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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22:20:51

여의전/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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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요 등장인물3. 후비들4. 황실
4.1. 황자4.2. 황녀4.3. 선대
5. 심복들6. 태의7. 기타

1. 개요

여의전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문서. 나무위키:편집지침/표제어대로 가능한 본명으로 작성한다.

2. 주요 등장인물

파일:ruyi3.jpg 파일:hongli.jpg
계황후 오라나랍 여의 건륭제 애신각라 홍력
파일:queenmother.jpg 파일:006muEijly1fd88tsdcdmj33uw2kmkjm.jpg
숭경황태후 뉴호록 씨 시위 릉운철

3. 후비들

파일:concubines.jpg
황후(皇后)
효현순황후 부찰 랑화계황후 오라나랍 여의효의순황후 위연완
황귀비(皇貴妃)
혜현황귀비 고희월숙가황귀비 김옥연순혜황귀비 소록균경공황귀비 육목평철민황귀비 부찰 제영
귀비(貴妃)
유귀비 가리엽특 해란완귀비 진완인영귀비 파림 미약 흔귀비 대미약
비(妃)
서비 엽혁나랍 의환진비 부찰씨 예비 박이제길특 액음주용비 한향견돈비 왕부지
빈(嬪)
매빈 백예희신빈 색탁륜 아약이빈 황기운순빈 곽석특 람희각빈 배이과사씨
귀인
색귀인 색작락씨공귀인희귀인
상재
규상재 무상재백상재

* 철민황귀비 부찰 제영
품계: 격격→ 철(哲)비 → 철민황귀비(哲悯皇贵妃)
철민황귀비 부찰씨. 1황자 영황과 2황녀의 생모. 홍력이 잠저 시절에 처음 들인 격격[1][2]으로 상당한 미식가였다고 한다. 홍력이 즉위하기 전에 죽었으며 철비로 추존되었다가 철민황귀비로 다시 추존되었다. 부찰 제영의 죽음은 원작과 드라마가 다른데 원작에서는 김옥연이 자신의 시녀인 정숙을 시켜 그녀의 음식에 상극이 되는 음식을 넣어 식중독으로 죽었으며 당시 홍력은 신변에 없었고 랑화는 왕부에 있었기에 그녀가 갑작스럽게 죽은 것에 대해 랑화가 혐의자가 된다. 드라마에서는 2황녀를 낳을 때 난산으로 모녀가 다 죽었는데 랑화가 뒤에서 손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돈다.

아이를 가졌던 후궁들 중 소록균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경험이 있다. 랑화는 아들 둘을, 여의는 아들과 딸, 연완 역시 아들을 둘 잃었으며, 제영은 딸과 함께 죽었고 혼자 남은 아들마저 요절한다. 미약은 임신한 공주를, 해란은 영기를, 예희와 황기운 역시 아이를 잃었고, 김옥연도 9황자를 유산했다. 의환 역시 영모를 잃었다. 경빈과 용비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여타 후궁암투물들을 비추어 보았을 때 다른 드라마의 후궁들보다 여의전의 후궁들이 강력하다.
아래의 일들은 모두 여의전의 후비들이 꾸민 짓이다.
1. 회임하면 유산하게 만들고 약의 재료를 몰래 바꿔 난산으로 죽게 만든 후궁.(김옥연)
2. 유산은 기본, 용종을 기형아로 만들고 후궁의 처소에 뱀을 풀어버린 후궁.(고희월)
3. 자매의 우정의 증표라며 불임약재가 한가득 든 팔찌를 선물해 두 여자를 불임으로 만든 황후.(부찰 랑화)
4. 친모가 없는 황자는 방치하고 학대하며 친모가 있는 황자는 오냐오냐 키워 발달장애로 만든 황후.(부찰 랑화)
5. 천연두 환자의 옷을 처소에 몰래 넣어 황후 소생 적자와 그 유모를 죽게 만든 후궁.(백예희)
6. 임신한 상태로 자신의 약에 독을 넣어 쇼를 벌인 후궁.(가리엽특 해란)
7. 황제앞에서 자신과 대등하고 훨 높은 후궁에게 뺨을 때리고 채찍을 휘두른 후궁.(백예희)
8. 아이가 다섯이나 있는 귀비를 자신의 처소에 끌고와 사형시켜 버릴려고 한 황후.(오라나랍 여의)
9. 황후의 용종을 탯줄로 감아 죽이고 개가 달려들게 만들어 둘이나 죽인 후궁.(위연완)
10. 가장 총애받는 황자의 첩을 자신의 사람을 보내 병으로 요절하게 만든 후궁.(위연완)
11. 황제의 밥에 최음제를 타 총애받은 후궁.(박이제길특 액음주)
12. 황제를 암살하려 한 후궁.(한향견)
13. 황자에게 독버섯을 먹여 중독 증상을 일으키게 한 후궁.(위연완)

