타일은 많이 다르며 굳이 비교 대상을 찾자면 차비 에르난데스에 가깝다. 발이 빠른 편은 아니지만 볼키핑, 태클, 전진, 오프더볼, 슈팅 등 전반적인 축구 능력들이 우수하여 커리어 내내 미드필드 아무 자리나 갖다 놔도 제 몫을 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영입 당시엔 파브레가스가 맡았던 롤을 수행하지 않을까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많았지만 파브레가스와는 완전히 다른 선수로 쓰였다.
아스날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잡은 이후를 기준으로 하자면 태클 성공률이 상당히 높은 축에 속했다. 몇몇 경기는 70% 이상을 기록하는데 이 수치보다 높은 선수는 EPL 내 미드필더 중에 거의 없다. 또한 그 성공하는 태클이 비교적 중요한 순간에 나와 줘서 수비력이 좋아보이는 효과가 있다. 평균적인 신장에 비해 공중볼 다툼도 상당한 편이며 팀에서 힘든 역할을 도맡아 하는 스타일이다. 기본적으로 포백 보호를 우선으로 직접적인 킬패스를 최대한 자제하며 피치 1/3 지점에서 백패스/횡패스 등을 통해 경기를 풀어가고 직접적인 기회 창출은 카졸라, 외질, 램지가 담당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공격적 스탯들은 높지 않았지만 이는 아르테타가 맡아야 할 롤, 그리고 알렉스 송의 공격 본능이 맞물린 결과이다. 외질, 카졸라가 없을 때는 공격이 안 풀린다는 느낌이라면 아르테타가 없으면 경기가 안 풀린다고 느낄 정도이다.
잭 윌셔가 주장이라든지 플레이에서 아르테타를 대체해 주었다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였을지도 모른다. 잉글랜드 국가대표로서도 현대 트렌드 중에 하나였던 3선 수비형 플레이 메이커를 쓸 수 있었겠지만 윌셔는 선수 생활을 끝냈다.
현재 아스날의 주전 중앙 미드필더인 자카와 비교하면, 역습 전개나 피지컬에서 자카가 더 강점이 있고 아르테타는 기술과 포지셔닝에서 압도적이다. 그나마 벵거 시절, 그것도 엘네니가 옆에 있을 때 자카가 팀에 적응하면서 무쌍난무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그렇지, 평시 자카를 보면서 아르테타가 얼마나 포지셔닝과 전술 이해도가 훌륭한 선수였는지를 실감한 구너들이 많다. 한마디로 미드필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골고루 갖추고 이해하고 있는 다재다능함의 표본이다. 그의 아스날 감독 부임 이후 지난 네 시즌 간 폐급 소리를 듣던 그라니트 자카가 중원의 필수 요소가 된 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저니맨 신세를 전전하던 만년 유망주 마르틴 외데고르가 그에게 몇 시즌 전수 받고 이제는 절대지존 케빈 더 브라위너를 넘보는 위치의 미드필더로 거듭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3. 지도자 경력
자세한 내용은 미켈 아르테타/지도자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1. 감독 스타일
자세한 내용은 미켈 아르테타/감독 스타일 문서 참고하십시오.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
- 파리 생제르맹 FC (2001~2002)
- UEFA 인터토토컵: 2001
- 레인저스 FC (2002~2004)
-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2002-03
- 스코티시컵: 2002-03
- 스코티시 리그컵: 2002-03
- 아스날 FC (2011~2016)
- FA컵: 2013-14, 2014-15
- FA 커뮤니티 실드: 2014, 2015
- 스페인 U-16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U-16 챔피언십: 1999
4.1.2. 개인 수상
-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영플레이어: 2002년 09월, 2003년 08월
- 에버튼 올해의 선수: 2005-06, 2006-07
- 에버튼 선수단 선정 올해의 선수: 2005-06
4.2. 감독
4.2.1. 대회 기록
- 아스날 FC (2019~ )
- FA컵: 2019-20
- FA 커뮤니티 실드: 2020, 2023
4.2.2. 개인 수상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 2021년 9월, 2022년 3월[5] · 8월 · 11월 · 12월[6], 2023년 1월, 3월, 2024년 2월
5. 아르테타에 대한 언사
아르테타는 우리 팀에서 중요한 선수며 미드필더 사이에 연계성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다. 마치 웨일스 대표로서 큰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던 라이언 긱스 같은 느낌이다. - 아르센 벵거#
6. 여담
- 선수 시절 때나 지금이나 항상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해서 팬들이 아르테타의 헤어스타일을 주제로 농담을 할 때도 있다.
- 알고보면 꽤 잘생겼다. 특히 과거 20대~30대 초중반 시절의 사진을 보면 매우 훈남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축구 애니메이션에서 몇몇 다른 감독들에 비해 미형으로 묘사된다.
