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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15:20:30

종교적 소수자

영어 Religious Minority

1. 개요2. 국제법상 지위/역사3. 현황
3.1. 중동3.2. 러시아3.3. 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3.4. 동남아시아3.5. 중국3.6. 대한민국3.7. 북한3.8. 서구권3.9.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3.10. 기타 사례
4. 과거의 종교적 소수자 사례5. 종교적 소수자를 무신론자로 매도하는 사례6. 둘러보기

1. 개요

종족적, 종교적 또는 언어적 소수민족[1]이 존재하는 국가에 있어서는 그러한 소수민족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그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그들 자신의 문화를 향유하고, 그들 자신의 종교를 표명하고 실행하거나 또는 그들 자신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가 부인되지 아니한다.[출처1]

"인종, 종교 및 언어상의 소수자가 거주하고 있는 국가 내에서, 그러한 소수자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같은 특성을 지닌 소수자들과 공동으로 그들의 특유한 문화를 보전하고, 종교 활동을 하며, 공동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를 부정당하지 않는다.[다른번역]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인권규약(1966)[4] 제27조-

"In those States in which ethnic, religious or linguistic minorities exist, Persosn belonging to such minorities shall not be denied the right, in community with the other members of their grouops, to enjoy thier own culture, to profess and practise their own religion or to use their own language."

-Article 27,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ICCPR)-

종교적으로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종교적 소수자에서 소수자(mimority)는 단순히 절대적/상대적 인구수에 의해 정의되기보다는 해당 소수 종교를 신봉함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소외당하거나 핍박받는 등 권리상의 불이익을 받고 있거나 소수종교 공동체의 사멸위기를 겪는[5] 개인 또는 집단을 가리킨다.

대한민국에서 기독교도가 30%(개신교도들이 19%, 천주교도가 7%), 불교도가 대략 15% 정도 되지만 이들을 사회적 소수자라고 보지 않는다. 특히 개신교 신자들은 정치적으로도 좌우를 가리지 않고 분포해 있으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소수 집단이라고 보기 힘들며 불교는 관련 국보보물이 워낙 많을 뿐더러 어지간한 산에는 절이 적어도 한둘은 있는데 다른 종교의 열성 신자가 아닌 이상 등산 갔다가 산 속 절에 들르는 모습은 실제 불교 신자인지와는 별로 상관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정착된 것을 볼 때 한국 불교한국 사회에 대한 영향력은 실제 신자 비율 대비 훨씬 강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반면 이스라엘 무슬림은 총 인구의 17%를 구성하고 있지만 엄연히 종교적, 민족적 이유로 차별받는 '종교적 소수자'로 분류된다.[6]

참고로 이 정의는 특정 종교 내에서 주류 교계와의 교류를 하지 않는 소수 종단이나 특정 종교에서 주류와는 다른 특정한 노선을 따르는 소수파를 지칭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2. 국제법상 지위/역사

소수민족과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박해는 예로부터 존재했다. 특히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종교적 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극단적인 인권침해가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국제조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인종차별을 비롯한 다른 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한 국제적인 보호 제도가 마련된 것과는 달리 종교적 소수자 자체를 다루는 보편적 규약은 실질적으로 부재하다.[7]

각 지역의 종교적 소수자 문제에 관하여 보면 유럽에서는 유럽평의회에서 채택된 소수민족보호 골격협약(FCNM) 등을 통해 인종, 언어 및 종교적 소수자에 대해 구체적인 보호 조약을 마련했지만 이는 유럽에만 국한되어 있다. 유럽 이외 지역,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는 종교적 소수자 보호제도가 매우 취약하다. 근데 거기는 다른 소수자 보호제도도 취약하지 않나?

국제법상 종교적 소수자 보호제도는 매우 취약한 상태라고 할 수 있으며 해당 지역의 관련 보호조약이나 UN의 인권 관련 조약에서 종교의 자유에 대한 규정을 확대 적용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종교적 소수자에 관련된 대표적인 보편 인권조약으로는 인종차별철폐협약[ICERD]이 있다.

하지만 인종차별철폐협약은 종교, 언어적 소수자 보호 문제가 규약 범위 내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대표적으로 인종차별철폐협약에서는 종교적 소수자의 지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ICERD은 제1조 제1항에서 인종차별(racial discrimination)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이 협약에서 "인종차별"이라 함은 인종, 피부색, 가문 또는 민족이나 종족의 기원에 근거를 둔 어떠한 구별, 배척, 제한 또는 우선권을 말하며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또는 기타 어떠한 공간생활의 분야에 있어서든 평등하게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인정, 향유 또는 행사를 무효화시키거나 침해하는 목적 또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출처2]
"동 협약상 인종차별이란 용어는 인종, 피부색, 혈통, 민족적 또는 종족적 기원 등을 이유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및 공공 영역 등 모든 분야에서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향유하는 것을 무력하게 하거나 지장을 초래하는 일체의 구분, 배제, 제한, 선호를 의미한다."[다른번역2]

"In this Convention, the terms 'racial discrimination' shall mean any distinction, exclusion, restriction or preference based on race, colour, desent, or national or ethnic origin which has the purpose or effect of nullifying or impairing the recognition, enjoyment or exercise, on an equal footing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 in the political, economic, social, cultural or any other field of publiclife."


