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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A5E59><colcolor=#ffd400> 조선 양녕대군의 딸 전의현주 | 全義縣主 | |
재령군주묘 전경 | |
출생 | 1409년(태종 9년) |
사망 | 미상[1] |
능묘 | 재령군주묘(載寧郡主墓)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산34 | |
본관 | 전주 이씨 |
부모 | 부친 - 양녕대군 모친 - 수성부부인 |
배우자 | 이자(李孜) |
자녀 |
|
봉호 | 재령군주(載寧郡主) → 전의현주(全義縣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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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폐세자 양녕대군과 폐세자빈 수성부부인의 장녀.2. 생애
당시 세자였던 아버지 이제(李褆)와 세자빈 숙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1418년(태종 18) 6월 3일에 아버지가 폐세자가 되어 광주로 추방당하고, 어머니도 궁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때 폐세자 부부가 같이 궁에서 쫓겨난 것으로 보아 전의현주를 포함한 자녀들도 같이 광주에서 산 것으로 보인다.#
그 후 1425년(세종 7)에 대제학 이행의 손자 이자(李孜)와 혼인했다.
1431년(세종 13) 10월 18일에 ‘재령군주(載寧郡主)’에 봉해졌다.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군주(郡主) 호를 받은 후 ‘전의현주(全義縣主)’에 새로 봉해졌다.#[2]
3. 가족관계
- 친정(조선 왕실)
- 배우자 / 자손
[1] 세종실록 1444년 12월 28일 자 기사에 ‘양녕대군의 딸이 죽었다’는 내용이 있지만, 이 딸이 전의현주인지는 확실치 않다.[2] 1440년(세종 22년)에 종실 여자들의 관제를 개정하였는데, 대군 정실의 딸은 ‘현주(縣主)’라고 칭하라고 하였다. 아마 이후 봉작된 것으로 추정된다.