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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자동차 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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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소토 플리머스 임페리얼 EN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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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IMPERIAL
임페리얼
파일:imperial logo.png
정식 명칭 Imperial
한국어 명칭 임페리얼
설립
[[미국|]][[틀:국기|]][[틀:국기|]] 디트로이트
1955년
해체 1983년
설립 기업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본사 소재지
[[미국|]][[틀:국기|]][[틀:국기|]], 디트로이트
업종 자동차 제조업
모기업 크라이슬러

America's most carefully built car.
1960년대 초반 브랜드 슬로건[1]

1. 개요2. 설립 배경3. 제1기[1955-1975]
3.1. 연도별 역사
3.1.1. [1955년-1956년]3.1.2. [1957년-1958년]3.1.3. [1959년-1960년]3.1.4. [1961년-1962년]3.1.5. [1963년-1964년]3.1.6. [1965년-1966년]3.1.7. [1967년-1968년]3.1.8. [1969년-1970년]3.1.9. [1971년-1972년]3.1.10. [1973년-1974년]3.1.11. [1975년]
4. 제2기[1981-1983]5. 생산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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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20231015_1957ImperialBW101841.png
Final Full-Size[2]
마지막 미국식 대형차[3]
The Fuselage Era[4]
기체 시대[5]
Newest Prestige Car in a Decade[6]
10년만의 최신 고급 자동차
The Incomparable Imperial[7]
비교할 수 없는 제국
America's most carefully built car[8]
미국에서 가장 세심하게 제작된 자동차
Finest of the Forward Look[9]
최고의 미래 양식[10]
임페리얼의 슬로건 (제1기)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이자 현재는 스텔란티스 계열의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산하에서 1955년부터 1975년까지 존재하였으며 이후 6년간의 공백기를 거쳐 1981년 재출범을 통해 1983년까지 존재하던 브랜드로 링컨, 캐딜락과 더불어 가장 최후[11]에 가까운 시기까지 '아메리칸 럭셔리'의 정점을 보여주었던 브랜드였다. 특히 1기 시절의 경우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산하의 브랜드 중 1957년 처음 선보인 '포워드룩'을 통해 당대 자동차 스타일링을 선도[12]하며 오토 파일럿과 같은 최신 기술이 집약된 차량을 생산했다.

2. 설립 배경

임페리얼의 기원이 된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의 역사는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창업주 월터 크라이슬러가 고급자동차 시장에 진출할 것을 원하면서 1926년 시작되었다.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은 크라이슬러의 확장된 길이의 대형 차량 플랫폼을 기반으로 설계되었으며 주로 북미시장에서 어번, 코드, 듀센버그, 캐딜락, 컨티넨탈, 링컨, 팩커드, 프랭클린, 피어스-애로우, 스터츠, 마몬 등의 고급 차량 제조사들과 경쟁하였다. 이후 1955년 부터 캐딜락링컨 모터 컴퍼니와의 더 나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임페리얼을 자체 브랜드와 부서로 분리하였다. 당시 임페리얼은 2~3년마다 V8 엔진과 변속기등을 포함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다른 품류(品類)에 적용되는 최신기술과 새롭게 바뀌는 차체 양식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3. 제1기[1955-1975]

3.1. 연도별 역사

3.1.1. [1955년-1956년]

