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리 さよなら絵梨{{{#!wiki style="font-weight: 250; font-size: 9pt; font-family: -apple-system, BlinkMacSystemFont, Serif" | |
<colbgcolor=#3a4e73,#010101><colcolor=#ffffff,#e0e0e0> 장르 | 가족, 청춘, 드라마 |
작가 | 후지모토 타츠키 |
번역가 | 김시내 |
출판사 | 슈에이샤 학산문화사 |
연재처 | 소년 점프+ |
레이블 | 점프 코믹스 학산코믹스 |
연재 기간 | 2022. 04. 11. |
단행본 권수 | 1권 (2022. 07. 04. 完) 1권 (2023. 08. 24. 完)[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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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번에야말로 모두를 눈물바다로 만들어 보지 않을래?"
《체인소 맨》으로 유명한 후지모토 타츠키의 단편 만화.2. 줄거리
병으로 죽어 가는 어머니가 주인공인 영화를 제작한 유타.
학교에서 그 영화를 상영한 계기로 만나게 된 미소녀 에리.
"네 영화, 완~전! 재미있었어."
에리는 유타의 새 영화 제작을 응원하며 돕고, 두 사람은 그렇게 유대감을 쌓아 간다.
하지만 이어지는 비밀과 반전…!
에리와 유타의 이야기, 과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영화일까?
학교에서 그 영화를 상영한 계기로 만나게 된 미소녀 에리.
"네 영화, 완~전! 재미있었어."
에리는 유타의 새 영화 제작을 응원하며 돕고, 두 사람은 그렇게 유대감을 쌓아 간다.
하지만 이어지는 비밀과 반전…!
에리와 유타의 이야기, 과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영화일까?
어머니의 죽음을 촬영한 영화를 문화제에 출품했다가 혹평을 들은 중학교 1학년 '이토 유타'는 그에 절망하여 어머니가 죽은 병원 옥상에서 자신도 뛰어내리려다 학교 동급생인 '에리'를 만난다. 에리는 유타의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면서, 폐건물에 만들어놓은 자신만의 극장으로 유타를 초대하는데···.
앞서 밝혀두지만, 본작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가 불명확하며, 그건 읽는 사람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colcolor=#010101,#e0e0e0> 주인공 이토 유우타는 자신의 생일 케이크의 앞에서 얼마 전 중학생이 되었고 핸드폰을 선물받은 것을 자랑하며 시작한다. 엄마는 병에 걸려 임종을 앞둔 상황이고 자신을 찍으면 죽고 나서도 자신에 대해 떠올릴 수 있으니 선물받은 핸드폰으로 남은 시간동안 자신을 찍어줄 것을 부탁한다. 유우타는 이를 수락한다. 아빠가 쉬는 날 아쿠아리움에 간 일, 엄마가 파르페를 만드는 모습, 담장 위를 걷는 고양이, 아빠와 엄마가 TV를 보는 모습, 엄마가 대변을 보는 모습 거울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찍으며 핸드폰으로 눈을 가리고 엄마의 임종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으니 슬프지 않다면서 애써 슬픔을 참는 모습을 보인다. 개미에게 끌려가는 죽은 메뚜기를 찍다가 아빠의 부름에 차를 타고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찍으러 간다. 병원에 들어서려 하는 순간 유우타는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망쳐버린다. 아빠가 부르지만 계속 달리다가. 갑자기 병원이 폭발해버린다. "잘가 엄마!!" |
<[ruby(데드, ruby=Dead)] [ruby(익스플로전, ruby=Explosion)] [ruby(마더, ruby=Mother)]> 이토 유우타 감독 |
이토 유우타는 이 영화를 학교 문화제에서 발표하지만, 감동적인 내용을 찍어 놓고 마지막을 폭발 엔딩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망작을 넘어선 괴작이라는 혹평을 받는다. 이에 절망과 분노를 느낀 유우타는 자기 영화를 혹평한 놈들에게 바치는 유서라며 영상을 찍은 뒤 어머니가 돌아가신 병원 옥상에서 뛰어내리려 옥상 난간에 오자, 같은 학교의 동급생에 미소녀인 에리와 만난다.
이 병원은 평판이 좋으니 여기 말고 역 앞 쓰레기 의사가 있는 병원에서 죽으라고 무심히 말하던 에리는, <데드 익스플로전 마더>의 이토 유우타냐면서 유우타를 알아본다. 그러더니 갑작스레 유우타의 손을 잡아끌고 옥상을 나간다. 문답무용으로 에리에게 이끌려간 유우타는 에리의 아지트인 폐건물 속에 만들어 둔 극장[5]에서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채 강제로 영화 5편을 9시간 동안 보게 된다.
그리고 영화를 전부 본 다음, 유우타는 다시 핸드폰을 집어들고 에리를 촬영하며 자신에게 영화를 보여준 목적을 묻는다. 에리는 유우타의 작품은 영화를 본 경험이 부족한 게 티가 났다[6]며 더욱 많은 영화를 보아야 한다고 나지막히 말한다. 유우타의 영화는 부족했지만 독특해서 초짜 작품 치고는 흡인력 있게 볼 수 있었고, 특히 사실과 창작의 경계가 흐릿한 부분이 좋았다고 계속해서 비평해오는 에리에게[7], 유우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다시 한 번 의미를 묻는다. 에리는 네 영화가 완전 재밌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에리는 동시에 그에 맞먹을 정도로 분함을 느꼈다고 한다. 문화제 날 유우타의 영화를 관람한 사람 중 울고 있던 것은 자신뿐이었고, 다른 모두는 영화를 웃음거리로 삼았기 때문에. 그래서 에리는 유우타에게 다시 한 번 더 영화를 만들어 보라고 강권하며, 그를 위해 내일부터 1년 동안은 좋은 영화를 계속 보아서 인풋을 늘리고, 그 다음 1년은 영화를 찍어서 내후년 문화제에 신작 영화로 모두를 눈물바다로 만들자는 플랜을 제시한다. 이에 유우타도 좋은 것 같다며 동의한다.
에리와 영화를 보느라 새벽 늦은 시간 별을 보며 집에 돌아온 유우타는 유서를 찍은 곳에 똑같이 앉아서[8][9] 자살을 포기하였음을 찍는다.
