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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20:29:56

이성계(육룡이 나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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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 첫 번째 용, 조선의 창시자
이성계

李成桂
파일:육나이성계.jpg
본명 이성계 (李成桂)
아버지 이자춘
배우자 한씨
강씨 부인
자녀 장남 이방우
차남 이방과
삼남 이방의
사남 이방간
오남 이방원
육남 이방연
칠남 이방번
팔남 이방석
배우 천호진 육룡이 나르샤
조선의 제1대 왕, 훗날 태조.
조선의 군사적 건국자. 이방원의 아버지

불패의 무장이며 백발백중의 신궁이고,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무엇보다 의리를 중시 여기는 호걸이었다. 자기 사람들을 끔찍하게 보살피고, 싸움에 있어서 뒤로 물러서 있는 법이 없이 항상 앞장서서 솔선수범하여 싸운다.

이러한 성격 탓에 부하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그를 따랐고, 보다 많은 백성들 또한 그를 따르고 싶어 한다. 고려의 권력을 움켜쥔 권문세족들은 무섭게 치솟는 이성계의 인기를 경계했지만, 이성계는 정치적인 부분으로만 가면 우유부단해진다.

하지만 훗날, 정도전과 뜻을 도모하여, 조선을 건국하게 된다.


1. 개요2. 작중 행적
2.1. 고려 시절2.2. 조선 건국 이후
3. 인물 묘사4. 실력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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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58616b30c940becfe4e823b3290f973722e96a866db8cf72a698e418702d314b.png
드라마 용비어천가 시리즈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

2.1. 고려 시절

1화, 도망치는 간자를 원거리에서 화살로 저격하는 모습으로 신궁의 면모를 뽐냈다. 이후, 자신과 같은 무장이 되어 전쟁터를 누비겠다는 이방원에게 간자를 처단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쟁의 현실을 알려준다. 이후, 도당에 합류하기 위해 개경으로 올라오고 호기롭게 이인겸에게 선전포고까지 하지만, 이인겸에게 자신의 약점[1]이 잡히자 굴욕적으로 굴복하고 동북면으로 돌아가고 만다.

여말선초를 다룬 작품 치고는 이성계의 비중이 낮은 편으로, 1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7회부터 본격적으로 정도전이 안변책을 제시하는 과정이 그려지면서 다시 등장하게 된다. 이성계가 엄청난 무력을 뽐낸 황산 전투는 이미 지난 시점으로 정도전은 그 전쟁 과정중에 벌어진 일을 계기로[2] 정도전은 이성계가 마음의 빚을 가지고[3] 고려를 위해 열심히 전투를 하는 것을 알아챈다.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있고 정의로우며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그를 새 나라의 왕으로 선택했다고 하지만, 이성계는 이후 아들 이방원과의 대화에서 자기가 정도전의 일을 위해 움직이면 방원과 정도전이 말한 이성계가 가진 왕으로서의 자질에 어긋나는 모순이 생긴다고 생각하여 거절하고 안변책[4]에 도장을 찍는 것 또한 거부한다. 그래서 이방원은 몰래 이성계의 도장으로 이신적이 올린 안변책에 도장을 찍어 전해주고 함주를 떠나 안변책을 통과시키는 것으로 역량을 보이려 하고, 그렇게 본의 아니게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이후 안변책이 도당에서 통과됐다는 얘기를 전해 듣자, 크게 분노하여 이방원을 잡아들이라 명한다. 하지만 이방원은 함주를 벗어나고, 이방과에게 안변책을 철회한다는 장계를 올리라 함과 동시에, 개경에 있는 이방우에게 이방원을 잡아두라 명한다. 이방과가 방원의 방식은 잘못되었지만, 안변책 자체는 오랫동안 바라던 것이니 받아들이는게 어떠냐고 물으나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지 않는 이상 하지 않는 것이다라며 단호하게 거절한다.[5] 그러다 호발도가 침공해 왔다는 전령을 듣고, 격퇴 준비에 나선다.

호발도를 몰아붙여 최종 공격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이방우가 이인겸에 의해 방원이 순군부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가지고 온다. 이성계가 안변책 통과를 위해 홍인방과 밀거래를 하였으며[6], 그 중계를 방원이 맡았다는 혐의. 방우는 이인겸이 먼저 싸움을 걸어왔으니 전주 이씨 가문이 싸움을 피할 수는 없지 않느냐[7], 방원이를 구해야 한다며 안변책 철회 장계를 올리지 않을 것을 역설하자, 수긍한 뒤 호발도와의 최종 전투에 나선다.

한편 도당에서는 정도전의 계략[8]에 의해, 이성계가 무려 백윤의 암살을 지시한 배후로 지목되어 세수를 나눠먹는 밀거래와는 차원이 다른 혐의를 씌운다는 것, 즉 이성계와 전쟁을 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두려움에 온 도당이 사로잡힌다. 이 때의 반응을 보면[9] 이 시점에서 이미, 이성계가 빡치면 막아내기는 커녕 나라가 뒤집어지는 건 기정사실인 것을 도당 역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10][11] 이런 도당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성계는 호발도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뒤 이지란과 함께 승리를 자축하며 방원이를 구하러 가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개경에 도착한다. 그리고 간밤에 이인겸을 찾아가 활과 화살을 탁자위에 놓고 이방원을 풀어달라 한다. 하지만 한번 말해서 들을 리 없는 이인겸은 자신의 사병들을 시켜 이성계를 위협하지만 그는 "활이 원거리 무기라고들 오해하지만 내 손에선 아니야. 네놈들이 날 죽이는 것보다 내가 화살을 쏴 이인겸을 죽이는 것이 더 빠르다!"고 위협하여 사병들이 칼을 거두게 만들고 이인겸의 집을 나온다. 그리고 이인겸이 진짜로 백윤 살해죄를 그에게 뒤집어 씌워 추포하려고 한다. 다음날 도당 회의에서 단신으로 개경에 들어온 이성계를 추포하여 조사를 해보자는 주장이 나오던 와중, 이성계는 정몽주의 부름으로 도당에 들어가 약산이라는 도적이 조작된 밀서를 넣은 사실을 밝힘으로써 바로 한 회 전에 정도전에게 그렇게 역관광을 먹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이인겸에게 또다시 수모를 선사한다.