파일:Imperial1694439471232~2.png
1954년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의 5세대 차량의 생산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독자성과 명성을 갖춘 새로운 럭셔리 브랜드인 "임페리얼"에 대한 대규모 비밀 계획 개발도 마무리하고 있었다. 1950년대 초반에 크라이슬러캐딜락링컨팩커드[13]등의 미국내 럭셔리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임페리얼이 다른 크라이슬러계열사의 차량들과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1950년대 초반까지 임페리얼은 "임페리얼 크라운"을 제외하고 긴 축간거리와 기본적으로 크라이슬러 뉴요커의 크롬 장식이 제거된 버전이었다. 그러나 6세대 임페리얼이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임페리얼 디비전"이라는 새로운 독립 부서의 1세대로 등장한 1955년 부터 분명한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독립 부서로서 임페리얼의 차량들은 크라이슬러의 상징을 장착하지 않았으며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임페리얼이 법적으로 별도의 브랜드로서 새로이 창설되었다는 사실을 미국 48개 주에 알렸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캐딜락은 1955년 부터 최고 사양의 리무진 차량에서 "임페리얼"이라는 사양명을 삭제했다.
파일:1955 Imperial-03.jpg
1955년형 임페리얼 뉴포트 쿠페
이전 세대보다 더 화려하고 고급스러워진 새로운 임페리얼은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모든 디자인 작업을 이끌었던 수석 디자이너 버질 엑스너가 디자인했다. 독립부서로서 새로이 출범한 임페리얼의 모든 차량들은 "원 헌드레드 밀리언 달러 룩"이라 불리는 이전에 비해 더 눈길을 끄는 차체 스타일이 적용되었다.
파일:1955 Imperial MilianDollarLook-01.jpg
1955년형 임페리얼 "원 헌드레드 밀리언 달러 룩"
이러한 새로운 스타일링은 임페리얼만을 위해 독점적으로 제공된 것이 아니라 이후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계열사의 다른 차량에도 적용되었다. 대표적인 특징으로 부드러운 후드 라인이 보다 공기역학적으로 설계된 차체와 만났고, 리어 펜더가 거의 완전히 차체 측면에 혼합된 모습이 있다. 또한 크롬 장식은 1954년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늘어났으며 특히 후면 테일 핀에 설치 된 후미등은 펜더로부터 독립되어 마치 조준경을 연상캐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임페리얼이 차량의 외관을 더욱 화려하게 만드는 것에 주안점을 둔 당대 미국 자동차의 디자인 유행에 편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 헌드레드 밀리언 달러 룩"은 완전히 새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데 당시 예리한 자동차 애호가들은 3년 전 특별 제작되었던 임페리얼 차량에서 1955년형 임페리얼 스타일의 요소들을 알아보았다. 1952년 크라이슬러는 기존 임페리얼 차량들과는 다른 스타일을 적용한 "임페리얼 퍼레이드 페이톤" 차량 3대를 제작했다.
파일:this-gorgeous-1952-chrysler-imperial-parade-phaeton-used-to-be-a-presidential-limo_2~2.jpg
1952년형 크라이슬러 임페리얼 퍼레이드 페이톤
버질 엑스너의 "원 헌드레드 밀리언 달러 룩"의 시초인 "임페리얼 퍼레이드 페이톤"은 당시 "임페리얼 크라운"보다 76.2mm 더 긴 3,746.5mm의 축간거리를 사용했다. 또한 6,096mm에 달하는 차량의 차체는 모두 맞춤 제작되었으며 그릴, 범퍼, 전면 및 후면 장식만 표준 "임페리얼 크라운"의 부품을 사용했다. 차량은 "듀얼 카울 페이톤"(50년대에 사라진 차체 양식)으로 설계되었으며 앞좌석 승객과 뒷좌석 승객은 격벽으로 분리되었고 벽 위에는 4열 승객석을 위한 유리가 설치되었으며 측면 창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 차량은 순전히 행사용 및 그 외 실내 전시용 차량으로서 제작되었다. "임페리얼 퍼레이드 페이톤"은 총 3대가 생산되어 각각 뉴욕로스앤젤레스 그리고 최종적으로 디트로이트로 보내졌다.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이들 차량 세대를 모두 소유하고 유지 관리했으며, 1955년에 1956년 임페리얼의 차체 디자인을 설계할 때 시각적 참고를 위해 "퍼레이드 페이톤"을 모두 디트로이트로 가져왔다.[14] 이렇게 눈길을 끄는 호화로운 스타일링과 함께 별도 부서로 출범한 임페리얼의 차량들에는 표준 축간거리가 있었고 "임페리얼 크라운"전용으로 설계된 긴 축간거리가 예정되어 있었다. 표준 축간거리는 3,302mm였으며 전년도 표준 임페리얼보다 88.9mm 더 짧아졌다. 반면 "임페리얼 크라운"은 매우 긴 3,797.3mm의 축간거리를 사용했으며 보다 급이 낮은 차량들은 "크라이슬러 뉴요커"와 같은 다른 대형 크라이슬러 차량들과 동일한 기본 플랫폼을 사용했다. 하지만 축간거리는 여전히 크라이슬러의 차량들보다 101.6mm 더 길었다.