어째 비교 대상들이 전부 50대 아재 감독들이다심지어 한 분은 곧 60대
- 경기 중에 셰인 롱과 부딪쳐 앞니가 부러진 적이 있다.
- 무려 7개 국어가 가능한 언어 능력자다.[8] 모국어인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9] 프랑스어,[10] 바스크어,[11] 그리고 활동지인 영국에서 쓰는 영어까지는 심지어 능숙하게 구사한다. 포르투갈어[12]와 이탈리아어[13]도 구사할 수 있는데, 능숙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기본 회화 정도는 가능하다고 한다.
- 2014년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벵거 재임 이래 최고의 영입 중 탑10에 당당히 들어갔다.[14] 선정에 대한 변이 아스날팬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There are good reasons to argue that the likes of Emmanuel Petit or Freddie Ljungberg should be included on this list ahead of Arteta but they were very different signings in being additional components to already great teams. Arteta might have been bought at a premium price for a 29-year-old but his influence both on the pitch and in the dressing-room has, at times, been the glue that has held Arsenal together during the most difficult transitional two seasons of Arsene Wenger’s entire 17 years as manager.
''에마뉘엘 프티나 프레드리크 융베리가 아르테타보다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할 여러 이유들이 존재하겠지만 그들은 이미 완성된 팀의 부수적인 영입이었다. 아르테타는 29세의 나이에 영입되었으나 벵거의 전체 17년 중 가장 힘겨웠던 과도기 두 시즌 동안 그의 영향력으로 아스날은 경기장과 라커룸에서 한 팀으로 뭉칠 수 있었다'
''에마뉘엘 프티나 프레드리크 융베리가 아르테타보다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할 여러 이유들이 존재하겠지만 그들은 이미 완성된 팀의 부수적인 영입이었다. 아르테타는 29세의 나이에 영입되었으나 벵거의 전체 17년 중 가장 힘겨웠던 과도기 두 시즌 동안 그의 영향력으로 아스날은 경기장과 라커룸에서 한 팀으로 뭉칠 수 있었다'
아르테타가 없었으면 아스날은 기사의 말처럼 진작에 챔스권에서 완전히 멀어졌을 것이다. 개판 오분 직전의 팀을 단합하게 한 사람이 바로 아르테타. 2014-15 시즌 부상으로 시즌을 통 날렸는데도, 구단 보드진 & 벵거가 아르테타에게 재계약을 먼저 제안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 실제로, 아스날 팬들 역시 아르테타의 재계약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 현역 선수 시절인 2001-02 시즌 파리 생제르맹 FC에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와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15] 심지어 포체티노뿐만 아니라 이 시즌의 PSG 스쿼드에는 호나우지뉴, 니콜라스 아넬카, 제이제이 오코차도 같이 있었다.
- 많은 사람들이 모르지만 아르테타는 라 마시아 출신이다. 아르테타가 라 마시아에 있던 시절은 바로 바비 롭슨 경이 호나우두를 이끌고 코파 델 레이와 컵위너스컵 더블을 이뤘던 시절이고, 팀에 주제 무리뉴가 잉글랜드 출신인 롭슨을 돕기 위해 통역사로 있었다. 더군다나 팀의 멤버들로는 루이스 엔리케, 펩 과르디올라, 로랑 블랑, 훌렌 로페테기가 있었다. 호나우두를 제외하고 여기 언급된 인물들 전원은 훗날 감독이 되었으며, 무려 세 명이 트레블을 달성하게 된다.[16] 블랑도 PSG에서 수많은 자국 트로피들을 들어올렸고 로페테기와 아르테타는 2019-20 시즌에 각각 유로파 리그, FA 컵을 우승하면서 감독으로서도 커리어를 이어나가게 된다.
- 아르테타는 실제로 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아르센 벵거, 펩 과르디올라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코치로 아르테타를 원한다는 기사가 떴다. 포체티노 감독은 PSG에서 아르테타와의 연이 깊기 때문에 포체티노의 밑으로 들어갈 가능성도 농후하지만 아스날에 대한 아르테타의 충성도를 보면 포체티노가 토트넘에서 다른 팀으로 이직을 하게 된다면 그 밑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결국 펩 과르디올라 밑에서 맨시티에서 일하다가 2019년 12월 20일, 본인이 선수 생활을 했던 아스날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선수단과 나이 차가 비교적 적은 감독이라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 같은 맏형 라인부터 리스 넬슨 같은 막내 라인을 막론하고 많은 선수가 그를 이름인 '미켈'이라고 부른다.[17] 팬들은 감독과 선수 간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 같아서 호의적인 의견이 많다. 로이 킨이 이에 대해 뜬금없이 태클을 걸기도 했으나 아르테타는 '뭔 상관이냐'고 반박했다.
