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 ||
가해자 | ||
소년 A (당시 18세, 징역 20년) | 소년 B (당시 17세, 징역 10년) | 소년 C (당시 15~16세, 징역 5년) |
소년 D (당시 16~17세, 징역 5년) | 소년 E (당시 17세) | 소년 F (당시 15세) |
피해자 | ||
후루타 준코 (당시 17세) | ||
관련 기관·장소 | ||
사이타마현 미사토시 · 도쿄도 아다치구 · 도쿄도 고토구 · 일본 경찰 |
<colbgcolor=#171B1C,#000><colcolor=#eeeeee,#dddddd> 오구라 유즈루 小倉譲 | Ogura Yuzuru | |
본명 | 오구라 유즈루 (小倉 譲) (개명 전) 카미사쿠 조 (神作 譲) (개명 후) |
출생 | 1971년 5월 11일 ([age(1971-05-11)]세) |
도쿄도 아다치구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사립고등학교 (퇴학) |
소속 | 극청회 (부두목) |
가족 | 아버지(1946년생), 어머니(1945년생), 누나(1968년생) |
신체 | 193cm[1] |
1. 개요
일본의 범죄자. 극청회의 부두목이자 피해자를 가장 집요하게 괴롭힌 인물.[2]193cm의 큰 키[3], 건장한 체격, 흉측한 외모, 들끓는 듯한 굉음과 저음의 목소리가 특징이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왼손의 손가락이 6개였고, 매우 심한 액취증이 있었다고 한다.
주범 격인 미야노 히로시와 비교해도 죄질이 전혀 꿇리지 않는다. 물론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들의 죄질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지만 그가 범행 과정에서 보인 치밀함[4], 잔혹함[5] 등을 보았을 때 크게 밀리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2. 성장 과정
2.1. 초등학교 입학 전
1971년 5월 11일, 도쿄도 아다치구에서 지방 검찰 고위 간부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3살 위의 누나가 한 명 있었다.2.2. 초등학교
1980년, 유즈루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서로 사이가 나빴던 유즈루의 부모는 별거하게 된다. 별거 중이던 아버지는 외도를 하였으며 2명의 아이까지 생겼다.아버지는 외도 생활을 계속하기로 선택하여 유즈루의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유즈루는 누나와 함께 어머니의 밑에서 자라게 된다.
어머니는 혼자 육아를 했고, 밤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밤에 어떤 짓을 하던 주의를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환경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유즈루는 매일 성실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1981년,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유즈루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문제행동을 일으키곤 했다.
이 해 8월 즈음에는 아버지와 동거하기도 하였으나, 10월 경부터 다시 어머니 곁으로 돌아갔다.
2.3. 중학교
1984년 4월, 아다치구립 히가시야세 중학교에 입학했다.스포츠와 같이 몸 쓰는 일에 재능이 있었던 유즈루는 육상부에 들어가게 된다.[6]
1985년 1월, 스키를 타다가 오른쪽 다리가 복잡골절되었고, 이로 인해 더 이상 활약하지 못하게 되며 육상부에서 탈퇴한다.
같은 해, 집으로 여자친구를 데려갔었다. 이때 그의 어머니는 유즈루의 여자친구에게 "걸레 같은 계집"이라고 말하였고, 이를 계기로 유즈루는 어머니를 심하게 폭행하기 시작했다.
폭행의 강도가 너무나도 격렬했던 탓에 그의 어머니는 가정 재판소에 여러 번 상담하기도 하였다.[7]
1987년 3월,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2.4. 고등학교
1987년 4월, 도내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학업에 의욕이 없어 거의 등교하지 않았다.1987년 11월, 결국 고등학교에서 제적을 당하였다.
1988년 4월, 도립의 정시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등교하는 것에 의욕을 잃어, 장기 결석을 하게 된다.
1988년 6월, 어머니에 대한 가정폭력으로 인해 입학 2개월 만에 퇴학을 당한다.
