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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colbgcolor=#0065bd> 스코틀랜드 픽트 제35대 군주 옹구스 1세 Óengus I | |
이름 | 옹구스 막 퍼구소 (Óengus mac Fergusso) |
출생 | 미상 |
사망 | 761년 (향년 불명) |
재위 | 제35대 픽트 군주 |
729년 ~ 761년 (32년) | |
아버지 | 퍼구소 |
형제 | 탈로간, 브리데이 5세 |
아들 | 탈로간 2세, 브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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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픽트 연대기>에 기록된 픽트족의 제35대 왕. 달 리어타를 복속했다.2. 행적
아일랜드에서 작성된 중세 초기 연대기에서 밝힌 계보에 따르면, 옹구스 1세는 먼스터 왕국을 통치했던 에오가나크타(Eóganachta) 왕조의 후손이라고 한다. 에오가나크타 왕조의 방계 가문으로 서 먼스터 지방을 다스렸던 '에오가나크타 로차 레인'(Eóganacht Locha Léin)의 첫번째 가주인 코이르프레 루아크라 막 루이르크(Coirpre Luachra mac Cuirc)는 스코틀랜드 픽트족의 왕 페라다흐(Feredach)의 딸인 몽파인드(Mongfind)가 낳은 코날 코크(Conall Corc)의 아들로, 아버지가 스코틀랜드에 있을 때 태어났다. 이후 아버지가 아일랜드로 건너가서 카셀(Cashel) 왕국을 세운 후 어느 시점에 상속 재산을 주장하기 위해 찾아갔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집사를 죽였고, 이로 인해 아버지의 저주를 받고 서 먼스터로 추방되었다. 이후 그의 후예가 대대로 서 먼스터 일대를 통치했는데, 옹구스 1세가 바로 이들의 후예라는 것이다.하지만 현대 학계에서는 이 기록은 735년 옹구스 1세와 먼스터의 왕이자 아일랜드의 아르드리였던 카탈 막 핑귀네(Cathal mac Finguine)가 동맹을 맺을 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선전용으로 조작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다수의 학자는 그가 앵거스와 먼스 지방에 해당하는 키르킨(Kirkinn) 지역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픽트족 연대기에 따르면, 아버지의 이름은 퍼구소(Fergusso)라고 하며, 형제로 탈로간, 브리데이 5세가 있었다.
724년 픽트족의 왕 네크탄 3세가 모종의 사유로 퇴위하고 수도자가 된 뒤 드레스트 7세가 왕위에 올랐다. 드레스트 7세는 726년 네크탄 3세를 투옥했지만, 얼마 후 알핀 1세에 의해 폐위되었다. 그 후 왕위를 놓고 알핀 1세, 드레스트 7세, 네크탄 3세, 그리고 옹구스 1세가 경쟁을 벌였다. 728년, 옹구스 1세는 퍼스 인근의 애른 강과 타이 강이 합류하는 지점인 모나미드 크레이브에서 알핀 1세를 격파하고 많은 적장을 살해했다. 그 후 알핀 1세는 네크탄 3세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해 모든 세력을 잃었고, 네크탄 3세가 왕위에 복귀했다.
729년, 옹구스 1세는 스코틀랜드 애버딘셔의 페터카인 마을 인근 케언 오마운트 언덕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네크탄 3세를 격파하고 수도원으로 추방했다. 이후 드레스트 7세가 옹구스 1세에 대적했지만, 드로모 데르그 블라투그(스코틀랜드 블레어고리 인근의 드러머그로 추정된다)에서 옹구스 1세에게 패사했다. 이리하여 옹구스 1세는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픽트족의 단독 군주가 되었다.
그 후 옹구스 1세는 달 리어타로 눈길을 돌렸다. 731년, 옹구스 1세의 아들 브리데이가 이끄는 픽트족과 탈로건 막 콩구사(Talorgan mac Congussa)가 지휘하는 달 리어타군이 무이보르그(Muiborg)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달 리어타군이 승리했다. 하지만 브리데이는 전력을 재정비한 뒤 재차 침공해 탈로건의 아들 콩구스를 격파했다. 733년, 달 리어타의 통치자 던갈 막 셀바이흐가 당시 토리 섬의 성역에 있던 브리데이를 생포했다. 아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에 분노한 옹구스 1세는 734년 달 리어타를 대대적으로 침공해 두인 레스핀 요새를 파괴하고 던갈에게 부상을 입혔다. 던갈은 픽트족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아일랜드로 망명했다.
