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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3:33:36

잔카를로 잔니니

역대 칸 영화제
파일:칸 영화제 로고.svg
남우주연상
제25회
(1972년)
제26회
(1973년)
제27회
(1974년)
장 이안
(우리는 함께 늙지 않는다)
잔카를로 잔니니
(사랑과 무정부)
잭 니콜슨
(마지막 지령)

<colbgcolor=#1d8acd><colcolor=#fff> 잔카를로 잔니니
Giancarlo Giannini
파일:giancarlogiannini.jpg
출생 1942년 8월 1일 ([age(1942-08-01)]세)
이탈리아 리구리아 라스페치아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장 170cm
직업 배우, 성우, 감독, 작가
데뷔 1965년 영화 'Shades of Truth'
활동 1965년현재
학력 실비오 다미코 국립 극예술원
배우자 리비아 잠팔모(1967년 결혼~1975년 이혼)
에우릴라 델 보노(1983년 결혼)
자녀 아들 로렌초 잔니니(1967년 출생~1987년 사망)[A]
아들 아드리아노 잔니니(1971년생)[A]
아들 엠마누엘 잔니니[B]
아들 프란체스코 잔니니[B]

1. 개요2. 상세3. 여담4. 주요 출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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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소피아 로렌, 모니카 비티 등과 함께 이탈리아 영화의 황금기 시절을 장식한 배우. [5]

2. 상세

이탈리아 북부의 라스페치아 지방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나폴리로 이주해 전자 공학도를 지망했으나 10대 후반에 배우로 진로를 바꾸어 연극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잔카를로는 셰익스피어 희곡(한여름 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TV로 활동 무대를 옮겨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60년대 후반 깔끔한 용모와 맵시 있는 캐릭터로 인기를 얻었던 잔카를로는 70년대에 유럽 영화계에서 크게 활약한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조감독 출신인 여성 감독 리나 베르트뮐러(베르트뮐레르) 감독의 영화에서 주로 배우 마리안젤라 멜라토와 커플로 등장하면서 대표작들을 마련한다.[6]

빅 히트한 《미미의 계략》을 시작으로 《사랑과 무정부》로는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고 《귀부인과 승무원》도 큰 흥행에 성공한다. 결정적으로 《세븐 뷰티스(7공주댁 파스콸리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등극한다. 해당 영화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여성 감독이 감독상 후보에 오른 사례로도 기록된다. 이런 상징성 덕분에 리나 베르트뮐러가 2019년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상했을 당시 여성 감독인 그레타 거윅, 제인 캠피온이 축사를 낭독했다.

다만 한국에서는 리즈 시절 필모와 해당 필모를 채운 리나 베르트뮐러 감독의 영화는 소개가 덜 된 편인데, 노골적인 묘사와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주제들로 인해 70년대 동시대의 한국에는 소개가 되지 못한 점으로 추론된다. 당시 서구에서도 베르트뮐러의 영화들은 급진성과 모호함, 여성에 대한 묘사로 논쟁을 일으켰다.

이후 잔카를로는 루키노 비스콘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기예르모 델 토로, 리들리 스콧 등 유명 감독들의 영화에 출연했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유작 《순수한 사람들》에 주연으로 출연했을 당시 촬영 일정 때문에 포기했던 영화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이었다고 한다.

50년이 넘는 활동기간 동안 이탈리아 영화뿐 아니라 영미권 영화, 스페인어 영화, 브라질 영화 등에도 출연한 폭넓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잔카를로가 명배우로 인정받는 이유는 감정 연기도 물론 빼어나지만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 억양을 자연스럽게 구사한다는 점에 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 말투, 강원도 말투, 경상도 말투, 전라도 말투, 이북 말투 다 잘하는 격이다. 음성 연기가 빼어나다 보니 성우로서의 경력도 출중한 편.

영상 링크 2017년 이탈리아 공영 방송에 출연한 잔카를로의 모습. 방청객들 모두 기립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모습을 통해 이탈리아에서 위대한 배우라고 불리는 그의 위상을 알 수 있다.

3. 여담

아들 아드리아노 잔니니도 배우로 활동 중인데 아버지의 대표작인 《귀부인과 승무원》의 2002년 헐리우드 리메이크 버전 《스웹트 어웨이》에 마돈나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다. 다만 원작은 이탈리아 정치 갈등, 시칠리아인과 밀라노인의 남북 갈등, 성별 갈등, 빈부격차 등의 문제를 돌직구로 풍자한 매우 정치적인 영화인데 리메이크 판은 그냥 헐리우드 로맨스 영화로 바꿔버렸다. 덕분에 원작에서도 블랙 코미디라서 이해하고 넘어가는 다소 이상한 전개 등을 그냥 '사랑' 때문이라고 퉁치려니까 스토리가 완전히 붕괴되었고 희대의 망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악의 영화 시상식 골든 라즈베리를 휩쓰며 아드리아노에게는 흑역사가 되었다. 다만 이후로 아드리아노는 이탈리아에서 좋은 커리어를 쌓으며 배우 생활을 착실하게 이어가고 있다. 이탈리아 거장 난니 모레티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4. 주요 출연작



[A] 리비아 잠팔로와의 자녀[A] [B] 에우릴라 델 보노와의 자녀[B] [5] 다만 이들보다는 한 세대 뒤다. 마르첼로는 거의 삼촌 뻘 차이고 소피아 로렌이나 모니카 비티하고도 10살 차이다. 프랑코 네로랑 세대가 같다.[6] 마리안젤라 멜라토와는 남매 같이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7] 당시 칸 심사위원장은 잉그리드 버그만이었다[8] 수상은 시드니 루멧 감독의 네트워크에 출연한 피터 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