2.5. 퇴학 이후
1988년 7월, 오토바이를 무면허로 운전하는 비행을 저질렀다.1988년 10월, 교통 단기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3. 출소 후
1999년 출소한 뒤 이름을 개명했다.2001~2002년, 컴퓨터 관련 업체에 채용되어 파견 사원으로서 근무하였다.[8][9]
중국인 여성과 결혼 후 일본에선 살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중국으로 건너가려 했으나 이혼하게 되며 실패했다. 사실 당시 그 중국인 여성의 부모가 그의 실체를 알고 결혼을 결사반대했는데 중국 공항까지 흉기를 들고 쫓아가서 그녀의 부모를 위협하는 난동을 일으켜 중국 경찰에 체포를 당하기도 했다. 이들의 범죄가 해외까지도 알려진 셈이다. 하지만 별다른 조치나 처벌은 취해지지 않은 모양.
2004년 6월 4일, 아다치구에서 자신의 여자를 가로챘다는 이유[10]로 이소노 타카토시라는 사람을 트렁크에 태워 납치하여 어머니의 스낵바에 감금한 뒤 폭행하는 감금 치상 사건을 일으켜 전치 10일의 부상을 입히고 체포되었다.
그러나 재판장은 출소 후 컴퓨터 관련 업체에서 파견 사원으로 일하는 등 일정한 갱생 노력이 보인다며 징역 4년을 선고하였다. 이 감금 치상 사건 이후, 미디어의 취재에 대해 유즈루의 아버지는 유즈루가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피해자 이소노에 따르면 유즈루는 딱 봐도 180cm는 넘어 보이는 키에 건장한 체격이었으며 첫눈에 그런 부류의 인간 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인상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유즈루는 이소노의 집에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고, 새벽에 다짜고짜 들어와서 냉장고를 뒤지고 술을 꺼내 그 자리에서 동료들과 밤새도록 술판을 벌인다거나 여자 이야기나 온갖 음담패설을 내내 늘어놓으면서 과거 이력을 자랑하고 "지갑이 사라졌다"면서 새벽에 찾아와 집안을 뒤집어엎은 적도 있다고 한다.
재판 당시 이소노가 그를 마주하는 게 두렵다며 재판 참석을 거부한 탓에 칸막이를 두고 재판을 진행했다. 이때도 그는 협박도 감금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감금이 아니라 이소노와 가게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성이 스스로 트렁크에 들어갔다." 등 전혀 신빙성 없는 발언들을 하면서도 너무나 여유로워 보였다고 한다.
피해자는 감금되어 있는 동안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에 그저 영문도 모른 채 용서를 빌어야 했고 살아 있는 게 아닐 만큼 지독하게 오싹했다고 한다. 피해자는 뺨에 손바닥만 한 멍이 시커멓게 들었고 턱뼈와 앞니가 부서져 피가 철철 쏟아지는 동안에도 계속 맞았다고 한다.
사건 당시 그는 금고 앞에 서서 야쿠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금속 배트와 칼로 피해자를 위협하면서 "사람을 1명 죽이는 놈과 10명 죽이는 놈은 다를 게 없다. 나는 사람을 마음대로 구워삶는 여유를 배웠다. 검찰은 나의 노리개니 무슨 짓을 벌려도 풀려날 것이다.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게 해 줄까. 야쿠자를 우습게 알면 어떻게 되는가를 똑똑히 알려준다."라고 협박했으며 평소 이 사건에 대해 "그때 후배들을 끌어들인 것도 나고, 내가 진짜 주범이다.''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정말 그가 주범이라면 정작 진범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나 다름없다.[11][12]
사실 재판 당시에도 히로시는 "나는 준코의 온몸에서 고름과 진물이 쏟아져 나와 더러워진 이후에는 미나토 신지의 집에 잘 오지 않았고 바깥에서 다른 여자를 납치하거나 강간했다."라고 진술했다.[13][14]
그러나 유즈루와 신지 등은 이 시기에도 준코를 지독하게 괴롭혔다."라고 밝히긴 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는 히로시에게 대항할 수 없었기에 따른 것뿐, 우리도 피해자다."라는 망언을 지껄였고 심지어 이게 받아들여진 건지 지나치게 가벼운 형량을 받았다. 애초에 가해자들 중 자기 죄질에 상응하는 형량을 받은 놈은 없지만 말이다.
