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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13:12:42

불가촉천민

신분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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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통적 카스트제
<colbgcolor=#b1112b> 제1계급 브라만 제사장
제2계급 크샤트리아 왕·귀족·무사
제3계급 바이샤 자영농·상공업자
제4계급 수드라 농노·육체노동자
계급 외 찬달라 불가촉천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ntouchables_of_Malabar_Kerala_Dravidian_Australoid.png

1. 개요2. 명칭3. 역사와 현황4. 신분제적 특징5. 어퍼머티브 액션
5.1. 역차별 문제, 계층 간 갈등 심화
6. 없어지기 어려운 이유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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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가촉천민()은 인도의 신분제인 카스트(바르나)에서 규정하지 않는 제도 외의 계급이다. 2022년 기준으로 인도의 불가촉천민은 총 9,500만 명인데 이는 인도 전체 인구(14억)의 6.8%로 인도에서 가장 큰 소수자 그룹에 해당한다.

수드라 계급과 헷갈릴 수도 있지만 다르다. 수드라는 박해받을지언정 힌두교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계급으로 언급되지만 불가촉천민은 아예 계급 외의 불경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전통적인 힌두 사회에서 이들은 '몸의 어느 곳이 남에게 닿아서도, 상위 카스트에 말을 걸어서도 안 되는 존재'다.

2. 명칭

한자어 '불가촉천민'은 산스크리트어 '찬달라'(Chandala)를 번역한 것으로, 찬달라는 '부정 타는 자', '닿으면 안 되는 (미천한)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 사용이 금기시되는 단어다. 한자로 전타라(旃陀羅)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오늘날 힌디어로는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초대 법무부장관이 제안한 '달리트(दलित, 억압받는 자)' 혹은 마하트마 간디가 제안한 '하리잔(हरिजन, 신의 아들)'[1]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종의 사회 정의·인권 운동 및 정치적 올바름에 따라 차별을 줄이고자 새로이 만들어진 단어다. 타밀어로는 '파라이야르(பறையர், Paraiyar)'라고도 하는데 파라이야르에서 나온 '파리아(Pariah)'라는 단어는 유럽권에서도 자주 사용되며 막스 베버천민자본주의(영어: Pariah Capitalism, 독일어: PariaKapitalismus)라는 용어와 Warhammer 40,000 세계관의 퍼라이어도 여기서 유래했다.

법률적으로는 '등록 카스트' 또는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 SCs)'라는 이름으로 복지와 공공 부조의 대상이 되어 있다.

3. 역사와 현황

불가촉천민의 뿌리는 아리아인들이 인도에 정착해 기존 인도 아대륙의 토착민들을 정복하고 그들의 지배구조를 정립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저항하거나 그들이 뒤늦게 정복해 힌두 지배구조와 문화권에 포함되지 않았던 집단이다. 요는 인도 아대륙이 워낙 거대하고 인구도 많으며 복잡한 지형구조상 소부족들을 전부 행정력을 통해 지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인도 중앙정부나 지방 주정부의 통제가 통하지 않고 독자 생존 중인 소규모의 부족들이 엄청나게 많고 그 부족들 하나하나가 인도 전역에 다 쪼개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 9,500만 명이 큰 부족집단으로 갈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어마어마한 분파가 있다.

인도의 주별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 현황

달리트는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 지정 카스트는 역사적으로 차별받은 계층과 집단을 뜻한다. 이들은 주로 사회 어디에나 있는 가장 궂은 일을 하는 하층민들부터 민족적, 종교적인 문제로 힌두 카스트에 정치적으로 탄압받은 집단들로 크게 갈린다. 전자는 사실 어느 사회나 해결책이 마땅히 없는데 인도가 워낙 저개발국가인 데다 전근대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낙후지역이 많다 보니 문제가 되고 정치적 탄압을 받는 후자들 중 상당수는 아예 힌두교를 거부하고 이슬람·시크교·조로아스터교·자이나교 같은 소수 종교를 신봉하는데 비교적 온건한 조로아스터교나 자이나교처럼 힌두들도 상호 존중하는 집단과 달리 저항한 이슬람이나 시크교로 개종한 케이스는 대부분 여기 속한다. 지정 카스트 상위 10개 주는 펀자브·히마찰프라데시·서벵골·우타르프라데시·하리아나·타밀나두·우타라칸드·라자스탄·트리푸라·카르나타카로 상위 두 주는 펀자브족과 시크교가 강한 주이며 서벵골은 종족 자체가 벵골족, 그 외의 주들도 상당수 델리를 중심으로 지배영역을 넓힌 힌두 국가에 오랫동안 저항한 무슬림들이 적지 않게 분포해 있고 벵골이나 타밀처럼 종족 자체가 인도·아리아인과 달라 정치적 탄압을 받은 지역도 포함된다.

