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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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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3. 교리와 역사4. 현황5. 분파6. 대중 문화에서의 오리엔트 정교회7. 한국의 오리엔트 정교회8. 관련 문서

1. 개요

오리엔트 정교회는 칼케돈 공의회에서 결의된 교리를 거부하는 그리스도교의 일파이다.

2. 명칭

동양 정교회, 중동 정교회 또는 동방 독립교회라고도 부른다.

이에 속하는 교회로는 콥트 정교회 ·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 시리아 정교회 ·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등을 들 수 있다. 주로 서아시아이집트, 에티오피아에 분포한다.

'동방 정교회'로 불리는 칼케돈파 정교회와는 다르다.

오리엔트 정교회를 흔히 '단성론파', '단성론자'라 부르나, 단성론이라는 말 자체가 이들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칼케돈파 측의 입장에 가깝기 때문에 이러하게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떠한 표현 방식이던 이들 역시 그리스도의 신성뿐만 아니라 인성도 인정하기 때문에 단성론이라는 낙인 자체를 싫어한다. 그 자세한 내용은 후술. 따라서 이들은 스스로를 비칼케돈파 교회나 합성론파로 부르며 이러한 표현이 더욱 중립적이다.

간혹 '오리엔탈' 정교회라 표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영어의 형용사+명사를 그대로 번역한 표기 오류다. '비잔틴 제국', '발틱 해'와 비슷한 오류.[1]

3. 교리와 역사

흔히 단성론 교파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들 교파의 그리스도론은 단성론(Monophysitism)이 아닌 합성론(Miaphysitism)이다. 단성론은 예수에게 인성이 신성에 흡수되었다고 보는 것이고, 합성론은 쉽게 말하면 신성과 인성이 합쳐졌다고 보는 것이다.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이들을 단성론자라 부르는 것은 이들에게 모욕이 될 수도 있을 뿐더러 신학적으로도 잘못된 명칭이다.[2]

431년 3차 세계 공의회인 에페소 공의회에서 결의된 교리까지만 인정하며, 4차 세계 공의회인 칼케돈 공의회부터 결의된 교리를 거부한다. 즉 이들은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결의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한 위격 안에서 나누이지도 섞이지도 않으면서 서로 간의 속성을 공유한다.'는 교리를 거부하였다. 대신에 이들은 '강생하신 하나의 본성'이라는 키릴로스의 주장을 그대로 밀고 나가 하나의 본성이 육신을 취해 두 개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는 뭔가 조금 다른 형식의 표현을 하였고, 결국 그로 인해 갈라서게 된 것이다.[3] 이들은 키릴로스의 주장을 극단적으로 해석했던 만큼 키릴로스가 논파한 네스토리우스파와는 구분해야 하며, 실제로 오리엔트 정교회에 속하는 많은 교회들은 비칼케돈파이면서 동시에 네스토리우스의 이성론 역시 이단으로 취급한다.[4]

그러나 공의회를 열었다고 해서 로마 제국의 교회가 통일이 된 것은 아니고, 서로마가 망하고 동로마 제국 시대에 이를 때까지 제국의 동부는 합성론파가 많았다. 동로마의 황제 이라클리오스는 이것을 봉합해 보려고 세르기오스라는 신학자가 주장한 단의론이라는 타협안을 밀어주었다. 초기에는 교황 호노리오 1세도 단의론의 수용을 검토하는 등 잘 나가나 싶었는데, 결국 칼케돈파의 반발로 인해 무산되었다. 그 후 이들 지역이 이슬람 제국에 넘어가면서 칼케돈파와 비칼케돈파는 단절되고 말았다. 이슬람의 발흥 때는 정통파와 하도 사이가 나빠서 자진해서 항복했었다.

자진해서 이슬람에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로마 제국이 알렉산드리아를 잠시 탈환했을 때는 처음에는 환영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동로마군의 행패가 심해서 민심이 완전히 동로마에서 떠나갔고 이후 이슬람 해군에 대거 입대해 동로마 해군을 격파하기도 했다. 이슬람 지배 초창기 당시에는 아직 이슬람에서 그리스도교, 유대교와 체계적으로 구분, 차별하는 샤리아를 확립하기 전이었고[5], 어느정도 우대를 받았으나 시대가 지나고 샤리아가 개악되면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차별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처음엔 십자군을 해방자로 보았으나 이슬람 통치 때나 마찬가지로 탄압받았기 때문에[6] 십자군을 증오하게 되었고 가톨릭과도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 당시 남아있던 유일한 독립국 에티오피아를 비롯해서 많은 오리엔트 정교회 신도들이 투르코폴레스라는 현지인 보조부대로 참전하여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으나, 이들은 유럽계 십자군에 비해 열등한 2등 시민 취급을 받았으며 이슬람 측에서도 투르코폴레스 포로들을 현지인 배신자라며 더 가혹하게 다루었다. 하틴 전투에서 승리한 살라딘이 투르코폴 포로들을 남김 없이 즉각 처형을 명령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십자군은 중근동의 오리엔트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황수위권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는데, 당시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이후 오스만 제국 시대가 되면서 아랍계 그리스도인 인구가 계속 감소하자 오리엔트 정교회의 고유 전통을 보존하되 교황수위권을 인정하여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렇게 교황수위권을 인정해 갈라져 나온 교파는 동방 가톨릭의 일파로 분류되며 오리엔트 정교회로는 분류되지 않는다.

