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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02:02:45

통곡의 벽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Westernwall2.jpg

1. 개요2. 배경3. 이름의 유래4. 가이드5. 비유적 표현6. 기타

1. 개요

예루살렘성전산과 유대인 구역 사이에 위치한 옛 예루살렘 성전의 일부이자 유대인성지. 과거 요르단령에 속했지만, 제3차 중동전쟁이스라엘이 점령했다. 그 너머로 보이는 황금빛 바위의 돔무함마드가 승천했다고 전하는 곳이다.

2. 배경

본래 이 자리에는 솔로몬 왕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다. 기원전 957년에 솔로몬 왕이 세운 성전을 제1성전이라 부른다. 하지만 기원전 586년 신 바빌로니아가 침공하며 제1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 상당수를 바빌론으로 끌고갔다. 이것이 바빌론 유수이다. 이때 유대교에서는 최고의 성물이고 유대교 제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언약궤가 사라졌다. 살아남은 제사장들이 다른 곳으로 안전하게 옮겼다는 말도 있고 성전산 지하에 숨겼다는 말도 있지만, 아마도 바빌로니아의 군병들이 제1 성전의 보물과 귀금속을 약탈할 적에 같이 파괴했을 공산이 크다. 나무로 만든 궤짝에 금박을 입히고 금장식물을 달았다고 하므로, 보물을 찾는 병사들이 보면 절대로 그냥 놔둘 리 없다.

기원전 539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황제 키루스 2세는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관용정책의 일환으로 바빌론에 끌려온 유태인들을 이듬해(기원전 538)에 고향 땅으로 돌려보냈다. 이때 키루스 2세가 임명한 유대 지역의 총독은 즈루빠벨(혹은 스룹바벨)이었다. 다리우스 1세가 지원하고 즈루빠벨이 주도하여 유대인들은 기원전 521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기원전 516년에 새로운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하였다. 이 성전을 '제2성전' 혹은 '즈루빠벨 성전'이라고 한다. 느헤미야가 성전을 재건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느헤미야는 성전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였다. 그러나 언약궤를 찾을 길이 없어서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없었던 듯하다.

유대 지역을 지배한 셀레우코스 왕조안티오코스 4세가 제2성전에 다른 신상을 세우고 일부를 망가트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외세 왕조의 전횡에 분개하여 유다 마카베오의 주도로 혁명이 일어나 제2성전에서 이교의 신상을 제거하고 망가진 부분을 수리하였다. 이를 기념하는 절기가 '하누카'이다. 이후 로마의 지원으로 헤로데 대왕이 즉위하였다. 이두매아, 즉 에돔 출신으로 정통성이 부족했던 헤로데는 정통성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제2성전을 증축했다. 이를 일명 헤로데 성전이라고 한다. 헤로데 성전은 제2성전을 증축했을 뿐이므로 제3성전이 아니다.[1]

로마 제국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면서 지나치게 세금을 매기고, 유대교에 간섭하고, 칼리굴라가 폭정을 휘두른 영향으로[2] 로마와 유대인 들간 긴장이 조성되었다. 클라우디우스 시기는 칼리굴라와 달리 별 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네로에 와서 문제가 벌어졌다. 네로는 앞선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황제들과 달리, 치세 초반을 제외하면 정말로 무능하고 잔악하며 악랄했다. 이러한 혼란 속 유대인들이 로마군 수비대를 기습하며 서기 66년부터 73년까지 1차 유대전쟁이 벌어졌다.

서기 73년 (훗날 로마의 황제가 된) 티투스 장군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유대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인 헤로데 성전을 깨끗하게 헐어버렸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건물을 헐어버렸지만 '이방인의 뜰' 부분의 서쪽 담장만큼은 없애지 못하였다. 서쪽 담장은 성전 터의 축대를 겸했기 때문에 무너트리기는 너무 힘들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옛 헤로데 성전 건물의 서쪽 축대 일부만은 무너지지 않고 남았으니, 이것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이후에도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에 순응하지 않고 2차례 반란을 일으켰고 이쯤 되자 로마는 인내심이 바닥났다. 결국 하드리아누스는 유대인들을 키프로스와 예루살렘을 비롯한 이스라엘 일대 출입을 금하며 외국으로 흩어지게 하였으니, 이것이 디아스포라이다.

3. 이름의 유래

현재 있는 통곡의 벽은 제2성전 이방인의 뜰 구역 서쪽 축대를 가리킨다. 뿌리를 잃은 유대인들이 그나마 남은 성전의 서쪽 축대 밖에 모여 통곡하였기에 '통곡의 벽'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이 함락될 당시 벽이 진짜로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에서 따온 이름이란 설도 있다. 이스라엘 건국으로 그네들의 오랜 숙원은 풀렸지만 아직 예루살렘 성전은 복구되지 못하였기에, 아직도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을 찾아 기도를 올린다.

4. 가이드

현재 통곡의 벽은 유대인의 성지이자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지상에 있는 부분은 상부이고 하부는 지하에 묻혔으니 가이드를 대동해서 지하도로 내려가보는 것도 좋다. 전쟁을 여러 차례 겪는 과정에서 예루살렘은 과거의 잔해 위에 재건되기를 반복하였다. 때문에 현재 지하에는 과거 지상이었던 부분의 유적 등이 많이 남아있다.