현재 인도의 지정부족 리스트를 보면 여기에 해당하는 부족들의 갯수만 수천 개는 된다. 이들이 모두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1947년 전까지 인도에서는 인도 사람이 아닌 취급을 받았으며 독립하고 나서야 헌법에 이들 부족을 명시했다. 전체 인구 중 지정부족 비율이 가장 높은 10개 주는 미조람·나갈랜드·메갈라야·아루나찰프라데시·마니푸르·시킴·트리푸라·차티스가르·자르칸드·오디샤 주로, 이 중 아삼을 제외한 상위 7개주가 실리구리 회랑 동쪽, 즉 방글라데시로 인해 거의 본토와 유리된 인도 극동지역의 7개주이다. 이 지역은 인도에 편입이 가장 늦게 된 주에 속하며 인도에서도 그동안 낙후되어 있다가 최근에야 급격하게 인도 사회에 편입되는 움직임을 보인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볼 때 불가촉천민은 힌두교를 앞세운 인도·아리아인의 세력이 인도 아대륙 전체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인도의 정신세계를 정의하는 카스트 제도의 틀에 완전히 편입되지 못한 사람 또는 힌두에 저항한 사람들의 집단, 그리고 전세계 국가 어디에나 있는 최하층 빈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힌두교가 주류인 인도 사회에서 이들을 가볍게는 외부인, 심각하게는 사람 이하로 취급한다.

4. 신분제적 특징

카스트 계급에서 이들이 받는 '부정함' 취급의 수준은 부정함이라는 한단어에 모두 담아내기 힘들 정도로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데 마치 전염병인 양 이들에게 닿은 것은 모두 부정해진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은 주로 인도 사회에서 멸시받는 소고기 도축·시체 처리·가죽 수리·길거리 청소·구식 화장실 변 처리·정화조의 오물 처리·농장에서 거름 내기 등을 도맡아 하는 소작농 내지는 가난한 노동자·잡일 하는 노예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경멸와 혐오, 그리고 종교·문화·사회적 차별을 받으며 빈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과거엔 단지 경전을 보았다는 까닭만으로 눈을 뽑고, 경전을 말하면 혀를 뽑고, 경전에 닿은 신체 부위를 잘라 버리는 등의 학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지금도 가난한 상류 카스트들 중 일부가 이 계층 사람들을 상대로 차별과 테러를 자행하는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난다.[2]

물론 인도뿐만 아니라 프랑스카고(Cagot), 조선 시대의 백정, 일본부라쿠민, 예멘아크담족(Akhdam)과 같이 유사한 계층이 세계 여러 국가에서도 존재했지만 세계의 다른 격리된 천민 개념 중에서도 불가촉천민처럼 닿기만 해도 더러워진다고 생각하는 수준은 드물었다. 중세에 한센병 환자를 두고 품은 극단적인 공포감 수준으로 단순히 더러워지는 게 아니라 카스트 계급이 강등된다고 여겼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신분제가 거의 폐지된 21세기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힌두 극우주의자들은 이러한 차별을 힌두교의 가르침으로서 '정당화'한다. 불가촉천민 문제를 포함한 카스트 제도는 기본적으로 피부색에 기반한 인종차별로 시작했지만 브라만교힌두교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를 체계화하고 정당화한 만큼 절대 간단하게 없어질 수 없다. 중동 지역의 악습들이 이슬람 근본주의의 비호를 받기 때문에 없애기 힘든 것과 동일하다.

프랑스 소설 세갈래 길의 주인공 중 여자 한 명이 불가촉천민인데 상위 카스트의 똥을 맨손으로 퍼내는 일을 하고 받는 음식으로 생활한다. 남편은 상위 카스트의 밭에서 들쥐 잡는 일을 하는데 따로 보수는 없고 잡은 들쥐를 먹고 산다.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다 잡히면 살해되는데 여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강간까지 당한다. 황당한 것은 불가촉천민에게 닿기만 해도 부정 탄다고 생각하여 높은 계급의 여자가 불가촉천민 남성과 사귀거나 혼인하면 혈통과 영혼까지 더럽혀졌다고 여기고 그 전 계급과 상관없이 카스트 계급에서 축출되고 불가촉천민으로 떨어지지만 정작 불가촉천민 여자와의 성행위나 강간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사생아이자 불가촉천민이 된다.