한편, 옹구스 1세는 두놀리아(Dunolia) 일대에서 원정을 벌여 아톨(Atholl) 지방의 왕의 아들을 사로잡았다. 735년 먼스터의 왕이자 아일랜드의 아르드리인 카탈 막 핑귀네와 동맹을 맺었고, 736년 달 리어타를 재차 침공했다. 아일랜드 연대기에 따르면, 옹구스 1세는 달 리어타 전역을 황폐화했으며, 크레이크(Craik)와 던에드(Dunadd) 요새를 공략했다고 한다. 이에 견디지 못한 아일랜드 게일인들은 콩구스의 아들 탈로크의 주도하에 던갈과 형제 페라다흐을 체포해 픽트족에게 넘겼다. 다만 그 과정에서 옹구스 1세의 아들 브리데이가 사망했다.
옹구스 1세는 아들이 사망한 것에 깊은 슬픔에 빠져 형제 탈로간에게 원정군을 맡겼고, 탈로간은 로안 씨족의 무이레다흐 막 아인브첼라흐 왕을 칼라로스에서 격파했다. 739년, 옹구스 1세는 아톨의 탈로간 왕을 생포한 뒤 강에 빠뜨려 죽였다. 그 이유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달 리어타의 왕과 일종의 교류를 했던 게 발각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741년, 옹구스 1세는 아일랜드에 있는 인드레흐타흐(Indrechtach)의 영토를 침공헀고, 인드레흐타흐는 2차례 전투에서 모조리 패배하고 전사했다. 그 후 달 리어타 전역이 옹구스 1세에게 복속되었고, 달 리어타의 왕들은 픽트랜드의 봉신이 되었다.
달 리어타 복속에 성공한 뒤, 옹구스 1세는 하드리아누스 방벽과 안토니누스 방벽 사이에 영역을 구축한 스트래스클라이드(Strathclyde) 왕국으로 관심을 돌렸다. 노섬브리아가 이 왕국의 주권자로 군림했기 때문에, 이 지역을 공략하려면 노섬브리아 왕국의 양해를 얻거나 그들을 물리쳐야 했다. 740년 노섬브리아의 에드베르트 왕은 픽트족과 달 리어타가 전쟁을 벌이는 틈을 타 픽트랜드 남부를 침공하려 했지만, 그가 없는 사이에 머시아의 에델발드 왕이 노섬브리아 일부 지역을 황폐화했고, 에드베르트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
744년, 옹구스 1세가 파견한 픽트족이 스트래스클라이드 왕국의 브리튼인과 격돌했지만, 전투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 750년, 밀가비 시 인근의 머그독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옹구스 1세의 형제인 탈로간이 스트래스클라이드 왕국의 브리튼인에게 전사했다. 얼스터 연대기에 따르면, 750년의 패배 이후 옹구스의 주권이 약화했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 기록에 대해 아에드 막 에흐다흐(Áed mac Echdach)가 달 리어타의 일부 또는 전부를 차지한 뒤 옹구스 1세의 지배권을 거부했음을 암시한다고 주장했지만, 진위는 불분명하다.
756년, 옹구스 1세는 노섬브리아와 동맹을 맺은 뒤, 노섬브리아 왕 에드베르트와 함께 스트래스클라이드 왕국을 침공했다. 처음에는 연합군이 우세했고, 8월 1일에 스트래스클라이드 왕국이 그들과 협정을 맺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8월 11일 스트래스클라이드 왕국의 브리튼인들이 반격을 개시해, 연합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결국 옹구스 1세는 스트래스클라이드를 정복하려는 모든 계획을 포기했다.
761년에 사망했고, 형제 브리데이 5세가 픽트족의 왕이 되었다. 그의 아들 탈로간 2세는 780년부터 782년까지 픽트족의 왕위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