현대 교회일치운동 시대에 들어와서 칼케돈파 교회(가톨릭교회, 정교회, 개신교)와 신학적 대화가 활발히 이루어져 칼케돈파-비칼케돈파 교회들 사이에서 많은 분야의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합성론이나 칼케돈파나 예수에게 인성과 신성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신학적 교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사 교류가 이뤄지지는 않고 있으며, 일부가 동방 정교회나 로마 가톨릭교회로 귀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와 에티오피아는 로마보다도 앞서 각각 세계 최초, 세계 두 번째로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았고, 역사적으로 이슬람 세력, 현대에 와서는 소련 같은 공산 독재나 무솔리니 시절 파쇼 독재에 맞서 민족의 구심적이었다는 강력한 민족주의적 명분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으로 해당 나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다음은 가톨릭과 콥트 정교의 공동 발표인데, 이를 보면 이들의 주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사도들의 전승에 입각해서, 그리고 처음 세 개의 보편공의회에 준해서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육화하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고백한다. 그는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며 하느님의 말씀이요 성부의 영광의 광채시며 성부 본질의 모상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참된 육신과 이성과 영혼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시고 죄 없이 우리와 같은 인성을 나누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주님이시며 하느님, 구세주, 우리 모두의 왕으로서 신성으로 말하자면 완전한 하느님이시고 인성으로 치자면 완전한 인간이시다. 그분 안에서 그의 신성은 그의 인성과 실제로 완전한 방법으로 섞임 없이, 혼합 없이, 혼동 없이, 바뀜 없이, 갈림 없이, 나뉨 없이 결합한다. 그분의 신성은 인성으로부터 단 1초도, 찰나의 순간에도 분리되지 않는다. 영원하시고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께서 눈으로 볼 수 있게 육신을 갖추시고 종의 형상을 취하셨다. 그분 안에서 신성의 모든 전유물과 인성의 모든 전유물이 하나의 참되고 완전하고 불가분한 결합 안에서 온전히 보존된다.
-1973년 교황 바오로 6세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셰누다 3세Shenouda III가 공동 서명한 "공동 교서"(dichiarazione comune).[7]
우리는 하느님이시며 우리 인간의 구세주이시고, 육화한 말씀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에 대해서도 완전한 하느님이시고 인성에 대해서도 완전한 인간이심을 고백한다. 그분은 자신의 인성을 신성 안에서 섞임 없이, 혼동 없이 하나로 만든다. 그분의 신성은 자신의 인성과 단 1초도, 찰나의 순간에도 분리되지 않는다.
동시에 우리는 네스토리우스와 에우티케스의 주장을 단죄한다.
-1988년 2월 12일. 대화촉진위원회 공동정식.[8]

4. 현황

이들 교회의 본고장은 아르메니아에티오피아를 제외하면 이슬람교가 거의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였기 때문에 사회에서 종교적 소수자로 통한다. 소수가 된 이슬람권 오리엔트 정교회들은 차별이나 여러 모로 어렵게 지내지만,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의 접근을 더 싫어한다. 현대와서 독립 국가의 국민 교회로 자리 잡은 아르메니아나 에티오피아도 주변의 무슬림 침략자들에게 맞서 신앙을 지키고 민족이 만들어졌다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종파의 사회적 영향력을 경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르메니아를 보자면 밀레트 제도라 하여 종파를 중심으로 아예 공동체를 규정하여 다스리던 오스만 제국 시절, 그리스인, 불가리아인, 세르비아인, 루마니아인 이런 거 없이 다 이란 명칭으로 코스탄티니예, 셀라니크 일대의 부유한 그리스어화자 엘리트들이 나머지 넒디 넒은 제국의 다양한 정교회 공동체 위에 군림했던 반면, 오스만 조정 측에서도 역사적으로 종파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었던 아르메니아는 고유한 밀레트로 자치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런 자치권을 기반으로 20세기 초반 아주 끔직한 제노사이드 이전에는 나름 제국 내 경제적 엘리트로서 아르메니아 공동체와 문화가 발전했기 때문에 종파가 당장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

