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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22:54:15

오토타케 히로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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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회 부대표
오토타케 히로타다
乙武洋匡 | Ōtotake Hirotada
파일:오토타케히로타다.jpg
<colbgcolor=#006431><colcolor=#fff> 출생 <colbgcolor=#ffffff,#1f2023>1976년 4월 6일 ([age(1976-04-06)]세)
도쿄도 신주쿠구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학력 세카가야구립 요가소학교 (졸업)
세타가야구립 요가중학교 (졸업)
도쿄도립 토야마고등학교 (졸업)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경제학 / 학사)
메이세이대학 통신교육과정인문학부 (학사)
정책연구대학원대학 (석사)
현직 퍼스트회 부대표
자녀 2남 1녀
소속 정당

약력 작가
초등학교 교사
록 밴드 COWPERKING 보컬
도쿄도 교육위원회 위원
자원봉사단체 그린버드 신주쿠 대표
후타바 미라이가쿠엔 중·고등학교 응원단
아베마프라임 MC
퍼스트회 부대표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정계 입문4. 불륜 사건5. 여담6.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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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정치인, 전직 초등교사.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 그의 저서 <오체불만족(五體不満足)>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2. 생애

1976년(쇼와 51년) 4월 6일 화요일 도쿄도에서 선천성 사지 절단증을 가진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의사는 산모가 받을 충격을 생각해 '황달이 심하다'는 변명을 하며 아이를 못 만나게 하다가 생후 1개월 즈음 아이를 보여줬는데, 걱정과 달리 어머니의 첫 반응은 '귀엽다, 정말 귀엽다'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오토타케는 특별히 장애아를 가르치는 유치원이 아닌 일반 유치원에 다녔는데, 장애가 심했지만 또래 아이들과 문제없이 잘 어울렸으며 졸업 후에는 일반 초등학교로 진학했다. 특수학교에 보내라는 주변의 권고를 뿌리치고, 부모가 그야말로 투쟁한 끝에 일반 학교에 보낸 것이다. 본래 부모는 오토타케를 사립초등학교에 보내려 했는데, '아무래도 공립학교보다 사립학교에서 아이를 더 세심하게 돌봐주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토타케 정도의 중증 장애아를 받아주는 사립초등학교는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러던 중 오토타케가 장애아인 줄 모르고 있던 공립 요가초등학교에서 오토타케네 집에 취학통지서를 보냈고, 오토타케와 부모는 학교를 방문하여 신체검사와 면접을 치렀다. 학교에서는 많이 당황했지만 그래도 입학을 허락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교육위원회에서 제동을 걸었다. 오토타케와 부모는 교육위원회 위원들까지 만나서 여러 대화와 면접을 치렀고, 마침내 오토타케는 요가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요가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오토타케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모두 공립학교를 다녔다. 요가중학교를 거쳐 도쿄도립 도야마(戸山)[1]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상당한 명문고등학교이기 때문에 중학교 3학년 시절 꽤나 긴장하며 수험생활을 했다. 당시 그의 집은 도야마고에서 멀었고, 전동휠체어를 타고서 매일 아침 붐비는 버스와 전철을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도야마고에 다니려면 이사를 해야 했다. 오토타케가 합격하기도 전에 부모는 도야마고 근처의 집을 계약했고, 다행히 그는 무사히 합격했다. 이렇듯 쉽지 않은 수험생활을 거쳐 합격한 고등학교에서, 오토다케는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공부뿐 아니라 학생회, 농구부, 미식축구부, 영화 등등 여러 가지 활발한 활동들을 하며 많은 친구들과 어울렸다. 이 때 수학에서 5점을 받을 정도의 수포자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슨다이에서 재수하여 와세다대학 정경학부 정치학과에 진학했다. 장애 때문에 여러 재수학원에서 등록을 거절당하다가 간신히 어느 학원에 등록할 수 있었는데, 유치원과 학교에서 딱히 그런 일을 겪어본 적 없었던 오토타케는 깜짝 놀랐고, 이때야 비로소 자신의 장애를 깊이 자각했다고 한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썩 곱다고 할 수 없어 선진국 중에서는 인식이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타케가 학교에서 크게 이지메를 당하지는 않은 걸 보면 오토타케가 천성적으로 활달하고 장애에 개의치 않고 교우관계도 원만해서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1998년 자신의 대학 시절까지의 인생을 담은 자서전 《오체불만족》이 일본에서 발간되어 지금까지 580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999년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되어 50만 부가 팔려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기록하였으며 그의 이야기는 한때 7차 교육과정의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생활의 길잡이 교과서(30 ~ 33 페이지)에도 실렸다.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후 스포츠 라이터로 활동하였으며, 나중에는 통신 과정으로 초등교사 자격을 취득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초등교사로 일하였다. 그리고 2013년 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도쿄도 교육위원을 지냈다.

3. 정계 입문

여야 정치권에서 오토타케를 영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하며, 집권 자민당 관계자가 2016년 7월 제2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출마 여부를 직접 타진하기도 했다고 하나, 본인은 아직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나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후술된 스캔들로 인해 도덕성에 타격을 입으며 없던 일이 되었다.