4. 황실

4.1. 황자

황자(皇子)
<rowcolor=#000>1황자 애신각라 영황 단혜황태자 애신각라 영련 3황자 애신각라 영장
<rowcolor=#000> 4황자 애신각라 영성5황자 애신각라 영기 6황자 애신각라 영용
<rowcolor=#000> 7황자 애신각라 영종 8황자 애신각라 영선 9황자 애신각라 영유
<rowcolor=#000>10황자 애신각라 영모 11황자 애신각라 영성 12황자 애신각라 영기
<rowcolor=#000> 13황자 애신각라 영경 14황자 애신각라 영로 15황자 애신각라 영염
<rowcolor=#000> 16황자 애신각라 영권 17황자 애신각라 영린

4.2. 황녀

장공주(長公主)
단숙장공주 애신각라 항착유숙장공주 애신각라 항제
공주(公主)
3황녀 고륜화경공주 애신각라 경슬4황녀 화석화가공주 애신각라 경연5황녀 고륜화의공주 애신각라 경시
전작의 롱월공주에 해당하는 캐릭터. 원작에서도 롱월은 화친갔다. 여의에게 예전에 옷을 만졌다가 쳐낸 일에 대해 말하자 여의는 태후와 자신의 고모의 사이가 좋지 않기에 거리를 두기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전작의 령서공주에 해당한다.그렇게 따지면 이분은 과군왕 딸 여담으로 유숙장공주 역 배우 왕학윤은 연희공략: 금지옥엽에서 위영락의 딸인 소화공주(고륜화정공주)로 나온다.
화의공주 경시의 사망 이후, 건륭의 부름으로 자금성으로 귀환한다. 아들 경우를 낳다가 난산으로 죽을 뻔했고, 그래서 아이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는데 이때부터 부마가 축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슬이 과이심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하자, 건륭은 과이심 친왕이 반란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데다 경슬에게도 잘 대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금성에 머무는 걸 허락한다.
한편 경슬은 여의가 자신을 몽골로 시집 보내도록 황제와 태후를 움직이는 바람에 상심한 어머니가 죽었다고 여겨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또한 여의는 후궁 출신의 계후이고 자신은 원배[30] 황후 소생 적출 공주이니 여의가 자신에게 모후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후 경슬은 복수를 위해서 자신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몽골 출신 후궁 및 위연완[31]과 어울리며 여의를 적대한다. 드라마판에서는 5황자 영기의 장례식에 참석한 영비 파림씨로부터 위연완의 야심을 언질 받게 된다.[32] 이에 사실 확인을 위해 환관을 잠복시켰고, 15황자 영염에게 "아바마마에 대한 효심도 중요하지만, 어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위연완의 말을 전해 듣는다. 영비의 언질이 틀리지 않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건륭에게 이를 알려 위연완이 자식들의 양육권을 모두 박탈당하게 만든다.
