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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전면의 모습. |
성밖에서 바라본 모습. |
1. 개요
المسجد الأقصى / Al-Aqsa mosque예루살렘의 성전산에 있는 이슬람의 모스크이다.
'알 아크사'라는 명칭은 성전산 전체를 부르는 한 가지 이름이지만, '알 아크사 모스크'라 하면 성전산 남부 예배당 건물을 가리킨다.
2. 성지
좌측이 알 아크사 모스크, 우측이 바위의 돔이다
메카의 카바, 메디나의 예언자의 모스크와 함께 알 아크사 모스크는 이슬람의 중요 성지로 꼽힌다.[1]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는 다른 모스크에서 행하는 기도의 천배 효력이 있다 한다. 따라서 라마단 기간에는 이슬람권 각지에서 순례객들이 모여든다.
3. 역사
원래는 동로마 제국의 교회 건물이었으나 동로마 제국이 이슬람의 팽창으로 예루살렘을 빼앗긴 이후 정통 칼리파 시대에 우마르가 예루살렘에 무혈입성하며 이슬람의 관리 하에 놓였다. 우마이야 왕조의 아브드 알 말리크가 명령하여 땅밟기 목적으로 691년에 모스크로 개축하고 705년 완공했다. 이후로도 그와 그 아들이 증축하였다. 초창기 이슬람 모스크로 은색 돔을 얹었고 내부도 스테인드글라스와 타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지진과 화재 등으로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재건축되었다. 1099년 천주교 라틴 십자군의 예루살렘 성지 탈환의 결과로 알 아크사 모스크는 예루살렘 왕국의 궁전으로 사용되었다.바로 뒤에 바위의 돔이 있는데 안쪽 기반암 위에서 하느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할 목적으로 그의 아들인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칠려고 한 장소며, 동시에 무함마드가 승천했다가 다시 내려왔다는 전승이 있다. 또한 다윗이 말년에 평화로운 시기에 독단적으로 인구조사를 하려고 했다가 하느님의 벌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어나가자 다윗이 번제를 드려 재앙을 멈췄던 장소가 이곳이기도 하다. 알 아크사 모스크는 예배를 원활히 하고 승천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기념 모스크이다.[2]
이곳에서 1951년 요르단의 국왕 압둘라 1세가 암살당했기 때문에 요르단 출신 여행객들은 한 번쯤은 들른다.
4. 철거 주장
종교적 유대인 그룹과 극우정당들은 꾸준히 이 모스크를 개방하거나, 심지어 철거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 모스크의 위치는 다른 종교의 성지에 사당과 모스크를 짓는 이슬람교 정복자들의 습관 때문에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에 이런 곳은 수없이 많은데 이슬람교 정복자들은 고의로 타종교 시설을 모스크로 개조하고 성지를 짓밟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도 메스키타가 있고[3] 인도에서도 바브리 모스크가 있다.[4] 이곳은 유대교의 유일한 성지이자 최대성지인데 여기에 일부러 모스크를 알박아놓고 전승을 지어내고 있다고 유대인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이스라엘 국가안보부 장관으로 이타마르 벤그비르(Itamar Ben-Gvir)는 알 아크사 모스크를 방문하며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전체가 이스라엘의 관할 아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행동은 아랍 국가와 팔레스타인 측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성 소피아 대성당을 아야 소피아 모스크로 전환하는 시기를 맞아 이런 여론이 명분을 얻어 더 거세졌다. 무슬림들은 남의 성지와 종교유물을 마음대로 모스크로 전환하면서 자신들의 성지와 모스크는 절대적으로 지켜야한다는 것이 비상식적이라는 것이 비판자들의 주장이다.[5] 특히나 성전산은 이슬람교 발흥 이전 수천년간 유대인들의 유일 성지였음에도 이를 짓밟기위해 고의적으로 지어놓은 건물이므로 존재 자체가 유대교에 대한 모독이자 치욕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미 오래된 역사 유물이므로 철거가 불가하다면 개조를 하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유대교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공동관할하자는 주장을 한다.