그날부터 에리와 유우타의 영화 특훈이 시작된다. 둘은 폐건물의 아지트에서 각종 영화를 보면서 플롯이나 스토리, 연출 기법, 대본 등을 연구하면서 두 사람의 사이도 가까워지고[10], 어느 정도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되었는지 몇 개월 뒤부터 에리에게 플롯을 짜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유우타는 몇 번 정도 퇴짜를 먹은 끝에 드디어 새로운 영화 줄거리를 완성시킨다. 아버지의 '유우타는 뭔가 만들 때 언제나 평범한 일상 속에 판타지를 한 조각 섞어서 그린다'라는 조언을 받아들여 쓴 플롯은 그 말 그대로, 유우타의 실패 이후 찾아온 에리와의 나날에 한 줌의 판타지를 곁들인 듯한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스마트폰을 선물 받은 주인공은 그녀의 죽음까지의 과정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어머니의 임종을 찍지 못해 쓰레기 영화란 혹평을 듣는다. 그리고 상처받은 주인공은 병원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 하지만, 병원 옥상에서 불치병에 걸린 흡혈귀 소녀와 만난다. 그녀에게 납치당해 피를 빨리는가 싶었으나 그녀는 영화를 엄청나게 보여주며, 이어 주인공에게 영화를 만들라는 말을 한다. 그 뒤로 둘이서 영화를 잔뜩 보며 이야기를 생각해낸 끝에, 주인공은 자신의 문제[11]가 영화를 바보 취급 당한 게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을 찍지 못하고 도망친 것에 대한 후회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사실은 천 년을 살아온 흡혈귀 소녀는 병이나 모종의 이유로 곧 죽게 될 운명에 처해, 자신이 잊혀지는 게 무서워서 영화를 찍어달라고 한 것이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주인공과 흡혈귀 소녀는 사랑에 빠지지만, 흡혈귀 소녀는 점점 쇠약해지더니 결국 주인공이 그 장면을 촬영하는 동안 죽게 되고,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끝난다. 어머니 때와는 달리 흡혈귀 소녀와의 추억을 죽음이라는 종지부까지 찍은 영화를 문화제에서 상영한 주인공은 착실히 살아가자는 마음가짐과 영화를 만들어 갈 자신을 얻는다."
유우타가 신나서 떠드는 플롯을 듣고 있던 에리는 흡혈귀의 죽음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표정이 없어진다. 그리고 유우타의 말을 다 들은 에리는 재밌을 것 같다고 호평하고, 이 영화는 자전적인 요소가 있어 작년 영화를 본 녀석들에게 메타적으로 잘 먹힐 거라 자신하는 유우타에게, 에리는 이 플롯을 채용한다면 흡혈귀 역은 자신이냐고 묻는다. 유우타는 당연한 거라고 대답하면서, 대본 작업을 들어가기 전, 또 영화를 찍겠다는 유우타의 말에 아버지가 에리와 만나 얘기하고 싶다며 가족 식사에 초대한다. 유우타는 아빠가 수다를 좋아해서 떠들석해질것이라 기대한다.
막상 만나서 식사를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분위기가 매우 조용하다. 유우타의 아버지 말을 뗀다.[12] 어머니의 죽음을 영화로 찍어내며 상처받고 그런 영화를 다수에게 부정당한 유우타를 위해 더이상 영화에 끌어들이지도 말고 접근하지도 말아달라 다그친다. 이 만남도 사실은 영화의 일부였고 아버지가 상당히 실감나게 연기한다.[13] 친구가 했던 말이라며 창작철학도 조언해준다.
이어나가 바다에서 촬영한다. 바닷가의 햇빛 아래에서 흡혈귀 소녀 에리가[14] 유우타의 질문에 대답한다. 자신은 1200년 가량 살아왔고, 그 오랜 시간동안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점은 자기 주변의 인간들이 먼저 죽어가는 것에 대한 슬픔이라고 한다. 이때문에 주인공이 부러웠다. 왜냐면, 유우타가 찍었던 영화를 보면 죽은 엄마를 떠올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게 칭찬하는 건 에리씨 뿐이라 하고, 함께 영화를 보고 공짜로 영화에 나와준 답례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피라도 빨게 해주겠냐는 말에 손을 내밀지만 에리가 갑자기 쓰러진다.
에리는 물론 흡혈귀가 아니지만, 플롯의 흡혈귀와 마찬가지로 불치병에 걸려서 곧 죽게 될 운명을 가졌던 것이다. 병문안을 온 유우타에게[15], 에리는 자신의 병은 나을 수 없는 종류라고 고백하며, 이건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한다. 왜 미리 말하지 않았냐는 유우타의 질문에, 에리는 사실 자신은 유우타의 영화에 나오는 엄마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 밝힌다. 곧 다가올 죽음 앞에서 누군가 자신의 모습을 영화로 남겨준다면 그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잘 안다면서, 에리는 유우타의 최초의 플롯대로 자신의 최후를 끝까지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16] 유우타는 그건 너무한 일이라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이후 유우타는 에리의 부탁때문에 고뇌한다. 학교도 가지 않게 되자, 에리의 소식을 들은 유우타의 아버지는 자신이 찍어둔 어머니의 임종을 보여준다.
유우타는 어머니가 죽던 날 용기가 없어 차에서 나오지도 못했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보러 오지조차 못했었고, 이에 어머니가 남긴 유언은
"마지막까지 정말 쓸모 없는 아이구나"
투병 전까지 TV 프로듀서였던 어머니는[17] 병이 나으면 자신의 투병 생활을 다큐멘터리로 만들 작정으로 유우타에게 자신을 찍으라 시켰고[18][19], 어머니가 시킨대로만 찍었던 영상과는 다르게 아버지가 찍은 영상에는 유우타에게 폭언을 퍼붓거나 손찌검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유우타를 향한 폭력을 알면서도 묵인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도, 유우타의 아버지는 유우타가 찍은 영화가 아주 놀라웠다고 한다. 유우타에게는 사람을 떠올리는 방식을 마음대로 정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유우타의 영화속에 있던 어머니는 현실과는 다르게, 다정하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그렇게 기억되길 바란다.'라는 아버지의 말에 유우타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에리가 아름답게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슴에 새긴다. 유우타는 다시금 기운을 차려 에리와 함께 영화 촬영을 재개한다.[20] 지금까지 찍었던 장면이 영화에 들어갈 씬을 촬영한다는 인위적인 느낌을 줬다면, 이후 유우타가 에리를 촬영하는 장면은 마치 커플의 홈비디오처럼 추억의 한 장면을 담아낸 기념사진같은 느낌을 준다.[21]
그리고 최후의 순간이 찾아온다. 영화 속에서 료칸, 수족관, 영화관 등 수많은 장소를 유우타와 함께 거닐던 에리의 모습은 휠체어에 올라타고 털모자를 쓴 모습이 되더니, 마지막엔 병원 침대간에서 유우타와 함께 편집점을 논의하는 모습이 된다. 만약을 위해 키스신을 다시 한 번 찍지 않겠냐는 유우타의 말에 에리는 낮게 웃더니 승낙한다. 그리고 왜 자신을 흡혈귀로 설정했냐고 질문하고, 이에 유우타는 처음 만났는데 폐허에 끌려간다는 점이 흡혈귀스럽지 않냐면서, 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그의 한낱 영양분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핬다고 답한다. 에리는 유우타의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못 보게 되어 아쉽다고 하면서,[22] 다만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이 어떻게 되어야 할 지 당부한다.
