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양층언어(兩層言語 / Diglossia)는 그리스어로 'di-'(둘) + 'glossia'(언어)가 합쳐진 단어로 어원적으로는 'bilingualism'과 동일하지만, 20세기 초부터 용례가 갈리더니 의미가 달라졌다.#단일 언어 사회 안에서 2가지 이상의 언어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따로 사용되는 형태로 공존하는 현상. 층위를 나누지 않고 한 사회 안에서 여러 언어가 사용되는 현상은 다중언어 현상(multilingualism)이라고 한다. '표준어-방언-은어'와 같이 한 언어 사회 내부에서 다양한 언어 변이가 존재할 경우 양층언어 현상, '모로코에서는 프랑스어와 아랍어를 사용한다'처럼 한 언어 사회에 상이한 언어들이 혼재할 경우는 다중언어 현상이다.
공식적이고 격식이 요구되는 자리에서 사용되는 말과 사적이고 비격식적인 자리에서 사용되는 말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차이가 상당히 커서 이들을 언어학적으로 별도의 언어나 방언으로 따로 구분해 줄 필요가 있을 경우, 이런 상황을 diglossia라고 한다.
문어/구어의 차이, 격식언어/비격식언어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구체적인 모습은 대단히 달라질 수 있다. 제주어를 독립된 언어로 보는 관점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초기까지의 제주어가 일종의 양층언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때로는 이러한 현상이 계층/계급 간의 차이와 연결되기도 한다. 이 경우 언어가 계층의 소속을 증명하는 척도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같은 기원을 갖는 언어의 지역/지위적 차이로 달라진 두 언어/방언을 대상으로 하지만 정의 자체에 '유사한 언어'가 전제되지는 않는다. 완전히 다른 언어라 하더라도 지역/지위 등이 다르게 나타난다면 diglossia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며, 영어 위키백과 diglossia 문서(2019년 1월 2일 확인)에서는 그러한 입장에 따라 우르두어와 영어가 적힌 표지판을 이미지로 싣고 있다.
한국어의 경우 표준어/서울 사투리와 그 외의 지역 방언이 이런 격차가 난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서울 공화국, 언어 차별/한국 문서 참조.
근대 국민국가에서는 타파되어야 할 현상으로 지목된다. 근대 국민이란 신분제도를 초월한 평등을 추구하기 때문에, 언어 역시 평등할 것을 요구받는기 때문이다. 주로 구어와 문어의 일치인 언문일치와 함께 양층 언어 현상이 타파되게 된다. 그래서 전근대에는 전세계적으로 양층 언어 현상이 흔하게 나타나는 반면 근대에 이르러서는 그 수가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2. 사례
2.1. 공적 언어와 대중문화의 언어가 다른 경우
다른 언어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공적 언어는 표준 한국어이고 일상 언어는 방언인 것과 유사하다.- 아랍권 국가들
- 대만
- 그리스(근대 독립 이후부터 1976년까지)
- 격식 언어: 카사레부사
- 비격식 언어: 디모티키
- 벨라루스
- 격식 언어 : 러시아어
- 비격식 언어 : 벨라루스어
러시아어와 벨라루스어 둘 다 공용어이지만, 러시아어가 더 우위에 있다. # 도시에서는 러시아어가 주로 쓰이고, 시골에서는 벨라루스어가 주로 쓰이는데,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로 이주한 사람의 경우 벨라루스어 문법과 발음에 러시아어 단어가 결합한 트라샨카를 사용하기도 한다. 도시에 사는 러시아어 화자들은 트라샨카를 부정적으로 본다. - 우크라이나
표준 아랍어는 쿠란의 아랍어를 기초로 한 것으로 아랍권 전체에서 공적 언어로 통용된다. 그러나 표준 아랍어는 '쿠란은 하늘이 내린 책이니 수정을 금한다'라는 샤리아의 영향으로 오랜기간 동안 크게 변화하지 않았고, 쿠란 아랍어를 표준화하는 과정에서 문법이 다소 간략해지고 다수의 외래어를 받아들이는 등의 변화를 겪었다고 하지만 다른 언어에 비하면 그 변화 폭이 크지 않다. 그러나 고전 아랍어가 표준어로써의 지위를 확립했다고 해도 중동 각지에서 아랍어가 퍼지는 과정에서, 콥트어, 베르베르어, 남아라비아어 등 기존에 쓰이던 현지 언어 어휘의 흡수와 시대에 따른 발음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수 많은 아랍어 방언이 생겨나게 되었다. 표준 아랍어와 많은 아랍어 방언들은 서로 다른 언어나 다름없어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카사레부사는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고 독립한 그리스가 그리스어의 표준 규범을 확립하면서 '그리스적 순수성'을 확립하기 위해 고전 그리스어의 규범에 가깝게 인위적으로 창조한 말이다.[1] 반면 일반 민중은 구어체인 디모티키를 사용하였는데 둘 간의 괴리가 심해서 카사레부사는 공적 자리에서만 사용하게 되었다. 이 현상은 1976년 이후 그리스어의 언어규범이 디모티키 위주로 통일되면서 사라졌다.