-Article 1.1, 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Racial Discriminatnion.-
즉 위 다섯 개의 근거에 속하지 않은 종교, 언어상의 소수자/소수민족에 대한 문제는 협약 관할 사항이 아닌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는 종교 문제와 인종 문제를 분리하여 다루었던 UN의 초기 관행에서 비롯되었다. 1962년 UN은 인권보호 차원에서 종교 문제와 인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각의 조약을 준비하기로 결의했다. 주의할 부분은 인종차별 문제는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1964년에는 인종차별철폐협약의 초안이 작성되고 1967년에 발의됐지만 종교 문제는 20년 가까이 지난 1981년에야 규약도 아닌 법적 구속력 없는 선언 채택에 그쳤다는 점이다.[11]

인종 문제와 종교 문제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UN의 당사국들은 인종(피부색) 이외의 종교, 언어상 소수자 권리 보호에 대한 필요성과 문제 의식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인종차별의 의미를 피부색과 같은 생물학적 개념[12]에 따른 좁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다 할 수 있다. 이는 인종차별철폐협약이 체결될 당시인 1960년대에 가장 이슈가 되었던 인종/소수자 차별 문제가 다름아닌 미국남아공의 흑백차별철폐 운동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당시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 인종과 종교 문제가 분리됐다는 지적도 존재한다.[13]

다만인종차별철폐협약은 하위 항목에서 "사상과 양심 그리고 종교의 자유와 권리 향유"를 명시하고 있다.[14] 이를 근거로 규정을 확대적용함으로써 ICERD의 집행부서인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여러 소수 종교 문제에 관여해 왔지만 달리 말하자면 소수 종교 문제가 인종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종교적 소수자 문제에 관여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략)...주의해야할 점은 종교적 불관용과 관련하여 ICERD의 제5조 이하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보호 의무는 좁게 해석될 수밖에 없으며 소수 종교 자유의 침해가 오로지 인종적 요소와 연계됐을 때만 ICERD가 적용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CERD는 소수종교를 믿는 사람들 그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반드시 종교적 소수자가 '인종적 차원'으로 연계되어야만 ICERD가 적용된다는 말이다.[인용]

인종차별철폐협약 외에도 종교적 소수자에 관한 보편적 보호제도가 있지만 이들 역시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개요 문단에서 상술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인권규약(B 규약)[ICCPR]이 있지만 ICCPR은 명칭 그대로 시민으로써의 권리와 정치적 자유를 다루고 있으며 이에 관한 내용은 매우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반면 소수자, 특히 종교적 소수자에 관한 내용은 상술한 27조가 전부로써 내용 또한 추상적인 언급 수준이다.언급이라도 있는게 어디냐만은 즉, 해당 조문은 개별 국가에서 자의적 해석과 기만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종교적 소수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인종/언어/종교 상의 소수자가 존재하는 국가에서는'인데 해당 국가에서 자국에 해당 소수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 규약의 해당 조문의 적용이 몹시 난항을 겪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집트, 자메이카 등이 있다.

종교적 소수자 자체에 대해 다루고 있는 UN 차원의 결의문도 있으나 결의문은 아무런 법제적인 강제성이 없다.

특히 탈냉전 이후 종전의 이데올로기 갈등의 공백을 종교 갈등이 대체하면서 소수 종교 보호 문제에 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지만 상술했다시피 종교적 소수자의 보호를 위한 보편적 규약은 실질적으로 전무하며 관련된 다른 규약을 확대적용하는 방식으로 종교적 소수자 문제에 관여하고 있으나 역시 상술하였듯이 맹점이 많다. 이에 따라 종교적 소수자를 위한 보편적 보호제도를 마련하거나 인종차별철폐규약의 적용범위를 종교적 소수자까지 포괄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다.

3. 현황

3.1. 중동


3.2. 러시아

3.3. 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3.4. 동남아시아

3.5. 중국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는 더 이상 무신론을 강요하지 않고 종교 탄압이 대부분 사라졌으나 중국에서는 국가 무신론을 강요하며 종교 탄압의 강도도 더 심하다. 기독교 문화권인 러시아와 달리 동양에서는 유교에서 ‘군자는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 있어 고대부터 중국 지식인의 상당수가 내세에서 구원을 찾는 종교에 회의적이었으며 전근대에 종교 결사가 일으킨 대규모 반란[40]을 겪은 것도 있어서 중국에서는 중국공산당의 허가와 통제를 받는 종교 시설만 허용되며 다른 경로를 통한 종교활동은 불법으로 규정한다.