- 현재 아스날 내에서 지속되고 있는 주장의 저주로 인해 2022-23 시즌을 앞두고 주장 선정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18] 주장 후보로는 현재 주장인 외데고르를 포함하여 자카, 제주스, 홀딩까지 네 명을 선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직전 시즌 막바지부터 주장 대행 역할을 소화한 외데고르에게 완장을 넘겼다. 단순히 말만 많은 것이 아닌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기에 주장으로 선임했다고 한다. 이외 홀딩과 관련하여 따로 코멘트를 남겼었는데, 팀 내 선수나 스태프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선수이며 팀에 꼭 필요한 선수고 그를 별로라고 욕하는 선수는 홀딩의 진가를 못알아보는 것이다 라고 발언했다. 여담으로 위에 기재된 외데고르 이외의 주장 후보였던 선수는 차례대로 부주장, 3주장, 4주장 역할을 소화하로 있다.
- 인터뷰 능력을 비롯한 언변이 굉장히 좋은 축에 속한다. 과거 벵거의 인터뷰 스타일과 유사하면서도 기자들이 던지는 애매하거나 대답해주기 난감한 질문들에 대해서도 우문현답으로 잘 빠져나가는 편이다. 이 언변은 이적시장에서도 요긴하게 활용되는데, 아스날을 포함한 여러 클럽이 군침을 흘리던 선수들이 아르테타와 전화만 했다 하면 '그의 프로젝트에 매료되어 아스날에 합류하길 열망한다'는 기사가 우후죽순으로 뜨는 진풍경이 나온다. 때문에 많은 축구 팬에게 아르테타의 전화는 희대의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일부 팬들은 아예 최면술을 거는거라고 주장할 정도다.
- 여러 선수와 감독의 인터뷰에서 아르테타를 괴짜 혹은 천재라고 칭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아르테타가 풀백이 윙어에게 패스를 주는 방식 조차도 본인만의 방법론을 가지고 있으며 이 플레이가 실제로 아스날 경기에서 구현되었음이 알려지면서 아르테타의 세밀함에 감탄을 표하는 의견도 자주 보인다. #
- 모바일 축구 게임 사커 매니저 모델로 2년 계약한 것이 확인 되었다.
- 성이 '아마트리아인'인 것과 커리어에서 국가대표 경기 출전 횟수가 0회인 것을 엮어 국적이 '아마트리아'[19]라는 드립도 생겼다.
- 맨시티 코치 시절, 2017-18 시즌 전반기 맨체스터 더비에서 라커룸 싸움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맨유의 무리뉴 감독과 맨시티의 골키퍼 에데르송 모라에스 사이에서 벌어진 말다툼에서 시작하여 난투극으로 번진 싸움인데, 여기에 휘말려들어 눈썹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 부상이 다름아닌 로멜루 루카쿠가 집어던진 물병에 맞아서 생겼다는 소문이 있기도 했다.
- 24/25시즌 이전 프리시즌에 선수단과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소매치기(...)를 고용해 선수단의 휴대폰과 지갑을 털었다는 황당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하였다. # 이후 선수들에게 늘 경계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6.1. WAGs
- 부인의 이름은 로레나 베르날. 1981년 5월생인 아르헨티나-스페인 혈통의 모델이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고 1년 후 아르테타의 고향으로 이민을 왔다. 7세때부터 키즈모델로 활동했으며 17세 때인 1999년도 미스 스페인 대회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1999년 미스 월드 탑10이기도 하다. 2002년 처음 만났고 2004년부터 연인으로 발전해서 2010년 결혼했으며, 현재 슬하에 아들 셋을 두고 있다.
