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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9 00:54:16

이시구로 노보루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이시구로 노보루
[ruby(石黒,ruby=いしぐろ)] [ruby(昇,ruby=のぼる)]
파일:이시구로_노보루.jpg
출생 1938년 8월 24일
사망 2012년 3월 20일 (향년 73세)
출신지 일본 도쿄도
직업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애니메이터
학력 니혼대학예술학부 영화학과 (학사)

1. 개요2. 연출 특징
2.1. 마크로스 이전2.2. 마크로스 이후2.3. 요고레 기법
3. 참여 작품
3.1. TV 애니메이션3.2. 극장판 애니메이션3.3. OVA
4. 연출 샘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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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시구로 노보루는 일본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애니메이터이다.

대표작은 우주전함 야마토[1], 철완 아톰(1980),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은하영웅전설 등이 있다. 우주전함 애니메이션의 전설적인 감독.

초등학교 시절 데즈카 오사무신 보물섬에 매료되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데즈카 오사무 식 단순한 그림체에 익숙해졌는데 그가 만화가로 데뷔하려고 했을 때부터 극화체 만화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다른 만화가 친구의 생활을 보면서 만화가는 돈이 벌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했다.[2] 대학 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고 캬바레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로 일을 하고 방황했다고 한다. 그런데 또 여기서도 재능이 있어서 음악도 굉장히 잘 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감독 중 악보를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러다가 철완 아톰 애니메이션이 잘 나가는 것을 보고 애니메이션은 만화체로 그려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진로를 애니메이션으로 바꾼다. 애니메이션 대학 졸업 논문은 '애니메이션의 미래' 라는 제목으로 철완 아톰을 연구한 것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애니메이터가 되어보자는 생각으로 하청사에서 일하면서 데즈카 오사무의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의 원화를 그리기도 했다. 데즈카 오사무는 이시구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여러 번 무시 프로덕션에 들어오라고 러브 콜을 보냈으나 이시구로는 큰 기업에서 일하는 건 체질이 아니라 들어가지 않고 프리랜서로 남았다고 한다. 대신 무시 프로덕션 사람들과의 관계는 친밀해서 도로로내일의 죠에 참여했다. 데즈카 오사무도 그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해서 80년대에는 자신의 작품을 이시구로 노보루에게 맡겼다.

그리고 완사 군에서 무시 프로덕션 관계자였던 니시자키 요시노부와 일을 하는데 음악 경력을 살려서 콘티에 악보를 적어놨는데 음악 프로듀서가 전직이었던 니시자키는 동질감을 느끼고 이시구로 노보루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그를 우주전함 야마토의 감독으로 기용하였다.

야마토에서 그의 재능은 완전히 개화하는데 감독이면서도 작화를 담당하기도 했다. 야마토 팬들의 이시구로에 대한 신뢰는 매우 높아서 그가 담당한 새로운 여행까지만 야마토로 인정하고 야마토여 영원히 부터는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1978년에는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 아트랜드를 창업한다. 아트랜드를 경영하며 인재 발굴을 했는데 이때 직원으로 기용한 인물들이 이타노 이치로, 미키모토 하루히코, 히라노 토시키이다. 그리고 이 회사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로 흥행에 성공한다.

이시구로는 신인만 가능한 패기를 높게 평가하고 신인을 기용하는 걸 좋아했는데 마크로스 제작 당시 디자이너였던 카와모리 쇼지, 아르바이트였던 타카야마 후미히코, 면접 때 "아무것도 못 합니다!" 라고 대답한 야마가 히로유키의 재능을 알아보고 연출가로 데뷔시키기도 했다. 그 외의 연출 제자로는 이타노 이치로, 니시모리 아키라가 있다. 말년에는 이마이즈미 켄이치, 타나카 마사요시, 쿠도 마사시를 발굴하고 지원했다. 보통 신인이 작화감독이나 연출과 같은 전문 직종으로 전환하려면 천재라도 3 ~ 5년은 걸리는데 이시구로는 가능성만 보이면 기초만 가르치고 바로 실전에 투입했다. 이렇게 신인에게 연출과 작화감독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 그가 감독한 작품이나 아트랜드 작품은 에피소드마다 연출과 작화의 편차가 심하다.

살짝 기인이라는 소리도 있지만 성격은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트랜드는 직원의 실수로[3] 두 번의 화재를 겪기도 했는데 크게 화내지 않고 용서해줬다고 한다.

우주전함 야마토에서 워프를 할 때 모리 유키의 속옷이 보이는 이상한 연출이 있는데 이시구로 노보루가 그려넣은 것이라고 한다. 주변인의 증언으로는 살짝 기인이었다는 소리가 많다

이후 강사와 아트랜드 대표로서 후배들을 양성하다가 2012년 세상을 떠났다.