이후 안변책의 일로 사죄를 구하기 위해 무릎을 꿇은 이방원을 보며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던 아버지가 권력에 무릎꿇고 머리를 조아린것을 보고 어린 마음에 그가 받았을 상처와 실망감을 이해하며 이방원의 손을 잡으며 앞으로는 절대로 권력에 무릎꿇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겠다고 맹세한다. 어린시절 이방원이 봤던 진짜 잔트가르[12]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후 정도전과의 협력을 통해 홍인방과 길태미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었지만 최영의 반대 탓에 이인겸은 유배에 그치는 것에 만족하고 만다. 다만, 이인겸이 귀양을 떠날 때 옆에서 "건강하시오. 그래야 내가 죄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니."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 아직 포기하지는 않은 듯 싶다. 드라마 정도전에 나온 이성계이인임을 끝까지 처벌하려고 했다.

정도전이 앞으로는 최영과 대립하기 위해 이인겸, 홍인방, 길태미의 당여들을 흡수하라고 하지만 되려 "누가 새 나라의 왕이 된다고 했소?"라고 역정을 내면서 정도전을 쫓아낸다. 하지만 이방원의 설득으로 정도전의 새 나라를 위한 설계를 듣게 되고 아주 약간은 마음이 움직인 듯 보였다. 정도전의 설계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최영의 부른 탓에 곧바로 도당에 들지만 적룡에게서 모든 것을 들은 최영이 정도전과 이인겸을 한 선상에 보면서 매도하고 "정도전을 쳐내시게. 그럼 나도 이인겸을 쳐내겠네."라고 경고한다. 다만, 자신을 따르는 정도전을 버릴 수 없었던 이성계는 최영을 설득하려 하지만 최영에게서 되돌아온 대답은 "자네는 정도전과 함께 가시게. 나는 이인겸과 함께 가겠네."였다.

19화에선 철령 이북을 내놓으라는 명나라의 요구에 이상하리만큼 대응이 없는 최영, 우왕과 함께 사냥을 떠나게 되고 19화의 마지막에 최영에게서 요동 정벌의 의견을 듣게된다.

20화에선 요동 정벌을 명하는 우왕과 최영에게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라고 반대하지만 최영은 되려 "우리는 수나라와 당나라를 벌벌 떨게 했던 대 고구려의 후손이다."라고 반박한다. 그의 말에 "고구려는 자신의 땅을 빼앗기지 않았을 뿐 한 번도 수나라나 당나라를 정벌한 적이 없으며 무모한 원정으로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적이 없다."라고 대꾸한다.[13] 그의 말에 화난 우왕이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자 "명나라가 철령 이북의 땅을 공격한다면 을지문덕처럼, 양만춘처럼 적을 막을테지만, 요동 정벌만큼은..."라고 말한다. 이것에 화난 우왕이 이성계를 배려 하지만 최영이 우왕을 막는다. "어찌 백전 백승의 장수가 이렇게 두려워하는 것인가?"라는 최영의 질문에 "저는 백전 백승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지난 번의 요동정벌 때 정벌 후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회군했는데, 회군 중 죽은 수천명의 병사들의 부모에게 아들의 시체를 돌려준 것을 어찌 승전이라 할 수 있겠냐며 반박한다. "병사의 희생은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그곳에 살게될 자신들의 후손을 생각하시게."라는 말에 최영에겐 사심도 없지만 백성도 없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후 정도전과의 독대에서 유일한 해결책이 정변이라는 것을 듣게 되지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한다.

며칠 동안 무리한 징집으로 인해 백성들이 자신들의 가족과 강제로 이별하는 모습을 본 이성계는 심각한 생각에 잠긴다. 정도전이 요동 정벌이라는 사태를 막기 위해 최영을 막기 위한 모든 준비를 끝내놓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거늘!"이라고 소리치지만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장군이 하지 않으신다면 모든 것은 취소될 것입니다."라며 결정을 재촉한다.하지만 결국 이성계는 정변을 취소하고 우군통제사가 되어 5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향해 나아간다.

가던 도중, 가별초의 수장 춘길로부터 가별초가 아닌 군사들 중에서 탈영병이 속출하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경계를 더욱 강화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어 "이길 수 있어......보급선만 잘 유지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전쟁이야!"라며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성계는 요동 정벌에 혼신을 다해 임할 계획이었다.[14][15].