부황의 후궁들을 싫어하지만 자신의 이복남매/자매들인 후궁 소생의 황자 및 황녀들과는 친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여의와 해란의 아들인 5황자 영기가 죽었을 때도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더군다나 여의와의 관계도 마냥 증오하기만한 게 아니었다. 막상 여의가 홍력과의 갈등 끝에 머리카락을 자르고 익곤궁에 연금되면서, 거의 폐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음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머니 랑화의 복수를 했다고 통쾌해할만도 하지만 아버지와 서모(여의)의 갈등이 극에 달하는 것을 보면서, 연완의 행패로 내명부의 분란이 갈수록 커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는지 여의를 안쓰럽게 쳐다본다. 오히려 상재들이 황귀비가 된 연완에게 아첨을 떨러 온 것을 궁 밖에서 보면서, 저리 체면을 지킬 줄 모르는 것을 황귀비에 앉히면 안 됐다며 여의보다 연완을 더 혐오한다. 이후의 등장은 없으며 여의의 사후에도 그녀의 장례식장에는 모습을 비추지 않는다.[33][34]
실제 역사에서 고륜화경공주효현순황후의 성인까지 장성한 유일한 자식이었고[35] 몽골 과이심 왕에게 시집을 간 것은 맞지만 몽고로 간 것은 잘못된 고증이다. 화경공주는 효현순황후 사후에도 북경에 거주했다. 유일한 적녀여서 건륭제가 엄청나게 총애했기 때문. 또한 영종 사망 → 효현순황후 사망 → 화경공주 하가 순서인 드라마와는 다르게 실제 역사는 화경공주 하가(건륭 12년 3월) → 영종 사망(건륭 12년 12월) → 효현순황후 사망(건륭 13년 3월) 순서이다. 드라마에서는 부마가 축첩하여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나오나 실제 액부와 화경공주는 금슬이 좋았으며 1남 4녀를 낳았다.* 4황녀 화석화가공주 애신각라 경연순혜황귀비 소록균의 딸. 몇 안되는 공주라 홍력의 총애를 받는다. 부찰 랑화의 동생인 부찰 부항의 차남 복륭안과 결혼한다.
실제 역사에서의 고륜화효공주는 오히려 아버지인 건륭제의 외모며 성격, 재능을 유난히 닮아 여러 면에서 출중했던지라 엄청난 총애를 받았고, 그녀의 친모인 돈비도 덩달아 대우받았다. 딸을 각별히 사랑한 건륭제는 고륜화효공주가 후궁 소생의 공주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고륜공주로 봉해주었을 정도.[38]
이후 건륭제의 총신 뉴호록 화신의 아들과 결혼했다. 하지만 건륭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가경제가 화신의 전 재산을 몰수하는 바람에 돈을 아끼며 살아야 했고, 시댁이 고륜화효공주에게 의지하였다고 한다.

4.3. 선대

선대(先代)
옹정제경인궁 황후 오라나랍 의수숭경황태후 뉴호록 씨

5. 심복들

드라마에서는 소련이 부찰 황후를 위해서 악행을 김옥연, 고희월과 함께 벌인 것으로 나온다. 랑화가 물에 빠졌을 때 김옥연이 주운 비녀[47]를 떨어트리게 되는데, 김옥연이 이를 주웠고 최종적으로는 랑화의 시녀 소심이 비녀를 손에 쥔 채[48] 살해당한다.
드라마에서는 고희월이 죽은 후 말심은 내명부 창고에서 일하게 되는데 어머니가 천연두에 걸려서 옮게 되었다. 부찰 랑화에게 고희월의 복수를 해주고 싶어, 처음에는 해란에게 연락했다가 여의가 거절하자 정숙에 의해 매빈을 만나게 된다.[53]부찰 랑화의 임신으로 여의가 육궁을 통솔하게 되었는데 궁에 천연두 환자가 있음에도 내보내지 않아 영종이 천연두에 걸려 죽게 되었다.[54]