2. 연출 특징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를 기준으로 연출 기법이 전혀 다른 감독이다.

2.1. 마크로스 이전

이펙트와 카메라 워크가 특기인 연출가였다.

이시구로 노보루는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의 스태프롤을 보던 중 파도, 불과 같은 자연 현상을 그리는 '이펙트 애니메이터'라는 직책이 있는 것을 보고 "왜 일본 애니메이션은 저걸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없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 직접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

우주전함 야마토는 디자인이 매우 복잡해서 셀 화로 그려서 움직이는 거 자체가 돈 덩어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고정된 야마토를 그려놓고 이펙트 효과를 넣어서 움직이게 보이게 했는데 이 연출을 이시구로 노보루가 주도했다. 야마토에서 나오는 파도,물,비의 묘사는 이시구로 노보루가 직접 그려낸 것이 대부분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샀다. 특히 폭발 묘사는 우주공간에서 전함이 터질 때 폭발이 전함 안쪽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침몰하는 식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당시로선 혁명이었다. 야마토 이전까지는 화면 가득히 불꽃이 튀는 것 아니면 버섯 구름이 폭발 연출로서 일반적이었다. 이는 훗날 이타노 이치로안노 히데아키의 폭발 연출로도 이어졌다. 리얼리즘을 고려한 이러한 연출법은 선구적이었고 야마토는 이시구로 노보루의 연출 방식을 가장 크게볼 수 있는 대표작으로 남았다.

이시구로 밑에서 이타노 이치로, 안노 히데아키, 혼타니 토시아키, 마스오 쇼이치 등 이펙트 작화로 유명한 1세대 애니메이터들이 배출되었으며 이후로도 마스오의 제자인 하시모토 타카시 등으로 대가 이어지고 있으니 이시구로는 일본 애니메이션 이펙트 작화의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카메라 워크를 상당히 중시했다. 대상물은 가만히 있는 대신 카메라를 현란하게 움직여서 야마토가 움직이게 보이게 만들었다. 이러한 연출은 철완 아톰, 초시공세기 오거스 같은 작품에서도 자주 활용한다. 그래서 그의 제자인 카와모리 쇼지, 이타노 이치로 또한 카메라 앵글을 많이 움직이는 연출을 한다.

이시구로가 전체 감독을 담당한 작품으로는 우주전함 야마토 첫 작품과 우주전함 야마토 2가 있다. 안녕히 우주전함 야마토 사랑의 전사들우주전함 야마토 새로운 여행의 경우는 액션신과 특수효과만 담당했는데 현대의 특기감독의 시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야마토의 특수효과 방법론으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콘티도 잘 짠다. 드라마와 액션 모두 가능한 연출가이다. 당대의 여러 연출가도 이시구로 노보루의 콘티 실력에 감탄을 했다고 한다. 그의 콘티 실력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아라비안 나이트 신밧드의 모험철완 아톰(1980)이 있다. 야마토의 경우는 특수효과 위주로 작업해서 인간 캐릭터의 콘티는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터널, 동굴, 건물 실내 같은 폐쇄 공간에서 싸우는 연출을 좋아한다.

히카와 류스케 말로는 이시구로는 하늘을 사진으로 찍어서 배경으로 쓰거나, 실사 영화에서 쓰는 촬영 기법을 애니메이션에 도입하는 등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연출 기법의 선구자였다고 한다. # 그래서 그의 제자인 카와모리 쇼지이타노 이치로는 개척자(파이오니어)라는 말을 자주 쓴다.

2.2. 마크로스 이후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부터는 후배들에게 맡기는 제작방식을 사용했으며 그가 영상 연출을 담당하는 경우는 드믈었다. 오히려 연출보다는 폭주하는 미숙한 젊은 스탭을 통제하는 리더십과 제작 진행에 제능을 보였으며 대부분의 작품에서 이런 역할로 참여하였다. 제자 이타노 이치로 말로는 이시구로는 "너희가 하고 싶은 걸 해라. 뒷처리는 다 내가 한다." 라며 후배에게 전적으로 맡기던 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타노도 후배들에게 그대로 하고 있다고 한다. # 어느정도냐 하면, 초시공요새 마크로스(TV판) 방영후의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보면 이시구로는 별 이야기를 안하고, 카와모리 같은 밑의 스탭들이 대부분의 이야기를 다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아 그게 그런 설정이었어?", "아 그게 그런 의도였구만" 하는 반응도 여러차례 보인다.그러면 스탭들의 반응은 "감독님이 모르시면 어떡해요!".

