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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현/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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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OB/두산 베어스 시절2. SK 와이번스 시절3. 수상 경력4. 연도별 성적

1. OB/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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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자 (2001, 2003, 2005)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50223010023048001501913.jpg
파일:external/image.asiatoday.co.kr/%EC%95%88%EA%B2%BD%ED%98%84.jpg
두산 베어스 선수 시절

강원도 원주시 출신으로 원주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원주고등학교 시절 학교가 약체라 대학은 언감생심이라 여겼지만, 동기들 중 유일하게 연세대학교에 합격한다.[1] 입학 당시 연세대학교 분위기가 다른 대학과 달라 연습량도 무척 적은 편이였다. 연세대 시절 국가대표에도 뽑히고 무난한 대학 생활을 했던 덕분인지, 1992년 OB 베어스에서 2차 2순위로 지명을 받아 데뷔했다.[2][3] 1990년대 말까지는 3루수를 맡다가 김동주의 등장 이후 주로 2루수로 출전했다. 2001년, 2003년, 2005년 2루수 부문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파일:doosanBearslegend3.png
당대의 베어스를 대표하던 김동주, 홍성흔과 함께.[4]

20대는 수비에 비해 공격력이 다소 떨어지는 선수였으나 30세 이후 본격적으로 재능을 발휘, 2001년 타율 0.282, 17홈런, 87타점, OPS 0.835로 타이론 우즈 - 심재학 - 김동주 클린업의 뒤를 받쳐주는 막강한 하위타선의 중심[5]으로 활약했다. 특히 2000년 LG와의 플레이오프 6차전에서 패색이 짙어진 9회초 2사에서, 장문석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홈런을 날려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간 것은 지금까지 두산팬들에게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6] 이후에도 2003시즌 타율 0.333, 10홈런, 72타점, OPS 0.863, 2005시즌 타율 0.293, 4홈런, 62타점, OPS 0.762[7][8], 2006시즌 타율 0.284 15홈런, 70타점, OPS 0.816의 성적을 올리면서 우즈, 심정수, 심재학 등이 빠진 두산 타선의 중심으로 활약했다.[9]

팬들에게는 2000년대 후반까지 장원진과 함께 각각 안샘, 장샘으로 불리며 팀의 정신적 리더로 존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이는 동기생인데도 별로 좋지 못했는데, 전형적인 모범생 고참 스타일인 장원진과 술 좋아하는 자유방임형의 안경현의 성격 차이에 더해서 두 선수를 중심으로 한 팀내 파벌 대립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LG 트윈스의 유지현김재현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듯.[10]

2003년 KBO 올스타전에 선발 선수로 뽑혀서 삼성 라이온즈의 동군 독식[11]을 막았다.

특이한 기록으로 2011년 9월까지 통산병살타 172개로 프로야구 최다 병살타왕이었다. 그런데 2011년 9월 3일 홍성흔이 병살타 2개를 추가하면서 통산 172개로 공동 1위 등극했다. 이날 안경현은 홍성흔에게 축하전화까지 했다고 한다. 이어서 홍성흔은 4일날 병살타 또 한 개를 추가하면서 대망의 병살타왕 등극했고, 안경현은 2위로 밀렸다.

상당히 기인 타입의 인물로 2005년 전까지는 종종 일본 프로야구의 기인으로 유명했던 신조 츠요시와 비교되기도 했다. 운동선수로는 드물게 굉장한 자유방임적 가치관을 지녀서 주장 시절에도 후배 선수들에게 한 번도 집합을 걸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며, 안경현이 주장으로 있던 2001년에 두산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 우승했다. 안경현이 확립한 '자유로움+워크에씩' 원칙은 김재호를 거쳐 오재원이 주장인 현재까지도 두산의 확고한 팀 문화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안경현의 업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12]

이 외에도 넉살과 배짱이 두둑하여 다른 팀 라커룸에 슬쩍 나타나서 간식을 훔쳐먹는다든지 상대 팀 집합때 존재감 없이 구석에 서서 상대팀 코치의 말을 엿듣다가 상대팀 코치와 선수들이 모두 혼비백산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선배 야구인들에게는 그리 좋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고, 뒤에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 때 불거졌던 '상대팀과의 사인 교환'설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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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4일. 잠실시리즈에서 봉중근과 시비가 붙어 주먹을 날리다, 되레 백 바디 드랍을 당한 일이 있었다.[13][14][15]


2007년이라 두산에는 홍성흔, 그리고 잘 안보이지만 이대수[16]민병헌[17] & LG에는 이대형, 박경수, 김상현, 최동수, 조인성, 심수창을 한 그라운드에서 볼 수 있다. 또 날아차기를 한 박명환도 있다. 중간에 훗날 두산 감독이 된 김태형과 코치 김민호도 있다. 끝의 끝까지 분노하는 김동주와 식빵18 거리는 봉중근이 볼거리. 18분 3초, 11시 방향을 보면 조인성과 안경현은 바로 앙금을 풀었다.