6. 태의

7. 기타


[1] 그러나 랑화가 제영이 철비로 추존된다는 말을 왕흠에게 듣고 한 말에 따르면 자신이 처음 복진으로 시집왔을 때 홍력이 여의와 희월의 처소에만 가서 부찰가에서 랑화가 자식이 없을까봐 들인 사람이라고 한다. 친정에서 제영이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가 곧 랑화의 아이라 했고 그게 랑화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다.[2] 다만 철민황귀비 부찰씨는 건륭제가 처음으로 들인 만주 정황기 소속의 격격으로, 만주 양황기 소속의 효현순황후 부찰씨를 복진으로 맞이하기 1년 전에 들인 사람이다. 팔기가 다르니 같은 성씨라도 직계일족은 아니며 성만 같은 수준. 본관이 다른 거라 이해하면 된다.[3] 태후와 복가의 말에 따르면 후궁들의 암투에 신물이 난 홍력이 심혈을 기울여 뽑은 후궁들로 부찰씨나 뉴호록씨처럼 강력한 공신 가문은 탈락시키고 암투에 희생될 만한 약한 가문도 탈락시켜 어느 정도 몸을 사릴 줄 알지만 자신은 보호할 수 있는 후궁들을 뽑았다고 한다.[4] 만주족에도 한족처럼 이씨, 최씨, 강씨 등의 성이 있었다. 홍력이 중간 계층의 후궁들로 뽑았다고 했으니 만군기 강씨로 추측된다. 실제 역사에서의 인물은 건륭제의 후궁 공빈 임씨.[5] 이 부분은 드라마와 원작이 다르다. 원작에서는 옥연의 부추김을 받아들인 랑화가 직접 한 일이며 드라마에서는 옥연의 사주를 받은 랑화의 시녀 소련이 몰래 손을 쓴다.[6] 드라마에서는 착하지만 자신이 장자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그런 면을 적모인 랑화가 거슬려 한다. "서장자가 감히 적자의 머리 위에 서려고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7] 영황이 살아있을 때는 죽어도 보러 가지 않다가 곧 사망할 것 같다는 말에 건륭 역시 영황의 잠저로 향했으나 결국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고 비통해하는 홍력의 모습이 참 가관이다.[8] 황제와 황후 사이의 아들이기 때문에 적자이다.[9] 원작에서는 여의가 6살밖에 안 됐는데 상서방에서 공부시키냐며 놀랐다.[10] 그러나 모후인 랑화의 말에 따르면 태어났을 때는 울음소리가 우렁찼다고 한다.[11] 드라마에서는 해란이 단독으로 벌인 일이다. 영련의 직접적인 사인은 처소로 날아든 갈대였는데, 직전에 해란이 갈대를 들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안 그래도 천식으로 오늘내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여의에게 씌워진 혐의가 고희월을 위시한 황후파의 모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해란이 손을 써서 명을 앞당겨버린 것.[12] 드라마에서는 힐방전으로 가는 장면은 삭제되었다. 랑화가 죽고난 후 영장과 소록균의 대화에서 이 내용이 나온다.[13] 그 뒤에도 소뢰자가 강여빈에게 진료받을 것을 권하나 역시 거절한다.[14] 9황자가 풍한에 걸렸을 때 강여빈이 쇄심의 다리에 대한 복수로 약에 쓴 약재를 추가해 9황자가 못 마시게 만들어 병을 악화시켰다. 심지어 김옥연이 유난을 떨어 시달리던 유모들도 약이 너무 쓰자 마시지 않아서 병이 더 낫지 않았다.[15] 임신한 몸으로 랑화의 장례를 치뤘으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이는 자업자득인데 랑화의 죽음에 옥연이 가담했기 때문이다.[16] 이 일을 처음 이옥에게 들었을 때 건륭은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결발처(처음 맞이한 정실)에게 잘 대해 주지 않다니. 정도 의리도 없고 결발처를 자살하게 하다니 사람도 아니다."