2022년 제2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도쿄도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5%의 득표를 받아 당선되지 못했다. 순위는 9위.

퍼스트회 부대표로 역임하다가 2024년 일본 국회의원 보궐선거 도쿄 15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해당 선거에 있어서 내새운 정책안은 여당의 주장을 그대로 읊은 수준으로, 낙선은 물론이고 사회 운동가로서 쌓아올린 평판마저 무너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4. 불륜 사건

2016년 3월 24일, 무려 5명이나 되는 상간녀와 문어발 불륜을 저질렀다는 대형 스캔들이 일어났다. # 아내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며 이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이 때문에 현지에서는 되레 왜 피해자인 아내가 사과하냐고 오토타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 거세져 버렸다. 게다가 어머니까지 '아들이 한 행동은 정말 최악, 며느리에게 면목이 없다'라고 사과한 인터뷰가 나오면서 그에 대한 여론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중. 일단은 오토타케 자신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카드뉴스

공교롭게도 5명이라는 데에서 '오체불만족'이 '다섯 육체로도 만족하지 못했다'는 뜻이라는 개드립이 흥하여 오체씹만족, 오체대만족, 오처(妻) 불만족, 하체 대만족, 육체(肉体) 불만족, 여체(女体) 대만족, 오체 FULL 만족, 본처 불만족, 오체 불난좆, 오첩(妾) 대만족 등의 온갖 드립이 흥했다. 게다가 비공개 트위터 계정에 다수의 여자들과 찍은 투샷을 올렸던 정황까지 밝혀졌다. 스캔들이 터진 당해 연말 기타노 타케시쇼후쿠테 츠루베의 방송에 출연해 "TENGA처럼 쓰여진거 아닌가" 라고 비꼬며 신랄하게 깠다.

일본 한 주간지에서 오토타케의 불륜녀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신체 구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성교를 했는지가 밝혀졌다. 그녀의 인터뷰에 따르면, 오토타케의 비장의 무기는 바로 그의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뭉툭한 그의 손이라고 한다. 적당한 크기와 부드러움으로 그의 손은 남성의 성기와 비슷하지만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여성의 주요 부분애무해 줄 수 있다는 후문. 불륜녀의 말로는 "손도 아니고 성기도 아닌 굵기가 절묘하다. 게다가 항상 계속 단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계속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오토타케만의 비장의 무기로, 오토타케와의 성관계는 언제나 만족을 주었다고 한다.

파일:2A0D1B5D-5729-424C-9EE3-857E8CE7A082.jpg
오토타케의 손 사진.

다만, 일본에서는 장애인 오토타케와 인간 오토타케를 연관시키는 점을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간통은 물론 잘못이지만, 장애인 오토타케가 진행한 배리어 프리 운동까지 부정당해야 하느냐는 게 요지. 또한, 그런 시각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서로 구분짓는 행위라는 의견도 있다. #

결국 2016년 9월 14일, 이혼이 발표되었다. #

한데, 2018년 3월 들어 20대 여대생과 교제 중이라는 소식이 떴다. 상대는 체코인 어머니를 둔 혼혈에 5개 언어를 할 수 있는 우수한 여학생으로, 교육 계열 기업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현재는 휴학 중이라고 한다. 양측 교제 관계는 부모도 알고 있다.

충격적인 불륜 사건으로 오토타케는 인심을 잃었지만 한편으로 배리어 프리 운동은 또 잘 하고 있어 '사회운동가로서의' 오토타케는 여전히 활동 중이다. 작가 우노 츠네히로는 "그가 불륜을 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나, 그가 이룬 사회적인 업적까지 부정하지 말자."라고 그를 옹호하기도 했다.

5. 여담

6. 저서



[1] 도야마현의 도야마는 富山라고 쓴다.[2] 이 발언은 역사 교과용도서 국정화 논란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나왔다. 당시에 국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있었다.[3] 7차 교육과정.[4] 2022년 기준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5] 오토다케 본인도 2번째 저서 <내 인생은 내가 만든다>에서 구원 군과 만난 일화를 적었는데 조금이라도 팔다리가 있어 행동이 가능한 자신과 달리 앉는 것조차 제대로 못하는 구원 군을 보고 놀랐다고 적혀있다.[6] 트위터 한국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명작에서한글자만바꾸면이상해진다' 같은 내용으로 비슷한 해쉬태그가 있다.[7] 5년 후 정말로 불륜을 했다는 걸 보면 공교롭다.[8] 해당방송분에서 나온 인터뷰에 따르면 이전부터 본인은 꽤나 출연을 원했었고, 방송을 보면서 자기가 이런 곳에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은 부분도 생각해봤다고 한다. 예를 들면 공항 24시간 편에서 여행 가방 찾는 곳에서 가방들 사이에 자기가 아무렇지 않게 누워있다든가.[9] 여담으로 이 책의 파트 중에 오체는 불만족, 밤은 대만족?이라는 파트가 있다. 원조교제 여고생에 대한 것을 취재하며 생긴 에피소드를 쓴 파트인데, 불륜 사건 이후인 지금 제목만 보면 16년 후 본인의 논란을 예언하는 것 같아 뭔가 영 의미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