"그건 처음에 말한 대로 해줘. 모두를 눈물바다로 만들어 줘..."
어머니 때와는 달리, 유우타는 그렇게 에리의 마지막 모습까지 영화에 담아낸다. 에리의 마지막 대사인 "모두를 눈물바다로 만들어 줘"로 '영화'는 끝을 맺고, 첫 영화와는 다르게 에리의 말대로 학교 문화제는 눈물바다가 된다. 학생들의 숨죽인 울음이 터져나오는 와중, 유우타는 승리의 포즈인 V를 내민다.[23][24]이어 에리의 유일한 친구였다는 머리 띠를 쓴 여자애[25]는 미화가 지나쳤지만[26], 에리를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한다.
이후 화면이 흔들리며 생전의 엄마의 모습이 나오다가 유우타의 얼굴이 비춰지더니 검은 화면이 이어진다.
이대로 만화가 끝나나 싶었지만,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된 유우타가 영화의 후반 플롯을 독백하며[27] 후반부가 시작된다.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이 어머니의 죽음을 찍지 못한 후회를 에리와의 영화로 이겨내고 착실하게 살아갈 마음과 영화를 찍을 자신을 얻었다고 마무리되었지만, 실제 유우타는 문화제 이후로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에리를 찍은 2728시간의 영상을 재편집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와중에 대학에 가고, 대학을 자퇴하고 회사에 취직하고, 결혼해서 딸을 1명 낳은 뒤에도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을 영상을 편집하고 또 편집하기를 계속했다.[A]
성장한 유우타의 모습이 비춰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 가족과 함께 자동차를 타던 도중, 갑자기 의식이 끊겼고, 병원에서 일어나 보니 자신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앞차의 사고에 휘말려 죽었다는 말을 들은 유우타는 절망하였다. 어머니의 죽음이나 에리의 죽음같은 모습을 전부 카메라로만 봐왔기 때문에 이 또한 충격적인 영화장면이라고 느꼈다. 자살을 결심했던 때조차 카메라가 아니면 현실을 바라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이상 주변사람의 죽음을 견딜 여력이 없기에 자살을 결심한다.[A]
'이왕 죽을 거면 추억의 장소에서' 라는 생각으로 에리와 함께 영화를 보던 폐허에서 목을 매달려던 유우타는, 그 장소에서 그 시절 그대로인 에리를 만난다.[30] 에리는 유우타가 초반에 유서로 찍었던 영상을 보고 있었고 이때보다 상당히 늙었다고 한다. 유우타는 놀라며 이는 꿈이고 이런 플롯이 어떤 영화였는지 세어본다.
에리는 좋은 영화긴 하지만[31] 아쉬운 점으로 판타지가 살짝 모자란다고 한다. 유우타는 이 생생한 상황에 말을 잇지 못하다가 에리가 자신한테 말을 건다는 말하고 에리는 그렇다고 답한다. 유우타는 이어 판타지는 에리가 흡혈귀였다는 설정이었다 한다. 에리는 그것은 판타지가 아니라고 한다. 자신은 진짜 흡혈귀라고 밝히는 에리. 그 증거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이가 들지 않은 모습을 예로 든다. 유우타는 또다시 놀라고 죽는 모습을 분명히 찍었다고 반박한다. 에리는 죽은 것이 맞지만 죽은 것은 자신의 정신 뿐이라고 한다.
뇌는 용량에 한계가 있다고 말하고, 인간은 200년만 지나도 뇌가 멈춰 죽지만 자신은 흡혈귀이기에 심장만 멀쩡하면 죽지 않는다고 한다.[32] 뇌가 리셋된 상태로 부활한 에리는 이전의 에리가 남긴 편지를 통해 어떻게 살아가면 될지 듣게 된다. 이렇게 몇번이고 기억을 잃어가며 살아온 것 같다고 하자 유우타가 영화같은 이야기라 한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유우타가 찍은 영화도 함께 놓여 있었고 이 영화를 통해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한다.[33]
유우타가 만든 영화를 보고 '이전'의 자신이 어땠는지 알게된 에리에게 유우타는 '영화'속에서 에리에게 물어봤던 질문을 던진다. '불로불사를 사는 흡혈귀라면 주변 모두가 자신보다 먼저 죽는다는 소리인데 그런 인생에 낙담하지 않는건가'라는 질문에 에리는 이전과는 다르게, '당신이 찍어준 영화가 있기에, 당신을 잊어버려도 몇번이고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멋진 일이다'라고 대답을 한다.
이 말을 들은 유우타는 자살하려던 생각을 버리고 건물을 떠나고, '영화를 재편집하던 이유를 알았기에, 그녀를 다시 보는 일은 없었다.'라는 주인공의 독백과 함께 "판타지가 살짝 모자라지 않아?" 라는 에리의 발언이 다시 인용된 후, 폐허가 폭발하며 작품이 끝난다.[34][35]
3. 발매 현황
2022년 07월 04일 2023년 08월 24일 2023년 11월 30일 |
일본 현지에서 단행본이 2022년 7월 4일에 발매되었다.
2023년 8월 24일 학산문화사에서 한국어판을 발매했고 11월 30일부로 e북도 나왔다.
4. 등장인물
- 이토 유우타 (伊藤優太)
본작의 주인공.
- 에리 (絵梨)
본작의 주인공.
- 유우타의 어머니
- 유우타의 아버지
5. 평가
위대한 레보스키[36]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그 영화는 끝까지 보고난 다음에 결국 뭐였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거든요. 해결된 것 같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전부 의미따윈 없었잖아!라는 느낌. 하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성장을 했고, 이야기로서도 성립하는 절묘한 엉망징창인 점이 저는 좋아요. 체인소 맨도 그 뒷맛을 내고 싶습니다.