라고 한다.[17] 강희제의 8황자 윤사가 친왕의 외손녀이자 명문가 출신 곽락라 씨와 혼인했다고 해서 강희제가 태자로 생각한 게 아니었다.[18] 김옥연이 4황자를 효현황후의 양자로 들이려고 할 때, 계후의 아들은 정처의 아들과는 다르고 효현황후 소생들은 태어나자마자 후계자로 인정했는데 12황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19] 유비 해란의 처소[20] 여의가 죽었을 때는 용비가 영기를 데리러 직접 간다.[21] 이후에는 이름을 옹염이라고 개명한다.[22] 김옥연의 아들들이 그러하다. 처음부터 건륭은 이들을 공녀의 자식이라 하여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았다.[23] 드라마에서는 수강궁 태비들이 양육한다. 육목평은 경운을 양육한다.[24] 드라마에서는 의환의 아들 10황자를 함친왕부에 보내면서 함친왕 부부가 유숙장공주를 양육했다고 한다. 그런데 함친왕 윤비는 건륭제보다 5살이나 어리다[25] 드라마에서는 어느 정도냐 하면, 7황자 영종 사망+랑화의 급격한 건강 악화 직후 진행된 동순(東巡)에서 건륭, 랑화, 여의, 록균이 랑화의 건강을 주제로 얘기 중인데, 록균의 "황후마마가 건강하셔야 신첩들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어마마마는 국모이시니 당연히 부처의 보호를 받으실 것이며, 너희는 그래봤자 첩실일 뿐이니 어마마마를 잘 모시기나 하면 된다"고 한다. 다만 랑화와 홍력이 있는 곳에서도 대놓고 저런 말을 한 이유는 고륜공주인 경슬이 황귀비보다 높은 위치이기 때문이다.[26] 이 성격은 태후마저 잘 알고 있는데, 태후의 심복 복가의 대사에서 "(유일한 적녀라는 이유로) 화경공주의 성격이 몹시 오만하니 몽고로 화친을 보내는 것이 그 성격을 죽여놓기엔 딱 좋다"며 대놓고 언급된다. 본인이 말하며 본인이 고소해하는 표정은 덤[27] 7황자가 죽고 난 직후 아파서 누워있는 랑화에게 경슬이 "동생이 (먼저) 갔어도 어마마마께는 제가 있잖아요, 제가 어마마마의 의지할 곳이 되고 어마마마를 위해 힘낼게요"라고 위로하지만, 돌아온 랑화의 대답은 "딸이 무슨 쓸모가 있니, 아들이 있어야만 금상첨화의 구실을 하는 거잖니."라는 한탄 뿐이였다. 이 말에 경슬이 울먹이자 이내 랑화도 딸을 다독이며 네가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소리라고 했다.[28] 원래는 유숙장공주가 시집갈 듯했지만 남은 딸마저 몽고로 시집보내고 싶지 않던 태후가 매빈에게 경슬을 시집보내게 만들라며 종용했고, 매빈은 "유숙장공주마저 몽고로 시집가면 태후의 세력이 더 커지게 된다"며 건륭에게 유숙장공주 대신 경슬을 시집보낼 것을 권유한다. 여의 역시 경슬을 치워버리고자 같은 말을 하고, 결국 건륭은 유숙장공주가 아닌 경슬을 시집보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경슬에게 차마 직접 말하기는 두려운지 여의와 록균을 통해 경슬을 설득할 것을 지시한다. 이때 록균은 경슬을 좋은 말로 달래려고 하지만 그러면 네 딸을 시집보내지 그러냐는 경슬의 말에 찍소리도 못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의는 경슬에게 "사람은 자리에 맞는 책임감이 있고, 이를 피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대놓고 말한다. 록균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고 하자 여의는 경슬이 부모의 고심을 모르니 명확히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경슬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 건 덤 결국은 나라와 부찰 가문을 위해 네가 가야만 한다는 랑화의 설득에 시집가게 된다.