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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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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생
1.1. 정치 경력

1. 일생

1956년 12월 1일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판교리(現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서 아버지 임창빈(任暢彬, 1919. 12. 12 ~ 2003. 4. 18)[1]과 어머니 전주 이씨 이근대(李根大, 1923. 2. 7 ~ )[2]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조부 임영호(任榮鎬, 1830. 5. 30 ~ 1902. 10. 28)[3]는 1851년(철종 2) 알성 무과급제해 우림위장(羽林衛將, 종2품)·내금위장(內禁衛將, 종2품) 등을 지낸 무관이다.

낙생국민학교, 양영중학교 졸업 후 1972년 경동고등학교(31회)[4]에 입학해 1975년 졸업했다. 이후 재수를 통해 1976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76학번)에 진학했다.

1980년 서울대학교 졸업 후 같은 해 3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으며, 12월에는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82년 8월 1일 공군사관후보생으로 공군 소위임관하여 공군작전사령부[5], 국군보안사령부에서 관리회계장교로 복무하였으며, 1985년 7월 31일 중위로 전역했다. 학사장교 복무 중이던 1984년에는 권익현 민주정의당 대표최고위원의 차녀 권혜정(權惠貞, 1961. 9. 21 ~ )과 결혼했고, 같은 해 8월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역 후 1985년 9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경제기획원 사무관,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 산업경제과장, 청와대 금융담당 경제비서관 등으로 근무했다. 1996년 7월부터 1998년 6월까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국비로 국외 훈련을 받기도 했다.[6]

2000년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1. 정치 경력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을 선거구[7]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자유민주연합 오세응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1년 5월부터 2003년 7월까지 한나라당 제2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경제분야 총괄), 2002년 9월에는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정책공약위원회 제2본부장, 2003년 7월부터 2004년 3월까지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4년 7월부터 2008년 5월까지 한일의원연맹 한국측 경제과학분과위원회 위원장, 2004년 7월부터 2005년 1월까지 한나라당 대변인, 2005년 3월부터 2006년 1월까지 한나라당 원내 수석부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2006년 6월부터 2008년 5월까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 2006년 7월부터 2007년 8월까지 제10대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2006년 12월에는 국회 연구단체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 공동대표에 취임했다. 2007년 8월 20일,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한나라당/역대 전당대회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으며, 이후 2007년 12월까지 이명박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을 지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8년 4월부터 2009년 4월까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2008년 6월부터 2009년 5월까지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하였다.[8] 2008년 9월부터 2014년 10월 22일까지 제35·36대 대한배구협회 회장을 지냈다.

2009년 9월 30일부터 2010년 7월 4일까지 이명박 정부에서 제24대 노동부장관을 역임하였다. 고용노동부 장관 재임 중이던 2009년 싱가포르에서 북한 김양건 등과 비밀리에 접촉하였다. 2010년 7월 5일 노동부고용노동부로 개편되자 초대 고용노동부장관이 되었으나 7월 16일 이명박 정부의 제3대 청와대 대통령실장에 임명되어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였고 2011년 11월 30일까지 역임하였다. 이후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손학규 후보가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새누리당 경선에 출마하였지만, 낙선했다. 이 당시 박근혜 후보의 ㅂㄱㅎ 로고가 임태희 후보의 ㅇㅌㅎ 로고를 표절하였다는 논란이 있었다.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정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민주연합 박광온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난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수도권 선거구에 출마해 낙선한 유일한 후보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전하진에게 새누리당 공천에서 밀리자 공천에 불복하고 탈당하여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을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를 강행하였다. 그러나 본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후보, 새누리당 전하진 후보에 이은 3위로 낙선하였다.

2017년 5월 국립대학교인 한경대학교 총장 임용 후보자 1순위에 올랐다. #기사링크 간선제 방식의 한경대 총장임용추천위원회는 간선제로 총장 임용 후보자 2인을 결정했으며 최종적으로 교육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이다. 2017년 10월 20일 최종적으로 임명을 받아서 제7대 한경대학교 총장 자리에 올랐고, 2021년 10월 5일까지 재임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성남시장 후보 물망에 올랐으나 한경대학교 총장직을 유지하면서 불출마하였다. 성남시이재명 전 시장 등의 영향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로 인해 보수 계열 정치인들은 꽤 힘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2021년 11월, 제20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윤석열살리는 선거대책위원회 총괄상황본부 본부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선거대책위원회가 해체되고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도 경질되면서 윤석열 선거대책위원회 주요 직위에 복귀하진 못했다.

친이계 중진답게, 2022년 1월 24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기 위한 전직 국회의원들의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보수 진영 단일후보로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출마하여 성기선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과 1:1 진검승부를 펼친 결과 54.8%의 득표율로 무난히 당선되었다. 역대 경기도교육감 선거 최다득표이며, 김동연 경기도지사보다도 많은 표를 득표하였다.

[1] 풍천임씨세보 제3권 1600쪽에는 임역빈(任彬)으로 등재돼 있는데, 暢을 으로 오기한 듯하다.[2] 이원일(李元鎰)의 딸이다.[3] 초명 임헌영(任憲榮). 풍천도호부사(豊川都護府使)에 재직 중이던 1868년(고종 5) 6월 12일 임영호(任榮鎬)로 개명했다.[4] 당시는 고등학교도 입시로 진학하던 시기였으며, 전기와 후기로 나눠서 모집했는데 전기에는 경기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 경복고등학교, 용산고등학교에 지원하고 전기에서 탈락한 학생들이 중동고등학교, 경동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 동성고등학교, 양정고등학교 등 후기 학교에 진학하거나 고입 재수를 택했다. 임태희의 경우 서울고등학교 입시에서 낙방하여 경동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지금도 탈락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5] 새누리당 이재영의 의원직 상실로 인해 치러진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당시, 평택군에서 공군 장교로 복무했다는 평택시 을 선거구에 출마를 고려하기도 했다.[6] 공무원교육훈련법에 따르면, 국외훈련을 받은 공무원은 훈련기간과 동일한 기간을 훈련분야와 관련된 직무분야에 복무하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데, 2009년 9월 노동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1998년 6월부터 1999년 12월까지만 의무복무를 하여 실제로는 그 기간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7] 정작 출생지인 판교동은 바로 옆의 갑 선거구 관할이다.[8] 이때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바로 그 홍준표다. 다만 임태희가 철저히 이명박의 남자로서 정치커리어를 쌓은 데 반해 홍준표는 소신파에 가까워서 이후의 행보는 조금씩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