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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 파키스탄 |
1. 개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관계. 아프가니스탄의 최다 민족인 파슈툰인은 파키스탄 북서부의 카이베르파크툰크와의 주 거주민족이기도 하다. 파슈툰족의 거주하는 지역의 절반 정도가 파키스탄 영토라서 아프가니스탄에서 고토회복을 요구하며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아프가니스탄 바라크자이 왕조가 건재하던 시절에는 아니었지만,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에 아프가니스탄은 파키스탄에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상황이 되었다. 세계지도를 보면 양국 국토의 크기가 비슷해보여서 간과하기가 쉽지만 파키스탄 쪽 인구가 5배 이상 많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정치와 경제가 워낙 개판이어서 그렇지 파키스탄 국토 자체는 인더스 강을 끼고 있는 펀자브 지역으로 인해 수자원도 나름 풍부한 비옥한 땅인 반면에 아프가니스탄은 산투성이이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나고 파키스탄 정부와 탈레반 정권 사이의 밀월 관계가 공식화하면서, 파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을 예속화하는 문제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2. 역사적 관계
근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흥한 두라니 왕조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석권하고 당시에 내란에 시달리던 무굴제국의 여러 지방세력들을 상대로 승전하여 파키스탄 및 카슈미르 일대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두라니왕조는 정복활동에 참여한 군인들에게 봉급을 제대로 지불하는데 실패하면서 파키스탄 지역에 새로 정복한 영토의 지배권을 다지는데 실패하였다. 두라니 왕조는 멸망 이후 바라크자이 왕조로 이어졌다.영국령 인도 제국 시절에 영국이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의 바라크자이 왕조는 독립을 유지하고 파슈툰족의 거주지는 영국이 그어놓은 듀랜드 라인에 의해서 양분되었다. 사실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처럼 다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에서의 지역분쟁은 곧 민족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오늘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은 1893년에 영국이 멋대로 설정한 듀랜드 라인(Durand Line)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인데, 골때리는 것은 이 경계선이라는 게 애초부터 아프가니스탄의 주류민족인 파슈툰(Pashtun)을 분할시켜서 그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데에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프간의 3분의 1 가량의 영토랑 절반 이상의 파슈툰족 인구가 파키스탄에 편입되어버렸다. 즉 탈레반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북부지방의 주민들인 파슈툰인들은 불과 백년전까지만 해도 파슈툰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대뜸 외국세력에 의해서 파키스탄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 펀자브인들로 이루어진 파키스탄 중앙정부를 좋아할리도 없고 그들의 압제를 받아들일 리가 없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탈레반은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의 파슈툰족이 주류인 테러단체이다.
오늘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양국관계가 갈등이 심해진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탈레반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인 중 근본주의 성향도 파키스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반탈레반 성향이 있는 경우에는 종종 파키스탄 국기를 불태우는 행사까지도 벌일 정도로 극도로 증오하는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지지자들 입장도 별로 호의적이지는 않은데 파키스탄이 자국을 반식민지로 예속화하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인의 펀자브인, 신드인들 입장에서도 북부 국경을 넘어오는 탈레반 때문에 자국의 치안이 불안해져서 해외투자가 안 이루어진다고 불만이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인이나 파키스탄인들에게 물어봐도 양국 사이의 국민감정이 대단히 좋지 않다는 점을 금방 알 수가 있을 정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와중에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파키스탄을 통해서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들을 원조하였는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의 이슬람주의가 아프가니스탄으로 유입되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파키스탄과 인접한 파슈툰인들이 가장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이 강한 편이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엄청난 수의 전쟁 고아들이 발생했는데 이들을 거두어주고 수용한 마드라사에서는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극단적인 여성 혐오 사고방식[1][2]을 포함한 이슬람 극단주의를 교육하였다는 점이다. 가족과 분리된 상태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만 교육받은 소년들은 탈레반 멤버가 되어 모하마드 오마르를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에서 폭정을 일삼았다.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는 반탈레반 성향의 타지크인, 하자라인, 우즈베크인 등등 입장에서는 파키스탄 이슬람 회의만한 원수도 없는 셈이다. 파슈툰족들조차 국민감정 자체는 파키스탄한테 매우 적대적이라서, 2011년에 오인사격으로 파키스탄군이 죽었을 때 수도인 카불에서는 대형축제가 벌어지고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파키스탄을 침공하자고 나올 정도였다. 링크
그러나 탈레반을 통해서 아프가니스탄을 예속화하려던 파키스탄의 시도는 파키스탄의 실세 펀자브인과 파슈툰인 사이의 갈등 및 파키스탄 정부의 부정부패와 형편없는 정치력 때문에 엇나가고 말았다. 탈레반은 중앙집권체계를 갖춘 단일한 정치세력이 아니었다.[3] 파키스탄 입장에서는 파키스탄 북부의 탈레반 세력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예속화시키기를 바랬으나 정작 파키스탄은 자국 영내의 탈레반 그룹의 통제조차 실패한다. 원리주의 성격이 강한 파키스탄 북부로 들어온 탈레반이 아예 북부지역의 행정을 장악해버렸다. 더욱 황당한 것은 사령부가 분대 규모의 적에게 불과 두어시간만에 유린당했었다는 것이다. 파키스탄군의 소탕작전에는 무려 20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 바로 옆이 아예 정부의 통제보다 탈레반의 통제가 더 잘 먹히는 파슈툰족 지역이니까 답이 없다. 파키스탄 군부가 여러 탈레반 군벌들과 동맹과 공격을 반복하는 상황이 반복하는 상황이다. 즉 파키스탄은 한 편으로는 일부 탈레반 군벌과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탈레반 군벌과 협조하는 등 정상적인 현대국가에서 보기 힘든 개판이 벌어졌다. 공식적으로야 파키스탄은 탈레반 지원에 대해서 절대부정하는 상황인데 그 근거로는 파키스탄 국가기관이 탈레반에게 여러차례 테러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파키스탄 입장에서는 북쪽에 탈레반이 활동한다는 점이 있다는 점이 국가치안과 발전에 심각한 장애요인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탈레반은 단일한 위계구조를 갖는 그룹이 아니므로 탈레반이 파키스탄에 테러를 일으킨다고 해서 파키스탄이 탈레반을 전혀 돕지 않았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이런 판이라서 세계, 특히 서구권과 인도에서는 걱정이 많다. 무엇보다도 알 카에다와 친한 탈레반이 파키스탄을 장악할 경우에는 핵무기를 손에 넣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파키스탄의 탈레반은 서방과 협력하는 파키스탄 정부를 불신자로 간주하여 파키스탄탈레반운동(TTP)을 구성해서 반정부 무력투쟁에 나섰다. 이 때문에 파키스탄 정부는 2014년부터 탈레반에 대해서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들어갔다.