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으며 "황가에서 태어났지만 처지는 촌부보다 못하다"는 한탄에서 경슬의 심경이 그대로 드러난다.[29] 경슬은 랑화의 사망 이후 예정대로 몽고로 화친을 가고, 2년 후 여의의 황후 책봉식에 참석한다. 경슬은 여의의 황후 책봉식 책사로 자신의 외삼촌인 부항(랑화의 남동생)을 쓴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게 되지만 건륭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며 일축한다. 건륭이 돌아간 이후 경슬은 죽은 랑화의 초상화 앞에 절을 하며 총애는 있다가도 사라지는 것이니 자신이 꼭 돌아와서 복수를 해주겠다고 다짐하며 여의의 책봉식이 끝나고 다시 몽골로 돌아간다.[30] 원배는 죽거나 이별한 첫 아내를 말한다. 랑화는 선제가 맺어준 건륭의 첫 아내로, 같은 황후라도 첩이었던 적이 있는 여의보다 격이 높았다. 소설에서는 건륭조차 여의는 계후라 귀하지 않다고 할 정도.[31] 7공주 출산 이후 답응으로 강등된 위연완이 자신의 외아들 경우가 물에 빠졌을 때 구해준 것을 계기로 위연완과 결탁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건륭의 총애를 되찾고자 했던 위연완이 경우를 이용하여 벌인 자작극.[32] 파림씨: "황후의 자리만을 탐하는 사람이 자식 교육은 어떻게 하겠습니까?"[33] 여의의 장례가 황귀비만도 못한 예로 치뤄졌고 경슬은 원배 황후 소생이기 때문에 입효하지 않은 듯하다. 랑화의 장례식에서는 모든 황자녀들이 나온 것과는 대조된다. 여의의 유일한 친아들인 12황자 영기 또한 상복을 입지 않았다.[34] 태후가 홍력에게 “애가가 친히 황후의 장례식에 다녀왔소. 그러나 대우가 너무 처참하오!”라며 따질 정도. 다만 여의는 죽어서나마 지긋지긋한 황실과 자금성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이러한 소망을 유언장에도 남겼으며 홍력 역시 이를 보고 여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35] 건륭제보다는 일찍 죽었다. 건륭의 27명의 자녀들 중 건륭보다 오래 산 아이들은 5명에 불과하다.[36] 사실 위연완이 몰래 김옥연의 개를 빼돌려 풀어놓은 것이었다.[37] 드라마에서는 경완의 이런 말을 듣고 눈이 뒤집힌 위연완이 그 입 다물라며 경완의 볼을 꼬집고 그 모습에 당연히 양모인 파림 미약은 분노한다. 급기야 연완은 지나가다 등판한 태후 앞에서까지 아이에게 양어머니는 친어머니보다 친밀하지 못한데 양어머니가 어떻게 진심으로 아이를 아끼겠냐는 말까지 해버린다. 안 그래도 건륭과 양아들-양어머니 관계인 태후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두고 하는 말로 들렸는지 아이는 누가 키우고, 또 누구를 따르고 싶어하느냐에 따라 누구의 아이인지 결정된다며 경완이 원하는 대로 영비가 계속 키우게 해준다.[38] 일반적으로 청나라에서 황제의 적녀는 고륜공주로 봉해졌고 서녀는 화석공주로 봉해졌다. 조선으로 치면 고륜공주는 '공주' 에, 화석공주는 '옹주'에 해당하는 셈. 물론 조선의 공주, 옹주와는 달리 모친의 지위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예외도 있었다.[39] 의수의 심복인 수하는 옹정황제의 여인의 원작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소설판은 가공의 역사라 여의전의 전작으로 쳐줄 수 없고,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판에서는 삭제되었다.[40] 랑화파[41] 참고로 왕흠을 연기한 배우는 신 황제의 딸에서 제비자미의 처소인 수방재의 시위로 사대제자 중 소충자역을 맡았다.