파일:55ImperialFirePowerV8Engine1694767210871.png
파일:55ImperialPowerFlightTransmission1694764872933.png
<rowcolor=#fff> 1955년 임페리얼 헤미 V8 엔진 2단 파워플라이트 자동변속기
엔진은 전년도 임페리얼과 동일한 파이어파워 헤미 V8 331(5.4L) 엔진을 사용하였고 변속기 역시 전년도와 동일한 2단 "파워플라이트" 자동변속기를 사용했다. 1955년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차체 스타일이 출시되었으며, 표준 차량의 길이는 약 5,664.2mm였다. 임페리얼은 C-69 및 C-70을 사용해서 전통적인 차량 번호 지정 체계를 유지했다. C-69 차량은 2도어 뉴포트 하드탑과 4도어 세단이었고, C-70은 "임페리얼 크라운" 8인승 세단과 격벽이 있는 리무진용으로 지정되었다. 독립부서로 출범한 새로운 임페리얼은 1954년에 비해 더 나은 두 배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최종적으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임페리얼 뉴포트 3,418대, 세단 7,840대, 크라운 리무진 172대를 판매했다. 이렇듯 새로운 성공을 거두며 자신감을 얻은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몇 가지 변화를 통해 1956년형 임페리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선 기존의 "임페리얼 뉴포트"는 독립 부서로서의 임페리얼 브랜드에 비해 충분한 고급스러움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사우샘프턴"[15]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사우샘프턴"은 기존의 2도어 하드 탑 외에 그해 새로 적용되는 4도어 하드 탑도 적용했다. 또한 모든 차량의 축간거리는 3,378.2mm로 76.2mm 더 늘어났으며 이는 표준 모델의 외부 길이를 152.4mm 이상 늘려 5,831.84mm로 늘린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고급 자동차로서 길이가 매우 중요했던 당시 임페리얼의 차량들은 리무진이 아닌 승용차들 가운데 가장 긴 길이를 가진 미국 자동차가 되었다. 반면에 차량의 폭은 전년도 대비 2,009.14mm에서 2,001.52mm로 줄어들면서 이전보다 약간 더 좁아지게 되었다. 또한 모든 차량의 높이도 1,549.4mm로 조금 더 높아졌다. 1956년형 부터는 "파이어 파워 헤미 V8 엔진"이 5.8L로 늘어나면서 마력이 조금 더 증가되었으며 새로운 3단 자동변속기가 도입되었다.
파일:55ImperialPowerFlite1694624719180~3.png
파워플라이트 자동변속기의 푸시 버튼
당시 최신 기술이 적용된 이 변속기는 푸시 버튼 형식으로[16] 북쪽, 동쪽, 남쪽, 서쪽에 각각 중립, 주행, 저속 및 후진 버튼이 배치되었다. 또한 차량의 실내 인포테인먼트 체계로는 1956년형 임페리얼 차량들을 위한 새로운 선택 사양인 "올-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있었다. 필코[17]와 함께 개발한 모파[18]의 "914HR"은 세계 최초의 트랜지스터로만 구성된 자동차 라디오였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장점은 차량의 배터리 소모량이 진공관 라디오에 필요한 전력의 10%로 줄어들고 유지 관리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당시 150 달러였던 "914HR" 라디오의 가격은 크라이슬러의 또 다른 인포테인먼트 기기인 "하이웨이 하이-파이"[19]와 별도로 가격이 책정되었다. 임페리얼 브랜드가 별도 부서로 독립하면서 생산된 첫세대는 2년 동안만 판매되었다. 판매량은 데뷔 이후 전체적으로 소폭 감소한 총 10,458대를 기록했다. 다만 "임페리얼 크라운"의 판매량은 증가하여 1956년에 226대가 판매되었다.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더 많은 고급자동차 시장의 점유율을 원했기 때문에 1957년부터는 더욱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버질 엑스너의 스타일링 또한 더욱 과감해졌다.