왜 굳이 이런 주장을 하느냐 하면 유대교 교리상 오로지 성전산에서만 아브라함의 제단에 제물을 올릴 수 있고 그외의 지역에서 올리는건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예루살렘 대성전 건립 이후로 이 교리는 철저히 지켜지다가 디아스포라로 유대인들이 추방되고 유대교 사제집단이 붕괴하면서 정식제의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훼에 대한 사죄와 안타까움을 표현하기 위해 통곡의 벽에서 오열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현재도 유대교 교리상 랍비는 사제집단의 부재로 인해 발생한 대안일 뿐이며,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교 성직자단이 복구되어야한다. 그런데 독실한 유대교인들은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예루살렘의 통제권을 되찾았음에도 제단을 복구하지 않는 것은 야훼의 명령을 고의로 무시하는 대죄라고 여긴다. 그렇지만 무슬림들은 무슬림대로 모스크 내에서 이교도의 제의를 허용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거절하며 이런 시도가 발생할 시 테러로 응답하고 있다.
4.1. 2021년 팔레스타인인 무력진압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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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왜 라마단 기간에 사원을 공격했는가?” “알 아크사 모스크는 무슬림의 성지다. 이스라엘은 종교전쟁을 시작하고 있다”
2021년 5월 이스라엘이 시위대를 무력진압하면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이슬람교의 제3성지인 이 곳으로 대피한 시위대에게 큰 피해가 발생했으며 이는 유혈 사태의 단초 중 하나가 된다.
4.2. 2023년 알아크사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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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2023년 4월 5일, 이스라엘 경찰이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맞이해 염소를 희생시키려는 행사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를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약 400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1] 3대 성지 운운하는데, 이슬람은 2곳의 양대성지만 있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메카와 메디나와 달리 시아파의 카르발라라던지 제3의 성지를 주장하는 곳은 그저 수사적인 것이라 여러 곳이 있다. 분쟁지역이라 이슬람교인들이 타 종교인들에게 그 중요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순례여행의 우선순위 높게 올라간 적이 없고 예루살렘의 지배자들과 현지인들은 그 중요성을 크게 주장하지만 그다지 널리 인정받지는 않았다. 실제 현재도 순례객의 수나 규모도 메카나 메디나는 물론 카르발라나 나지프등 다른 성지에 비해서도 매우 적은 편인데 동남아등 지구 반대편에서 온 순례객들도 메카와 메디나는 방문하지만 예루살렘은 그다지 방문하지 않으며 이스라엘 건국 이전에도 그랬다.[2] 소수 이슬람 학자들은 알 아크사 사원 터가 승천 자리라고 주장하지만, 다수설은 바위의 돔이라는 것이다.[3] 서고트족의 교회를 이슬람 정복자들이 모스크로 개조했다가 레콘키스타때 다시 교회로 개조되었다. 무슬림들은 모스크로 환원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스페인 정부는 무시하고 있다.[4] 인도에서도 무굴제국의 바부르 황제가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요디아(Ayodhya)에 있는 힌두교 성지 라마 사원에도 똑같이 모스크로 개조하는 짓을 해놔서 거기도 끊임없는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라마는 비슈누의 일곱번째 아바타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라마야라가 그 경전이며, 라마사원은 그 총본산이었다. 이 문제로 1992년 분쟁이 일어나 2천명이 사망했고 바브리 모스크는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그 이후 질질 끌다가 2019년에 힌두교 중심주의를 주장하는 모디총리 재임시기에 바브리 모스크 재단측에 대체 부지를 제공하는 대신 벽돌하나까지 모두 치우라고 명령했고 성지에는 힌두교 사원을 재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5]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은 아야 소피아 전환을 가리켜 정교회가 빡치거나 말거나 "제 2의 정복" 드립을 쳤다. 그리고 그것은 알 아크사 모스크를 되찾는 여정의 시작이라며 무슬림들이 뭔짓을 하건 타 종교인들은 당하고 있어야한다는 식의 어이없는 말을 했는데 더 황당한건 실제 그렇게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