2004년에 4년형을 선고받았으니 출소한지 20년이 다 되어갈 텐데도 근황에 대해 전혀 알려진 게 없다. 두 번이나 감옥에 다녀왔으니 어지간하면 밖에 나오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겠지만 다른 가해자들처럼 죽을 때까지 평생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은 변함없을 것이다.
특히 유즈루의 부모는 위자료 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택과 고급 차를 구입하거나 준코의 묘지를 파손하는 등 전형적인 막장부모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은 더더욱 나쁘다.
세상으로부터 숨어서 살아가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의해 정신이 이상해진 탓일지는 모르지만 결국 자업자득이기 때문에, 동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4. 기타
- 중학교 시절 지인은 그가 폭주족 선배인 고등학생 2명과 싸움이 붙었다고 했는데 "얻어맞으면서도 싸움을 멈출 줄 몰랐다"라고 할 정도로 호전적이고 집요했으며 폭력적이어서 어디를 가나 싸움을 일으키고 다녔다고 한다.
- 그의 지인 및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중학생 시절에 손가락으로 튀어나온 못을 박아 넣거나 차량 앞 유리나 두꺼운 나무판을 주먹으로 단 한 번에 파손시키거나 알루미늄 캔을 한 손으로 찌그러뜨릴 정도로 강골인 인간흉기였다고 한다.[15][16]
- 엄청난 맷집과 괴력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와 싸운 상대들은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하고 몸이 단련되었더라도 내 주먹이나 발길질 한 방에 기절하고 뼈가 부서졌다."라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 그는 이 사건 당시에도 피해자를 1달가량 하루 18시간 이상 겁탈할 정도로 체력이 비정상적으로 강했다.
- 이 범행을 저지를 무렵에도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학생을 쫓아가 덮친다든가, 치마와 속옷을 벗기는 등의 성추행을 해서 보호관찰 대상이 된 적이 있다고 한다.
- 공판 당시에는 "그래도 놀아줬으면 된 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유족 앞에서 낄낄거리며 웃기까지 했다.
- 성인이 된 후에도 한낮에도 "캬", "우우우" 하는 괴성을 지르고 어머니에겐 "맞기 싫으면 내 앞에 있지 말라"라고 했다고 한다.
- 그의 현재 사진으로 알려진 창문을 닦고 있는 사진은 본인이 아니며 단지 개명 전의 이름인 '오구라 유즈루'의 동명이인이다. 앞서 말했듯 진범은 카미사쿠 조로 개명했으며 해당 사진을 보면 왼손의 손가락이 정상적으로 5개이기 때문에 그의 사진이 마치 범인인 것처럼 와전되는 바람에 동명이인인 당사자는 곤혹을 치렀다고 한다.
- "여자(후루타 준코)를 삭발시키고 떼거지로 폭행하고 강간하면서 비디오를 찍었는데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턱관절을 탈구시켰고, 팔을 분지르면 까무러쳤다. 그땐 너무나 즐거웠다. 하루는 돌아왔는데 몸에 불을 질러도 미동도 없길래, 코에 담배 연기를 피우고 숨을 쉬지 않는 걸 알았다."라고 말하면서 웃음을 섞어 가며 자랑했다고 한다.