그러나 연일 계속되는 폭우에 압록강을 건너지 못하고, 부교를 설치하기 위해 말뚝을 박으려던 병사들만 계속해서 죽어가고 탈영병들은 점점 늘어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병까지 막사 내에 퍼지게 되고, 남은은 무릎을 꿇으며 "왕명과 상관 없이 회군하셔야 합니다!" 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다만, 최영이 자신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회군 요청에도 불구하고 개경에서 올라온 도강 독촉 명령에 고심에 빠진다. 그 때, 이신적이 그에게 "탈영병이 갈수록 늘어난다."고 보고하여 개경에서 온 처사 김완과 함께 무릎 꿇고 있는 탈영병에게로 향해 그들에게 "자신들만 살려고 동지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이냐!"라고 호통치며 탈영병을 모두 베라고 하지만[16], 예전에 가짜 왜구 역할을 하다가 이성계의 가별초로 들어온 장수 춘길이 무릎을 꿇으며 거절하고 "장군님께선 우리를 배신하셨습니다. 장군님은 10만 명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5만 명의 아들을 빼앗고 계십니다."라고 항명한다. 무휼 역시 그의 옆에서 무릎을 꿇으며 "그날 밤[17]에 달렸어야 할 건 흑마였습니다."라고 말하자 이성계는 자신의 부인과 자신의 가족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18] 김완이 무휼을 베기 직전 그를 추포하라고 명령한다.
각성한 이성계

김완을 추포하고, 이후 조민수에게 회군을 제안하는데, 처음엔 조민수가 반역을 하려는 것이냐고 반발하여 분위기가 험악해지지만, 이성계의 결심을 본 조민수는 일단 한 번 더 회군을 요청하자고 제안한 뒤, 추후 이성계와 독대한 뒤 상의하여 회군하기로 합의한다.[19] 다음날, 공요군 전체를 집결시킨 뒤, "5만의 아들들이여, 우리는 우리를 기다리는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라고 독려한 뒤, 회군을 시작한다.

한편 회군하는 길에 가족을 인질로 잡아두었으니 지금이라도 죄를 받아서 목숨만은 부지하라는 최영의 서찰을 받고는 분노와 착잡함에 시달리고, 개경 코앞까지 가놓고도 진격을 망설인다. 허나 이방우와 이방과는 무휼과 함께 서경에서 빠져 나오는 데 성공하고, 개경에 이르자 훗날의 신덕왕후, 방번, 방석 그리고 민다경과 무휼의 할머니, 홍대홍이 탈출하여 합류한다. 개경에서 아버지를 돕기 위해 남았다는 방원을 제외한 가족들이 모두 탈출했기에 망설임 없이 개경을 공격하여 최영을 추포하고 우왕을 폐위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개경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씨가 왕이 된다는 십팔자위왕설이 개경 내에 퍼지게 되고, 그 와중에 정몽주가 이성계 진영에 합류한다. 최영 일파가 물러난 뒤 빈 자리를 누구로 채울 것인가를 조민수와 논했고, 왕으로 정창군 왕요를 왕으로 옹립하는 것에 합의하지만, 하륜의 막후 공작으로 조민수, 이색 그리고 정비 안씨가 만나 정창군이 아닌 우왕의 아들 창을 왕으로 옹립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이후 정도전에게서 조준을 소개받지만, 조준이 의지를 보이려면 무릎을 꿇으라 하는 무례한 모습을 보이자, 기분이 상해 나가버린다. 이후 다시 따라온 정도전의 설득이 이어진다. 조준의 토지 개혁은 권문세족들의 땅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핵심으로, 정도전은 이것을 위해서는 권문세족들 뿐만 아니라 이성계 일가의 이지란, 처가인 강씨 가문 등의 땅을 모두 빼앗아야 한다고 말하며, 땅을 얻은 백성들의 환호는 멀리서 작게 들리겠지만, 땅을 빼앗긴 주변 인물들의 원망은 바로 앞에서 크게 들릴 것이라 덧붙이고, 그 정도 각오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에 이성계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준을 설득하겠다고 한다. 다시 조준과 만나서 "그대가 내게 무릎을 꿇으시오." 라고 한다. 이에 덧붙여, 자신이 무릎을 꿇은 조소생은 결국 자신이 배신하였지만, 자신에게 무릎을 꿇은 자들은 결코 배신한 적이 없다는 말도 한다. 장면이 나오진 않았으나, 조준이 결국 무릎을 꿇고 그에게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정도전의 계략으로 이색이 조민수 일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자, 조민수가 군사를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정도전과의 대화에서 무력 충돌만은 안된다고 하며, 조민수와 단둘이 만나 조민수가 군사를 물리게 만든다.

이후 조민수가 회군파 동지라며 이성계 일족을 도화전 연회에 초대하고, 방원을 제외하고 방우, 방과, 이지란, 이방지, 무휼 등과 함께 연회에 참석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성계 일족을 제거하려는 조민수의 함정이었다. 결국 기습을 당하지만 일행들의 분투로 함께 도주를 시도하고 그 와중 오랜만에 활 솜씨를 선보이나 팔에 화살을 맞고 위기에 처하지만, 방과와 남은, 그리고 가별초의 병력들까지 구원하러 오며 살아남는다.

폐위된 우왕이 선물이랍시고 자객으로 척가를 보내 이성계를 암살하려 하나, 이를 미리 간파해낸 이방원 덕분에 대비하였고, 이방지와 무휼이 나서서 척가를 막는다. 이에 척가는 도주하나, 화살을 쏘아 이속 저하를 걸었다.

폐가입진(廢假立眞)의 논리를 내세워 창왕을 폐위하는 데 동의한다. 이후 조준이 보위(왕)에 오르라는 건의를 했으나 거절한듯 하다. 이후 정몽주와 함께 정창군 왕요를 왕으로 옹립하였다. 공양왕은 정몽주와 함께 정도전의 개혁을 막을 것을 결의하나, 도화전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조민수 일파가 도당에서 축출되고, 우왕의 이성계 암살 시도로 조상원 등도 실각하여, 도당은 사돈인 민제를 포함하여 상당수의 이성계 진영 사람들로 채워진 상황이었다. 이에 이성계 진영의 고려 개혁에 가속이 붙게 되었다.