무슬림 세력들과 역사적으로 경쟁해온 거나, 근현대사에서 무솔리니 시절 파시스트 식민 당국이 수도자들 학살하고 다녔던 역사가 있는 에티오피아도 비슷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전반적으로 이러한 역사적 경험 때문에 각국의 교회가 민족 종교로서 강한 성격을 띤다는 건 정교회권과도 공유하는 성질이다.[9]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이들은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개신교 계열 선교사들은 아랍권의 그리스도교 형제 종파라고 괜히 기대를 하고 왔다가 그들의 경멸어린 눈빛과 대접에 실망하기 일쑤이며, 개중 원리주의 개신교 선교사들은 이들이 이단이라서 이슬람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개신교로 개종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오리엔트 정교회 신자들은 온갖 탄압과 차별이란 배경 속에서 굳건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에[10] 개종시키기가 무척 어렵다고 한다. 대다수 오리엔트 정교회에선 온갖 수난을 다 겪었음에도 굳건히 살아있는 기나긴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들에게 전도하고 개종시키려 하던 서방권에 대해서 거부감을 드러낸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들이 아람어 같은 고대 그리스도교 유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미국 등지의 개신교 선교사들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참고로 소수 정교회 인구가 있는 나라에선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의 출입국 금지를 정교회 측 역시 찬성하고 있으며,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가 다수인 아르메니아에서도 정교회와 이슬람을 제외한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 선교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을 정도로 외부 그리스도교 종파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이슬람권의 차별을 견디지 못해서 미국 같은 곳으로 이주하는 콥트교도들 역시 존재하는데 이들 일부는 자유로운 미국에서 이슬람에 대해 극단적인 증오를 드러내고 있고[11][12], 이들에 의해 무슬림의 순진함이라는 반 이슬람 동영상이 제작된 걸로 보인다. 그로 인해 중동은 반미 바람으로 불바다가 된 상황이다. 게다가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제작자가 유대인이라고 거짓말까지 한 것으로 보여 이 사실이 아랍권에 전해지면서 콥트 정교회 신자들은 더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5. 분파

오리엔트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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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전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서시리아 전례 시리아 정교회 ·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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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위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에서 독립한 에리트레아에리트레아 테와히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에 속하되 남인도 말라얄람어를 사용하는 케랄라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 등이 오리엔트 정교회에 속한다.

이 교회들은 모두 완벽한 성사 교류와 교회 일치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지체(Communion)를 이루고 있어, 동방 정교회와 거의 비슷한 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론'을 위시로 신앙의 일치를 이룬 네 개의 교회는 서로 간의 활발한 교류가 벌어지고 있으며 교회 수장 착좌식에 서로 대표단을 파견하여 주교 서품식 때 참석하기도 한다.

6. 대중 문화에서의 오리엔트 정교회

정교회가 대중문화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것처럼 오리엔트 정교회 역시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한다. 또한, 단성론이라는 오해로부터 비롯된 용어가 오용되는 탓에 등장하더라도 단성론파 교회라는 옳지 못한 이름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7. 한국의 오리엔트 정교회

한국에 진출한 오리엔트 정교회는 콥트 정교회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가 존재한다. 콥트 정교회는 서울에 위치하며,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광명에 위치해 있다.