다빈치 2021년 4월호 인터뷰
다빈치 2021년 4월호 인터뷰
모두에게 큰 호평을 들었던 룩 백과는 다르게, 대놓고 후지모토 타츠키 특유의 영화광적인 요소가 여과 없이 들어간 만큼 이번 작품은 굉장히 호불호가 갈린다. 다만 적절한 복선회수와 강렬한 수미상관의 연출로 룩백보다 훨씬 재미있고 인상깊었다는 반응도 많이 보인다.[37]
정확히는 유우타와 에리가 영화를 만드는 초반 150페이지는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대체적으로 호평이 많지만, 에리와 중년 유우타가 만나는 후반부에서 호불호가 갈리기 시작해, 폐허가 폭발하는 장면에서 대부분의 어이도 같이 폭발했다는 반응. 만화의 연출부터가 어디서부터가 영화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인지 모호하게 되어있어 스토리를 해석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38] 중간중간 드러나는 장치로 사실과 창작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독자의 시각에 따라 그 경계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해 놓았다. 아래는 대표적인 해석들.
6. 해석
작품 내적으로는 작중 서사를 현실적 법칙성을 반영하여 설명하려는 각 3가지 주장과, 예술적 법칙성을 반영하여 이러한 판단을 거부하려는 주장이 있다. 전자의 경우 다음과 같다.- 중년 유우타 씬은 현실이다.
만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해석, 유우타의 영화의 플롯처럼 실제로 에리는 흡혈귀였고, 중년 유우타의 아버지와 가족이 사고로 죽어버려 삶의 의욕을 잃어 자살하러 추억 속의 폐허에 왔다가 에리를 만난다. 마지막 '현실의 에리'가 '영화 속 에리'처럼 안경도 교정기도 쓰지 않은 것은 주인공 아빠가 했던 말처럼 유우타가 찍은 영화를 통해 에리 본인을 포함한 모두에게 에리의 이미지가 '안경도 교정기도 쓰지 않은 아이'로 기억되었기 때문.[39] 이 해석에 따르면 마지막의 폭발은 유우타의 망상[40], 혹은 연출이다.[41] - 중년 유우타 씬은 영화의 일부이다.
어른이 된 유우타가 아버지와 닮았다는 장면에서 착안한 설. 아버지가 수염을 깎고 '중년이 된 유우타'를 연기했으며, 에리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심각하게 진행되기 전에 '흡혈귀 에리'를 연기했다. 이 해석에 따르면 마지막의 폭발은 유우타가 에리의 죽음이라는 저항할 수 없는 미래를 넘어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넣은 의도적인 수미상관적 연출이다. - 작품 전체가 영화이다.
위의 해석에서 더욱 발전시킨 설. 에리는 안경에 교정기를 끼고 성격도 더러웠다는 친구의 말과는 달리 본작에서 에리는 유우타와의 첫 만남때부터 안경도 교정기도 끼지 않고 있었다. 즉, 주인공이 에리를 만나러 옥상에 뛰어드는 신부터 영화였다는 것. 이러면 영화를 촬영하는 흡혈귀와 소년의 영화를 촬영하는 소녀와 소년의 영화를 촬영한, 3중 구조가 된다. 그래서, 작중 '영화 촬영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연기하는 아버지를 연기하는 아버지' 신이나, 중학생 커플 둘이서 외박 여행을 다녀온다는 비현실적인 에피소드가 나오거나, 일상적인 장면에서도 주인공의 1인칭, 혹은 핸드폰 카메라 시점으로 진행되는 점 등의 의도적으로 들어간 메타적 요소들에서 볼 때, 사실 작품 전체가 주인공이 찍은 하나의 영화라는 설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마지막 폭발은 단순한 유우타의 취향[42]이거나 또는 첫 작품 폭발 엔딩에 어이가 터졌다고 혹평했던 학교 친구들에게 보내는 빅엿으로 볼 수 있다. 에리와의 아름다운 추억과 깔끔한 마무리를 통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나 싶더니, 또다시 폭발 엔딩으로 마무리 함으로서 폭발 엔딩으로 끝나는 쓰레기 영화보고 울었다는 굴욕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앉을 생각 없으면 나가주겠어?"라는 에리의 말에 그 이상 사족을 달지 않고 에리에게 작별을 고한 것까지 전부 포함해 해석하자면, 유우타가 본 영화('안녕 에리')를 통해 '착실히 살아가자는 마음'[43]과 '영화를 만들 자신'[44]을 얻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이 세 해석 외의 다른 해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마지막 폭발 씬은 중년 유우타가 에리를 잊기 위해 진짜 부지를 사서 폭발시켰다 (...) 라고 볼 수도 있고, 애초에 어머니의 죽음과 학생들의 비웃음도 연출에 불과한 하나의 큰 단편 영화 기획이였다고 볼 수도 있다. 이처럼 작가가 의도적으로 현실과 비현실이 나뉘는 분기점을 여러 가지로 설정해놓았기 때문에 이렇게 현실 법칙을 통해 설명하려는 입장에선 어느 한 해석이 정설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한편으론 이러한 구분이 작품을 설명하는데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있다. 예술 세계의 총체성은 현실 세계의 총체성을 반영하지 않는 주관적인 제 2 세계이고, 그 세계의 과학법칙은 표현의도에 따라 아무렇게나 바뀔 수 있다. 가령 <킹콩>의 해골섬은 실존하기 때문에 작중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는가? <카르멘이라는 이름>에서 장뤽 고다르 감독은 실제로 강도 사건에 휘말렸을까? <시골 의사>에서 학교 아이들이 갑자기 나타나 노래한건 어떻게 가능했을까? 예술이 현실적 총체성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판단은 예술이 현실이라는 현시적 착각에 의한 잘못된 추론인 것이다.
작품 외적으로는, 후지모토 타츠키의 자전적 만화라는 해석이 있다. 작중에서 데드 익스플로전 마더를 통해 비판받는 유우타의 모습은 데뷔작인 《파이어 펀치》의 전개와 엔딩으로 비판받은 타츠키 그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으며, 다시금 폭발 엔딩을 통해 작품이 끝나는 것 또한 작가 자신의 개성[45]을 밀고 나가겠다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다음 단편인 <평범하게 들어줘>는 아예 이런 요소를 주제로 하고 있기도 하다.
아래는 외부 커뮤니티의 해석.
6.1. 핸드폰
"카메라 앞이 아니라면 현실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 어머니의 죽음을 찍는 과정에서 유우타는 점점 카메라 속의 세상과 진짜 현실을 혼동하기 시작한다.[46]
- 에리를 만나면서 도피처가 아닌 순수한 영화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도망친 것도 돌이켜보게 되었지만 에리의 죽음으로 인해 유우타는 다시 카메라 속으로 도망치게 된다.