그래서 마크로스 이후의 작품은 채색 이외의 개인 색이 많이 사라진다. 또한 신인을 콘티와 작화감독으로 적극 기용하면서 각 에피소드에 참여하는 스태프에 따라 연출과 작화의 질이 천차만별이 되고 참신한 시도가 많이 되는데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일관된 분위기와 일정한 품질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싫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절에는 음악만큼은 본인이 챙겼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음악이 매우 좋고, 장면에 적절한 음악이 삽입되기로 유명하다. 후기작 중 그의 연출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은하영웅전설 구판이 있다.

1990년대부터 애니메이션이 서사보다 캐릭터 위주로 굴러 가는 거에 불만이 있었고 [4] 애니메이션에 흥미를 잃어서 많이 만들지도 보지도 않게 되었다고 한다. 어떻게든 회사를 유지하고 신인에게 기회를 주는 것만 생각했다고 한다. #

다만 충사는 원작을 정말 재밌게 봐서 직접 기획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직접 연출도 하려고 했는데 1기는 제작진행이 실수로 안 불러서 못 했고 2기는 나오기 전에 사망해 하지 못하게 되었다.

2.3. 요고레 기법

요고레 기법이 사용된 철완 아톰 (1980) 오프닝

이시구로 노보루의 작품은 특유의 채색법이 있다. 하늘을 파란 색으로만 그리지 않고 노란 색, 녹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깨끗한 화면은 박력이 없다면서 화면에 일부러 노이즈를 넣거나 채색할 때 더러운 색을 덧입히는 기법을 썼는데 이러한 기법을 요고레(汚れ)라고 한다. 이시구로 감독 작품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이걸로 그의 감독 작품을 구분할 수 있다. 후배들에게 맡겨도 이 점은 유지되었다.

간혹 이게 연출 의도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이시구로 작품을 보고 화질이 안 좋다고 하기도 한다.

이시구로 밑에서 일을 배웠던 안노 히데아키마스오 쇼이치톱을 노려라!를 만들 때 이 기법을 썼다고 한다. #

2000년대부터 디지털 채색 기법이 도입되면서 거의 쓰이지 않게 된 기법이다. 디지털 채색은 마우스나 타블렛으로 채색을 하므로 이렇게 붓으로 더러움을 입히는 기법을 쓰면 손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히라오 타카유키가 이와 비슷한 걸 갓이터에서 시도했다가 스케줄이 꼬이기도 했다.

3. 참여 작품

3.1. TV 애니메이션

3.2. 극장판 애니메이션

3.3. OVA

4. 연출 샘플

이펙트, 카메라 워크, 채색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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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함 야마토 3화 中
콘티 이시구로 노보루 / 작화감독 아시다 토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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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함 야마토 7화 中
콘티, 원화[7] 이시구로 노보루 / 작화감독 아시다 토요오
#링크1 | #링크2
우주전함 야마토 22화 中
콘티 이시구로 노보루 / 작화감독 시라토 타케시 / 원화 토모나가 카즈히데
#링크1 | #링크2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1화 中
콘티 이시구로 노보루 / 연출 타카야마 후미히코
캐릭터 작화감독 미키모토 하루히코 / 메카닉 작화감독, 원화 이타노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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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시공요새 마크로스 6화 中 다이달로스 어택
콘티 이시구로 노보루 / 연출 타카야마 후미히코
캐릭터 작화감독 미키모토 하루히코 / 메카닉 작화감독, 원화 이타노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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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시공요새 마크로스 18화 中
콘티 이시구로 노보루 / 연출 타카야마 후미히코
캐릭터 작화감독 미키모토 하루히코 / 메카닉 작화감독, 원화 이타노 이치로


[1] 스탭롤에는 감독이 마츠모토 레이지로 되어있으나 당시 유명한 만화가였던 마츠모토의 네임밸류를 빌리자는 전략이었고 현장 감독은 이시구로 노보루였다. 이는 당시의 애니메이션 잡지에서도 공공연히 다뤄지고 있어서 대부분의 야마토 팬들은 이시구로 노보루를 야마토의 감독으로 여긴다.[2]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은 항상 가난한 직종이라고 잘못 알려져있는데 이 시기에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기술자가 별로 많지 않아서 만화가보다 애니메이터가 돈을 더 벌었다.[3] 첫번째는 혼타니 토시아키가 질렀는데 크게 혼 안 났다고 한다.[4] 다만 업계를 그렇게 만든 건 야마토와 마크로스를 만든 자신이라 딱히 할 말은 없다고 한다.[5] 2017년 루팡 팬이 뽑은 루팡 베스트 에피소드 7위.[6] 폭발신, 이펙트 등을 담당[7] 물을 직접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