그러나, 정도전이 낸 불교를 내치고 왕사 제도[20]의 폐지를 골자로 하는 급진적인 개혁안에 대해, 자신 역시 불자라고 말하며 복잡한 심경을 내비쳐 정도전에 대한 마음이 점차 흔들리는 듯 하다. 정몽주는 정도전을 조금 쉬게 해야하지 않겠냐는 의견까지 내는 상황. 거기에 적장자인 이방우까지 자신의 아버지가 반역자가 되는 꼴은 못보겠다며, 아버지가 왕이 되겠다면 자기가 세자가 되어 다시 왕씨에게 고려를 돌려주겠다고 선언, 벌써부터 아들과 반목하여 여러모로 심경이 복잡한 상태.

이후 정몽주의 주선으로 공양왕과 밀회를 하여 정도전이 관직에서 잠깐 내려오도록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21], 착잡한 마음에 잠간 불공을 드리러 간 사이, 정몽주가 천출이란 오명을 씌워 정도전을 유배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얘기가 다르다며 크게 분노한다. 그 길로 정몽주를 찾아가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정도전이 죽는 날이 고려가 망하는 날이다." 라며 정도전을 개경으로 불러오라고 협박한다. 이에 정몽주는 자신이 죽어도 고려는 망하니 지금 당장 자신을 죽이고 가별초의 병력을 인솔하여 만월대로 쳐들어가 왕을 폐위시키면 간단한 일이라고 하지만, 이성계는 결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니 고려의 충신으로 남아달라 간청한다. 이에 대해 이성계는 정도전을 돌려놓지 않으면 관직을 버리겠다고 선언하고 나가버린다. 사실 군권이 전부 이성계에게 있는 상황에서 이건 그냥 엿먹으라는 시위성 행위나 다름없다.

즉시 공양왕을 찾아가 만류를 뿌리치고 관직을 내려놓고, 불윤비답을 전하러 온 정몽주 앞에서 개경을 떠날 것을 선언한 뒤 방과에서 명령하기를, "명을 내리면 바로 움직일 수 있게 가별초를 준비시켜라."라며 노골적인 협박을 한다.[22] 그리고 이지란과 함께 사냥을 떠나는데, 유배간 삼봉을 어찌해야하지 않냐고 묻는 이지란에게 "내가 대체 포은은 어찌해야한단 말이냐..."며 착잡한 마음을 드러낸다.

그 후 마음을 가라앉히러 산속에 혼자 있던 중, 길선미가 극락으로 모시겠다며 나타나자 활을 겨누고 대치한다. 과거 길태미와의 대치가 생각났는지, "네 동생도 이러다 돌아갔는데 넌 어쩔테냐?"고 묻자 길선미는 '난 동생과는 다르다.'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지속. 이 와중에 토지 개혁건으로 토지를 거의 다 잃어버리고 반쯤 실성했다는 조상원이 쏜 화살이 이성계가 타고있던 말을 스치고, 이에 놀라 말이 날뛰는 바람에 낙마를 하고 만다. 큰 부상을 입고 이지란과 함께 은신처에서 회복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이방원이 와서 정몽주에 의해 조준, 남은 등의 당여들이 당하고 있는 소식을 듣고 분노한다. 이 후 이방원의 계획에 따라 이방원이 끄는 수레에 실려가던 중, "누가 달려들어서 활을 쏘자 활에 맞은채 내 수족을 다 자르고 죽었는데, 그게 왕건이었던 것 같다."며 사냥 전날 밤 꾼 꿈에 대해 얘기하며 지금 상황이 왕건의 저주인 것 같다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하늘이 변하지 않고서야 대유자 정몽주가 어찌 그럴 수 있냐고 슬퍼하고, 이방원의 "우리는 지금 패업을 하고 있으니까요. 피를 흘리지 않는 혁명은 환상이었습니다." 라는 말을 듣고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 후 산 속에서 만난 조말생의 계책으로 관 속에 숨어서 개경에 돌아온 후 계속해서 병상에 누워있는다.

포은을 도모하자는 이방원의 멱살을 잡으며 대업을 하고자한다면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만 이방원은 되려 포은을 선지교에서 살해한다. 그 사실은 안 이성계는 이방원에게 자결을 명하고 자결을 하려는 이방원에게 벼루[23]를 던지며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그 성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화를 내지만 이방원 역시 그에게 "아버지의 성정이 싫습니다."라고 일갈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2.2. 조선 건국 이후

37화에서는 고심 끝에 드디어 조선의 1대 국왕 자리에 오른다. 제작진이 이방원의 일화를 염려한 것인지 아니면 위키를 본 것인지 정도전이 던진 벼루에 맞아 이방원의 이마가 깨졌다는 소문을 낸 것으로 각색했다. 왕위에 오른 뒤 과거를 치러오는 사람이 전혀 없고 관리들이 사직했다는 소식에 과거장에 앉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후 두문동에 잠적한 사람들을 설득하러 갔다는 정안군의 소식에 '나의 용서를 구하려는 것인가? 그래. 해내기만 한다면...'이라고 독백한 것을 보아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그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듯 보인다.