3.1.2. [1957년-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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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부서로서 새롭게 출범한 임페리얼의 두번째 차량은 1957년 출시되었다. 버질 엑스너가 디자인한 '1955년 및 1956년형 임페리얼의 차량들은 시각적으로, 기술적으로 품질과 호화로움의 측면에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다른 차량들보다 눈에 띄는 특징을 가졌다. 1955년에 출시된 임페리얼은 101.6mm 확장된 크라이슬러 뉴요커와 동일한 플랫폼을 사용했지만 1957년 부터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임페리얼 전용의 플랫폼을 제공했다. 이 플랫폼은 이후 "D 플랫폼"[20]이라 명명되었는데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차량들이 1960년부터 유니 바디 구조로 전환할때도 임페리얼은 차체 강성과 정숙성을 위해 1967년까지 해당 플랫폼 설계를 유지하였다. 이에 따라 1957년형 임페리얼 차량은 전체 길이가 5,699.76mm로 약 127mm 줄어들었지만 전체 폭은 2,062.48mm[21]로 전년도 차량 대비 50.8mm 이상 더 넓어졌다. 당시 임페리얼은 다른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차량들보다 확연히 넓었는데 대표적으로 크라이슬러 뉴요커는 1957년 전체 폭이 2,001.52mm였으며, 전체 길이는 5,562.6mm였다. 이처럼 폭이 넓다는 것은 임페리얼이 당대 출시되었던 다른 차량들보다 어깨 공간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22] 전체 높이 역시 1956년형 차량은 1,562.1mm였으나 1957년형 차량은 1,460.5mm로 더 낮아지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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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형 임페리얼 크라운 사우샘프턴 쿠페 광고
이 같은 요소들로 하여금 독립 부서로서 임페리얼의 2세대 차량들은 1950년대 중반 이후 30년 가까이 유행할 미국 자동차 특유의 특징이었던 더 낮고 더 넓은 차량의 시대를 알리는 시작이기도 했다. 무게는 전년도 차량은 표준형의 경우 약2,177kg정도였으나1957년형 차량은 선택 사양과 연식에 따라 무게가 최대 2,495kg까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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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57년 임페리얼 헤미 V8 엔진 3단 토크플라이트 자동변속기[23]
추가된 중량을 감당하기 위해 임페리얼의 "헤미 V8 엔진"은 5.8L에서 6.4L까지 늘어나게 되었으며 전년도와 동일한 3단 "토크플라이트 A466"[24]자동변속기가 적용되었다. 또한 모든 임페리얼의 차량들은 이중 배기 장치가 표준 사양으로 적용되었다.
파일:57ImperialChassis1694753007389.png
1957년형 임페리얼의 차대
현가장치의 경우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1957년형 차량에 새로운 설계를 도입했는데 토션 바 형식으로 이루어져 현가하질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무게 중심을 조금 더 낮은 후방으로 이동시켰다. 후륜 현가장치의 경우 "다중 리프"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들 현가장치의 조합은 운전대의 더 나은 조작감과 더 부드러운 승차감을 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토션 바 현가장치의 설계에는 뒤쪽에 코일 스프링이 있기 때문에 이는 특이한 설계로 볼 수 있었는데 이러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토션 바 현가장치는 미국의 주요 제조업체 중 일반 승용차량에는 최초로 상용화 한 사례였으며 이후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계열사들로 보급 되었다. 넉넉한 현가장치는 시장의 중간 및 하위 부문 자동차에 대한 또 다른 최초의 사례였다. 팩커드는 1955년 더 비싼 차량에 복잡한 토션 바 현가장치를 구현했지만 이는 미국 자동차 제조사가 토션 바를 사용한 유일한 사례였었다.
파일:57ImperialSideWindow1694657995051.png
1957년형 임페리얼의 곡면형 측면 유리
또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1957년형 임페리얼에 곡면형 측면 유리를 사용했는데, 이는 미국 제조사가 생산한 승용차량 중 최초로 적용한 것이었다.[25] 스타일링 분야 역시 여러 혁신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었는데 1957년 버질 엑스너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새로운 스타일링 양식인 "포워드 룩"[26]을 선보이면서 완전히 새롭게 변모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전년도 대비 크기가 더 작아진 전조등과 크롬 장식을 더 세밀하게 사용하고 더 넓고 낮은 차체와 테일 핀을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하는등 더욱 공기역학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당시 이러한 임페리얼의 인기를 채감한 캐딜락은 딜러들에게 임페리얼이 별도의 사업부로 분리가 되었음에도 고객들에게 설명할때 고객이 임페리얼의 차량을 구입하면 고급차량을 구입하는 것이 아닌 단지 명패만 바꾼 비싼 크라이슬러 차량을 구매하는듯한 인상을 주기위해 여전히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이라고만 부르도록 교육시키기도 했으며 이후 1959년이 되어서야 1957년형 임페리얼 차량들과 유사한 전면부를 선보이기도 했다.[27][28] 기존과 다른 새로운 스타일링 양식을 도입한 임페리얼은 전세대보다 더 화려해지며 젊어졌으나 달리 보면 조금 덜 격식을 차린 모습이기도 했다.
파일:57ImperialTailFinRamp1694750920897.png
1957년형 임페리얼 크라운의 테일 핀과 후미등
차체의 경우 처음으로 후방 펜더의 선이 차체와 완전히 같은 높이를 이루었으며 전년도의 블록형 글자는 전면 펜더와 후면에 꽃무늬 모양의 필기체로 적은 "Imperial" 서명 장식[29]으로 바뀌었고 전년도에서 조준경을 닮았던 돌출 된 후미등은 더 거대해진 후면부의 테일 핀과 통합되어 로켓의 노즐과 뿜어져 나오는 화염에서 영감을 얻은 세부장식을 갖추었다.[30] 또한 C필러에서부터 시작되어 후면유리와 뒷좌석 위를 살며시 덮어주는듯한 독특한 지붕은 차체의 색상으로 칠해져 종종 다른 색으로 칠해진 지붕과 대조를 이루며 화려함을 더했다.
파일:58ImperialFliteSweepRoof1694756923838.png
1957년형 임페리얼의 "플라이트 스윕" 지붕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이를 "플라이트 스윕"[31] 이라고 불렀으며 고객들에게 매우 큰 인기를 끌자 이후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다른 차량들로 퍼지게 된다. 이렇듯 많은 부분에서 새로워진 1957년형 임페리얼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제퍼슨 에비뉴" 공장[32]에서 제작되었으며 Imperials의 이전 C 시리즈 번호 지정 시스템은 1, 2, 4번 시리즈 IMI-로 대체되었다. 기본 사양인 IMI-1은 4,740 달러에서 시작하는 반면 IMI-2는 4도어의 경우 "임페리얼 크라운"이 5,400달러에 판매되었다. IMI-4는 임페리얼 르 바론[33]이었으며 가격은 5,740달러였다. 2도어 차체는 하드 탑 또는 컨버터블 사양[34]으로 판매되었으며 4도어 사양은 세단 또는 하드 탑 두가지로 나뉘었다. 하드 탑 사양은 기둥이 없어 "르 바론"사양을 제외하고 문 개수에 상관없이 "사우샘프턴"[35]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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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형 임페리얼 "르 바론" 하드 탑 세단 광고
