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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율/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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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현대의 원주율 계산 세계기록
3. 여담

1. 개요


많은 곳에서 원을 '완전성'의 상징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원의 지름과 둘레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이 불규칙한 숫자는 역설적으로 신비로움의 대상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어째서 원의 길이가 지름의 [math(3.14\cdots)]배가 되는가'를 설명할 수 있다면 우주의 진리를 알 수 있다는 도시전설도 있다. 아마도 [math(\pi)]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이라 그런 듯 하다.

2. 역사

최초의 원주율은 이집트바빌로니아에서 구한 것으로 여겨진다. 기원전 1900년에서 기원전 1600년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바빌로니아의 점토판 TMS 3 에선 [math(\dfrac3{\dfrac{57}{60} + \dfrac{36}{60^2}} = \dfrac{3600}{1152}=\dfrac{25}8 = 3.125)]을 사용했다.

기원전 1650년경 아메스가 쓴 아메스 파피루스에선[math(\boldsymbol{\left(\dfrac43\right)^4}=\dfrac{256}{81}\fallingdotseq 3.160493)]을 사용했다. 직접 바퀴를 굴려서 구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시라쿠사아르키메데스가 기원전 250년 즈음에 원에 내접하는 96각형을 활용해 원주율이 [math(3\dfrac{10}{71}\fallingdotseq3.14084)]과 [math(3\dfrac17\fallingdotseq3.14286)]의 사이이며, 대강 [math(\dfrac{211875}{67441}\fallingdotseq3.14163)]보다 조금 큰 값을 가지는 수임을 밝혀낸 바 있다. 이 원주율 계산법은, 이후 1400년, 인도의 마다바가 무한 급수를 이용하는 방법을 창안해내기 전까지 1,600년간 널리 통용되었고 이런 이유로 원주율을 '아르키메데스의 상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2세기에 활동했던 그리스계 로마인 과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자신의 저서 '알마게스트'에서 [math(3\dfrac{17}{120} \fallingdotseq 3.14167)]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4세기의 인도에서는 [math(3\dfrac{177}{1250}=3.1416)][1]을 썼고, 이후 7세기 들어서부터는 [math(\sqrt{10}\fallingdotseq3.162278)]을 혼용해 사용했다. 이것은 후한시대 이후 중국에서 사용한 값이기도 했는데, 도리어 [math(\sqrt{10})]이라는 실제와 좀더 거리가 먼 값이 애용된 건, [math(\sqrt{9.65},\,\sqrt{9.81},\,\sqrt{9.86},\,\sqrt{9.87}\fallingdotseq3.14165561,\,\cdots)]이라는 값이 나오자, 이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넘겨짚고 원주율의 정확한 값은 [math(\boldsymbol{\sqrt{10}})]일 거야! 라는 지나친 비약을 한 것이었다. 실제로는 다른 지역에서 도입하기에 앞서 10진법을 먼저 사용하던 중국인, 인도인이었기에 빚어진 촌극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원주율은 [math(\sqrt{9.8696044010893})] 정도에서 수렴한다.

중국에서는 진나라시절 [math(3)]으로 썼다고 전해진다. 후한시대 수학자인 장형이 [math(3.1623)]을 제시한다. 263년 삼국시대 위나라 유휘(劉徽)가 구장산술에 달아둔 주석에서 정[math(192(=6\times2^5))]각형을 이용하여 "약 [math(3.14)]"라는 비교적 근접한 값을 제시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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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년 경에 육조시대 송나라의 태사령 조충지(祖沖之, 429~500)와 아들 조긍지(祖暅之)는 원에 내접하는 정[math(24576(=6\times2^{12}))]각형을 이용하여 [math(3.141592(6))]이라는 보다 정확한 값으로 계산하였다. 이 값은 이후 거의 천년 간 가장 정확한 원주율이었다. 사실 조충지 부자가 구한 소수점 이하 7자리 정도면 실용적 계산, 즉 공학적 계산에서는 충분히 유용한 수준이다.[3] NASA아폴로를 보낼 때 쓴 원주율이 소수점 아래 5자리까지였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중세 시대 내내 서양에선 '약 [math(3)]'이나 '[math(3\dfrac18 = \dfrac{25}8)]', '[math(\dfrac{256}{81}\fallingdotseq3.160494)]'(후자 둘은 수도원에서 사용), '[math(3\dfrac17=\dfrac{22}7)]'(교황 실베스테르 2세(재위 999-1003)가 수도사 시절 계산) 등으로 원주율을 사용했다. '약 [math(3)]'은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기초교육에서 가르치는 원주율로 쓰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계산을 요구하는 곳에서는 절대로 쓸 수 없다. 원주율을 [math(3)]으로 쓰면 원에 내접하는 육각형의 둘레 및 원둘레의 길이가 서로 동일한 값이 되고 만다.