우크라이나의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이며, 2020년도 이전에는 우크라이나 인구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을 고려해 공문서에 러시아어 역시 사용 가능했지만 현재 모든 공문서는 우크라이나어로만 적힌다. 또한 의회 연설도 우크라이나어로만 이뤄지고 영화 자막도 우크라이나어로만 제작된다. 하지만 2022년 3월 우크라이나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 중 48%가 우크라이나어를 집에서 사용하고, 32%는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를 동시에 사용하며, 18%는 러시아어만 사용한다. 일상 생활에서는 여전히 러시아어, 그리고 두 언어가 섞인 수르지크를 사용하는 인구가 존재하는 것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러시아어 절대 우세 지역이었던 남부와 동부 지역에서도 양층 언어 현상이 강해졌다. 거의 모든 우크라이나 매체들이 러시아어 사용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어로 갈아탔으며, 일할 때는 우크라이나어와 거의 동등한 지위를 누렸던 과거와 달리 러시아어가 거의 쓰이지 않게 됐고 가족, 친구 등 사적 관계에서만 쓰이는 언어가 됐다.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 비중이 비슷했던 중부 지역은 서부처럼 우크라이나어 절대 우세 지역으로 변모했다.
- 코소보
- 격식 언어 : 표준 알바니아어 (토스크 방언)
- 비격식 언어 : 코소보 알바니아어 (게그 방언)
글을 쓸 때는 토스크 방언에 기초한 표준 알바니아어를 쓰지만, 일상 회화에서는 코소보식 알바니아어가 쓰인다.
- 아제르바이잔
- 격식 언어 : 아제르바이잔어
- 비격식 언어 : 러시아어, 타트어 등의 소수민족어
2023년 현재 아제르바이잔의 공용어는 아제르바이잔어 하나만 지정되어있지만, 바쿠를 중심으로 러시아어만 사용하는 인구가 아직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으며 러시아어만 하더라도 취직이나 사회생활에 별 문제가 없다. 또한 오랜 소련지배로 인해 러시아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구가 많다. 그외에 시골을 중심으로 타트인, 레즈긴인, 우디인, 아르메니아인 등의 소수민족들은 자기 마을에서 자기들끼리 이야기할때는 자기네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같은 다른 구소련권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2.2. 구어와 문어가 다른 경우
- 중국(신문화운동 이전)
방언끼리는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될 정도라서 명대 이후에는 중앙 관료용 구어로 '만다린'을 썼는데 근대화 후에 이것이 표준 중국어로 발전한다. 극심한 방언 차이는 중국이 근대화 이후에도 표의문자인 한자를 계속 쓰는 이유이기도 하며, 언어학자들이 중국어란 언어를 정의하는 데 골머리를 앓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해혁명 이후에는 신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어려운 한문 대신 입말 그대로 써서 대중과 더 친밀하고 배우기 쉬운 백화문을 쓰자는 언문일치 운동이 일어나 문어체에서도 한문 대신 북경어 백화문에 기초한 표준 중국어를 쓰게 되면서 양층언어 현상이 소멸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백화문이 안 쓰인 것은 아니지만, 저급한 것으로 취급되어 대중소설 등에서나 쓰였지 공문서 등지에서는 쓰이지 않았다. 참고로 지금도 표준중국어를 배우지 못한 노인들이 많은 곳은 각 지역의 중국어 방언을 통역하는 직업이 있다고 한다.