[1]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딜 가나 엄청난 장신이다. 가장 키가 큰 나라인 네덜란드의 남성 평균 키보다도 10cm가량 더 크다.[2] 사실 오구라 유즈루는 감금 도중 준코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를 짝사랑했다. 하지만 1988년 12월 7일, 준코가 몰래 경찰에 신고전화를 하려다가 히로시에게 들켜버렸고, 이로 인해 오구라 유즈루를 비롯한 히로시의 부하들은 화가 난 히로시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크게 혼이 났다. 이때부터 그녀를 좋아하던 유즈루의 마음은 증오심으로 바뀌었고 그 누구보다도 준코를 집요하고 잔인하게 괴롭혔다.[3] 범행 당시 180cm대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성인이 되어 출소 후 193cm까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4] 준코를 돌려보내자는 히로시에게 "신고할 수 있으니 위험하다."라고 말하고, 준코가 담긴 드럼통에 그녀가 좋아했던 드라마 비디오와 꽃다발을 넣으려는 히로시에게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으니 위험하다."라고 말하는 등...[5] 유즈루는 준코가 탈출에 실패한 뒤부터 히로시보다 더 집요하게 그녀를 괴롭혔다. 자세한 내용은 12월 7일 문단 참고. 실제로 히로시는 "나는 준코의 상태가 극히 심각해진 뒤로는 신지의 집에 거의 오지 않고 밖에서 다른 여자들을 납치, 강간하고 다녔다."라고 밝혔다.[6] 초등학생 때는 야구부에서 활동했다.[7] 그러나 유즈루의 어머니는 사건 발생 이후, 준코의 무덤을 훼손하였고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8] 형무소에 있을 때 컴퓨터에 대하여 배웠다고 한다.[9] 이곳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유즈루는 출소 후에도 깡패처럼 살았고 실제 야쿠자 사무실에도 드나들었다고 한다.[10] 사실은 자신의 애인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었다.[11] 아버지가 검찰 고위 간부인 점을 생각하면 그 빽을 이용해서 중형을 피했을 가능성도 있다.[12] 하지만 그가 진짜 주범이라면 '어떻게 미야노 히로시가 주범 격으로 기소됐다는 건가'라는 의문이 생긴다.[13] 사건이 진행 중이던 12월경 미야노 히로시가 "납치한 지 1달은 된 거 같은데, 온몸이 피투성이에 피고름 때문에 썩은 냄새가 나서 먹을 수도 없게 됐으니 그만 돌려보내자"고 말했다. 하지만 "신고할 수 있으니 위험하다"라며 미야노 히로시를 말린 오구라 유즈루 때문에 준코는 집에 갈 수 없게 되었다.[14] 피해자가 납치되기 17일 전 11월 8일에 19세 여성을 히로시 패거리와 함께 납치했는데 이때 그가 "소년원에서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오오아라이에 가자", "오오아라이의 파도가 높고 거칠다"라고 말하면서 으름장을 놔 도망 의지를 상실케 한 뒤 패거리들이 매우 난폭하고 거칠게 집단 강간을 했고 금품을 빼앗은 뒤 나체가 된 여성을 버려두고 도망쳤다고 한다. 이때 피해 여성이 영구장애를 입었다는 말도 있다. 여러모로 그들이 얼마나 악질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준코가 죽고 난 뒤 히로시가 3월 29일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조사받았던 사건이 이 사건이다.[15] 다만 인간의 손뼈는 매우 섬세하고 약해 평생 복싱으로 주먹을 단련해 온 마이크 타이슨도 맨손으로 사람을 패다가 주먹이 골절될 정도다. 고속 주행 중 노후 트럭에서 떨어지는 판 스프링도 뚫지 못할 정도로 튼튼한 앞 유리를 맨손으로 파손시킨다는 것은 과장일 확률이 높다. 아니면 손이 다치니까 시도를 안 할 뿐이거나.[16] 차량의 앞 유리는 아치형인 데다 옆 유리와 두께, 강도 측면에서 비교가 안 되게 두껍고 단단해서 망치로도 깨기 어렵고 중량급의 격투기 선수들조차 맨주먹으로는 깰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배우 조정석 역시 운동을 잘하고 탄탄한 몸매를 가졌음에도 영화 뺑반 촬영 당시 차량 앞 유리를 골프채로 손쉽게 깨는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20대가량 가격해야 균열이 생기면서 파손됐다고 한다. 반면 차량 옆 유리는 창문 유리나 얇은 나무판, 기껏해야 타조알 정도라서 건장한 성인 남자라면 일격에 파손되며 중학생이나 여자라고 해도 몇 대 치면 부서진다. 다만 강도 자체는 약해도 날카로운 유리조각으로 인한 부상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