이러한 옛날 인식이 현재에도 남아 있어서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일부 근본주의 신자들은 '약 [math(3)]' 이상으로 원주율을 아는 것을 불경으로 여긴다는 골때리는 이야기도 있는데, 근거는 성경의 구절에서도 솔로몬성전을 설명할 때 원주율을 [math(3)]으로 여기고 서술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4]

물론 나름 유대교 등에서도 원전에 히브리어로 [math(3.14)]를 상징하는 문자 암호를 쑤셔넣었다는 해석도 내놓았고,[5] 서기 150년경의 랍비 느헤미야(원주율로 [math(=3\dfrac17=\dfrac{22}7)]을 사용)는 어떻게든 성경의 그 구절이 "원주율은 [math(3)]이다."라는 뜻이 아니라는 여러 해석을 만들려고 고군분투했었다.[6]

이후 1400년 경 인도의 마다바가 라이프니츠 급수(Leibniz series)를 고안하여 소수점 이하 10자리까지, 얼마 뒤 1424년 페르시아의 잠쉬드 알 카샤니가 정[math(805{,}306{,}368(=6\times2^{27}))]각형(!!)을 이용하여 소수점 이하 16자리까지 알아냄으로서 원주율에 대해 보다 정확한 값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시대는 비단 원주율의 계산 뿐 아니라 무한과 극한을 다루는 수학의 혁신기이기도 했으며, 15세기 인도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원주율을 구하는 방식이 고대에 이용된 내접/외접 다각형을 이용한 계산으로부터 무한 급수를 이용한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이전보다 높은 수준의 정확도로 원주율의 값을 계산해내기 시작했다.

이후 발렌티우스 오토가 [math(\dfrac{355}{113}\fallingdotseq3.14159292)]이라는 비율을 서기 1573년 제시했다.[math(\dfrac{355}{113})]은 바로 천년 전 조충지가 채택한 분수 표기였으며 이 분수값은 원주율의 연분수 표기
[math(\pi=3+\cfrac1{7+\cfrac1{15+\cfrac1{1+\cfrac1{292+\cfrac1{1+\cfrac1{\ddots}}}}}})]
에서 [math(\cfrac1{292+\cfrac1{1+\cfrac1{\ddots}}}\to0)]으로 근사시킨 값이기도 하다.[7]


1593년 프랑수아 비에트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무한 곱을 이용한 원주율 계산법을 고안해냈다. 이는 아래와 같으며, 이를 '비에트 공식'[8]이라고 한다.

[math(\dfrac2{\pi} = \dfrac{\sqrt2}2{\cdot}\dfrac{\sqrt{2 + \sqrt2}}2{\cdot}\dfrac{\sqrt{2 + \sqrt{2 + \sqrt2} }}2{\cdot}\cdots)]
[증명] [펼치기 · 접기]
주어진 식을 [math(\displaystyle\prod_{n=1}^\infty a_n)]의 형태로 나타냈을 때, 수열 [math(\{a_n\})]의 점화식을 구해보면
[math(a_{n+1}=\dfrac{\sqrt{2a_n+2}}2=\sqrt\dfrac{a_n+1}2)]
이다. 코사인 함수의 반각 공식이 이 점화식의 형태를 띠면서 [math(\cos\dfrac\pi4 = \dfrac{\sqrt2}2 = a_1)]이므로 [math(a_n = \cos\dfrac\pi{2^{n+1}})]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사인 함수의 반각 공식을 이용하여 다음 관계식이 성립함을 알 수 있다.
[math(\begin{aligned} 1 &= \sin\dfrac\pi2 \\ &= 2\sin\dfrac\pi4\cos\dfrac\pi4 \\ &= 2\left(2\sin\dfrac\pi8\cos\dfrac\pi8\right)\cos\dfrac\pi4 \\ &= 2\left\{2\left(2\sin\dfrac\pi{16}\cos\dfrac\pi{16}\right)\cos\dfrac\pi8\right\}\cos\dfrac\pi4 \\ &\quad\vdots \\ &= 2^n\sin\dfrac\pi{2^{n+1}}\prod_{k=1}^n\cos\dfrac\pi{2^{k+1}} \\ \therefore \prod_{k=1}^n\cos\dfrac\pi{2^{k+1}} &= \dfrac1{2^n\sin\dfrac\pi{2^{n+1}} } = \dfrac2\pi\dfrac1{\dfrac{2^{n+1} }\pi\sin\dfrac\pi{2^{n+1}} }\end{aligned})]
주어진 식은 [math(n\to\infty)]일 때의 좌변이며 이때 [math(\dfrac{2^{n+1}}\pi\sin\dfrac\pi{2^{n+1}}\to1)]로 수렴하므로 주어진 식은 [math(\dfrac2\pi)]로 수렴한다.