- 한국(조선시대까지)
한문은 외국어인 중국어를 기반으로 한 문어이며, 하층언어인 한국어와는 전혀 다른 어족에 속한다. 유학자들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에 한문은 단순히 지배계급이 사용하는 언어를 넘어 지배계급을 정의하는 기준이었다. 한문에 능통한 사람은 과거시험을 통과하여 민초를 수탈할 수 있는 지식인 계급이 되었고, 반대로 한문을 모르는 사람은 무력하게 착취당하는 민초가 되었다. 한문과 한국어 사이에는 주로 하급 관리가 사용하던 이두가 있었다. 이두는 한자로 표기하지만 한국어를 기반으로 한 문어다. 그러나 한문의 영향과 표기의 보수성 때문에 별도로 배우지 않으면 이해하거나 사용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다층언어 현상은 갑오개혁 이후 공문서 작성에 한글을 기본으로 채택하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미독립선언서에서 볼 수 있듯, 한문과 이두의 영향은 그 이후에도 남아 많은 지식인들은 여전히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어로 글을 썼다. 오늘날에는 한글전용을 기반으로 하는 언문일치가 완전히 자리 잡으면서 이러한 다층언어 현상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 일본(메이지 시대 이전)
- 문어: 문어체
- 구어: 구어체
문어체는 헤이안 시대의 일본어를 모범으로 한 서면 언어로 그 이후 일본어가 크게 변화하면서 구어체와는 괴리가 일어나게 되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에 언문일치 운동으로 양층언어 현상이 점차 해소되어 갔지만 구어체를 그대로 옮겨적은 출판물과 문어체 출판물이 공존하다가 2차대전 패망 이후 끝까지 문어체를 고수했던 법률 조항과 공문서가 완전히 구어체 기반의 현대 일본어로 전환되면서 사라졌다.
- 방글라데시
- 문어: 표준 벵골어
- 구어: 지방 사투리
방글라데시는 벵골어 사용에 있어서 양층언어현상이 크게 나타나는데 이는 19세기 벵골어의 표준화 작업에 공헌한 대부분의 학자들이 서벵골 지역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표준 벵골어는 콜카타에서 쓰이는 벵골어 방언을 기초로 만들어졌고 현재 동벵골 지역인 방글라데시에서 사용되는 벵골어와는 심한 차이를 보였다. 게다가 1947년 인도-파키스탄 분리로 동파키스탄에 속하게 된 방글라데시는 자연히 옆 동네인 콜카타와는 교류가 단절되었으므로 그 방언이 더더욱 심하게 발달하였다. 현재 방글라데시의 벵골어는 여러 지역어와 청소년들의 슬랭이 섞여 인도의 벵골어와는 구어체에서 심한 차이를 보인다. 물론 표준 벵골어의 기틀을 흔들 수는 없으니 방글라데시도 공식석상이나 뉴스에선 당연히 콜카타 방언을 기준으로 한 표준어를 사용하지만 구어체 벵골어는 발음, 표현법, 동사변화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 미얀마
- 문어: 문어체(high) 미얀마어
- 구어: 구어체(low) 미얀마어
문어체는 공식적인 상황에 사용되며, 구어체는 일상에서 쓰인다. 문어체의 경우 13세기 이후에 큰 변화가 없었는데, 역사적으로는 구어체가 권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문어체가 선호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부터 일부 미얀마 작가들이 작품에 구어체를 사용하는 등 구어체의 사용 빈도가 점점 높아졌으며, 최근에는 공식 문서, 학술 자료, 소설 이 아닌 광고, 방송, 잡지 등에서는 구어체를 더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