38화에서는 진안군을 세자로 세우기 위해 몸소 나서서 설득하려하지만 진안군은 절대로 세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했다.[24] 그 후 조정에서 진안군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진안군의 이름을 속으로 삭히며 실망한다.[25][26] 세자를 누구로 책봉하느냐를 계속 고민하던 태조는 무명의 속임수에 빠진 신덕왕후의 요청에 따라 의안군 이방석을 세자로 세울 것으로 마음을 굳히고 정도전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그에 정도전은 "감히 조건이 있사옵니다. 군권은 물론 왕자들에 대한 처우와 관련된 권리 모두 소신께 주실 수 있으시겠사옵니까?"라고 조건을 내걸었다.[27]

41화에서는 이방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드는 중인가보다. 이방원에게 명나라의 일을 처리하고 금의환향에서 제발 돌아오라고 하는거보면... 또한 무명으로 의심받는 이방원에게 이방간, 이방과, 조준의 청으로 무명 초영과 이방원의 대질심문을 허락하지만, 초영은 정도전의 교육지책으로 누군가에게 죽어있었고 이방원을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명나라로 보낸다.

43회에선 명에서 외교적 대공을 이루고 무사귀환한 아들 이방원을 갸륵해하며 간만에 그를 웃음어린 얼굴로 바라보는 면모를 보인다. 또한 정도전이 실시하는 사병혁파를 비롯한 신조선 건설 사업을 만조백관 앞에서 정도전에게 자신의 어검까지 하사하는 등, 그를 적극 지원한다. 그 와중에 이방원이 명에서 세자를 참칭한 것으로 인해 조성된 정국에서 다소간 좌고우면하며, 신덕왕후 강씨의 이방원을 죽여야 한다는 청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45회, 정도전의 요동정벌안을 가납한 뒤, 본격적으로 그의 정치행보를 밀어주는 모습을 보인다. 그 결과 유력자들의 사병을 모조리 중앙군화하고, 정도전에게 불만이 있던 왕자, 고관들의 기세를 한풀 꺾어놓는데 성공한다.

46회, 요동정벌에 더더욱 박차를 가한다. 지금까지 그 관계가 소원했던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까지 모조리 불러들여 일일이 그동안의 공을 언급하며 치하한 뒤, "이 아비를 한번만 더 도와다오."라는 말과 함께 자신과 요동출병에 동행할 것을 명한다. 허나 이와 같은 열의에도 불구하고 그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어, 마침내 등창으로 인해 출병일까지 미루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그 누군가에게 있어 천재일우의 기회가 되어버린다.

47회, 병석에서 이방원을 일으켜 관부요소를 장악하고 반대파들을 참살하고 있다는 보고를 접한다. 격노하여 내 갑주를 가져오라고 소리치나 그러기에는 이미 몸이 따라주지 않는듯한 모습을 보인다. 실제 극 내용상,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던 출전일에도 거동키 어려웠을 정도로 이미 이성계의 병세는 악화되어 있었다.
48화, 사랑했던 아들고락을 나눈 충신의 죽음앞에 분기탱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개 돼지만도 못한 같으니라고...! 개 돼지도 지 형제스승은 죽이질 않아!"[28]
내가 세운 나라야!!! 네 놈이, 어찌 대군이 되었느냐? 어찌 네 놈이 왕이 될 꿈을 꿀 수가 있었느냐?!
내가 50년 동안, 동서남북을 헤집고 다니면서 외적을 막아냈기 때문이야![29]
내 명성이고 내 힘이고, 나를 신뢰하는 백성들의 힘이야!
그런 내 희생 없이, 삼봉의 희생 없이! 감히 네 놈이 꿀 수나 있었던 꿈이냐?
해서, 내 뒤를 잇는 세자도, 내가 정하는 것이 마땅한 이치야!
헌데, 지 애비의 것을, 지 동생의 것을, 도적질을 해?
이건, 찬탈이고, 모반이야!!!
이후 이방원이 자기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자신을 제지하는 숙위병을 참살한 뒤, 이방원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30] 위의 대사와 같은 욕을 퍼붓으며 미친듯이 분노한다. 이방원도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 일말의 후회도 없이 당당하게 차라리 죽이라고 시위하자, 어디서 허세를 부리냐며 죽이라면 못 죽일 것 같냐며 그대로 칼을 들어 이방원을 죽이려 한다.[31]

허나 그 순간 궁궐로 들어선 이지란이 "성니메 손으로 성니메 자식들 다 죽일 거우까?"라는 말로서 이성계를 극구 설득한다. 결국 이지란의 말마따나 사랑했던 막내아들과 충신을 모두 죽인 이방원도 자신의 아들인데다 1차 왕자의 난에 가담한 왕자들마저 죽이면, 슬하의 아들을 모두 죽인 자신을 백성들도 따르지 않을 것을 직감해서 칼을 거두고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낄낄거리며 궁 안으로 들어간다. 그야말로 해당역의 배우의 탁월한 연기력이 돋보이는 장면. 결국, 역사대로 이방과에게 선위 한뒤 함주로 돌아간다. 내가 세운 조선이라고 말하고 자신이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꿈이 아니냐는 태조를 보면 전작 뿌리깊은 나무에서 태종이 내 손에 피를 묻혀가며 세운 나라라고 말하는 점과 대응된다.