1596년 라이덴 대학의 루돌프 판 코일런(Ludolph van Ceulen)이 소수점 이하 20자리까지 구함으로써, 172년 전에 페르시아의 알 카샤니가 세웠던 세계 최고 기록을 깨는데 성공했다. 이후 독일에서는 루돌프 판 코일런이 소수점 이하 35자리까지 원주율을 계산한 이후(1621년 공표) 원주율을 '루돌프 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에도 시대에 해당하는 서기 1722년 일본의 타케베 타카히로가 원주율을 소수점 이하 41자리까지 계산해냈고, 서기 1739년 마츠나가 요시스케는 무한 급수를 사용하여 소수점 이하 49자리까지 구했다.

한편 1706년 윌리엄 존스가 [math(\pi)]를 처음으로 원주율을 나타내는 기호로 도입했다. 1766년 스위스의 람베르트(J. H. Lambert)가 [math(\pi)]가 무리수임을 증명했고, 1882년 독일의 린데만(F. Lindemann)이 [math(\pi)]가 초월수임을 증명하여 원적문제의 작도 불가능성을 최종 증명했다.

이 와중에도 자릿수 높이기 경쟁은 끝나지 않았고 어떤 수학자들은 [math(\pi)]의 값을 더 많은 자리까지 구하기 위해 심지어 자신의 일생까지 바치기도 했는데, 윌리엄 샹크스(Willian Shanks)라는 19세기 중반의 영국 수학자는 마친의 공식을 이용하여 소수점 이하 707자리까지 15년간 손으로 계산하였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와서 1945년 퍼거슨이 전자식이 아닌 기계식 계산기로 한 계산에서 이중 527자리부터는 틀렸다는 사실이 순식간에 밝혀졌다. 다만 현재까지 계산기의 도움을 빌리지 않은 수작업 계산에서는 1873년 샹크스가 세운 소수점 이하 527자리가 [math(\pi)]의 근삿값으로서 최정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요즘 컴퓨터로 최신의 계산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슈퍼컴퓨터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노트북 컴퓨터로 10억 번째 자리까지 계산하는데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래도 이 시기 수학자들의 노력이 헛짓만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수학자들이 후세에 컴퓨터가 있다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여러 유도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게 근사하게 파이가 표현된다.
[math(\displaystyle \pi = 4 \sum_{n=0}^\infty \frac{(-1)^n}{2n+1} = 4 {\left( \frac11-\frac13+\frac15-\frac17+\frac19-\frac1{11}+ \cdots \right)})]
이 급수는 역탄젠트 함수의 급수 전개를 알면 쉽게 얻어낼 수 있다. 다만 수렴 속도가 매우 느려터진 급수로 둘째 자리까지 정확한 값이 나오는 데 600여 항이 필요하다. 최초로 역탄젠트 함수의 급수 전개를 알아낸 마다바(Madhava)도 원주율을 구하기 위해 수렴 속도가 훨씬 빠른 다른 급수를 썼다. 무리수가 들어가는 표현이지만... 어쨌든 수열의 합으로 원주율을 나타낼 수 있음을 안 뒤로는 수렴 속도가 훨씬 빠른 급수를 찾아나섰고, 1706년 존 마친(John Machin)이 발견하여 당시 소수점 이하 100자리까지 계산하는데 사용한 급수는 현대에도 쓰이고 있다.

2.1. 현대의 원주율 계산 세계기록

3. 여담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측정하는 기준 중 하나가 [math(\pi)] 값을 주어진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자리까지 구할 수 있냐는 것이다. 개인용 PC에선 한 때 슈퍼파이라는 프로그램이 CPU 연산 테스트 용으로 널리 쓰였다.[10] 제대로 된 원주율 계산 프로그램으로는 y-cruncher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앞서 적은 슈퍼파이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하였으며 원주율 계산 세계기록도 전부 이 프로그램으로 달성했을 정도로 널리 쓰이는 프로그램이다. 슈퍼파이를 쓰다가 y-cruncher를 쓰면 10초 걸리던 원주율 100만 자리 계산이 1초 미만으로 줄어드는 신세계를 접할 수 있다.(슈퍼파이 연산 결과는 해당 자릿수까지 20회 반복한 수치이기 때문에, 100만 자리 계산에 10초가 아니라 약 0.5초가량 소요된 것이다) 또한 저 프로그램은 원주율뿐만이 아니라 다른 초월수/무리수의 계산도 몇 가지 지원한다.

