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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8 17:38:30

루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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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판노니아 루신인2.2. 렘코인2.3. 후츨인2.4. 보이코인
3. 같이보기

1. 개요

루신인은 카르파티아산맥 일대를 중심으로 동슬라브어파 루신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을 칭한다. 루신이란 이름은 중세 시대 러시아의 라틴어 명칭인 루테니아(Ruthenia)에서 기원했다. 오늘날 루신인 인구는 60만여 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이 중 루신어 구사가 가능한 인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2. 역사

카르파티아 산맥은 중세 초에는 크로아티아인의 조상이 되는 백크로아티아(white croats)라는 남슬라브계 부족들이 거주하던 지역이었으나, 이들이 오늘날 크로아티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이주하고 그 빈자리에 흑해 근방에 살던 동슬라브계 부족인 울리치족이 페체네그의 침입을 피해 이주해 잔존한 백 크로아트인들과 융합되어 형성되었다.

루신인들의 조상인 카르파티아 루테니아인들은 과거 정교회를 믿었으나 중세 루테니아 왕국이 멸망하고 이후 카르파티아 산맥 일대 지역이 가톨릭을 믿는 폴란드 왕국헝가리 왕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지배층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카르파티아 루테니아(자카르파탸)의 농노와 정교회 성직자들이 루신인들의 직계 기원이 되었다. 하플로그룹 조사에 따르면 자카르파탸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다른 지역 주민들과 다르게 타타르계, 바시키르계과 유사성은 적었고 대신에 슬로바키아인, 루마니아인과 공통점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자카르파탸 지역은 헝가리 왕국에 복속된 이래 천년 동안 헝가리인의 지배를 받았고 현대까지 루스계 국가들의 통치를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근세 1646년부로 이들은 교황의 권위는 인정하되 정교회의 전례를 유지하는 동방 가톨릭의 일파 루테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로 개종했으나 여전히 헝가리인, 독일인 지주들에게 과도한 지대를 납부해야 했다. 빈곤한 상황과 차별에 시달리던 정교회 성직자들은 1649년 합스부르크 헝가리 웅그바르에서 동방 가톨릭 교회로의 개종을 공식적으로 결정했으며 1652년에는 로마 교황청에 이 결정을 전달하여 승인받고 인준받았다. 루신인 농민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정교회에서 루테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로 개종한 셈이었는데, 성직자들이 소요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자신들의 교파가 변경된 것을 일반인들에게 비밀로 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직자들이 공식적으로 개종한 지 100여 년이 지난 1760년대까지도 루테니아 농민들은 실상을 모르고 자신들이 정교회에 소속된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다고 한다. 루테니아 농민들 중에 글을 배우거나 외부에 나가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 중에서 '알고보니 그동안 자신들은 정교회를 믿는 줄 알고 살았으나, 실제로는 동방 가톨릭 교회 성직자와 함께 동방 가톨릭 성당에서 미사를 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소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일어났다고 한다.

가난과 차별에 시달리던 루신인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 여러 도시로 이민하여 루신어를 버리고 도시 현지 주민들과 동화되었다. 일례로 루신인의 한 갈래인 보이코인(Boykos)의 경우 과거에는 폴란드, 헝가리,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에 40만여 명이 분포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대부분 정체성을 잃고 이웃 민족에 동화되어 겨우 수백여 명만 남았다. 일부 범슬라브주의에 경도된 루신인들은 러시아 제국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물론 러시아 제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비해 생활수준이 낮은 편이었고,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걱정이 없는 미국으로 이주한 루신인 인구 상당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오스트리아계 미국인이 아닌 러시아계 미국인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1899년에서 1931년 사이에 268,669명의 루신인 인구가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추정되는데 이들은 대개 러시아계 미국인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 내 러시아계 디아스포라 사회에 동화되었다.[1]

지금 카르파토 루신인들이 대부분 남아있는 지역은 우크라이나의 자카르파탸주다. 이 자카르파탸 주는 다른 우크라이나 주와 비교했을 때 굉장히 특이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 1945년 전후 소련에 병합되기 이전까지 단 한번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였던 적이 없었다. 카르파토 루신인들은 오랫동안 헝가리 왕국의 일원이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된 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에 편입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헌법은 당시 유럽 기준으로도 소수민족에 대한 권리에 있어서 대단히 진보적이었다고 평가를 받는 만큼,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정부는 이 루테니아 지역에 기반시설 투자를 해주었고 이 때 여러 인프라가 생겨났다. 이 루신인들은 전간기 내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 속해있던 시기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2차대전 후 스탈린의 소련은 이 지역을 편입하면서 굉장히 억압적인 정책을 폈고 당연히 많은 루신인들이 숙청되기도 했다.[2]

뮌헨 협정 이후 카르파티아 루테니아라는 이름으로 독립국가가 세워졌으나 헝가리에게 무력으로 점령되었는데, 이 나라를 세운 것이 루신인들이다.

2.1. 판노니아 루신인

파일:6E258E76-C0CE-42C9-9589-B4D2A0445923.jpg
주로 보이보디나 자치주바나트 자치주 산악 지대에 거주한다.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 와중에 감소한 인구를 보충하기 위해 18세기 중반 카르파티아 지역의 루신인 농부들을 이주시킨 것이 그 기원이다.