3. 인물 묘사

정도전의 이성계와 마찬가지로 덕장으로서의 면모가 부각되나, 한편으로 정도전으로부터는 그냥 착하고자 해서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 이방원으로부터는 너무 착해서 번뇌하고 고민하고 생각이 많다고 평가받았다. 둘 다 비슷한 평가를 내린 셈인데, 재미있는 건 이를 두고 정도전은 왕의 자리에 그를 낙점한 반면, 이방원은 왕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상반된 평가를 내린 것이다. 이를 볼때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처럼, 정도전과 이방원이 그리는 군주의 자질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성계의 성격묘사와 그에 대한 평가를 통해 암시한다고 생각된다.[32] 다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들의 분석은 결정적인 부분에서 결국 틀렸고, 이성계는 이들의 기대 혹은 걱정 이상의 과감하고 주체적인 행동에 나선다. 이에 정도전은 사람 마음을 읽고 손에 넣은 양 행동해선 안 되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도전과의 관계도 여타의 사극과 달리 매우 독특한데, 정도전을 아끼고 보살피려는 것은 맞지만 일반적인 책사처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정도전의 책략을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고 정도전도 어려운 길을 강요하는 그런 이성계의 성품을 품고 참아가는 형국이다. 목표는 이루어가되, 신의와 명성은 저버리지 않는 길을 요구하는 이성계에게 정도전이 불만스럽다는 듯 볼멘 소리 한 번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자 이성계가 다독이면서 둘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성계가 정도전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정치에 무관심했던 이유는 그의 과거에서 묘사된다. 아버지 이자춘의 충고를 따라 가문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키워주었던 부원배 조소생을 배신하여 죽이면서 신뢰를 저버린 일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33] 극 초반에 도당에 입성하려다가 이인겸에게 이 사실을 약점 잡혀 다시 함주로 돌아가야 했으며, 자신과 가문의 치부를 알고 있는 장자 이방우 역시 이 때문에 '더 이상 우리 가문에 배신 행위는 없어야 한다'며 역성혁명을 반대하는 계기가 된다.

4. 실력

궁사이자 무장이며 실존인물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뭔가 무협지스러운 고수들이 혼자서 십 수명씩 썰어버리는 탓에 본의 아니게 무력이 너프 먹은 감이 있는 인물[34]. 정도전을 두고 길태미와 대립각을 세우긴 했지만 여유로운 길태미의 모습으로 여지를 남겨두고, 길태미 추포 당시도 당장 이성계 본인을 포함해 아무도 이성계만 있다면 길태미를 잡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아, 한국사의 전설적인 무장의 무력이 다소 덜 묘사된 감이 있다.

그러나 극 중 이성계가 길태미나 길선미와 대치 중인 씬이 있는데 이때 이성계를 상대하면서 두 사람 모두 긴장해하는 표정이 역력할 정도로 이성계의 궁술실력이 삼한제일검의 검술을 웃도는 듯한 연출이 나온다. [35][36] 길태미는 당대 명실상부 삼한제일검이자 흥왕사에서 홀로 반란군 70명을 썰어버린 적 있는 고수 중의 고수이며. 길선미 또한 삼한제일검에 오른 이방지가 대결에서 단 한 번도 우위를 점한 적 없는 초고수다.[37]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검술이 이성계의 궁술과 맞붙었을 때 승부를 장담하지 못한 것이다 [38]

정통사극인 정도전의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어쌔신 크리드를 찍어 무용을 뽐낸 반면, 정작 무협적인 요소가 강한 본 드라마에서 이성계의 무위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 건 조금 아쉬운 부분. 이건 길태미가 죽이네 마네 난리를 피운 최영도 마찬가지지만... 심지어 두 지재상인으로부터는 개경에서는 홍인방, 길태미가 이끄는 순군부를 이성계가 제압하지 못할 것이라는 굴욕적인 평가까지 받았다. 이제 즉위하여 무장으로서의 정체성을 온전히 버리게 되는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건만, 아직까지도 별 다른 근접전 전적이 없으며, 무력행사가 필요한 급박한 순간이 닥칠 시에도 매번 검을 거의 쓰지 않는, 순수 궁사로서만 역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39] 물론 이성계가 활에 관한 프로페셔널이 많이 부각되어서 그럴 뿐이지 역사 기록을 보면 칼을 다루는 솜씨 또한 최고이기도 했다.[40]

단 궁술에 있어서는 사실상 대적할 자가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정도전을 죽이러 온 자객이 도망쳤을 때 움직이는 자객의 다리를 적중하는가 하면 [41]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척가 역시 도망치자 바로 화살로 저격해서 이동력을 저하시켰다. 위화도 회군 당시에도 상당히 먼 거리에서 적의 병사를 명중시키는 등 신궁의 면모는 계속 부각된다. 도화전에서도 자객 세 명이 자신들 향해 달려오자 세발을 동시에 쏴서 세 명 다 명중시키는 괴랄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의 특성상 무술실력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을 뿐 궁술실력은 비교불가한 최고 수준이다. 작중에서 이성계가 쏜 화살은 빗나간 적이 없으며 시위를 당기고 겨냥해서 쏘기까지의 시간이 3초도 안 걸린다.[42] 그냥 당기고 쏘면 무조건 맞는 수준.

