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a50034> | 창원 LG 세이커스 2024-25 시즌 선수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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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 수석코치 임재현 · 코치 박유진 · 김동우 · 코치 겸 D리그 코치 강병현 · 컨디셔닝 코치 김찬훈 · 최영재 | |
스태프 | 트레이너 김승찬 · 통역 김용국 · 매니저 이창학 | |
가드 | 0 김종호 · 1 유기상 · 5 양준석 · 6 한상혁 · 7 이승훈 · 17 최형찬 · 22 이경도 · 27 장태빈 · 30 두경민 | |
포워드 | 2 최진수 · 3 장민국 · 8 박준형 · 11 허일영 [[주장| C ]] · 16 정인덕 · 21 이광진 · 23 전성현 · 33 타마요 · 86 먼로 | |
센터 | 13 이강현 · 31 박정현 · 50 마레이 | |
군 입대 | 2024년 입대 양홍석 · 윤원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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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WON LG SAKERS | |
장민국 張民國[1] | Chang Min kug | |
출생 | 1989년 7월 5일 ([age(1989-07-05)]세) |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2]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키 199cm|체중 94kg |
포지션 | 스몰 포워드 |
학력 | 대치초등학교 (졸업)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졸업)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졸업) |
프로입단 | 2012년 1월 드래프트 (1라운드 10순위, 전주 KCC) |
병역 | 신협 상무 (2016~2018) |
소속 | 전주 KCC 이지스 (2012~2014) 안양 KGC인삼공사 (2014~2015) 서울 삼성 썬더스 (2015~2023) 나가사키 벨카 (2023~2024 / B1리그) 창원 LG 세이커스 (2024~) |
가족관계 | 아버지 장윤창[3], 어머니 이성희, 형 장대한[4]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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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창원 LG 세이커스 소속 프로농구 선수. 포지션은 포워드이다.2. 아마추어 시절
배구계의 전설적인 선수인 장윤창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장민국은, 이 때문에 중학교 1학년 때는 키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배구계에서 스카우트 시도도 있었다. 다만 자신은 농구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배구 대신 농구의 길로 가게 되었다. 아버지의 좋은 신체조건을 물려받은 부분도 있었고, 개인 훈련등을 통해서 단대부중을 거쳐서 단대부고에서도 촉망받는 유망주가 되었다. 이후 키가 커진것은 덤.큰 신장과 유연함을 갖추고 스피드와 외곽슛을 겸비했지만, 연대 시절에는 예상과 다르게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자신의 하드웨어를 활용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잦은 부상이 대학내내 선수 생활을 괴롭혔던 것이 부진의 원인이 되었다. 대학때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하드웨어를 겸비했기 때문에 결국 1라운드 10순위로 KCC에 지명되는데 성공했다.
3. 프로선수 시절
하승진이 공익으로 복무하면서 전력에서 이탈해 빅맨의 부재에 빠진 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것이라 예상했지만, 9월경 발등 피로 골절로 부상을 또 당해버렸고, 결국 시즌아웃되었다.이후 절치부심해서 2013-14 시즌을 맞게 되었고, 이후 KCC가 개막전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데 한 축을 담당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11월 6일 원주 동부 프로미와 홈경기에서 상대 용병인 키스 랜들맨을 상대로 인 유어 페이스를 성공시키며,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이런 활약 속에 KBL 올스타전에도 출장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시즌말로 갈수록 체력문제나 경험부족, 포지션 문제등을 겪으며 시즌 초의 기세에 비해 활약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강병현과 함께 묶여 2:1로 KGC의 김태술을 상대로 한 사인 앤 트레이드로 KGC 인삼공사로 옮기게 되었다. 인삼공사에서의 첫 해는 소포모어 징크스에 지독하게 시달리고 있는 나머지, 3라운드까지는 상당히 좋지 못한 편이다. 앞으로 본인 스스로가 어떻게 잘 넘기냐에 달린 듯. 이적 후 지금까지도 KCC에서 보여줬던 모습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출전시간 문제로 이적을 요구했고, 그럼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버지인 장윤창이 KGC 구단을 찾아와 이적을 요구하면서 대판 싸운 끝에 기물파손으로 입건된 불상사가 터졌다.왕년의 배구 스타 장윤창, 아들 소속 구단 기물 파손 입건 게다가 22일에는 장윤창 씨의 입장을 담은 기사가 나왔으며 장윤창 "인삼공사가 트레이드 말 바꾼 것에 격분". 장민국 선수는 현재 KGC로 부터 귀가 조치를 받은 상태이다. 역시 시즌 아웃.