- 어머니 때와는 달리 끝까지 에리의 마지막을 지켜보았기에 뭔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현실로부터 도망치려 한다는게 후에 드러난다. 결말부분에 나왔듯이 그는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영화의 재편집에 몰두하고 있었다.
- 유우타가 가진 문제[47]는 추억의 장소에서 에리와 재회하고 나서야 해결된다. 그 장소로 향할 때 들고간 것은 밧줄과 핸드폰이었지만 나올 때 가지고 나온 것은 밧줄뿐이다.
- 갖고간 밧줄은 현실도피의 의미가 크지만 갖고나온 밧줄은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강하다. 추억의 장소에서 에리와 유우타가 주고받은 문답의 결론. 안녕 에리라는 영화는 카메라 속의 세상과 현실의 분열[48]로부터 시작해서 카메라 속의 세상과 현실세계가 합쳐지면서[49] 막을 내린다.
6.2. 판타지
"그런데 이 영화, 판타지가 살짝 모자라지 않아?"
- 이 만화가 난해한 이유 중 하나지만 만화를 읽으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하는 핵심적인 키워드. 유우타가 어렸을 때 아빠 얼굴을 드래곤으로 그려놓았던 것, 동물원에서 기린과 하루종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부터 시작해서 영화의 폭발장면,흡혈귀,에리가 말한 부족했던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전부 판타지라는 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 일반적으로 판타지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망상장애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망상장애는 병적인 상태지만 망상이나 환상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 차이점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가 하는 것이며 그 정도에 따라 좋은 족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다만 작가는 이 판타지라는 단어의 양면성을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유우타의 판타지는 누군가[50]에게는 비웃음당하고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51]에게는 좋은 쪽으로 인정받는다.이 차이는 개개인의 성향 차이가 아니라 얼마만큼 그 사람의 감정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느냐에 따른 것이다.즉 반친구들과 선생님은 그것을 윤리적,사회적,도덕적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에리와 아버지는 이토 유우타의 심정을 먼저 이해하려 한 것이다.[52][53]
- 어렸을 적 아빠를 드래곤으로 그린 것이나 기린과 대화한 것은 순수한 아이의 상상력이다. 중학교 때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심적 갈등을 영상화하여 표현하였다. 에리와의 영화에서는 에리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염려에서 그녀를 흡혈귀로 표현하였다.[54] 여기까지만 보면 판타지란 자신의 바램을 표현한 형태라고 볼 수 있겠지만 결말부위에서 유우타와 에리의 생각이 갈린다. 유우타는 흡혈귀 설정을 판타지라 여기고 영화를 계속 재편집했던 이유를 찾지 못한 반면, 에리는 그건 판타지가 아니라고 분명히 단정짓는다.[55]
- 계속 타인의 죽음을 두려워하던 유우타는 그를 걱정하여 흡혈귀 설정을 넣었지만 에리는 영원한 추억을 말하며 삶을 긍정한다. 즉 에리가 말하는 판타지란 과거를 향한 미련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긍정적인 상상을 의미한다.
6.3. 폭발
"마지막에 왜 폭발시켰어?"
"최고지 않나요?"
- 작품 초반부 유우타 어머니의 진면목을 모르는 독자는 이 폭발 장면을 보면서 유우타 학교 친구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단순히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을 폭발시켰단 것만 따지고 보면 욕먹어도 이상할게 없는 장면이다. 만화 내에서 여러가지 판타지가 나오지만 이 폭발장면은 유우타의 마음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갈리므로 선악의 경계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 유우타가 폭발시킨 이유에 관한 것은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초반부에는 알 수 없지만 중반부터는 유우타 어머니가 유우타를 도구 취급을 해왔다는 걸 알 수 있고, 그에 따라 가장 쉽게 풀이하면 분노란 감정으로 해석가능하다. 다만 그 분노의 대상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닌 자신에게 아무런 추억도 남기지 않고 이별하게 되는 안타까운 처지에 국한된 것이다.
- 어머니를 찍은 영화는 얼핏 보면 다정해보이는 그녀를 담은 추억의 선물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그 영화에 담긴 것은 거짓된 어머니의 모습과 거짓된 추억뿐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폭발시킨 것은 병원이 아니라 영화 그 자체일 수 있다. 어머니의 죽음 그 자체로도 괴로운 일이겠지만 변변찮은 추억조차 없다는 건 더욱 괴로운 일일 것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어머니의 시선은 유우타가 아닌 카메라 렌즈만을 응시하고 있었고 유일하게 유우타를 향했던 시선은 아버지가 찍은 동영상 뿐이었지만 그녀의 입술은 사랑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 이 폭발장면에 관해서 에리는 유우타의 마음을 이해해주면서 속시원했다고 말한다. 만화 내에서 유우타의 망상에 동조하는 사람은 에리와 유우타 아버지 둘뿐이며 결말 부분에서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다만 엔딩컷에서 다시 유우타는 추억의 장소를 폭발시키면서 홀로 서기에 성공한 모습을 보인다.
- 영화 부분의 폭발이 도피적 성향을 갖고 있다면 결말 부분의 폭발은 회귀적 성향을 갖는다. 어머니를 찍은 영화는 현실을 기반으로한 다큐멘터리인데 이 폭발장면으로 인해 장르가 판타지로 바뀐다. 반대로 흡혈귀의 부활이라는 판타지 성향의 에리 영화는 에리의 죽음을 인정하면서 현실 그 자체로 되고 망상의 매개체인 핸드폰 또한 유우타의 손을 떠나게 된다.
6.4. 유우타의 어머니
"정말 마지막까지 못 써 먹을 아이구나."
- 극초반부라서 무심코 넘어갔을 수 있지만 자기 아들한테 엄마가 죽어가는 과정을 찍어달라 부탁하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유우타를 사이에 두고 에리와 모든 면에서 상반된 포지션에 있는 인물이며 만화 내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을 포함하고 있다. 파이트클럽의 내용과 비교해본다면 파이트클럽 주인공을 억압하고 있던 물질만능주의 현대사회에 해당한다.
- 애초에 자신의 죽음을 찍어달라는 것 자체가 생명경시현상을 희화화한 것이기도 한데 실제로 요즘은 유튜브를 통해서 목숨을 건 영상을 찍는 사람들도 흔히 보이는 상황이다. 파이트클럽 결말에서 물질분명의 붕괴를 암시하듯이 건물이 위에서 아래로 무너지는데, 쌓아올린 문명사회가 수직적인 구조를 이루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마음을 억압하는 것처럼 유우타의 어머니 또한 유우타의 망상을 억압한다.[56]
- 영화를 찍을 때도 늘 유우타와는 거리를 두는 편이며 아름다운 겉모습만 찍기를 강요한다. 유우타가 늘 타인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과는 반대로 자신의 죽음마저도 무언가를 위한 도구이며 유우타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음이 아버지의 동영상을 통해 밝혀진다.
