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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41:52

연희공략: 금지옥엽


연희공략: 금지옥엽 (2019)
金枝玉叶, Yanxi Palace: Princess Adventures
파일:연희공략금지옥엽포스터.jpg

1. 개요2. 등장인물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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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9년 12월 31일에 공개된 연희공략의 외전이다. 본편의 주인공들인 건륭제위영락의 딸인 소화공주와 희탑랍 이청의 아들 부찰 복강안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위영락의 딸인 소화공주(왕학윤 분)가 중심이고, 그의 약혼자인 초용 친왕 납왕다이제와, 어머니의 복수를 도모하고 있는 부찰 복강안이 삼각관계를 이룬다. 45분 기준 총 6부작이다. 극중 위영락은 이미 영황귀비가 되어 복식이나 장신구, 화장이 본편에 비해 조금 더 화려해졌다. 본편을 재밌게 본 시청자라면 충분히 즐길만한 스토리이다.

금지옥엽 시점은 연희공략 본편의 마지막에서 5년이 흐른 후인 건륭 35년(1770년)이다. 나랍 황후가 유폐된 후 1년이 지나 죽었고, 그 후 4년 동안 그의 처소인 승건궁은 방치되어 폐허가 되었다는 언급이 나오기 때문. 참고로 실제 역사에서는 이 해에 홍주가 병으로 죽었다.[1]