파일:external/file2.cbs.co.kr/05132347593_60400020.jpg

2007 시즌 중반부터 서서히 기량이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안경현은 불화의 원인은 자신도 모른다고 하며 그렇게 생각하기 싫다고 밝혔다. 결국 2008 시즌을 앞두고는 아예 전지훈련에서 배제되는 아픔을 겪었으며 시즌 중반 팬들의 비난에 못이긴 김경문 감독이 간간이 대타로 기용했으나 시즌이 끝나고 공개적으로 은퇴를 종용했다. 안경현은 이를 거부하고 16년 동안 몸담은 팀을 떠나 SK 와이번스와 계약금 없이 연봉 8천만 원에 계약하였다.

2. SK 와이번스 시절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00909073409902.jpg
SK에서도 노쇠화로 인해 많은 출장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2009년 42경기, 2010년 8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두시즌 모두 홈런 1개씩을 기록했고, 특히나 2009년 9월 3일 두산과의 경기 6회초 1-3으로 뒤진 상황에서 홍상삼을 상대로 동점 투런포를 기록하며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다. 2010시즌 이후 은퇴를 선언했고 SK 구단에서는 은퇴행사를 치러주겠다는 대인배의 풍모를 보여주었지만 본인이 거부했다. 은퇴당시 정황기사.

2010년 9월 은퇴 후,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사설 야구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유소년 및 사회인 야구 지도자로 새출발했다.

통산 성적은 19시즌동안 1,766게임에 출장, 6,218타석, 5,405타수, 타율 0.274, 1,483안타, 121홈런, 722타점, OPS 0.748다. 커리어 하이는 2003 시즌으로, 이 해에 타율 0.333, 10홈런, 72타점, OPS 0.863을 기록했다.