- 다만 이런 신랄한 비판과는 별개로 그녀 역시 물질만능주의 사회가 만든 피해자라는 관점의 해석도 가능하다. 그녀는 커리어우먼으로 물질사회에 가깝게 연결되어 있고 여러모로 사회적인 영향을 받은 결과가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 에리가 죽은 뒤 유우타는 다시 어머니의 동영상을 본다. 평소 그녀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유우타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모습 그대로 추억하려한다. 서로 상반된 포지션이었던 에리와 유우타 어머니였기에 에리의 죽음을 통해서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6.5. 고양이
"있지 뭘 찍는거야?"
"고양이..."
"고양이..."
- 고양이를 찍는 걸 싫어한 유우타 어머니와 달리 에리는 고양이를 좋아하고 유우타 역시 에리가 고양이를 쓰다듬는 장면을 찍어둔다. 유우타 어머니와 유우타가 그 신장 차이만큼 눈높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유우타와 고양이 또한 그만한 눈높이 차이가 날 것이다. 유우타 어머니가 유우타를 향해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춘 적도 없는데 하물며 그보다 더 아래에 있는 고양이에게 신경쓸 리 없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것이 생명이라면 고양이는 그 생명에 대한 관심과 존중을 의미하게 된다. 유우타 어머니와 상반된 포지션인 에리는 무릎을 굽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수평적 관점에서의 생명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 렛미인 스웨덴판에서도 고양이가 등장하는데 만화와는 달리 흡혈귀인 엘리가 인간이 아님을 알아보고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다.
6.6. 에리
"볼 때마다 너와 만날 수 있어. 내가 몇 번이나 너를 잊더라도 몇 번이든 다시 생각해낸다."
"정말 근사한 일 아니야?"
"정말 근사한 일 아니야?"
- 이토 유우타의 동조자이자 구원자이다. 실제로 에리는 유우타가 자살하려 할 때마다 구해주었다.
- 모든 면에서 유우타 어머니와 대조되는데 유우타 어머니가 남긴 유언이 자신의 영화를 완성하라는 독설에 가까운데 반해 에리의 유언은 유우타의 영화를 완성해달라는 부탁에 가까웠다. 유우타는 둘의 죽음으로부터 추억조차 없는 이별의 서글픔과 너무 많은 추억으로 인한 이별의 아픔을 동시에 배우는데, 그 허무함에 빠진 유우타를 구원한 것은 결국엔 에리와의 추억이었다.
- 결말부분에서 에리에 관한 작가의 생각이 엿보이는데 3일만에 부활했다는 표현에서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했고 구원자란 역할도 그런 늬앙스로 해석할 여지가 생겼다. 다만 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유우타는 결국 이를 극복하고 그녀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래서 마지막 폭발 장면이 유우타의 홀로서기를 의미한다면 죽음에 관한 종교적 귀의보다는 생에 관한 실존적 의지쪽이 좀 더 작품 주제에 걸맞게 된다.
- 원본인 렛미인에서는 '엘리'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엘리(elle)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문장이 유명한데 히브리어로 엘리는 '나의 하느님'이란 뜻이다. 만화 결말과 결부시켜서 생각한다면 '나의 하느님'이란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되는 셈이다.[57]
- 에리 친구와의 대화에서 드러난 것처럼 평소 에리의 모습은 유우타와 에리 친구밖에 모른다. 이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안녕 에리라는 만화의 독자에서 유우타가 만든 안녕 에리라는 영화의 관찰자로 변한다. 재미있는 것은 결말 부분의 유우타의 망상 조차도 그 미화된 버전의 에리라는 점이다. 다만 이것은 작가가 넣어둔 하나의 판타지적인 요소이고 이런 가정하에서는 병원 옥상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조차 번거롭게 다시 찍은 셈이 된다. 오마쥬로 들어간 파이트클럽, 조커, 메멘토 등은 전부 관람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소가 있었는데 비슷한 맥락으로 넣어둔 거라 생각하면 될 듯하다.
- 유우타가 버릇처럼 말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작품 전반에 흐르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이에 맞서는 에리의 메세지는 "메멘토 비베레(memento vivere)"일 것이다.[58]
7. 오마주
- 렛미인
- '안녕 에리' 전체 스토리의 틀이 된 작품이다. 흡혈귀인 여주인공 '엘리'와 인간 남주인공 '오스칼'의 이야기이며 세부적인 내용은 차이가 있지만 '엘리'의 나이가 200세인 것을 '안녕 에리' 전체 페이지 수를 200페이지로 똑같게 맞추면서 사실상 렛미인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했음을 확정할 수 있다.
- 안녕 에리에서는 이토 유우타의 아버지가 등장하고 에리의 가족관계는 알 수 없는데 렛미인에서는 반대로 엘리의 아버지인 호칸이 등장하고 오스칼의 아버지는 이혼한 상태이다.
- 참고로 렛미인의 일본 발매명은 '나의 엘리 200세의 소녀'다.
- 파이트 클럽
- 유우타와 에리가 처음 함께 본 영화가 파이트 클럽이다. 안녕 에리에서 오마주되거나 언급된 영화들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기억력이나 망상이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스토리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파이트 클럽의 주인공을 이토 유우타와 겹쳐본다면 에리의 포지션에 있는 인물은 말리 싱어이다.
- 파이트 클럽은 단순한 오마주뿐 아니라 안녕 에리와 주제 의식도 공유한다. 파이트 클럽과 안녕 에리의 엔딩 컷은 각각 문명 사회와 죽음에 대한 자아 성찰과 극복을 의미한다
- 다크나이트
- 이토 유우타가 만든 첫 영화의 폭발장면은 다크나이트의 병원 폭파장면을 그대로 오마쥬한 것. 영화의 내용과는 별개로 이 만화에서의 폭발 장면은 유우타 본인의 심리 상태를 잘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8. 작중 등장한 영화
8.1. 언급된 영화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등장인물 중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있다는 것이다. 이토 유우타가 에리와 재회하자마자 이 영화들을 떠올린 것은 그녀를 자신의 망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퍼머넌트 노바라
- 브라운 버니
8.2. 포스터나 장면이 등장한 영화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급선봉(Vanguard)[59]
- 에셔 거리의 붉은 우체통 (エッシャー通りの赤いポスト, Red Post on Escher Street story)
영화를 만든다는 스토리 라인이 안녕 에리의 그것과 닮았다. 이 만화에서 언급된 영화들의 개봉일로 작중 연도를 유추할 수 있는데 이 영화의 개봉일이 2020년이고 안녕 에리가 점프플러스에 연재된 연도가 2022년이다. 그러므로 안녕 에리의 작중 연도는 현실의 시간과 동일하다고 추측가능하다.