수천·수만의 계급이 존재하는 카스트답게 이들보다 더 아래 계급도 존재하는데 무려 쳐다보기만 해도 부정해지는 불가시천민(Thurumbar, Unseeables, 不可賤民)으로, 다른 카스트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들이 사는 구역 밖으로 이동할 때는 항상 밤에만 이동하야 하며 자신들이 지나간 발자국이 부정을 남기지 않도록, 즉 상층 카스트들에게 불쾌감을 남기지 않도록 마을 밖으로 이동하는 동안 뒤에 야자나무 잎을 매달아야 한다. 봐서도 안 된다는 특성 때문에 역설적으로 오히려 불가촉천민보다는 덜 알려진 편이며 심지어 불가촉천민들조차도 이들을 더 하등한 존재라며 차별하고 다닌다.

5. 어퍼머티브 액션

인도 제국 시절부터는 카스트를 없애기 위해 이 계급에게 일부 특혜를 준 바 있는데 이는 영국의 인도 통치에 카스트가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고 동시에 이런 정책을 통해 불가촉천민을 포함한 하층민들을 친영(親英)파로 포섭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인도 정부는 인도 인구의 52%에 해당하는 국민(바이샤 이하)들을 위해 공무원 자리의 일정 부분을 하층민에게 할당하는 쿼터 제도를 시행한다.[3] 인도에서도 공무원은 매우 인기 높은 일자리인 데다 지금까지 극소수의 상위 계급이 독점했기 때문에 하층민이 공무원이 되면 사회 불평등 개선과 사회 통합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상위 계급들이 공무원직을 점유했기 때문에 당연히 대우가 좋다. 덧붙여 이 개혁정책 때문에 이전까지 공무원직을 독점해 이익을 보았던 특권 계급의 불만이 심하다고 한다. 카스트는 이미 법적으로 부정되었기 때문에 공무원은 시험 쳐서 성적 순으로 뽑지만 과거의 신분이 현재의 경제적 신분으로 변하고 인식도 남아서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할 여건이 못 된다. 과외를 받는 부유층 자녀와 막노동하는 부모 밑에서 같이 막노동하는 자녀가 같이 공정하게 시험으로 경쟁하는 것이다. 이러면 인구 비율은 1대 9라고 해도 합격자 비율은 9대 1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신분을 좀 섞어놓기 위해서 강제 배분을 한다.

인도 하원 의석의 약 15.5%(543석 중 84석) 정도가 불가촉천민이 속한 등록 카스트(Scheduled Castes) 전용 의석으로 할당되어 있다. 인도 하원은 완전 소선거구 다수득표제로, 일부 지역구에서는 등록 카스트 이외 유권자의 출마가 불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하층민의 차별이 심한 인도 사회에서는 정말 드물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도 있긴 한데 대표적인 인물은 성자로 추앙받는 베다 시인 티루발루바르, 달리트 해방 운동의 선구자인 레타말라이 스리니바산과 아이얀칼리,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초대 법무부장관, 코체릴 나라야난 제10대 대통령 및 람 나트 코빈드 제14대 대통령, 《신도 버린 사람들》의 저자 나렌드라 자다브, 인도 사상 첫 여성 국회의장인 메이라 쿠마르 등이 있다.

5.1. 역차별 문제, 계층 간 갈등 심화

이러한 어퍼머티브 액션은 오랜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유용한 제도지만 때로는 역차별 논란뿐만 아니라 소수자, 약자 계층 사이의 분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물론 상당수 역차별 거론은 기득권을 놓기 싫은 의도가 있거나 의도치 않더라도 소수자, 약자의 핍박받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장이 될 뿐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정말 역차별이 되는 경우도 없다고만 단정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문제는 소수자, 약자 사이에서도 이러한 어퍼머티브 액션과 관련해서 차별 논란이 재차 불거지고 갈등과 분열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문제다.

인도에서는 옛 상위 계급 출신들이 자신의 신분을 부정당하자 오히려 짐이 되어 버린 옛 계급 대신 차라리 불가촉천민의 계급을 달라고 하는 일도 있다. 샌드위치 신세라고 할 수 있는 바이샤 계급인 구자르인데모와 유혈 폭동을 거쳐 불가촉천민 계급을 받았다. 인도의 정치인들은 추산해 2억 명, 인도 전체 인구의 15~6%대에 달하는 불가촉천민들의 표심을 잃는 것이 무서워 역차별 해결 정책을 세우기 힘들다. 악랄한 신분 제도가 현대까지도 애매하게 남아 사회의 발전상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니 이런 웃지 못할 촌극도 나타난다.