1957년형의 기함은 "임페리얼 르 바론"으로, 당시 기준으로 수십 년 전 맞춤제작을 전문으로 했던 코치빌더의 이름을 연상시켰다. 실제로 당시 "임페리얼 르 바론"의 광고에서는 더 이상 구매할 수 없는 "맞춤형 제작품"을 언급하기도 했으며, "르 바론"사양은 소수에게만 판매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또한 Ghia[36]가 극소량만 제작한 1957년형 임페리얼 크라운 리무진도 있었다. 다만 크라운 리무진의 경우 엄밀히 보았을때 주문형 차량이었기 때문에 기존 임페리얼 품류와 함께 광고되지는 않았다. "임페리얼 크라운 리무진"은 1957년에 1958년형 그릴을 사용했으며, 36대의 자동차가 12,000달러, 즉 현재 기준 120,000달러[37]가 넘는 엄청난 가격에 판매되었다. 임페리얼의 판매량은 버질 엑스너의 완전히 새로운 "포워드 룩" 스타일링으로 인해 기존의 다른 고급 자동차가 상대적으로 투박하고 구식처럼 보이게 되면서 급증하게 되었다. 1957년형은 총 37,593대로 독립 부서로 출범한 이래 임페리얼 역사상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캐딜락이나 링컨과 같은 조금 더 확고한 럭셔리 브랜드의 판매량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임페리얼은 당대 미국 자동차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던 "곡면형 측면 유리"와 후면 지붕을 살짝 덮는듯한 "플라이트 스윕", 높은 테일 핀과 대조를 이루는 당대 미국 자동차중 가장 넓은 전폭 을 가진 낮은 차체등의 독특하면서도 화려하고 개성있는 디자인을 필두로 시장에 매우 빠르게 진출했다. 그럼에도 재설계가 너무 성급하게 이루어졌고 1955년형과 1956년형 차량에서 보여주었던 뛰어난 마감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더욱 대조가 되어 품질 관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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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임페리얼 홍보책자
임페리얼은 매년 생산 과정에서 다양한 수준의 성공을 거두며 D-바디를 수정했는데,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시절 부터 수십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해마다 변경되는 사항에는 항상 새로운 품류 번호가 할당되었다. 1958년형 차량들은 LY1으로 L, M, H 트림에 대한 그리 미묘하지 않은 표기가 있었다. 임페리얼은 1957년에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기 때문에 1958년에는 약간의 세부적인 부분변경만 적용했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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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형 임페리얼의 전면부
새롭게 변경된 부분은 기존의 격자형 전면 그릴[39]에서 가로로 긴 직사각형들이 좌우로 늘어선 형상[40]으로 바뀌었으며 전면 범퍼는 기존에 상하로 2줄이었으나 한줄로 바뀌며 더 부드러우면서도 두툼해졌고 전면 범퍼의 방향지시등 역시 기존의 직사각형에서 원형으로 변경되었으며 4등식 전조등이 모든 주에서 합법화됨에 따라 1958년형 부터 모든 임페리얼 차량들에 기본사양으로 적용되었다. 또한 기술적으로는 "오토 파일럿"[41]과 선택 사양인 "전동 문 잠금 장치"라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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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임페리얼의 "오토-파일럿" 광고
오토 파일럿은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근대적인 크루즈 컨트롤 체계의 명칭이었으며,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최초로 임페리얼과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양산 차량에 이를 적용했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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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임페리얼의 "오토-파일럿" 안내문
이 혁신적인 체계는 시각 장애인 기술 개발자였던 랠프 티터[43]가 1948년에 발명했다. 어느날 그는 자신의 변호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갔는데 변호사가 말할 때는 차량의 속도가 줄었으며, 반대로 변호사가 듣고 있을 때에는 속도가 높아졌다. 이런 불규칙적인 속도 변화가 동승자로 하여금 피로감을 느끼게한다는 것을 체감한 후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44] 이후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이 자동차에 티터의 "오토파일럿" 체계를 도입하자 캐딜락은 이 기술 체제를 구입해서 "크루즈 컨트롤"로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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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58년형 임페리얼 크라운 사우샘프턴 2도어 쿠페/세단 1958년형 임페리얼 르 바론 4도어 세단/사우샘프턴 세단
하지만 이러한 혁신적인 신기술들의 도입에도 1958년에는 미국이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판매량은 전년도 대비 58%나 감소하여 총 16,133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당시 딜러의 의견에 따르면 판매량 문제중 일부는 독립 부서로서의 임페리얼 브랜드와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긴밀한 관계[45]와 구매자가 자신의 자동차를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이라고 부르는 독립 브랜드인 임페리얼로서는 안좋은 습관이었다. 또한 임페리얼은 여전히 크라이슬러의 대리점에서 크라이슬러의 딜러가 판매하였기 때문에 자체 딜러가 있는 캐딜락링컨처럼 확고한 독립적인 고급 브랜드라는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3.1.3. [1959년-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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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에 임페리얼 차량의 생산은 전통적인 제퍼슨 애비뉴[46]공장에서 드 소토의 차량을 생산하던 디트로이트에 있는 워렌 애비뉴[47]공장으로 이전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1957년에 임페리얼이 경험한 판매 성공에 의해 자신감을 얻은 직접적인 변화였다.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임페리얼 전용 공장을 통해 품질이 향상되고 기존 대비 브랜드 차별화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했다. 1959년형 자동차는 L, M, H 모양의 연작 MY1이었으며 전년도 대비 큰 변화는 없었으며 세부적인 변경 사항으로 차체는 후드 트림이 앞유리 쪽으로 조금 더 늘어났고, 차체 측면 트림은 이전보다 두꺼워졌으며 후면 범퍼는 크롬 패널로 마무리된 점과 1958년형의 라디에이터 모양 그릴은 6개의 대형 수직 줄무늬가 있는 훨씬 더 두꺼운 크롬 도금된 그릴로 교체된 점이 있었다. 또한 새로운 지붕 양식으로 "실버크레스트"[48]라는 선택 사항이 추가되었으며 이 사양을 선택할 시 지붕의 전면 부분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되고 후면은 차체 색상으로 도색된 금속 패널로 구성되어 마치 쿠페 드 빌[49]처럼 보이게 디자인 되었다. 특히 차체 색상으로 마감된 패널은 추가금을 낼 시 가죽 질감의 검은 비닐로 덮이는 "란다우"[50] 사양으로 변경 할 수 있었다.