- 그밖에 상세불명 영화
현재로서는 영화 세븐이나 알려지지 않은 일본 영화의 한 장면으로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9. 기타
- 중심 소재가 영화라서 그런지, 1페이지/2페이지 전체를 쓰는 하이라이트를 제외하면 페이지의 컷 구성이 전부 2.76:1[61] 비율 4컷/1.33:1 (4:3)[62] 비율 2컷으로만 되어 있다.
- 관련이 있을진 모르겠으나 살아있는 에리를 보고 유우타가 떠올린 영화 중 식스 센스의 촬영감독이 작가의 성과 똑같은 후지모토 타크이다.
- 2023 이 만화가 대단하다! 남성편 2위.
- 체인소 맨 TVA의 8화 엔딩 first death에서 안녕 에리의 표지가 조그만하게 포스터로 등장한다.
[1] 2023년 11월 30일 e북 발매[2] 자다가 죽는건 아닐지 지켜본다.[3] 상태가 더이상 나아질 것 같지 않고 병원음식도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4] 눈을 감고 한쪽을 손으로 가린 것으로 보아 울고 있었을 수도 있다.[5] 소파에 홈시어터, 그리고 만화책과 영화 테입이나 DVD가 들어있는 낡은 방.[6] TV에서 틀어준 것 정도 밖에 본 적이 없는 모양. 그래서 모친의 죽음이라는 시리어스·새드 엔딩 장르 영화에서 폭발 엔딩을 내면서도 이상한 점을 못 느꼈다.[7] 이를 볼 때 에리는 파이어 펀치의 토가타나 체인소 맨의 마키마와 같은 엄청난 영화광이다. 영화 비평은 토가타에서, 영화 연속관람은 마키마에서 따왔다고 봐도 될 정도로 비슷하다.[8] 에리와 만나기 전에는 기운빠지고 멍한 표정이었지만 집에 오니 기운찬 표정으로 바뀌어 있다.[9] 중1이 새벽 2시가 넘어 들어왔는데 아빠의 태도를 보아 엄마가 죽고 상당히 방임하는 것으로 보인다.[10] 대강 서로 영화에서 특정 장면을 봤을 때 나오는 버릇을 알 정도. 에리는 주인공이 승리하는 장면에서 피스 사인을 보내고, 유우타는 여배우의 젖꼭지가 나오면 아싸...라고 말하는 모양이다.[11] 상처를 받았던 이유.[12] 약 4페이지 가량이 지나서야[13] 왕년에 연극배우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을 자퇴하고 친구와 연극을 했지만 인기가 없어 금방 관뒀다고 한다.[14] 햇빛은 잠깐이라면 괜찮다는 설정.[15] 병문안 영상으로 똥싸는 자신을 찍어보냈다.[16] 16살 채 안되는 유우타는 자기 주변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촬영하는 부탁을 두번이나 받게 된 것.[17] TV프로듀서라면 방송기록이 남기 때문에 처음에 말한 엄마를 떠올리기 위한 목적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18] 자신이 죽고 남게 될 가족을 위해 마지막 수입을 만들려고 했을지도 모른다.[19] 유우타가 영화를 거의 본적 없다 했던 것이 복선. 상식적으로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할 리가 없다.[20] 잠시 퇴원하여 폐허에서 영화를 보고 있던 에리에게 찾아가 앞으로 에리의 전부를 찍을 것을 허락받는다.[21] 엄마를 찍었을 때처럼 수족관, 파르페, 자는 모습, 입원, 고양이 등을 찍는다.[22] 완성본이 아니면 싫다고 한다.[23] 에리가 영화에서 주인공이 이길 때마다 보여줬던 버릇이다. 즉, 에리의 목적대로 문화제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짜내는데 성공했으니, 에리를 대신해서 그녀의 버릇을 대신해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24] 이전 영화인 <데드 익스플로전 마더>는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담아내었지만 마지막에 뜬금없는 결말로 웃지도 못할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처음에 영화를 찍자고 정할 때 말한 "이번에야말로 모두를 눈물바다로 만들어 보지 않을래?"와 수미상관을 이루는 결말을 자아내어 마지막까지 관객이 에리에게 몰입할 수 있는 영화가 되었다.[25] 미화된 에리와 달리 실제 에리는 화를 잘 내고 자기중심적이어서 친구가 유우타와 이 소녀 둘뿐이었다. 이 여자애는 사실 다양한 학생들이 유우타의 영화에 대한 평을 말하는 장면에서 먼저 등장했는데, 그녀는 자신도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너를 용서할 수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 게 문제가 아니라, 왜 맨 마지막 장면에 폭발하는 엔딩을 집어넣은 거냐고 묻는다.[26] 머리 띠를 쓴 여자애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에리는 안경과 교정기를 낀 소녀였다고 하며 촬영을 위해 안경과 교정기를 모두 뺐다는 게 밝혀지는데, 정작 작중 에리가 그 두 개를 착용한 모습은 나온 적이 없다. 어디부터가 영화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지 사실과 창작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27] 어머니 때와는 달리 흡혈귀 소녀와의 추억을 죽음이라는 종지부까지 찍은 영화를 문화제에서 상영한 주인공은 착실히 살아가자는 마음가짐과 영화를 만들어 갈 자신을 얻는다. 끝[A] 이 모든것은 유우타의 독백이며, 실제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A] 이 모든것은 유우타의 독백이며, 실제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30] 유우타가 핸드폰으로 찍은 영화라는 컨셉에 맞게, 만화의 전반부는 굉장히 평면적이고 정적인 구도로 진행되지만, 이 장면을 기준으로 구도와 연출이 굉장히 스타일리시해진다.[31] 에리와 함께 찍은 영화[32] 영화 속에서 자신이 죽은 이유도 200년이 지나 죽은 것이라 한다.[33] 유우타는 앞서 아버지가 말했듯이 사람을 떠올리는 방식을 마음대로 정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해 엄마를 찍은 영화는 엄마가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인식을 낳도록 했고 마지막 죽음의 모습이 아닌 폭발 장면으로 바꿔서 엄마가 끝까지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것으로 기억하도록 만든다.[34] 대강 넘길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데드 익스플로전 마더 마지막 장면의 폭발 씬은 그저 배경에 폭발을 덮어씌운 정도였지만, 작품 맨 마지막 장면의 폭발 씬은 폭염이 건물 안쪽에서 튀어나오고 잔해가 튀는 등, 폭발 씬의 디테일이 엄청난 차이가 난다.[35] 이 장면은 후일 작가의 또다른 작품인 체인소 맨 2부 1화와 애니판 오프닝 KICK BACK의 영상에서 오마주 되었다.[36] 체인소 맨 애니메이션 오프닝 볼링장 씬의 원형.