시즌 후 2015년 4월 29일, 유성호를 상대로 서울 삼성 썬더스에 트레이드됐다. 초반에는 꽤 오래 출장하며 임동섭 등과 함께 외곽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문태영이 국가대표에서 돌아오면서 출전 시간이 줄어들었고, 본인도 무릎 부상으로 몇 경기동안 이탈하게 되었다. 이후, 김준일이나 임동섭, 문태영 등 국내 포워드진들의 체력 안배 타임 때 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2015년 12월 17일, 모비스와의 원정경기에서 71-72로 뒤지던 경기 종료 직전,
하지만 4라운드 이후 활약은 극도로 미미하다. 기본적인 볼터치가 미흡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큰 키를 살리는 플레이는 김준일과 문태영의 몫이고, 앞선에서 활동량을 보이는 플레이는 관록의 주희정과 전역하면서 기량발전이 눈에 띄는 이관희가 책임지고 있기 때문. 밖에서 주로 도는 포워드 롤은 임동섭이 주전으로 떡하니 있다. 이 밖에 용병 에릭 와이즈와 리카르도 라틀리프의 출전시간까지 감안하면 현재 삼성의 팀플레이에서 장민국이 기여하는 롤은 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2월 이후 임동섭이 부상으로 플레이오프 출전이 불투명한 상황이 되면서 그 외곽 슈터 역할을 대신 해줄 필요성이 생겼다. 출전시간도 많이 늘어났으며, 기복은 아직 있지만 슛감을 어느정도 회복해 나가고 있다! 실제로 18일 KT와의 홈경기에서는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 3점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2016년 2월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슈터로 기용되었다. 중요한 순간에 강심장을 발휘하여 나름대로 슈터로서의 역할은 했지만, 더 중요한 상황에서 실책을 저지르는 등 확실히 BQ가 모자란 모습을 보이며 중용되지 못했다.
시즌이 끝나고, 상무 농구단에 지원했다. 이번 기수에 지원한 선수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고, 현재 상무 농구단의 포워드진 뎁스, 특히 장신 선수들의 풀이 얇아 합격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합격했다! 복무 기간동안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자.
2018년 1월 17일 제대했고, 다음 날 KGC전에 출격했다. 이 경기에서는 5득점. 이후, 수비에서는 삼성에 없는 빅맨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공격에서는 스트레치 4로써 캐치 앤 3점슛, 슛 페이크 후 돌파, 미드레인지 점퍼를 고루 활용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슛이 들어가지 않으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점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2019-20 시즌 중반부터 FA로이드 덕분인지 3점슛 적중률이 크게 늘어났다. 무려 40프로를 기록했는데, 이는 규정순위중 라렌에 이어 전체 2위의 기록이다. 이 때문에 알짜베기 FA로 뽑히고 있다.
이후 2020년 5월 13일, 삼성과 3년간 보수 총액 3억 5천만원에 재계약에 성공했다. 직전시즌 7천만원이었던 연봉에서 무려 2억 8천만원이나 상승한 수치이다.
2020-21 시즌 초반 팀의 주전 4번인 김준일이 부상을 당하면서 4번으로 많이 나오고 있다.
11월 14일 오리온과의 홈 경기, 1점차로 뒤지고 있던 막바지 공격에서, 한호빈에게 오펜스 파울을 범하며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5] 파울작전 이후 마지막 극적으로 찾아왔던 동점 3점 패턴에서도 마무리짓지 못하며 아쉬운 하루가 되었다.
2라운드 휴식기 기준 50%가 넘는 3점 성공률로 리그 1위를 달리는 등, 삼성의 외곽 공격 옵션에서도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시즌을 거듭할수록 부진하는 모습을 보이며 팀 6강 탈락에 기여했다.
2021-22 시즌에는 임동섭처럼 3점 못넣는 슈터로 전락하며 제대로 하락세를 탔다.
2022-23 시즌에도 여전히 부진했으며, 결국 시즌 후 FA를 포기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KBL 은퇴 후 장민국은 B. LEAGUE에 관심을 가지며 B.LEAGUE 1부팀인 나가사키 벨카와 계약을 체결했다. 나가사키 벨카는 직전시즌 B.2리그 소속으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1부 리그로 승격한 팀이다 보니 선수층 강화를 위해 장민국을 영입한 것으로 보인다. B.리그에서 55경기 평균 11분 36초 출전해 3.2점 1.4리바운드 3점슛 성공률 34.4%(42/122)를 기록했다. 이후 나가사키 벨카와 재계약이 불발되어 FA 선수로 풀릴 예정이다.
그리고, 2024년 6월 3일 창원 LG 세이커스에 영입됐다. B.리그 진출 1년만에 KBL 복귀를 확정했는데, LG가 정희재의 이적과 양홍석의 군입대로 인해 얇아진 포워드 뎁스를 보강하는 차원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것이다.
2024년 12월 28일 KT와의 홈경기에서 4쿼터 14초를 남기고 한 점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결정적인 3점슛을 성공시켰고, 2.5초 남은 채 펼쳐진 KT의 마지막 공격을 블록으로 막아내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4. 관련 문서
[1] 배구 국가대표출신인 아버지가 1979년 루마니아 대회에 갔을 때 애국가를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해 진다는 영향을 받고 두 아들의 이름을 각각 대한(大韓), 민국(民國)이라고 지었다고 한다.[2] 참조[3] 배구계의 레전드이자 현재 경기대학교 교수를 맡고 있다.[4] 張大韓. 1986년 8월 1일 생. 단대부중학교 시절 동생보다 먼저 농구선수 생활을 했고, 성균관대에서도 농구선수로 활약했으나 이후 농구 선수의 꿈을 접고 프로골퍼로의 꿈을 키워 가다 2013년 9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28세.[5] 하지만, 장민국 입장에선 억울할만 한 것이, 한호빈이 패스를 막 받은 장민국에게 전혀 공간을 주지 않고 달라붙었고, 공격 연결 동작 중이었던 장민국의 팔꿈치에 얼굴을 맞고 말았다. 오히려 수비자 파울이 불렸어도 될법한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