5. 기타



[1] 고려가 쌍성총관부를 공격할 때, 의형제를 맺은 조소생을 배신하여 죽이고 내응했다.[2] 가짜 왜구로 위장하여 같은 마을을 털어먹은 이들을 처결하려다가 그들이 아들의 배고픔을 위해 뭐라도 한 자신들은 그렇지 않은 아비들보다 더 잘했다며 자랑스럽다고 죽일려면 죽이라고 하자, 죽일듯 하다가 그것은 너무 가벼운 처벌이라고 너는 부끄러움을 알기에 죽여달라고 하는 것을 안다며 그것보단 평생 내 밑에서 선봉장으로 뛰면서 속죄하는 것이 더 큰 벌이라며 살려 준다.[3] 조소생의 일로 인한 초주지가의 운명[4] 변방을 안정시키는 계책으로, 병농일치 등 변방의 자치권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도록 요청하는 상소이다. 안변책이 통과된다면 이성계의 함주가 정도전의 혁명을 위한 진채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조건이 충족되는 셈.[5] 이 말을 하기 전 "안변책이 통과됐단 것은 이인겸이든 홍인방이든 누군가가 자길 도왔단 소리다"라고 하는데 실제로 홍인방이 정도전의 제안을 받아 안변책이 통과됐다. 홍인방과 손잡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고, 결국 13화에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러 온 홍인방에게 냉정하게 결별을 고한다.[6] 함주에서 거둬들이는 세수를 이성계와 홍인방, 길태미가 나눠먹는다는 내용[7] 사실 이성계의 직계조상인 목조 이안사는 싸움을 피해서 전주에서 함주까지 간 양반이다. 전주 이씨가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는 방우의 말은 틀린 것.[8] 이인겸이 이방원의 방에 둔 서찰을 땅새가 정도전에게 "기다리다 못해 당신 말대로 백윤을 죽였다. 다음은 누구냐"라고 쓴 바로 그 서찰과 맞바꾼다[9] 우학주와 한구영을 비롯한 도당 재추 다수는 이성계와 한판 붙을수도 있다는 가정만으로 공황 상태에 빠졌고 길태미는 이인겸이 치매에 걸린게 아닌가 의심했으며, 정몽주와 홍인방은 전선에 나가있는 이성계를 이런식으로 엮어 넣는다는거 자체가 말이 안된다며 정도전이 개입했음을 알아챈다.[10] 이런 반응이 나오는게 당연한게, 이 드라마에서는 가별초를 포함한 이성계 직할의 군사가 무려 2만이라고 나온다. 이성계 수준의 명장이 이끄는데다 홍건적 및 왜구와의 전투로 단련된 2만 군사를 막아낼 여력이 당시 고려 조정에 있을리가 만무하다.[11] 물론 이성계가 상당한 규모의 사병을 가지고 있었던 건 맞지만, 이 드라마에서 말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개경탈환전(2,000)이나 1차 요동원정(1,600) 등에서의 이성계의 병력동원 기록을 감안하면 이성계가 한번에 동원가능한 사병은 보통 1,000. 최대 2,000 가량이며 근거지에 아무도 안남기고 다 데려갈 순 없으니 전체 인원은 3,000 정도로 추정된다. 다만 사병'만' 따지면 그렇고, 이성계에게 심적으로 동화된 지역 주민들이나 여타 병력이 더 가세할 수도 있긴 했다. 그리고 이 때의 이성계는 호발도를 막는 임무를 맡은 전선군 사령관이었기에 충분히 2만의 군세를 지휘할 위치에 있었다.[12] 몽골어로 최강의 사나이 정도의 의미를 지녔다. 이방원이 이성계에게 실망한 후, 그가 잔트가르로 인정한 인물은 정도전으로 바뀌었었다.[13] 역사적으로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고구려는 수, 당을 상대로 정벌을 포함한 선제적인 군사행동으로써 전쟁의 우위를 선점하려는 시도, 직할령 바깥으로 전장을 옮겨 적국을 견제하는 시도 등을 거리끼지 않았으며 동맹국을 동원해서 당나라 본토를 타격하는 등 오히려 최영의 요동 정벌 시도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었다. 무조건 전면전이 아니라 여러 방면의 시도를 하는 등, 단순히 무모하지가 않았을 뿐.[14] 이 때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왕이라는 것은 백성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존재이지만 자신은 언제나 가족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왕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모든 왕이 그럴지도 모르지만 모든 왕이 그렇다면 자신이 왕이 되는 이유도 없다고 말하며 정도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15] 위화도로 향하던 도중 눈이 내리는 데 이것은 실제 역사와 맞지 않다. 실제 역사에서는 위화도회군은 한 여름에 일어났다. 작중에서도 대사로는 여름이기에 나온 사불가론이 나오거나 추수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화면은 눈덮인 장면이 나와 대사와 배경이 불일치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16] 다만 처형명령을 내리다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등 탈영병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었기에 내심 갈등하고 있었다.[17] 정도전이 준비를 끝내고 이성계의 결정을 기다렸던 밤[18] 이 때, 정도전과의 대화가 회상씬으로 나오는데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울타리 안의 사람들을 지키신다 하셨지요. 장군의 울타리를 이 나라에 친다면... 그것이 왕입니다."라고 말했다.[19] 조민수는 우왕과 최영이 회군요청을 또 거부하자 결국 왕명없이 회군할 것을 결심한다. 이때 조민수는 우왕 폐위를 전제로 한 회군을 요구하고, 이성계는 이에 동의한다.[20] 고승(高僧)을 왕의 스승으로 삼고 여러 현안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제도.[21] 사실 이성계는 그전에 정도전과 정몽주가 서로를 설득해낼 것이란 맹세를 했단 얘기를 들었기에,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대립은 없을 거라 안심했던 걸로 보인다[22] 당연히 정몽주 입장에선 이게 불가능한 일로 보였을 것이다. 가별초를 움직여 고려를 무너뜨릴 셈이었다면 위화도 회군때도, 도화전 전투때도 기회가 있었지만 이성계는 그러지 않았다. 또한 굳이 공양왕을 왕위에 올려놓은 것도 왕위를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받기 위해서인 것도 잘 알테고.[23] 참 묘한게 이성계와 이방원을 다뤘던 용의 눈물에서도 이성계가 이방원에게 벼루를 던진적이 있다. 