7.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 0px solid; margin-bottom: -15px" | 보드진 | ||||
직책 | 국적 | 한글 성명 | 로마자 성명 | 비고 | |
명예 회장 | 켄 프라이어 | Kenneth Friar OBE | [2] | ||
대주주 | 스탠 크랑키 | Stan Kroenke | |||
이사 | 페컴의 해리스 남작 | Lord Harris of Peckham | [3] | ||
이사 | 조시 크랑키 | Josh Kroenke | [4] | ||
이사 | 팀 루이스 | Tim Lewis | |||
CEO | 비나이 벤카테샴 | Vinai Venkatesham | |||
스포츠 디렉터 | 에두 가스파르 | Edu Gaspar | [5] | ||
축구 운영 책임자 | 리처드 갈릭 | Richard Garlick | |||
코칭 스태프 | |||||
직책 | 국적 | 한글 성명 | 로마자 성명 | 비고 | |
감독 | 미켈 아르테타 | Mikel Arteta | [6] | ||
수석 코치 | 알베르트 스타위벤베르흐 | Albert Stuivenberg | |||
미겔 몰리나 | Miguel Molina | ||||
카를로스 쿠에스타 | Carlos Cuesta | ||||
세트피스 코치 | 니콜라스 조버 | Nicolas Jover | |||
골키퍼 코치 | 이냐키 카냐 | Iñaki Caña | |||
아카데미 매니저 | 페어 메르테사커 | Per Mertesacker | [7] | ||
U-21 감독 | 메흐메트 알리 | Mehmet Ali | |||
U-18 감독 | 애덤 버철 | Adam Birchall | |||
피트니스 코치 | 샘 윌슨 | Sam Wilson | |||
팀 닥터 | 자프 이크발 | Zaf Iqbal | |||
구단 정보 | |||||
구단주: 아스날 홀딩스 공개주식회사 / 감독: 미켈 아르테타 / 구장: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 |||||
출처: Transfermarkt / 마지막 수정 일자: 2020년 8월 16일 |
[주의] 이 틀은 기기 환경에 따라 볼 때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2] 60년 넘게 아스날 보드진에서 헌신한 레전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이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3] 일대귀족이다[4] 대주주 스탠 크랑키의 아들[5]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아스날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무패 우승에 기여한 레전드 중 한 명.[6]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아스날 소속으로 2년 간 주장직 연임. 2번의 FA컵 우승에 기여한 아스날 암흑기의 최고 레전드 중 하나.[7]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아스날에서 뛰며 3번의 FA컵 우승에 기여, 2시즌 간 주장직 수행. 아스날 암흑기의 최고 레전드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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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레인저스 FC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 가톨릭 신자로서 레인저스에서 뛰는 것이 어떤지에 대한 질문을 영국 언론으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 이때 상대 종교를 존중하면 아무 문제 없다는 교과서적인 답을 했다.[2] 웬만한 미드필더 자리는 전부 소화 가능하다. 선수 생활 초기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시작했지만 커리어를 거치면서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까지 전부 소화했으며 에버튼에서 10/11 시즌 중앙 미드필더로 고정되는 듯했으나 아스날 이적 후, 알렉스 송과 위치를 바꾸면서 다시 수비형 미드필더도 뛰게 되었다.[3] 2019-20 시즌 중도 부임[4] 에버튼과 아스날에서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고 아스날 시절엔 주장 완장도 찬 경력이 있지만 차고 넘치는 대표팀의 미드필더 자원 때문에 성인 대표팀에서는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5] 07-08 시즌 아르센 벵거 이후 아스날 구단 최초로 한 시즌에 이달의 감독상을 2회 수상한 감독이 되었다.[6] 월드컵 휴식기간 때문에 11, 12월은 묶어서 발표[7] 前 아스날 FC U-21 감독[8] 물론 영어와 바스크어를 제외하면 모두 로망스어군 방언연속체라서 수월하게 배웠을 것이다.[9] 바르샤에서 유스로 뛸 때 학교 다니면 카탈루냐어로 수업을 해 습득해야 했다고 한다.[10] 파리에 있을때 배웠다.[11] 아르테타도 선수 시절 동료였던 나초 몬레알과 마찬가지로 바스크 출신이다.[12] 클럽에서 뛰던 친한 지인들이 포르투갈인이라 대화하려고 배웠다고 한다. 참고로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는 유사점이 많아서 스페인 사람들도 포르투갈어를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한다.[13] 그냥 이탈리아라는 국가를 좋아해서 독학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탈리아어도 스페인어 및 포르투갈어와 유사점이 많아 스페인 및 포르투갈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배우기 쉬운 언어 중 하나다.[14] 순위는 10위. 9위는 세스크 파브레가스, 8위는 로빈 반 페르시, 7위는 솔 캠벨, 6위는 로베르 피레스, 5위는 니콜라스 아넬카, 4위는 콜로 투레, 3위는 마르크 오베르마스, 2위는 파트리크 비에이라, 1위는 모두가 예상할 수 있지만 티에리 앙리다.[15] 아르테타는 등번호 4번을 달고 있었고 포체티노는 등번호 5번을 달고 있던 주전 수비수였다. #[16] 여기에 세르히오의 아버지인 카를레스 부스케츠와 라파엘 나달의 삼촌인 미겔 앙헬 나달 또한 있었다.[17] 물론 격식을 갖춰 '보스'라고 부르는 선수도 있다.[18]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르테타 본인이 주장이었을 때도 부상으로 경기에 거의 출장하지 못했으며 그대로 은퇴를 했다. 물론 라커룸 내에서 주장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고 평가를 받고 있기에 주장의 저주와 관련된 선수 중에선 그나마 좋은 평을 받는 편.[19] 심지어는 이 가공의 아마트리아라는 국가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국가고 아르테타는 이 지역의 독립을 위해 노력 중이라는 설정으로 만들어져 아르테타의 독립운동으로 스페인 국가대표를 보이콧했다느니 국대 기록이 말소되었다느니하는 농담이 생겼고 디시인사이드에 아마트리아 마이너 갤러리까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