3.6. 대한민국

3.7. 북한

3.8. 서구권

3.9.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3.10. 기타 사례



4. 과거의 종교적 소수자 사례

박해를 받아 전멸한 경우 & 다수파가 되거나 민족국가를 이루거나 차별이 사실상 근절된 경우도 모두 포함한다.

5. 종교적 소수자를 무신론자로 매도하는 사례

해당 사례들이 일어난 지역들은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진짜 무신론자들의 탄압했었다.

6. 둘러보기



[1] 국가법령정보센터의 조약 전문에는 소수민족이라고 기재됐지만 학술자료 등에서는 해당 부분을 소수자라고 칭하기도 한다.[출처1] 국가법령정보센터[다른번역] 박정원.소수자보호의 국제법(외국법제동향)[4] 권고로서의 효력밖에 없는 세계 인권 선언을 각국에 법률적 강제력이 있도록 한 것으로 사회권 규약(A규약)과 더불어 자유권 규약(B규약)이라고도 불린다.[5] 이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소수종교가 인도의 파르시(조로아스터교)로 이들은 인도에서 상당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만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해 공동체 사멸 위기에 놓여 있으며 엄연히 종교적 소수자로 간주된다.[6] 이스라엘 무슬림의 절대다수는 이스라엘 아랍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전히 이중적 식민지배(double colonization)에 노출되어 있는 서발턴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7] 일반적인 (보편)인권조약인 B규약이나 인종차별철폐규약 등에서 종교상의 자유나 종교적 소수자에 관한 부분을 다루고 있기는하지만 기본적으로 종교적 소수자를 주제로 하는 규약들이 아니다.[ICERD] 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Racial Discrimination, (1965)[출처2] #국가인권위원회[다른번역2] 박정원. 소수자보호를 위한 보편조약으로서의 인종차별철폐협약(Dankook Law Review Vol.43 No.2, 2019, pp11)[11] United Nations Declara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Intolerance and of Discrimination Based on Religion or Belief [12] 외적 유전형질의 발현[13] Friesel, O. "Race versus Religion in the Making of the International Convention Against Racial Discrimination 1965"(Law and History Review, Vol. 32, 2014, pp 351-383)[14] 제5조(d)(vii)[CERD] [인용] 박정원. 소수자보호를 위한 보편조약으로서의 인종차별철폐협약(Dankook Law Review Vol.43 No.2, 2019, pp22)[ICCPR] [18] 해당 가설을 주장했던 사람이 논란이 너무 커지자 자살했을 정도다...[19] 인구의 다수가 아랍계 기독교인이다.[20] 비슷한 사례로 오스만 제국 시대의 발칸반도의 산악 시골 지방에는 이슬람과 기독교를 동시에 다 믿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주변에 성경도 꾸란도 없고 글도 읽을 일이 없고 외부인하고 접촉할 일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단', '우상숭배' 같은 말은 그저 먼 나라 얘기일 뿐이었다.[21] 심지어 서구 사회에 난민으로 정착한 야지디인이 새로 이민간 장소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위협을 당했으나 제대로 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22]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80%에 달하는 문맹률을 자랑한다...[23] 톨스토이는 두호보르파 신자가 아니었지만 톨스토이가 주장했던 비폭력주의와 정교회의 권위에 대한 거부감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24] 다만 관련 사진(...)과 기록을 찾아보면 다행히 이들은 추잡하게 민폐 끼치는 형태의 폭력 시위는 지양한 듯 하다.[25] 오히려 모피 무역으로 전통적으로 부유했던 집단에 속한다.[26] 러시아 제국에서 반유대주의가 횡행할 때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30년의 병역을 부과한 적도 있었다.[27] 사족으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종교적 병역 거부자들을 “국가권력에 배신당한 순진한 사람들” 정도로 생각한다.[28] 이들은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사회 집단 중 하나다.[29] 당나라 때는 “의사가 병에 걸리고 페르시아인이 궁핍하다.”는 속담마저 있었다 한다.[30] 자이나교 교리는 살생을 철저히 금지하는데 이 때문에 자이나교 신자는 해충을 죽여야 하는 농업이나 가축의 수를 조절해야 하는 축산업 종사가 불가능하다.[31] 영국인과 페르시아인의 혼혈이다.[32] 거의 유일하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탈레반조차 여성할례는 야만적 악습이라며 거부할 정도였다...[33] 북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인도아리아인드라비다인, 문다인의 계급을 구분하기 위한 인종차별적 성격이 강했다면 드라비다인 일색인 남인도에서는 카스트 제도가 중국이나 한국의 신분제도처럼 다소 느슨했고 재산을 축적한 하위 카스트들이 족보를 구입하고 위조하는 행각도 사실상 용인되었다. 