신문에서 이따금 (주로 파이의 날에) 피에르 자르투(Pierre Jartoux, 1669 ~ 1720)라는 예수회 사제 겸 수학자가 원주율을 처음 고안했다는 헛소문이 등장하기도 한다. 자르투는 중국에서 수학자로 활동했으며 유럽의 수학 지식을 전파하기도 한 것은 맞지만, 자르투가 활동한 시기에는 원주율 값이 3.14 정도는 된다는 사실은 동서양에서 벌써 1,000년도 전에 다 알려졌으니 헛소문에 낚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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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00년 전의 아르키메데스 상수보다 훨씬 가깝다.[2] 그리고 흔히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 구장산술은 유휘 주석본(휘주)이 정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이 진나라 때 비롯되어 전한 때 쓰여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유휘의 글 때문이다. 이후 의 이순풍이 주석을 추가했다.[3] 더 복잡한 파이의 근삿값은 계산기가 없는 상황에선 사용하기에 불리하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조충지가 편의를 위해 원주율의 근사치로 이용한 [math(3\dfrac17=\dfrac{22}7)]이란 수는 지금도 현대적 계산식과 아라비아 숫자 없이 쓰기엔 충분히 편리한 감이 있다. 이보다 더 정확한 값을 20진법과 자릿수의 사용, 그리고 고도의 수학, 천문학을 발전시킨 마야인들이 발견하지 않았을까 하는 설도 있으나 추측일 뿐이다. 여하간 이로서 중국은 조충지의 시대에 아르키메데스를 앞질렀다. 아쉽게도 조충지가 쓴 원주율에 대한 책인 철술(綴術)은 전해지지 않는다.[4] 심지어 지금까지의 원주율은 과학자들이 모두 속인 것이며, 원주율은 유리수라는 주장도 이따금 유사역사학처럼 알 만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그 값도 나름 다양해서 [math(\dfrac{20612}{6561}\fallingdotseq3.14159427)]이라는 값도 있고, [math(3.16)]보다 더 큰 값도 있다.[5] line이라는 뜻의 단어의 표기가 조금 다른데, 문자 숫자로 해석하면 이것이 [math(3.14)]가 된다고 한다.[6] 예를 들어, 둘레는 겉부분이 아니라 통 안쪽의 둘레를 재서 원주율이 작게 나왔다고 주장했다. 예로 든 구약성경의 열왕기상 7장 26절에 따르면 물통의 지름은 [math(10)]큐빗(약 [math(180)]인치), 둘레는 [math(30)]큐빗(약 [math(540)]인치), 그리고 물통의 폭이 [math(4)]인치(역대하 4장 5절)이므로 내부직경은 [math(172(=180-8))]인치로 실질적인 원주율값은 [math(\dfrac{540}{172})], 즉 약 3.1395라는 근사치가 나온다. 그러나 문제는 지름과 둘레의 단위가 큐빗이고 물통의 두께가 인치로 되어있어 정확한 값을 구할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에는 대략적인 값으로 볼 수밖에 없다.[7] 거꾸로 [math(\pi)]의 연분수 표기에서 [math(0)]으로 근사할 분수가 나중이 될수록 참값에 가까운 유리수를 얻을 수 있다. 초창기에 쓰인 [math(3\cfrac17 = \cfrac{22}7)] 역시 [math(\cfrac1{15+\cfrac1{1+\cfrac1{292+\cfrac1{1+\cfrac1{\ddots}}}}}\to0)]로 근사해서 얻어지는 식이다.[8] 근과 계수의 관계로 알려진 비에트의 정리와는 다르다.[9] 파이의 날이기도 하다.[10] 지금은 전혀 안 쓰고 일반적으론 언급도 안 하는 수준이다. 유명하던 시절 오버클럭 기록 비교용으로 많이 쓰인 탓에 세계 신기록 경신 때만 잠깐 언급되는 정도. 이 슈퍼파이란 프로그램은 만들어진지 워낙 오래된 프로그램이라(1995년에 짠 코드니 당연하다) 멀티코어를 전혀 지원하지 않으며 AVX, SSE 같은 부동소수점 연산을 가속할 수 있는 현대 CPU의 명령어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계산 알고리즘 자체가 비교적 비효율적인 구식 알고리즘이다(슈퍼파이의 알고리즘은 멀티스레드화하기가 매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