2.1. 21세기
2001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붕괴 이후 탈레반 수뇌부 인사들이 파키스탄 퀘타로 이동하였다.# 퀘타는 소련-아프간 전쟁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넘어온 불법체류자 인구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파키스탄 입장에서는 “우리는 몰랐어 어쩌라고”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다만 퀘타는 행정력이 잘 안 닿는 카이베르파크툰크와가 아닌 발루치스탄 주 도시이기 때문에 파키스탄 정부에서 알고도 일부러 봐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에서 퀘타의 탈레반 사령부 토벌을 요청하였음에도 파키스탄 측에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미국 입장에서는 속 터지지만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한 주변국 중에 그나마 파키스탄이 미국과 친하기 때문에 눈 뜨고 당하던 상황이었다.[4]위키피디아 영어판 압둘 가니 바라다르 문서에 의하면 퀘타에 머물던 바라다르가 2010년 갑자기 파키스탄군에 체포된 이유도 바라다르가 ISI의 개입 없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측과 평화 협상을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압둘 가니 바라다르는 2018년 출소한 후 카타르로 이사했다.
어떻게 보면 파키스탄도 가해자가 된 피해자이다. 파키스탄에는 소련-아프간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내전당시에 파키스탄으로 이주한 140만명의 난민들과 100만명의 비등록난민들이 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파키스탄을 통해서 파슈툰 무자헤딘을 열심히 후원하던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이후에 난민 문제 관련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고, 미국 역시 소련이 철수하자 인도적 지원을 끊어버렸다. 파키스탄 내 아프가니스탄 난민 인구는 난민들이 파키스탄에서 출산한 자녀, 손주 등등까지 합하면 도합 400만여 명에 달하며, 19세기 말 이래에 퀘타로 아주해온 하자라족 난민 후손들까지 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파키스탄 정부에서는 난민단속을 펼치고 있고 파키스탄측에서는 일정 기한을 주고 파키스탄을 떠날것을 통보했다.## 그러다가 2017년 7월 21일에 파키스탄 정부는 파키스탄내 100만명이상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게 체류증을 발급하겠다고 밝혔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는 난민 유입의 차단을 목적으로 2006년부터 듀랜드 라인을 따라서 파키스탄-아프간 장벽 건설이 추진되면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6월 13일에도 국경분쟁이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2017년 2월 16일에 수피즘 사원에서 다에쉬에 의해서 일어난 테러로 인해서 88명이 사망하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파키스탄 탈레반과 다에쉬 등의 테러조직원 100여명을 소탕했다고 밝혔고 이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 2명의 민간인이 사망하자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항의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2017년 3월 6일에 파키스탄군의 포격으로 아프가니스탄인 4명이 사망하자 양국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2017년 3월 6일에 파키스탄 외교부는 아프가니스탄 국경통행을 다시 재개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가니스탄과의 화해표시로 국경통행을 전격 재개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과 접한 국경지역에 철조망을 세우기로 결정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반발했다.#
2018년 4월 7일에 아프가니스탄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과 파키스탄의 아바시 국무총리는 카불에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평화와 연대를 위한 행동계획을 체결하기 위한 7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그리고 임란 칸 국무총리는 파키스탄 내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게 시민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2019년 9월 7일에 이슬라마바드에서 중국,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3국의 제3차 외교장관 회의가 개최되었다.#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에서 파키스탄은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2.1.1. 2020년대
2020년 10월 20일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 비자 신청을 위해 수천명이 몰려든 통에 15명이 압사했다.#2021년 4월 23일에 터키,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의 외교장관들이 탈레반이 평화협상에 참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특명전권대사의 딸이 납치되면서 고문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2021년 중반부터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영토 대부분을 점령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파키스탄으로 피난을 가고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막기 위해 국경을 폐쇄하기로 했다.# 카불 공항으로 접근이 어려워지면서 아프가니스탄인들중에는 육로를 통해 파키스탄으로 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아프간내 하자라족들이 파키스탄으로 피난을 가기 시작했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한명이라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탈레반이 점거한 과도정부와 거래를 했는지 파키스탄 공군이 판지시르의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의 매복지를 공습하며 탈레반을 노골적으로 돕기 시작하였다. 이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반파키스탄 시위가 일어났다.