1959년에 주목할만한 기술 발전으로는 회전식 앞좌석이 있었다. 이 좌석은 쉽게 승•하차할 수 있도록 바깥쪽을 향해 회전할 수 있었다. 1959년에는 좌석이 레버 조작을 통해 작동했지만 1960년에는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회전했다. 하지만 이 기능은 수명이 짧았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좌석이 회전하여 탑승자가 자동으로 문쪽으로 밀려나는 점이 안전상 문제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임페리얼은 이 기능을 매우 신속하게 다시 수동으로 만들었으며 수동 회전 죄석 기능은 1961년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구동계의 경우 1959년에는 기존의 6.4L 엔진이 6.8L 웨지[51] V8 엔진으로 대체됨에 따라 임페리얼의 차량에는 더 이상 헤미 엔진 사양이 없게 되었다. 웨지 엔진은 제작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기존의 헤미 엔진보다 가볍고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임페리얼의 고객들은 더 저렴한 엔진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임페리얼은 1959년에 17,710대의 차량을 판매하였으며 이는 링컨보다 더 많은 판매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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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임페리얼 홍보책자
1960년 임페리얼의 전시장에 들어간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새롭게 디자인 된 1960년형 임페리얼이 매우 과장된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 버질 엑스너는 여전히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디자인 사무를 맡고 있었지만 스스로의 개인적인 취향에 가까운 디자인을 더욱 강하게 밀었던 탓에 직장에서 점점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우선 1960년형 임페리얼 차량들의 외형적 특징으로는 전면 중앙에서 V자 형태로 떨어지는 기울어진 크롬 범퍼가 특징인 전면부가 가장 눈에 띈다. 세부적인 면을 살펴보면 V자 형태로 떨어지는 범퍼에 맞춘 차량 전면을 감싸는 오븐용 철망 형태의 크롬 그릴, 그리고 후드 끝 부분에는 임페리얼의 상징인 크롬 처리된 대형 독수리 조각이 붙어있었다. 또한 전조등의 위쪽에는 짙은 크롬 도금된 눈썹이 살며시 덮어주어 차량의 인상을 조금 더 중후해 보이게 했다. 이 눈썹으로부터 후면까지 이어지는 크롬 후드 라인 트림은 차량의 전체 길이를 더 길어보이게 함과 동시에 1959년형 캐딜락에서 다시 탈환해온 거대한 크기의 테일 핀을 훨씬 더 과장되게 보이도록 했다. 이는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과한 모습이었다.