2.2. 렘코인

파일:Lemko_Region_with_modern_state_borders_(English).png
파일:Lemko girl stamp (Ukraina 2008).jpg
전통 의상을 입은 렘코인 소녀 사진이 담긴 우크라이나 우표

오늘날 슬로바키아를 중심으로 5만여 명이 거주하며 오늘날 슬로바키아 일부 영토가 과거 폴란드의 영토였던 시절에 이주하였다 한다. 1939년 기준 인구가 14만여 명 정도였으나 슬로바키아인과의 동화로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앤디 워홀의 부모가 슬로바키아에서 피츠버그의 탄광 노동자로 이민 온 렘코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국의 유명 재즈 뮤지션 빌 에반스의 어머니가 루신인 중에서도 렘코인 혈통으로 알려졌다.[3]

물론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기는 하지만 폴란드에서도 약 만명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고[4] 우크라이나 등에 위치한 다른 루신인들에 비해선 가장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슬로바키아 자체가 그렇게 소수민족 동화에 열을 올리는 국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2.3. 후츨인

파일:549ABBA5-5A6B-4608-BFAA-020186D02E20.jpg파일:Huculy_1933,_Verkhovyna_district.jpg
주로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국경 지대에 해당하는 지역에 거주한다. 크로아트족이 이주한 지역에 울리치족이 정착하고 여기에 일부 루마니아인이 동화되어 동슬라브어 계통 언어를 사용하게 된 것을 그 기원으로 본다.

한 편 이들은 보고밀파[5]의 영향을 받은 민속 설화와 전통을 가진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들의 구전 설화에 의하면 태초에 세상은 물이나 반죽이 아닌 걸쭉하고 두터운 산패유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창조주는 크림으로 된 흰 세상 위를 떠돌며 영겁의 시간을 보냈는데, 하루는 질투에 가득 찬 악마가 나타나 타르를 던져서 더럽혔다. 그러자 조물주는 좋은 크림을 분리해내어 태양과 하늘을 만들었고, 오염된 크림으로는 지구와 산을 만들었다. 이들의 구전 설화에 나오는 악마는 마니교나 중세 기독교 영지주의 분파의 데미우르고스와도 무척 유사한데, 카르파티아 고지대에 사는 양과 염소는 악마가 창조한 것이었고 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바이올린과 플루트 역시 악마의 발명품이라 한다. 바퀴와 불, 인간이 사는 집 역시 악마의 창조물이지만 분노한 선한 신이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자 악마는 신에게 빼앗긴 자신의 발명품에게 저주를 내렸다고 한다. 이것이 불에서는 연기가 나고, 사람이 외양은 아름답지만 속으로는 악한 이유라고 설명된다.

루마니아 출신 역사가 니콜라에 로르가(Nicolae Lorga)는 이들이 트란실바니아에서 유목 생활을 하다 우크라이나 근방으로 이주하여 슬라브화한 왈라키아인(Vlachs)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풍속은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주목을 받아 많은 기록과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후츨인의 전통 문화가 목가적인 생활 양식으로 미화되기도 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목공예가 뛰어났으며 이 외에도 카르파티아 조랑말이 특산품으로 유명했다.

2.4. 보이코인

파일:Bojky001.jpg파일:Бойки.jpg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지대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정확히 말하자면 갈리치아 남부와 폴란드 남동부 국경지대에 걸쳐 거주하였다. 폴란드 제2공화국 시절 동화정책의 대상이 되었다가 2차대전 이후 소련에서 이들을 소수민족으로 분류하지 않고 일반 우크라이나인으로 분류하면서 따로 민족어가 보존되지 못하고 우크라이나인으로 동화되었다. 2001년 우크라이나 인구조사 기준 기준 131명, 2011년 폴란드 통계 기준 258명이 자신을 보이코인이라고 응답하였다.

3. 같이보기


[1] 여담으로 일부 루신인들은 미국 이민 이후에도 루테니아 그리스 가톨릭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였는데, 오늘날 루테니아 그리스 가톨릭은 유럽에서는 슬로바키아를 제외하면 교세가 거의 사멸한 상황이지만 대신 미국에서는 40만여 명에 달하는 교세를 지닌 상황이다. 물론 미국 내 루테니아 그리스 가톨릭교회 소속 신도들이 다 루신인인 것은 아니고(2010년 자가 응답에 바탕을 둔 미국 인구 조사에서 자신이 루신계 미국인이라고 응답한 인구는 7,583명에 불과했다.) 미국의 다양한 인종들을 상대로 선교한 결과 교회가 확장한 결과이다.[2] Michna E. (2010) “The Rusyns history is more beautiful than the ukranians" using history in the process of legitimization of national aspiration by carpatho-rusyn ethnic leaders in transcarpathian Ukraine”. Studia Slavica et Balcanica Petropolitana 1: 89-108.[3] 아버지는 웨일스 출신[4] 폴란드 인민공화국과 소련이 영토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15만여 명의 렘코인이 폴란드에 잔류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폴란드에 잔류한 렘코인들은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대신 폴란드인 일반과 동화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5] 기독교계에서 이단시된 중세 영지주의의 일파. 이들은 우주가 서로 경쟁하는 영역인 좋은 영역과 사악한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고 이분법적으로 구분했다. 선한 세계는 완전히 비물질적이고 만질 수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물질의 세계는 악의 영역이다. 이것은 신의 경쟁자로서 사타니엘이라고 불리는 데미우르고스가 함정으로 만든 세계다. 그는 우리가 보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밭는 모든 것을 만들어서 우리들을 그의 더러움, 죽음, 어둠의 우주에 가두어놓고, 빛, 은혜, 영원의 다른 세계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도록 한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신약성서의 신은 선한 신, 구약성서의 신은 악한 신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