역차별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위 카스트 사람들에 대한 제도적 사회적 차별이 없어지고 진짜 혜택만 남았냐면 그것도 아니라는 게 문제다. 대도시에서 직장 구할 때나 공무원 시험 볼 땐 그런 차별이 없고 오히려 하위 카스트가 가산점의 요인이 된다지만 아직도 시골 지역에서는 불가촉천민은 여전히 멸시와 가혹행위의 대상으로 불가촉천민 아이가 성적이 좋다고 범죄 표적이 된다든지, 브라만 중 일부 KKK 같은 사고 방식을 가진 놈들이 밤에 불가촉천민들을 사냥하러 다닌다든지, 불가촉천민 학생은 갖은 수를 써서 명문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게 지역 유지가 개입해 성적을 조작하거나 훼방을 놓는 등의 일은 분명히 일어난다.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 자체가 별로 없어지지 못한 건 사실이니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

그렇다면 차별 문제 및 역차별 문제를 모두 일으키는 카스트 제도를 빨리 없애 버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카스트는 명문화된 계급이 아니라 종교가 관여한 관습으로 인해 생겨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보도된 카스트 제도로 인한 사건 기사만 보고서 인도에 아직도 '공식적으로' 카스트 제도가 있다고 오해하지만 인도에서도 법적으로는 브라만이니 불가촉천민이니 하는 신분제도가 없다. 현대의 인도 공화국에서는 단 한 번도 카스트 제도를 인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인도 헌법이 '카스트를 갖고 차별하는 것 금지'를 처음으로 천명하면서 카스트 제도가 인도의 법으로서 정착했다. 그러므로 카스트 제도 때문에 불가촉천민을 위한 쿼터 제도를 만든다는 게 논리적으로 따지면 매우 이상한 일이다. 즉, 법과 사회 대중의 인식이 괴리되어 생기는 일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말그대로 힌두교를 중심으로 한 인도의 구체제 질서가 완전히 붕괴하여 재설정되는 것 외엔 없다.[4]

현대 인도에서 카스트는 법적인 제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에 남아있는 계급 제도다. 이처럼 카스트는 서류나 공문서에 있는 게 아니라서 아예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전엔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심지어 미국에 취업한 인도인들끼리도 미국에서 카스트 차별을 하는 형국이다.#

6. 없어지기 어려운 이유

인도의 카스트 문제를 개혁하는 시도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데 이는 카스트가 힌두교의 교리의 일부로서 체계화된 것이나 인도 사회의 근대화 지체 이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다.불가촉천민의 적지 않은 수가 힌두교 사회의 차별을 피해서 그리스도교, 불교, 이슬람 등으로 개종했지만 계급간 달라지는 성명, 어휘 문제나 외모로 출신 계급을 파악할 수 있으며 힌두교 인도 사회의 특성상 이들의 처우는 타 종교로 개종한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인도의 그리스도교 사회와 이슬람 사회에서도 출신 배경[10]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 사는 불가촉천민들은 파키스탄 무슬림들이 천하다고 여기며 꺼리는 악기 연주[11]를 생계수단으로 삼는다고 한다. 인도 문화권에서 불가촉천민 차별이 이어져 온 역사가 비힌두교도들조차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할 만큼 매우 오래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현재의 문제는 단순히 과거의 종교적 악습인 카스트 제도 하나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많은 국가들처럼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에서 기인한 것이고 이를 해결하고 인도 국민들이 평등하게 되는 길은 그러한 불평등을 평등으로 만들어나가는 것밖에 없다.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함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빈부 격차는 중국 이상이며 과거의 카스트 계급이 현재의 자본가와 노동자, 부자와 빈자로 유지된다. 물론 제아무리 브라만, 크샤트리아 계급 출신이었다고 해도 몰락해서 가난한 노동자가 되면 대자본가로 성공한 극소수의 불가촉천민 아래에서 얄짤없이 기어야 하는 것이 현대의 자본주의 계급 사회다.[12] 그래서인지 불가촉천민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은 단순히 카스트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세력도 있지만 좌파적 성향을 띄거나 좌파와 연대하는 경우가 많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도는 좌파, 공산주의 정당의 활동이 상당히 활발한 곳이다. 인도 공산당 문서로.