차량의 전체 길이는 그동안 임페리얼이 독립 브랜드로서 포워드 룩을 처음 선보인 이래 1957년 5,699.76mm[52]에서 1958년 5,737.86mm[53], 1959년과 1960년에 5,748.02mm[54]로 변경되어 부분변경을 할때마다 연도가 지날수록 그 길이가 늘어났다. 그리고 1960년형 임페리얼 차량의 차체는 재설계를 통해 후면 오버행은 2.1인치 감소했지만 대신 전년도 대비 전면 오버행이 후면 오버행의 감소한 길이만큼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재설계를 통해 상위 사양인 임페리얼 르바론은 뒷좌석 승객의 탑승시 사생활 보호를 향상시키기 위해 더 작은 후면 창과 전년보다 늘어난 두께의 C필러를 가지게 되었다.

이럿듯 새로워진 임페리얼의 외관에 맞춰 실내의 대시보드 역시 전자발광 게이지가 포함된 새로운 디자인을 사용했다. 대시보드에는 백열전구가 없었고 대신 5겹의 라미네이트 표면을 통해 전압이 흐르고 있었다. 이로 인해 내부의 인광 세라믹층이 빛을 발하게 되었다. 최종 모습은 매우 뚜렷한 빨간색 바늘이 있는 청록색의 페시아였다. "패널센트"[55]로 판매된 이 기능은 그해 변경된 크라이슬러의 일부 고급 차량들에도 적용되었다. 또 다른 편의 사양으로 [56]라고 불리는 운전자를 위한 새로운 시트 디자인도 있었다. 시트의 형상은 운전석 등받이가 벤치형 시트의 나머지 부분보다 키가 높고 운전자의 어깨에 꼭 맞도록 윤곽이 잡혀 있어서 운전시 조금 더 운전자의 몸을 잘 받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여러 편의사양의 탑재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바뀐 기이한 모습으로 인해 1960년형 임페리얼의 판매량은 17,719대로 전년 대비 간신히 증가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버질 엑스너는 판매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높은 대중성을 유지하는데 있어 여러 어려움이 있음에도 엑스너 스스로의 개인적인 취향에 가까운 스타일을 추가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며 1961년에는 "그것(60년형)보다 더 많은 것들(디자인 요소)들이 추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3.1.4. [1961년-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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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에는 전년도인 1960년형 임페리얼의 전면부가 일회성 디자인이었음이 입증되었으며, 1961년에는 새로운 연작인 RY1(L, M, H 트림 명칭 포함)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전년도의 웃기만 하는듯 했던 아랫부분이 V자형으로 전면부를 감싸는 그릴과 범퍼, 그리고 반쯤 덮개가 달린 전조등은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에는 훨씬 더 수평적인 디자인의 전면부가 자리잡게 되었다. 그릴은 직사각형으로 4등식 전조등 사이에 있었다. 해당 전조등은 독특하게도 독립형으로 차체와 분리되어 막대사탕처럼 얇은 지지대 위에 놓여 있어서 마치 20세기 초반 고전시대 자동차들의 전조등을 연상케 했다. 또한 범퍼는 1960년형보다 훨씬 얇아 거의 완전히 수평에 가까워졌고, 최소한의 장식이 특징이었으며 전면 펜더는 전조등 뒤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가 깊이 파였고, 앞바퀴를 감싸는 벽은 마치 1930년대 자동차처럼 컷어웨이 효과를 구현했다. 그리고 임페리얼의 알파벳 상징은 더 크고 훨씬 더 드라마틱한 효과를 주는 글꼴로 묘사되었다. 차체 측면의 크롬 트림은 전년도처럼 전면부 전조등의 위쪽에서부터 시작되어 후미 부분까지 이어졌으며 역대 임페리얼 차량에 장착된 테일 핀 중 가장 거대한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1960년대 미국 자동차 전반에 걸쳐 가장 큰 크기의 테일 핀이기도 했다. 후미등의 배치는 전면부의 전조등과 유사한 느낌을 주도록 차체 안쪽 방향을 향해 파여진 테일 핀에 위쪽으로 연결된 얇은 지지대를 통해 더 안쪽으로 삽입된 형상이었으며 이로 인해 전년도보다 후미등의 위치가 더 낮아지게 되었다. 후면 범퍼는 1960년형부터 이어졌지만 트렁크의 인기 있는 컨티넨탈 키트 옵션은 더 많은 세부 장식과 트림을 얻게 되었다.1961년형 차량들에 적용된 이러한 일련의 모든 요소들은 사실 1920-1930년대 사이 독립 브랜드로 분리되기 전 1세대와 2세대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의 고전적인 디자인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당시 버질 엑스너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추진하고 있던 복고 지향적 스타일링의 일환이었다. 버질 엑스너는 이를 두고 "기분 좋은 고전적인 후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내의 변경된 부분으로는 전자 발광 계기판이 더 이상 별도의 원형 테두리 안에 있지 않고 자동차의 새로운 전면부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수평적인 역사다리꼴 모양의 직사각형 안에 여러 계기반들과 함께 집단화된 부분이 있었다.