3. 수상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안경현의 KBO 수상 경력
1995 한국시리즈 우승
1997 동군 올스타(베스트10)
1998 동군 올스타(베스트10)
2001 한국시리즈 우승 /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 플레이오프 MVP
2002 동군 올스타(베스트10)
2003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 동군 올스타(베스트10)
2005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4. 연도별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안경현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WAR*
1992 OB 19 33 3 0 0 0 1 1 0 3 8 .103 .182 .103 .285 -29.1 -0.35
1993 75 170 30 9 0 2 10 15 1 12 22 .204 .287 .306 .593 73.4 0.34
1994 77 180 36 5 0 6 20 20 0 19 24 .238 .343 .391 .734 111.8 1.06
1995 103 299 75 10 3 5 38 34 0 19 34 .280 .330 .396 .725 108.4 1.83
1996 125 475 107 19 2 8 42 43 0 39 65 .251 .316 .362 .678 96.5 2.21
1997 69 258 64 9 1 9 34 31 2 21 37 .284 .360 .453 .813 125.3 2.07
1998 116 408 90 23 0 6 38 32 4 29 45 .249 .310 .362 .672 83.1 1.35
1999 두산 114 337 72 7 0 7 32 33 5 28 34 .247 .322 .344 .666 65.6 0.37
2000 114 377 91 16 1 9 39 48 1 35 29 .277 .355 .415 .770 101.7 2.08
2001 131 539 129 31
(3위)
1 17 87 68 4 54 51 .282 .368 .466 .835 114.6 3.82
2002 130 548 140 24 4
(4위)
8 58 50 5 44 65 .288 .349 .403 .753 104.2 3.13
2003 128 539 158
(4위)
28 3 10 72 65 1 48 43 .333
(3위)
.396 .467 .863 134.2 4.98
2004 125 525 125 20 1 10 51 57 8 54 44 .280 .372 .396 .768 109.6 3.42
2005 105 415 104 19 0 4 62 54 1 44 39 .293 .382 .380 .762 115.9 2.80
2006 125 499 120 21 0 15 70 45 3 50 45 .284 .377 .440 .816 140.4 3.54
2007 109 400 96 17 4
(5위)
2 49 26 1 33 27 .274 .341 .362 .703 97.3 0.96
2008 51 134 29 5 0 1 12 9 1 14 16 .257 .353 .327 .681 93.2 0.20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WAR*
2009 SK 42 67 12 2 0 1 5 6 0 1 9 .207 .233 .293 .526 7.4 -0.58
2010 8 15 2 0 0 1 2 2 0 1 2 .154 .214 .385 .599 11.3 -0.12
KBO 통산
(19시즌)
1766 6218 1483 265 20 121 722 639 37 548 639 .274 .350 .398 .748 104.8 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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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준과 연대 동기로 절친이다. 이 시절 김정준의 집에 자주 놀러가서 김성근 감독이 모아 놓은 일본프로야구 경기 비디오를 많이 봤다고 한다. 그 당시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서 일본 야구 자료를 구하기가 힘들었던 시절이었고, 실제로 지금 김정준의 집에서도 일본 야구 관련 자료가 많이 있다.[2] OB 베어스 입단 동기로 권명철, 장원진이 있다.[3] 롯데 자이언츠도 안경현을 눈여겨 봤으나 가득염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태평양 돌핀스에서도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4] 베어스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김태형 감독 이전, 김경문 감독 시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상징이자 팀의 레전드로 자리잡은 3인이다.[5] 안경현-홍성흔-홍원기의 타선을 속칭 안성기로 부르기도 하였다.[6] 이후 연장 11회에서 심정수가 결승 홈런을 날리면서 두산은 2000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7] 안경현은 이 해 장타력이 감소했지만 팀내 최고 출루율을 기록할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했다.[8] 이 해 두산 타선이 심각하게 좋지 못했는데, 이 시즌에 팀내 규정타석 3할을 친 선수가 임재철 한명이었고, 팀내 최다홈런이 홍성흔의 11홈런이 최다이니.... 거기다가 팀내 최다타점도 홍성흔의 74타점이었다. 이런 타선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두산은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물론 삼성에 0대4로 떡실신하긴 했지만.[9] 이 시즌은 시즌 개막 전 김동주가 WBC에서 장기 부상을 당하며 안경현이 4번 타순에서 뛰었던 시즌이다.[10] 그러나 안경현은 장원진과는 친할 일이 없었을 뿐, 그 이상의 갈등은 없었다고 인터뷰했다. 유지현과 김재현 역시 소문과는 달리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라고 김재현이 언급한 바 있다.[11] 올스타에 선정된 10명 중 안경현을 제외한 올스타 9명이 삼성선수였다.[12] 이에 대해서는 은퇴 후 스톡킹출연해 '어차피 다 성인이고, 술 먹고 싶은 사람은 술 먹고 게임할 사람은 게임하고 알아서 하되 책임은 본인이 지라는 마인드였다. 프로도 엄밀히 보면 개인사업자 아니냐. 그 책임을 질 수만 있다면 따로 터치 안 했다.'라고 밝혔다. 오히려 젊은 선수들에게 염색도 권장하고 옆집처럼 멋도 좀 부리고 다니라고 했다고.[13] 이에 대해서는 봉중근이 억울하다고 한다. 안경현이 주먹을 들고 냅다 달려들자 본능적으로 숙인 것 뿐인데 이렇게 되었다고 설명했다.[14] 스톡킹에서 안경현이 말한 바론 이와중에 조인성이 두사람을 말릴 생각도 안하고 공만 줏으러갔다고. 그리고 홍성흔과 김동주에게 백 바디 드랍 당했다고 놀림받았다고 한다.[15] 후에 빽 투 더 그라운드에서 봉중근이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을때 이찬원의 질문 의해 이 사건이 다시 언급됐는데 안경현 본인도 잘 한건 없었다며 지금은 어색하지 않기도 하고, 옆에 있던 송진우는 벤치클리어링은 타자가 투수에게 달려가다 힘이 빠지기 때문에 타자는 거의 진다며 증언하고, 안경현도 이에 인정하며 중간쯤 괜히 가나 싶었다고 한다(...).[16] 벤치클리어링 리플레이 영상에 뛰쳐나온 김동주를 말리러 나온다[17] 봉중근 퇴장 직후 분이 안 풀린 안경현 뒤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