[37] 파이어 펀치, 체인소 맨 등등 후지모토 타츠키의 전작들에서도 영화적인 요소가 많이 첨가되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토리를 완성하는 한 부분으로 소모되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아예 메인 스토리의 중점이 영화인 것도 모자라서 컷의 연출, 구도, 엔딩까지 정말 단편의 모든 것이 영화같은 만화로 제작되었다.[38] 예를 들어, 에리 친구의 증언으로는 에리는 평소에 안경과 교정기를 끼고 다녔다고 했지만 본인 희망에 따라 영화에서는 뺐다고 한다. 문제는 만화 전체를 통틀어 에리는 단 한 번도 안경이나 교정기를 쓴 장면이 없다. 애당초 본 만화의 단행본 표지부터 「에리의 얼굴을 스마트폰으로 찍으면서 교묘하게 안경과 교정기가 보여야 할 부분을 스마트폰의 화면에 비치는 모습이 대신하고 있는」 구도인데, 이는 굉장히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39] 슬픈 점은, 이 해석에서는 '원래의 에리'가 어땠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유우타 본인을 포함해 아무도 없다.[40] 에리가 판타지가 부족하다고 타박했는데, 에리가 흡혈귀였던 부분이 판타지가 아니게 되므로 폭발이 판타지.[41] 어머니의 죽음에서의 도피로 연출된 첫 폭발과는 다르게, 과거로부터의 결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42] 유우타의 아버지가 "유우타 하면 영화, 유우타의 영화 하면 폭발"이라고 말한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작품 전체가 영화라고 한다면, 유우타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깊게 이해하는 사람인 '아버지'가 데드 익스플로전 마더의 폭발 엔딩을 '유우타의 영화라면 폭발이다'라고 인정하는 신을 넣음으로써 시청자에게도 '이것이 나의 영화다'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43] '에리를 찍은 극중극'은 유우타의 '과거'를 상징하므로,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작별을 고했다는 것은 가족도, 아버지도 죽고 혼자 남았지만 그럼에도 자살을 택하는 대신 앞으로 펼쳐질 자신만의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을 결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44] 유우타 자신의 '판타지이자 초심'인 '폭발'을 다시금 결말로 채택했다는 것은 첫 영화에서 채택한 연출의 혹평을 딛고 자신이 끝내준다고 생각한 연출을 자신있게 밀고 나가겠다는 내적 자신감을 그대로 드러낸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45] 작중에서는 '유우타의 영화 하면 떠오르는 것'이라는 물음에 유우타의 부친이 '폭발'이라고 답한다.[46] 정확히는 자신이 관찰자 시점이 되는 카메라 속과 자신이 주인공인 현실을 혼동하는 것이다. 팔뚝에 상처가 나도 아픈지 모르겠다는 표현과 어머니의 죽음에 관하여 슬픈지 안 슬픈지 헷갈려하는 장면으로부터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실이라는 영화의 관찰자가 된 채 줄곧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도피하던 유우타는 결국 그녀의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숨겨온 감정을 영화를 통해 폭발시킨다.이 폭발장면에서 유우타가 영화 전면에 등장하면서 잠시나마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이러니한 점.[47] 작 중에서는 끝없이 영화를 재편집하는 행동으로 표현됨.[48] 생일선물로 받은 핸드폰이 그 시발점.[49] 핸드폰이 유우타의 손을 떠나는 것으로 표현.[50] 유우타의 첫 영화를 본 친구들과 선생님,자기가 좋아하는 장면만 찍기를 바랬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51] 에리와 아버지[52] 에리가 유우타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전부 안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찍기를 강요받는 유우타의 마음을 이해했고 아버지 또한 영화의 폭발장면을 보고서도 판타지의 일부라 인정해주었다.[53] 폭발장면으로 결말지은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독자인 당신은 첫 폭발장면을 보고 이거뭐냐며 마치 반친구들마냥 벙쪄있었을테지만 결말부분의 폭발장면에서는 이미 이토 유우타의 사연을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가까이 다가섰을 것이므로 사회적,도덕적,윤리적 관점을 뛰어넘어 작가의 판타지를 인정했을 것이다.[54] 만화 중반에 흡혈귀 설정에 관한 에리의 질문에 '이런 아름다운 사람에게라면 피를 빨려도 좋다고 생각해서'라고 답하지만 이유 전부를 말한 건 아닐 것이다. 유우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어머니와 에리를 겹쳐보고 있었고 어머니에 대한 미련이 그러한 설정으로 드러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55] 유우타가 영화를 재편집하면서 기다린 결말은 에리의 부활이었다. 하지만 유우타의 망상 속에서 재회한 에리는 유우타가 자신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미래로 나아가기를 원한다.유우타에겐 에리와 찍은 영화가 끝없는 미련으로 남았지만 에리에겐 유우타와 찍은 영화가 영원한 추억으로 남은 것이다.[56] 유우타 아버지가 찍은 장면들에서는 유우타가 어머니를 올려다보는 듯한 구도가 많다. 어머니가 유우타를 때리는 장면에서도 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친다. 유일하게 유우타와 눈높이를 맞춘 장면은 병상에 누워있던 장면뿐이다.[57] 다만 렛미인의 원작자인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는 이를 부정했다. 당시 많은 독자들이 이 의미를 신경쓰고 있었는데 정작 원작자는 글을 쓸 때 의도한 적이 없다고 인터뷰했다.[58] "삶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유우타와 에리가 작품 내 몇 번 보여주었던 손가락 브이가 바로 그 복선이다.[59] 일본에서는 프로젝트V라는 제목으로 나왔다.[60] 원조 킬빌. 후지모토 타츠키가 좋아하는 영화 중 킬빌이 있다.[61] 울트라 파나비전 70 카메라로 촬영한 65mm 필름의 기본 비율로, 일반적인 영화에서 쓰는 비율인 2.39:1보다 넓다. 벤허와 헤이트풀 8이 이 카메라로 촬영된 것으로 유명하다.[62] 일반 35mm 필름의 기본 비율 겸 아날로그 TV 방송의 화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