그렇기 때문에 결국 돈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 시대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직업의 귀천의식이 변화하고 전세계로 인도계 사람들이 나가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섞이다 보면 느리지만 결국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사라질 수 있는 것도 카스트다. 비록 인도라는 나라가 너무 크다 보니 더디지만 시간을 들여 변화하면 해결이 가능한 문제다.[13]

7. 관련 문서



[1] 그러나 암베드카르는 이들이 신의 아들에 걸맞은 대우를 못 받는다는 이유로 이 표현을 매우 싫어했다. 실제로 본래 뜻이 무색하게 현대 인도 사회에서 하리잔은 불가촉천민을 비하하는 명칭으로도 악용된다.[2] 정작 힌두 경전에는 불가촉천민 중 하나가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악마들에게 당하는 신들을 구해준 일화가 있다. 힌두교에서는 신들이 수행을 게을리하다가 악마들에게 역습당하는 이야기가 자주 보인다.[3] 이원복 교수의 현대문명진단에 따르면 50% 정도다.[4] 문제는 그게 한반도처럼 일제강점기6.25 전쟁이 연속으로 터지거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처럼 스스로 때려부시는 극단적인 방법일 경우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구 사회도 신분제를 제도적으로 타파하는 건 몇백 년의 시간과 프랑스 혁명 같은 피칠갑을 몇 번이나 하고서야 이루어냈고 일본은 지금까지도 부라쿠민의 후손들이 차별받고 있다.[5] 국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게 전주 이씨라서 얼핏 보면 그냥 이씨일 뿐이라 단순 이름만으로는 알 수 없다.[6] 영화배우 프리다 핀토가 대표적이다. 원래 포르투갈식으로는 핀투.[7] 다만 이는 로마 가톨릭 신자나 개신교 신자 한정이며 시리아 정교회아시리아 동방교회 내지는 동방 가톨릭 교회에 속한 경우에는 전형적인 인도식 이름인 경우가 절대다수이다.[8] 대표적으로 청나라는 공식적으로는 만주족 지배층과 한족 피지배층이 엄격히 구별되는 사회였지만 만주족과 한족 모두 기본적으로 동아시아계 황인 민족이다 보니 양쪽의 외모 차이가 인도의 상급 카스트와 하급 카스트 수준으로 차이나지 않았으며 청나라 말기로 갈수록 만주족이 만주어를 잊어버리고 한어가 모어가 되거나 반대로 한족이 만주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어를 구사하게 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권력욕이 강한 한족이 출세를 위해 만주족으로 신분세탁을 하거나 반대로 문자의 옥으로 몰락한 어느 만주족 집안이 더 이상 역적 가문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한족으로 신분세탁을 하는 게 가능했다.[9] 다만 피부색은 조금 생각해야 할 점이 있는데 브라만 중에서도 갈색 피부를 가진 경우가 많아서 이걸 속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특히 남인도 출신 브라만들은 갈색 피부가 훨씬 많은데 북인도에서 남인도를 침공할 때 우호적이었던 주민에게 브라만 계급을 뿌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스리니바사 라마누잔도 브라만 계급이었다. 그러나 피부색 차별도 인도에선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라 갈색 피부를 가진 브라만들은 흰 피부의 브라만들에게 은연 중에 무시나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대우도 당연히 더 안 좋다.[10] 개종한 인도 토착민 조상을 둔 사람들보다는 아랍,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투르키스탄에 배경을 둔 사람들이 더 우대받는다. 인도사의 가장 최근 왕조였던 무굴 제국도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땅에서 넘어온 바부르가 세운 나라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불가촉천민의 입장에서는 힌두교도 시절에는 상급 카스트에게 차별을 당하고 무슬림이 된 후에는 이민족 정복자의 후손들에게 차별을 당하는 답이 없는 상황인 셈이다.[11] 주로 결혼식이나 축제 때 북을 치고 흥을 돋우는 일을 한다. 무슬림들은 음악 연주를 금기시한다.[12] 이 문제는 현대도 아니고 인도 제국 때도 마찬가지여서 브라만 계급이었던 라마누잔도 가난하게 살았다.[13] 사실 이런 계급 문제는 전근대 시절 한국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까지도 일제의 민족분열통치의 영향으로 계급 의식이 잔존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계급 의식이 사라진 건 6.25 전쟁으로 나라 전체가 통째로 초기화된 후부터로, 대규모 인구 이동으로 인한 옛 지역사회의 해체와 각종 신분 증명 수단의 소실로 계급을 따질 여건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그나마 시골에서는 1960년대까지도 신분 의식이 남아 있었으나 그마저도 이촌향도로 젊은이들은 죄다 도시로 나가버리고 시골에도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현대화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