유대인의 성지인 만큼 복장 규정을 지켜야 들어갈 수 있다. 반바지, 민소매 차림은 들어갈 수 없다. 남자는 모자를 써야 하는데, 빌려주는 곳이 있다. 입구에서 종이로 된 키파를 담은 상자가 있는데, 이를 쓰고 들어간 다음 나올 때 다시 상자에 두고 나오면 된다. 사진 촬영은 어느 정도 허용되지만, 안되는 날도 있으니 사전에 알아보아야 한다. 오늘날엔 남녀가 따로 입장하도록 분리대가 설치되었다. 극단적인 시온주의자로 의심받을 정도로 유대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나탈리 포트만조차도 통곡의 벽에서 영화를 찍다가 남녀가 같이 있던 장면 때문에 이스라엘 랍비들이 대노하여 각본을 수정하던 적도 있다.

하레디와 같은 유대인들은 이 통곡의 벽을 기반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복원해야 한다며 벽돌과 같은 건축 자재들을 가져다 놓는 시위를 하기도 한다. 물론 이를 제지하는 이스라엘 경찰들과 충돌이 빈번하다.

유대교의 믿음에 따르면 신이 성전산 바위의 돔 터를 법궤를 안치하고 자신에게 바칠 제사를 올리는 유일한 장소로 결정하였기에, 오직 그곳에서만 율법에 맞는 방식으로 제사를 올릴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성전 건축 후보지란 존재할 수가 없다. 문제는 성전을 복원하려면 바위의 돔(본 문서 사진에 등장하는 황금색 돔)을 부수거나 이전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슬람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가 있던 그 자리에서 마지막 사도 무함마드가 승천했다고 믿어 바위의 돔을 건설했으므로, 바위의 돔을 이전하는 정도로 타협할 수가 없다. 이슬람에서도 바위의 돔 건물이 아니라 '터'가 중요하다. 그런데 바위의 돔을 없애고 그 자리에 유대교의 제3 성전을 건축한다? 이는 이슬람 세계 전체와 전쟁을 하겠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부도 절대로 손을 못 대는 것.

5. 비유적 표현

위 항목이 어원이 된 듯하나, 의미는 약간 다르다. 주로 아무리 시도를 해도 도저히 뚫리지 않는 무언가를 별칭하는 데 쓴다. 넘사벽과는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다. 넘사벽이 감히 넘어가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불가능'한 목표에 가깝다면, 통곡의 벽은 넘어가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만 넘어가는 과정이 말 그대로 통곡이 나올 정도로 고되고 험난할 때 쓰인다.[3][4]

6. 기타

2018년 11월, 여성 전용 기도 구역 벽의 갈라진 틈에서 이 기어나와 기도가 중단된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숙련된 땅꾼이 이를 잡아냈고 독이 없는 뱀이라는게 밝혀졌지만, 하필 '성지'에서 '뱀'이 튀어나왔다는 것 때문에 에덴의 뱀을 거론하는 등 종교계에서는 나쁜 조짐으로 여겼다. 해당 뉴스 링크


[1]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바위의 돔을 부수고 그 자리에 성전을 세운다는 내용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제3성전'이 개봉하기도 했다.[2] 로마 내치 적으로는 칼리굴라는 현대에 와서 재평가 받고 있는 요소가 있다. 어쨋든 칼리굴라는 유대인들과 충돌하는 그리스 인들 편을 들며 그들을 조롱했고 유대교 신전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게 하려는 미친 짓을 저지를 뻔했다. 다행히 유대 총독이 그 짓을 했다간 유대인 반란이 일어날 것을 걱정해 태업하여 황제와 유대인들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은 없었다.[3] 이곳이 알려지기 전에는 베를린 장벽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다.[4] 넘어갈 경우 일이 터질 수 있어서 넘어가면 안 된다는 표현으로는 삼팔선(사실 현재의 휴전선이 삼팔선은 아니지만)이 쓰이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최종 한계선을 가리킬 경우 마지노선을 많이 쓴다.[5] 보통 한국 유저들은 통곡으로 줄여 쓰는 편이고, 외국에서는 "멸망의 거북이(Doom Turtle)"라고 부른다.[6] 심지어 이 장갑 수치는 워게이밍이 Object 268 4처럼 테크 트리 전체의 플레이 스타일에 맞추기 위해 뻥튀기한 것도, 티거 1, 2처럼 단계 별 밸런스를 위한 버프도 아닌, 고증 장갑 수치다. 실차량 T28의 정면도 305mm란 뜻이다![7] 그나마도 옆구리는 152mm에 각도가 좋은 경사장갑이거나, 수직 장갑부여도 마우스나 이백 뺨치는 두께의 공간장갑 효과를 내는 궤도 때문에 데미지를 넣기 쉽지만은 않다. 후방은 51mm라고는 하지만 T95를 호위하는 적군을 피해서 접근해야 한다.[8] 우회 경로도 단 한 곳 뿐이다. 거기에 이 맵은 화물을 운송하는 맵이기에 우회 및 기습이 주특기인 겐지나 트레이서, 둠피스트 정도를 제외하면 잘 가지 않는다.[9] 또는 박티칸 시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