3.1.5. [1963년-19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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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1965년-19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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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1967년-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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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1969년-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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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1971년-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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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0. [1973년-1974년]

3.1.11. [1975년]

4. 제2기[1981-1983]

5. 생산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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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페리얼 브랜드 역사 전반에 걸쳐 가장 대표적인 슬로건이다.[2] 1974-1975년 슬로건[3] 의역[4] 1969-1973년 슬로건[5] 機體. 항공기의 몸통을 의미한다.[6] 1967-1968년 슬로건[7] 1964-1966년 슬로건[8] 1960-1963년 슬로건[9] 1957-1959년 슬로건[10] 樣式. 시대에 따라 각기 달라지는 스타일 형식을 의미한다.[11] 미국에는 역사상 수많은 럭셔리 자동차 제조사들이 존재하였지만 이들 제조사는 대부분 1950년대를 마지막으로 폐업하거나 타 회사에 인수•합병되는 방식으로 사라졌다.[12] 주로 1기 초반기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캐딜락의 1959년형 차량들이 해당된다.[13] 다만 팩커드의 경우 1956년까지 자체 개발한 "패트리션"과 같은 고급 자동차를 선보이긴 했지만 전성기가 이미 지난 상황이었다.[14] 이들 3대의 차량은 당시 디트로이트로 돌아와 크라이슬러의 공장에서 1956년형 임페리얼의 외장으로 개조되었다. 세대의 차량 모두 현재까지 존재하며 미국의 박물관등지에 보존되고 있다.[15] Southampton. 영국 잉글랜드 햄프셔주의 남부에 위치한 도시 이름에서 따왔다.[16] 현대 자동차들에 적용되는 버튼형 변속기와 유사한 형태[17] Philco.[18] Mopar. 크라이슬러의 자동차 부품, 서비스 및 고객 관리 부서[19] 파일:56ImperialHiwayHi-Fi1694746030517~2.pngHighway Hi-Fi.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이 "콜럼비아 스페셜 프로덕트"사와 합작하여 개발한 자동차용 LP 재생기. (현대에 생산되는 자동차 오디오의 시초이다.)[20] 바디 온 프레임 방식[21] 이전 세대: 2,001.52mm[22] 실내 공간 폭: 전면 1,625.6mm 후면 1,574.8mm[23] 푸시 버튼 방식으로 조작할 수 있었다.[24] TorqueFlite A466.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이 1956년 후반에 도입한 3단 자동변속기의 명칭[25] 현재는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측면 유리에 곡면을 적용하고 있지만, 당시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대부분의 자동차들은 측면 유리가 모두 평면이었다. 미국 자동차에서 곡면형 측면 유리가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은 1960년대 중반 이후였다.[26] 미국자동차 디자이너 버질 엑스너가 1957년 도입한 그룹 계열사 전반을 아우르는 디자인 양식으로 낮으면서도 넓은, 전장을 강조하는 긴 차체와 테일 핀을 극대화해 공력적 특성을 개선하고 시각적인 인상을 극대화 하고자 한 양식[27] 1959년형 캐딜락 차량들 전반에 해당[28] 파일:57ImperialHeadLight1694751818120.png2등식 전조등의 모습. 여담으로 당시 4등식 전조등이 아직 모든 주에서 합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임페리얼은 4등식과 2등식 두가지 유형의 전조등을 광고하였고 그중 1957년형을 구입한 소수의 구매자들만이 2등식 전조등을 장착한 차량을 받았다고 하며 이 때문에 2등식 전조등을 장착한 1957년형 임페리얼은 가치가 조금 더 높다고 한다.[29] 상단의 붉은색 사진의 필기체로 된 문자[30] 엘도라도로 대표되는 1959년형 캐딜락의 유명한 테일 핀과 후미등의 디자인은 1957년형 임페리얼의 테일 핀과 후미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31] FliteSweep.[32] Jefferson Avenue Assembly[33] Imperial Le Baron.[34] 공장에서 제작한 임페리얼 차량으로서는 최초의 컨버터블[35] Southampton. 영국 잉글랜드 햄프셔주의 남부에 위치한 도시 이름에서 따왔다.[36] 이탈리아카로체리아[37] 한화 1억 5,918만원(당시 경제 상황등을 고려해본다면 당대 미국이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고 해도 상당한 가격임에는 틀림없다.)[38] 외장에 있어서 차체는 전년도와 동일하며 전면 그릴과 전면 범퍼, 전면 방향지시등의 형상만 변경되었다.[39] "달걀상자"형 이라고도 한다.[40] 라디에이터의 형상과 유사한 모습[41] Auto-Pilot.[42] 1958년형 임페리얼크라이슬러 뉴요커, 300, 사라토가, 윈저에 도입되었다.[43] Ralph Teetor. 미국의 시각 장애인 기술 개발자로 세계 최초의 크루즈 컨트롤 체계를 발명하였다.[44] 그후 1950년에 특허를 받은 티터의 스피도스타트(Speedostat) 체계는 회전하는 속도계와 연결된 선을 통해 속도를 계산하는 대시보드의 제어 다이얼을 사용했다.[45] 당시 임페리얼은 독립 부서로서 분명 크라이슬러 브랜드와 분리된 별도의 브랜드였지만 일부 소비자에게는 여전히 크라이슬러의 값비싼 "특별판"으로 인식이 되었다.[46] Jefferson Avenue.[47] Warren Avenue.[48] Silvercrest.[49] Coupé de ville. 마차시대부터 유래한 고전 자동차의 차체 양식중 하나이다.[50] Landau.[51] Wedge.[52] 224.4인치[53] 225.9인치[54] 226.3인치[55] Panelescent.[56] High-T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