2. 등장인물

파일:금지옥엽 소화공주.jpg
파일:연희공략 사완.webp
파일:연희공략 납왕다이제.webp
파일:연희공략 복강안.webp
* 부찰 복강안 (왕일철 王一哲) - 부찰가의 작은 도련님이자 희탑랍 이청의 아들. 첫등장부터 과감하게 소화공주의 뺨에 뽀뽀를 한다(!) 다른 사람들이 공주를 악랄하다고 욕하며 거절하지만 자신만큼은 공주를 견뎌낼 수 있다며 어필. 진중하고 무뚝뚝하던 부항, 악랄하던 이청과 달리 능글맞고 여유로운 성격을 지닌 것 처럼 보인다. 여담으로 본편의 원춘망과 희탑랍 이청을 많이 떠오르게 하는 인물이다. 앞에서는 좋은 사람인 척 연기하고 뒤에서는 음흉한 계략을 꾸미며 주인공을 음해하는 것이 판박이. 심지어 소화를 궁지로 몰고가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위영락에게 복수하기 위함이라는 점이 똑같다. 사실 숙부인 부찰 부겸[12]에게 어머니 이청이 위영락에게 살해당한 복수를 해야 한다며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 복수의 일환으로 영락의 딸 소화공주를 유혹했지만, 이에 영락도 가만있지 않고 복강안 앞에 부겸을 끌고와 희탑랍 이청의 악행[13]과 출생의 비밀을[14] 폭로하자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부찰 부항의 자식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던 복강안은 이 사실에 절망해 친부인 부겸에게 분노를 토하며 그와 절연하고, 이청과 달리 죄가 없는 소화공주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스스로 참회하고 죄를 청하며 물러난다. 마지막화에서는 소화에게 납왕다이제와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애원해보지만 끝내 납왕다이제와 혼인하는 소화공주의 행렬을 홀로 쓸쓸하게 내려다본다. 이러한 복수귀스러운 면모 때문에 원춘망 아들이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다. 다만 마지막까지 자신이 저지른 죄를 뉘우치지 않던 원춘망과는 달리, 복강안은 애꿎은 소화에게 복수하려 한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하며 뉘우쳤다는 게 차이점. 실제 역사에서의 복강안은 건륭제의 총애를 받았음에도 부마가 되지 못한다.[15] 이런 사실은 복강안이 부찰 부항의 아들이 아니라 건륭제의 아들이 아니냐는 후세 역덕들의 떡밥이 되고 있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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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색본에서는 실제 역사까지 반영하여, 독주를 마신 홍주가 바로 안 죽고 5년 동안 앓다가 죽었다고 각색하였다. 이때 영락은 홍주의 부고를 듣자마자 젊은 날에 홍주가 언니 영녕의 죽음을 무마하기 위해, 영락에게 선심 쓰듯이 내던진 금자와 같은 액수의 금자를 부조금으로 내어 홍주의 마지막 가는 길을 조롱했다고 한다. 쓰지도 못할 돈 받는 기분이 어떠느냐고.[2] 본편에서 영락은 순빈 뉴호록 침벽이 죽은 태후의 친딸인 화안공주가 환생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태후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을 갚기 위해 소화를 낳자마자 태후궁으로 보냈다고 언급한다. 태후가 "누가 감히 수강궁의 공주를 혼낼 수 있느냐!" 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예뻐했다고.[3] 화가 났을 때 불 같이 분출하며 이런저런 물건들[20]을 집어던지려는 면모는 아버지인 건륭에게서, 자신을 괴롭히려는 이들을 역이용하여 꼼짝 못하게 만드는 건 어머니인 영락에게서 물려받았다.[4] 당시 아프던 5황자(유비의 아들인 영기, 위영락의 양자)를 위해 영화전에서 기도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사완의 말을 듣고 영화전에 갔다가, 혼자 있던 소화를 원춘망이 납치해서 겨우 11살짜리 여자아이를 영항(똥통)에 가두는 악독한 짓을 저질렀다. 결국 이 일로 인해 건륭제는 원춘망을 죽였다고 한다.[5] 일종의 해리성 인격장애.[6] 성이 나오진 않지만 파림 보국공과 혼인한 홍주의 딸이 어머니라고 명백하게 나오므로 파림씨이다.[7] 사완은 소화와 자매처럼 자랐다고는 하는데 사실 촌수로 따지자면, 사완의 어머니와 소화가 사촌 자매이니 사완이 소화의 오촌 조카가 된다. 소화도 이를 지적하면서 사완에게 "우리가 자매 사이와 같다고? 너 참 후안무치하다."라고 깔 정도였다.[8] 실제 역사대로라면 금지옥엽은 사완의 외할아버지 홍주가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기도 하다. 사완이 그렇게 소화를 못 괴롭혀 안달인 이유도 제딴엔 외할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고, 홍주를 몰락시킨 원수 위영락의 딸인 소화를 대신 타겟으로 삼은 것일지도 모른다.[9] 정작 그때의 사완은 소화가 미쳐버리기만 바랐고, 소화가 제정신을 찾자마자 실망했다고 한다.[10] 납왕다이제는 몽골 이름의 만주어 발음을 다시 한자로 옮긴 것으로, 실제 이름은 라반도르지 (Lavan Dorji)라고 한다.[11] 당시 몽골은 청나라의 번국이었다. 그러니까 원나라시기의 원-고려 관계와 비슷하게 몽골 각 부족의 왕들은 청나라 황실의 공주와 결혼했고, 몽골의 공주들도 청나라 황실의 후궁이나, 황후가 되었다. 선통제 푸이의 비인 완룽이 바로 당시 몽골족으로 간주된 다우르족 출신이었다.[12] 부찰 용음부찰 부항의 이복남동생.[13] 부찰 부항과 혼인했음에도 건륭제와 동침해 임신을 하고 그 사실을 황후이자 이청의 시누이였던 부찰 용음에게 일부러 폭로한 것. 결국 자식의 죽음과 올케인 이청의 배신에 절망한 용음은 자살한다.[14] 복강안은 부항도, 황제의 자식도 아닌 부찰 부겸의 아들이었다. 희탑랍 이청이 시동생인 부겸과 불륜을 저질러 복강안을 낳은 것. 부겸이 이상할 정도로 이청의 복수에 열을 올린 것도 이런 관계 때문이였다.[15] 복강안의 형제누이들은 죄다 건륭제의 아들딸들 내지 방계 황족과 결혼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렇게 집안 사람들이 청나라 황실과 거듭된 혼사를 맺었는데 정작 부찰 부항의 자녀들 중에서 건륭제의 총애와 신임을 가장 많이 받은 복강안만 부마가 되지 못하자, 그가 건륭제의 사생아여서 마찬가지로 건륭제의 딸들인 공주들과는 배다른 남매가 되기 때문에 결혼시킬 수 없어서 그런 거라는 야사도 있다.[16] 소화를 음해하기 위한 사완의 자작극이었다.[17] 물론 넷플릭스를 완전히 막지는 않고 VPN으로는 볼 수 있고 어둠의 경로로 중국에서도 볼 사람은 다봤다.[18] 검열을 의식했는지 나중에 소화가 진짜 미친 게 아니라 미친척했다고 변명하는 장면이 나왔다.[19] 납왕다이제는 몽골왕인데 몽골군은 청나라가 군사행동을 벌일 때 항상 선봉에 섰다. 납왕다이제의 개인 무용도 출중하여 훗날 암살자로부터 처남 가경제를 구할 정도. 복강안은 10대에는 황궁 시위를 하다가 이후 장수로 승진하여 계속 전선에 나가있었고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할 정도로 이름난 무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