8. 관련 문서



[1] 각각 비잔티움 제국, 발트 해가 옳은 표현이다.[2] 출처: 박찬희, 《박찬희 교수가 쉽게 쓴 동방정교회 이야기》, 서울, 신앙과 지성사, 2015.[3] 신성과 인성은 공존한다는 큰 틀에서는 일치하지만, 이것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용어들의 사소한 해석 문제를 가지고 키보드 배틀이 벌어진 것. 실제로는 시리아+이집트와 그리스+아나톨리아 사이의 지역 감정 싸움에 가까웠다.[4] 네스토리우스파에 대한 옹호론도 있는데, 에페소 공의회는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하던 안티오키아의 주교단은 물론이고 교황의 대표단도 참석하지 않은 공의회였고, 파면된 네스토리우스를 교황이 스카웃하고자 했으며, 칼케돈 신경의 그리스도론은 키릴루스보다는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만 네스토리우스가 칼케돈 공의회 전에 사망했고 키릴루스파는 자신들의 주장이 밀려도 어떻게든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찍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게 비판의 요점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책 참조. 크리스토프 바우머, 안경덕 옮김, "실크로드 기독교 동방교회의 역사", 서울, 일조각, 2016. 그러나 여기에 대해 반박을 하자면, 칼케돈 신경이 네스토리우스파에 가깝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에게 2개의 πρόσωπον(프로소폰)이 있다고 주장했고, 칼체돈 신경은 하나의 πρόσωπον(프로소폰)과 2개의 φύσις(퓌시스)를 고백했는데 이 둘은 전혀 다르다. 만약 "표현은 다르지만 네스토리우스와 느낌이 비슷한데?"라고 말할 수 있다면, 똑같은 원리로 칼케돈 신경은 오리엔트 정교회의 그리스도론하고도 표현이 다르지만 느낌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칼케돈 공의회는 단성론을 이단으로 선언한 만큼, 에우티케스의 단성론(1을 극단적으로 강조)보다는 네스토리우스파(2를 극단적으로 강조)에 조금 더 타협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애초에 칼케돈 신경이 키릴로스의 생각과 어긋나는지도 의문이고 말이다. 또한 칼케돈 공의회는 교황 레오 1세가 주도하며 이끌었던 공의회로, 레오 1세의 편지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프로소폰을 가지며 2개의 퓌시스를 가진다고 분명하게 언급한 바이기에, 훗날 오리엔트 정교회로 분리될 성직자들의 역을 칼케돈 공의회에서 과장하여 인식하는 것도 옳지 않다.[5] 샤리아는 7세기 말에 제정되기 시작하였다.[6] 약탈과 강간을 자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단이라며 학살당하기까지 했다.[7] 번역 출처: 안젤로 아마토, 《예수 그리스도》,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 김관희 마르첼리노 신부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2014), 522-523쪽[8] 번역 출처: 안젤로 아마토, 《예수 그리스도》, 김관희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2014), 523쪽[9] 물론 스페인아일랜드의 민족주의에서 가톨릭의 위치, 영국성공회의 관계 등을 생각해 보면 굳이 동방 교회만의 성질이라 할 수는 없다.[10] 심지어 상당수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척하고 몰래 오리엔트 정교회 기도를 바치거나 세례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11] 이집트 제1의 이슬람주의 정당 겸 단체 무슬림 형제단의 비공식 강령이 콥트교 박멸인데, 이들이 심한 고생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12] 물론 저러다가 이집트로부터 입국을 영구금지당하기도 하고, 해외 콥트교인들 대다수가 고향과 친족 방문을 꾸준히 하는지라 절대 다수의 목소리는 아니다.[13] 네스토리우스의 교설을 논박한 것이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이며, 이러한 신학적 맥락 안에서 합성론이 탄생하였다. 네스토리우스 파문 이후 동로마 제국의 레반트 및 아프리카 속주에서는 합성론이 대세였다.[14] 여담으로 콥트 보수파 중 극단주의자들의 경우 자신들을 박멸하겠다는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 알누르당과 함께 여성 할례를 옹호하는 황당한 모습도 보인다.[15] 아르메니아 대학살 이전만 하더라도 현대 아르메니아 공화국인 역사적 동부 아르메니아보다 현대 터키의 동부 아나톨리아 지방인 역사적 서부 아르메니아가 인구, 경제력, 공동체 내 위상 등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영향력이 있었고, 이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내에서도 현대의 수장인 에치미아드진 총대주교보다 콘스탄티노폴리스-킬리키아 관구에 유서 깊고 부유한 성당이나 수도원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1차 대전과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겪고 이 지방에서 인구는 물론, 문화 유산 또한 아르메니아가 박멸당해 버리면서 완전 아르메니아 민족의 중심이 현대 동부 아르메니아로 넘어갔다.[16] 세력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말이다.[17] 현재는 가톨릭 교회의 일원이다.[18] 비잔티움 전례 동방 가톨릭 교회이다.[19] 시리아 전례 동방 가톨릭 교회이다.[20] 그나마 1960년대 이전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로마를 제외한 네 총대주교좌에 총대주교를 임명해 오던 것(마론파나 멜키트 교회 등 동방 가톨릭교회 총대주교와는 별개로)을 예루살렘 빼고 다 폐지하면서 줄어든 것이다.[21]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는 콥트 전례의 동방 가톨릭 교회이다.[22] 현재 이스탄불인데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옛 이름을 고집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 또는 콘스탄티노플로 부른다. 물론 아르메니아 혹은 그리스 측에서 이렇게 부르지만 현지에선 이스탄불 주교로 부르는데, 1920년대에 이스탄불 명칭을 쓰지 않으면 추방령을 내린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못해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라는 이름이 된 경우도 있다.[23] 후기 시나리오에서는 헤툼 왕조와 루벤 왕조가 다스리던 킬리키아(小아르메니아) 주변에 있다. 아르메니아 본토는 중반 시나리오 이후로 이슬람 세력이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