파키스탄 측에서 탈레반과 파키스탄의 커넥션 관련한 여러 의혹 제기를 부정함과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탈레반 정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9월 21일에 탈레반이 임명한 아프가니스탄의 임시 국무총리 등이 카불에서 러시아·중국·파키스탄이 보낸 특사와 회담했다.#
10월 5일에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카불시 여성시장이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을 제재해야 한다고 밝혔다.#
12월 31일에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에서 탈레반과 파키스탄군의 충돌이 일어났다.#
2022년 2월 16일에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이 아프가니스탄 지원에 협력했다.#
탈레반은 파키스탄군이 국경을 공습해서 아프가니스탄인 수십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12월 30일, 파키스탄 당국이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주민 1,200명을 체포해서 수감시설에 수용했다.#
2023년 1월 5일, 아프가니스탄의 힌두쿠시 산맥에서 발생된 지진이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감지됐다.#
1월 7일, 파키스탄 당국이 수감된 아프가니스탄 불법 이주민 500명을 석방시켰다.#
3. 문화 교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모두 순니파 주류 국가이며 하나피파 법학파가 주류이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식자층(특히 율법학자들)의 상당수가 우르두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안다.[5] 하나피파는 원래는 온건 성향 학파인데 남아시아의 하나피파는 현대 이슬람주의의 영향으로 근본주의화되었고 이 여파는 양국의 사회/경제/문화 발전을 크게 지체시키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제작된 드라마, 영화, 음악 등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기를 끌기도 한다.4. 관련 문서
- 아프가니스탄/외교
- 파키스탄/외교
- ISI
-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
- 이슬람 협력기구
- 듀랜드 라인
- 아프가니스탄/역사
- 파키스탄/역사
- 아프가니스탄/경제
- 파키스탄/경제
- 아프가니스탄인 / 파키스탄인
- 파슈토어 / 다리어 / 페르시아어 / 우르두어 / 펀자브어
- 아프가니스탄 요리 / 파키스탄 요리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중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남아시아 국가
[1] 마우두디는 여성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집 밖으로 외출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로 이는 히잡으로 가리지 못한 손이나 얼굴, 혹은 눈 등이 부도덕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주장을 내세운 아불 알라 마우두디 자신은 뉴욕에서 호의호식하며 살았다. 같은 맥락에서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여성의 참정권이나 정치 참여를 이슬람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였다.[2] 원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주류 법학파인 하나피파는 여성 환자가 남성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을 허용하지만, 탈레반은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반지성주의적 해석을 바탕으로 여성 환자가 남성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조차 금지시키는 등의 갖가지 황당한 폭정을 펼쳤다.[3] 파슈툰인은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민족이지만, 아프가니스탄 내의 파슈툰인 인구보다 파키스탄 내의 파슈툰인 인구가 더 많다. 다시 말해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세력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으로 단일한 세력으로 통일되었다 하더라도 국경선을 넘어서 파키스탄 내 탈레반 그룹들이 서로 이합집산하는 상황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4]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주변국 중 투르크메니스탄은 친중, 친러 독재국가이며, 이란과 파키스탄 역시 친중이고 북쪽의 국경을 면한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경우 민간감정은 중국에게 적대적일지는 몰라도 경제가 러시아에 잡혀있는 상황이다. 즉 아프가니스탄 주변국 중 친미반러, 친미반중을 동시에 갖춘 국가를 찾기 힘들다.[5] 아프가니스탄 일반인들 중에서도 볼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으로 힌디어/우르두어로 간단한 회화 정도는 할 줄 아는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