[42] 드라마에서는 소련이 연심이 말하려는 것을 가로 막는다.[43] 여의파[44] 8황자 영선은 5황자 영기에게 기마를 배우고 있었다. 이미 가귀비의 4황자가 건륭의 눈밖에 나 사면초가에 빠진 가귀비는 이 사고가 5황자가 영선을 견제했기 때문에 일으킨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8황자 낙마사고의 범인으로 5황자로 몰아갔다.[45] 영선이 불구가 되어 아프다고 우는데도 가귀비에 대한 악감정과 여의를 위한답시고 그대로 숨겨버린다. 이로 인해 낙마 사건의 진범이 누군지 가귀비도 건륭도 알 수가 없었다.[46] 드라마에선 소련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친정시녀라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원작에서는 연심이 친정시녀이다.[47] 소록균의 것인데, 홍력이 각 비빈들에게 어울리는 꽃비녀를 만들어서 보내줬던 것.[48] 랑화의 장례식 준비로 분주할 때 옥연의 시녀 정숙과 몰래 만나서 전해받는다.[49] 원래는 200냥에 팔려와 주방에서 장작을 패는 노비였다고 하며 이 부분에 대하여 아약이 나는 팔기 출신이고 너는 200냥에 팔려왔다며 그녀의 면전에서 대놓고 비웃는다. 사실 아약이 아무리 포의 출신이라곤 하나 기인과 민인의 차이는 엄청나다.[50] 경시가 가귀비가 키우는 개에 놀라서 쓰러지자 건륭이 부귀만을 냅두고 다 치우게 되었다.[51] 황귀비보다 지위가 높다.[52] 드라마에서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여의가 사용하던 은가위로 목을 그어 자결한다.[53] 여의가 거절하자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는 해란은 덤[54] 고희월이 그래도 자기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잘 대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희월은 말심에게 자기가 남편감들을 골라 추천해놨으니 시집을 가 자신을 떠나도 좋다고 말했지만, 말심은 마지막까지 희월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녀에게만 충성했다. 결국 말심은 희월의 임종을 바로 옆에서 직접 지켰고, 울면서 "마마! 마마! 제가 마마의 복수를 해드리겠습니다! 꼭이요!"라고 다짐했다.[55] 희월이 잠에서 깨어나 말심에게 “상선은 어디있어?”라고 묻자 말심이 “상선은 옴에 걸려 죽었습니다. 다른 궁녀들도 마마에게 병을 옮길까 하여 모두 내보냈습니다.”라고 답한다. 희월은 “상선도 죽었구나..상선도 죽었구나…”라며 슬퍼한다. 여의와 더불어 자기 심복들을 잘 챙기고 끔찍이 생각한다.[56] 말심이 친정시녀로 보이지만 친정에서 함께 온 것은 상선이다. 보친왕부에 들어갈때 함께 왔고 말심은 희월의 수석시녀로 보친왕부에서 맞은 나인이다.[57] 그러니 희월이 죽기 직전 말심에게 내무부의 좋은자리로 보내주겠다고 한 것. 친정시녀라면 희월이 죽고 고가부로 돌아가면 되지만 말심은 궁인으로 선발되어 들어왔기에 희월 마음대로 자신의 친정으로 보낼 수 없다.[58] 옥연은 정숙이 끌려갔다는 걸 듣고나서부터 만삭인 상태에서 약조차 제대로 못 먹고 건강도 챙기지 못할 정도로 멘붕에 빠졌고, 결국 고문을 받아 처참한 꼴로 나타난 정숙과 간신히 재회했을 때 서로 부둥켜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고향에서부터 함께 먼 타국으로 끌려와 고된 생활을 함께했기에, 옥연과의 정은 다른 후궁과 시녀들보다도 끈끈했을 것이다.[59] 대다수의 충복들이 그러하듯 정숙도 옥연의 소식을 듣고 자결했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