불가촉천민, 유색인종 문서 참조[34] 스리랑카 내전 당시 타밀족들이 인도 타밀나두 지방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타밀족 동포들로부터 그렇게 많은 지원을 받았음에도 패배한 이유 중 하나로 타밀족 내 상위 카스트와 하위 카스트간의 상호 불신이 지적된다.[35] 참고로 자살 폭탄 테러는 스리랑카의 LTTE가 원조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에서 저렴한 비용의 효과적인 테러 방법이라며 이를 벤치마킹(...)하면서 전 세계로 전염되었다.[36] Panadura Debate. 1873.8.23~28일에 스리랑카 남부의 도시 파나두라에서 있었던 불교와 기독교의 논쟁.[37] 다만 파나두라 대논쟁 이전에 기독교 선교사들이 불교에 대해 자행한 차별이나 편향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마냥 피해자는 아니다.[38] 아이러니하게도 스리랑카 연쇄 폭탄 테러 이후 그동안 스리랑카에서 천덕꾸러기 대우를 받던 기독교인의 이미지가 크게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39] 미얀마의 로힝야 탄압 운동을 주도한 승려 아신 위라투도 어린 시절 자기 어머니가 부유한 로힝야족 상인과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모욕감을 느껴 로힝야에 대한 맹렬한 증오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40] 황건적의 난, 홍건적의 난, 백련교도의 난 등.[41] 위구르인,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우즈베크인, 타타르인, 투르크멘인, 사리콜인, 와키인, 후이족[42] 카르파티아 산맥 일대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계 루신인들이 믿던 소수 종파[43] 극우 커뮤니티에서 이 사건을 두고 파키스탄인 전체를 싸잡아서 증오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당시 지역 비하 논란과 비슷한 오류다. 장기간에 걸친 집단 성폭행은 닫힌 사회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이며 증오 발언으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44] 어떻게 보면 중세 이베리어반도에서의 이슬람과 기독교도간의 전쟁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다.[45] 차별 문제를 민감하게 다루는 미국 민주당이 히스패닉의 든든한 우군인 관계로 미국의 진보 언론에서 히스패닉의 소수자 차별 문제를 다루면 팀킬이 된다.[46] 참고로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을 주장하고 사형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이라 해외의 주류 이슬람계로부터 많은 반발을 받았던 한마디로 예외적인 경우다.[47] 사족으로 우간다의 이디 아민은 인도인들을 “구두약을 피부에 칠한 백인 악마”라고 말하며 무슬림 인도인도 핍박했다.[48] 하단에 서술된 재세례파와 두호보르파의 병역 거부는 인정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의 병역거부는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49] 다만 사이비 종교가 아닌 경우에 한정된다.[50] 신흥 사이비 종교들이 기독교를 벤치마킹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기독교의 체계화된 시스템을 베껴야 교단 유지와 교주의 수익 추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51] 한 때 루이지애나와 생도맹그(아이티)가 모두 프랑스 식민지였던 이유로 아이티 혁명 이후 아이티인 난민들이 상당수 유입되었던 바 있다. 현대에도 아이티 난민들의 주 목적지 중 하나다.[52] 원래 성은 셰이쿨이슬라모바(Shaikh Al-Islam + 러시아어 여성 성 접미사 ova)로 이슬람 원로 학자 가문이라는 뜻이다. 다만 Irina라는 이름은 평화라는 뜻의 정교회식 이름이다.[53]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4세가 톨레도를 함락시킬 때 도시에 기독교인들이 없었다는 기록을 참고하면 도회지에 거주하던 이베리아 원주민들은 무슬림으로 완전히 동화되었던 듯 하다.[54] 물론 이 과정에서 이등시민 입장이었던 유대인들의 처우 논의는 배제되었다.[55] 현대 아랍어로 불신자라는 뜻의 Kafir(كافر)의 복수형 Kuffar(كفار)[56] Kafir라는 단어는 “진리를 몰래 파묻는 자”라는 뜻의 아랍어 종교 용어지만 Kaffir라고 f자 하나를 더 붙이면 이는 남아공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용어 “꺄프르”가 된다. 활용에 주의할 것.[57] 1921년에는 소련 전역에서 식량이 부족해지자 소련 공산당에서 일단 타타르스탄부터 식량 공급을 끊어서 타타르인 수십만명이 기아로 사망한 적이 있으며, 1932년부터 1933년에는 카자흐스탄 대기근으로 소련 내 카자흐인 전체 인구의 38~42%가 아사한 적도 있었다.[58] 출처는 이븐 카시르의 꾸란 주해서[59] 꾸란의 제 2장 62절과 제 5장 69절[60] 원래는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이 마니교 신자들을 낮춰 부르는 멸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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