물론 포은을 죽였다고 화를 내며 던진게 아니라 무인정사 이후 정종(조선)과 문안인사 하러온 이방원을 보고 그에게 죽은 막내 의안대군이 생각나 피꺼솟하여 던진 거지만...[24] 이때 진안군의 대사 중 "천륜은 끊지 못 하겠지만"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실제로 진안군은 이성계가 함흥에 집을 준비해주자 그곳에 가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25] 그와 동시에 적장자의 원칙이 깨졌다는 조준의 속마음이 나오는데, 아마 조정에 있던 모든 신료들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가장 유력한 세자후보였던 적장남 진안군이 사라지면서 그 아래에 있는 왕자들에게 세자 자리가 돌아갈 명분이 생겼고, 이걸 계기로 후계구도와 관련된 분란이 일어날 것이 뻔했기 때문.[26] 더불어 과격하긴했지만 두문동의 문제를 대부분 해결한 정안군을 두둔하는 조준과 이신적의 태도를 본 하륜이 자신에게 "선생도 처음엔 저의 적이었지요."라고 말한 정안군의 모습을 떠올렸다. 과격하지만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정안군의 능력에 감명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27] 극 중 정도전은 선지교 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정안군을 세자로 세울 생각이었지만 선지교 이후로 고려의 충신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진안군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진안군이 잠적한 이후로는 영안군 이방과를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거기다 이 작품에서는 후계자 이야기가 오갈 때 이방원 본인 스스로가 방우 형님이 안하면 방과 형님 차례라고 이야기를 했을 정도다.[28] 다만 시청자들은 이성계의 이 대사에 대다수 공감을 하질 못한다. 세자였던 이방석이 워낙 비호감이었던 데다가, 나머지 아들들을 요동 정벌에 데려가겠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가서 죽으라는 것이기 때문. 게다가 정도전의 독재와 이방원의 행적을 전부 지우는 것에도 묵인했으니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인 셈이다.[29] 알다시피 이성계는 고려 시절에 북쪽에서는 홍건적, 남쪽에서는 왜구들을 수없이 물리친 명장이다.[30] 사족이지만 이방원의 목에 칼이 들어올 때 칼에 피가 묻어있지 않았다. 그 길태미와 무휼조차 평생토록 못했던 걸 나이 70먹고 등창으로 골골대는 인간이 해냈다는 것이다. 평생을 전장에서 바친 장군답게 나이 먹은 노인이 되었을지언정 무력이 엄청나다는 걸 보여준 장면이다.[31] 이 장면은 뿌리깊은 나무 2화에서 파옥한 강채윤을 살리려는 세종이 이방원과 대치하면서, 아버지의 명을 어겼으니 차라리 죽이라는 이도의 말에 코웃음치면서 그렇게 허세부리면서 죽여달라 하면 못 죽일 것 같냐며 대꾸하는 장면으로 반복된다.[32] 역사속에서 정도전이 바란 건 재상(총재)정치이고, 이방원이 바란건 강력한 왕권 정치이니 바라는 왕의 자질이 각각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렇게 생각하면 이성계의 성격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것도 당연하다. 이는 아직 과거를 보지 않은 나이인 이방원과 정치의 실상을 겪어본 정도전의 차이이기도 하다. 고려는 귀족 중심의 정치이며 중요정책은 도당에서 결정되지 왕이 결정하지 않는다. 이런 정계가 익숙한 정도전이 재상총재제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방원은 도당에서 안변책이 통과되는 것을 눈 앞에서 봤으면서도 머릿속에 박힌 왕의 이미지가 중국 역사서나 경전에서 본 적극적인 정책 결정자였기 때문에[33] 다만 조소생과 이성계의 관계에 대해서 회상 씬에서 짤막하게 묘사되는 것은 실제 역사와 다르다. 조소생 문서를 참고하자.[34] 이건 작중 등장하는 실존 무장들 전체에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다.[35] 길태미가 홍륜이나 이방지와 대결할 때 주저 없이 돌진하여 맞붙었던 것과는 반대로 이성계와 대치 때는 섣불리 나서지 못한다[36] 항상 누구든지 이길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하는 길태미가, 유이하게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장면이다. 참고로 다른 한 명은 장삼봉.[37] 길선미가 이방지를 상대할때는 시종일관 여유로웠던 반면 이성계와 대치때는 굉장히 신중해한다[38] 길태미나 이방지가 삼한제일검이라면 이성계는 삼한을 넘어 천하제일궁이다. 궁술만으로는 이미 삼한제일검을 능가한 경지인 것. 이쯤 되면 극 중 이성계의 궁술에 대적할 수 있는 자는 장삼봉이나 척사광, 그리고 카르페이 정도일 것이다.[39] 사실 이성계의 무용을 생각하면 삼한제일이고 뭐고 그냥 천하제일궁 소리를 들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굳이 픽션상 과장 없이도 엄청난 괴인이다.[40] 물론 이성계의 무력에 대한 기록 내지는 설화는 대부분 그의 명궁으로서의 면모에 치중되어 있다. 의형제 이지란도 사냥하다가 같은 타깃을 명중시킨 인연으로 만났다는 말도 있으며 이성계의 부하이지만 어째서인지 매체상 등장이 거의 없는 원나라 출신 장수 처명도 이성계가 대뜸 투구와 다리에 명중시키자 굴복했다. 그 외에도 황산대첩 당시 그의 아버지 이자춘이 도저히 사람이 쏠 화살이 아니라던 대우전으로 20발을 연달아 명중시킨다든지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라면 휘두르기도 버거울 전어도를 썼다거나 하는 것을 보면 근접전도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41] 배후를 캐묻는 것이 목적이라 죽이기보다는 생포하려고 했기에 움직임을 저지하는 정도의 화살을 날린 것이다.[42] 길태미나 길선미와 대치때는 상대방이 먼저 검을 뽑았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활시위를 겨냥하여 대치한다. 보통 활시위를 겨냥하는 시간이 발검 속도 보다 현저하게 느리고 복잡하다는것을 감안하면 이성계의 궁술 실력이 어느정도인지 가늠이 되는 부분. 심지어 상대방들은 삼한제일검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